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와 우파의 공존을 위하여

2005-03-10 17:40:24

 

과거사 청산 문제를 놓고 최근 우리 사회의 갈등이 점차로 증폭되는 듯한 분위기가 우려스럽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갈등이 좌우파 간의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확산되는 현실이 우리 모두를 불신과 반목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란 생각이다. 여야간 혹은 좌우간의 화해와 협력의 접점은 찾을 수 없는 것일까? 좌파적 우파적 사회 인식의 출발점을 보다 깊이 있게 성찰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화해와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정치사상의 기본적인 과제는 인간사회를 어떻게 결합시킬까 하는 문제로 요약된다. 정치사상은 사회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전망을 모색하며 발전되어 왔다.

 

서구의 정치사상사는 두 가지 대립하는 사회관이 때론 대립하고 화해하며 발전되어 왔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루쏘와 홉스, 칸트와 헤겔에 이르기까지 상호 대립되는 방법론적 접근으로 사회문제를 이해하려 하였다. 그리고 사상사의 발전에 따라 학파 간의 대립적인 요인은 보다 첨예하고 강렬해졌었다. 2천년 이상 진행되어온 이러한 논쟁은 사회질서에 관한 논쟁으로 인간의 지식, 도덕관, 정치적 태도의 확립에 관한 논쟁이었다.

 

뛰어난 마르크스 비판자이고, 사회학자이며, 정치가였던 독일의 다렌돌프(Ralf Dahrendorf)는 서구 사회사상사를 이끌어 온 커다란 두 가지 줄기를 다음과 같은 관점으로 이해한다.

 

첫째, 인간사회의 성원들은 모두 상이한 의견과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만, 이것을 극복하고, 성원들간의 價値合意(value consensus)를 형성하기 때문에 사회질서가 유지된다는 견해라 설명하고 이를 이상주의적 사회통합이론(integration theory of society)이라 말한다. 이러한 관점은 사회질서를 가치합의에 기초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합의의 측면에서 인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형성되는 시장질서는 가치합의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합의의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탁월한 사회학자인 파슨스(Talcott Parsons) 같은 구조기능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사회통합이론은 다음의 몇 가지 전제조건을 가정하고 정립된 이론이다.

모든 사회는 지속적으로 안정된 구조이다.

모든 사회는 잘 통합된 구조이다.

사회의 모든 요소들은 사회체제 유지에 대하여 기능적이다.

모든 사회구조는 사회성원들의 가치합의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사회질서의 기본요소를, 안정성, 통합, 기능적 협동, 가치합의에 둔다. 이러한 사회통합론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의 타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상대적>이란 말을 덧붙여 쓴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의 사회적 행위의 동기를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한 방향으로 규범화하고 구조화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우파적 입장은 사회과정을 점진적으로 통합하고 발전하는 획일적 과정으로 단순화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행위 중에 갈등을 유발하고,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소를 사회체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배제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우파적 견해의 문제점은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나 문제적 현실에 대하,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호도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견해는 사회질서를 이끌어 내는 노력의 사회갈등의 측면은 배제하고 안정의 측면에서만 찾으려 하면서 사회과정(social process)을 획일적이고 단순한 것으로 규정하려 한다.

 

이것이 우파적 입장의 사회인식이다.

 

둘째, 사회에서의 인간의 결합은 사회 사회성원들 간의 지배와 복종에 의하여, 힘과 강압에 의하여 인간사회가 결합되며 질서가 유지된다고 보는 견해라 설명하고, 이를 합리주의적 사회강압이론(coercion theory of society)이란 말한다.

 

사회강압이론은 사회질서란 강압에 의한 것이 본질적이라 가정하고, 갈등과 대립을 통한 사회변동과 지배와 복종이 사회질서를 형성하는 보편적 현상으로 이해한다. 우파적 사회통합이론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구조는 유형화되고, 사회는 순환적인 과정을 거치는 균형을 통하여 <기능적으로 통합된 체제>를 형성하는 것으로 보는 반면, 사회강압이론은 사회질서는 강압과 힘에 의하여 형성된 조직체로 이해하고, 강압과 강압에 반발하는 갈등이 발생하는 힘은 사회구조 자체 내에서 피할 수 없이 발생하는 것이기에, 강압의 힘의 작용과 반작용에 의하여 사회구조는 끊임없는 변동과정을 겪는 것으로 파악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합리주의적 사회관을 제시하고, 사회변동과 갈등, 그리고 지배와 복종이 사회의 보편적 현상이라 가정하였다.

 

사회강압이론 기본적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사회는 변동과정에 있고, 변동은 편재(偏在)적이다.

모든 사회는 언제나 갈등을 내포하고 있고, 갈등은 편재적이다.

모든 사회요소는 비통합 부분이 있고, 이러한 비통합 인자는 사회변동을 우발한다.

모든 사회질서는 일부 성원들의 타 성원들에 의한 강압에 기초한다.

 

이것이 좌파적 입장의 사회인식이다.

 

좌파의 입장에서 특히 공산주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법률과 모든 도덕률 등은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억압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라는 허위의식이고 사회의 지배층, 부르죠아의 지위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필요한 수단으로서의 허구적 사회사상이라 주장한다. 마르크스는 인간사상의 불완전성을 폭로하고 정치적, 도덕적, 법적 이데올로기는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확보에 필요한 도구일 뿐임을 지적한다.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의 원천이 인간의 본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불합리성에서 기인한다 보았다. 이러한 견해는 <의식은 존재에 의해 결정된다>는 유물론에 입각한 것이다. 의식이 존재에 의해 결정된다는 명제가 사실이라면 허위의식의 근원은 사회구조에 있고, 따라서 사회구조가 합리적으로 개선되면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르기는 극복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강압에 의하여 왜곡된 질서가 공산주의 혁명에 의한 통하여 자본주의의 종말이라는 역사적 필연성에 의하여 인간해방의 사회질서를 이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우파의 견해가 옳고 좌파의 견해가 틀린 것인가? 아니면 좌파의 견해가 옳고 우파의 견해가 틀린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좌파적 견해와 우파적 견해가 상대방을 존중하고 건전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에 있어 상호보완적 역할을 수행할 때, 우리는 보다 성숙한 정치문화를 이 땅에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건전한 사회질서는 안정을 기초로 한 새로운 사회발전의 가능성의 모색만으로 성취되는 것도 아니고, 문제점을 이해하여 그 문제의 요인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성취될 수 없다. 건전한 사회는 기존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안정된 현실을 기초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건전한 사회의 건설을 위한 사회개혁은 당연히 안정과 변동, 가치합의와 강압, 기존 체제에 대한 순기능과 역기능이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면서 진행되는 것이 마땅하다.

 

독재정권 하에서 총화단결에 의한 절대적 사회안정을 강요 받은 상황에서, 사회갈등은 반사회적이라고 것이라고 여기는 경직된 사고방식으로 살아왔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우파적 인사들이 갖는 사고의 경직성이다. 획일화되어 안정된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내가 선택한 삶만이 옳다는 것을 고집하지 않고 나와 다른 이들의 삶과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건전한 자유주의적 삶의 방식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異見이 공존하고, 대립과 갈등이 있는 것이 당연히 정상적이다. 진정 슬기로운 사람이라면 이러한 이견 속에서 때로는 갈등하고 대립하는 가운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보다 나은 삶을 개척하는 계기로 삼는다.

 

독재 정권 하에서 민주화 운동을 해 온 현 집권 세력은, 기득권층을 자신들의 기득권 옹호만을 위하여 무조건 바꾸지 말자는 반동세력으로 몰아부친다. 이는 현 집권 세력이 국민들이 기꺼이 동참하는 국가 비젼을 제시하지 못하고, 부정적이며 파괴적인 아젠다에 기초하여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것이 곧 현 정권의 무능을 증거하는 표식이기도 한다. 온 국민이 노사모 되어야 개혁이 성공한다는 식의 발상이나, 아무런 대책도 없이 현 정권을 비난하기에 골몰하고 노대통령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식의 발상이란 국민화해를 저해하는 반사회적이고 독선적인 편견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개선하여야 할 가장 시급한 병폐는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절대화하고 상대방을 배척하는 독단적 사고와 자신의 입장을 상대방에 강요하는 파시스트적 사고의 행동 방식이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며 반목하고 대립하는 이분법적 흑백논리가 최근 심각한 양상으로 번져가고 있는 우려스러운 우리 사회의 분위기이다. 건전한 반대파가 있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이다. 내 편이 아닌 상대편도 존중하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노력을 통하여 우리는 참된 의미의 국민화합을 달성할 수 있다.

 

비관적 세계관은 폭력을 정당화하기 쉽다. 반면 낙관주의적 삶의 태도는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현실의 문제점들을 호도하고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 현 사회를 보는 관점이 우파의 입장은 낙관적으로 보려 한다. 반대로 좌파는 기존의 우리 사회를 비관적이고 부정적 관점에서 왜곡되고 비뚜러진 역사의 산물로 여기며 기득권층 다 때려부수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과거사 청산 등의 현 정권의 개혁이 기존 질서에 파괴적이다. 그리고 좌파정권이라 여기는 현 정권 하의 야당이나 기득권 세력들은 지금의 현실정치에 비관하며 새로운 출구를 모색하지 못하고, 현 정권에 대한 매도만을 일삼는 것이 전부인 채로 지리멸렬 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집권 3년 차를 맞는 노무현 정권은 이제, 건설하지 못하고 부수고 빼앗는 것이 전부인 개혁이라면 그것은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것이며, 자신들의 집권기반을 무너뜨리는 자해행위라는 것을 어서 빨리 깨닫기 바란다. 마찬가지로 현 정권을 비난하기 위한 비난 이외에 새로운 미래의 비젼을 발굴하지 못하는 야당에게 말하고 싶다.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반성하고 자신들의 현재의 위상을 바르게 정립해야만이 국민들이 공감하는 미래의 비젼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지금 여야는 서로 불신과 반목으로 상대방의 존재를 부인하고 자신들만의 입장을 고집한다.

이것은 단지 정치권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잘못된 정치로 인하여 국론이 분열되고 국민들간의 불신과 반목이 증폭되고 있다. 폭력은 자신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데에 실패하였을 대에 발생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대화는 실종되고 불신과 반목 대립과 갈등으로 점차로 폭력적으로 되어가고 있음을 우려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분열의 책임에 대하여 정치권은 여야할 것 없이 그 책임을 통감하여야 할 것이다.

 

정치에 있어 좌파적 견해와 우파적 견해는 상호보완적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파적 견해는 우리사회의 안정과 가능성을 모색한다. 좌파적 개혁은 우리 사회의 모순을 제거하고 국가권력의 정당성의 확립에 앞장서야 한다고 믿는다. 허물을 고치기를 꺼려 말라 하였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데 게으른 사람에게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지닌 문제해결능력을 초과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치기 어린 개혁이 우리 사회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을 외면하여서는 결코 아니될 것이다. 나아가 미래에 대한 구체적 청사진 없는 개혁이 국민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없고, 국민적 합의와 참여를 이끌어 내지 못하는 개혁이란 국력의 낭비만을 초래하는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다

 

좌파와 우파가 왜 싸우면 안되는가?

한 예를 들어보자 오른손잡이 권투 선수가 있다. 왼손은 상대방을 가격하기 위해 거리를 맞추고 어느 정도의 세기로 어느 부분을 칠 것인가를 탐색하는 리딩(reading) 펀치이다.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자신이 잘났다고 싸운다. 왼손은 왼손이 목표물을 가늠하지 않으면 오른 손이 제대로 상대방을 가격할 수 없으니 자신의 공을 자랑한다. 오른 손은 무슨 소리냐고 왼손은 제대로 때리지도 못하는 주제라며 상대방을 때려눕히는 것은 오직 오른 손이라 자랑한다. 하지만 왼손이 없다면 오른 손을 제구실을 못한다. 마찬가지로 오른 손이 없는 왼손이란 쓸모 없는 것이 된다. 왼 손과 오른 손이 한 마음으로 싸워야 권투시합에서 승리할 수 있다. 나는 사회발전에 있어 좌파와 우파의 관계가 권투선수의 왼손과 오른 손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넓은 의미로 좌파란 원칙적이고 우파는 현실적이다. 원칙 없는 현실은 지속되지 못하고, 현실을 도외시 한 원칙이란 탁상공론이 될 뿐이다. 지속적으로 성공적인 삶이란 원칙과 현실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스스로의 삶이 다른 이들로부터 존중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남을 존중하는 것부터 배우는 것이 순서이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 인간은 누구나 존중 받을 권리가 있듯이 다른 사람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보다 성숙한 문화- 화해와 협력을 통하여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밝은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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