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예찬을 규탄하며....

2005-03-07 17:09:21

 

 

한승조씨의 친일예찬은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다. 일제강점시대에 대해 러시아에 먹히지 않은 것이 불행 중 다행이고, 탈산업사회, 세계화 시대에서는 친일행위가 애국애족행위로 평가받을 세상이 온다는 정신나간 헛소리를 한다. 일제하에서 우리민족이 핍박받고 수탈 당하며 살아온 세월을 축복이라고 말하는 한씨 같은 반국가적 반민족적 망언을 멋대로 입에 담는 자에게,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고 되묻고 싶다.

 

분단의 아픔을 안고 아직도 온전한 독립을 하지 못하였지만,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을 딛고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수많은 애국지사와 순국 선열의 고귀한 피를 흘렸다. 인간이 되어서 나라와 겨레에 보탬이 되지는 못할지언정, 나라와 겨레를 위한 숭고한 뜻으로 목숨마저 초개와 같이 버린 가신 님들의 숭고한 뜻을, 비열하고 너절한 지식으로 멋대로 폄척(貶斥)한다. 우리의 역사를 정략적 당파적 이해에 얽혀 왜곡하고 국민적 자존심을 능멸하는 짓을 서슴없이 하는 자가 한승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어줍잖은 얄팍한 지식으로 국가와 민족을 욕보이는 파렴치한 망언을 다른 곳 아닌 일본의 잡지에 기고하고 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한씨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더러운 만행을 변명하고 합리화하기에 급급하다. 파렴치한 양심의 한승조와 같은 인간에게, 국가와 민족과 국민적 자존심을 능멸한 大罪가 있는데 죄의식조차 없다.

 

한 세기 동안이나 우리는 치욕의 역사를 살아야 했다.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국권을 상실하고 식민인으로 전락해야 했다. 日人들이 우리 땅에서 물러갔지만 우리는 우리 힘으로 조국을 되찾지 못했다. 조국은 2차대전 승전국의 전리품이 되어 두동강이 나고 말았다. 조국해방전쟁이라는 김일성의 성급하고 무모한 결정으로 인하여 동족상잔의 엄청난 비극을 감내해야 했다. 결과적으로는 동서대립의 전후구도에서 동서진영 간의 세력다툼의 대리전을 우리민족이 피를 흘리면서 치러내야 했던 것이다. 수백만의 동포가 희생되었고 지금도 천만 이산가족이 단장의 세월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치욕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식민지인의 잔재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자기창조적으로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 왔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것이 곧 일제의 식민지수탈에 협조하는 것이 되었던 시절을 살았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보다 세상을 거부하고 냉소적으로 비판만을 일삼는 사람이 보다 윤리적으로 평가 받던 불행한 시대를 살아 온 것이다. 식민지인의 삶에 있어 그들을 위한 삶을 강요 받았을 뿐 <나와 우리>를 위한 삶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수 십년 간 군사독재 치하의 삶을 살아오면서 개인의 자발성이나 창의성이 마땅히 존중되는 인간다운 생활을 거의 짓밟히면서 살아야 했었다. 오직 독재자의 결정에 순종하고 총화단결을 강요 받는 상황에서 자주적이고 건전함 삶을 지속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 개인의 사회적 책임이 단지 독재자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인 상황에서 개인의 자발성이나 사회적 책임을 기대할 수 없다. 먹고 사는 것이 그리고 살아남는 것이 0순위인 세월을 살면서, 약자에게는 멋대로 횡포를 자행하고, 강자에게는 빌붙어 굴종하는 삶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부끄러운 한 세기를 살아온 것이다. 이제, 이러한 역사는 마감되어야 한다.

 

나는 우리민족에게 분단의 을 심어준 제국주의자들을 혐오하는 민족주의자이며, 사회주의이든 파시즘이든 전체주의를 혐오하는 자유주의자이다. 나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나라사랑과 겨레사랑의 소중함을 힘주어 말하고 싶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른는 사람은 남을 사랑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내 나라 내 민족을 사랑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 다음에 인류애와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것이 올바른 국가관, 민족관, 세계관이라 나는 믿는다.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충실할 때, 보편적 인간성이 실현된다. 이것이 내가 민족적 세계주의와 세계적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이유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보수인사들 사이에, 민족주의적 사고가 세계화에 반하는 배타적인 것이고 심지어는 민족주의는 친북이고 빨갱이라는 등식이 많은 사람에 퍼져있는 현실을 우려한다. 이러한 생각이 만연하게 된 배경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가 주로 의존한 史觀이 배타적인 국수적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에 의한 사적유물론이었음과 무관치 않다. 하지만 한씨와 같은 쓰레기 같은 자들이, 부끄러운 과거사를 반성하기는 커녕 자신들의 기득권의 보호에 연연하여 혹세무민하는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즈음의 우리의 세태가 좌파와 우파의 대립과 갈등이 증폭되는 가운데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한씨의 발언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는 것은 국민화합과 국가 발전을 위해 심히 우려스럽다.

 

한씨와 마찬가지로 보수세력 중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젊은이들 세대를 배타적 민족주의로 반일 반미 감정을 우려한다. 나아가 젊은이들을 친북세력으로 매도하려 한다. 나는 이러한 경직된 보수세력의 왜곡되고 편협한 사고방식을 우려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부 몰지각한 기성세대의 그릇된 사고방식이 성장기의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청소년들에게 정말로 심각하게 해악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친일하고, 친미하며, 독재자들에게 힘있는 자들에게 줄 서고 빌붙어 눈치보며 살아온 기성세대들이다. 반면 젊은 세대들은 강압적 권위를 싫어하고 자유롭고 자기 주장이 강하다. 미국을 싫어하고 북한을 좋아하는 대학생들이 좌파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자유롭고 남의 눈치보는 것 싫어하고 자기 주장이 강하다. 마르크시즘이나 좌파이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빨갱이는 나쁘다는 식의 무지몽매함이 한씨와 같은 이러한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상주의적으로 여겨지기 쉬운 좌파이념이란 정의와 소외계층에 대한 동정, 위대한 행위에 대한 충동을 고무시킬 줄 모르지만 상당히 금욕주의적이고 소위 말하는 보통 사람의 정서와는 잘 맞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요즈음 포스트386세대가 좌파의 불온(?) 사상에 물들 염려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이 좋은가 미국이 좋은가 질문하면 북한이 좋다고 대답할 젊은이들 중 거의 대다수가, 북한에 가서 살래 미국에 가서 살래라 질문한다면 미국에 가서 산다고 대답할 것이다. 젊은이가 반항적이고 도전적인 것은 얼마든지 바람직 할 수 있다. 기존의 체제에 도전적이고 기성 세대의 사고방식에 도전적인 것이 무슨 흠이 있겠는가? 독재정권 하에서 4지선다형 정답 고르기를 잘하고 순응적인 인간만이 출세하는 사회로부터 건전하고 창의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제멋대로 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때론 버릇없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자기 주장이 강하고 반항적이고 도전적인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이 우리사회의 역동성을 증거하는 것이라 믿는다.

 

인간은 자신이 스스로 자신이기를 바라는 것으로부터 주체성을 확립해 나아간다. 우리가 우리이기를 바라고 대한민국이 자주국가임을 바라는 것, 분단의 아픔을 겪고 살아온 우리가 하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 어떠한 잘못이 있겠는가?

 

일제식민지와 독재정치의 강압적 시절을 살아오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자긍심을 느끼는 대한국민의 삶을 살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이러한 부끄럽고 어두운 과거의 역사는 청산되지 못했다. 부끄러운 식민지의 역사는 청산되지 않았고, 어쩌면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우리의 역사는 친일파가 득세한 역사였고, 해방 이 후, 친일파들은 친미정권으로 재빠른 변신을 꾀하였다. 올해로 광복 60년을 맞이하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외세의존적이며, 자주적이고 독립적이지 못하며, 온 국민이 기꺼이 몸 바쳐 헌신할 수 있는 국가정통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다.

 

좌파정권이라 말해지는 현 정권의 과거사 청산에는 구체적인 성과나 실천에서는 여러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분명히 우리가 역사적 도약을 이룩하기 위하여 잘못된 과거의 역사를 바로 잡아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이행되어야 할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1. 모든 사회의 질서는 일부 성원들에 의한 타 성원의 강압에 기초한다.

 

2. 모든 사회는 언제나 갈등을 내포하고 있고, 갈등 또한 편재적이다.

 

3. 통합에 실패한 사회의 모든 요소는 사회변동을 유발한다.

 

4.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의 기득권이란 정당한 노력의 대가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친일과 친미행위의 그리고 권력자에 기생하는 특혜적 지원의 소산으로 이룩된 것이고, 이러한 기득권의 왜곡된 편중으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확립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불평등이 국가권력의정당성 나아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의 확립을 저해왔기에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잡는 것은 국가발전의 전제가 된다. 건전한 국가의 정통성의 확립은 국가발전의 초석이 되어야 한다.

 

5. 지난 17년 간 민주화를 통하여, 이러한 왜곡과 편재는 부분적으로 해소되었다고 하지만,

개혁의 주체 노력 또한 당파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현 정권의 과거사 청산이란 사회부조리를 있게 한 문제적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억압연관을 해체하려는 노력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란 건강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형성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과제임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현 정권이 새로운 국가질서나 미래에 대한 비젼의 제시 없이 기득권 세력의 기득권을 빼앗으려 할 뿐, 파괴적 노력이외에 건설적 노력을 찾아볼 수 없다는 데에 기인한다. 새로운 국가의 비젼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우리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고 국민화해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통합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이유이다.

 

현실은 현실로 인정하고 과거는 과거대로 인정하자는 것이, 이념이나 원칙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저열한 우리 사회 보수집단 보수인사들의 주장이다. 한승조의 말처럼 잘난 사람은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다. 한씨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죽이기 위하여 현 정권이 과거사 청산을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잘난 사람은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다. 오로지 오늘 해야 할 일, 풀어야 할 숙제 그리고 미래의 일을 생각하며 준비하는데 全力投球(전력투구) 한다. 한승조의 이러한 발언은 반성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학습할 줄 모르는 저열하고 몰지각한 기득권층의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현재의 박근혜씨의 정치적 위상은 과거에 집착하는 박정희 향수에서 비롯된 패배주의적이며 퇴행적 포퓰리즘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표에게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비젼이 있기나 한 것인가? 박정희 향수라는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 아닌, 10분 분량의 말할 내용의 정치적 신념조차 없는 박근혜 대표의 지지세력이다.

 

현재의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정당한 삶의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국가질서의 건설을 위하여 과거의 우리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며, 우리의 미래는 현재의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상황의 논리로 부정한 삶의 방식을 옹호하는 것을 용인한다면 정당한 삶의 질서는 바로 세울 수 없다. 밥을 굶었다 하여, 빵을 훔치는 것이 정당화되어서는 아니 된다. 상황의 논리를 들어 친일행위를 미화한다면, 국권을 상실한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변명한다면 누가 목숨을 걸고 우리 자신의 삶과 조국의 미래를 지키려 한단 말인가?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 볼 때, 정당한 삶의 질서와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위해서 친일행위는 규명되어야 하고 지탄받아 마땅하다. 민족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고, 새로운 미래의 비젼을 보다 구체적인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잘못된 과거의 문제에 대한 반성이 없이는 우리의 역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진전되지 아니한다. 과거사청산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민족분단의 모순을 극복하고 통일 조국을 모색하기 위한 방법으로, 5천년 문화민족의 자랑스러운 민족 정통성과 국가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는 것으로, 나아가 새로운 국가와 민족의 도약을 계기로 삼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과거사의 청산은 보복이나 처벌이 아닌, 새로운 국가 비젼을 열어가는 쪽으로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 설정한 우리의 국가적 과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그 잘잘못을 규명하는 차원에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기초로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과거사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가?

민주주의적 국가질서를 확립하는 데에 있어, 과거 개발독재로 인하여 상실한 정당한 삶의 질서의 회복을 위하여, 경제성장위주의 개발독재가 가져온 부정적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 또한 마땅하다. 정당한 삶의 질서와 정의에 입각한 법질서로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적 화합의 기초를 다져 새로운 국가질서를 확립하여야 한다. 우리에게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대립과 반목을 해소하고 그야말로 화해와 협력으로 국민적 통합을 이룩해야 할 때이다.

 

21세기를 준비하는 올바른 역사의식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역사는 현재를 위해서 쓰는 것이다. 현재의 과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과거 역사의 해석은 달라진다. 죽어 있는 과거에 생명을 불어 넣고 미래로 나아갈 길을 찾아주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이다. 그리고 역사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이 史觀이다. 올바른 사관은 우리를 밝은 미래로 인도하고, 잘못된 사관은 자칫 역사에 올가미를 씌우고 우리를 어두운 미래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역사란 현실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미래란 건전하고 정의에 기초한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고, 이러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에 있어 삐뚜러진 과거사를 바로잡지 아니하고 새로운 역사적 도약을 기약하기 어렵다.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반성할 때 성장한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삶을 모색하는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뒤돌아 보며 반성할 줄 안다. 우리는 외세 의존적인 과거사와 독재정치로 얼룩진 잘못된 과거사를 반성하는 토대 위에 자주적이고 독립된 자랑스러운 조국을 건설하려는 새로운 미래로의 전망을 찾아야 한다 믿는다. 참되고 바르게 사는 삶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고 상호 존중하에 화해하며 협력하는 삶의 가치를 우리 모두가 공유하게 될 때, 편견이나 배타적 독선이 아닌 합리성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칙이 될 때, 우리는 새로운 역사적 도약을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꾸어 나아갈 새로운 사회는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민족적 자긍심을 드높이고, 평화와 도덕을 존중하는 歷史觀에 기초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믿는다. 우리의 자존심이 소중하기에 우리의 경쟁력을 키우고, 인간성의 회복과 도덕성을 기초로 인류애를 구현해야 한다. 가장 우리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신념에 기초하는, 민족적 세계주의요 세계적 민족주의를 이 땅에 구현하여야 한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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