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총리에 기대하는 사회학적 상상력

2004-11-09 11:30:11

 

지금 내 책상 위에 미국의 사회학자 밀즈(C.W. Mills)가 쓴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책의 번역서가 놓여져 있다. 1978년에 발간된 이 책의 번역자는 강희경, 이해찬으로 되어있고, 역자에 관하여, 똑같이 1952년생인 두 사람 중 강희경씨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 이해찬씨는 서울대 사회학과 修學으로 적혀있다. 이해찬 총리가 26세 때 번역한 책이다. 이총리의 젊은 날의 시련의 삶과 민주화운동의 치열성 학문적 성실성을 엿볼 수 있다. 이총리는 1971 서울대학교 섬유공학과 입학, 1972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입학, 1974 ~ 1975, 민청학련사건으로 투옥, 1980 ~ 1982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투옥 되고 1985. 8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다. 그에게 대학졸업장을 받기 위해서 15년 간의 고난의 세월이 필요했었다.

 

 

 

밀즈(C.W. Mills)는 한 개인의 삶과 한 사회의 역사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이해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말하고 있다. 나아가 어떠한 사회 현상이나 개인의 행동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개인의 일생(biography)과 역사(history) 그리고 개인과 역사의 상호 작용을 이해하는 정신적 자질이 필요하다 말하며 이러한 정신적 자질을 일컬어 사회학적 상상력이라 말하고 있다.

 

 

 

지식정보화 시대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매일같이 엄청난 량으로 쏟아지는 정보는 우리가 그 정보를 소화할 능력을 압도한다. 정보화시대의 경쟁력은 필요한 정보를 선택하고 이를 분석, 종합, 가공하여 어떻게 우리들의 삶에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정치가, 경제인, 저널리스트, 학자, 과학자, 예술가, 문화인 그리고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들 모두에게, 정보화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 정보를 분석 종합 가공하는 사고력일 것이다. 나아가 수집 가공된 정보를 적절하게 이용하고 사고를 발전시킬 수 있게 해주는 정신적 자질을 요구한다. 밀즈(C.W. Mills)는 이러한 정신적 자질을 사회학적 상상력이라 설명한다. 한 개인에 대한 이해는 그가 몸담고 있는 사회에 대한 이해 없이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회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는 그 사회의 성원인 한 개인의 구체적 삶으로부터 설명될 수 있을 때 온당하다.

 

 

 

부당한 현실을 거부하고 반항하며 투쟁하는 정신은 평가 받아 마땅하다. 어떠한 사람의 특정한 몇 몇의 행동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실패나 오류는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실패에 이르기까지의 정당한 노력조차 폄하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은 아니다. 실적위주로 이끌려지는 사회에서는 실패한 사람들의 정당한 노력에 대한 평가가 소홀하다. 다양성이 배제되고 흑백논리에 이끌려지는 사회에서 개성적이고 창조적 인간이 성장하기 어렵다. 실적위주로 개인의 삶을 평가하고 승자와 패자로 극명하게 명암이 엇갈리는 사회는 획일성과 능률과 업적만이 강조된다. 이러한 사회의 경직성은, 거듭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기필코 성취해내고야 마는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사회발전의 동력을 스스로 배척하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부당한 현실을 거부하고 반항하며 투쟁하는 정신은 투쟁의 대상의 욕망에 종속되기 쉽다. 독재권력과 투쟁하였던 이총리의 민주투사의 경력은 이총리가 기득권층에 대하여 적대적 증오심을 가지고 성장하여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 총리의 민주화 투쟁의 경력은 그의 성장과정에서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성격을 형성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공격적이고 세련되지 못한 이총리의 언행은 그의 경력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해찬총리 개인의 일생(biography) 과 군사독재의 암울한 역사(history)를 되돌아보면, 최근 이총리의 총리답지 못한 언행에 대하여 이해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총리의 개인적 과거사가 총리로써의 품위를 손상시킨 언행과 야당에 대한 적대적이고 배타적인 태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과거는 과거이다. 국무총리로서의 직책의 막중함을 생각할 때, 그의 말은 경솔하다 비난 받아 마땅하며, 직분에 걸맞지 않은 언론과 야당에 대한 감정적 대응은 그의 정서적 미숙함과 세련되지 못한 매너를 드러내 보여 줄 뿐이다.

 

 

 

이해찬총리의 언론에 대한 막말, 그리고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가 퇴보한다는 발언, 여권의 헌재판결로 인한 수도이전의 좌절 등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지금 국회는 파행 국면을 맞고 있다.

 

 

 

집권당은 개혁만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며, 4대 개혁입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야당은 경제를 살리는 것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라 말하며 오히려 개혁입법의 부당함을 부각시키고 있다.

 

 

 

야당에서는 이총리의 사과와 파면을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대표는 1029일 이해찬국무총리의 지난 28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 과정에서 나온 한나라당 폄하 발언 등에 대해 "의회 민주주의를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며 강하게 반발하여 "여권의 4대 법안 강행처리 때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런 것을 포함해 몸으로라도 막을 수 밖에 없다""당의 명운, 나아가 나라의 명운이 걸린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27일 박근혜 대표는 국회연설에서 현 정권의 개혁을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개혁이 아니었습니다. 국민들은 두 편으로 갈렸고, 극렬한 편 가르기의 폭풍우 속에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쓰라린 증오의 상처밖에 없습니다. 국가를 발전시키지도 못했고, 경제를 살리지도 못했고, 국론을 모으지도 못했습니다.> 백번 옳은 말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하여 현 정권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한다. 한나라당과 수구꼴통이 현 정권을 빨갱이로 몰고, 국론을 분열시켰기에 아무 것도 제대로 못하겠다 변명한다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라 할 것이다. 성공하지 못할 개혁이라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제대로 한 것이 있기나 한 것인가?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책임자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국정의 총체적 상황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이다.

 

 

 

탄핵 후, 복직 이 후 노대통령은 네트워킹에 의한 참여의 정치를 강조하고, 상생과 화해, 대화와 타협을 말했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 자세는 채 2주도 지키지 못하고, 온 국민이 노사모되는 독단적인 개혁, 심지어 수도이전에 대한 반대의 논의조차 자신에 대한 불신임으로 간주하며 전횡적으로 정국을 이끌어 왔다. 노대통령과 집권당의 생각에는 국론을 분열시켜 있는 자와 없는 자를 편가르기 하여 4.15총선에서 빛나는(?) 승리를 쟁취한 것 같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노대통령은 스스로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업보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은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눈 앞의 권력기반의 확장에만 급급하여 나라를 둘로 쪼개버렸다. 의회의 권력을 장악하면, 마음대로 법을 만들 수 있고 그리하면 뜻대로 수월하게 대통령 노릇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면 한시라도 빨리 스스로 잘못을 깨닫기 바란다. 한나라당이 목을 잡고 헌법재판소가 악의적으로 발목을 잡았다고 생각하면 아니될 것이다.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법이라면 법 자체가 규범력을 온전하게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독단적인 밀어붙이기 방식으로는 결코 대통령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自業自得이란 말이 있다. 지은 대로 받는 것이 세상사는 이치이다. 대한민국 국민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 아닌 지지자들- 그들만의 대통령이 되어버린 노대통령의 앞날이 결코 순탄할 수 없는 것은 노대통령 스스로 자초한 스스로의 업보이다. 지금부터라도 노대통령 스스로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자각하고, 남을 다스리려는 사람은 먼저 스스로를 다스려 한다는 진실을 깨닫기 바란다. 대통령부터 솔선하여 법을 준수하고, 개혁입법은 반드시 합헌적 질서의 테두리에서 만들며,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어 국민적 지지를 기반을 만들어 가야만 성공적인 개혁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나는 우리 시대에 가장 절실하게 고갈된 자원이란 <사회적 연대성>의 이념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처한 국가 위기상황이 오직 노대통령의 잘못된 개혁에서 기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한다. 지난 40여 년간 마치 종양처럼 자라온 사회경제적 구조적 모순, 사회구조적 부조리, 그리고 지난 17년간 당파적 이해에 얽혀 진행되어온 그릇된 방식의 민주화 개혁이 지금의 체제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개혁은 회피할 수 없는 우리의 생존전략이다. 우리사회의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없이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한나라당이나 박근혜대표의 상황인식이란 우리가 처한 국가적 문제의 본질-개발독재가 가져온 사회경제적 구조적 모순-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며 경제 살리기가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라 말하고 있을 뿐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접근 방식으로는 결코 경제가 살아나지 못한다. 불신과 반목, 대립과 갈등, 법과 원칙이 무너진 사회에서 경제적 접근으로는 경제조차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현 정권의 개혁 또한 문제적 현실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문제적 사회상황을 타파하는 것이 전부인 양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부조리한 우리 사회에 대하여 사회역사적 이해와 문제적 현실에 대한 균형잡힌 이해와 현실적 고려 없이 당위성과 당파성에 집착하여, 성급하고 허술하게 진행된 현 정권의 무모한 개혁으로 우리의 현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집권당의 개혁은 그야말로 허술하기 짝이 없다. 자신들의 요망사항만으로 성공적인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반면 실패하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을 무모하게 시도한다. 문제적 현실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량과 적절한 방법이 착실하게 준비되어 있지 못한 개혁이 성공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뭉치면 살고 싸우면 우리 모두 공멸한다. 증오심과 적개심으로는 결단코 개혁을 성공할 수 없다. 상호존중과 대화와 협력 나아가 건전한 국가질서-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 나아가 인간존중에 기초한 상호 협력적 사회- 의사소통이 자유롭고 활력 있는 국가와 사회질서를 만들어가는 것이 개혁의 최우선 과제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나는 현 정권과 이해찬총리에게 보다 폭넓고 창의적인 사회학적 상상력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밀즈(C.W. Mills)<사회학적 상상력>을 소유한 사람만 역사적 국면에서, 다양한 개인의 내면생활과 외적인 사회적 제도적 생의 의미를 조화롭게 이해할 수 있다 말한다. 개혁의 성패 여부는 개혁의지에 보편적 설득력을 확장하는 데에 달려 있다. 보수기득권 세력의 사고의 경직성이 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개혁의 성공여부는 전적으로 집권당의 책임이며 그 어떠한 변명으로 개혁의 실패에 대한 면책사유가 될 수 없음을 자각해야 한다. 성공적 개혁은 반대자들의 마음 속에서 개혁에 동참할 의사를 발굴해 내고, 나아가 국민적 지지기반을 넓혀 가는데 있다.

 

 

 

개인은 자기 자신의 삶의 위상을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와 역사 속에서 이해하게 될 때, 자신의 경험을 보다 보편적인 지식으로 만들 수 있고, 보다 성공적인 삶의 기획이 가능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기회를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포착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미래를 보다 성공적으로 만들어간다.

 

 

 

자신만이 옳고 객관적이라 주장하는 것은 정신적 미숙을 토로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자유주의적 삶의 가치는 그 무엇보다 타인과 세계에 대한 개방성에서 찾을 수 있다. 지적 정직성은 자신의 주장의 한계를 이해하고 포기할 조건을 아는데 있다. 자신의 주장이 절대적이지 않고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개방적인 정신은 항상 학습할 수 있다. 반성은 때로는 열등감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를 필요로 하지만 인간은 반성적 성찰을 통하여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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