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386 세대를 위하여
2004-10-14 17:00:59
대통령의 국가 보안법 폐지 발언이 나온 직 후, 한 일간지의 여론 조사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30대와 20대의 정당지지율이 열린우리당 30.0%, 32.3% 한나라당이 28.3%, 17.8% 민주노동당이 23.5%, 29.5%를 보여주고 있었다. 반면 50대 이상의 경우 열린우리당이 18.6% 한나라당이 46.0% 민주노동당이 5.6%로의 지지률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여론 조사는 우리사회의 세대간 갈등의 극명함으로 보여준다. 나아가 우리 사회가 젊은 세대일수록 대한민국 체제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사회주의를 선호하고 있지 않느냐는 심각한 우려를 느끼게 한다. 국가보안법 철폐와 미군철수를 대남적화통일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놓은 북한의 통일전략을 생각하면 이는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사회상황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최근 중앙일보에서 행한 386세대와 포스트 386 세대에 대한 기획기사를 읽고, 우리 사회가 사회주의화 하고 있다는 생각에 대한 우려를 씻을 수 있었다. 서울대 송호근 교수는 386세대와 포스트 386 세대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386세대의 화두는 혁명이었다. 포스트386세대의 화두는 탐닉이다. 엑스터시 속으로 자신을 담그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혁명이다. 386세대의 가슴속에는 ''즐기는 자아''가 없었다. 포스트386세대는 386세대가 결여한 ''나의 정체성''을 찾아 나선 것이다. 포스트386세대는 잊었던 존재를 찾으려는 갈망으로 문화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풍요로운 시대는 반항아를 탄생시킨다. 문화적 이탈자들 말이다. 이념적 혁명가들이 하드웨어(정치 권력과 제도)를 공격한다면 문화적 이탈자들은 소프트웨어(인습. 규범. 관행)를 무너뜨린다.
탐닉은 자신을 혁신한다. 이들은 구태의연한 가족 규범을 조롱하고, 이혼을 주저하는 386세대의 우유부단함을 공격하고, 여성을 가정에 가두는 전통적 인습을 부쉈다. 기성세대의 정조 관념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자유로운 섹스와 동거를 감행한다. 포스트386세대는 소비를 즐긴다. 문자세대와 영상세대의 격차는 인식의 공간을 달리 채색했고, 급기야 교신할 수 없을 만큼 세계관의 편차를 만들었다. 해방 이후 포스트386세대만큼 문화자본이 부유한 세대는 없다. 386세대의 인식공간에는 문자와 논리가 헤엄쳐 다닌다. 포스트386세대의 그것에는 영상과 이미지가 가득 차 있다. 포스트386세대가 이미지를 인화할 때 3S, 즉 감정 몰입(sympathy), 상징(symbol), 감성 (sentiment) 이 활용된다. 세대원 간의 상호교신에는 정서적 조응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반면 386세대에게는 3E, 경험(experience), 증거(evidence), 참여(engagement)가 중시된다.
경험의 공유가 있는지, 서로 통할 징표가 있는지, 그것에 참여했는지다. 혁명에는 공유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 투옥 경력이 등용의 증거물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주체 형성과 호명의 방식이 다르다. 386세대에게는 논리에 대한 확신, 신념이 주체 형성의 핵심 요소였다. 이념의 호명은 자아발견이었으니까. 포스트386세대에게 호명은 감성교환과 감정몰입이다. 시위 참여에도 정서교환이 중요하다.
주체 호명의 방식은 민족주의의 개념을 바꿔 놓았다. 386세대에게 ''한국인의 조건''은 영토, 한국에서 삶의 경험, 한국 태생, 핏줄 등 생물학적 요소이지만 포스트386세대에게는 동감, 한국인임을 느끼는 것 등 감성적 요소가 대부분이다. 반미와 친북 성향이 높은 것도 이런 특성 때문이다. 이들은 미국이 전통적 우방이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북한은 아무리 흉악한 짓을 저질러도 같은 민족임을 ''느낄 수 있다''. 포스트386세대는 반미의 기원인 386세대보다 훨씬 반미적인데, 미국 호감도를 뭉텅 떼어 내 북한과 일본에 각각 할애했다. 주사파적 감성이 이들에게서 증폭된다.
두 세대는 ''어제의 동지''가 아니다. 포스트386세대는 일상 생활의 영역에서 문화 투쟁을 일으킨다. 그 상대는 힘없이 주저앉은 기성세대가 아니라 아직 힘을 쓰는, 그러나 기성세대화해 가는 386세대다. 386세대는 혁명을 완수하자마자 혁명의 대상이 됐다. 문화투쟁에서 386세대는 패배할 것이다. 문화자본이 빈약하고, 상상력의 공간을 점령하는 영상문화의 대군(大軍)을 감당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자아혁신이 문화투쟁의 목표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미로운 탐닉. 흥분. 감동을 분출해내는 영상시대의 총아들 앞에서 한국사회를 지탱해왔던 구태의연한 규범. 인습. 관행. 권위는 무릎을 꿇을 것이다. 이제 3S로 무장한 그들의 시대가 오고 있다. >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에 대한 보다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이해를 도우려는 의도로 내 개인적인 견해를 피력하고자 한다.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가 그들이 제대로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현 집권세력이 과거 기득권층을 때려부수는 데에 대한 지지라고 하는 것이 보다 올바른 평가인 듯 싶다. 현 집권세력을 주도하고 있는 386세대는 제대로 일을 하고, 생산적인 건설을 해 보지 않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민주화 운동은 민주주의적 국가질서나 사회질서를 건설하려는 노력이 아닌 군사독재의 반민주주의적 사회질서에 대하여 항거하고, 그것을 파괴하는 것이 지상의 목표라 실천해 왔다 . 민중해방을 위한 반파쇼 민주화 운동과 민족 해방을 위한 반미자주화 운동의 기치아래 기득권층의 불공정하고 부당한 기득권을 파괴하고 빼앗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때론 주체사상을 지지해오며 민주화 운동을 해 온 사람이 상당수인 세대가 386 세대이다. 현 정권의 실세인 386세대가 지금도 주체사상을 신봉할까? 현 정권을 빨갱이 정권으로 여기고 싶은 보수층의 견해는 현실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현 정권의 주요 관심은 기득권층으로부터 기득권을 가능한한 많이 빼앗고 자신들이 기득권을 보다 많이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 보다 적당한 표현이 아닐까?
5.18 광주 항쟁 이 후, 그리고 서울과 부산의 미문화원 점거방화 사건 이 후, 우리 사회에 주체사상이 급격히 확산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이해찬 국무총리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중형을 선고 받았던 시기이다. 광주항쟁에서 87년 6.10 민주화 운동에 이르며 성장해 온 세대가 386세대이다. 이들이 반미적이고, 반 기득권층의 정서를 가졌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을 통째로 들어 북한에 바치려 한다는 식의 비유는 적절치 못하다. 386세대의 의식에는 사회주의에 대한 동경이 흐른다. 하지만 386세대는 집권하자 마자,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권력이라는 것을 재빨리 간파한다. 현 정권이 생각하는 과거사 청산이나 사립학교법 개정, 언론개혁 등은 집권세력의 권력 강화의 선 상에 놓여있다. 그들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이념이 아닌 권력이다. 문제는 386세대가 권력을 잡자마자 타락한 권력으로 전락했다는 데에 있다. 그들에게 이제 이념은 버려아 할 것이고, 제대로 일해본 적이 없으니 능력이 턱없이 모자란다. 앞서 송교수가 분석한 것처럼 386세대는 그들의 혁명을 완수하자마자 혁명의 대상이 되어버린 세대이다. 노무현 정권과 386세대의 치명적 취약점은 우리사회가 공유하여야 할 공동의 소신과 가치를 담고 있는 구체적 국가비젼을 제시하지 못하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신들의 권력의 확장을 위한 기득권층 때려부수기가 전부인 것처럼 보여진다. 386세대의 필연적 몰락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그들은 태생적 한계 - 파괴할 줄 만 알고 건설할 줄 모르는 문화적 不妊성에서 기초한다.
우리가 만약 노무현 정권에 절망한다면, 혹은 비판적으로 지지한다면 우리는 포스트 노무현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우리가 새롭게 열어갈 포스트 노무현 시대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박정희만세를 외치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 만연된 박정희 신드름은 퇴행적이며 국가발전에 반동적인 병리현상이다. 인간 존중에 기초한 민주주의 국가와 사회를 건설해야할 우리 시대에 있어, 박정희 신드롬은 결코 확산되어서는 아니될 전염병이라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할 것이다. 노무현 다음의 우리의 미래는 당연히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제도화하고 구체화하여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자유민주의 이념을 실천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입각한 민주적 헌정질서를 구축하고 잘못된 제도를 정비하여 국가의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 나아가, 건전한 경쟁질서를 갖는 그리하여 활력적인 경제 흐름을 갖는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과거 특혜적 지원 속에서 성장한 우리 기업이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필연적 귀결이다. 경제 살리기를 말하며 기업활동을 원활하게 하고 사기를 높이기 위해 정부가 기업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말한다.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은 건전한 경제질서를 갖는 시장질서에 기초해서 발전한 것이 아니다. 국가의 지원하에 특혜적 지원을 받은 기업집단에 의해서 발전하였고, 그러하였기에 자생적인 경쟁력을 향상시키지 못하여, 세계화의 무한경쟁시대에서 못하고 허우적 되며 갈팡질팡하는 것이 우리 경제가 1만불 벾을 깨지 못하고 답보하는 보다 근본적 이유가 아닐까. 물론 개혁이란 이름 하에 진행되는 정치적 상황의 가변성이 사회의 안정을 깨뜨리고, 안정성이 결여된 사회에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경제가 어려운 것 또한 노무현 정부 이후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 중요한 이유이다.
앞서 포스트 386세대를 분석한 내용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이들이 자유주의체제를 거부하고 사회주의의 체제를 선호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또 이들이 갖는 친북 반미의 정서라는 것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20대, 포스트 386 세대는 정치적 문제에 무관심하다. 고도화된 후기자본주의사회에서 사회의 성원들의 공통된 특징은 정치적 무관심과 소비지향, 여가지향, 승진지향, 사생활지향적이다. 포스트386세대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강령이나 이념이 아닌, 기존 질서 해체적 인 성향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포스트 386세대의 특징은 철저하게 자유주의적이며 개인주의적이다. 이들을 친북세력이니 빨갱이로 매도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체제를 위협하는 것이라 여긴다. 정치지도자의 역할은 포스트 386세대가 가진 성향을 어떻게 하면 국가발전의 에너지로 이끌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자유민주의 질서를 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유주의 삶의 질서와 자율적이며 개인의 자발성이 존중되는 자유주의적 삶의 질서를 확대해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성원들이 제대로 된 자유주의이념을 학습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자유주의 이념이란, 인간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부자와 가난한 자를 막론하고 그 누구나 개성과 자존심이 존중되어야 하며, 인간은 수단이 아닌 인간 자체가 목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하여야 한다 믿는다. 소수의 의견이 존중되고 독단과 편견이 배척되며, 불공정과 특권에 대한 집착이 없는 공정한 룰에 의하여 운영되는 사회로의 진화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세계이어야 할 것이다. 사회의 진화는 그 무엇보다 사회 성원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의 진화에 의존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의 우리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진화가 사회 발전의 요체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다. 정치는 국민들이 알기 쉽게 예측가능하고 투명하게 국가 권력이 행사되도록 하여야 한다. 경제는 자유경쟁의 건전한 시장질서가 확립되어야 한다. 법적 안정성과 나아가 건전한 상거래의 관습이 정착되고, 경제 주체들 간에 신뢰가 쌓여져 가는 건전한 경쟁질서를 확립함으로써 경제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시장의 활력을 극대화 하여야 할 것이다.
흔히들, 구 소련의 붕괴, 동구권의 붕괴를 두고,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 승리라 말한다. 나는 이러한 표현이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한다. 공산권의 몰락은 전체주의와 계획경제에 대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승리라 믿는다.
자유주의와 시장 경제의 강점은 어디에 있을까? 자유주의 정치이념은 국가권력의 타락을 방지하고 국가권력의 행사를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에 따르도록 하여 국가 권력의 정당성을 지속할 수 있었다.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는, 자본주의 경제가 1930년 세계대공황 이후 유산자가 무산자를 착취하는 자본주의의 모순 점을 극복하고 시장에서 경제권력이 시장을 조작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건전한 경쟁질서를 확립하고, 생산수단의 흐름을 보다 유연하고 원활하게한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함으로써 오늘날의 번영이 가능했었던 것이다. 자유주의 이념의 우수성은 정치나 경제 사회 문화에서 과정(Process)을 최적화하여 국가나 사회의 활력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창조하며, 세상을 놀라게 한 힘의 최선봉에 포스트386세대가 있다. 나는 우리나라에 자유주의적 국가질서를 확립해 나아감으로써, 이러한 역동적이고 활력적인 국민적 에너지를, 새로운 역사적 도약을 위한 국가발전의 에너지로 결집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개인의 정체성의 확립은 자율적이고 창의적의 문화적 역량의 모태가 된다. 지식정보화 시대이다. 미래의 국가는 무엇보다 그 국가가 갖는 문화적 역량이 그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한다 믿는다. 문화는 사회를 보호한다. 문화는 각종 사회현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며 평가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오늘의 포스트 386세의 모습은, 그들에게 수구꼴통이란 비난을 듣는 기성세대가 길러낸 산물과 다름 아니다. 경제성장이란 이름으로 표절과 위선과 힘있는 자에게, 부패한 권력과 부패한 규범에 굴종하며 살아왔던 기성세대가, 남의 눈치보지 말고 기죽지 말고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라고 가르친 까닭에, 오늘의 젊은 세대가 그렇다. 개성과 자존심이 강하고 모든 일은 자발성에 기초하여 행하려는 젊은 세대로부터 나는 보다 발전되고 새로운 역사적 도약을 일구어낼 미래를 읽을 수 있다. 갈 사람은 가야 한다. 기성세대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다. 문명사적 변혁의 시기에 적응할 수 있는 사고의 유연성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나는 직감할 수 있다. 지금의 보수기득권층은 역사에서 물러나고, 포스트386세대가 우리 나라의 주역으로 성장할 때, 우리에게 반드시 밝고 희망찬 내일이 있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가치관의 혼란과 취업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젊은 이들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 삶이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내리막이 다 하면 평탄해진다는 것을, 진정 역경과 시련을 견디어낸 자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내 아버지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그들에게 아낌없는 애정과 사랑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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