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윤리도 모르는 인사수석

2005-03-29 17:37:43

 

 

김완기 청와대 인사수석은 28일 강동석 건교부 장관의 사표 수리 배경을 설명하며 최근 고위층 인사들의 잇따른 낙마에 대해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성, 청렴성의 기준에 대해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하며, 청렴. 투명사회로 가는 기류가 급물살을 타고 있어 많은 고위 공직자가 치명상을 입고 불명예 퇴진하는데 이것이 공직자만의 문제겠느냐. 사회 전체가 고민하고 대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 50~60대를 기용하려면 많은 분이 흠이 있어서라기보다 홀랑 벗고 까발려지는 상황에서 인격적 약점이 될 수 있다고 판단, 임용을 거절하고 있다. 너무 이런 방향으로 급격하게 변화가 진전되면 청렴, 투명사회는 앞당길 수 있으나 좋은 인적 자원을 활용할 수 없다.” 말했다.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이 고위 공직자 비리를 거론하며, 사회전체가 고민하고 대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 말하고 있다. 고위공직자 비리를 말하며 이것이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되어 있는 비리의 일면이며, 50~60대 인사들은 대다수 부패하였고, 청렴성과 투명성 강조하면 좋은 인적 자원을 활용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고 심란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김수석은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성 청렴성의 기준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 말한다. 공직기강과 공직자윤리에 대하여 아무 생각도 대책도 없는 사람이 대통령 인사수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수석의 말을 들어보면, 공직사회에 부정부패가 만연한 이유를 모른 채, 현 정권의 고위층의 비리에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는 생각이다. 公私의 구분이 분명하고, 옳고 그름을 바르게 분별하여 올바름을 실천하는 건전한 공직자 윤리를 갖은 사람이라면, 인사수석의 직분으로, 도덕성과 청렴성의 기준이 무엇인지 몰라 사회전체가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식의 이런 무책임한 발언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도덕성과 청렴성의 기준은 마땅히 정부가 앞장 서서 실천하며 만들어 가야한다. 고위 공직자들로부터 솔선수범하여 공직자 윤리를 바로 세우고 건전하고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단초를 제시하여야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지는 법이다. 부방위는 고위 공직자의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만든다고 한다. 공수처를 만들어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척결하겠다는 정부의 부패척결에 대한 결연(?) 자세를 생각해 보면, 김수석이 무엇을 믿고 청렴성 투명성을 강조하면 좋은 인적자원을 활용할 수 없다.”는 식의 정부의 부패척결 의지에 반하는 이율배반적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지 아연할 따름이다. 도덕성 청렴성을 강조하면 좋은 인적 자원을 활용할 수 없다는 김수석의 이같은 어처구니 없는 발언은, 친일인사들의 친일행위를 정당화하는 발언과 그 사고방식이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이는 김수석 스스로 무지하고 무능하며 부패한 공직자임을 토로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어떤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그 사회가 갖는 평균 정도의 도덕성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판단하면 친일파의 친일행위는 정당화될 것이고, 김수석의 청렴성과 도덕성을 강조하다 보면 좋은 인적 자원을 활용할 수 없다는 발언은 그럴 듯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의 어려움을 핑계로, 비리와 부정이 정당화될 수 있다면 올바른 삶의 방식은 그 설 땅을 잃게 되고 말 것이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신이 하면 로맨스란 말이 있다. 비리인사가 야권이면 기득권층의 타락한 범죄이고, 비리인사가 여권의 인사일 때면 비리가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에서 비롯된 도덕성과 청렴성의 기준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 강변하고 있는 꼴이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이 있다. 청와대 인사수석이란 사람이 공직자윤리가 무엇인지, 고위공직자가 부패한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공직기강이 무엇인지, 나아가 공직자 윤리가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사람이 인사수석을 하고 있는 정권으로부터 깨끗한 정부로의 개혁을 기대할 수 있을까?

 

대통령 인사수석비서관이라면 마땅히 공직자의 도덕성과 청렴성에 대한 건전한 공직자 윤리의식을 가지고 투철한 원칙과 신념 하에 사명감을 가지고 대통령이 원할하게 국정운영을 하는 데에 꼭 소용되는 사람을 쓸 수 있도록 보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현 정권 스스로 자신들의 허물을 고치고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며 구차한 변명이나 늘어놓으면서, 어찌 성공적인 개혁을 할 수 있으며, 어찌 다른 사람의 잘못을 다스릴 수 있단 말인가? 현 정권은 부정부패의 근본적인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부패척결을 외형만을 제거하려 한다. 고위공직자의 부패가 심각하다는 인식만 했지, 왜 고위공직자가 부패했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고위 공직자의 부정부패의 실체가 무엇인가?

 

그것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특권과 불공정에 대한 집착하며, 그 권한을 오용하고 남용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 정부는 이러한 부정부패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하여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기득권층이 기득권에 집착하여 저지른 부패에 대하여 이를 응징하면 부패가 척결될 것이라는 단순무지한 발상으로 부정부패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한 술 더 떠 고위공직자비리 수사처(공수처)와 같은 특별수사기관을 만들어 국가형벌권 행사에 있어 국가訴追주의의 이념을 훼손하며, 정치 권력이 국가형벌권을 행사하는 것이 부패척결의 첩경이라 오해한다.

 

이러한 잘못된 개혁 의지는 필연적으로 부패척결이 아닌 부패한 기득권 층에 대한, 새로운 집권 세력의 기득권 빼앗기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과거 부패한 기득권층이 그러했듯이 현 집권 세력과 자신들의 권력에서 파생되는 특권과 불공정에 집착한다. 그러하기 때문에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과거사 청산을 외치는 현 정권의 인사수석의 입에서, 도덕성과 청렴성을 강조하면 좋은 인적 자원을 활용할 수 없다는 식의 발언- 친일파가 친일행위를 정당화하는 것과 같은 사고방식의 황당한 발언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부정부패의 근본적 원인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눈 앞의 당리당략에 급급하여, 터무니 없는 <공수처> 같은 것을 만들어 부패척결이 가능하다 오해하는 현 정권에게 우리 사회가 지닌 부정부패의 구조적 원인을 몇 가지 관점에서 분석해 보이고자 한다.

 

첫째, 산업화 과정에서의 성장위주의 개발독재 아래서, 행정 편의적으로 만든 제도가 정당성 구체적 타당성을 결한 부패한 제도였다. 독재자들은 자신들의 恣意적 의사로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특권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부당하게 법을 만들었고, 불공정하게 법을 집행하였다. 국가권력의 행사는 정당하지 못하고, 합법적인 절차를 무시한 채, 법은 독재자의 지배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오용되고 남용되었다. 제도가 좋아도 부패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제도가 부패했다면 그 제도하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부패할 수 밖에 없다. 지난 40여 년 성장 위주의 국가정책은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파괴해 왔다. 업적과 성과로 부당한 방식의 국가권력행사를 정당화하는 국가운영방식-이것이 부정부패의 근원적 뿌리이다.

 

둘째, 지난 18년 간의 민주화 과정은 이러한 왜곡된 지배질서를 해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화 과정에서의 개혁이, 건전한 민주적인 사회질서를 만들지 못하고 천박한 자유주의에 근거하여 개인과 집단의 권리 주장에만 급급하여 질서 파괴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사회 여건에서 공권력의 오남용은 더욱 촉발되었다.

 

셋째, 기업가형 정부, 수요자 고객 중심의 행정이 그리고 공직자를 성과로 평가하는 행정방식이 부정부패를 조장했다. 나아가 행정의 효율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공무원의 재량권을 확대하는 방식의 행정개혁이 행정의 예측가능성을 훼손하여 법질서를 어지럽히고 공무원의 부패를 조장하였다

 

넷째, 개발독재 하에서의 공직자들은, 행정편의위주의 재량권을 확장하는 부패한 방식으로, 되도록 많은 이권을 챙길 수 있는 타락한 방식으로 공권력을 행사되었다. 예를 들면 예산을 보다 많이 끌어다 쓰는 것이 기관장의 능력으로 평가되었다. 또 기업가형 정부로의 행정개혁이 행정의 효율성과 실적과 성과 위주 행정을 주장하며, 공직자들은 재량권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권한을 행사하였고 그 결과 국가권력 스스로 법질서와 법적 안정성을 훼손하는 것이 관행화 되었다.

 

다섯째,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국민들의 준법의식이 망가지고, 공동체의 共同 善을 추구하고자 하는 價値 公準이 무너지고 사회의 일원으로써 사회적 책임감과 법적 책임감을 상실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난 40여 동안 경제 성장위주의 국가정책을 시행하면서 국가권력의 정당성 행사가 외면되었다. 부정부패의 근원적인 뿌리는 국가권력의 정당성의 훼손에서 비롯된 것이고,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라 말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법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닌 사람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통치자와 국가기관이 법을 마음대로 만들었고 마음대로 집행하였으며, 상황논리에 따라 마음대로 뜯어고쳤다.

 

원칙과 절차를 무시하고 <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식의 결과와 실적 위주의 독선적 지배방식은 필연적으로 국가권력을 부패하게 만든다. 윗 사람은 멋대로 하고, 아랫 사람에게는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 효율적 행정을 위한 것이라 생각되어 왔었다. 부하 직원의 공은 가로채려 하고, 책임은 전가하려는 행태가 비일비재한 것이 오늘의 공직사회의 현실이다. 이러한 일방적인 지시로 운영되는 조직으로부터 자발적이고 창의적이며 생산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독재정치나 독재행정은 필연적으로 IQ가 모자란 국가조직을 만들게 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아직도 이러한 독재행정의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다.

 

무사안일과 보신주의에 젖어 여전히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타성에 젖어 있는 것이 공직사회의 현실이다. 의사결정에 있어서 재량권을 확장하고, 성과와 실적을 중시하는 방식이 공직자의 사기를 높이고, 행정의 능률성을 높인다는 잘못된 사고방식은 여전히 공직사회를 움직이는 원리이며, 우리 사회의 지도원리이다.

 

대통령 인사수석이 공직자의 도덕성과 청렴성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토로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공직기강의 확립에 대하여 대책이 없다고 실토하는 것이다. 원칙 없는 사회가 부패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공직기강 확립에 대한 구체적 대책이 없으니 장관급 인사들이 줄줄이 부패에 연루되어 낙마하는데, 이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사회 전체가 고민하고 대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 말하며 현 정권의 부패의 실상을 은폐하고 호도하기 급급하다. 행정철학과 원칙 없이 코드를 맞추어 줄 세우는 인사방식은 국가조직의 활력을 저하시키고, 우리사회의 성원들 간의 불신을 조장하며 나아가 지역 간, 계층 간, 세대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게 될 것이다.

 

권력은 부패한다.

 

권력은 아무리 작은 권력일지라도 恣意적으로 행사하려는 속성을 갖는다. 자의적 재량권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권력자는 스스로 자존심을 높이고, 타인에 대한 威力(권위)을 높여 지배력을 강화시키려 한다. 권력은 주어진 한계를 넘어서려 하며, 권력자는 권력자체를 위해, 권력을 탐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모든 국가기관은 스스로 관료주의를 지향하고, 모든 관리는 스스로 권력을 남용하고 싶어한다.

 

법과 원칙에 입각하여 행사되는 국가권력만이 건전성을 담보하고 공직기강을 확립하며 나아가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시발점임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부패 없는 건전한 사회는 법과 원칙이 지배하는 확고한 행정철학을 가지고 공직기강을 바로잡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법치주의의 핵심원리는 무엇보다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법의 意思에서 벗어나 권력을 오남용하는 것을 막도록 하는 원리이다.

 

남을 다스리는 자는 먼저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한 태도만이 성공적인 개혁을 통한 보다 나은 우리의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 철학도 원칙도 심지어는 제대로 된 신념조차 없이, 자신들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개혁이라면 우리 사회에 분열과 갈등만을 조장하는 살풀이 식의 헤프닝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合意가 법을 만든다.

2004-10-26 17:15:51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에 대하여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헌재가 위헌 판결을 내린 것을 납득할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첫째, 관습헌법을 그 바탕으로 했는데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은 경국대전에 나와 있는 것처럼 관습은 되지만 왜 그것이 헌법적 효력을 갖는 관습헌법인지 이해할 수 없다.

 

둘째, 과연 헌재가 불문헌법에 대해서 그 존재를 인정하고 해석하고 그것에 따라서 국회가 만든 법안을 무효화할 수 있는 것인지. 영국은 불문헌법 국가다. 그러나 영국은 헌재가 없다. 의회가 만든 법안은 무조건 다 통과다.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것 말고는 다 된다는 것이 그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명백히 성문헌법 가지고 있고 그 헌법을 최종적으로 해석하고 위헌됐다 말았다 하는 것을 헌재에 맡기고 있다. 국회가 만든 것이라 해도 그 성문에 위반된 것이라면 위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문헌법에 없는 관습헌법을 근거로 성문헌법을 위헌이라고 하면 국회가 도대체 입법을 어떻게 하겠나. 입법을 하면서 과연 관습헌법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면서 입법을 할 수 있겠나. 실질적으로 어떻게 따라야 하나. 국민들이 제정한 성문헌법에 의해 만들어진 헌재가 그 성문헌법을 뒤짚을 수 있는 것인지.

 

이번 위헌 대상은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이다. 수도를 서울로 옮기자는 것이 아니었다. 서울 그대로 두고 제한된 의미의 행정수도 만들자는 것이었다. 설령 서울을 관습헌법 상의 수도라 한다 하더라도 그것과 어긋나는 것인지 모르겠다.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에 담고 있는 내용은 수도 서울의 일부를 충청권으로 옮기자는 것이었다. 헌재가 이것을 알고 판결을 내렸는지 의문이다.

 

여당의 원대대표가 되어서 어찌 이러한 무지한 발언을 할 수 있는지 심란하다. 헌재의 판결문을 제대로 읽어나 보고 한 소리인지 모르겠다. 명색이 변호사인 천대표가 헌재의 판결문을 제대로 독해조차 하지 못하는 데에 대하여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헌재의 판결문은, 관습헌법의 성립 요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관습헌법이 성립하기 위하여서는 관습법의 성립에서 요구되는 일반적 성립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러한 요건으로서 첫째, 기본적 헌법사항에 관하여 어떠한 관행 내지 관례가 존재하고, 둘째, 그 관행은 국민이 그 존재를 인식하고 사라지지 않을 관행이라고 인정할 만큼 충분한 기간 동안 반복 내지 계속되어야 하며(반복계속성), 셋째, 관행은 지속성을 가져야 하는 것으로서 그 중간에 반대되는 관행이 이루어져서는 아니 되고(항상성), 넷째, 관행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정도로 모호한 것이 아닌 명확한 내용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명료성). 또한 다섯째, 이러한 관행이 헌법관습으로서 국민들의 승인 내지 확신 또는 폭넓은 컨센서스를 얻어 국민이 강제력을 가진다고 믿고 있어야 한다(국민적 합의). 이와 같이 관습헌법의 성립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요건들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수도의 문제는 내용적으로 헌법사항에 속하는 것이며 그것도 국가의 정체성과 기본적 조직 구성에 관한 중요하고 기본적인 헌법사항으로서 국민이 스스로 결단하여야 할 사항이므로 대통령이나 정부 혹은 그 하위기관의 결정에 맡길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

 

다시 말해 헌재의 위헌판결의 핵심 요지는, 국민의 절반 이상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수도 이전 문제를 제대로 된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아니하고 추진하도록 한 법률이 위헌이라 판시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국회가 만든 법안은 무조건 다 통과되어야 한다고 강변하는 천대표의 몰상식한 발언은 유감스럽기 그지없다. 이러한 몰지각한 법률 상식을 가지고 있는 이가 변호사인 것이 신기하고, 앞으로 수많은 입법을 주도할 집권당의 원내대표인 것이 더욱 심란하게 여겨진다. 법률이 국회다수당의 의사대로 만들어진다는 발상이, 최근 추진되고 있는 집권당의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 청산법, 언론개혁법 등에 반영되고 있는 것 같아 유감스럽다.

 

집권당의 원내 대표가 제대로 된 법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국회의원 다수의 의사로 멋대로 법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법의 제정은 마땅히 헌법에 羈束되어야 한다.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법률이 위헌판결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법률은 정의에 기초한 공정하고 정당한 법이어야 하며, 그 법을 준수하여야 할 국민이 그 타당성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개별적인 사안을 규제하는 것이 아닌, 시간적 공간적으로 동일하게 적용되는 일반적이며 실질적으로 법률의 의사를 관철시키는 유효한 법이어야 한다.

 

합의(合意)가 법을 만든다.”[Consensus Facit Legim.(Latin)] 라는 法諺이 있다. 합의는 당사자 간의 법을 만든다는 것으로, 그것에 의하여 拘束받을 것을 동의한 當事者간의 합의는 법으로 효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현행 프랑스 민법과 이탈리아 민법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근대 자유주의 국가관은, 국가는 개인의 합의에 의하여 성립된다는 사회계약설에 기초한다. 루쏘(J. Rousseau)나 칸트(I. Kant)는 본래 자유스러운 인간이 국가 안에 있어서 국가 권력의 구속 하에 놓이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서는, 이론적으로 국가 존립의 기초를 국민의 자발적인 합의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국가관의 입장에서 본다면 국민적 합의는 헌법률(Verfassung Recht)보다 상위에 있는 헌법(Verfassung) 이라 할 것이고, 국민적 합의를 외면한 법률이 위헌이라 판시한 헌재의 판결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할 것이다.

 

책임 있는 개인은 어떠한 규범이 자신의 행위를 제약하고 구속할 때, 그 규범이 내적으로 정당한 규범인가를 질문할 것이고, 실질적으로 타당한 규범인가를 묻게 된다. 법률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제약하는 것이라면 법률의 정당성과 타당성에 나아가 공정성에 대한 질문은 보다 절박한 것이 된다.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지 않은 법률이 타당성을 가질 수 없고, 구체적 타당성을 갖지 못한 법률이 규범적 효력주장을 할 수 없다 것을 바르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정당성과 구체적 타당성과 실효성을 갖는 법률만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규범으로써의 효력을 온전하게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합의는 법을 이긴다.”(Convenances vainquent loi.) 라는 法諺이나, 계약 자유의 원칙을 천명한 계약이 법률을 이긴다.”(Conventio vincit legim)法諺은 법률행위에 있어서의 합의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예를 들면, 권투선수가 시합 중 상대방 선수를 죽게 하였더라도 그 권투선수는 계약에 의하여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지금 열린우리당의 국민적 지지율은 좋게 보아도 30% 내외라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탄핵정국에서 비정상적으로 의회권력을 장악한 열린우리당이 국민적 합의를 도외시한 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당파적 이해에 얽매어 입법권을 오용하고 남용한다면, 현 정권의 개혁은 필연적으로 국민적 저항에 부닥치게 된다는 사실을 이번 행정수도이전에 대한 헌재의 위헌 판결을 계기로 깨달아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에 절실하게 아쉬운 정치적 리더쉽이란 합의를 도출하는 능력을 갖는 리더쉽이라 믿는다.

 

불신과 반목, 대립과 갈등으로 우리 사회가 갈갈이 찢기고 있는 현실이 심히 우려스럽다. 한 국가의 몰락은 외국의 침략과 같은 외적인 폭력보다, 분열과 갈등 불신과 반목으로 심화되고 대립되는 내부의 무질서에 의하여 와해된다는 것을 온 국민이 상기하며, 서로 반대편에 대한 비난만을 일삼고 있는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때라 생각한다.

 

정당한 법은 그리고 적법절차를 준수하며 공정하게 운영되는 법의 원리는, 대립과 갈등으로 內訌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 합의의 기초를 제공하는 가장 기본적인 국가와 사회의 질서이다. 현 정권의 성패는 개혁의지를 구체화하는 새로운 사회질서를 성공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느냐로 판가름 날 것이고, 그것은 현 정권의 개혁입법이 국민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아닌,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합헌적인 정당한 법이란 전제 하에서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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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적 도덕적 가치

2004-06-22 10:22:32

 

스스로 사회를 판단할 줄 아는 모든 사람들의 의무-우리가 침묵을 지키면, 과연 누가 말할 것인가..

- Arthur Schopenhauer -

 

 

노대통령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쓰다 체험한 일이다.

 

내가 쓴 글을 며칠 동안 쫓아다니며, 나를 존경한다며, 나 같은 사람이 노통을 지지해야 대한민국이 발전한다고 말했다. 나는 내 입장에서 노통을 비판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위해 바람직하다 생각한다 말했다. 그는 자신도 노통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하여 내가 노통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노통을 지지하고, 나는 나대로 노통의 문제점을 이유를 들어 반대한다고 말하고, 서로 다른 입장을 존중해 주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설명했다. 그는 내게 다시말했다. 노통을 지지하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존경하니, 정책을 개발하여 노통에 협조해 주는 것이 대한민국의 발전에 좋다고 말했다. 말이 이쯤 되니까 난 열통이 터지고 희롱을 당한다 생각하며 화가 났다. 당신 미친놈 아니냐고, 노통을 대한민국의 구세주로 생각하는.그러자 그는 나를 교만이 극에 달한 인간이라 비난했다. 이런 식으로 몇 번 부닥치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는 진심으로 날 존경한다 말했었다.

 

누구에게 존경받는다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듣기 거북한 소리가 없다. 나는 평생을 거의 내맘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내게 기대한다든지 존경한다는 소리가 얼마나 부담스럽고 귀찮은 것이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존경한다는 소리가 순식간에 실망으로 변하는 것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냥 실망도 아닌 뼈저린 실망이란 말을 들을 때면, 날 얼마나 존경했기 내 못난 모습이 상처까지 되었나 생각이 들기도 하고, 부족하고 모자란 것 투성이인 내게 어쩌다 콤플렉스를 느끼다, 악의에 찬 욕을 그처럼 미숙하게 하는가 싶기도 하여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나는 존경도 실망도 사절하고 싶다. 나를 아끼는 애정으로 좋은 점이 오해될까 염려해 주시는 분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들의 기대만큼 좋은 점만으로 날 포장하고 사는 것을 잘 하지 못하니 내 생긴 꼴대로 살아가면서, 내가 좋다고 생각하고 필요하다 생각하는 것은 조금씩 배우면서 살아간다.

 

 

나는 이러한 존경과 실망, 그리고 질투와 시기에 찬 비난 이러한 것들이 모두 나에 대한 무례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나에 대한 태도는 부도덕하다. 내가 그들을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그들을 비난함이 아니라 그들이 나의 도덕적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내게서 좋은 점을 보면, 그 좋은 점으로 나라는 사람을 상상하고 내가 모든 점에서 자신들이 상상하는 인간이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그들의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비난을 한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점은 내가 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나는 그들이 나와 같지 않다고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은 내게 그들과의 정서적 일치감을 요구한다. 쉽게 말하면 내가 그들보다 낫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보이면 질투심을 느끼다, 아니다 싶으면 비난하고 왕따를 시키고 싶은 마음으로 나를 비난한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자신들이 옳다고 여긴다 하여 그것을 요구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많은 사람이 자신들의 정서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으로 호도하고 싶어한다. 이것이 왕따의 심리적 기저이며, 저질 포퓰리즘의 심리적 기저를 이룬다. 독창적이고 자기창조적인 삶을 살거나, 아이덴티디가 확립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개성적인 인격으로 살아가고자 하기에 포퓰리즘에 대하여 거부적이다. 반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삶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은 자신의 삶의 의미를 다른 사람과의 동질감을 공유함으로써, 자기 삶의 보편적 가치를 부여하고 싶어한다.

 

 

개인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이 다중의 위력으로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수의 의사가 곧 진리고 정의라 착각하게 된다. 그리고 국가나 사회도 이러한 자신의 주체성을 상실한 다수의 욕망에 의하여 움직여진다. 이러한 사회에 미래가 있겠는가? 당연히 없다. 노대통령의 집권전략은 열등감에 대한 다중의 공통의 정서를 공유하면서 이를 시민혁명이라 이름 부친다. 이런 국가에 비젼이 있겠는가? 당연히 없다. 이러한 포퓰리즘으로 이끌리는 나라에 신념이 어디 있고, 원칙이 어디있고, 신뢰가 어디 있겠는가? 시시 때때로 변하는 다중의 변덕에 세상은 우왕 좌왕하는 것이 필연적인 귀결이다. 노통에게 정치의 고수라는 헛소문이 전염병처럼 돌아다니고 있다. 열등감과 콤플렉스로 정체성을 확립치 못한 인간들이 군락을 이루어 집단행동으로 나라를 이끌어가는 것이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현 주소이다.

 

 

인간관계에서 도덕적 가치관이 드러나게 된다. 상대방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일을, 또는 상대방이 바라지 않는 일을 자신이 옳다고 하여 상대방에게 요구하거나, 자신의 판단으로 상대방을 위한 일이라며 일을 행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일은 <상대방에 좋은 일이다> 생각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독단이다. 그리고 자신의 독단으로 상대방에 연관된 행위를 하는 것은 마땅히 부도덕하다. 부모가 자식을 욕심으로 키우면 이러한 짓을 자식에게 반복적으로 행하게 되고, 아이가 성장하면 이러한 부모 자식과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악화된다. 그것이 선행이라 할지라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부도덕하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도덕은 한 사람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개성을 존중하는 일이다. 인간이 누군가에 의해 자기 목적에 맞도록 가치관이 맞춰 조작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독재정치는 독재자의 욕망에 국민의 욕망이 종속되기를 강요받는 정치체제이다. 이러한 사회체제에서 자율적인 인간과 개성적인 인간은 배제된다. 인간은 각자의 권리와 독자적인 가치관을 지닌 독립적인 존재이다. 설득하는 것은 좋지만, 강요하거나 위협하고, 하물며 세뇌 따위는 결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사회관계에서 기본적 도덕이 되어야 한다.

 

 

지난 17년 민주화 과정 동안 우리사회의 도덕적 환경은 매우 악화되었다. 범죄의 증가, 수많은 신용불량자, 끝도 없이 이어지는 지도층의 부정부패, 각종 대형사고 빈발, 청소년 문제, 자살, 이혼율의 급증 등 사회가 그야말로 난장판으로 치닫고 있다. 규율되지 않고 지배되니 않는 사회, 국민 도덕심이 황폐화된 병든 사회가 우리 사회의 현주소가 아닌가?

 

 

왜 이처럼 도덕심이 땅에 떨어지게 되었을까? 수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이유 중 가장 중요한 한 이유로 나는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지도원리가 변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민주화 과정은 개인의 욕망을 극대화하기 위해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형태로 진행되어 왔기에, 우리사회가 개인의 책임을 존중하는 사회로부터, 사회의 책임을 중시하는 사회로, 아니 모든 문제의 책임을 사회 탓으로만 돌리기까지 하는 잘못된 세상풍토로 변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개인이 자기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않고 모든 문제의 책임이 사회에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이러한 개인들은 자기의 행동을 삼가는 일 따위는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17년 간의 민주화 과정은 개인의 사회적 책임과 규범의식이 실종되어가는 쪽으로 진행되어왔다. 개인의 자발성이 상실되었고, 상호존중과 이해의 노력은 실종되고, 개인과 집단의 당파적 이익만의 소리 높이 외쳐되어 왔다.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의 원리는 개인의 자발성과 상호존중을 통한 협력을 전제로 작동된다. 시장을 기초로 움직이는 사회란, 강제가 없는 협력으로 이루어진 사회이며, 자발적인 교환이 이루어지는 사회이고, 자유로운 기업의 활동이 보장되는 사회이다. 시장의 본질적인 성격은 자발적인 교환에 기초하고 있다. <내가 적절한 대가만 지불한다면 당신이 무엇인가 나에게 팔아준다>는 합의에 기초한다. 그리고 그 같은 합의의 이면에는, 그 교환에 참가하는 당사자가 다 같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아담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말하고자 한 핵심 내용도 이것이다. <독립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상호 이익이 되는 것을 교환하고, 이로써 사회 전체의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발성에 기초한 개인의 상호존중이 전체 사회의 이익에 부응한다는 것을 스미스는 말하고자 했다.

 

 

흔히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물질편중을 지적한다. 돈을 벌려는 노력은 분명히 도덕적으로 칭찬받을 동기라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건전한 삶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에 있어 적어도 <떳떳한> 행위라는 사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시장에 기초한 사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회,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자유로운 거래를 할 수 있는 사회에서, 선행은 좀처럼 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을 설득해야 하고 사람을 설득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작가가 책을 한 권을 써서, 독자에게 한 문장을 각인 시키면 그 작가는 성공한 것이라 생각한다. 설득을 해야하기에 선행을 하기도 어렵지만, 신뢰를 상실하면 곧바로 손해를 보는 사회이기에 동시에 악한 일도 하기가 아주 어려운 사회이다.

 

 

어떤 사회를 막론하고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지 않는 사람이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물질만능의 자본주의 체제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나, 소득 2만불 시대의 달성에만 전력을 기울이는 사회이기에, 인류의 정신적 업적이나 가치를 서슴없이 짓밟아 버리는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는 평균적인 인간 다같이 소수파를 억압하는 사회이다. J.S. 밀은 자유론에서, 전 인류가 동일한 의견을 가지고 있고, 단 한 사람만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할 때, 전 인류가 그 한 사람에게 입을 다물게 하는 것은, 그 한 사람이 권력을 잡았을 때 전 인류에게 침묵하도록 요구하는 것만큼 부당하다고 말했었다.

 

우리사회가 인도적이고, 또한 소수의 창조적인 사람들에게 위대한 정신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이외에 창조적 정신활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여 주어야 한다. 그것은 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창조적인 소수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하여 발전되어 왔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우리사회가 지니고 있는 평균적 인간보다 우수한 인간에 대하여, 이를 지원하고 응원하기는 고사하고, 열등감에 뒤범벅이 되어, 자신들과 이질감을 느낀다는 이유로 이들을 왕따시키려 하는 사회가 부끄러운 우리 사회의 현 주소이다. 나는 이러한 사회의 편견과 맞서, 30년 이상을 싸워왔다. 내 삶이 성공적인 결실을 맺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나의 노력이 나와 같은 삶을 살아가려는 후학들에게, 보다 덜 어려운 삶을 가게 할 수 있는 길라잡이 노릇을 했으면 그것으로 나의 역할은 충분하다 믿는다. 적어도 30년 이상을 실패만 거듭해 왔다. 그러기에 난 실패에 대하여선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한다. 진실은 오히려 실수에서 잘 드러난다.

 

 

고통받고 소외받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강자는 실패를 자신에게 유리한 것으로 만든다.

우리는 우리가 처해 있는 어려운 시기를 흔들림 없이 헤쳐나아가야 한다.

훗날 우리가 지금 건너야 했던 고통의 시간들이

보다 나은 삶의 계기와 밑거름이 되게 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 아닌 우리 자신과의 이 처절한 싸움에서

기필코 승리해야 한다.

 

나는 안다 그리고

끝내는 우리 모두 알게 될 것이다.

 

고통의 날들을 쓰러지지 않고 건너온 사람만이

그 어떤 패배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끝내는 일어서고야 마는 정신만이

약속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은 바로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고

절망과 고통의 세월을 뛰어넘어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과 사랑의 빛이 되는

정신이라는 것을..

 

정녕, 우리의 아들 딸들에게 물려 줄

가장 값진 유산이라는 것을..

 

포스트386 세대를 위하여

2004-10-14 17:00:59

 

 

대통령의 국가 보안법 폐지 발언이 나온 직 후, 한 일간지의 여론 조사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30대와 20대의 정당지지율이 열린우리당 30.0%, 32.3% 한나라당이 28.3%, 17.8% 민주노동당이 23.5%, 29.5%를 보여주고 있었다. 반면 50대 이상의 경우 열린우리당이 18.6% 한나라당이 46.0% 민주노동당이 5.6%로의 지지률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여론 조사는 우리사회의 세대간 갈등의 극명함으로 보여준다. 나아가 우리 사회가 젊은 세대일수록 대한민국 체제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사회주의를 선호하고 있지 않느냐는 심각한 우려를 느끼게 한다. 국가보안법 철폐와 미군철수를 대남적화통일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놓은 북한의 통일전략을 생각하면 이는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사회상황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최근 중앙일보에서 행한 386세대와 포스트 386 세대에 대한 기획기사를 읽고, 우리 사회가 사회주의화 하고 있다는 생각에 대한 우려를 씻을 수 있었다. 서울대 송호근 교수는 386세대와 포스트 386 세대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386세대의 화두는 혁명이었다. 포스트386세대의 화두는 탐닉이다. 엑스터시 속으로 자신을 담그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혁명이다. 386세대의 가슴속에는 ''즐기는 자아''가 없었다. 포스트386세대는 386세대가 결여한 ''나의 정체성''을 찾아 나선 것이다. 포스트386세대는 잊었던 존재를 찾으려는 갈망으로 문화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풍요로운 시대는 반항아를 탄생시킨다. 문화적 이탈자들 말이다. 이념적 혁명가들이 하드웨어(정치 권력과 제도)를 공격한다면 문화적 이탈자들은 소프트웨어(인습. 규범. 관행)를 무너뜨린다.

 

탐닉은 자신을 혁신한다. 이들은 구태의연한 가족 규범을 조롱하고, 이혼을 주저하는 386세대의 우유부단함을 공격하고, 여성을 가정에 가두는 전통적 인습을 부쉈다. 기성세대의 정조 관념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자유로운 섹스와 동거를 감행한다. 포스트386세대는 소비를 즐긴다. 문자세대와 영상세대의 격차는 인식의 공간을 달리 채색했고, 급기야 교신할 수 없을 만큼 세계관의 편차를 만들었다. 해방 이후 포스트386세대만큼 문화자본이 부유한 세대는 없다. 386세대의 인식공간에는 문자와 논리가 헤엄쳐 다닌다. 포스트386세대의 그것에는 영상과 이미지가 가득 차 있다. 포스트386세대가 이미지를 인화할 때 3S, 즉 감정 몰입(sympathy), 상징(symbol), 감성 (sentiment) 이 활용된다. 세대원 간의 상호교신에는 정서적 조응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반면 386세대에게는 3E, 경험(experience), 증거(evidence), 참여(engagement)가 중시된다.

 

경험의 공유가 있는지, 서로 통할 징표가 있는지, 그것에 참여했는지다. 혁명에는 공유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 투옥 경력이 등용의 증거물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주체 형성과 호명의 방식이 다르다. 386세대에게는 논리에 대한 확신, 신념이 주체 형성의 핵심 요소였다. 이념의 호명은 자아발견이었으니까. 포스트386세대에게 호명은 감성교환과 감정몰입이다. 시위 참여에도 정서교환이 중요하다.

 

주체 호명의 방식은 민족주의의 개념을 바꿔 놓았다. 386세대에게 ''한국인의 조건''은 영토, 한국에서 삶의 경험, 한국 태생, 핏줄 등 생물학적 요소이지만 포스트386세대에게는 동감, 한국인임을 느끼는 것 등 감성적 요소가 대부분이다. 반미와 친북 성향이 높은 것도 이런 특성 때문이다. 이들은 미국이 전통적 우방이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북한은 아무리 흉악한 짓을 저질러도 같은 민족임을 ''느낄 수 있다''. 포스트386세대는 반미의 기원인 386세대보다 훨씬 반미적인데, 미국 호감도를 뭉텅 떼어 내 북한과 일본에 각각 할애했다. 주사파적 감성이 이들에게서 증폭된다.

 

두 세대는 ''어제의 동지''가 아니다. 포스트386세대는 일상 생활의 영역에서 문화 투쟁을 일으킨다. 그 상대는 힘없이 주저앉은 기성세대가 아니라 아직 힘을 쓰는, 그러나 기성세대화해 가는 386세대다. 386세대는 혁명을 완수하자마자 혁명의 대상이 됐다. 문화투쟁에서 386세대는 패배할 것이다. 문화자본이 빈약하고, 상상력의 공간을 점령하는 영상문화의 대군(大軍)을 감당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자아혁신이 문화투쟁의 목표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미로운 탐닉. 흥분. 감동을 분출해내는 영상시대의 총아들 앞에서 한국사회를 지탱해왔던 구태의연한 규범. 인습. 관행. 권위는 무릎을 꿇을 것이다. 이제 3S로 무장한 그들의 시대가 오고 있다. >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에 대한 보다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이해를 도우려는 의도로 내 개인적인 견해를 피력하고자 한다.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가 그들이 제대로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현 집권세력이 과거 기득권층을 때려부수는 데에 대한 지지라고 하는 것이 보다 올바른 평가인 듯 싶다. 현 집권세력을 주도하고 있는 386세대는 제대로 일을 하고, 생산적인 건설을 해 보지 않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민주화 운동은 민주주의적 국가질서나 사회질서를 건설하려는 노력이 아닌 군사독재의 반민주주의적 사회질서에 대하여 항거하고, 그것을 파괴하는 것이 지상의 목표라 실천해 왔다 . 민중해방을 위한 반파쇼 민주화 운동과 민족 해방을 위한 반미자주화 운동의 기치아래 기득권층의 불공정하고 부당한 기득권을 파괴하고 빼앗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때론 주체사상을 지지해오며 민주화 운동을 해 온 사람이 상당수인 세대가 386 세대이다. 현 정권의 실세인 386세대가 지금도 주체사상을 신봉할까? 현 정권을 빨갱이 정권으로 여기고 싶은 보수층의 견해는 현실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현 정권의 주요 관심은 기득권층으로부터 기득권을 가능한한 많이 빼앗고 자신들이 기득권을 보다 많이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 보다 적당한 표현이 아닐까?

 

5.18 광주 항쟁 이 후, 그리고 서울과 부산의 미문화원 점거방화 사건 이 후, 우리 사회에 주체사상이 급격히 확산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이해찬 국무총리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중형을 선고 받았던 시기이다. 광주항쟁에서 876.10 민주화 운동에 이르며 성장해 온 세대가 386세대이다. 이들이 반미적이고, 반 기득권층의 정서를 가졌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을 통째로 들어 북한에 바치려 한다는 식의 비유는 적절치 못하다. 386세대의 의식에는 사회주의에 대한 동경이 흐른다. 하지만 386세대는 집권하자 마자,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권력이라는 것을 재빨리 간파한다. 현 정권이 생각하는 과거사 청산이나 사립학교법 개정, 언론개혁 등은 집권세력의 권력 강화의 선 상에 놓여있다. 그들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이념이 아닌 권력이다. 문제는 386세대가 권력을 잡자마자 타락한 권력으로 전락했다는 데에 있다. 그들에게 이제 이념은 버려아 할 것이고, 제대로 일해본 적이 없으니 능력이 턱없이 모자란다. 앞서 송교수가 분석한 것처럼 386세대는 그들의 혁명을 완수하자마자 혁명의 대상이 되어버린 세대이다. 노무현 정권과 386세대의 치명적 취약점은 우리사회가 공유하여야 할 공동의 소신과 가치를 담고 있는 구체적 국가비젼을 제시하지 못하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신들의 권력의 확장을 위한 기득권층 때려부수기가 전부인 것처럼 보여진다. 386세대의 필연적 몰락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그들은 태생적 한계 - 파괴할 줄 만 알고 건설할 줄 모르는 문화적 不妊성에서 기초한다.

 

우리가 만약 노무현 정권에 절망한다면, 혹은 비판적으로 지지한다면 우리는 포스트 노무현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우리가 새롭게 열어갈 포스트 노무현 시대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박정희만세를 외치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 만연된 박정희 신드름은 퇴행적이며 국가발전에 반동적인 병리현상이다. 인간 존중에 기초한 민주주의 국가와 사회를 건설해야할 우리 시대에 있어, 박정희 신드롬은 결코 확산되어서는 아니될 전염병이라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할 것이다. 노무현 다음의 우리의 미래는 당연히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제도화하고 구체화하여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자유민주의 이념을 실천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입각한 민주적 헌정질서를 구축하고 잘못된 제도를 정비하여 국가의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 나아가, 건전한 경쟁질서를 갖는 그리하여 활력적인 경제 흐름을 갖는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과거 특혜적 지원 속에서 성장한 우리 기업이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필연적 귀결이다. 경제 살리기를 말하며 기업활동을 원활하게 하고 사기를 높이기 위해 정부가 기업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말한다.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은 건전한 경제질서를 갖는 시장질서에 기초해서 발전한 것이 아니다. 국가의 지원하에 특혜적 지원을 받은 기업집단에 의해서 발전하였고, 그러하였기에 자생적인 경쟁력을 향상시키지 못하여, 세계화의 무한경쟁시대에서 못하고 허우적 되며 갈팡질팡하는 것이 우리 경제가 1만불 벾을 깨지 못하고 답보하는 보다 근본적 이유가 아닐까. 물론 개혁이란 이름 하에 진행되는 정치적 상황의 가변성이 사회의 안정을 깨뜨리고, 안정성이 결여된 사회에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경제가 어려운 것 또한 노무현 정부 이후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 중요한 이유이다.

 

앞서 포스트 386세대를 분석한 내용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이들이 자유주의체제를 거부하고 사회주의의 체제를 선호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또 이들이 갖는 친북 반미의 정서라는 것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20, 포스트 386 세대는 정치적 문제에 무관심하다. 고도화된 후기자본주의사회에서 사회의 성원들의 공통된 특징은 정치적 무관심과 소비지향, 여가지향, 승진지향, 사생활지향적이다. 포스트386세대가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강령이나 이념이 아닌, 기존 질서 해체적 인 성향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포스트 386세대의 특징은 철저하게 자유주의적이며 개인주의적이다. 이들을 친북세력이니 빨갱이로 매도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체제를 위협하는 것이라 여긴다. 정치지도자의 역할은 포스트 386세대가 가진 성향을 어떻게 하면 국가발전의 에너지로 이끌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자유민주의 질서를 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유주의 삶의 질서와 자율적이며 개인의 자발성이 존중되는 자유주의적 삶의 질서를 확대해 나아가는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성원들이 제대로 된 자유주의이념을 학습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자유주의 이념이란, 인간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부자와 가난한 자를 막론하고 그 누구나 개성과 자존심이 존중되어야 하며, 인간은 수단이 아닌 인간 자체가 목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하여야 한다 믿는다. 소수의 의견이 존중되고 독단과 편견이 배척되며, 불공정과 특권에 대한 집착이 없는 공정한 룰에 의하여 운영되는 사회로의 진화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세계이어야 할 것이다. 사회의 진화는 그 무엇보다 사회 성원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의 진화에 의존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의 우리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진화가 사회 발전의 요체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다. 정치는 국민들이 알기 쉽게 예측가능하고 투명하게 국가 권력이 행사되도록 하여야 한다. 경제는 자유경쟁의 건전한 시장질서가 확립되어야 한다. 법적 안정성과 나아가 건전한 상거래의 관습이 정착되고, 경제 주체들 간에 신뢰가 쌓여져 가는 건전한 경쟁질서를 확립함으로써 경제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시장의 활력을 극대화 하여야 할 것이다.

 

흔히들, 구 소련의 붕괴, 동구권의 붕괴를 두고,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 승리라 말한다. 나는 이러한 표현이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한다. 공산권의 몰락은 전체주의와 계획경제에 대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승리라 믿는다.

 

자유주의와 시장 경제의 강점은 어디에 있을까? 자유주의 정치이념은 국가권력의 타락을 방지하고 국가권력의 행사를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에 따르도록 하여 국가 권력의 정당성을 지속할 수 있었다.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는, 자본주의 경제가 1930년 세계대공황 이후 유산자가 무산자를 착취하는 자본주의의 모순 점을 극복하고 시장에서 경제권력이 시장을 조작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건전한 경쟁질서를 확립하고, 생산수단의 흐름을 보다 유연하고 원활하게한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함으로써 오늘날의 번영이 가능했었던 것이다. 자유주의 이념의 우수성은 정치나 경제 사회 문화에서 과정(Process)을 최적화하여 국가나 사회의 활력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창조하며, 세상을 놀라게 한 힘의 최선봉에 포스트386세대가 있다. 나는 우리나라에 자유주의적 국가질서를 확립해 나아감으로써, 이러한 역동적이고 활력적인 국민적 에너지를, 새로운 역사적 도약을 위한 국가발전의 에너지로 결집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개인의 정체성의 확립은 자율적이고 창의적의 문화적 역량의 모태가 된다. 지식정보화 시대이다. 미래의 국가는 무엇보다 그 국가가 갖는 문화적 역량이 그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한다 믿는다. 문화는 사회를 보호한다. 문화는 각종 사회현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며 평가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오늘의 포스트 386세의 모습은, 그들에게 수구꼴통이란 비난을 듣는 기성세대가 길러낸 산물과 다름 아니다. 경제성장이란 이름으로 표절과 위선과 힘있는 자에게, 부패한 권력과 부패한 규범에 굴종하며 살아왔던 기성세대가, 남의 눈치보지 말고 기죽지 말고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라고 가르친 까닭에, 오늘의 젊은 세대가 그렇다. 개성과 자존심이 강하고 모든 일은 자발성에 기초하여 행하려는 젊은 세대로부터 나는 보다 발전되고 새로운 역사적 도약을 일구어낼 미래를 읽을 수 있다. 갈 사람은 가야 한다. 기성세대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다. 문명사적 변혁의 시기에 적응할 수 있는 사고의 유연성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나는 직감할 수 있다. 지금의 보수기득권층은 역사에서 물러나고, 포스트386세대가 우리 나라의 주역으로 성장할 때, 우리에게 반드시 밝고 희망찬 내일이 있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가치관의 혼란과 취업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젊은 이들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 삶이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내리막이 다 하면 평탄해진다는 것을, 진정 역경과 시련을 견디어낸 자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내 아버지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그들에게 아낌없는 애정과 사랑을 보낸다

신문법은 언론 탄압법이다.

2004-10-18 15:33:46

 

지난 주말 열린우리당은 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내놓았다. 법률의 명칭을 <신문 등의 기능보장 및 독자의 권익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 바꾸고, 이 법률의 목적을 <신문 등 정기간행물의 발행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정기 간행물의 사회적 책임을 높여 언론의 자유신장과 민주적인 여론형성 및 국민의 복리증진을 도모하고 언론의 건전한 발전 및 독자의 권익보호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 정하였다.

 

이 법률이 언론의 자유를 신장하고 건전한 언론의 발전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일까?

<신문 등의 기능보장 및 독자의 권익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신문법)은 정부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고, 헌법 제21조에 명시한 언론과 출판에 대한 자유권적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법률이라 할 것이다. 헌법은 언론에 대하여 허가나 검열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생각하는 언론의 자유와 언론의 발전이란, 집권당에 대한 비판적 언론에 대한 탄압이라 비난받아 마땅하다.

 

언론의 자유란 무엇인가?

언론의 자유의 본질은 다음의 세가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의 인격적 정신활동- 사상 종교 예술 학문 등- 을 외부에 표현하는 자유를 말한다.

이는 천부적인 자연권으로 국가의 간섭을 배제하는 기본권이다.

 

둘째, 언론을 민주주의 사회의 성립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제도로 보고, 공공에

관련된 정보를 자유롭게 수집 전달하고, 다양한 의견을 표시하고 반영함으로써,

건전한 여론의 형성에 기여하려는 공적 책임을 갖는 언론의 자유의 보장이다.

 

셋째, 표현의 자유를 전제로 하여, 사상과 이념의 자유 경쟁에 의한 진리의 추구가 가장 효과적이라 주장된다. 사상의 자유시장(Marketplace of Ideas)의 개념은 존 밀턴이 영국정부의 출판검열조치에 반발하여 출판한 아레오파지티카 (Areopagitica) 에서 비롯된 것으로, 정부의 검열을 거부하고, 국민 개개인이 진실과 오류를 판단할 수 있도록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주장했다. 진실과 오류가 만나면 결국 진실이 승리하므로 정부의 언론의 통제는 부당하다는 것이다.

 

1952년 언론자유의 수호 및 질 향상을 목적으로 발족한 국제신문인협회 (International Press Institute)는 언론의 자유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발행의 자유 뉴스원에 접근할 수 있는 자유 보도, 전달의 자유 의견 표시의 자유

 

권력의 지배를 받지않는 독립언론은 자유주의 국가의 본질적 구성요소이고, 민주적 정치구조의 기본적 구성요건이 된다. 자유롭게 국가권력을 비판하는 언론 없이, 건전한 민주주의 국가의 존립은 불가능하다.

 

아테네의 위대한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정책을 입안할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그것을 비판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자유민주주의 질서의 핵심적 요인은 1차적으로 국가권력의 행사을 법률로 통제하는 것이며, 국가권력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이 보장될 때 건전한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가 확립될 수 있다. 다수의 전횡으로, 헌법을 위반하여 정파적 이익으로 법률을 만드는 것이 허용된다면 헌정질서는 온전히 보존될 수 없다. 나아가 국가권력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봉쇄하고 무력화시킬 목적으로, 언론사의 자율적인 편집권을 침해하고, 언론사의 경영을 정부가 감시할 수 있도록 한 법률이라면 자유민주주의 발전과 건전한 시장의 경쟁질서를 파괴하는 반민주악법이라 비난 받아 마땅하다.

 

신문업은 다른 산업과는 달리 오직 영리추구만으로 운영될 수 없다. 기업 경영으로도 성공하여야 하고, 동시에 국민생활에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건전한 여론 형성에 기여하여 공익성을 추구해야 하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언론의 공익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국가권력이나 광고주, 각종 이익단체 등의 외부적 통제 요인과 경영진에 의한 내부적 통제요인이 건전한 언론의 자유와 발전을 제약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신문사의 편집권이 신문사의 경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나아가 신문의 보도나 편집이 국가권력이나 광고주나 특정 이익집단에 의하여 제약받기도 한다.

 

새로 개정된 신문법은 신문사업자가 해마다 발행부수, 구독료, 광고료, 주식발행과 소유내역 등을 정부에 보고할 것을 의무화하여 정부가 신문사의 경영을 감시하려 한다. 신문법 제15((자료의 신고)일간신문 또는 일반주간신문을 경영하는 정기간행물사업자는 당해 법인의 결산일로부터 5개월 이내에 직전 회계연도의 신문사업에 관한 다음 각호의 사항을 문화관광부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

1. 정기간행물의 전체 발행부수와 유가 판매부수, 인쇄부수

2. 구독료와 광고료

3. 대통령령이 정하는 표준회계방식에 따른 재무제표, 영업보고서 및 감사보고서

4. 기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

일간신문을 경영하는 정기간행물사업자는 매 결산기로부터 5월 이내에 총 발행주식 또는 지분총수와 자본내역, 그리고 100분의 50이상의 주식 또는 지분을 소유한 주주 또는 사원의 개인별 내역에 관한 사항을 문화관광부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

 

 

이것은 언론사의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억제하여 국가권력이 언론을 통제하겠다는 교묘한 수법의 명백한 언론 탄압이다. 다시 말해 어떤 신문사가 정부에 반대하는 비판적 기사를 쓰면, 언제든지 경영상의 압박을 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이는 언론의 자유 중 <발행의 자유>를 침해하며, 신문사로 하여금 정부에 대한 비판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

 

편집위원회와 편집규약 제정을 법으로 강제하여, 경영과 편집의 분리를 강조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경영진의 편집에 대한 간섭을 배제함으로써 건전한 언론을 육성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여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야비하기 짝이 없는 언론의 탄압이다. 신문사가 경영 상의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언론의 자유의 구현은 불가능하다. 우리 현실에서 신문이 상업성과 공익성을 조화롭게 이끌어 가지 못하면 신문업은 파산할 수 밖에 없다. 공익성을 무시하고 상업성 만을 추구하는 신문이 성공할 수 있을까? 다행스러운 것은 공익성과 독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신문은 상업적으로 실패한다. 다른 산업과는 달리 신문업에서의 경영상의 성공은 공익성을 추구하고 독자의 이익을 극대화할 때 가능하다.

 

열린우리당의 신문법안의 배경에는, 신문사 경영진의 편집권 침해를 막는 것이 건전한 언론 자유를 위해 최우선적 과제인 것처럼 보여주고 있다. 지난 세월 경영진의 편집권 간섭이 건전한 언론의 발전을 저해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을 통한 신문업의 경영상황의 변화는 경영진의 편집권 간섭을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경영진의 편집권에 대한 통제와 간섭은 이제는 독자가 용납하지 않는다. 언론개혁을, 언론의 공공성과 국민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케 하려는 정부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정부가 경영진인 서울신문이 구독률 1위가 되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객관성과 공정성에 기초한 편집권 독립이 제일 시급하고 절실하게 요청되는 신문이 재경부와 포항제철과 KBS99.6%의 주식을 소유한 서울신문이 아닐까?

 

새로 만든 신문법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4항에서, 정기간행물 및 인터넷언론은 국민의 화합과 조화로운 국가의 발전 및 민주적 여론형성에 이바지하여야 하며, 사회 각계 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균형있게 수렴하여야 하고, 지역간세대간계층간성별간의 갈등을 조장하여서는 아니된다.

 

7(독자의 권익보호)정기간행물사업자 및 인터넷언론사업자는 독자가 정기간행물 및 인터넷언론의 편집 또는 제작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편집 또는 제작의 기본방침이 독자의 이익에 충실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법 조항을 입안한 열린우리당에 묻고 싶다.

예를 들면 세대간계층간성별간의 갈등을 조장하여 공정성을 훼손하는 정도가 한겨레 신문이 심할까 아니면 중앙일보가 심할까? 독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독자가 편집 제작에 대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독자의 이익에 충실한 것이 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일을 해보지 않고, 경영이 무엇인지 모르니 이러한 현실성 없는 어처구니 없는 법안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신문사 경영진이라면 독자의 이익에 충실하지 않게 신문을 편집 제작하면 신문사가 망한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특정 정파나 종교집단을 위한 신문이 전체 국민과 독자의 이익에 충실하게 제작하지 못하기 때문에 판매부수가 뒤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신문법을 만든 집권당 인사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편집, 제작의 방침이 독자의 이익에 충실하도록 하라는 법률의 취지가 상업성 위주로 신문을 제작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공공성에 입각하여 신문을 제작하라는 취지인지 분간이 안 간다. 이 같은 내용을 법률에 집어넣은 집권당의 몰상식이 보기에 민망하다.

 

신문법 제16조는 일간신문을 경영하는 정기간행물사업자중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사업자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불구하고 같은 법 제2(정의)7호의 규정에 의한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한다.

1.1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100분의 30 이상

2. 3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의 합계가 100분의 60 이상. 다만, 이 경우에 시장점유율이 100분의 10 미만인 자는 제외한다.

 

신문법 제16조야 말로 열린우리당의 언론개혁의 실체가 조중동 죽이기라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4조는 동법 27호의 규정에 의한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하는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1. 1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100분의 50 이상

2. 3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의 합계가 100분의 75 이상. 다만, 이 경우에 시장 점유율이 100분의 10 미만인 자는 제외한다.

 

모든 산업에 적용되는 독점 규제에 있어서 시장지배적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을 유독 신문업에서만, 1사업자의 점유율 100분의 30이고, 3 사업자의 점유율 합계를 100분의 60이라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조중동이 다른 신문사의 시장진입을 방해하는가? 3개 신문사가 지배적 지위를 남용하여 신문가격을 담합하거나 기타 다른 방법으로 소비자의 이익을 현저하게 저해하는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판단함에 있어서, 시장점유율, 진입장벽의 존재 및 정도, 경쟁사업자의 상대적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되어 있다. 이러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제대로 준용하여 신문법을 운용한다면, 집권당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조중동은 절대로 시장지배적 사업자일 수 없다. (독점규제및 공정거래에관한 법률 제27항의 시장지배적사업자의 정의 - "시장지배적사업자"라 함은 일정한 거래분야의 공급자나 수요자로서 단독으로 또는 다른 사업자와 함께 상품이나 용역의 가격ㆍ수량ㆍ품질 기타의 거래조건을 결정ㆍ유지 또는 변경할 수 있는 시장지위를 가진 사업자를 말한다. 시장지배적사업자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시장점유율, 진입장벽의 존재 및 정도, 경쟁사업자의 상대적 규모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우리나라의 일간지의 자본금의 현황을 살펴 보면 독점규제법에서 말하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없다. 각 신문사의 자본금 현황은 다음과 같다 (1999.2월 기준)

경향신문(133억원),국민일보(300억원), 동아일보(150억원), 문화일보(538.7억원)

서울신문(544억원) 세계일보(452.5억원), 조선일보(170억원), 중앙일보(130억원),

한겨레(197억원), 한국일보(100억원)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 일간신문업 자체가

전혀 독점산업이 전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신문법 제16조가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과 다르게, 오직 신문업에만 다른 비율로 시장지배적사업자를 추정하는 것은 헌법 제11: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법 앞의 평등>의 이념을 위반한 것이기에 마땅히 위헌법률이라 해야 할 것이다.

 

국보법 폐지를 말하며, 사상과 양심과 표현을 강조하는 집권당이, 이같이 터무니 없는 언론탄압을 개혁아란 이름으로 추진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반대의견을 봉쇄하고, 정부의 시책만이 최선이라 고집하는 권력이라면 마땅히 독재권력이라 비난 받아 마땅하다. 온 국민이 노사모 되기를 꿈꾸며, 신문법과 같은 불공정하고 야비한 방식으로,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정권이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있을까?

 

J.S.Mill은 그의 <자유론>에서 사상과 언론의 자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것이 확실하다는 이유을 들어- 확실하다는 것을 자신들이 확신한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견해에 대한 반대는 금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우리들과 의견을 같이 하는 자만이 판정자가 될 수 있으며, 반대자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판정하는 것이 옳다고 가정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J.S.Mill의 견해에 따르면, 정부를 비난하는 보수기득권층의 견해와 보수기득권층을 비난하는 집권세력이 둘 다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딴빠와 노빠로 갈려 서로 자신들의 주장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매도를 일삼는 우리 모두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주장만이 옳고 정당하며 객관적이라 주장하는 것은 정신적 미숙을 드러내는 것과 다름 아니다. 성숙한 인격은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타인과 세상에 대하여 개방적 사고를 견지한다. 국론분열의 위기적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우리의 삶에서 편견과 독단적인 사고를 배제시키고, 가능한한 반성적 성찰을 통하여 합리성과 이성을 회복하고, 대화와 협력을 통한 국민적 화해를 모색하여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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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총리에 기대하는 사회학적 상상력

2004-11-09 11:30:11

 

지금 내 책상 위에 미국의 사회학자 밀즈(C.W. Mills)가 쓴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책의 번역서가 놓여져 있다. 1978년에 발간된 이 책의 번역자는 강희경, 이해찬으로 되어있고, 역자에 관하여, 똑같이 1952년생인 두 사람 중 강희경씨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 이해찬씨는 서울대 사회학과 修學으로 적혀있다. 이해찬 총리가 26세 때 번역한 책이다. 이총리의 젊은 날의 시련의 삶과 민주화운동의 치열성 학문적 성실성을 엿볼 수 있다. 이총리는 1971 서울대학교 섬유공학과 입학, 1972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입학, 1974 ~ 1975, 민청학련사건으로 투옥, 1980 ~ 1982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투옥 되고 1985. 8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다. 그에게 대학졸업장을 받기 위해서 15년 간의 고난의 세월이 필요했었다.

 

 

 

밀즈(C.W. Mills)는 한 개인의 삶과 한 사회의 역사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이해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말하고 있다. 나아가 어떠한 사회 현상이나 개인의 행동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개인의 일생(biography)과 역사(history) 그리고 개인과 역사의 상호 작용을 이해하는 정신적 자질이 필요하다 말하며 이러한 정신적 자질을 일컬어 사회학적 상상력이라 말하고 있다.

 

 

 

지식정보화 시대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매일같이 엄청난 량으로 쏟아지는 정보는 우리가 그 정보를 소화할 능력을 압도한다. 정보화시대의 경쟁력은 필요한 정보를 선택하고 이를 분석, 종합, 가공하여 어떻게 우리들의 삶에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정치가, 경제인, 저널리스트, 학자, 과학자, 예술가, 문화인 그리고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들 모두에게, 정보화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 정보를 분석 종합 가공하는 사고력일 것이다. 나아가 수집 가공된 정보를 적절하게 이용하고 사고를 발전시킬 수 있게 해주는 정신적 자질을 요구한다. 밀즈(C.W. Mills)는 이러한 정신적 자질을 사회학적 상상력이라 설명한다. 한 개인에 대한 이해는 그가 몸담고 있는 사회에 대한 이해 없이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회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는 그 사회의 성원인 한 개인의 구체적 삶으로부터 설명될 수 있을 때 온당하다.

 

 

 

부당한 현실을 거부하고 반항하며 투쟁하는 정신은 평가 받아 마땅하다. 어떠한 사람의 특정한 몇 몇의 행동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실패나 오류는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실패에 이르기까지의 정당한 노력조차 폄하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은 아니다. 실적위주로 이끌려지는 사회에서는 실패한 사람들의 정당한 노력에 대한 평가가 소홀하다. 다양성이 배제되고 흑백논리에 이끌려지는 사회에서 개성적이고 창조적 인간이 성장하기 어렵다. 실적위주로 개인의 삶을 평가하고 승자와 패자로 극명하게 명암이 엇갈리는 사회는 획일성과 능률과 업적만이 강조된다. 이러한 사회의 경직성은, 거듭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기필코 성취해내고야 마는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사회발전의 동력을 스스로 배척하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부당한 현실을 거부하고 반항하며 투쟁하는 정신은 투쟁의 대상의 욕망에 종속되기 쉽다. 독재권력과 투쟁하였던 이총리의 민주투사의 경력은 이총리가 기득권층에 대하여 적대적 증오심을 가지고 성장하여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 총리의 민주화 투쟁의 경력은 그의 성장과정에서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성격을 형성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공격적이고 세련되지 못한 이총리의 언행은 그의 경력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해찬총리 개인의 일생(biography) 과 군사독재의 암울한 역사(history)를 되돌아보면, 최근 이총리의 총리답지 못한 언행에 대하여 이해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총리의 개인적 과거사가 총리로써의 품위를 손상시킨 언행과 야당에 대한 적대적이고 배타적인 태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과거는 과거이다. 국무총리로서의 직책의 막중함을 생각할 때, 그의 말은 경솔하다 비난 받아 마땅하며, 직분에 걸맞지 않은 언론과 야당에 대한 감정적 대응은 그의 정서적 미숙함과 세련되지 못한 매너를 드러내 보여 줄 뿐이다.

 

 

 

이해찬총리의 언론에 대한 막말, 그리고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가 퇴보한다는 발언, 여권의 헌재판결로 인한 수도이전의 좌절 등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지금 국회는 파행 국면을 맞고 있다.

 

 

 

집권당은 개혁만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며, 4대 개혁입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야당은 경제를 살리는 것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라 말하며 오히려 개혁입법의 부당함을 부각시키고 있다.

 

 

 

야당에서는 이총리의 사과와 파면을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대표는 1029일 이해찬국무총리의 지난 28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 과정에서 나온 한나라당 폄하 발언 등에 대해 "의회 민주주의를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며 강하게 반발하여 "여권의 4대 법안 강행처리 때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런 것을 포함해 몸으로라도 막을 수 밖에 없다""당의 명운, 나아가 나라의 명운이 걸린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27일 박근혜 대표는 국회연설에서 현 정권의 개혁을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개혁이 아니었습니다. 국민들은 두 편으로 갈렸고, 극렬한 편 가르기의 폭풍우 속에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쓰라린 증오의 상처밖에 없습니다. 국가를 발전시키지도 못했고, 경제를 살리지도 못했고, 국론을 모으지도 못했습니다.> 백번 옳은 말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하여 현 정권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한다. 한나라당과 수구꼴통이 현 정권을 빨갱이로 몰고, 국론을 분열시켰기에 아무 것도 제대로 못하겠다 변명한다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라 할 것이다. 성공하지 못할 개혁이라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제대로 한 것이 있기나 한 것인가?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책임자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국정의 총체적 상황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이다.

 

 

 

탄핵 후, 복직 이 후 노대통령은 네트워킹에 의한 참여의 정치를 강조하고, 상생과 화해, 대화와 타협을 말했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 자세는 채 2주도 지키지 못하고, 온 국민이 노사모되는 독단적인 개혁, 심지어 수도이전에 대한 반대의 논의조차 자신에 대한 불신임으로 간주하며 전횡적으로 정국을 이끌어 왔다. 노대통령과 집권당의 생각에는 국론을 분열시켜 있는 자와 없는 자를 편가르기 하여 4.15총선에서 빛나는(?) 승리를 쟁취한 것 같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노대통령은 스스로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업보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은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눈 앞의 권력기반의 확장에만 급급하여 나라를 둘로 쪼개버렸다. 의회의 권력을 장악하면, 마음대로 법을 만들 수 있고 그리하면 뜻대로 수월하게 대통령 노릇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면 한시라도 빨리 스스로 잘못을 깨닫기 바란다. 한나라당이 목을 잡고 헌법재판소가 악의적으로 발목을 잡았다고 생각하면 아니될 것이다.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법이라면 법 자체가 규범력을 온전하게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독단적인 밀어붙이기 방식으로는 결코 대통령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自業自得이란 말이 있다. 지은 대로 받는 것이 세상사는 이치이다. 대한민국 국민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 아닌 지지자들- 그들만의 대통령이 되어버린 노대통령의 앞날이 결코 순탄할 수 없는 것은 노대통령 스스로 자초한 스스로의 업보이다. 지금부터라도 노대통령 스스로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자각하고, 남을 다스리려는 사람은 먼저 스스로를 다스려 한다는 진실을 깨닫기 바란다. 대통령부터 솔선하여 법을 준수하고, 개혁입법은 반드시 합헌적 질서의 테두리에서 만들며,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어 국민적 지지를 기반을 만들어 가야만 성공적인 개혁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나는 우리 시대에 가장 절실하게 고갈된 자원이란 <사회적 연대성>의 이념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처한 국가 위기상황이 오직 노대통령의 잘못된 개혁에서 기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한다. 지난 40여 년간 마치 종양처럼 자라온 사회경제적 구조적 모순, 사회구조적 부조리, 그리고 지난 17년간 당파적 이해에 얽혀 진행되어온 그릇된 방식의 민주화 개혁이 지금의 체제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개혁은 회피할 수 없는 우리의 생존전략이다. 우리사회의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없이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한나라당이나 박근혜대표의 상황인식이란 우리가 처한 국가적 문제의 본질-개발독재가 가져온 사회경제적 구조적 모순-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며 경제 살리기가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라 말하고 있을 뿐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접근 방식으로는 결코 경제가 살아나지 못한다. 불신과 반목, 대립과 갈등, 법과 원칙이 무너진 사회에서 경제적 접근으로는 경제조차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현 정권의 개혁 또한 문제적 현실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문제적 사회상황을 타파하는 것이 전부인 양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부조리한 우리 사회에 대하여 사회역사적 이해와 문제적 현실에 대한 균형잡힌 이해와 현실적 고려 없이 당위성과 당파성에 집착하여, 성급하고 허술하게 진행된 현 정권의 무모한 개혁으로 우리의 현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집권당의 개혁은 그야말로 허술하기 짝이 없다. 자신들의 요망사항만으로 성공적인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반면 실패하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을 무모하게 시도한다. 문제적 현실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량과 적절한 방법이 착실하게 준비되어 있지 못한 개혁이 성공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뭉치면 살고 싸우면 우리 모두 공멸한다. 증오심과 적개심으로는 결단코 개혁을 성공할 수 없다. 상호존중과 대화와 협력 나아가 건전한 국가질서-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 나아가 인간존중에 기초한 상호 협력적 사회- 의사소통이 자유롭고 활력 있는 국가와 사회질서를 만들어가는 것이 개혁의 최우선 과제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나는 현 정권과 이해찬총리에게 보다 폭넓고 창의적인 사회학적 상상력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밀즈(C.W. Mills)<사회학적 상상력>을 소유한 사람만 역사적 국면에서, 다양한 개인의 내면생활과 외적인 사회적 제도적 생의 의미를 조화롭게 이해할 수 있다 말한다. 개혁의 성패 여부는 개혁의지에 보편적 설득력을 확장하는 데에 달려 있다. 보수기득권 세력의 사고의 경직성이 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개혁의 성공여부는 전적으로 집권당의 책임이며 그 어떠한 변명으로 개혁의 실패에 대한 면책사유가 될 수 없음을 자각해야 한다. 성공적 개혁은 반대자들의 마음 속에서 개혁에 동참할 의사를 발굴해 내고, 나아가 국민적 지지기반을 넓혀 가는데 있다.

 

 

 

개인은 자기 자신의 삶의 위상을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와 역사 속에서 이해하게 될 때, 자신의 경험을 보다 보편적인 지식으로 만들 수 있고, 보다 성공적인 삶의 기획이 가능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기회를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포착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미래를 보다 성공적으로 만들어간다.

 

 

 

자신만이 옳고 객관적이라 주장하는 것은 정신적 미숙을 토로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자유주의적 삶의 가치는 그 무엇보다 타인과 세계에 대한 개방성에서 찾을 수 있다. 지적 정직성은 자신의 주장의 한계를 이해하고 포기할 조건을 아는데 있다. 자신의 주장이 절대적이지 않고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개방적인 정신은 항상 학습할 수 있다. 반성은 때로는 열등감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를 필요로 하지만 인간은 반성적 성찰을 통하여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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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법의 문제점

2004-12-06 18:16:53

 

1. 반대신문 죽이고, 지지신문 살린다.

2. 언론개혁- 국민이 무식한 때문

3. 신문법-말이 되지 않는 법

4. 노대통령 찬양을 위한 신문법

 

 

노무현 후보 언론 국유화 발언

 

200244일자 한국일보는<"작년 언론국유화 발언">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인제(李仁濟) 의 김윤수(金允秀) 공보특보가 노 후보의 발언이라고 주장하며 소개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 ‘강력한 개혁을 위해서는 언론이 한 방향으로 가는 게 중요하므로 한국은행 국채 발행 등을 통해 메이저 신문들을 국유화하겠다’ ‘언론사주의 주식 보유 제한도 필요하다등의 유력 신문 국유화와 관련된 것이다. 김 특보는 또 노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동아일보 김병관(金炳琯) 회장 퇴진을 요구하되 이를 거부할 경우 동아일보를 폐간시키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특보는 이 같은 발상은 공산국가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북한이 노동신문을 통해 여론조작을 하는 것이 유일한 사례일 뿐라고 언론관에 대한 노 후보측의 답변을 촉구했다.

 

 

 

1. 반대신문 죽이고, 지지신문 살린다.

 

무엇을 위한 언론개혁인가? 개정 신문법안의 핵심내용은 무엇인가?

쉽게 말해, 친노신문에게는 정부가 기금을 지원하고, 반노신문은 죽이겠다는 언론개혁이다. 언론의 자유를 뿌리째 짓밟는 신문법이다. 정부에 반대하는 신문은 죽이고, 현 정권을 찬양하는 신문에만 재정적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비판을 거부하는 정부라면, 더 이상 민주주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개정 신문법은 언론의 자유를 말살하고, 공공성이란 미명하에 언론을 국가의 지배 하에 두겠다는 반민주적 발상에서 만들어졌다.

 

언론의 자유란 민주주의 사회의 필수불가결한 제도이다. 언론은 공공에 관련된 정보를 자유롭게 수집 전달하고, 다양한 의견을 표시하고 반영함으로써, 건전한 여론의 형성에 기여하려는 공적 책임을 갖는다. 권력에 지배를 받지 않는 독립언론은 자유주의 국가의 본질적 구성요소이고, 민주적 정치구조의 기본적 구성요건이 된다.

 

참된 언론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를 전제로 하여, 사상과 이념의 자유 경쟁에 의한 진리의 추구가 가장 효과적이라 주장된다. 사상의 자유시장(Marketplace of Ideas)의 개념은 존 밀턴이 영국정부의 출판검열조치에 반발하여 출판한 아레오파지티카 (Areopagitica)에서 비롯된 것으로, 정부의 검열을 거부하고, 국민 개개인이 진실과 오류를 판단할 수 있도록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주장했다. 진실과 오류가 만나면 결국 진실이 승리함으로 정부의 언론의 통제는 부당하다는 것이다.

 

신문업의 시장점유율을 규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언론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짓밟는다. 1952년 언론자유의 수호 및 질 향상을 목적으로 발족한 국제신문인협회(International Press Institute)는 언론의 자유를 [발행의 자유 뉴스원에 접근할 수 있는 자유 보도, 전달의 자유 의견 표시의 자유]로 정의하였다.

 

개정 신문법은 발행의 자유를 억압하고, 공정성과 독자의 이익을 위하라는 미명하에 의견 표시의 자유를 억압한다. 독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편집 또는 제작의 기본방침이 독자의 이익에 충실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겨레가 적자이고 조중동이 흑자인 것은, 한겨레가 독자의 이익을 무시한 정치적 찌라시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했다면 이처럼 멍청한 법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소비자의 이익을 극대화하여 줄 때, 기업의 이익은 극대화된다. 제대로 일해 보지않은 386개혁세력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개정 신문법은 포퓰리즘을 등에 업은 집단주의적 전체주의가 필연적으로 폭정으로 전락한다는 것을 증거한다. 무엇을 위한 신문법 개정인가? 비판을 봉쇄하기 위한 신문법 개정이다. 더 이상 민주주의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신문법과 민주주의는 결코 공존할 수 없다.

 

 

 

2. 언론개혁- 국민이 무식한 때문

 

 

성공회대 조희연교수는 월간 인물과 사상 20034월호에서 <노무현 정부 이후, 언론개혁운동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글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대안적 소통을 위한 대안적 매체(조희연씨 주장)

 

노무현 정부의 성립으로 반개혁적 세력이나 보수적 집단들도 변화를 강요 당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언론개혁운동은 보수언론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대안언론의 성장을 통해 대안적 소통이 가능해져야 성공할 수 있다. 그 동안 국민들은 조중동 등 거대 보수언론에 독점화 된 공론장에서 해석된 정보를 그냥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살아왔다. 공론장이 왜곡될 때 국민들은 현실의 다양한 사건들을 왜곡하는 해석속에 살아가게 된다. 예컨대 2000년대의 한국 사회는 명백한 계급사회로 상층은 계급의식적투표를 하는데, 저소득층이나 저학력층에서 계급의식적투표를 하지 않고 있다. 균형 잡힌 사회는 많은 대안적 매체들이 만들어지고, 이를 통해 많은 국민들이 정상적인 해석을 부여받아야 가능하다.

 

오마이뉴스나 다양한 새로운 인터넷 매체를 통한 진보적이고 전자(電子)적인 의사소통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국민들도 단순한 비판을 넘어서서 대안적이고 진보적인 해석과 정보를 소비할 수 있어야 한다. 보수언론에 의한 여론의 독점적 통제와 공론장의 왜곡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대안적 소통이 확산되고, 보다 많은 국민들이 대안적 매체를 접할 수 있는 다각적인 노력과 고민이 필요하다.

 

==============>(필자 의견) 개정 신문법은 건전한 여론 형성을 위해 언론 시장을 규제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보수언론의 여론 독점적 왜곡을 기정사실화 한다. 지금과 같이 인터넷이 보급된 현실에서 여론의 왜곡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서프나 오마이뉴스 등의 친노매체들은 여론의 조작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 같다. 그리하여 줄기차게 여론을 조작하고 왜곡한다. 그리고 여론을 왜곡하면 언론이 독자들에게 외면당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조중동은 철저한 상업지다. 독자의 이익에 반하면 판매부수가 줄고 판매부수가 줄면 광고수입이 주는 것을 이해한다. 언제부터인지 일간지의 사설이 뒷면으로 밀려나고 있다. 대다수 국민은 정치적 사안에 무관심하다. 조중동은 정치기사로 구독자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니다.

 

조희연씨나 집권당의 386세대들은 전국민이 계급의식화 되어야 하는 것이 공공성이라 착각한다. 이러한 입장이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사회를 불신과 반목, 대립과 갈등의 파국으로 이끌어가는 현실은 외면하려 한다. 있는 사람 한 사람 죽이면 없는 사람 열 사람 죽을 수 있다는 경제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금욕주의적 마르크시즘이 역사적으로 실패작으로 판명난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한다. 현 집권당의 나팔수가 되어 정치선전에 몰입된 오마이뉴스 서프라이즈가 건전한 언론인가? 개정 신문법은 건전한 언론을 육성한다는 미명하에 친노매체에게 대폭적인 재정지원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건전한 언론 발전을 위한 것이고, 대안적 매체를 통한 건전한 공론장을 만들어 가는 것이란 말인가?

 

 

개혁적 시민과 보수언론의 분리(조희연씨 주장)

 

시민사회의 다원화 흐름을 염두에 둔다면 200만 부 이상의 독자가 조선일보를 매일 보면서 그 영향을 받고 있는 상황은 우리 사회의 여론질서에 비추어 볼 때 비정상적인상황이다. 100만 부 정도로 축소 조정되는 것이 진정한 정상화의 경험적 지표라고 생각된다. 문성근씨는 적극적으로 이런 주장을 한 바 있다. 진정 문제는 보수적 언론의 영향하에 있지 않아야 할 시민과 민중들이 그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보수적 이념에 따라 조선일보를 보는 사람들과 달리 자신의 계급적경제적 지위가 반()조선일보적이거나 개혁적자유주의적진보적 지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 구독을 주체적으로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캠페인이 필요하다. 언론운동이 내장하고 있는 보다 적극적인 측면, 즉 그 동안 성역화 되어 있던 우리 사회의 보수적 질서를 혁신하는 운동 내지는 정상화하는 운동이라는 성격, 그리고 이를 위한 광범한 연대운동이라는 성격을 회복해야 한다.

 

============> (필자 의견) 일본의 요미우리(讀賣新聞)977만부로 세계최고의 발행부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일본이 비정상적 사회는 아니다. 왜 조중동이 죽어야 하는가? 개정 신문법이나 조희연씨는 국민이 멍청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비판적이며 객관적으로 사회문제를 바라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국민은 자신의 계급적 이익에 반하는 줄도 모르고 멍청하게 조중동을 구독한다는 것이다. 이같이 무지한 국민을 위해, 공론이 왜곡되는 비정상적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공공성(?)에 입각하여 정부가 까불면 조중동을 약탈하는 방식으로 조중동을 죽이겠다는 것이다. 문성근씨는 <조선일보를 100만 부 정도로 축소 조정되는 것이 진정한 정상화의 경험적 지표>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시장경제로 움직이는 사회에서 정상인이 갖을 수 있는 사고방식인가? 조중동의 왜곡된 여론 형성은 저지되어야 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조중동의 판매부수는 줄어들어야 한다는 것이, 신문법이 말하는 공공성이며 독자의 이익을 위하는 언론개혁이다. 약자의 이익과 민중해방을 위하여 반개혁적인 조중동이 망해야 하는 것이 역사발전을 위한 시대적 당위성이라는 것이다. 약자의 이익을 지키는 공공성을 위하여 나아가 민중이 주인되는 역사발전을 위하여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우리사회에 계급적 의식이 확산되는 대중의식화가 이루어져야 믿고 있다. 언론개혁의 핵심은 보수기득권 질서를 때려부수기 위한 대중적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데에 있다. 단순히 조중동이 미워서 때려잡겠다는 것이 아니다. (민중)민주주의를 위한 개혁을 성공하기 위해 지지기반을 확산하는 대중의식화가 절실하고, 이에 방해되는 조중동을 약탈하여 죽이고, 친노매체를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육성하려는 것이 신문법 개정의 이유이다.

 

 

 

3. 신문법-말이 되지 않는 법

 

신문법은 서프나 오마이, 한겨레에 돈을 대 주고, 조중동으로부터 돈을 빼앗을 맘보로 만들어졌다. 신문법은 조중동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라는 올가미를 씌우려, 유치하고 무지한 잔머리를 굴린다. 신문법은 법이 어디까지 엉터리로 만들어질 수 있는가 하는 한계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조중동이 시장지배적 사업자라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조중동의 죄는 우리사회의 여론 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한 죄다. 여타의 신문사보다 국민적인 신뢰도가 높은 것이 죄가 된 것이다. 이것을 억제할 대책이 없으니 되지 않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라는 올가미를 씌어 조중동을 죽이려는 것이다.

 

신문법 제16조 는 일간신문을 경영하는 정기간행물사업자중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사업자는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 제4조에 불구하고 같은 법 제2(정의)7호의 규정에 의한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한다.

1.1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100분의 30 이상

2. 3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의 합계가 100분의 60 이상. 다만, 이 경우에 시장점유율이 100분의 10 미만인 자는 제외한다.

 

신문법은 조중동을 잡기 위해서, 국민을 기만하고,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내용을 법률에 담은 것이다. 독점거래법 제4조에도 <불구하고>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하겠다면,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판단기준이나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제제나 처벌 조항을 신문법에 명시하여야 합당하다. 다시 말해, 신문법에 의한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된 사업자를, 시장점유율을 산정하는 기준이 다른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열린당 의원들은 조중동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미리로 정해 놓고, 되지 않을 법을 만든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문사의 영업을 제대로 된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 정부 마음대로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신문법은 물리적 강제력을 갖는 정부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 그야말로 엿장수 마음대로 신문업자를 약탈할수 있도록 만든 법이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를 위한 법률>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하는 것은 경제권력이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것을 제제해야 하지만, 자유경쟁의 시장질서를 최대한 보호하는 입장에서 정부의 시장개입을 엄격히 제한하려는 것이 독점규제법의 입법취지이다. 신문법은 이러한 시장질서를 근본적으로 파괴한다.

 

신문법을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그야말로 무지함이 돋보인다. 최근에 열린당에서 점유율의 기준이 되는 일간신문을 서울에서 발행되는 종합일간지에 국한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웃기는 소리다.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된 후, 신문사가 서울에서 서울근교나 지방으로 이사가면 괜찮은가? 독점규제를 위한 법을 만든다면 최소한 법리적으로 독점규제가 무엇인지 경쟁법에 관한 교과서라도 한번쯤 읽고는 법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그야말로 독점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를 무시하는 법을 만들었다. 1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30%일 때, 실질적으로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 생각하는가? 독점이란 말 뜻을 모르고 법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3사업자가 시장 점유율이 모두 30%라면 3사업자 모두가 독점 사업자가 되는가 아니면 과점사업자가 되는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을 내용을 법률이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 기막히고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다.

 

독점규제법상의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推定함에 있어, 1사업자에 대한 추정을 독점의 추정(Monopolvermutung)이라 하고, 3사업자에 대한 추정을 과점의 추정(Oligopol-Vermutungen)이라 한다. 신문법에서 말하는 추정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나 하고 법을 만들었을까? 신문법에서 말하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추정>이 입증책임의 전환인가? 아니면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판단하는 작업에 대한 착수조건인가?

 

열린당 홈페이지에는 이 법을 책임 입안한 사람은 정청래 의원으로 되어 있다. 당연히 이 법을 만든 자는 나의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를 만큼 무지하다. 무식하면 용감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이란 자가 이처럼 상식적으로 되지 않을 내용을 법이라고 만든 것이다. 열린우리당 이종걸 의원은 한 토론회에서 신문법에서의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추정이라 말하지 않고 아예 간주(看做)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 민법에서, 추정은 반대의 증거가 제출되면 규정의 적용을 면할 수 있지만, 간주는 법률의 정한 효력을 당연히 생기게 하는 것으로 간주조항은 <으로 본다>고 표현한다.) 민변 출신 돌팔이 법조인들이 헌정질서를 어떻게 파괴하는 줄 모르고 자신들 당파적 이익에 급급하여 만들어 낸 것이 4대 개혁입법이다. 신문업은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판단하는 기준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개정 신문법을 만든 이유는 간단 명료하다. 까부는 조중동을 죽이고 서프나 오마이뉴스 등 친노 신문 돈 주기 위해 만든 법이 개정 신문법이다.

 

 

 

4. 노대통령 찬양을 위한 신문법

 

 

김일성은, 정치권력이란 일정한 계급 또는 사회공동의 이익에 맞게 사람들의 활동을 통일적으로 조직하고 지도하는 사회적 기능이라 말한다. 권력은 도의적 권위에 기초한 권한이 아니라, 조직적 힘에 기초한 절대적 권한이고, 사람을 죽일수도, 자주권을 부여하여 행복한 생활을 안겨줄 수 있다 말한다. 개정 신문법이 그리고 4대개혁 입법이 노대통령을 절대적 권한을 지닌 수령으로 떠받드는 사고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해찬 총리가 조동은 내 손안에 있으니 까불지 말라며 큰소리치는 배경에 깔려 있는 생각 또한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김일성과 노대통령을 동일한 반열에 올려놓고 설쳐대는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사회의 개혁이 어떻게 진행되는가? 민중의 함성이 곧 법이되는 식으로 권력행사의 합법적 절차가 무시되고 있다. 노대통령의 의견에 대한 반대의사의 표시는 곧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라 협박한다. 이러한 생각을 지닌 대통령이 언론 국유화를 꿈꾸고, 조중동을 죽이려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로 여겨진다. 흔히들 말하는 노사모나 노빠 좌파지식인들은 기득권층을 때려부수는 한 노대통령의 행동은 무조건 옳다고 여기는 실정이다. 문희상의원은 온 국민이 노사모 되는 것이 개혁의 성공 조건임을 강조했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집단주의적 전체주의가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노대통령의 일인 독재가 시작되었다는 표식이다. 집권세력은 노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혁명적 영도체계를 세우는 것이 개혁의 선결조건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노대통령을 중심으로 똘똘 몽쳐야만 반개혁세력을 물리치고 개혁의 성공을 약속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도자의 올바른 영도만이 개혁 성공의 확실한 담보이고, 노대통령이 개혁의 중심에서 온 국민에게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노대통령의 전위대를 강력히 조직하여 개혁의 필요성을 온 국민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개혁에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노대통령 - 집권당과 노사모, 서프 같은 전위조직을 통하여 개혁의 필요성이 전 국민으로 확산되어야 개혁을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확립하는 길이다.

 

개혁에 대한 대중적 지지 확산을 막는 제1의 적은 누구일까? 당연히 조중동이다.

성공적 개혁을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은 개혁의 당위성에 대한 대 국민 선전전략이다. 이것이 조중동이 죽어야 하는 이유이고, 용왕님 덕에 부활한 예수같은, 패배를 모르는 인간 노무현의 신화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집권당은 왜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신문법을 만드려는가?

계급 이익에 투철한 대중 의식화를 위해,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무장하여 가열찬 투쟁을 통해 기득권층을 때려부수어야 민중이 비로소 해방된다. 온 국민이 노사모되고, 놀렐루야가 방방곡곡에 울려 퍼져야 개혁이 성공한다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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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지식에서 나온다

2006-05-02 13:22:48

 

- 조인스 닷컴에 기대한다.

 

 

 

1. 중앙일보에서 조인스 닷컴으로 진화

2. 권력은 지식에서 나온다.

3. 조인스 닷컴의 발전전략

4. 콘텐츠의 가공방식-디국의 역할과 가능성

5. 맺는 말-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

 

 

1. 중앙일보에서 조인스 닷컴으로 진화

 

<사람을 받든다> <사회를 밝힌다> <세계를 향한다> <미래를 밝힌다.>는 중앙일보의 길을 읽어보았고 그 의미를 새겨보았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존중의 이념에 기초하여 품위 있는 삶을 지향하는 매체, 가치있는 정보를 신속 정확 깊이있게 제공하고 사회정의를 세우는 중앙일보, 끊임없는 자기혁신을 통한, 우리사회와 국가의 진로, 21세기 신문명의 흐름을 집어내고 이에 상응하는 문화적 역할을 자임하는 중앙일보 길에 전적으로 공감을 표합니다.

 

정보가 힘이되고 돈이되는 시대라 밝히며, 미디어와 통신의 융합이 진행되고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필요하고 유익함> 정보를 <공정>하고 <신속, 정확> 하게 공급하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조인스 닷컴(JMN)JoongAng Online Information and News Service가 진화하여 Media Network를 포함하는 매체를 발돋음하였습니다.

 

조인스 닷컴은 발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해결해야 할 다음의 몇 가지 문제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운영철학에 대하여 마음 터놓고 대화하여, 힘을 합쳐 나아가는 컨센서스를 만들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급변하는 온라인 미디어 시장에서, 취약한 닷컴사의 수익구조를 개선하는 전략으로 콘텐츠 가공을 통한 정보마켓팅 회사로의 발전 전략을 밝히고 있습니다. 먼저 콘텐츠의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와 관련 주간지 월간지들을 융합하는 문제에 대한 연구를 하며,

오프라인 편집국에서 주장하는 공익성과 그룹전체에서 보는 사업성을 조화시키는 문제에 대하여 사업성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편집국과 온라인 간의 통합을 모색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2. 권력은 지식에서 나온다.

 

우리 사회의 발전방향과 조인스 닷컴의 운영철학을 보다 보다 확고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 혁신적인 테제를 제시하려 합니다.

 

Knowledge is Power.

영국의 법률가이며 정치가이고 철학자이며 대문장가인 F. Bacon의 말입니다.

나는 이를 <권력은 지식에서 나온다>로 해석합니다. 지식정보화 시대에서 인터넷 미디어 산업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한 핵심적인 철학과 경영이념은 나아가 사회나 국가와 사회의 발전전략의 키워드는 <권력은 지식에서 나온다>는 것을 확실한 철학으로 이해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정보는 정보일 뿐입니다. 유익할 수도 유해할 수도 있는 것이 정보입니다.

 

어떠한 가치관에 기초한 가공된 콘텐츠가 지식입니다. 미디어 산업의 본질은 정보를 지식으로 가공 유통 판매하는 사업입니다. 지식의 가치는,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신뢰할 수 있는 지식으로 만드는 가공능력으로 결정됩니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미디어 사업의 발전과 사회발전은 무엇보다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를서 통하여 결정됩니다. 조인스 닷컴은 국내 최고의 네트워킹을 위한 인프라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인스 닷컴을 발전을 제약하는 장애요인 무엇입니까?

 

이에 대하여 조인스 닷컴 하지윤 대표는 이에 대하여, <오프라인 편집국 시각과 그룹전체의 시각 차이는 영원한 숙제라 말했습니다.> 이 시각 차이를 허무는 것이 조인스 닷컴이 성공하는 핵심적 문제라 생각합니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하대표가 말한 <영원한 숙제>란 생각처럼 심각한 문제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이 지식에서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중앙일보의 길> 밝힌 독자와 국민의 편에서 권력에 과감히 맞설 것이라는 생각을 과감히 버리고 보다 발전적인 사고로 우리사회가 진화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식정보화시대에서 조인스 닷컴은 권력을 추구하여 품위있는 정론지가 되고, 이윤을 추구하여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면 됩니다. 권력을 추구하면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고, 회사 이윤을 극대화 하면 조인스 닷컴을 이용하는 소비자의 이익이 극대화 될 것입니다.

 

산업사회에서는 정치시스템, 경제시스템, 사회문화시스템 중에서 정치시스템이 가장 상부구조에서 경제시스템이나 사회문화시스템을 조정하고 사회의 성격을 규정하는 역할을 주도합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은 고급화될수록 지식에 의존하여야 하는 것이 지식정보화 사회입니다. 부분적으로 사회 문화시스템이 정치 시스템보다 상부구조 바뀔 것입니다. 지식과 문화가 정치 경제 사회를 향도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지식은 모든 국민을 위하여, 정치발전을 위하여 정치권력이 사회정의와 보편적 진리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정당한 권력이 되기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급변하는 사회상황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은 무엇보다 자신들의 힘의 유지 및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지식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권력이란, 이제껏 일반인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권력과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권력은 사회와 국가의 정당성을 공고히 하는 힘이며, 국민을 보호하고 사회발전의 동력이 되는 힘입니다. 권력은 윤리를 만드는 힘이여, 동시에 인간해방의 수단입니다. 권력은 권력자의 욕망을 총족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사회의 건전성을 육성, 발전시키는 권력입니다.

 

문화는 사회를 보호하고, 사회성원들에게 새로운 동기를 부여합니다.

 

지식정보화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권력은 필연적으로 지식에 기초한 문화권력이 될 것이고, 권력은 진화된 매체를 가지고 있을 때 그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가장 강력한 권력은 비판적이며 반성적 지성에 기초해야합니다.

 

세상은 지식을 가진 자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보편적 진리와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지식이 지배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다 고급화된 가공된 지식이 가장 가치있는 지식이 될 것입니다.

 

권력은 지식에서 나옵니다. 지식이 곧 권력입니다.

 

 

 

3.조인스 닷컴의 발전전략

 

정치권력이 권력을 얻는 방법이나 경제권력이 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사고가 요구됩니다. 미디어 사업처럼 마케팅에서의 전략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사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의 이익을 극대화할 때, 기업의 이윤은 극대화된다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원칙이고, 이 원칙이 가장 교과서적으로 들어맞는 사업이 미디어 사업이라 생각합니다. 미디어 산업은 가장 공익적일 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고, 소비자에게 가장 커다란 만족과 효용을 제공할 때 기업의 이윤은 극대화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면 <오프라인 편집국과 온라인> 간의 이견과 갈등은 저절로 해소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실질적으로 성취하기 위하여 전략적 사고를 필요로 합니다.

 

공익과 사회발전에 기여하여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가 되고, 동시에 소비자의 만족과 효용을 극대화하여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을 어떻게 수립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전략적 사고란 어떠한 문제를 다차원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략적 지도력은 어떠한 사안을 다차원에서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어떠한 목표를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중요한 문제, 긴급한 문제, 실질적 성과 등을 균형 있게 판단하고, 이러한 판단을 바탕으로 작업 수행의 우선 순위를 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조인스 닷컴은 <중앙일보의 길>이 추구하는 정신과, 소비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을 통하여 조인스 닷컴을 세계적 브랜드 벨류를 갖는 회사로 가꾸어 가야한다 생각합니다. 이를 위하여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며, 사안으로부터 기존의 포탈 사이트와 차별화하여 새로운 미디어 사업을 주도하는 회사로 발전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공익성을 추구하여 우리사회의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영향력 있는 매체가 되고, 동시에 소비자의 만족을 극대화 하여 기업의 이윤을 창출하는 것은 전혀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조인스 닷컴은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국내 최고의 인적 물적 인프라를 가지고 있고, 세계적인 브랜드 가치를 갖는 세계최고 수준 회사로 발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조인스 닷컴이 발전을 위한 몇가지 의견을 피력하고자 합니다.

 

지금 조인스 닷컴을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너무 다양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통합하여, 하나의 방향성을 갖는 미디어매체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라 생각합니다. 문제의 어려움은 각 매체마다 매체별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고, 그 나름의 독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는 하나나 하나 매체를 놓고 평가하면 그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조인스 닷컴을 발전을 위해서 취할 것과 버릴 것을 정하는 것이고 이것을 위해서 조인스 닷컴의 운영철학이 무엇인가 최우선적으로 확고하게 확립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조인스 닷컴이 성공하면 기존의 매체에 종사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유익한 것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조인스 닷컴의 초기화면 이제껏 제작되어온 각종 잡지들이 이름이 있습니다. 원론적이 주장으로 이 모든 이름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 필자 생각입니다. 조인스 닷컴은 컴퓨터로 비교하면 포맷하고 운영체제 인스톨하고 운영체제에 작동원리에 입각하여 프로그램을 인스톨하고, 유저인터페이스로서의 가장 사용하기 편리한 디렉토리를 구축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조인스 닷컴이 다루는 정보를 주제별 카테고리를 확실하게 설정하는 것입니다. 정치 시민사회, 경제 재테크, 웰빙, 문화예술 오락, 교육 강좌, 쇼핑등을 분류하고, 이에 맞춘 광고를 배치위치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기존의 매체의 통합 원칙을 확고히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확립된 카테고리에 연관성 있는 콘텐츠만을 선택적으로 기존의 주간지나 월간지로부터 가져오고, 그 성공여부를 효과를 기초로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편집방향을 접근시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조인스 닷컴의 통합성을 해치는 요소는 배제하고, 방향성을 확립해 나아가면서 기존은 매체들이 조인스 닷컷을 콘텐츠를 지원하는 하위 콘텐츠로 발전해야 합니다. 상위 디렉토리에서는 사람을 끌어 모으고, 하위 콘텐츠로 갈수록 고급화 해야 합니다

.

조인스 닷컴이 정론지로써의 역할을 담담하려 한다면, 초기화면이 편집과 구성이 기존의 포탈처럼 젊은 이 들이 오락을 위한 상업주의적인 방식의 편집이어서는 아니되고 중일보의 품위와 손상시켜서는 결코 아니된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입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실험적으로 시도하면서 독자등의 반응과 시너지 효과를 등을 고려하여 보다 진화된 매체로의 발전의 원칙을 확립하여야 합니다. 매체의 통합원칙은 경직된 원칙이어서는 아니됩니다. 상황의 변화에 전략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업그래이드 원칙을 학립해야 합니다.

 

 

 

4 콘텐츠의 가공방식 - 디국의 역할과 가능성

 

조인스 닷컴이 이제 막 출범했습니다.

조인스 닷컴은 초기 메뉴 상단에 뉴스, 핫이슈 토론, 탐사기획있고, 바로 위 부분에 인기 검색어 표시하고 검색 창이 있습니다. 뉴스는 단순한 정보입니다. 이를 핫이슈 토론을 거쳐서 탐사기획 기사로 만들어가는 것이 콘텐츠를 재가공하는 프로세스가 되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정보를 가공한다는 것은 그 정보의 의의와 가치와 우리들의 삶과의 관련성 속에서 보다 입체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을 말합니다.

 

정보의 가공할 때, 정보의 성격에 따라 가공방식을 차별화해야 합니다.

 

첫째, 사실의 보도가 가치있는 정보는 정보의 현장성과 입체감을 고려하여 정보를 만들어야 합니다.

 

둘째, 어떠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그 정보와 다른 연관성을 강조해야 하는 정보가 있습니다. 이는 하이퍼텍스트와 관련기사를 보여줌으로써 가능합니다.

 

셋째, 어떤 기사에 대한 특히 핫이슈 토론에 대한 많은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도록 해야 합니다. 디지털 국회는 이제껏 여론을 수렴하는 여타의 다른 그 어떠한 매체보다 네티즌의 의견을 수렴하고, 건전한 공론장으로써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데에 있어 성공적 있었다 생각합니다.

 

최근 디지털 국회 뿐 아니라 정치관련 사이트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식상해 하고 있습니다. 어떤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대하여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사실에 대한 균형잡힌 의견을 피력하지 아니하고,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파를 위해, 반대파들에 대하여, 배타적이고 적대적으로 대응하면서, 저질 욕설과 인터넷 상에서 글쓰는 사람에 대한 모욕과 명예훼손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욕설이 근절되어야 합니다. 욕설이 근절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가운데, 특정 사회적 이슈에 대한 시비곡직과 찬반토론이 활성화 되어야 합니다.

 

필자는 디지털 국회가 이러한 기존의 편집자의 기획만으로 만들어졌던 일방적인 매체가 아닌, 편집자와 디국에 글을 쓰는 모든 이들, 모든 독자들이 참여하여, 건전한 여론을 형성해 가는 공론장의 전범(典範)을 만들어 가기를 기대합니다. 필자는 디지털 국회에 그 누구보다 애정을 가지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글쓰기를 해왔다 자부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언론문화와 정치문화가 네티즌에 의하여 업그래이드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디국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글쓰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된 것은 우리나라 그 어느 매체보다 디국이 개방화된 건전한 공론장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의 사회발전은 무엇보다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를 통하여 달성됩니다. 중앙디국이 구호만이 아닌 명실상부하게 <네티즌이 만드는 Upgrade Korea>를 성취하기를 기대합니다.

 

지식정보화 시대에서 해설이나 평론기사가 강조되는 시대라 생각합니다. 핫이슈에 대하여, 이에 대한 해설기사를 각계의 전문가들이 디지털 국회에 글을 쓰는 유인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말하는 네임밸류를 가지고 정치사회에 대한 해설이나 평론이 된자에게 먹혀들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신문 사설이 뒷면으로 밀려나고, 과거에 영광(?)을 누렸던 수많은 논객들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습니다. 오직, 어떠한 문제를 바라보는 독자의 시각에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가치있는 기사만 살아남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가치있는 기사들은 조인스 닷컴에 참여하는 주간지나 일간지에 게재되도록 해야 합니다. 가치 잇는 기사들을 쓴 필자에게는 기사의 가치에 상당하는 소정의 고료가 지금되어야 하고, 가치있는 기사가 주간지나 월간에 게재되도록 결정되면, 그러한 기사는 독자들에게 마땅히 유료로 공급되어야 합니다.

 

이는 디지털 국회의 발전과 조인스 닷컴의 발전과 함게 시너지 효과를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종이신문,주간지나 월간지에 게재되는 기사가 기사화 되기 전에 독자의 검증하에 게재됨으로써 공정한 여론 형성을 위한 품위있는 정론지를 만들어갈 수 잇는 가능성을 만들어 가고, 독자와 조인스 닷컴이 서로 공동의 이익을 낼 수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평론 기사-가장 신속하게 다각적으로 측면에서 깊이 있게 가공하는 정보가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정보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넷째, 이러한 정보들과 전문적인 논문이나 서적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해야 합니다.

 

흔히들 우리나라를 IT강국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속 사정은 살펴보면 껍데기 뿐인 IT 강국일 뿐, 정말 가치 있는 국가의 발전의 동력이 되는 고급화된 지식시장이 전무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지난 몇 달 사인언스 논문조작의 진상 규명을 위하여 세계를 누비며(?) 웹서핑을 한 적이 있습니다.

 

피츠버그대학에서 새튼을 검색하니 그의 약력이 나오고 그 밑에 그의 논문이란 하이퍼 링크가 있더군요. 클릭했더니, 미 국립보건원(NHI)의 라이브러리가 뜨면서, 그의 논문 리스트가 다 나옵니다. 하나의 논문을 클릭했습니다. 그 논문의 상단에 공동저자의 이름이 적혀있는데, 하나의 이름마다 마다 하이퍼 링크가 걸려있고, 그 중 한 사람 이름을 클릭하면 그가 쓴 논문이 다 나옵니다. 그리고 그 논문의 요약된 내용만 나옵니다. 그야말로 감동적이더라구요. 물론 전문을 다보려면 전문저널에 가서 유료로 자료를 보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가 위에 열거한 정보 분류 형태대로 통합되고, 콘텐츠 재가공을 통한 정보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생각합니다.

 

 

 

5. 맺는말- 에듀테인먼트(Eutainment)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 교육(education)과 오락(entertainment)의 합성어.

 

인터넷 매체는 그 특성 상 소비자의 상황이 수시로 변동하는 매체입니다. 어떤 사건이나 사회적 이슈의 등장으로, 특정 정보에 대한 요구가 폭증하고, 특정 상품에 대한 구매동기가 즉각적으로 발생하기도 합니다.

 

인터넷 매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용자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구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의 성향은 몇가지로 특징지워 집니다.

소비지향, 여가지향, 승진지향(우리나라 교육 열도 여기에 포함), 사생활 지향적이 되어갑니다. 정치문제에 대하여는 책임은 회피하고, 정치적 이슈에 대하여 구두로 항의하는 것에 만족해 하며,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에 악플러가 문제되는 것이 이러한 정치문화와 무관치 않습니다.

 

조인스 닷컴은 공익성과 시장성을 고려한다면, 조인스 닷컴은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에듀테인먼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치있는 정보는 매력적이고 흥미롭게 가공한다는 것이 조인스 닷컴이 추구하는 목표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인스 닷컴이 대중문화에 부응하여 기업으로 성공하길 바라며, 고급문화의 발전에 기여함으로써 사회발전 나아가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21세기 지식 정보화 시대를 이끌어가는 건전하고 국민으로부터 사랑받고 존경받는 정론지로써의 위상을 공고히 하길 기원합니다.

 

 

正論을 모색한다.

2005-01-03 16:36:49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1214CBS 창사 5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대통령에 대한 언론의 비판은 좋지만 대통령이 밉다고 국민의 희망과 용기까지 깨거나 훼손하는 일은 없도록 했으면 좋겠다 말하며, (대통령이) 밉더라도 한국은 다 같이 잘되게 해보자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언론은 강한 힘을 갖고 있다""날이 잘 드는 양날의 칼과 같아 잘 쓰이면 역사를 진전케 하는 힘이지만 잘못 쓰이거나 권력과 결탁했을 때는 그 폐해가 엄청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기 이익과 경영자의 이익을 위해 그 막강한 힘이 남용됐을 때는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불가사리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바른 언론이 되자면 항상 바른 소리를 해야 한다""정치는 올바른 목표는 있지만 전략을 위해 둘러가기도 하고 때로는 술수도 용납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가끔 내게 언론이 쓴소리를 하고 보통 말로 ''왜 조질까''라고 생각도 해보지만 짜지 않은 소금이 무슨 소금이겠느냐"면서 "언론이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고 정론(正論)을 펴는 한 그 비판은 기꺼이 받아들이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교적 건전해 보이는 이러한 노대통령의 언론관에 대하여,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正論이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이제껏 우리 사회에 참된 의미의 정론이 있었을까? 하는 반성적 성찰과 함께 정론의 의의를 모색해 본다.

 

지금 우리사회의 언론은 그야말로 대 변혁기를 겪고 있다는 생각이다. 종이 신문에서 인터넷 신문의 전환으로 언론의 사회적 역할과 사회발전을 위하여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 어느 때 보다 신장되었다. 하지만 언론의 정론으로써의 자리매김은 더욱 어렵게 여겨지는 상황이기도 하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개인과 집단의 당파적 이익에 기초한 권리의 주장은 목소리는 높아졌지만 사회적 책임은 실종되고, 대립과 갈등이 증폭되어 왔다는 생각이다. 언론 또한 언론이 해야할 사회적 책임보다는 때로는 언론사주의 이익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가진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공익보다는 언론기관을 위한 언론이 아니었나에 대한 자기반성이 필요한 싯점이라 여겨진다.

 

正論이라면 편집권의 독립이 보장되어야 한다. 신문업이란 공익성을 추구하여야 하며, 기업 경영을 성공하여야 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정론이라면 편집권이 경영권과 동등한 관계에 있거나 편집에 관한 한 우위에 있어야 정론이 될 수 있다. 正論不偏不黨하고 是非曲直을 논함에 있어 시시비비의 보도자세가 명확하여야 한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하고, 경제적 이익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한다. 정론은 미래지향적이면서 사회의 보편적이고도 합리적 가치를 추구한다. 政論紙라면 신문의 경영적 이익보다 공적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 마땅하다. 정론지는 사회적 책임의식과 공익 수호에 대한 사명감이 강한 신문이어야 한다. 신문 제작의 측면에서는 고급지를, 경영의 측면에서는 일반지를 지향하는 것이 정론지가 가야할 길일 것이다. 이것이 정론지가 갖추어야 할 이상적이 모델이다. 하지만 정론지를 만든다는 것이 말은 쉽지만 신문 경영 현실 상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그것이 언론사주의 건전한 경영철학의 부재와 언론 종사자들의 자질 나아가 우리의 사회문화 수준이 정론지를 만들어갈 여건이 성숙하지 못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87 민주화 이전에는 신문이 검열을 받아야 하는 시절이었다. 그리고 정부가 국가에서 고급 정보를 독점하고 있었다. 정부의 행정방식은 공개되지 않았었다. 그러던 것이 김대중정부 이후 인터넷 보급의 확대 등으로 언론사나 대기업의 정보 능력이 국가를 앞지르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하고, 정부가 사회통합을 위해 언론의 비판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언론개혁 시민단체등 에서 안티조선 운동 등 언론개혁운동이 확대된 배경과 맞물려, 조중동 등 기존의 보수 언론이 DJ 정부에 비판적 시각이 드러나면서 정부와 보수언론사 간의 관계가 뒤틀려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되돌아보면 DJ 정부시절 조, , 동 국민일보 등의 언론사주들이 줄줄이 구속되었다. 이들 모두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구속되었었지만 알고 보면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김태정씨 부인의 옷 로비 사건이 발단이 되어 언론사주들이 줄줄이 구속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기억이다. 그리고 당시 옷로비사건을 장장 몇 달에 걸쳐 DJ정권을 흠집내기에 열을 올렸던 언론의 보도자세는 분명 앞서 언급한 正論의 자세에서 벗어난 것이라 비난받을 이유가 충분하다. 언론이 정부를 비판함에 있어 얄팍한 상업주의를 등에 없고 센세이션날이즘(Sensationalism)으로 마녀 사냥을 했다 비난의 소지가 있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러한 저질 센셔이션날리즘에 입각한 폭로 위주의 상업주의적 보도자세는 正論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에 아직은 제대로 된 정론지는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나는 우리 나라에 정론이 가능하다는 것에 도전하며, 우리 언론에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려는 자세로 내 나름으로 무던히 애쓰면서 지난 8개월 동안 글 쓰기를 해왔다. 인터넷신문이라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進化된 매체환경이 우리에게 새로운 문화의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는 생각이다. 인터넷 환경에서 글쓰기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적응하여 처음 글쓰기를 할 때보다 여러 관점에서 훨씬 유리한 여건이 조성되었다는 생각이다. 나아가 혼란스러운 정치사회 현상에 대한 비평적 이해를 요구하는 독자의 수요가 증가한 사회상황이 이러한 나의 도전을 가능케 하였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나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경제적 이익으로부터 자유롭다. 내 자신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그 대가가 주어지든 말든, 사회발전에 기여하려는 노력이 나의 신념을 실천하는 길이라 믿고 글을 쓰는 것이기에, 정치권력이나 경제적 이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나는 作家의 삶을 살아왔다.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하여, 그리고 다른 예술적 작업에 대하여, 작가마다 제각기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어떠한 사람에게는 글을 쓰다는 것은 현실에서의 도피일 수도 있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수단일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또 다른 사람에게는 자신의 생각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켜, 자신의 생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기대한다.

 

내게 있어 글쓰기는 하나의 도전이다.

기존의 사유방식을 뛰어넘어, 새로운 사유의 영역이나 새로 방식의 체험을 전달함으로써, 사물과 삶의 현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인간의 知覺과 감수성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도전이다. 나는 우리들 세상이 보다 밝고 건강한 사회로의 발전을 염원하며 글을 쓴다. 국법질서가 확립되지 못하고 정치가 왜곡된 현실에서, 사회문화적 발전이나 정치적 발전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글이나 思想은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 내 개인적 생각이다.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철학이라면 자족적이며 사변적 푸념이거나 지식의 장사꾼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현실을 자신의 철학으로 끌어올리지 못하는 철학이란 현실 이하로 추락한다.

 

성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쾌락을 위하여 자신을 망치는 일이요, 영예를 추구하는 일은 자기자신을 완전히 상실하는 일이라는 작가 윤리를 프랑스의 작가 플로베르에게서 배웠다. 지위가 없음을 근심하지 말고, 설 곳을 근심하며,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알아줄만한 사람이 되기를 힘쓰며,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함을 염려하지 말고 내가 세상을 알지 못함을 염려하라고 배웠다.

 

스스로에게 정직해야만 세상을 온전하고 균형 있게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적 정직성은 자신의 주장의 개연성을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의 한계와 범주를 이해하고 나아가 자신의 주장을 포기할 조건을 이해하는 데에 있다고 믿는다. 겸손해야만 배울 수 있고, 용기 있는 자만이 스스로의 허물을 인정하고 고치며, 이를 바탕으로 학습하며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혜로운 자는 迷惑함이 없고, 용기 있는 자는 두려움이 없고, 어진 사람이라야 근심이 없다고 배웠다. 소크라테스는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라며 無知를 강조했었다. 공자님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말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 말했었다.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은 철학은 말할 수 있는 것을 명료하게 묘사함으로써, 말할 수 없는 것을 보다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었다.

 

때로는 부족함을 인정하는 용기, 자신의 한계를 아는 지혜와 마음의 평온함이 지혜의 근원이라 생각한다. 추측의 대담함과 사고의 정밀함으로 인간은 새로운 사유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정론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의 글로써 입증하고 싶다. 그리하여 우리 언론 문화수준을 한 단계 향상시키려는 데에 도전하려 한다. 정론을 위하여 나의 글을 쓰는 입장은 명명백백하다.

 

이성은 편견과 독단과 투쟁한다. 살아있는 한 정의는 무지와 투쟁한다. 나는 불신과 반목 대립과 갈등으로 혼란 속에서 국가와 사회의 발전의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우리 사회에서, 법과 원칙이 확립되는 정치문화의 향상을 위하여 글을 쓴다. 자신들만이 옳고 다른 사람은 잘못이라 배격하는 독단과 편견에 기초한 편가르기의 부당성을 역설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발전의 방향에서 일탈하여 당파적 이익에 입각하여 개혁을 실시하는 현 정권을 비판하고 나아가 개혁과 국가발전의 방향이 새로운 국법질서를 확립해 나아가는 방향으로 가능하면 대안을 제시하며 비판할 것이다. 한편 자신들의 기득권과 특권에 집착하여 공정한 사회질서로의 발전을 거부하는 수구반동 세력이 새로운 정치발전을 위해 노력하도록 비판할 것이다. 그 사회나 개인이 가지고 있는 학습능력을 고려하지 않는 문제의 제기는 사회발전을 위하여 바람직하지 못하다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정론이라면 마땅히 문제를 제기한 사안에 대하여, 대안과 해결책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 전제되어야만, 사회 발전에 동기를 부여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정론으로써의 위상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의 발전의 기본동력이 보편적 진리와 합리적 이성에 기초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생각하는 국민만이, 깨어있고 공부하는 국민에게만 보다 밝은 미래가 있다는 것을 역설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에게 주어진 수많은 사건과 현안들에 대하여 보다 다각적인 관점에서 해설하고 비평함으로써 우리들의 삶에 보다 가치 있고 유익한 정보를 독자들에게 제공하려 한다.

 

나는 독자의 요구나 독자의 눈치를 보고 글을 쓰지 않는다. 내가 쓴 글이 독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면 독자가 늘어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독자가 줄어들 것이다. 나의 견해가 자신의 견해와 다르다 하여 자신의 사고방식을 내게 요구하는 어처구니없는 독자를 가끔 만난다. 하지만 남들이 내게 아무리 요구한다 하더라도 나의 능력 밖의 일이니 하지 못한다. 나는 내가 알고 이해하는 것만을, 내가 최선이라 생각하는 방식으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가능한 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독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이 아닌, 내 스스로의 삶과 생각이 보편적 세계관을 배우려 노력할 때 가능하다 믿는다. 인기에 영합하고 독자의 눈치를 보는 작가라면 베스트 셀러의 작가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저질 상업주의 작가 밖에는 되지 못한다는 것이 지금껏 지켜온 나의 신념이다. 나는 독자의 의견에 개의치 않고, 내 스스로의 삶에 충실하며, 끊임없는 반성을 통해 내 스스로의 삶을 보편적 진리와 세계관에 기초하려는 성찰과 실천을 통하여, 보다 향상된 언론문화, 정치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내 주장은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정답이 결코 아니다. 사회현상에 정답이 있을 수 있는가? 정답을 말할 능력이란 처음부터 내게 있을 수 없다. 나의 주장이란 내 개인적인 견해이며, 특정한 사회현안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일 뿐이다. 사람들은 나의 주장을 결론으로만 평가하려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결론보다도 그러한 주장을 하게 되는 사유의 과정에 주안점을 두고 글을 쓰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는 우리 문화의 저열성에 대하여 서구문화의 껍데기만을 배워왔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여긴다. 우리가 진정 선진문화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그 업적이 아니라 그 업적에 이르기까지의 사유과정과 삶의 태도와 노력을 배워야 한다 믿는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의 국가의 발전은 무엇보다 문화의 발전에 의존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억압이 없는 한 진실은 스스로를 알린다. 진실에 기초하여 글을 쓰는 것만이 독자들을 위하여 나아가 국가와 사회발전을 위하여 가장 유익한 일이라 믿고 있을 뿐이다. 그러하기에 나의 생각이 가능하면 진실에 근접할 수 있도록, 그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반성적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을 다짐해 본다. 나는 우리사회에 正論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의 삶과 나의 삶에 기초한 글로써 입증하고 싶다.

 

결국엔 정직만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것을 굳게 믿는다.

내 살아가는 모습이 다 출판된다 하더라도 부끄럼 없이 살아야겠다 다짐해본다.

좌파와 우파의 공존을 위하여

2005-03-10 17:40:24

 

과거사 청산 문제를 놓고 최근 우리 사회의 갈등이 점차로 증폭되는 듯한 분위기가 우려스럽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갈등이 좌우파 간의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확산되는 현실이 우리 모두를 불신과 반목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란 생각이다. 여야간 혹은 좌우간의 화해와 협력의 접점은 찾을 수 없는 것일까? 좌파적 우파적 사회 인식의 출발점을 보다 깊이 있게 성찰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화해와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정치사상의 기본적인 과제는 인간사회를 어떻게 결합시킬까 하는 문제로 요약된다. 정치사상은 사회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전망을 모색하며 발전되어 왔다.

 

서구의 정치사상사는 두 가지 대립하는 사회관이 때론 대립하고 화해하며 발전되어 왔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루쏘와 홉스, 칸트와 헤겔에 이르기까지 상호 대립되는 방법론적 접근으로 사회문제를 이해하려 하였다. 그리고 사상사의 발전에 따라 학파 간의 대립적인 요인은 보다 첨예하고 강렬해졌었다. 2천년 이상 진행되어온 이러한 논쟁은 사회질서에 관한 논쟁으로 인간의 지식, 도덕관, 정치적 태도의 확립에 관한 논쟁이었다.

 

뛰어난 마르크스 비판자이고, 사회학자이며, 정치가였던 독일의 다렌돌프(Ralf Dahrendorf)는 서구 사회사상사를 이끌어 온 커다란 두 가지 줄기를 다음과 같은 관점으로 이해한다.

 

첫째, 인간사회의 성원들은 모두 상이한 의견과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만, 이것을 극복하고, 성원들간의 價値合意(value consensus)를 형성하기 때문에 사회질서가 유지된다는 견해라 설명하고 이를 이상주의적 사회통합이론(integration theory of society)이라 말한다. 이러한 관점은 사회질서를 가치합의에 기초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합의의 측면에서 인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형성되는 시장질서는 가치합의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합의의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탁월한 사회학자인 파슨스(Talcott Parsons) 같은 구조기능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사회통합이론은 다음의 몇 가지 전제조건을 가정하고 정립된 이론이다.

모든 사회는 지속적으로 안정된 구조이다.

모든 사회는 잘 통합된 구조이다.

사회의 모든 요소들은 사회체제 유지에 대하여 기능적이다.

모든 사회구조는 사회성원들의 가치합의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사회질서의 기본요소를, 안정성, 통합, 기능적 협동, 가치합의에 둔다. 이러한 사회통합론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의 타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상대적>이란 말을 덧붙여 쓴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의 사회적 행위의 동기를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한 방향으로 규범화하고 구조화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우파적 입장은 사회과정을 점진적으로 통합하고 발전하는 획일적 과정으로 단순화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행위 중에 갈등을 유발하고,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소를 사회체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배제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우파적 견해의 문제점은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나 문제적 현실에 대하,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호도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견해는 사회질서를 이끌어 내는 노력의 사회갈등의 측면은 배제하고 안정의 측면에서만 찾으려 하면서 사회과정(social process)을 획일적이고 단순한 것으로 규정하려 한다.

 

이것이 우파적 입장의 사회인식이다.

 

둘째, 사회에서의 인간의 결합은 사회 사회성원들 간의 지배와 복종에 의하여, 힘과 강압에 의하여 인간사회가 결합되며 질서가 유지된다고 보는 견해라 설명하고, 이를 합리주의적 사회강압이론(coercion theory of society)이란 말한다.

 

사회강압이론은 사회질서란 강압에 의한 것이 본질적이라 가정하고, 갈등과 대립을 통한 사회변동과 지배와 복종이 사회질서를 형성하는 보편적 현상으로 이해한다. 우파적 사회통합이론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구조는 유형화되고, 사회는 순환적인 과정을 거치는 균형을 통하여 <기능적으로 통합된 체제>를 형성하는 것으로 보는 반면, 사회강압이론은 사회질서는 강압과 힘에 의하여 형성된 조직체로 이해하고, 강압과 강압에 반발하는 갈등이 발생하는 힘은 사회구조 자체 내에서 피할 수 없이 발생하는 것이기에, 강압의 힘의 작용과 반작용에 의하여 사회구조는 끊임없는 변동과정을 겪는 것으로 파악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합리주의적 사회관을 제시하고, 사회변동과 갈등, 그리고 지배와 복종이 사회의 보편적 현상이라 가정하였다.

 

사회강압이론 기본적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사회는 변동과정에 있고, 변동은 편재(偏在)적이다.

모든 사회는 언제나 갈등을 내포하고 있고, 갈등은 편재적이다.

모든 사회요소는 비통합 부분이 있고, 이러한 비통합 인자는 사회변동을 우발한다.

모든 사회질서는 일부 성원들의 타 성원들에 의한 강압에 기초한다.

 

이것이 좌파적 입장의 사회인식이다.

 

좌파의 입장에서 특히 공산주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법률과 모든 도덕률 등은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억압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라는 허위의식이고 사회의 지배층, 부르죠아의 지위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필요한 수단으로서의 허구적 사회사상이라 주장한다. 마르크스는 인간사상의 불완전성을 폭로하고 정치적, 도덕적, 법적 이데올로기는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확보에 필요한 도구일 뿐임을 지적한다.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의 원천이 인간의 본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불합리성에서 기인한다 보았다. 이러한 견해는 <의식은 존재에 의해 결정된다>는 유물론에 입각한 것이다. 의식이 존재에 의해 결정된다는 명제가 사실이라면 허위의식의 근원은 사회구조에 있고, 따라서 사회구조가 합리적으로 개선되면 허위의식으로서의 이데올르기는 극복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강압에 의하여 왜곡된 질서가 공산주의 혁명에 의한 통하여 자본주의의 종말이라는 역사적 필연성에 의하여 인간해방의 사회질서를 이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우파의 견해가 옳고 좌파의 견해가 틀린 것인가? 아니면 좌파의 견해가 옳고 우파의 견해가 틀린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좌파적 견해와 우파적 견해가 상대방을 존중하고 건전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에 있어 상호보완적 역할을 수행할 때, 우리는 보다 성숙한 정치문화를 이 땅에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건전한 사회질서는 안정을 기초로 한 새로운 사회발전의 가능성의 모색만으로 성취되는 것도 아니고, 문제점을 이해하여 그 문제의 요인을 제거하는 것만으로 성취될 수 없다. 건전한 사회는 기존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안정된 현실을 기초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건전한 사회의 건설을 위한 사회개혁은 당연히 안정과 변동, 가치합의와 강압, 기존 체제에 대한 순기능과 역기능이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면서 진행되는 것이 마땅하다.

 

독재정권 하에서 총화단결에 의한 절대적 사회안정을 강요 받은 상황에서, 사회갈등은 반사회적이라고 것이라고 여기는 경직된 사고방식으로 살아왔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우파적 인사들이 갖는 사고의 경직성이다. 획일화되어 안정된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내가 선택한 삶만이 옳다는 것을 고집하지 않고 나와 다른 이들의 삶과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건전한 자유주의적 삶의 방식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異見이 공존하고, 대립과 갈등이 있는 것이 당연히 정상적이다. 진정 슬기로운 사람이라면 이러한 이견 속에서 때로는 갈등하고 대립하는 가운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보다 나은 삶을 개척하는 계기로 삼는다.

 

독재 정권 하에서 민주화 운동을 해 온 현 집권 세력은, 기득권층을 자신들의 기득권 옹호만을 위하여 무조건 바꾸지 말자는 반동세력으로 몰아부친다. 이는 현 집권 세력이 국민들이 기꺼이 동참하는 국가 비젼을 제시하지 못하고, 부정적이며 파괴적인 아젠다에 기초하여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며, 이것이 곧 현 정권의 무능을 증거하는 표식이기도 한다. 온 국민이 노사모 되어야 개혁이 성공한다는 식의 발상이나, 아무런 대책도 없이 현 정권을 비난하기에 골몰하고 노대통령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식의 발상이란 국민화해를 저해하는 반사회적이고 독선적인 편견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개선하여야 할 가장 시급한 병폐는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절대화하고 상대방을 배척하는 독단적 사고와 자신의 입장을 상대방에 강요하는 파시스트적 사고의 행동 방식이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며 반목하고 대립하는 이분법적 흑백논리가 최근 심각한 양상으로 번져가고 있는 우려스러운 우리 사회의 분위기이다. 건전한 반대파가 있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이다. 내 편이 아닌 상대편도 존중하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노력을 통하여 우리는 참된 의미의 국민화합을 달성할 수 있다.

 

비관적 세계관은 폭력을 정당화하기 쉽다. 반면 낙관주의적 삶의 태도는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현실의 문제점들을 호도하고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 현 사회를 보는 관점이 우파의 입장은 낙관적으로 보려 한다. 반대로 좌파는 기존의 우리 사회를 비관적이고 부정적 관점에서 왜곡되고 비뚜러진 역사의 산물로 여기며 기득권층 다 때려부수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과거사 청산 등의 현 정권의 개혁이 기존 질서에 파괴적이다. 그리고 좌파정권이라 여기는 현 정권 하의 야당이나 기득권 세력들은 지금의 현실정치에 비관하며 새로운 출구를 모색하지 못하고, 현 정권에 대한 매도만을 일삼는 것이 전부인 채로 지리멸렬 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집권 3년 차를 맞는 노무현 정권은 이제, 건설하지 못하고 부수고 빼앗는 것이 전부인 개혁이라면 그것은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것이며, 자신들의 집권기반을 무너뜨리는 자해행위라는 것을 어서 빨리 깨닫기 바란다. 마찬가지로 현 정권을 비난하기 위한 비난 이외에 새로운 미래의 비젼을 발굴하지 못하는 야당에게 말하고 싶다.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반성하고 자신들의 현재의 위상을 바르게 정립해야만이 국민들이 공감하는 미래의 비젼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지금 여야는 서로 불신과 반목으로 상대방의 존재를 부인하고 자신들만의 입장을 고집한다.

이것은 단지 정치권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잘못된 정치로 인하여 국론이 분열되고 국민들간의 불신과 반목이 증폭되고 있다. 폭력은 자신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데에 실패하였을 대에 발생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대화는 실종되고 불신과 반목 대립과 갈등으로 점차로 폭력적으로 되어가고 있음을 우려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분열의 책임에 대하여 정치권은 여야할 것 없이 그 책임을 통감하여야 할 것이다.

 

정치에 있어 좌파적 견해와 우파적 견해는 상호보완적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파적 견해는 우리사회의 안정과 가능성을 모색한다. 좌파적 개혁은 우리 사회의 모순을 제거하고 국가권력의 정당성의 확립에 앞장서야 한다고 믿는다. 허물을 고치기를 꺼려 말라 하였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데 게으른 사람에게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지닌 문제해결능력을 초과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치기 어린 개혁이 우리 사회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을 외면하여서는 결코 아니될 것이다. 나아가 미래에 대한 구체적 청사진 없는 개혁이 국민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없고, 국민적 합의와 참여를 이끌어 내지 못하는 개혁이란 국력의 낭비만을 초래하는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다

 

좌파와 우파가 왜 싸우면 안되는가?

한 예를 들어보자 오른손잡이 권투 선수가 있다. 왼손은 상대방을 가격하기 위해 거리를 맞추고 어느 정도의 세기로 어느 부분을 칠 것인가를 탐색하는 리딩(reading) 펀치이다.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자신이 잘났다고 싸운다. 왼손은 왼손이 목표물을 가늠하지 않으면 오른 손이 제대로 상대방을 가격할 수 없으니 자신의 공을 자랑한다. 오른 손은 무슨 소리냐고 왼손은 제대로 때리지도 못하는 주제라며 상대방을 때려눕히는 것은 오직 오른 손이라 자랑한다. 하지만 왼손이 없다면 오른 손을 제구실을 못한다. 마찬가지로 오른 손이 없는 왼손이란 쓸모 없는 것이 된다. 왼 손과 오른 손이 한 마음으로 싸워야 권투시합에서 승리할 수 있다. 나는 사회발전에 있어 좌파와 우파의 관계가 권투선수의 왼손과 오른 손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넓은 의미로 좌파란 원칙적이고 우파는 현실적이다. 원칙 없는 현실은 지속되지 못하고, 현실을 도외시 한 원칙이란 탁상공론이 될 뿐이다. 지속적으로 성공적인 삶이란 원칙과 현실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스스로의 삶이 다른 이들로부터 존중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남을 존중하는 것부터 배우는 것이 순서이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 인간은 누구나 존중 받을 권리가 있듯이 다른 사람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보다 성숙한 문화- 화해와 협력을 통하여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밝은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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