이데올로기를 넘어서야

2005-02-28 18:49:15

 

지금 우리 사회에 있어 가장 절실한 과제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은 경제살리기를 말한다. 하지만 경제문제도 보다 근원적 이유를 캐내보면 계층과 집단, 지역과 세대 간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취약한 정권 기반에서 시작한 노무현 정권은 지난해 대통령 탄핵과 4.15총선을 거쳐 집권기반을 강화한 것으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노대통령의 이러한 집권기반 강화 전략 나아가 현 정권의 개혁이 국론분열을 야기하였고,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대립과 갈등을 증폭시킨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간과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지도력 강화를 위하여 정권기반을 강화하기 노대통령의 개혁을 위한 전략이 지금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노대통령의 지도력을 위협하고 있다. 결국 개혁 대 반 개혁으로 지지기반을 강화하려는 현 정권의 정치적 의도가 국론 분열과 사회갈등을 고조시킨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출범 3년차를 시작하는 노무현 정권에게 그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국민 통합의 리더쉽일 것이다.

 

현 정권을 좌파정권이며 빨갱이라고 매도하는 식의 계급갈등을 촉발하는 야당의 현 정권에 대한 대안부재의 정치공세는 단지 기존의 기득권 세력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 수호를 위한 이데올로기적이라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현 정권의 개혁 또한 현 정권의 개혁이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구체적 청사진이 없는 기득권 빼앗기 식의 자신들의 집권기반을 강화시키기 위한 또 다른 의미의 이데올로기에서 추진되는 것이며, 국민화합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닌, 사회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계급 당파적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구도는 분명히 이데올로기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갈등 요인에 대하여 與野할 것 없이 공동의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들만이 생각이 객관적이라 절대화하는 것은 정신적 미숙의 증거이다. 여야할 것 없이 대립하는 정치집단의 주장과 정책이라는 것은 자신들의 권력획득이나 권력강화에 연관되어 있으며,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들의 주장의 범주와 한계 나아가 포기할 조건을 이해함으로써 나아가 상호존중에 기초한 대화와 협력을 통해서만이 우리 사회의 정치발전과 사회적 연대성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데올로기(ideology)라는 말이 18C 프랑스에서 처음 쓰여졌을 때, 그것은 인간이 가진 관념이나 사상을 연구하는 학문(the study of ideas)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얼마 후 이데올로기는 사회에 대한 사상 또는 지식(ideas about society)을 뜻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고, 오늘날 사용되는 이데올로기의 개념은 때로는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만,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당파적 이해에 기초한 현실에 대한 삐뚜러지고 왜곡된 사상이나 지식이라는 부정적 의미의 뉘앙스를 함축하고 있다.

 

이데올로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무엇보다도 정당이나 그 밖의 정치적 조직체가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이론으로 생각되어 왔다. 정당과 같은 정치 조직체들은 일정한 계급이나 계층 그리고 특정 세력에 지지를 호소한다. 이데올로기는 무엇보다 설득과 행동의 유도를 목적으로 하는 규범적 진술이기 때문이다. 정당의 정책이나 이념이 매력적인 것이라면 그 정당이 주장하는 정책은 지지세력의 利害와 정치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정당의 主義, 主張이나 정책이 이데올로기적인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특정 정당이나 정파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이데올로기가 현실을 지나치게 왜곡하거나 단순화시키거나 왜곡시켜 부각하는 경향을 띠게 된다는 데에 있다. 지난해 연세대에서 행한 <보수는 무조건 바꾸지 말자>고 말하는 식의 노대통령의 발언이나, 현 정권을 단순히 반미 친북의 빨갱이로 매도하려는 극우적이며 사회발전에 반동적 집단의 주장은 이데올로기의 대결의 양상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의미의 이데올로기는 좌우익으로 갈라져 극단적이고 폐쇄적인 신념 및 사상체계를 갖추게 되고, 반대파의 이데올로기를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찬 왜곡된 사상으로 규정하고 배척한다. 대립하는 정치집단은 자신들만의 생각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상대방의 주장은 기만적인 허위의식이라 비난한다.

 

다니엘 벨(Daniel Bell)西歐에서의 이데올로기 종언’ (The end of ideology)을 주장했을 때의 이데올로기는 이러한 극단적 정치이데올로기를 말하는 것이다. 다니엘 벨은 에드워즈 쉴즈(Edward Shils), 로버트 하버(Robert A. Harber) 등과 함께 혁명을 통하여, 천년왕국을 건설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적 허구가 서구 사회에서 사라지고 있음을 강조한 이데올로기 終焉論者이다. 이데올로기 종언론자들은 이데올로기 종언론의 근거로, 첫째, 서방세계에서 지난 수 십년 동안 민중봉기, 혁명 통한 인민의 천국을 건설한다는 것이 허구임이 드러났으며, 둘째,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민중의 위한 정치제도로 부적합함에 대한 평가가 내려졌고, 셋째, 이데올로기에 힘을 제공하였던 계급 간의 갈등이나 빈부 격차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해소되었으며, 넷째,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현대사회가 단순한 합리주의나 과학적 신념에 의한 사회공학을 통해, 하루 아침에 사회적 조화를 이루는 유토피아가 건설될 수 있다고 믿는 지식인이나 과학자는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그 이유로 말하고 있다.

 

이데올로기 이론에 최초로 체계 있는 이론적 성격을 부여한 마르크스(Karl Marx)는 이데올로기를 허위의식으로 보고, 모든 이데올로기적 신념이나 이론을 배척하였다.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의 개념을 자본주의 사회체제의 현상을 유지를 꾀하는 선택적이고 왜곡된 사상이라 규정하였다. 마르크스가 비판하는 이데올로기는 사회의 지배층, 부르죠아의 지위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필요한 수단으로서의 허구적 사회사상이라 주장한다. 마르크스는 인간사상의 불완전성을 폭로하고 정치적, 도덕적, 법적 이데올로기는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확보에 필요한 도구일 뿐임을 지적한다.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의 원천이 인간의 본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불합리성에서 기인한다 보았다. 이러한 견해는 <의식은 존재에 의해 결정된다>는 유물론에 입각한 것이다. 의식이 존재에 의해 결정된다는 명제가 사실이라면 허위의식의 근원은 사회구조에 있고, 따라서 사회구조가 합리적으로 개선되면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르기는 극복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에 있어서의 인간의 모든 지식과 이념은 허위의식에 지나지 않지만 끝내는 역사적 필연성에 의하여 인간지식이 이데올로기성(허구성)을 극복하고 참된 의식과 지식을 찾게 될 것이라 믿었다.

 

칼 만하임(Karl Manheim)은 그의 저서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Ideologie und Utopie>에서, 이데올로기를 명확히 구별되는 두 가지 의미, <이데올로기의 特殊性><이데올로기의 全體性>의 의미로 파악한다.

 

이데올로기의 특수성이란 우리가 우리들의 상대방이 표명하는 이념과 관념들에 대하여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정치적 반대자들의 주장이란 현상과 본질을 의식적으로 은폐하는 것으로 간주하며 그러하기에 사회현상에 대한 진정한 인식이란 상대방의 주장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의한 왜곡행위는, 의식적인 거짓말에서부터, 부지불식 간에 저지르는 은폐, 치밀하게 상대방을 속이는 것으로부터 자기기만에 이르기까지 수 없이 많다. 거짓말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서서히 개별적 분화되고 발전되어 온 이데올로기의 개념은 특수한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전체성이란 한 시대의 이데올로기, 구체적 역사적 사회적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지칭하는데, 이데올로기의 전체성이란 시대 또는 계급집단이 지니는 전체적 의식구조의 특성과 성향이다. 예를 박정희가 생각한 국가발전이란 국가의 총생산의 증가가 국가의 발전이라는 여기는 한 시대의 이데올로기이다. 개발독재 시대의 성공하는 인간의 의식이란 출세하기 위하여서는 줄 잘 서고 힘있는 자에게 빌붙고, 자신의 잇속을 챙기고 자신의 이기심을 극대화하는 것이 잘사는 것이라 믿고 살아온 것이다.

 

만하임은 이데올로기의 특수성과 전체성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설명한다.

 

두 개념이 지니는 공통점은, 상대방이 주장하는 의미와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 상대방이 말하는 것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어떠한 정치집단의 주장이나 개인의 주장을 이해함에 있어, 그 주체의 사회적 존재를 이해함으로써, 그의 주장이 아닌 말하는 주체의 삶의 조건에 의하여 그의 주장을 이해하려 한다. 따라서 그 주체가 주장하고 표명하는 이념은 그의 존재의 기능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어떤 사람의 의견, 진술, 제의, 사상체계는 그가 말하는 외형상으로 드러난 가치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 상황의 견지에서 해석된다. 예컨데, 당연한 귀결로 열린우리당 당원은 열린우리당의 이데올로기를, 한나라당 당원은 한나라당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하게 사고하고 주장한다. 나아가 주체의 특정한 성격 및 의식구조도 존재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그의 의견이나 현실인식이 영향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그것을 보유하는 사람의 삶의 기능이 되기도 하고, 사회에서 그가 점하고 있는 사회적 위치나 지위의 기능이 되기도 한다.

 

이데올로기의 특수성과 전체성에는 현격한 차이점도 있다.

이데올르기의 특수성은 상대방이 이데올로기라고 주장 것의 일부만을 지칭하고, 그 주장의 내용을 문제삼는 반면에, 이데올로기 전체성은 상대방의 전체적인 세계관을 문제 삼으며 상대방의 주장이란 상대방 참여하거나 지지하는 집단의 집단적 의식이 소산으로 이해하려 한다. 예를 들면 이라크 파병을 반전운동이나 친미행위로 보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특수성의 문제이고, 노빠는 말 뿐인 기만적 개혁으로 현실 파괴적이라 비난하고, 딴빠는 사회발전과 개혁에 반대하여 오로지 자신들의 기득권 수호에 연연하는 수구 꼴통이라는 식의 상대방의 세계관과 삶의 태도에 대한 비난은 이데올로기의 전체성의 문제이다.

 

인간의 모든 사상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자신이 처한 사회환경에 구속받기 때문에 객관성이 결여된 왜곡된 사상일 수 밖에 없다는 만하임의 초기 견해는 이 후, 인간은 자신이 처한 사회적 위치와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자신의 지식이 왜곡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다른 사람과 개방적인 지적 교류를 통하여 객관적이고 타당성 있는 지식이 정립 가능하다고 주장하게 된다. 만하임의 이러한 변화는 보다 객관성과 타당성을 갖는 지식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노력으로 평가된다.

 

서구의 선진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논의 자체가 이미 낡은 것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그럼에도 우리 현실은,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는 여전히 이데올로기적이다. 계급모순과 민족 모순을 극복을 염두에 둔 현 집권 세력의 개혁과 현실인식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의존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현 집권 세력이 사회주의 정부의 수립을 기획한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2년 간 보여준 현 집권 세력의 행태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의거하여 기득권 세력의 기득권을 박탈하거나 제제하는 것이 사회정의를 위하는 것이라는 믿는 것으로 여겨진다. 반면 야당의 일각에서는 현 정부를 좌파정부이고 빨갱이로 매도하며 사회발전을 위한 개혁마저도 거부하는 수구적이며 사회발전에 반동적인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세력이 여전히 상존하는 것이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지금의 우리 사회가 좌우익으로 갈라져 극단적이고 폐쇄적인 신념 및 사상체계를 갖추게 되고, 반대파의 이데올로기를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찬 왜곡된 사상으로 규정하고 배척하는 현실을 우려한다. 이러한 현실이 있게 된 사회역사적 배경에 오랜 세월 독재 정치문화에 젖어, 나만이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며, 독선적이고 배타적으로 잘못 살아온 우리들의 삶이 있다. 나는 우리들 스스로 옳다고 믿고 있는 정치적 신념이나 가치들이 우리들이 모르는 사이에 이데올로기론이 말하는 허위의식에 젖어 있다고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국민화합을 위해, 통합의 리더쉽이 절실히 아쉬운 싯점이다. 하지만 통합의 리더쉽 못지 않게 우리들 스스로 실천해야할 시대적 과제가 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들의 삶 깊숙이 침투해 있는 이데올로기적 허위의식을 우리 스스로 극복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아쉬운 때가 아닐까? 우리들 스스로 노빠와 딴빠로 대립하여 우리들 스스로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반목하며 살아간다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옛 성현이 이르기를, 나만이 옳고 남은 그르다 말한다면 그르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잘못된 것이라 말했었다. 자신의 주장만이 객관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신적 미숙을 토로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성숙한 인격은 스스로의 주장이나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함으로써 타인에 대한 개방성을 견지하고, 스스로 끊임없이 반성하고 학습한다. 반성하며 학습하는 개인만이 보다 나은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것처럼, 반성하고 학습하는 사회만이 새로운 역사적 도약을 이룩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사회가 진정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고 상호존중을 통한 국민화해를 이룩하고 이를 기초로 하여 결집된 국민적 역량을 발휘하고자 한다면 우리 사회의 성원들이, 그리고 우리의 문화에서 반성적 지성이 갖는 가치를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다. 참된 의미의 지성은 지성에 의하여 알 수 있는 것보다 알 수 없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이해한다. 사람은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인간실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스스로의 부족함에 대한 이해 또한 깊어진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지식산업시대의 신문

2004-12-09 08:29:54

 

 

1. 정보산업이란 아이디어와 정보를 생산 분배하는 산업이다. 신문업은 정보를 수집하여 평가하고 가공하여 새로운 가치를 지닌 정보를 생산하여 분배하는 산업이다. 과학 기술의 시대를 넘어서 이제는 정보화 사회이고 지식산업 시대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디어산업은 최첨단산업이다. 국가나 사회의 발전은 그 사회나 국가가 유용한 정보를 얼마만큼 가지고 있느냐로 결정된다. 사회의 진화는 사회성원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에 의존한다.

 

 

2. 신문시장에 대한 정보가 완전히 공개되는 인터넷 환경으로, 신문업은 소비자의 이익을 극대화할 때, 기업의 이익은 극대화된다는 고전적 시장의 원리가 가장 근접하게 적용되는 사업이 되었다. 여론을 왜곡하던 시대는 이미 끝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신문업의 성패는 정보를 수집하여 분석하고, 어떠한 카테고리에서 종합, 가공, 정리하여, 독자에게 가장 유용하고 효과적으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DB를 구축하는 데에 있다.

 

 

4. 기사의 가치는 경쟁을 통하여 결정된다. 기사의 가치는 그 주제를 다룬 다른 기사와의 경쟁 속에서 결정된다. 세상에 완전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쏟아지는 정보의 양은 개인이 제대로 평가하기에는 너무도 많고 복잡하다. 하이예크의 말처럼, 경쟁이란 개인이 불완전하게 지니고 있는 지식 내지는 정보를,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의 변화에 대하여 조정해 나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어떤 재화가 희소하고 그 재화의 가치가 얼마냐는 것은 사전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경쟁을 통해서 발견된다. 개인의 지식이 불완전한 경우 경쟁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면 사회가 복잡해지고 불완전해질수록 경쟁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개인이 지니고 있는 지식은 단편적이고 불완전하다. 경쟁은 개인이 불완전한 지식을 각자의 목적에 맞게 보완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러기에 기사의 가치는 필자의 업적이나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말하는 내용에 대한 다른 정보 매체와의 경쟁에서, 얼마만큼의 우위를 차지하고, 희소성을 가지고 있느냐로 결정된다. 나아가 사회적 또는 정치적 의사 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의 정도로 평가된다.

 

 

5.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중요한 정보가 무엇이고, 그것이 왜 중요한지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해설하고 이해를 돕는 평론이 중요하다. 신문기사의 가치는 정보의 분석을 위한 다각적이고 다차원적인 평가를 통하여 보다 깊이 있고 균형잡힌 이해를 돕는 정보를 생산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6. 우리사회의 신문사들은 인터넷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최근 정부의 신문법 개정 취지는 종이신문을 죽이고 인터넷 신문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것은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대세이다. 조중동의 사주나 편집진은 인터넷의 환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종이신문 기사을 온라인에 올려놓는 수준에서 인터넷 신문이 제작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혁신되어야 한다. 온라인 신문에서 심층기사를 쓰도록 하고 종이신문에 이를 요약 정리하는 방식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기사의 작성은 보도에서 해설과 평론의 기능을 강화하여야 한다. 독자에게 중요한 정보를 식별할 수 있는 가공된 정보를 생산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건전한 여론 형성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기존 조중동의 사설이나 논설위원 글들 중, 사회문제와 현상을 공부하는 대학생들에게 학습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는 글이 몇이나 될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어떤 이슈에 대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수준에서 글을 쓴다. 독자의 수준과 필자의 수준에 차이가 없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다시 말해 가치 있는 기사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Sensationalism에 입각한 선동적 자극적 관점에서 정부를 비판하고 사회비리를 폭로하는 기사작성의 태도는 마땅히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7. 지금 대학생들은 종이신문보다 인터넷 신문을 선호한다. 예를 들면 신문기사를 가지고 정보검색하고 글을 쓰려는 나 자신의 경우 종이신문은 보지 않는다. 국내 5~6개의 일간지를 인터넷으로 제목을 훓어 보고, 그 중 가장 관심이 많은 기사를 평가 분석하여 내 나름으로 소화하고, 내 나름의 방식으로 가치 있는 글을 생산하여 독자에게 가장 유용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려 한다. 보도된 신문기사 내용을 인용할 경우가 많다. 관련기사를 월 별 주제별로 나누어 보관하고 필요에 따라 다각적인 관점에서 과거기사를 재검토하며 글을 쓴다. 일의 제대로 하기위해 어쩔 수 없이 종이신문을 버리게 된것이다. 나의 경우 대중적인 인기보다는 어떠한 사안에 대한 보다 다각적이고 다차원적인 평가를 통하여 기존의 신문기사보다 보다 가치 있고 영향력 있는 글을 쓰고자 공부를 하면서 글을 쓴다.

 

 

8. 미디어 시장은 그야말로 적자생존의 시장이다.

저명인사가 네임 밸류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는 끝났다. 뉴스나 기사에 대해서 끊임없이 공부하며 평가 분석하는 자세 없이는 미디어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9. 인터넷 신문은 일간지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편집에 있어서 획기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톱뉴스가 2시간 만에도 바뀔 수 있지만 가치 있는 기사는 며칠 동안이라도 붙어있어도 괜찮다 생각한다. 때로는 일간지라는 사고의 틀을 깰 수 있는 획기적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10. 빌게이츠는 종이신문은 결국 사라질 것이라 말했었다.

종이신문이 사라질 것이라는 빌게이츠 말에 대하여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생각한다. 혹자는 인터넷 신문이 컴퓨터를 켜고 끄는 불편이 있다고 말한다. 이는 상황을 모르는 소리이다. 하루 종일 컴퓨터를 켜놓고 일하는 노동인구와 하루에 3~4시간 이상 컴퓨터를 켜놓는 것이 일상화 된 주부나 학생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신문사들은 종이신문에 대하여 인터넷 신문이 갖는 성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인터넷 신문은 지면의 제약이 없고, 멀티미디어 환경을 지원한다. 동시에 독자와 필자가 쌍방향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환경이 제공된다. 인터넷 신문은 건전한 여론 형성의 공론장을 제공하는 사이버 공동체의 관리자이어야 하며 나아가 디지털 콘텐츠의 프로듀서라야 할 것이다.

 

 

11. 신문은 권력이다.

프랑스의 작가 까뮈는 <전락>이란 소설에서, 한 퇴직 변호사의 독백을 통하여, 현대인들은 신문과 TV를 열심히 보고, 간통을 꿈꾸며 살아간다고 적고 있다. 현대인들은 다른 사람의 비극에 굶주려 있다는 점을 말한다. 단조롭고 지루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대다수 현대인들에게 다른 사람의 비극은 위안이 된다. 다른 사람의 비극에 눈물 흘리고 다른 사람의 비리에 비분강개한다. 이를 통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자신들의 삶의 정당함을 확인하는 계기로 삼는다. 신문은 대형의 비극을 특종하고 사회비리를 폭로하는 것을 특종으로 잡는다. 몰인정하고 인정 사정없는 것이 세상인심이기도 하다. 신문은 이를 장사 속으로 다룬다.

 

이해찬 총리는 베를린에서 조동은 지들이 권력인줄 안다며 조동은 내 손안에 있다며 까불지 말라 말했었다. 이번 개정 신문법안이 조중동을 겨냥한 것도 조중동의 사회적 영향력이 권력행사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론 개혁운동을 벌여온 신문 단체들은 한결같이 신문이 권력기관이 아닌 보도 기관이어야 한다 주장하며 언론개혁을 주장한다. 언론기관의 횡포나 폐해가 있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우스개 소리로 돌아다니는 말에, 기자와 세무공무원과 경찰관이 술집에서 함께 술을 먹었다 한다. 누가 술값을 내느냐 질문한다. 정답은 술집 주인이 낸다는 것이다. 정부에 새로운 기관장들이 취임하면 기자간담회라는 이름으로 기자들 모아놓고 술사고 밥을 산다. 어떠한 기관에 대하여 좋은 기사를 써주고 광고청탁을 하는 것이 신문사의 관행이다. 기자를 사칭하여 협박 공갈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문이 타락한 권력이란 증거이다. 과거 독재정치 하에서 경찰이든 세무공무원이든 기자든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직업인은 못되었다. 권력이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자신의 위력을 높이고 다른 사람을 조정하고 싶어한다. 권력은 타락한다. 이러한 잘못된 과거에 대하여 신문은 뼈를 깎는 자기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영국의 식민지로 신문발행이 허용되지 않았던 미국의 현실에서, 토마스 제퍼슨은 신문 없는 정부보다는 정부 없는 신문을 원한다며 민주주의 국가건설에서의 신문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신문은 권력이다. 신문을 권력의 제4부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될 수 있는 국가권력을 견제하는 제어장치의 역할을 담당하고, 나아가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여 사회의 건전성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권력이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건전한 권력은 세상을 건설적이고 생산적이며 활력 있게 만들며, 인간 상호 존중 바탕 위에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와 번영의 세상을 만들어간다

 

신문은 건전한 문화를 창달하는 위치에서, 문화권력의 건전한 향도자이어야 할 것이다. 문화는 사회를 보호한다. 문화는 사람들에게 보다 지적 정서적 세련화를 통하여, 우리들의 삶을 보다 풍요롭고 넉넉하게 만든다. 요즈음처럼 잘못된 정치풍토로 인하여 세대 간 계층간 지역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속된 말로 악에 바쳐 편가르기를 하며 싸우는 부끄러운 우리들의 모습은 문화의 부재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문화는 사람이 보다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한다.

 

문화의 향도자로써 미래의 신문은 고급화되어야 한다 믿는다.

우리사회에는 대중문화만 있고, 고급문화는 아예 없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서구문화나 일본 문화를 그대로 좇아 흉내내기 급급한 것이 부끄러운 우리 문화의 수준이다. 나는 언론이 정부에 대안을 제시하며 비판하고, 국민에게 문화생활을 통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다수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너무 보지 않고 공부를 하지 않는다. 공부하지 않는 국민에게 나라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겠는가? 나는 언론이 공부하는 문화를 향도해주길 기대한다. 인터넷에 길들여진 청소년들은 깊이 생각할 줄 모르고 즉흥적이고 충동적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쓴 글이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나는 독자에게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글을 쓰고자 가능한 한 열심히 공부하며 글을 쓴다. 깊이 있는 내용을 쉽게 쓸 수 있는 것은 글 쓰는 이의 능력이다. 부족한 능력을 채우기 위해 보다 노력할 것을 다짐해 본다.

시대정신의 부재와 국가위기

2004-06-01 17:01:50

 

1. 상황

 

시대정신이란 알고 보면 한 사람의 정신이다.

지난 40여 년 우리나라를 지배해온 시대정신은 <잘 살아보세>로 시작한

경제성장의 국가이념이고

그것은 박정희라는 한 사람의 향도해온 시대정신이었다.

1979년 인간 박정희는 사망하였지만 그 정신은 다시 살아나 87년까지 지속되었고,

876월 항쟁 이 후 붕괴의 길을 걸어왔다.

지난 17년간 하나의 역사는 붕괴되어 왔지만 진정 새로운 역사는 시작되지 못했다.

지난 17년간 민주화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국가 질서는 확립되지 못했다.

민주화의 이름으로 개인과 집단의 권리의 주장과 이익의 추구는 소리 높이 主唱되었지만

우리사회는 점점 혼란과 무질서의 방향으로 이끌려 왔고,

국가와 사회 각 분야의 지도력은 점진적으로 약화되었다.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사회통합능력은 저하되었다.

 

1993년 김영삼정부가 구상했던 신경제 5개년 계획은

박정희의 경제개발 계획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997IMF환란은 박정희 식의 제 성장 모델이용도 폐기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김영삼은 자신이 집권하는 것이 곧 민주화고 말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국가가 해야할 일(Agenda)을 제시하지 못했다.

김대중은 50년만의 정권교체를 말했었다.

하지만 김대중이 건설한 민주주의 국가의 실체가 있기나 한 것인가?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발하였고,

2004415일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걸고 그야말로 완전한 의미의 정권교체를 성취하였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로 집권층이 바뀌었다.

그러나 아직 새로운 대한민국은 등장하고 못하고 있다.

새로운 역사는 여전히 출발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국가질서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새로운 역사는 시작된다

 

실패가 확인되었다면 목표를 재설정하여야 한다.

하지만 어떠한 목표를 설정하여 그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을 때에도,

우리는 새로운 삶의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박정희식 국가 발전모델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일인당 국민소득 100불에서 10000불의 시대로 이끌어 온 대한민국의 산업화 과정은

박정희의 리더쉽을 중심으로 이룩하였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성공하였다는 관점에서 말하자면

박정희식의 국가모델은 그 목적을 달성하였기에 새로운 국가모델이 만들어져야 한다.

실패하였다는 관점에서 말할 때,

IMF환란이 박정희식 경제운용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 또한 이해해야 한다.

혹자는 IMF환란이 김영삼의 책임이지 왜 박정희의 책임이냐고 되물을지 모른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논점은 누구의 책임을 추궁하자는 것이 아니다.

2004년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의 국가모델은 박정희가 만든 것이고,

우리 시대에 새로운 국가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

박정희 식의 국가모델을 어떻게 극복해 내느냐를 논의하고자 하는 때문이다.

 

 

 

2. 반성

 

이러한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독재국가에서 민주국가로 거듭나는 일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유민주주의 국가체제를 확립하는 길이다.

 

지난 17년 간 민주화 운동은 반체제적으로 진행되었다.

통합을 위한 국가권력은 해체되기 시작했다.

노태우 정권 이후의 정부가 주도한 민주화 노력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보통사람의 시대를 연다는 명분하에,

사회통합을 위하여 꼭 필요한 권위마저도 파괴하고 말았다.

심지어는 국가기관의 개혁입법조차, 국가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터무니없이 기구를 팽창하는 데 급급하여 예산만 낭비해 온 것으로 평가된다.

40년 독재정치에 대한 누적된 각종 사회병폐로 인하여

대다수 국민, 지식인, 시민단체, 심지어는 사법부와 행정부 일각에서 조차,

국가권력을 분권화하고 국가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것을

민주화라 여기며 개혁입법을 추진해 왔다.

 

국가권력의 본질과 국법의 기본질서에 대한 이해 없이

당파적 이해에 얽매여 개혁을 실시해 온 것이다.

부처이기주의라는 희한한 말도 생겨났다.

이러한 말이 생겨났다는 것이 곧 정부 조직내의 통합능력이 훼손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정부의 민주화 개혁 또한 기구를 팽창하여 예산을 낭비하고

국가권력을 분권화하여 국가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수많은 관변단체가 생겨났고,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정부는 고비용 저 효율의 엉망진창의 시스템으로 고물화 되어갔다.

이러한 어이없는 개혁의 추진이 공무원의 부패를 조장하고

사회혼란을 가중시킬 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다.

88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었고 - 16년 지난 지금

지방자치단체는 부패의 온상이 되어버렸다

 

국민주권주의를 말하며, 무책임한 지식인들이나 시민단체들은

국민의 요구대로 국정이 이끌어져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고

이러한 잘못된 생각이 사회전반에 퍼져 있다.

대다수 국민들은, 국가권력을 무력화시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것이

민주화 운동이라고 착각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사회를 통합의 원칙보다는 분화의 원칙으로만 설명하려 하고,

조화나 사회통합을 이룩하기 위한 동질성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도외시한 채,

국가권력을 無力化시키고, 개인과 집단의 욕망을 극대화하는 것이

진리인 듯 외쳐대는 천박한 자유주의가 민주화 운동의 주조를 이루어 왔던 것이다.

 

국가의 기강은 무너졌고, 사회윤리가 실종되었으며, 우리들의

삶의 질서는 혼돈 속에 빠져버린 것이 우리가 처한 이 시대의 상황이다.

 

안타깝게도 6.29선언 이후 지속되어온 이러한 사회위기 상황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각종 사회문제에 대하여 때로는 과도한 제어를 시도하고,

결국에는 부패한 세상 탓, 국민이 저질인 탓으로 방치해 버리고 마는,

국가권력의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구조적 해결불능상태를 지속시켜 왔던 것이다.

 

독재정치의 폐해로 누적되어온 이러한 위기상황은

결국 우리로 하여금 파국적인 IMF체제로 가지 않으면 아니 될 국난을 초래했다.

현재의 국가위기는 본질적으로 <국가의 정당성의 위기>이다.

국가나 국민 할 것 없이, 어떠한 삶이 정당한 것이고, 어떠한 방법이 적절한 것이며

어떠한 목표가 적당한 것인가를 규율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지난 40년 동안 국가권력은 통치자의 필요에 의해 독단적으로 법을 만들어

국민을 지배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반민주적인 지배방식은 수 없는

국민적인 저항에 부딪혔고 이제는 그 설 땅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제대로 된 지배방식을 창출해내지 못한 국가가 국민의 눈치를 살피며

<국민의 요구에 의한> <수요자중심> <고객중심>의 행정을 한다며

국가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다.

 

 

 

3. 모색

 

국가발전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첫째는 국가의 생산성의 향상이다.

 

둘째, 체제의 자율성 강화를 통한,

공동 선과 국가 목적을 실현키 위한 지배력의 강화로 이해할 수 있다.

 

강력하고, 효율적인 국력은,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활과 삶의 상황을

성공적이고 효율적으로 統御하여, 결집된 국민적 역량을 이끌어낼 때 가능하다.

그러기에 국가는 확고한 원칙 하에 조직되고 운영되어야 하고,

이러한 원칙은 보편적 진리와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정당한 원칙이어야 한다.

책임 있는 개인은 어떠한 규범을 자신의 행동을 제약하는 원칙으로 수용함에 있어

그 규범이 자신의 행위를 拘束하는 準據로 정당한가를 물을 것이다.

또 일정한 시기에 일정한 적용의 영역 내에서

규범적으로나 사실적으로 효력을 갖는 규범인가를 따질 것이다.

따라서 은 정당하고, 구체적으로 타당하며, 실효성이 있고, 문제가 발견될 경우

이의제기를 통한 <정당성 승인청구><타당성 승인청구>가 완전히 보장되야 한다.

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법은 반드시 개정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통치자의 의사대로 국가를 경영하는 것은 독재정치이다.

국민의 뜻대로 국가를 운영한다면 그 또한 프로레타리아 독재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각기 다른 국민들의 요구란 이질적이고 때로는 상호모순적이기도 하다.

이러한 국민의 요구로 국가를 이끌어 간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국가는 普遍的 眞理合理的 理性, 그리고

正義自由, 平等理念國民主權理念을 포괄하는 憲法을 제정하고

이 헌법에 기초한 법으로 국가의 초석을 다져야 한다.

이러한 국가의 존립을 전제로만 平和가 가능하다.

또 이러한 憲政國家만이 국민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고

진정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사회의 전제조건이 된다.

 

40년 간의 독재정치와 독재행정에서 비롯된 독단적 의사결정방식은

이제 합법적이고 예측가능하며 투명한 행정을 실천함으로써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실천적 의미의 민주주의 행정을 구현해 나아가야 한다.

 

확고한 원칙하에 나라의 을 올곧게 세워야 한다.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자유주의적 경제질서>를 양 축으로 하는

확고한 국가질서를 바탕으로, 고용의 불안, 빈부격차의 확대 등이 야기될 수 있는

신자유주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경제권력이 시장질서를 왜곡할 수 없도록

경제를 다스릴 수 있는 정치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함으로써

우리는 진정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게 될 것이다.

 

IMF구제금융의 여파는 경제부문만이 아닌 사회전반에 걸쳐 수많은 문제를 배태하고 있다.

강제된 급격한 구조조정으로 야기되는 실업, 실업가정의 파탄,

전통적 공동체 사회의 붕괴, 젊은 세대의 가치관 상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에서 비롯되는

자살율 이혼율의 급증, 출산율의 현저한 저하, 범죄의 폭발 등

수많은 사회문제의 폭발을 예고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국가의 사회통제능력이 현저히 저하될 것이며

국가 위기의 국면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의학적 관점에서 위기의 개념은 인체 내부의 저항력이

외부에서 침투하는 병원체의 증식력보다 약하면

그 생명체는 위기의 국면을 맞이한다.

이를 방치하게 되면 결국 그 생명체는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

 

우리사회의 위기의 국면 또한 이와 마찬가지이다.

건강한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범죄 등 각종 사회문제 발생의 증가율이

국가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능력보다 커지게 된다면

국가나 건전한 사회의 존속은 결국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위기의 상황은 정권의 교체나 혁명 등

급격한 사회변혁의 요구를 증대시키게 될 것이다.

이것이 국가의 위기국면이다.

 

우리가 처한 국가 위기 상황은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국민들의 삶을 지배하는 원칙을 상실했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지난 40년간 말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이념을 표방하였으나

실질적으로 독재정치로 일관해오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이념을 확립하는데 실패했다.

 

학연, 지연 등 연고 중심의 사회운영과 특혜지향적인 그릇된 삶의 방식의 추구로 인하여,

합리성이나 공정성에 기초한 건전한 사회작동원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국가권력 또한 독재자의 의사에 순종하는 방식만을 강제했을 뿐,

정당한 법에 기초한 효율적인 행정, 합법적인 권한행사방식을 확립하는데 실패했다.

 

성장제일주의와 실적주의의 기치아래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합법적인 삶의 가치는 외면 당해 왔다.

독재자들은 자신들의 정권유지의 방편으로

국토의 균형발전을 훼손하고 지역감정을 유발하여 국민화합의 기반을 파괴했다.

국가권력은 정당하지 못했으며 권력을 가진 자들은

특권과 불공정에 집착하며 不法과 전횡을 일삼아 왔다.

그 결과 국가는 지배력을 상실하게 되고,

복잡해지는 사회현상과 계층과 이해집단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데

구조적 해결불능상태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것이 현 국가 위기 상황의 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국가와 지배체제가 법을 지키지 않고 만들어 졌다.

권력자는 법 위에 군림했고, 고위관리일수록 恣意적 권한행사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준법정신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이다.

독재정치로 일관해 온 지난 40년 동안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준법정신은 그야말로 악화일로로 치닫아 왔다.

 

자율성을 상실하고, 지배되지 않는 사회-

이것이 국가 질서가 무너져버린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변명

2004-07-28 14:24:59

 

나는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다.

흔히들 술 자리에서 안주 삼아 말하는, 보수주의자고 진보주의자라는 식의 말이 아닌, 자유민주주의 사상체계를 나 나름대로 확립하고자 애써 왔다. 나는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을 구체화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그리고 대한민국이 독재정치를 극복하고 진정한 의미의 자유민주의의 체제를 어떻게 이룩할 수 있느냐에 대해 연구해 왔다.

 

두 달전에 출세하기 위해 판사가 되고 싶었다던 노대통령이, 며칠 전에는 유신헌법으로 고시공부를 했던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었다. 그야말로 웃기는 이야기다. 유신헌법으로 고시공부하는 것이 부끄러웠으면, 고시공부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인간이 되어서 왜 부끄러운 짓을 하며 사는가? 스스로 양심에 부끄러운 짓을 해놓고, 부끄러운 짓을 마치 자랑인 듯 떠벌리는 것은 염치를 모르는 것이다.

 

한 사회나 조직의 성원이 된다는 것은 그 사회나 조직의 작동원리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이기도 하다. 적어도 나는 유신헌법으로 움직이는 세상 - 머리 길다고 길 바닥에서 바리깡들고 머리깍고, 짭새들이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가방 뒤지는 개같은 세상이 싫어, 남들 다 가는 대학도 가지 않고, 고시공부도 하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무엇보다 민주적 헌정질서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리고 민주주의는 단지 정치적인 주장이 아닌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제도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법률 공부도 오래 했다. 누가 무엇이라 비난하여도 그것이 내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고, 가난하고 별 볼일 없게 살아왔지만, 내 양심에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았다. 대통령이면 무슨 소용인가? 인간이 되어서 더럽고 치사하고 구질구질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평소의 소신이다. 누가 무어라 해도 내 자식이나 자라나는 우리의 젊은이들에게도 눈 앞에 이익보다는 언제나 자존심을 가지고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라 말해주고 싶다. 노대통령과 같이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모르면서 아는 척하며, 치사찬란하고 비겁하기 능수능란할 뿐인 사람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자라나는 우리 어린이들의 교육상 아주 바람직하지 못하다. 노대통령에게 한 마디 묻고 싶다. 인생을 왜 그렇게 사시느냐고?

 

자신의 집권 기반을 확장하기 위해, 헌법을 어겨 재신임을 묻고, 정권욕에 눈이 어두워 불법행위가 당당했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대통령 탄핵소추의 국면에서 민중의 함성이 헌법이란 식의 선동적인 구호가 소리높게 외쳐되었다. 국회의원 선거에 대통령의 재신임을 묻게 하여, 국민을 기망하고 집권 기반을 강화하였다. 이 따위 짓을 해 놓고 아직도 헌법정신에 참여정부의 정체성이 있다고 대 국민 사기극을 벌리고 있다. 대통령 취임 후에 단 한번이라도 헌법 정신에 충실하여 제대로 대통령의 직무를 행한 것이 있기나 한 줄 아는가? 노대통령은 일을 벌릴 때마다 헌법파괴적인 행동을 일삼아 왔다고 하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대통령 노릇 못해먹겠다고 하고, 어이없는 실정으로 지지율이 떨어지자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를 한다고 했다. 이것이 대통령으로써 헌정질서의 수호 책무를 온전히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 할 수 있는가? 무책임하고,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대통령이다. 열등감과 증오심에 사로 잡혀 오직 정적과 기득권층의 기득권을 빼앗는 것이 전부인 우리의 대통령이다

 

나는 자유민주주의가 이 땅에 뿌리내리고, 국가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바로 잡아 국민화합을 이룩하여 결집된 국력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발전하고 통일조국을 이룩하여 민족의 번영을 염원하고 살아 왔다. 개인적으로 노대통령을 미워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 내 평생을 이 땅에서 독재정치가 청산되고,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길 염원하고 이를 위해, 내 나름으로 노력해 왔다고 자부한다.

 

취임 후 노대통령이 벌려온 일련의 행적은 과거 전횡적인 권력으로 국민을 억압했던 대통령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전임 대통령보다 끔찍한 것은 자신의 집권욕을 위하여 계급 혁명을 선동해왔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북한의 대남적화전략에 휘말리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일반인들에 비하여 마르크스 레닌주의 등 공산주의 사상과 혁명전략을 제대로 공부했고, 주체사상도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참여 정부의 5대 개혁 대상이라는, 서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개혁 대상인 사법부도 아니며, 조중동에 관련된 사람도 아니고, 삼성 직원도 아니며, 서울 강남에 사는 사람도 아닌, 서울에 사는 중하층민 정도의 서민의 생활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 나의 주장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마르크시즘이나 주체사상의 실상을 충분히 모른 체, 무조건 현 정권을 빨갱이로 몰고 싶어하는 색깔론이라 말하겠는가?

 

내가 현 정권을 비판하는 의도는 명백하다. 이 땅에서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온전히 확립하는 것이 개혁의 최우선 과제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현 정권이 의도적이 아니라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현 정권이 지금 벌리고 있는 개혁은 개혁이 아닌 계급혁명의 성격이 가깝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개혁이라 말하려면, 개혁의 비젼을 제시하고, 그 비젼을 실현해 나아가기 위해, 올바른 문제제기는 어떠한 것이고, 합리적인 해결방법은 무엇이며, 개혁을 진행하는 데에 있어서의 실행하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드러내 보여 주어야 한다.

 

현 정권이 실시하는 개혁은, 있는 자들에 대한 없는 자의 증오심을 부추키어 국론을 분열시켜 왔다. 남한에 민중이 주체가 되는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하기 위하여, 나아가 북한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을 실천하기 위한 선결조건을 착실히 수행해 왔다고 말하여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나는 노대통령의 의도와 관계 없이 현 정권이, 김정일의 대남적화전략의 의도에 말려들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생각이 진정 나의 잘못된 판단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것을 현 정부가 온 국민을 향하여 일깨워 주기를 기대한다.

 

이는 국민의 화합이나, 노대통령이 성공적으로 대통령직을 완수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를 해명하고, 국민에 대한 이해를 구해야 할 중차대한 문제이다. 나는 현 정부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명을 국가의 안보가 걸린 중요하고 심각한 사실이라 점을 깨닫고 가능하면 조속한 시간에 해명하기를 촉구한다.

 

민주개혁을 하기 위해서, 노 정권이 한 일이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단결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한 일이 있기나 한 것인가? 자신의 집권 기반의 강화를 위하여 우리 사회를 있는 자와 없는 자로 갈갈이 짖고, 기업인을 죄인을 만들고 그 결과 경제는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노대통령 집권 이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확립되어 사회가 안정되었는가. 친미와 반미로, 친북과 반북으로, 친노와 반노로 온 국민이 갈라져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오늘에 처한 우리의 실정이다.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기 위하려는 정부의 노력에 오로지 기득권을 지키기만을 급급하여 현 정권을 발목 잡는 것만이 능사인 야당 탓을 할 터인가. 통일이 대한민국의 내부적으로 통일된 국민적 합의 없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야당과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을 배제하고 진행되는 통일을 위한 현 정군의 노력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부인하고 민중이 주체가 되는 사회주의 정권이나 공산주이 정권을 수립하는 것이 노 정권의 정체성이냐고 다시 한번 묻겠다.

 

긴 말 필요 없다. 자유민주의의를 부정하고 민중민주의를 주장하는 민주노동당이 위헌 정당인가? 아닌가? 이에 대한 올바른 대답을 하면, 현 정권에 대한 정체성은 분명해 이해될 것이다.

 

국가의 정통성을 말하며 친일청산을 말하는 노대통령에게 애정어린 충고 한 마디 하겠다.

국가의 정통성이란 말의 뜻을 온전히 아는가? 국민의 유권자의 과반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는데, 노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그것이 헌법과 헌법에 의해 만들어진 법률에 의하여 선출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의 대통령으로써의 지위의 정통성은 국민이 부여한 것이 아니라 법률이 부여한 것이다. 그런데 탄핵 소추 때에는, 민중의 함성이 용왕님이 되어 노대통령을 구했다고 말했었다. 이것이 노대통령이 헌정질서의 의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써 행정부의 수반으로써 권위를 가지고 온전하게 그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 권한의 행사가 적법하게 하여, 법률에 의하여 정당성(Legitimacy)를 부여 받아야 한다. 또 그 권한의 행사는 구체적 타당성을 가지고 있어 국민들이 납득하고 수용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수도 이전에 대하여 반대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자신에 대한 불신임이라는 어이없는 발언을 했었다. 국가 권력의 정당성이 어떻게 부여되는가를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이 같은 멍청한 소리를 하고 국민이 지지율이 떨어지자 우왕좌왕하며 허우적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통령도 모를 수 있고, 잘못할 수 있으며, 허물이 있을 수 있다. 모르면 배우면 되고, 잘못과 허물의 고치는 것을 꺼려하면 안된다. 모르면서 아는 척을 하지 말고 살기 바란다. 잘못을 했으면서 잘했다고 끝까지 우기는 것이 벼슬인줄 착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商高 나왔다고 기죽지 말고 남이 무시할까 보아 지레 겁 먹고 너무 폼 잡지 말고,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모르고 부족한 점 배워가면서, 제발 사고는 그만 치시고, 말 실수하여 망신 당하지 말고 남은 임기 성공적으로 마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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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중심잡기

2004-10-04 09:34:24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는가?

과거사 청산, 국가보안법 철폐, 수도 이전 문제를 놓고 여야 간의 사생 결단 대립 구도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과거사 청산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증폭시켜 사회 안정을 깨뜨리고 경제를 어렵게 만든다. 국가보안법 폐지가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을 보다 용이하게 만들고 국가의 안보를 위협한다. 국가보안법 철폐가 가져오는 안보의 위협이란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용이하게 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 사회, 대한민국의 내부 결속력을 와해하고 우리 사회에 계급 혁명의 조건을 보다 유리하게 하여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나아가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협한다. 국제 유가가 최악이고, 신용불량자 문제 등으로 국내 소비가 최악이며,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갈등은 보다 첨예화되고, 개혁 정책으로 인한 사회적 불확실성이 증폭되어 국내에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재정 적자 규모가 200조원이 넘는 어려운 경제환경에서, 거대한 재정 지출을 요구하는 비용 소모적 수도 이전의 문제가 적절한 것인지 충분한 검토없이 실행되는 수도 이전 문제에 대하여, 이를 반대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불신임으로 간주하겠다는 노대통령의 발언은 반민주적 발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이제껏 온전히 지켜지고 확립된 적이 있었던가?

국가보안법은 군사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민주인사를 탄압하고 오용되고 남용되어온 반민주 악법임에는 틀림이 없다. 수도권 인구 과밀이 가져오는 심각한 문제가 산적한 것은 사실이다. 여야 대립 구도에서 여당의 주장도 야당의 주장도 일리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그 중심을 잃고 있다.

지금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국론은 분열되고 우리는 위기의 국가 현실에 봉착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노대통령은 무엇을 위한 개혁인가에 대한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야당 또한 자신들의 주장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설득력 있는 반대를 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사 청산과 국가보안법 폐지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본질은 대한민국의 정체성 정통성에 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 없이 서로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건국이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점을 많은 사람들은 간과하고 있다.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1948년 제헌의회에서 헌법을 제정한 이래, 대한민국 헌법은 한번도 온전하게 수호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아직도 확립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 우리 사회가 계급혁명의 분위기에 휩싸여 국가의 존립을 위협받는다할 때, 우리가 지켜야할 국가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북한과 계급혁명 세력은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부인하고 민중해방과 민족해방을 외치며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려 한다. 무엇으로 이를 막아야 하는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의 확립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대한민국의 헌법을 수호하고, 헌법정신의 이념에서 국가의 정통성이 나온다는 것을 온 국민이 자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미국의 국가 정통성은 어디에 있는가? 프랑스의 국가 정통성은 어디에 있을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의 정통성은 헌법에서 비롯된다. (근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이념은 프랑스인권 선언에 집약되어 있다.) 헌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조화와 자율을 바탕으로 국가 공동의 번영을 모색한다. 국가의 목적은 헌법의 목적을 실현하는 데에 있고, 이러한 헌정질서는 자유민주주의실현의 전제조건이 된다. 헌법은 우리 대한민국의 이고 생명이어야 한다.

 

지금은 국가정체성의 확립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게 요구되는 싯점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누가 대통령을 하느냐가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 생각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헌법이 온전히 수호될 때, 그리고 이 땅에서 헌법정신이 온전히 구현될 때, 국가의 정통성이 확립되는 것이며 이를 전제로 할 때만이 대한민국의 영속적 번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온 국민 자각하여야할 때라 믿는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많은 사람은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가 왜 이처럼 어려운가? 노사가 반목하고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불신하고, 법도 원칙도 없이, 다중에 의한 시위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시민의식이 팽배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국민의 잘못만이 아니다. 부패한 제도와 잘못된 국가권력의 행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다. 대통령이 법을 지키지 아니하고 법관이 법을 지키지 아니한다. 경관의 56%가 법을 지키면 손해라는 나라에서 국민의 준법정신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부당하기조차한 것이 부끄러운 우리의 현실이다.

 

헌법이념은 법치국가 법의 지배의 이념을 통하여 구체화된다. 법의 권위가 바로서야 국가의 질서가 확립되고 헌정질서가 확립되는 것은 물론이다. 법치국가의 최우선 과제는 통치권자의 권한을 법으로 제제하는데 있다. 국가권력의 행사가 법률에 의하여 규율되어야 하며, 법관의 판결이 법에 기속되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은 이러한 법치주의 이념에 입각하여 제대로 국가권력이 건강하게 행사된 적이 한번도 없다. 대통령에 의한 헌법파괴가 마치 상식처럼 이어져 온 것이 부끄러운 헌정사이다.

 

많은 사람들은 박정희를 경제성장의 공을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오직 힘을 숭상하는 국가가 오래도록 번영한 나라가 역사에 있었던가? 역사는 현재를 위해서 쓰는 것이다. 현재의 과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과거 역사의 해석은 달라진다. 과거의 역사에 대한 평가는 현재의 관점에서 우리가 앞으로 지향해야할 역사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는가에 따라 엇갈린다. 현재 혼돈스러운 국가질서를 확립하고, 북한의 대남적화통일과 우리 사회 내부의 계급혁명 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일까? 갈갈이 찢겨진 국론을 통일하고, 국민화해와 조화와 자율을 통한 국민화해와 국가의 번영을 위하여 우리가 지키며 가꾸어 나아갈 대한민국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국가 정체성의 확립이란 다름아닌 헌정질서 확립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건국이래 한번도 헌정질서를 확립하지 못한 채, 독재자의 권력으로 헌법이 유린되어온 부끄러운 헌정사이다. 박정희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심각하게 헌법을 파괴해온 독재자이다. 권력분립의 기반을 와해시켰고, 경제성장의 미명하에, 행정 편의에 의하여 멋대로 법을 만들고, 관리들에게 자의적으로 법을 집행하도록 하여 대한민국에서 법치주의의 근간을 뿌리뽑았다. 박정희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철저하게 유린한 독재자로 평가하는 관점을 바르게 이해해야 비로소 헌정질서 확립을 통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바로 세울 수 있다.

 

이제껏 대한민국은 헌정국가도 법치국가도 아닌 무늬만 민주주의인 가짜 민주주의를 해왔다는 것이 우리의 과거사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일 것이다. 과거를 온전한 시각으로 제대로 반성해야, 우리는 새로운 밝은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 군사독재를 자유민주주의로,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멋대로 둔갑시켜 놓고서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고 가꾸어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거사를 왜곡하는 국가로부터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정통성이 없었던 과거 대한민국을 정통성 있는 것이라 거짓되게 고집한다면, 우리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시도하려는 집단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없게 된다. 민중의 함성이 헌법이라고 주장하고, 헌법기관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들에게, 대한민국의 헌법은 명백히 실정법으로 존재하는 것임을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실정법은 반드시 집행해야 만이 대한민국의 체제를 수호하고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할 수 있다.

 

경제살리기를 말한다.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의 확립 없이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 또한 불가능하다. 우리는 여전히 관치경제를 행하며, 시장경제를 말하는 모순된 경제현실을 살고 있다. 행정의 예측가능성, 투명성, 법적 안정성의 토대로 기업의 투자환경이 결정된다는 것은 시장경제의 상식이다. 한 토론회에서 한나라당의 의원은 과거사 국보법 문제로 여야간이 대립하면, 경제정책의 타이밍이 중요한데 제때 법안처리가 되지 않아 경제에 발목을 잡는다 말한다. 제도를 타이밍 잡아 실시한다는 철저히 개발독재식의 발상이다. 청와대와 열우당 그리고 행정부의 정책 조율의 부조화가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비판에 대하여, 여당의 한 의원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과는 다르게 이러한 이견과 마찰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말하고 있다. 하기야 한 방송과의 대담에서 대통령도 출자총액제한에 대한 정부의 입장에서 기업과 정부 간의 줄다리기를 당연한 것을 말하고 있다. 건전한 시장의 전제조건이 투명한 행정, 예측가능한 행정, 법적안정성이 전제되어야 만이 기업은 주어진 제도적 조건하에서 경영기획을 할 수 있다는 시장경제의 기초적 지식조차 정치권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한심한 현실이다. 여야 막론하고 경제정책의 문제가 제도의 문제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제대로 된 제도가 요구하는 법적 요건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 경제의 현주소이다. 이것이 박정희 시대의 관치경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시장경제와 관치경제로 뒤범벅되어 허우적대고 있는 우리 경제정책의 한심한 현 주소이다.

 

시장경제의 도입은 단지 경제적 차원에서 이룩될 수 없다. 시장 경제는 17세기 영국을 기점으로 해서 미국과 유럽 그리고 서방 세계의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시장경제와 헌정국가는 상호의존적인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함께 발전해 온 제도이기 때문이다. 시민적 시장경제는 헌정국가의 사회학적 실체를 이루며, 헌정국가 역시 시민적 시장사회의 요구에 의하여 형성되고 발전되어 왔다. 정치적 운동으로서의 <자유주의>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목표- 헌정국가와 시장경제를 추구하고 있다. 자유주의는 권력분립과 개인의 인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경제적 자유주의 - 다시 말해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두 축으로 하여 발전되어 왔다.

 

헌정국가와 시장경제는 다음의 점에서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발전되어 왔다. 헌정국가는 법적 안정성, 의회의 영향력, 경제적 자유, 특히 소유권의 보장을 통하여 시장경제에 제반 요건을 조성하여 준다.

 

첫째, 시장경제는 경영계획의 수립의 전제조건으로 법적안정성을 요구한다. 기업을 운영함에 있어, 예측 가능한 데이터에 관한 지식이 정확할수록 기업의 활동은 용이해 진다. 노무현 정권은 이러한 점에서 시장경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경제를 운용을 하고 있다. 국가권력이 기업활동의 안전을 보장해 주기는 커녕, 오히려 기업경영의 영역을 침해하려 한다면, 기업은 생존을 위하여 본능적 거부반응을 보일 것이다. 국가 권력이 자의적으로 법을 운용하고, 기존의 법적 안정성을 깨뜨린다면 법적 안정성과 사회의 안정성은 파괴되고, 당연할 귀결로 기업활동은 위축될 것이다. 법적 안정성을 위하여 일반적으로 법관이 법률에 기속되어야 하고, 법관의 인적 물질적 독립이 보장되어야 하며, 투명하고 예측가능한 국가권력의 행사로 법률은 형식성과 공개성, 일반성과 신뢰성, 나아가 내용상의 명확성을 가지고 운용되어야 한다.

 

둘째, 시장경제를 주장하는 기업인들이 의회에 대한 영향력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자유주의가 자유주의적 헌정국가를 옹호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의회의 고전적 3대 기능이란, 입법과 조세와 정부통제에 있고, 이러한 모든 기능이 기업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셋째, 헌정국가에서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 중에는, 경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자유를 포함한다. 이러한 자유들은 기업 경영상의 재산권의 처분과 상품의 자유거래를 가능하게 해 준다. 직업 선택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소유권과 같은 기본권이 그것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하여, 무엇보다 투자여건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 그것은 정부의 정책수행이 일관성을 가지고 예측가능하게 해야 하며, 법적 안정성을 유지해 주어야 한다. 헌정질서의 확립을 통한 법적안정성을 통하여 사회적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국민통합과 사회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경제를 살리기 위한 보다 근본적 처방이다.

 

헌정질서를 확립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질서는 무엇인가?

국가권력과 법률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존립하는 것을 국민에게 실증하는 것으로부터 헌정질서가 확립되어야 한다. 나아가 법치국가 질서가 확립되어야 한다. 법치국가의 최우선 과제는 최고 통치권의 권력의 오남용을 방지하는 데에 있다. 최고통치자의 권력남용은 실질적으로 정부입법을 행정편의적으로 실시함으로써 기존의 법적 안정성을 파괴하는 입법으로 행하여 진다. 나아가 다수당의 횡포에 의하여 헌법을 위반하는 입법행위가 근절되어야 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로 헌정질서가 위협받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들 마음 속에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신뢰하고 이를 지키고 가꾸어 나아갈 확고한 의지만 있다면 국가보안법 폐지는 오히려 우리에게 자유민주주의적 헌정질서를 수호하고 발전시켜 나아갈 전화위복의 계기를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헌법은 국가의 이고 생명이다.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리는 우리 대한민국을 올곧게 일으켜 세우고 우리모두의 공동의 번영을 위한 노력은 그 무엇보다 국가의 중심을 헌법에 두고 헌정질서를 확립하는 것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헌정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곧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길이다. 모든 국민의 마음 속에 이러한 마음이 자리잡을 때, 우리는 대내외적 국가적 도전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의 역사를 개척해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대한민국의 중심은 나아가 대한민국의 생명과 은 헌법에 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헌법에서 비롯된다. 헌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이러한 확고한 신념만이 위기의 국가적 현실로부터 우리를 구하는 최우선 과제임을 우리 모두 자각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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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착각

2004-09-16 17:47:42

 

국가보안법의 존폐여부를 놓고 여야간 보수와 진보 사이의 의견대립이 분분하고, 극한 대립의 국론분열 양상으로 치닫는 것이 우려스럽다. 보수진영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일이며, 대한민국의 무장해제를 의미하는 것이라 강조한다. 그리하여 현 정권의 친북 좌파 세력으로 규정한다.

 

소설가 이문열은 보안법 문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질 낮은 네거티브 문화 때문이라 한다. 존중해야 할 권위나 보장되어야 할 전문성은 오래 전에 지워졌고, 경청할 만한 교훈이나 준수해야 할 판정도 없어졌다. 교훈이나 판정이 내게 유리하면 우리 편이고, 상대편에 유리하면 적일 뿐이다. 충고나 조정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해에 따라 우리 편과 적이 있을 뿐이다. 주제넘은 줄 알면서도 하나 제안을 하자. 여당은 먼저 형법의 어떤 조항을 어떻게 개정하여 보안법 없이 안보의 공백을 메울지를 제시하라. 인권을 확보했으면 안보의 우려도 해소해주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그리고 야당은 여당의 형법 개정안이 우리 안보를 담보할 수만 있다면 보안법 폐지에 선선히 동의해주라. 법의 이름이야 어떠하건 안보란 실질만 확보하면 되지 않는가.

 

이씨는 어설픈 지식으로 보안법문제로 인한 우리사회의 대립현상을 내전심리라며 갈등을 부추킨다. 전문성 없는 지식으로 질 낮은 네가티브 문화를 말한다. 언제부터인지 우리사회의 지식인 이라는 자들은 특정 정당의 나팔수가 되어 어설픈 지식을 떠들어 대는 꼴은 볼상 사납다. 제대로 된 지식이 없으면서 주제넘은 소리를 떠드는 것은 지식인으로써의 최소한의 양식을 저버리는 것임을 제대로 알고 주제넘는 소리는 삼가고 살길 기대한다.

 

제대로 아는 것 없이 폼 잡는 것이 능사인 수구꼴통 들에게 한마디 하겠다. 사회원로라는 자들이 종교계의 지도층인사라는 자들이 국가보안법의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국민이 불안해 하니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때가 이르다는 식의 설득력 없는 어설픈 푸념을 늘어놓는다. 방편이 없는 지혜는 지혜가 아니다. 구차하게 자신들이 살아온 세월을 내세우며 젊은이들의 방자함을 비난한다. 이것이 잘못 살아 늙어버린 어른들의 모습이 아닌가? 나는 자식이 잘못되면 부모의 책임이고, 자식이 잘되면 자식이 잘나 잘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어른들의 도리라 생각한다. 젊은이를 바르게 가르칠 능력이 없으면 어른 노릇은 그만두는 것이 욕을 면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길 기대한다. 老貪이 붙으면 볼 상 사납다. 나이를 먹으면,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나서야 할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분별할 지혜가 있어야 한다. 모름지기 늙은 이는, 자신의 하루의 임무를 다하고 석양을 곱게 물들이며 사라지는 태양처럼 조용히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진정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제대로 확립된다면, 국가보안법 같은 것은 없어져도 국가안보에 전혀 상관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국민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 받을 수 없는 정체성 없는 정체불명의 파시즘을 자유민주주의라 우겨대니 불안하고, 올바르게 살아오지 못한 세월이 드러나 두려운 인간들이 기득권층이다. 과거의 진실을 왜곡한 채 우리에게 미래가 있을 턱이 없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말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착각과 무지를 일깨우려 이 글을 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5MBC 특별대담 중<국민이 주인이 되는 국민주권시대, 인권존중의 시대로 가기 위해서는 (독재시대에 있던) 낡은 유물인 국가보안법을 폐기하는 것이 좋겠다" 국가보안법이 위헌이다, 아니다 해석이 갈릴 수 있다. 그러나 위헌이든 아니든 또 악법은 악법일 수 있다. 국가보안법을 법리적으로 자꾸 얘기할 것이 아니라 지난날 국가보안법이 우리 역사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어떤 기능을 했는가를 보면 대체로 국가를 위태롭게 한 사람들을 처벌한 것이 아니라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데 압도적으로 많이 쓰여 왔다. 국가보안법을 너무 법리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역사의 결단으로 봐야 한다. 형법이 있다. 꼭 필요하다면 형법 몇 조항을 고쳐서라도, 국가를 보위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항이 있으면 형법 몇 조항 고쳐서라도 형법으로 하고 국가보안법은 없애야 한다. 국가보안법은 없애야 대한민국이 문명의 국가로 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가보안법 폐기는) 그런 상징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었다.

 

변호사인 노대통령이 국가보안법의 문제를 법리적으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국가보안법 폐지의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고, 경솔하게 국가의 안보문제를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역사적 결단, 문명국가로 가려는 의도로 비약시키는 데에 있어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위해 보다 시급한 몇 가지 과제를 제시하려 한다.

 

 

1. 국가보안법 문제는 국가권력의 정당성 행사의 문제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위기 상황은 본질적으로 정당성의 위기이다. 국가기관이고, 개인이나 집단을 막론하고, 규범질서가 무너져 무엇이 올바른 삶의 방식인가를 상실한 채,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과거 성장과 실적 위주의 삶을 살아오면서 정당한 삶의 방식을 상실하였고, 국가 또한 정당성의 기초를 잃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정체성이 있는가? 당연히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대통령 맘이 지배질서인 나라에서 체제이념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정체성을 잃어버린 나라에서 국보법을 없애는 문제는 체제의 존립을 위협하는 아주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국가의 정체성은 국가권력이 정당성을 가지고 행사되어야만이 비로소 정체성 확립이 가능하다. 국가권력의 정당성은 세가지 차원에서 충족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헌정질서에 의해 확립되고 법치국가, 법의지배의 이념으로부터 구체화 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정당한 국가권력은

 

첫째, 국가의 최고권력이 국민의 지지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그리고 법치국가의 최우선 과제는 최고 통치권자의 권한의 행사가 법률에 지배를 받아야 한다.

 

둘째, 국가권력과 국가기관의 권한의 행사가 법률의 제제를 받아 정당한 것이어야 한다.

 

셋째, 국가기관과 관리의 권한의 행사에 대한 이의제기가 보장되어야 하고 정당성 승인청구나 타당성 승인청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어 이에 대한 심판이 행정법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보안법은 상황논리에 의하여 합헌적 고려 없이 만들어 졌고, 법률의 집행이 수사기관 정보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하여 수많은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였다. 국가보안법에 긴급조치까지 보태어, 포장마차에서 소주 마시다 박정희 욕만해도 잡아 간 세월이었다. 비단 국가보안법 뿐만 아니다. 대한민국에서는 국가기관의 권한 행사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 자체로만 괘씸죄가 되어 정당한 권리를 짓밟히며 살아온 세상이었다. 정당한 국가권력 그리고 국가권력의 정당성의 차원에서 바라볼 때 국가보안법이 가장 악랄한 반민주악법이라는 사실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민주주의의 성패는 국가권력의 정당성(Legitimacy)에 기초한다.

파시즘과 공산독재는 지배방식에 있어 이러한 정통화 메커니즘을 갖지 못한 독재자 의사대로, 멋대로 국가권력이 행사되는 저열하고 조잡한 지배의 방식이다. 박정희를 영웅이라고 외쳐대는 주체성이 결여된 사람들에게는 섭섭할지 모르지만, 박정희의 지배방식이란 저열하고 조잡한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이란 깡그리 무시한 모자란 정치가라는 것을 바르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박정희나 전두환은 정치가로써는 점수가 나오지 않는 사람임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모든 국민이 바로 알아야 하고, 민주시민으로써 주권의식과 주체성의 확립이 절실히 요청된다. 정치란 인간 존중 하에, 정의와 자유, 평등과 박애의 이념에 입각하고 국민통합을 이룩하고, 국민 삶의 활력과 행복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나의 양식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그 어떠한 정치가, 정치제도도 용납할 수 없다.

 

노대통령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거론하며 국민주권을 말하고 문명국가를 말한다. 순서가 틀렸다. 국민주권을 말하고 문명국가를 말하려면, 헌정질서의 확립의지를 표명하고, 최고통치자부터 권한 행사가 법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실천함으로써 법치주의를 실천하여야 한다. 국가보안법의 비민주성은 자의적 권력의 오남용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민의 감정을 자극하여 적개심과 증오심을 부추기는 반문명적 선동정치를 지양하고 합리성으로 지배되는 사회를 위하여 인간존중에 기초한 상호존중의 자세로 사회통합을 이끌어야 한다. 민주주의와 국민주권 문명국가를 말하기 앞서, 국가보안법의 비민주성을 말하고 문명국가를 지향한다면, 대통령이 먼저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 적법절차를 준수하여 헌법이념을 실천하는 국정운영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질적으로 향상된 정치를 실천함으로써, 나아가 헌법을 철저히 엄수함으로써 국민주권을 실질적으로 실천하여 보다 발전된 민주사회와 문명국가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성패의 핵심은 국가권력행사가 절차적으로 정당한가에 달려 있다.

이점에서 국가보안법은 반민주악법이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주장하는 노대통령 자신은 적법절차를 지키며 대통령직을 수행하는가? 이점에 관하여서는 87년 민주화 이 후의 대통령 중 가장 엉터리로 깽판을 치며 대통령직을 수행해온 사람이 노대통령일 것이다. 측근비리를 재판도 받기 전에 재신임을 받겠다고 말하며, 사법부의 존재 의의를 부정해 버렸다. 탄핵정국을 유도하여, 국회의원 총선거를 사실 상 대통령 재신임 투표로 변질시켜, 헌정질서를 유린했다. 수도권 이전의 문제에 대하여서도 반대의견의 개진은 자신에 대한 불신임 운동이라 어처구니 없는 반민주적인 협박을 하고 있다. 헌법수호와 헌법준수는 안중에도 없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노대통령이다.

 

멍청한 야당은 노대령통에게 계속적으로 당하고 두들겨 맞으면서도, 박정희 타령만을 하며, 노대통령을 무시하는 데에 여념이 없다. 영리한 노대통령은 적어도 아는 척 하지 않고 폼을 잡지는 않는다. 자신이 공격 당하면 상대방을 확실히 공격한다. 학벌 좋고 자칭 똑똑한 기득권층은 거덜나도록 망가지고도 자신들이 왜 깨졌는지 모를만큼 멍청하고 무지몽매하다. 반성이 되지 않으니 도통 개선이 되지 않는 것이다.

 

노대통령의 승리의 전략은 한 마디로 포퓰리즘에 의한 승리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폼 잡고 잘난 척하고 있는 척하고 아는 척하는 인간을 싫어한다는 것을 노대통령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최대한 활용하여 자신의 정권기반을 강화하여 권력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것인 과연 잘되기만 한 일일까? 포퓰리즘으로 지배되는 세상이란 공산독재만도 못한 그야말로 개판의 세상이다. 우리 사회에 포률리즘이 만연된 것은 876.10 항쟁 이 후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헌법 제1조에서 말하는 국민주권의 의의가 철저히 잘못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2. 국민주권의 의의

 

국민이 권력의 객체가 아니라 권력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다. 이러한 사고 방식이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마르크스는 자유(브르죠아)민주주의에서 국가란, 브르죠아 이익을 대변하여 프로레타리아를 착취하기 위원회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고, 국가는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국가권력을 억제하여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관점 보다 국민이 국가권력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주의 이념이 훨씬 설득력있고 좋아보인다. 하지만 역사 상 국민이 국가권력의 주체가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마르크스는 무정부주의적이다.

 

서구 민주주의 발달사는 귀족이 독점하고 있던 각종의 권리가 브로죠아로 확산되는, 나아가 보다 많은 사람들로 확산되는 헤겔의 말처럼 자유의 저변확대의 역사이다. 서구에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된 것이 얼마나 되었을까? 보통선거가 실시된 것은, 초기 근대국가에서 제한되어 있던 선거권에 대해 신흥사회 세력들이 참정권을 요구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1948년 프랑스에서 재산에 의한 제한선거가 철폐된 이래 세계 각국에서 재산과 여성참정권이 완전히 철폐되어 전세계적으로 보통선거제가 확립되었다.

 

자유민주주의는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권력의 오남용을 어떻게 제어하느냐의 관점에서 발전되어 왔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권력자를 불신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권력분립의 이론이나 헌정국가, 법치국가의 이념은 한결같이 권력의 타락을 어떻게 방지하느냐의 관점에서 발전되어 왔다.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은, 전체주의 군주나 공산주의 국가의 지도자들이 자유민주체제의 지도자들보다 대부분 정치지도자로서의 자질과 역량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이다. 레닌이나 스탈린, 모택동이나 김일성 등, 공산국가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사상적인 지도자이기도 하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공산주의에 열광했고, 과학적 사회철학의 창시자로써의 마르크스의 업적은 서구 사상사의 최고의 지위가 결코 무색하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그 어떤 전체주의 체제보다, 파시즘이나 공산주의 체제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우월하다는 것을 확신한다. 아무리 우수한 인간에 의하여 지배되는 국가나 사회도 지도자의 독단에 의하여 지배되는 사회나 국가는 당연히 오래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는 역사적 교훈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있다. 플라톤은 말했었다. 그 어떠한 인간도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오류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고, 이를 방지하는 것이 위대한 입법자의 의무라 말했었다.

 

국민주권의 이론적 기반은, 프랑스혁명의 이론적 성과라 할 수 있는 헌법제정권력(pouvoir constituent)과 헌법에 의하여 조직된 권력(pouvoir constitue)의 구별에 있다. 국민주권은 무엇보다 헌법제정권력을 행사함으로써 그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일단 헌법이 제정되면 국민주권은 헌법에 의하여 조직된 권력에 위임되는 것이다.

 

헌법은 국민의 국가권력의 담당자로서의 지위와 국민주권의 행사를 구별하고 있다. 1791년 프랑스 헌법은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국민은 위임에 의해서만 이를 행사할 수 있다.> 국민주권은 국가권력의 담당자로써의 지위로 헌법이 제정되면 헌법 속에 해소된다. 헌정국가에서 규정된 국민은 헌법 상 규정된 권한만 갖는다.

 

국민주권의 이념의 이론적 핵심은 첫째, <헌법제정권력>과 둘째, <국가권력의 담당자로서의 지위>를 말하는 것이다. 국민주권의 의의는 국민이 권력을 행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헌법기관에서 행사되는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헌정국가 내에서 국민은 선거나 투표, 정당참여, 집회 결사, 여론 형성 등에 관한 권한만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주권의 이념에 대하여, 대다수 국민들은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로 반발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대한민국에 온전한 헌정질서가 있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부패한 실상을 다 까발리면 대한민국에서 온전한 국가기관이 있기나 할까? 독재정치는 온전한 체제가 아니다. 대통령 마음이 법이 되는 체제가 체제인가? 지난 17년 간의 민주화는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회복하는 것이 아닌 국가권력의 오남용에 대하여 이를 억제하는 새로운 기구 만들기 여념이 없었던 잘못된 개혁이었다. 보다 많은 돈을 주무르고 인사권 팽창이 능사인 방식으로 개혁을 해왔다.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될 때마다 새로운 기구를 창설하는 것이 민주화였고, 국가권력의 정당성과 법의 권위를 지켜야 할 사법부가 앞장서서 관료화되었고 기구팽창하기에 여념 없는 타락하고 부패한 권력이 되어 버렸다.

 

 

 

3. 개혁을 성공하려면

 

국민들 저마다 길 바닥에 나와 몽둥이들고 돌 던지고 뗑강부리면 공권력이 굴복해버리는 나라에 미래가 있겠는가?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엉망진창으로 망가져버린 국가기관이 국민을 탓할 자격이 없다.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통째로 부정하며, 북한의 대남적화전략인 반파쇼민주화와 반미 자주화에 동조하는 민주노동당의 지지도가 20%에 육박하고 있다. 북한은 남한에 대한 사회주의혁명이란 말이나 적화통일 이란 말을 더 이상 쓰지 않는다. 남한 사회의 민주화를 통하여 사회주의 국가끼리의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은 말하고 있다. 남북한 국력의 격차는 이미 경쟁이 의미가 없는 상태로 벌어졌다며 냉전체제의 상징인 국보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법체계를 통해 대한민국이 결정적 우위에 서게 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집권당의 의장이란 자가 대책 없이 거덜난 우리나라의 법체계의 실상을 알고나 말하는 것인가? 국보법 폐지와 미군철수가 북한의 대남적화의 최우선과제라는 것을 알고 하는 소리인가? 국보법 폐지로 결정적 우위에 서게 되었다니 이 무슨 가당치 않은 헛소리인가?

 

개혁과 민주화의 요체는 국가권력행사의 정당성을 회복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자유민주주의의 헌정질서를 반석 위에 올려 놓는 것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대통령이 법을 지키며 권한을 행사하여야 한다. 부정부패가 무엇인가 그것은 국가권력이 오남용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투명한 행정과 예측 가능한 행정, 권한행사에 있어서의 적법절차의 준수가 부정부패를 없애고 체제효율을 높인다는 것을 대통령부터 올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권한 행사의 절차를 무시한 국보법이 악법인 줄 안다면, 대통령부터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확립을 위해 적법절차를 지키는 대통령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화 과정에서 보여준 법원의 민주화란 그 실상을 알고 보면 기가 차고 말이 나오지 않을 만큼 엉터리 민주화였음을 알아야 한다. 지난 10여 년 법관의 수가 2배는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똑 같은 사안에 대한 재판의 결과가 서울과 부산에서 다르고, 판사마다 다른 판결이 나오는 것이 오늘의 법원의 타락한 현실이다. 인권보장의 미명 하에 수사기관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훨씬 복잡하게 늘어났다. 인권보장을 말했었다. 판사의 권한이 세어지고, 변호사의 사업영역이 확장되었고,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불공정성은 심화되고 사법정의는 땅에 쳐 박은 사법개혁이었다. 이제, 가사사건에서는 기소권도 갖고 싶다는 법원이다. 건전한 사법부 없이 민주주의의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판사들이 끗발을 높이기 위하여, 변호사들 사업영역의 확장을 위하여 법의 권위를 땅에 쳐 박아 놓은 것이 오늘의 타락한 사법부의 현실이다.

 

법에 권위가 어디 있는가? 김용옥이 같은 자는 민중의 함성이 헌법이라 주장하고, 대한민국의 헌법기관을 모조리 때려 엎자는 식의 내란선동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떠벌리고 다닌다. 대통령 스스로 헌정질서 파괴적 포퓰리즘을 용왕님 덕이라 칭송했었다. 이 난장판 세상을 바로잡지 아니하고, 포퓰리즘을 등에 업고 얼마나 더 대통령 노릇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가?

 

대한민국의 장래와 노대통령의 성공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노대통령에게 애정어린 충고를 하겠다. 대통령 노릇을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솔선 수범하여 헌법을 지키라고 충고하고 싶다. 대통령부터 먼저 정당한 헌정질서를 바로 잡아가야만이 개혁을 성공할 수 있다. 비젼이란 실현 가능한 새로운 삶의 질서에 대한 전망이다. 확고한 이념과 철학 없이 정책적 일관성 없이 저질 포퓰리즘에 기대어 기득권층 때려부수기가 전부인 정치가 얼마나 갈 것 같은가? 재정적자 200조로 굴러가는 나라에서, 경제는 곤두박질 치고 있다. 무엇을 믿고 비용소모적인 수도이전을 감행하려는가? 그 돈을 무엇으로 충당할 것이며, 대한민국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을 무슨 근거로 주장하려는가? 민주화 개혁- 백 번 찬성이다. 새로운 비젼없이 기득권층을 때려부수는 것만이 전부라면 대통령 또한 온 국민과 함께 같이 망한다는 것을 깨닫기 기대한다. 변덕스러운 것이 민심이다. 잘못 헛디뎌 경제가 거덜나면, 순식간에 뒤집히는 것이 민심이란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개혁이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은 잠시 고통을 겪더라도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개혁에 동참할 것이다. 현 정권이 개혁에 성공하려면, 새로운 국가의 질서를 보여주어야 한다. 반대자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하는 개혁이라면 당장 때려치워야 할 개혁이란 것을 유념하시길 바란다. MBC와의 인터뷰 중 한미 관계가 효선양 미선양 촛불시위로 영향 받는 사실을 말하는 것을 보며, 노대통령의 외교적 미숙함이 심란하게 여겨진다. 고도의 보안과 전략을 요구하는 외교를 포퓰리즘에 의존한다면 그야말로 정신 나간 짓이라 비난 받아 마땅하다. 정치 외교 군사 그 어느 하나도 예외 없이 감정이 있어서는 아니 되고 공평무사하고 평정심을 잃으면 곧 망국의 길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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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를 생각한다

2004-05-28 16:56:00

 

힘센 사람이 마음대로 하는 횡설수설

 

보수는 힘센 사람이 좀 맘대로 하자는 것"

노무현 대통령은 27"'가급적 바꾸지 말자'가 보수고, '고쳐가며 살자'가 진보"라며

"한국에서 뻑하면 진보는 좌파고 좌파는 빨갱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암적인 존재"라고 지적했다.

 

"한국처럼 오른쪽에 있는 나라는 더더욱 바꾸지 말자는 기득권 향수가 강할 수밖에 없다"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의별 보수를 갖다 놓아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수는 힘센 사람이 '좀 맘대로 하자, 적자생존을 철저히 적용해 경쟁에서 이긴 사람에게

거의 모든 보상을 주는 약육강식이 우주섭리에 가깝다'고 말하는 쪽"이라고 말했다.

반면 "진보는 '더불어 살자, 인간은 어차피 사회를 이뤄 살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느냐는 것'"

이라고 대통령은 지적했다.

 

대통령은 "한때 소련이 붕괴됐을 때 진보. 수가 바뀌었다"

"그래서 부득이 보수가 공산주의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 이이가 진정 대한민국의 대통령인가?

노대통령의 말을 듣고 보니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띵해진다.

황당함의 극치다.

 

보수는 사회안정을 바라고, 진보는 사회 발전을 바라는 것이라는 정도만 말했어도

이런 황당한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혁을 성공하기 위해서 철학이 있어야 하고 신념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고,

현실의 문제를 어떻게 분석하며, 새로운 미래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실현 가능한 방법을 모색하고, 일의 우선 순위를 정하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 나가는 것으로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조금씩 구체화 하는 리더쉽이 절실한 것이다.

 

그런데 노대통령의 위의 발언을 읽어보면 신념은 고사하고,

사회발전에 대한 생각에 대하여, 교통정리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의 상황인식을 드러낸다.

교통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 부적절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노대통령의 보수에 진보에 대한 이해의 수준은

교통사고 수준이다.

한 마디로 좀 힘이 있다고 아무데서 아무 이야기를 마구 할 수 있는 것을

권력가진 사람이 누리는 특권 쯤으로 생각하는 황당함을 보여준다.

 

노 대통령은 <힘센 사람이 좀 맘대로 하자는 것>이라는 것을 대학생들과의

대화에서 마음 놓고 횡설 수설을 하고 계시다.

 

<진보는 좌파고 좌파는 빨갱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암적인 존재라 말하고 있다.>

참여정부라 하며, 기득권 층을 몰아내고, 보다 많은 국민이

국가권력의 주체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민은 권력의 객체가 아니라 국민은 권력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주의 이념은 용도 페기된 이념이며,

우리 사회에 만연된 이러한 사회주의적 진보의 개념을 진보가 아닌

몰락의 개념으로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소련연방이 붕괴했다. 유럽은 좌파 정권, 좌파 지식인의 입깁으로 백년 동안 노쇠했다.

좌파의 이념을 진보라 믿는 것, 그것은 북한을 선진 사상으로 무장된 집단으로

이해하는 것만큼 어이없는 발상이다,.

 

주체사상에 의하면 북한은 인민의 낙원이며 선진국이고,

남한은 자본주의 쓰레기들이 모여사는 사회이다.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이 미칠 국민적 파장을 생각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없애고, 보다 건설적인 사회발전을 위해

보수와 진보의

개념에 쉽게 접근하는 방법을 나름대로 모색해본다.

 

사람은 자신이 자기 자신이기를 바란다.

동시에 현재의 자신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나은 삶을 기대하고 모색하면 이를 실천하고자 한다.

<보수주의>를 바라는 심리적 기저에는 내가 <>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고,

<진보주의>를 바라는 심리적 기저에는 <더 나은 나>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

인간의 내면에는 보수와 진보를 바라는 마음이 공존한다. 그런데

새로운 삶의 모색은 기존의 삶에 대한 안정성을 깨뜨린다.

사람은 삶의 개선을 바라지만, 이에 동반되는 혼란과 불확실성을 두려워 한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인간실존의 이러한 심리적 기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보수>가 자기애와 연관되어 있다면

<진보>는 삶에 대한 사랑이고, 삶에 대한 사랑은 변화와 발전에 대한 욕구이다.

이러한 향상에로의 욕구는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과 생명력과 관계되어 있다.

 

진보한다는 것은 성장의 징후이다.

자신의 삶의 안락함에 안주하는 것은 곧 몰락의 징후이다. .

더 나은 삶을 기대하고 모색하며 이를 실천하고자 한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 없이, 우리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정체성이란 자기 규정성을 말한다.

내가 스스로 무엇으로 규정하느냐에 대한 통일된 또는 구조화된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집단, 특정 사회, 국가도 정체성을 확립하여야 만이 성공적인 사회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개인이나 집단은 발전을 위한 합목적적인 목표를 설정할 수 없고,

자신의 삶의 국면에서 자신에게 적절한 방법을 강구하기 어렵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나 사회의 자기동일성을 확보하고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것이

<보수주의> 철학적 이념이라 생각한다.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사회는 진보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기에 사회의 안정은 진보의 전제조건이 되며,

진보의 이념을 실천적 삶의 영역에서 구현하기 위해서는

비전을 구체화 하는 새로운 삶의 질서를 이끌어 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삶의 질서를 깨부수는 것이 진보가 아니라,

기존의 삶의 질서를 새로운 삶의 질서로, 보다 확장적이고,

그 국가나 사회의 성원들의 생활에서 삶의 효용과 행복을 극대화 시키는

삶의 질서를 건설하는 것이 진보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진보적 사회발전을 위한 노력은 지도자의 철학이 없이,

사회발전에 대한 지도적 이념이 없이 진보는 불가능하다.

진보에 대한 지도적 이념은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참여하며,

미래지향적이고 건설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오늘날 미국이 누리는 국가적 성공은 다른 서구 국가와 다른 특별한 역사적 이유가 있다.

미국엔 앙시엥레짐이 없었고, 아무것도 없는 신대륙에 민주공화국의 이념을 완전히

새롭게 정착시킬 수 있었기에, 세계에서 가장 안정된 정치 체제를 갖출 수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는다 믿는다.

 

진보와 보수에 대한 정치사상적 이념적 기초를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공화정>의 이념은 보수적이고, <민주정>의 이념은 진보적이다.

<공화정>은 국가의 목적을 구현하고, 국가의 질서와 사회안정을 강조한다.

<민주정>은 개인의 권익 신장 보다 자유로운 삶, 나아가 보다 행복한 삶에

그 이념이 지향점을 맞추고 있다.

 

하루 열 시간 일하는 사람이 일은 8시간쯤 하고

자기 개발은 2시간 투자하는 것이 건강하다 믿는다.

한 사회의 건전성도 70~80%의 보수와

20~30%의 진보가 병존할 때 그 사회가 건강하다 믿는다.

 

획일성과 안정만을 추구하는 사회는 곧 몰락한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도전을 허용하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모색하는

개인이나 사회가 건전성을 지속하는 것처럼,

다양성과 도전을 허용하는 국가권력이 진보적이며,

발전적인 국가의 전제가 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현실의 문제에 도전했다.

어떤 관념과 주의를 내세우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도전했다기 보다

내 앞에 부닥친 문제에 도전했다.

보통 대학에 수석 합격하면, 고시에 합격해 가난한 사람 위하는 사람 되겠다,

돈 없는 사람 치료해 주는 의사 되겠다는 말을 한다.

진심이라 생각하는데 제게는 그런 꿈도 없었다. 판사 되고 싶었다. ? 출세하니까.

성공 비결 말하겠다. 저는 제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성공한 대통령이 아니라도

만족한다...

어떻게 해서 성공했는가? 제가 성공한 비결은 확실하게 투자하라는 것이다.

가진 것은 그대로 갖고 그리고 더 갖겠다는 도전, 이것은 좀 안전하지만 성공에는

큰 도움 안 된다. 적어도 승부를 걸어야 하는 과정에서는 투자 하려면 확실히 해야 한다.

현재에 몰두했다. 멀리 내다보기는 하지만 그것은 내다볼 뿐이지 항상 현재에 전부를

투자했다.>

 

노대통령은 성공의 비결로 도박을 이야기 하고 있다. 현실에 만족하고,

성공한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만족한다 말하고 있다.

대통령 스스로의 가슴에 비전이 없고 미래가 없으며,

미래에 대한 꿈도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의지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토로하고 있다.

 

철학도 신념도 비전도 없이 오직 대통령이 된 것 자체를 성공이라는 대통령 -

권력은 정치가가 자신의 신념을 펼치는 수단일 뿐이다.

노대통령은, 출세하기 위해 판사가 되겠다고 주장하는 같은 맥락에서,

대통령이 되는 것이 권력의 획득이 목적이었음을 스스로 말한다.

 

그를 지지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모두 그의 출세의 밥일 뿐이었단 말인가?

대한민국 국민이 그에게 기대할 것이 더 없다는

이 어처구니 없는 현실 앞에서 망연자실할 뿐이다.

 

대한민국 청와대는 막가고 있지는 않은가? 그 어딘지 모를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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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표의 착각

2004-09-14 16:52:29

 

노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발언에 대하여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발언은 사뭇 비장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마지막 안전장치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은 저의 모든 것을 걸고 막아내겠습니다. "모든 것이 포함된다. 보안법 폐지는 친북활동의 합법화이다. 대낮에 우리나라 어떤 곳에서도 인공기를 막 휘두르고 북한을 찬양하고 어떤 제재를 받지 않고 합법화된다는 것인데 체제가 위험하고 우리를 앞서갔던 많은 선배들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 선배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국보법 폐지를 막겠다는 박대표의 국보법 문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상황인식은 황당스러울 정도로 모자라고 잘못되어 있다. 먼저 국가보안법이 자유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안전장치라고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고 있다. 선배들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것이라 말하며 그 체제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한 것이란 주장을 들으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산업화했다면 지나가던 강아지가 웃을 일이다. 군사독재와 계획경제로 산업화를 이룩하였다. 박정희가 행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원조는 스탈린이다. 자본주의 진영이 세계공황으로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때, 스탈린은 경제계발5개년으로 후진국을 산업화시켜 세계최강의 공업국으로 이끌어 올렸다. 산업화에 성공한 업적으로 말한다면 박정희는 스탈린에 비하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

 

국가보안법은 군사독재정권이 비인도적이며, 반인권적 독재정권을 지키기 위하여 수많은 민주인사를 탄압한 반민주악법이었다. 요즘은 아무나 자신의 필요에 따라 가져다 붙이는 것이 자유주의라는 말이다. 대한민국에 자유주의를 제대로 해본 적이 있었던가. 노대통령은 내 마음이 헌법정신이라고 자유민주주의를 말했고, 한나라당은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 지킨 것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얼토당토 않은 말을 하며 경제살리기를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신자유주의를 말하며 강성노조를 때려잡는 것을 주장한다. 애꿎은 자유주의라는 말이 수난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요즈음 아무나 필요에 따라 멋대로 가져다 붙이는 것이 자유주의란 생각이다.

이러한 개념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 자유주의 의미를 간략하게 설명해 보겠다.

 

자유주의는 집단에 의한 통제보다는 개인의 자발성을 우선시하며, 국가와 사회제도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개성을 존중하기 위하여 존립해야 한다는 이념이다. 자유주의 이념의 핵심 테제에 대하여 칸트는, 도덕은 인간을 수단으로가 아니라 목적으로 취급하는 것이라 했고, 토마스 제퍼슨은 정부란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보호하고 실현시키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설파했었다. 자유주의를 말하면서 사람을 수단(인적자원)으로 생각하며 교육인적자원부를 만든 DJ 정부의 무지몽매함은 돋보인다.

 

개인의 자유를 보편적 가치로 인식하고 그것에 기초한 사회제도를 적극적으로 구상하는 자유주의 사상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어 국가와 사회의 지도원리로 자리잡게 된 것은 근대 유럽에서이다.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은 고유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자기 완성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인간관, 원리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모순되지 않는 정치제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정치관, 개인의 자발성 보장이야말로 사회발전의 조건이라는 사회관 등 자유주의가 전제하고 있는 이러한 관념들은 모두 근대사회의 구성원리를 형성했다.

 

종교개혁 이후 ''신교(新敎)의 자유'' 주장, 원죄설의 부정 및 인간의 완성 가능성과 진보의 관념을 강조한 계몽사상, 기본적 인권과 사회계약의 관념, 영국 입헌주의의 역사적 전통, 고전경제학과 자유방임 정책론 등 근대혁명을 이끈 사상과 관념들도 자유주의의 근간이 되었다.

 

자유주의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였지만 자유주의가 의미하는 실질적인 내용은 이미 17~18세기의 부르주아 혁명 이념 속에 내포되어 있었다. 영국은 명예혁명으로 스튜어트 왕조의 절대주의를 청산하고 법에 의한 지배의 전통 위에 의회정치를 정착시킴으로써 근대적인 입헌주의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J.로크의 정치이론과 A. 스미스의 경제학설이 종종 고전적인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영국에서 처음으로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정치체제가 성립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독립선언과 뒤이은 프랑스의 인권선언은 근대 정치원리의 기본이념으로서 인간의 자유를 보다 보편적인 용어로 표현하여 자유의 기초를 확립시켰고, 자유주의에 있어 새로운 전기가 되었다. 동시에 프랑스 혁명의 정치과정은 폭력적 수단을 수반하는 급진적인 사회제도의 변혁에 반대하고, 의회제도의 틀 속에서 온건한 개혁을 지향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의 의미를 확인시켜주었다.

 

본래 자유주의는 유럽에서 근대 혁명의 보편적 원리를 주창하는 부르주아가 토지귀족세력의 정치적 지배를 타파하고 부르주아의 계급적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19세기 전반에 성립시킨 정치적인 주장이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자유주의는 양면성, 즉 한편으로는 봉건제와 절대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자유평등의 인간상과 합리주의를 계승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재산과 교양을 지표로 하여 빈곤한 계급을 정치과정에서 제외시키고 브르죠아 계급에 봉사한다는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J.S.밀은 권력이 제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가 권력에 의존한다 말했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국가의 행정부란 부르죠아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위원회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노동자에게 조국이 어디 있느냐고 국가를 전복하고 브르죠아의 재산을 가능한한 빠른 시간에 박탈하여 프로레타리아의 수중에 귀속시킬 것을 역설했었다. 마르크스는 국가자체에 대하여 부정적이다. 공산국가는 공산당 독재에 의하여 관료화 되었다. 관료화되고 부패하고 독재적인 공산국가는 결국 역사의 장에서 몰락하고 말았다.

 

파시즘이든 공산독재든 나는 전체주의에 반대한다. 전체주의 국가 이념은 그 어떤 방식이든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한다.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라는 액턴 경의 말처럼 국가보안법의 과거사는 타락한 국가권력의 범죄적 실상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과거 국가보안법의 잘못된 운영은 멋대로 인권을 유린하였던 독재자들의 죄상과 독재자들에 빌붙어 자신들의 영달만을 위해 살아온, 돌팔이 법조인 부패한 관리들의 타락한 일면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국민의 봉사자로써 정의로운 법의 수호자로써 본분을 망각한 채, 제대로 아는 것 없이 외국 제도를 어설프게 표절하고, 위선과 탐욕으로 살아온 그들의 죄상을 증거한다.

 

박근혜대표는 경제살리기를 강조한다.

국가보안법 문제와 과거사 문제를, 국민의 뜻을 제1의 기준으로 삼아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겠다는 비합리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말하는 노대통령에게 경호실법을 폐지하라고 맞대응하는 한나라다의 멍청함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국가보안법은 반민주악법이다. 그 법 집행이 수사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하여 이루어졌기에 반민주악법이다. 제대로 된 법은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를 준수하여야 하고, 자유민주의 핵심은 국가권력의 행사가 적법절차에 의하여 행사되도록 하여야 한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이 자유민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안전장치라며 국가보안법 수호를 위하여 목을 걸겠다는 박대표의 비장한 의지 표명은 합리적 방법을 찾는 것은 애당초 글러버린 그야말로 한편의 코메디가 아닐 수 없다.

 

국보법 개정과 페지에 대한 국민의 뜻은 이미 감정적으로 반목과 대립과 불신의 늪에 빠져 있다. 제대로 된 정치지도자라면 이러한 우리의 문제적 상황을 헤쳐나아갈 설득력 있는 해법을 찾아내고 제시하여야 한다. 그녀는 아는 것이 없고 대책이 없으며, 노대통령의 공격과 세상 돌아가는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며 허둥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국가보안법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목을 걸겠다는 그녀의 용기는 가상하다. 다만 무모하게 그녀의 목을 걸어 국가보안법이 지켜질지 의문이다.

 

한나라당과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살아온 날들에 대하여 반성할 줄 모른다. 그 당시 상황을 말하며, 당시로써는 자신들의 삶의 최선이었음을 되풀이하여 말한다. 줄서기 잘하고 필요하면 비겁하기 능수능란한 자들이 우리의 기득권층들이다. 좋다고 여기는 것은 표절하여 갔다 붙이길 좋아하니, 군사독재 하의 계획경제가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시장경제로 둔갑시킨다. 자신이 지닌 문제점을 인정하고 자신의 반성을 기초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줄 모르니 개선이 되지 않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안전판이라 착각하는 실력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그녀의 모습은 안스럽다. 멍청한 박근혜 대표에게 충고하고 싶다. 국가보안법 가지고 폐지 부당성을 주장하며 길바닥에 나아가 외치면 국민이 호응할까? 과거 국가보안법으로 인하여 피해본 사람들이 일어나 국가보안법 폐지를 보다 설득력 있게 주장하는 자리를 깔아주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현 정권의 개혁에 대응하여 경제문제로 현 정권의 무능을 부각시키는 것이 한나라당의 전략인 듯싶다. 스스로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를 말하며 경제살리기를 말하는 박대표가 계획경제와 시장경제를 분간하지 못하는 것 같아 딱하고 안스럽다. 지금의 우리 경제의 문제는 경제의 관점에서만 접근하여 해결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시장이 작동할 수 있는 공정한 룰이 없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의 문제, 노사문제는 단순히 경제문제만이 아닌 정치문제와 결합되어 있다. 강성노조의 문제는 생산성의 향상이란 경제적 차원에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경제적 문제와 아울러 정치적 제도적인 문제로 접근하여야 풀 수 있는 문제이다. 조금 전문적으로 말하면 노사문제는 규범적 문제와 사실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나아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우선순위를 기업의 생산성에 가치를 두느냐, 아니면 노동자의 삶의 질에 가치를 두느냐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계획경제와 시장경제를 혼돈하는 박대표가 말하는 경제살리기가 얼마나 실속이 있는 것인가 궁금하다.

 

법적안정성이 없는 사회에서 시장경제가 가능한가? 한나라당과 박대표는 시장경제의 기초가 되는 법적 안정성과 법관의 법률의 기속이 시장경제의 기초라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사회가 공정한 룰에 의하여 작동되지 않는다면 시장경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몇 몇 대기업 활동을 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정부의 규제를 풀어달라 말한다. 이러한 발상 자체가 과거 특혜지향적 기업 운영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제도는 사회 모든 분야에 공정하게 적용되는 것이어야 한다. 같은 사안에 대한 법관 마다의 판결이 서로 다른 사회에서 온전한 시장경제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까? 사회를 움직이는 기초적인 법질서가 공정하게 작동되지 않는 나라에 시장경제는 불가능하다.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는 자유민주주의적 헌정질서가 전제되지 아니하면 작동 불가능한 것이다. 쉽게 말해서 어느 재벌이 대통령에게 잘못 보였다고, 그 재벌이 관여된 사업의 분야에 불리한 입법을 대통령 마음대로 만드는 나라에서 시장경제는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은 공정한 룰에 의하여 돌아가는 사회가 아닌 힘 있는 사람 마음대로 돌아가는 사회였고 여전히 그렇다. 기득권층이 느끼는 위기 의식은, 판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고 수용하기 싫은 것이다. 실례를 들어 설명해보자. 산동네 빈민촌을 재개발하여 아파트를 짓는다 하자. 현재의 지가가 평당 10만원인데, 재개발하면 지가가 100만원이 된다. 건설회사가 정부에 뇌물을 평당 1만원 주고 사업허가를 받아, 원소유자에게 15만원에 매입한다. 대다수 원주민은 수용한다. 이에 반발하여 뗑깡을 부리는 사람은 철거반원(폭력배)을 동원하여 때려잡고 밀어붙인다. 그럼에도 끝까지 저항한 몇 명의 원주민에게 20만에 매입하여 재개발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대기업이 그 실상을 알고 보면 기발하고 상상을 초월한 악랄한 방식으로 부를 축적해 왔고, 부패한 관리가 뇌물받고 이를 거들며 성장한 것이 우리 경제의 실상이다. 그런 다음 더 웃기는 일도 생긴다. 이러한 수법을 알아차린 폭력배가 다음에 철거민 촌의 딱지를 18만원에 매입하여, 가스통 폭파하겠다고 위협하여 평당 50만원 받아내는 사업수완을 발휘한다. 이러한 것이 허용되는 사회에서 제대로 된 시장질서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법률의 제재를 받지 않는 국가의 최고권력은 필연적으로 인권을 침해하고 타락의 길로 나아간다. 자의적 권력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을 죽였던 스탈린을 경멸하는 것처럼, 김일성과 김정일의 공산독재를 경멸하는 것과 똑같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짓밟앗던 박정희와 전두환의 타락한 권력을 경멸한다. 박정희를 뛰어난 지도자라고 말하겠다면 스탈린은 위대한 지도자이어야 한다.

 

대통령의 마음이 곧 법이 되는 세상으로 살아왔다. 대한민국에 체제란 없었다. 단 한가지의 체제질서가 있었다. 대통령 앞에 줄을 서는 지배질서가 있었을 뿐이다. 지금은 노대통령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이, 과거 대통령들에게 줄을 섰던 기득권층 때려부수는 것만이 우리가 살길이라 주장하며 개혁을 한다. 노대통령이 잘못된 지배질서를 부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새로운 지배질서를 만들지 못한다면 지금의 개혁이 필연적으로 부메랑이 되어 스스로를 몰락의 길로 이끈다는 것을 나아가 우리 모두를 공멸로 이끈다는 것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빙자하여, 국가보안법의 폐지문제로 국론을 분열시키며, 사생결단의 대립의 국면으로 나아가는 것이 심란하다.

 

우리에게 진정 절실하게 필요한 개혁이란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바로 잡는 일이라 확신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적 헌정국가를 확립하는 것이며 법치주의 국가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다. 협의의 의미에 있어 법치주의란 모든 국가 기관의 법률의 기속을 말한다. 입법이 헌법에 기속되어야 하고, 행정이 법률에 기속되어야 하며, 법관이 법률에 기속되어야 한다. 법치국가이념의 최우선 과제는 통치권자의 권력의 오남용을 방지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에 기초한 법치국가를, 나아가 법의 지배의 이념을 실천함으로써, 정의에 기초한 새로운 국가질서를 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활력있고 생산적인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여야 한다 믿는다. 이 길만이 대립과 분열이 아닌 진정 화해와 협력으로 모색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임을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무모한 정치도박 그만 두라

2005-09-08 18:00:36

 

1. 대연정 제의 - 정치도박

2. 노대통령이 선지자(先知者)인가?

3. 독재정치는 안 된다.

4. 독선(獨善)과 아집(我執)이란 미숙함의 다른 이름이다.

 

 

 

1. 대연정 제의 - 정치도박

 

도박은 결국엔 망한다.

도박에 빠져드는 것은 도박에 성공한 맛을 보았기 때문이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기 마련이다. 탄핵 정국의 여파로 열린우리당이 대승을 거두었다. 40여 석 남짓 국회의원 수를 가졌던 열린 우리당이 국회 과반의석에 육박하는 의석을 획득했다. 그런데 지금 노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29%로 곧두박질 쳤다. 왜 이리 되었을까? 지난 17대 총선으로 열린우리당은 87년 이 후 선거로 최대 의석을 얻은 집권당이다. 이러한 지지를 받는 집권당이 어찌 이리 지리멸렬하는 것일까? 자신에 대한 지지율이 29% 밖에 안되기에 책임정치를 못하겠단다. 대통령의 도박으로 얻은 권력이기에 온전치 못한 것이다.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의한 노대통령과 박대표가 만나 회담을 했고, 2시간여의 공허한 만남 속에 아무런 성과없이 회담은 결렬됬다. 집권 당 내의 의견 수렴 조차 되지 않은 채 시도된 대통령의 제안이다. 회담결렬은 당연한 결과이다. 여야가 촉각을 곧두 세우고 노대통령의 다음 수가 무엇일가 긴장하는 모습이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즉흥적 제안에 대한 야당이나 국민의 반응을 체크하며 또 다른 쇼비지니스를 기획하려 할 것이다.

 

잘 될까? 잘라 말하겠다. 될 일이 아니다. 대통령직을 걸고 배째라는 식의 정치는 이제는 먹히지 않는다. 탄핵 때까지만 해도, 외로운 돛단배를 야당이 흔들어 대통령 노릇 못해먹겠다는 말이 국민들에게 먹혀들었고, 대책없이 대통령을 탄핵하여, 정치적 불확실성만을 증폭 시킨 야당에게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국민이 힘을 모아 집권당을 밀어주었다. 노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제대로 일 하지 못하여 지지율이 떨어졌다. 독단적이고 전횡적인 방식의 정치가 실패하자 이를 바로잡고 개선할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새로운 정치적 이슈를 들고 나오며, 대통령직을 걸고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대연정을 들고 나왔다. 여기에 무슨 진정성이 있고, 국정을 운영하는 대통령의 철학이 있겠는가? 대통령직 내걸고 마치 비장한 결심이라도 한 양 허풍치고, 한 건 잡아 정치 판을 한 번 뒤짚어 보겠다는 도박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2. 노대통령이 선지자(先知者)인가?

 

 

강준만은 한 칼럼에서, 4대 개혁입법 처리가 실패하자 유시민 의원은 국회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린 바 있고. 천정배 법무장관은 원내대표 시절 4대 개혁입법에 목숨을 바치겠다 말했었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가 후퇴한다 말했었다. 단지 선지자적 혜안으로 여권의 간판 스타를 그렇게 추락시키고 정치개혁이 가능한가라 질문하며, 선지자노릇을 한다는 점에선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노 대통령이나 다를 게 없다. 한국은 아직도 선지자의 나라인가? 조금 늦더라도 더불어 같이 가면 안 되는가? 반문하며 노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이 박정희와 다를 바 없는 독재정치라 비판한다. 대통령의 대연정 제의에 대하여 한나라당의 대통령에 대한 무시가, 연정 이 후 한나라당 인사들에 의하여 다시 재현된다면 연정은 끝나는가를 질문하며 노대통령의 연정제의가 비현실성을 꼬집는다. 나아가 무지한 국민을 거역하고 연정을 제의하는 노대통령에게 국민은 겨울ㆍ봄엔 위대하지만, 여름ㆍ가을엔 멍청한가 물으며, 노대통령의 전횡을 비판한다. (한국일보 97)

 

말이 되는 소리를 가지고 진정성을 주장하자. 대연정을 제의하는 노대통령의 진정성이 있다면, 4대 개혁입법에 목을 매었던 유시민의원과 천정배장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가 후퇴한다 말했던 이해찬 총리는 정치 모리배에 지나지 않는다 말이다. 대통령직을 걸고 내어 놓은 대연정 제의 딴에는 무슨 대단한 승부수라도 있는 것처럼 말한다. 지역구도해소와 선거구 개편이 제대로된 상관관계가 있을까? 나라 돌아가는 꼴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이를 돌파하기 위해 대책없이 한 건 벌려보자는 노대통령의 신경증적 행태을 드러내는 도박일 뿐이다.

 

탄핵 이후 노대통령은 국민의 지지기반을 등에 업고 여세를 몰아 성공적인 국정 운영 기회를 부여받은 셈이다. 하지만 대화를 통한 상생과 화해를 말한지 며칠만에 보수는 무조건 바꾸지 말자는 자들이라 상대방을 배척하고, 과거사 규명을 들고나오며 반대파 죽이기를 시작했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반대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곧 자신을 불신임하는 것이라는 식의 전횡적인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수천만 국민의 이해가 걸린 문제를 충분한 준비와 계획도 없이 충분한 국민적 합의도 없이 무모하게 추진한다. 결국 헌재의 판결로 수도 이전의 뜻은 좌절을 겪어야 했다. 자신에게 보내준 국민의 신뢰와 기대를 성급함과 독선적인 국정운영으로 헌신짝처럼 걷어찬 사람은 다른 사람 아닌 바로 노대통령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열린우리당의 문제가 무엇일까?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중 상당수가 자력(自力)으로 국회의원이된 것이 아니다. 대통령 탄핵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국정의 미래에 대하여 불확실성 우려하는 국민들이 자신들의 정파적 당리 당략적 이해(利害)를 바탕으로 노대통령을 탄핵한 것에 대하여, 기존의 국회의원을 파면시키는 선거를 했다. 덕분에 열린 우리당 의원은 그야말로 국회의원 자리를 거저 주은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생각하면 17대 총선의 승리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노대통령의 놀라운 승부사적 자질과 선지자적 혜안(?)에 의하여 이룩된 것이라는 여권 내의 노대통려에 대한 평가로 인하여, 노무현 우상화 노름이 여권에서 일어난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민주화 운동을 한 386 세대의 국회의원들이 노무현을 선지자로 부활 예수처럼 떠받들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몇 달전 청와대에서 대미관계에서 고슴도치론이 나올 때 알아봤었다. 고슴도치론은 북한이 주장하는 대미전략이다. 몇 년 전부터 미국을 대하는 북한의 위상은 <고슴도치>에서 <전갈>로 진화(進化)했다.

 

며칠씩 굶은 <고슴도치>도 밟으면 바늘 같은 가시로 찌른다. 그리고 한번 찔리면 가시는 빠지지 않는다. 동물은 발이 썩으면 죽기 마련인데 북조선이라는 <고슴도치>의 강철가시에 찔리면 아파서 곤두박질을 치며 죽게 된다. <전갈>도 마찬가지다. <전갈>은 죽음에 이르는 독침을 가지고 있다.” 김정일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통하는 김명철 조미평화센터소장이 <김정일의 통일전략>이란 책자에서 밝히고 있는 주장이다.

 

평양 식의 어법으로 말하면 이제, <남조선 아이들>이 장군님의 통치방식을 흠모하여 선군영장이신 김정일 장군님의 대미전략과 영도원칙을 배워가는 중이라는 생각이다.

 

노대통령이 왜 부활 예수에 비교되고 선지자가 되는가? 주체사상이 말하는 <수령의 유일적 영도원칙>을 확립해 나아가려는 모양이다. 수령의 유일적 영도 밑에 전당(全黨), 전국, 전 인민이 한결같이 움직이는 강한 조직을 세워, 혁명 건설과 모든 문제를 풀어가는데 수령의 유일적 영도로 이끌어간다는 것이 김일성 수령님과 김정일 장군님의 영도예술이다. 수령--계급-대중을 하나의 전일 (全一)적 체계로 결합시켜 혁명과 건설을 다그치는 영도체계 - 이것이 수령 중심의 영도체계이다. 이러한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으니 전 국민이 노사모가 되어야 하고, 부활하신 예수 같은 노대통령이 선지자(先知者)가 되어야 한다.

 

 

 

3. 독재정치는 안 된다.

 

 

친노 성향의 정신과 전문의인 정혜신 또한 노대통령의 민심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비판한다. “역사 속에서 구현되는 민심을 읽는 것과 국민들의 감정적 이해관계에서 표출되는 민심을 다르게 읽을줄 알아야 한다.” 는 노대통령의 발언에 문제를 제기하며, 국민에 대한 과감한 거역을 표방하며 민심을 재정의하는 듯한 대통령 노대통령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노대통령의 생각 민심을 잘 알고 있다는 인식은 자신의 논리를 관철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지 진짜 민심을 알고 있다는 느낌은 아니다. 민심을 정확하게 읽는 일과 진정성은 별개다. 소신과 배짱을 굽히지 않아 대통령까지 되었지만 그런 개인적 성공경험이 어떤 경우에도 적용되는 만능의 법칙일 수는 없다. 노대통령의 자기인식은 대통령이 되기 전 정치인 노무현의 선구자적 모습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지만 지금 국민들의 눈에 비친 노대통령은 선구자가 아닌 계몽군주에 가깝다. 특정사안과 관련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더 많은 고민을 한 대통령의 눈에는 자신과 현격한 견해 차를 보이는 국민들의 반응이 어리석은 감정적 대응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의 무의식은 언제나 옳다> 말하며 노대통령의 독선을 비판한다.

 

한 개인이 수 많은 사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신을 지켜 대통령이 된 것은 개인의 문제이다. 성공적으로 대통령이 된 것과, 대통령의 직무로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자신이 생각이 옳다는 신념으로 이를 실천하고 관철시키려는 노력이 개인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지만,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써의 성공은 자신의 신념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동의없이 성공할 수 없다. 대통령은 국민의 동의와 이해를 구하며 국정을 이끌어 가야할 직분이기 때문이다.

 

유시민 의원은 노대통령에 대한 그야말로 맹목적 충성을 보이며, 대통령은 지역주의를 ''암적 존재''로 진단했다. 국민은 왕이라면 신하인 대통령은 전문의이다. 전문의가 CT, MRI 찍고 정밀진단해 암을 도려내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은 지금 건강하다면서 동의서를 써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돈벌이 목적으로 의사가 멀쩡한 사람 잡으려는 게 아니지 않나.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면서도, 진실된 전문의의 진단은 정확할 것이고, 이를 믿고 따르자고 호소했다. 노대통령 말씀 앞에서는 주의, 주장도 의견도 다 사라지는 없는 유시민 의원이다.

 

소신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노대통령의 신도(信徒)인 유시민 의원에 대해, 명민한 정혜신씨는 유머와 함께 허점투성이의 유시민의원 문제점 정확히 비판한다. <노 대통령에 대한 어법을 흉내내 먼저 밝혀두건대, 나 유시민 좋다.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좋다. 하지만 연정론과 관련된 최근 유시민의 말과 행동은 별로 안좋다. ‘지적 권위주의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서다. 어떻게 해서든 상대의 논리를 내 논리에 종속시켜야 속이 후련한 것처럼 보인다 >

 

정혜신씨가 비판하는 유시민의 지적 권위주의를 프랑스의 비평가 롤랑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어떤 특정한 사유방식이나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모든 행태을 파시즘으로 규정한다 말한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도덕은 한 사람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개성을 존중하는 일이다. 인간이 누군가에 의해 자기 목적에 맞도록 가치관이 맞춰 조작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노대통령이 우매한 민심을 거역하겠다는 독단적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나, 유시민의원의 국민이 무조건 이를 믿고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파시스트의 사고방식이다. 잔재주 믿고 어설픈 논리적 우월성을 강조하며, 자신이 믿는 신념이나 삶의 방식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이 곧 파시스트의 사고 방식이다. 독재정치는 독재자의 욕구에 국민의 의사가 종속되기를 강요받는 정치체제이다. 노대통령이 선지자이고 전문의이기에 국민이 노대통령의 진정성을 헤아려 이를 좇아야 한다는 논리 이것이 바로 독재정치이고 파시스트의 사고방식이다.

 

 

 

 

4. 독선(獨善)과 아집(我執)이란 미숙함의 다른 이름이다

 

 

독재정치는 독재자의 욕구에 국민의 의사이 종속되기를 강요받는 정치체제이다. 이러한 사회체제에서 자율적인 인간과 개성적인 인간은 배제된다. 인간은 각자의 권리와 독자적인 가치관을 지닌 독립적인 존재이다. 설득하는 것은 좋지만, 강요하거나 위협하고, 하물며 세뇌 따위는 결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사회관계에서 기본적 도덕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며 그가 맺는 인간관계에서 그의 도덕적 가치관이 드러나게 된다. 상대방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일을, 또는 상대방이 바라지 않는 일을 자신이 옳다고 하여 상대방에게 요구하거나, 자신의 판단으로 상대방을 위한 일이라며 이를 강요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일은 <상대방에 좋은 일이다>하여 자신의 판단으로,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 요구하는 것은 무지와 무례에서 비롯된 독단이다. 자신의 생각으로 그것이 선행(善行)이라 할지라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부도덕하다.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인간 존중에 기초한 건전한 시민윤리이다.

 

노대통령에게 국민은 대통령 노릇 잘하라고 기대한다. 노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과 화합의 정치로 지역구도 타파해 국민화합을 이룩하고 신뢰 사회를 만드는 데에 반대하는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국민은 상생과 화해의 정치를 기대한다. 공정하고 투명하며, 예측 가능한 정치를 통하여 사회의 불확실성을 사라지고 사회안정을 통한 국가발전을 기대한다.

 

뜬금없이 대통령직을 내걸고 대연정을 제의하는 것이 공정과 투명의 정치이고 예측한 가능한 정치라고 강변할 터인가? 분열과 갈등, 증오와 불신이 정치를 누가 시작했는데, 국민이 지역구도를 타파하려는 대통령에게 국민이 전문의의 말을 불신하고 동의서 써주지 않는다니, 그야말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어처구니 없는 말이다. 불신과 증오로 인한 갈등과 대립의 병은 그 누구보다 노대통령의 마음 속에 있는 병이다. 정작 환자는 불신과 증오와 분노로 대립과 갈등을 사회분위기를 부추겨온 노대통령과 노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집권당 인사들이 환자이다.

 

병든 마음으로 스스로 전문의를 자처하며 멀쩡한 국민을 암환자라고 어리석고 모자란 국민이라 매도하는 꼴이다. 스스로 병든 마음과 잘못된 마음을 고쳐야 할 사람은 국민이 아니라 노대통령이다. 유시민의원을 말을 듣노라면 노대통령의 독선과 아집이라는 병은 집권당 내 창궐하고 있는 전염병이라는 생각이다.

 

나만이 옳고 내 생각만이 객관적이라 주장하는 것은 정신적 미숙의 한 징표이다. 성숙한 인격은 자신의 신념이나 생각의 한계와 범주를 이해하고, 자신이 선택하지 않는 삶이나 다른 사람이 어쩌면 자신보다 더 옳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열린 마음으로 타인의 반대 의견을 존중할 줄 안다. 그럼으로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학습하며 개선되는 삶을 살아간다. 지적 정직성은 자신의 주장의 개연성을 입증하는 데에 있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신의 주장을 포기한 조건을 이해하는 데에 있다.

 

스스로를 싸가지 없다고 말하며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유시민 의원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공직자의 언행이란 마땅히 품위를 지켜한다. 세상에 싸가지없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스스로 허물을 고치면 누구나 발전적이고 건설적인 삶이 가능하다. 잔 머리를 굴려 스스로를 싸가지없는 인간이란 표현을 쓰는 것을, 마치 자신의 잘못을 용기있게 인정하는 것으로 혼돈한다면 그야말로 교육학적으로 대책이 서지않는 인간으로 전락한다는 사실을 유념하길 기대한다. <나는 더 중요한 정치인 되고 싶지 않다> 외쳐댄다고 노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부각되는 것도, 자신의 독선과 아집이 정당화되는 것도 결코 아닐 것이다.

 

영국의 뛰어난 전략가(戰略家)이면 전쟁사가(戰爭史家)인 리델 하트(Liddell Hart)는 말했었다.

대담성은 거의 대부분 옳지만, 도박은 거의 대부분 틀리다.”

 

도박 좋아하시는 우리들의 노대통령께서 부디 무모함과 대담성을 혼돈하는 어리석음 반복하지 않길 기대한다.

 

박근혜대표는 생존전략이 있는가?

2004-08-20 15:20:23

 

건전한 삶이란 어떠한 것일까? 풍요로운 삶이 건전한 삶을 보장하는 것일까? 개인의 이기심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인간의 욕맘에 대한 충족을 최대한 확장하는 것으로 건전한 삶이 보장될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란 본질적으로 지나치게 추구하게 되어 있다. 인간이 갖는 욕망을 극대화하는 삶이란 필연적으로 인간성을 황폐화하고 삶의 질서를 파괴하게 된다. 건전한 삶이란 건전한 인생관에 기초한 삶의 원칙과 현실의 삶이 조화될 때 가능하다. 원칙만을 고집하는 삶이란, 자칫 경직되고 자신의 삶을 폐쇄적으로 만들며 구체적 현실에서의 삶의 개선을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원칙을 무시하고 삶을 상황의 논리에 의해서 이끌려지는 삶이 제대로 된 삶의 방향성을 지키지 못하고 건전한 삶의 질서에서 일탈하기 쉽기에 상황 논리에 의해 이끌려지는 삶은 결코 성공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원칙과 현실이 조화를 이룰 때, 우리들의 삶은 지속적인 삶의 활력을 가지고 성공적인 성취를 이룩한다. 성공적으로 삶의 목표를 성취하였을 때, 그 목표가 달성되었기에 우리는 새로운 삶을 모색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의도한 삶이 실패로 판가름 났을 때, 그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삶을 모색한다. 성공적으로 삶의 목적을 달성한 경우이든, 우리가 의도한 삶이 실패한 경우이든, 새로운 삶의 모색은, 우리가 걸어온 과거의 삶과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의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요구한다. 원칙에 충실한 삶이 현실의 문제를 개선하는 데에 실패하였을 때, 우리는 변화된 삶의 상황에 대응하는 삶의 원칙이 갖는 통어력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다. 마찬가지로 상황논리로 이끌려온 삶이 더 이상 삶의 상황을 개선하지 못할 때, 이러한 방식의 삶이 더 이상 가능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는 싯점에서, 그 상황을 극복할 새로운 삶의 원칙을 모색한다. 현실상황에 대한 이해를 결한 원칙만을 고집하는 삶이 성공적일 수 없는 것처럼, 원칙을 상실한 상황논리에 의존하여 이끌려온 삶이 지속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삶의 귀결이다.

 

최근 여야 간에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며 논의되고 있는 역사 바로 세우기는, 앞서말한 삶의 상황에 있어서의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의 긴장관계의 극명한 대립을 보여준다. 친일진상을 규명한다고 한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인권의 침해 등에 대한 진상규명을 말한다. 경제가 어려운데, 과거의 문제를 들추는 것이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상황의 논리를 주장한다. 지금 경제가 어려운 것이 단지 경제의 문제일까? 경제문제를 말하며 강성노조의 문제를 말한다. 현재 강성노조가 생긴 것은 결코 경제적 문제에서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강성노조가 생긴 배경에는 타락한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특혜적 성장을 누려온 부패한 기업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강성노조를 때려잡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사간의 대립과 갈등이 아닌 화해와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사회질서 국가 질서를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현 정권의 좌경화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현 정권의 좌경화에 대하여 국가정체성을 위협하고 어쩌면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여기는 우려는 충분히 설득력 있고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고, 의미 있는 일 수 있을까? 보수적인 기득권층은 자신들이 왜 현 정권에 정권을 넘겨주게 되었는가에 대한 반성은 없고, 패배주의적 절망감에 사로잡혀 현 정권에 매도만을 일삼고 있다. 최근 여야는 대화를 포기하고 서로 상대방을 죽여야 자신이 산다는 식의 극한 대립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느낌이다. 성원들 간의 의사소통이 좌절되는 사회는 사회의 안정성은 떨어지고 폭력이 조장된다. 이러한 사회 상황에서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는 일이란 결국엔 우리사회 전체를 파국으로 이끄는 것이 될 것이다.

 

여야가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파국적 국면을 타개하고, 새로운 국가의 도약을 위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왜 이와 같은 파국의 국면에 다다르게 되었는가에 반성적 성찰이 요구된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없이 문제적 상황에 대한 책임 떠넘기기는 우리의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 가게 될 것이다. 지금 절실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상황과 이러한 문제적 상황을 야기시킨 과거사에 반성적 성찰이다. 과거 역사에 대한 진상규명은 우리가 처한 문제적 상황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묻는 것이 아닌, 새로운 국가적 도약을 위하여 우리가 이해하고 청산하여야 할 잘못된 과거는 무엇이고, 그 과거의 과오를 뛰어넘어 새로운 역사를 건설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노력이 무엇인가를 모색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갈등의 근원적 이유는 성장위주의 삶을 지향하면서,

원칙을 상실하고, 정당성을 상실하였으며, 오직 경제적 성장과 상황논리만을 좇는, 건전한 삶에서 일탈된 삶을 살아왔고, 개인의 삶의 질서, 사회질서, 국가질서 모두 건전성을 상실하고 방향성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정당한 삶의 원칙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결과가 잘못된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사회라면 그 사회에서 정당한 삶의 방식은 그 설 땅을 잃게 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면, 도덕성과 인간의 존엄성은 필연적으로 훼손될 수 밖에 없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더 이상 기존의 방식으로 성장이 불가능하고, 각종 사회문제의 발생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해결 능력을 초과하는 데에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전에는 당연히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들이, 이제는 더 이상 점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점차로 많아지게 된다. 경제적 관점으로는 경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경제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화해의 기반이 무너지고 불신과 반목이 증폭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우리 시대의 가장 절실한 문제는 성장과 민주화 과정을 겪으면서 파괴될 대로 파괴된 사회적 연대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지난 20세기는 사회적 연대성에 기초한 우리들 공동의 번영보다는, 외형적 힘을 키우는 데에 주력하였다. 외세로부터 해방을 위하여, 남북분단의 대결구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힘을 키워왔다. 그 결과 지금 세계 11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했고, 일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의 국민소득을 누리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그 힘을 키우기 위해, 인권이나, 도덕이니, 문화니, 복지는 뒷전으로 밀어놓았다. 경제 성장 위주의 국가 정책, 그리고 배금주의의 개인과 집단 간의 이기심 확산은 인간으로써의 품위를 손상하고, 도덕과 사회 기강을 어지럽게 되었고,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의 갈등을 증폭시킨 혼돈의 경제대국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개인과 기업의 이윤만을 추구하며 기업윤리도 개인 윤리도 땅에 떨어지고, 범죄의 급증과 수많은 사건 사고를 발생시켰다. 서로 힘을 모아 국가발전을 위하여 힘을 모아 노력했었던 과거는 잃어버리고,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사회적 책임과 국민 통합을 무시한 채, 지역간 이익집단간 노사간의 갈등은 첨예화 되며, 잘 되던 경제마저 침체의 늪에 빠졌고 지금 우리 경제는 발전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위기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경제성장위주의 시절을 경유하며, 우리는 과소비와 사치 향락을 일삼고, 근면한 삶의 태도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친일의 문제에 대하여, 일제강점기에, 일한 과거사를 들추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가를 말한다. 신기남의장의 예를 들며, 신의장의자녀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줄 수 있는 문제라 상황의 논리를 부각시킨다. 상황의 논리로 부정한 삶의 방식을 옹호하는 것을 용인한다면 정당한 삶의 질서는 바로 세울 수 없다. 밥을 굶었다 하여, 빵을 훔치는 것이 정당화되어서는 아니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 볼 대, 정당한 삶의 질서와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위해서 친일행위는 규명되어야 마땅하다. 민족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고, 새로운 미래의 비젼을 보다 구체적인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잘못된 과거의 문제에 대한 반성이 없이는 우리의 역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진전되지 아니한다. 친일청산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민족분단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국가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는 것이어야 한다 현재 설정한 우리의 국가적 과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그 잘잘못을 규명하는 차원에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기초로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일제시대의 과거사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적 국가질서를 확립하는 데에 있어 과거 개발독재로 인하여, 상실한 정당한 삶의 질서의 회복을 위하여, 경제성장위주의 개발독재가 가져온 부정적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 또한 마땅하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한다면, 정당한 삶은 그 설 땅을 잃는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가? 정당한 삶의 질서와 정의에 입각한 법질서로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적 화합의 기초를 다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오직 경제성장의 논리에 이끌려 살아왔다. 우리의 삶의 근본이 되는 뿌리가 뽑힌 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의 집권 기반의 강화를 위해 상황의 논리와 성장의 논리에 좇아, 편가르기를 하고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국론을 분열시켜온 잘못된 역사를 걸어왔다. 박정희 이 후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통령들은 자신들의 집권 기반 강화를 위해, 국가권력의 정당성의 기초를 서슴없이 파괴해 왔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의 불신과 갈등, 반목과 대립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이해하려는 과거사의 청산이 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러한 과거사청산을 통한 우리의 정체성의 확립과 우리의 비젼을 도출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역사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전진하지 못할 것이다.

 

역사는 현재를 위해서 쓰는 것이다. 현재의 과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과거 역사의 해석은 달라진다. 과거사의 잘못된 진상을 규명하려는 우리의 의도는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친일청산을 말할 때, 고증학적 역사학자라면, 친일에 관련된 모든 과거의 사실을 세밀하게 밝혀내려 할 것이다. 이 때, 친일 행적을 찾아내려 할 때, 누구의 어떤 친일행적을 찾아야 하려는 가에 대한 역사적 탐구의 접근 방법을 설정하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단편적인 역사적 사실들은 이러한 개념적 본질에 의하여 역사성을 부여 받는다. 친일청산을 하고자 할 때, 과거 사실에 평가하는 개념적 본질은, 우리가 추구해야할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그 이념적 기초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작금 벌어지는 현 정권이 규명하고자 하는 과거사에 대한 규명이 어떠한 관점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리라 이해하는 것은 쉽사리 예측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통치자가 그러하였듯이 현 정권은 자신들의 정권기반을 최대한 강화하는 입장에서, 현 기득권을 친일잔당과 미제국주의 앞잡이 노릇을 해 온 사대매국노, 반민족 반통일 세력으로 규정하고 과거사에 대한 규명은 진행되어질 것으로 보여 진다. 이러한 방식의 과거사의 청산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기득권층의 궤멸을 목적으로 시도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여권의 과거사 진상 규명 제의에 대해 19일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친북용공 관련내용까지 조사대상에 포함시켜 제대로 해보자는 역제의를 하면서 과거사 논란이 정치권 전체는 물론 우리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박 대표는 이날 상임운영위에서 과거사 때문에 현재와 미래가 어렵다는 대통령과 여당의 시각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얘기가 나온 마당에 중립적이고 검증된 학자에 의해 대폭적으로 과거사를 짚어보고 교훈으로 삼자고 말했다. 친북 용공(容共)516의 공과까지를 조사대상에 포함하되, 정치권과 편향성이 있는 인사를 배제한 검증된 학자 등 전문가 그룹에 맡기자는 역제의를 하면서 조건부 수용의사를 밝힌 것이다. (820일 중앙일보)

 

일전에 박근혜대표가 노대통령에게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했었다. 이에 대하여. 노 대통령은 <내 마음이 헌법정신>이라 답하였다. 불행하게도 노대통령에게 대한민국의 정체성 무엇이냐 질문하는 박근혜 대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보인다. 집권당의 과거사 청산의 이름으로 한나라당에 대한 공세에 대한 그녀의 반응이란, 철 지나고, 때 지나버린 반공 이데올르기를 들고 나오고 있다. 박정희의 딸이라는 자산 이외에 그녀에게 현 난국을 버티어 나아갈 철학도 국가 비젼도 국가 정체성에 대한 이해도 없어 보인다. 현 정권의 한나라당에 대한 공세 대하여, 박대표는 자신과 한나라당의 약점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잘 싸우는 사람은 자신의 약점에 방비하고, 상대방의 강점에 대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한 번 저지른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는다. 지난 탄핵 정국에서 보수 기득권층은 노대통령에게 철저하게 패배하였다. 이번 과거청산의 정국에서도 한나라당의 어설픈 대응을 바라보며, 우리의 앞에 주어진 현실에 대하여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이다.

 

박근혜대표와 한나라당이 노대통령에 대응하여 주장할 수 있는 국가정체성에 대하여, 국민이 납득할 만한 보다 우월한 국가관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자신들이 주장하는 국가관에 입각한 새로운 사회발전의 방향에 대한 제시가 없다면,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패배를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갈 곳 몰라 갈팡질팡하고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근본적인 문제-

지도층의 철학의 부재한 데에서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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