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도시 수용-박근혜 대표의 패착(敗着)

2005-03-06 15:07:10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3일 행정중심 복합도시 특별법 국회통과 이후 당 내홍과 지도부의 책임론에 대해 당 대표가 당론을 지킨 게 책임져야 하는 일이냐고 반박하며 중요한 것은 당의 최고 의결 기구인 의총에서 충분한 토론을 거쳐 당론(행정도시 후속대책 여야 합의안 수용)이 결정됐다는 것이다. 대표는 당의 결정이 상식적, 합리적으로 이뤄지게 해야 하고, 일단 표결로 정해진 당론은 지키는 게 임무다. 어떤 결과가 나왔든 대표로서 지킬 의무는 지켰다.” 말했다.

 

이어 박근혜대표는 4"정치인으로서 지켜야 할 가치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며 "그것을 한 순간이라도 잊어버린다면 모두에게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뢰할 수 있는 사회와 선진국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얼마만큼 책임질 수 있는 약속을 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가 하는 것"이라며 `약속''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대표는 "우리 사회가 입만 열면 민주다 개혁이다 혁신이다 하면서 작은 약속하나 지키지 못하는 것은 기본 철학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고, 자전거도 못 타면서 오토바이를 탄다고 큰 소리 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자전거를 타는 것이 오토바이를 타는 것보다 쉬운지 어려운지는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박대표는 행정도시 여야 합의안을 수용한 한 것을 가지고 표결에 정해진 당론을 지키는 것이 대표로써 지킬 의무라 강조한다. 그리고 국회의 법률안 표결에서 그녀는 대표로써의 의무를 기표시간을 지키지 못하여 기권을 하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한다. 작은 약속하나 지키지 못하는 것은 성실성의 문제이지 거기에 왜 철학이 나오는 지 모를 일이다. 1 야당의 대표가 되어서 자신이 아는 소리 모르는 소리 분간 못하며 감당하지 못할 소리를 떠버리며 되지 않을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모습이 궁색하기 짝이 없다. 약속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철학을 말하며 대표의 의무를 강조하는 사람이, 정작 표결에서는 기권하며 속 들여다 보이는 기회주의적 처세를 감추려 한다.

 

국민에게 한 약속을 한 순간이라도 잊어버린다면 모두에게 신뢰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박대표의 말은 수도이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대하여 박근혜씨가 보여주었던 반응을 들추어보면 낯뜨겁기 짝이 없다.

 

지난 해, 1021일신행정수도건설에 대한 헌재의 결정에 대하여, 한나라당의 반응은 그야말로 환영일색이었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헌재의 판결을 환영하고 위대한 결정을 내린 재판관에게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여당도 이번 판결을 존중하고 따르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표 또한 법치주의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가 위대함을 다시 느꼈다 말했었다.

 

한 순간이라도 국민에게 한 약속을 잊어버리면 모두에게 신뢰를 잃는다는 것을 말하는 박대표가, 국민에 대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다. 위헌 결정이 난 바로 다음날인 1022일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의 기조연설을 통해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과 관련, 한나라당이 지난 16대 국회에서 관련법 통과에 협력한데 대해 공식 사과했다. 박대표는 이날 "작년 말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데 대해 참으로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충청도민 여러분이 받았을 충격과 상실감에 대해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었다. 박대표의 말대로라면, 이 순간 이미 박대표는 적어도 충청도민에게는 모든 신뢰를 잃어버린 자신의 약속을 아무런 죄의식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실없는 정치인이 되고 말았다. 물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소중하고 중요하고 심지어 위대하다고 믿는 법치주의에 대한 그녀의 신념 때문이었다.

 

헌법재판소의 위대한(?) 결정에 대한 박대표의 경의에 찬 이해는 노대통령에 대한 강한 질책으로 이어진다. 박근혜는 25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헌법재판소의 수도이전 위헌결정과 관련, "누구도 헌재 결론의 법적효력에 대해 부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해 "승복하는 지, 안하는 지 모호하게 한 것은 헌재 결정에 무게를 안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이날 국회 본회의 직후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대통령이 사과하는 것이 마땅하다""사과 않고 버티겠다는 태도에 대해서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며 노대통령을 몰아세우며, "헌재 결정에 승복하지 않으면 나라가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채 다섯 달도 되지 않아 그가 찬양하였던 위대한 결정을 외면하고, 내팽개쳤던 국민과 약속을 다시 강조하며 헌재 결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헌정질서 파괴적 결단을 내린다. 그녀의 걱정대로라면 이제, 나라가 대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심란한 것은 오락가락하는 그녀 스스로 자신의 문제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법치주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이 박대표의 이다. 정치가가 무지하면 필연적인 귀결로 국민에게 를 짓게 된다.

 

헌재는 신행정수도에 관한 법률의 위헌 결정문에서 수도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수도는 국가권력의 핵심적 사항을 수행하는 국가기관들이 집중 소재하여 정치 행정의 중추적 기능을 실현하고 대외적으로 그 국가를 상징하는 곳을 의미한다. 나아가, 서울이 수도인 것은 국가 생활의 오랜 전통과 관습에서 확고하게 형성된 사실 또는 전제된 사실로서 모든 국민이 우리나라의 국가구성에 관한 강제력 있는 법규범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결정은 이어, ‘서울이 수도인 사실은 단순한 사실명제가 아니고 헌법적 효력을 가지는 불문의 헌법규범으로 승화된 것이며, 사실명제로부터 당위명제를 도출한 것이 아니라, 그 규범력에 대한 다툼이 없이 이어져 오면서 그 규범성이 사실명제 뒤에 전제되어 왔다 판시한다.

 

서울의 수도라는 관습헌법은 헌법개정 외에도, 관습헌법은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국민적 합의성을 상실함에 의하여 법적 효력을 상실할 수 있다. 관습헌법은 주권자인 국민에 의하여 유효한 헌법규범으로 인정되는 동안에만 존속하는 것이며, 관습헌법의 존속요건인 국민의 합의성이 소멸되면 관습헌법으로서의 법적 효력도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관습헌법의 요건들은 그 성립의 요건일 뿐만 아니라 효력 유지의 요건이다. 나아가,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을 하위 법률의 형식으로 의식적으로 개정할 수 있는 여부에 대하여, 우리나라와 같은 성문의 경성헌법 체제에서 인정되는 관습헌법 사항은 하위 규범형식인 법률에 의하여 개정될 수 없고, 헌법 제10장 제128조 내지 제130조의 헌법개정절차를 요구한다고 판시한다.

 

박대표는, 이러한 헌재의 결정을 법치주의의 위대함으로 찬양했었다.

 

헌재의 결정에 대하여 관습헌법에 대하여 이의 제기한 여당과는 달리 한나라당은 한 목소리로 헌재의 결정에 대하여 환영일색으로 반응하였었다.

 

"헌재 결정에 승복하지 않으면 나라가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 노대통령을 강하게 질책하며, 헌재의 결정을 지지하였던 한나라당과 박대표가 이제 그 입장을 완전히 뒤집으며 당의 최고 의결 기구인 의총에서 충분한 토론을 거쳐 당론(행정도시 후속대책 여야 합의안 수용)이 결정됐다 말한다. 박대표와 한나라당 일부 인사들은 헌재 결정에 대한 당의 입장을 바꾸며, 이미 뒤집어 버렸던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며 기본 철학 운운하며 국민을 농락하고 있다. 자신의 행동과 말에 책임지지 못하고, 박대표는 자신이 위대한 업적이라 칭송하였던 헌재 결정의 내용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무지하여 용감한 것인지, 충청권의 표밭에 눈이 멀어 정치인으로서의 양식과 신념을 내팽개쳤는지는 모르겠다. 신념이나 철학 같은 것은 애당초부터 있어 보이지 않는 박대표이다.

 

자신 소신이나 신념이 없는 자는 눈 앞의 이익에 一喜一悲하여 줏대 없이 구차한 행동도 염치를 모르고 행한다. 분수 모르고 대권욕에 눈이 먼 박대표의 기회주의적 행태가 딱 이 꼴이 아닐까?

 

위대한(?) 헌재의 결정 따르면, 행정중심 복합도시 특별법 또한 당연히 위헌이다. 무엇보다 행정중심 복합도시 특별법은 헌재가 판시한 수도의 개념-국가기관들이 집중 소재하여 정치 행정의 중추적 기능을 하는-을 바꾸는 일이고, 나아가 수도가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의 존속요건인 국민적 合意性을 소멸시키기에 충분한 법률이다. 한나라당이 위대한 결정이라 칭송하였던 헌재의 결정에 대하여 박대표 스스로 "헌재 결정에 승복하지 않으면 나라가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리고 이제, 박대표 자신과 한나라당의 입장에서 동조하고 찬양하였던 헌재의 결정에 정면으로 반하는 위헌적 발상으로 국민과의 약속 운운하며 국민을 두 번 속이는 작태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 다수의 의사로 멋대로 법을 만들어져서는 아니된다.

 

법률은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법률은 정의에 기초한 공정하고 정당한 법이어야 하며, 그 법을 준수하여야 할 국민이 그 타당성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책임 있는 개인은 어떠한 규범이 자신의 행위를 제약하고 구속할 때, 그 규범이 내적으로 정당한 규범인가를 질문할 것이고, 실질적으로 타당한 규범인가를 묻게 된다. 법률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제약하는 것이라면 법률의 정당성과 타당성에 나아가 공정성에 대한 질문은 보다 절박한 것이 된다. 국민의 과반수 이상의 이해가 얽혀 있는 수도 이전에 관한 법률이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아니하고 제정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아가 법률의 제정은 반드시 헌법률과 헌법정신에 부합되게 이루어져야 한다. 지난 40여년 독재정치를 거쳐오며 국민적 합의나 헌법을 무시하고 법률이 권력자 마음대로 만들어져 왔고, 그 결과 우리 사회가 고비용 저효율의 거덜난 국가시스템이 되어버린 것이 국가발전에 최대의 장애요인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행정중심 복합도시 특별법은, 수도 이전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반하여, 여야 의원들의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수도를 두 조각을 내어도 괜찮다는 지극히 무책임하고 무모한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번에 여야가 다시 머리를 맞대고 짜낸 편법의 아이디어가 분할된 수도복합도시기능을 누더기식으로 조직(組織), 전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상천외한 기형적 수도건설안이다.

 

무지하며 무능한 정치인은 부도덕한 정치인보다 오리려 국민과 국가에 훨씬 해악할 수 있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동정하거나, 박정희 딸이라 좋게 보아줄 일이 결코 아니다. 지금 국가의 재정적자 규모가 200조원 가량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행정도시는 다음 대선이 치루어지는 2007년 착공하여 2030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추진되어야 하는 건국이래 가장 대규모의 국책사업이다. 지금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을 지닌 대한민국이고 2050년에는 세계 최고의 고령화 사회로 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앞으로 우리사회가 자칫 고비용 저효율의 사회로 전락할 가능성을 우려해야 할 싯점에서 비용소모적 대규모 국책사업을 벌린다는 것이 무모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행정도시 이전에 소용될 비용 조달에 대한 구체적 방안도 없이, 행정도시 건설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이러한 대규모 국책사업을 벌린다는 것 자체가 여권 386세대가 벌려놓은 넌센스로 여겨진다. 20여년 소요될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할 마스터플랜 같은 것은 아예 없는 실정이다.

 

행정도시 건설이, 장장 154대에 걸쳐 2조원을 투자하고 중도 하차하게 된 새만금사업처럼 되지 말란 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창비)를 펴낸 명지대 김석철 학장은 "행정도시와 새만금 문제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난제라는 점에서 서로 닮은 꼴"이라고 지적하며 "결국 좌절할 수밖에 없는 행정도시 건설 계획은 국가 균형발전에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충청권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갈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만약 정권이 바뀌어 법령이 폐지된다면 행정수도는 어디로 갈 것인가?

 

수도이전 위헌판결 이후 운동권 출신 인사의 한 기고문의 일부분이다.

 

돌파하지 말고 우회하라. 위기에 몰린 적은 더욱 완강하다. 하지만 시간은 진보의 편이다. 철저히 룰을 지키고 국민적 동의를 획득해나가면서 한꺼번에 장군을 부르려 하지 말고 눈앞의 졸병부터 먼저 내 편을 만들어나가라. 행정수도 이전계획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무조건 승복하라. 그리고 그 깨끗한 승복의 대가로 현재 난관에 봉착해 있는 이른바 4대개혁 입법을 먼저 관철하라.

 

행여나 행정수도 이전으로 기득권층의 기반을 붕괴시키겠다는 발상은 이제 포기하라. 대신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더 큰 전략적 목표를 축으로 사실상 행정수도 이전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는 방안은 적지 않다. ‘천도를 선언하지 않고도 천도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우리는 이 정권이 어떤 경천동지의 업적을 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 정권 이후의 앞날이 예측 가능한 것이 되게끔만 제발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딛어주기 바란다.

 

(20041027일 제532호 한겨레21 김명인/ <황해문화> 주간)

 

 

박대표의 행정도시 특별법에 대한 합의안의 수용은 마치 위의 기고문에서 말한 내용을 글자 그대로 충직하게 협조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박 대표가 여권의 행정도시 특별법에 손을 들어 주고 있는 것은 대권욕에 빠져 어처구니 없이 두어버린 패착이다. 박대표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으로 여겨진다. 나아가 야당 대표 노릇조차 온전히 감당하기 조차 벅찬 그녀의 무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충청표를 가져와야만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유혹에 눈과 귀가 닫혀 기형적으로 찢어진 수도 건설에 편승하여 구차하게 표를 구걸하는 꼴이다. 결단코 어리석지만 않은 국민은 박대표와 한나라당이 왔다갔다하며 보여준 속보이는 기회주의적 행태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이미 배신을 경험했던 충청표는 더 열린우리당 쪽으로 뭉칠 것이며, 한나라당에 기대를 걸었던 보수우파세력과 충청권을 제외한 타 지역의 표심도 줏대 없이 갈팡질팡하는 한나라당으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충청표를 위해선 야당의 정책이고 원칙이고 다 팽개치는 박대표와 한나라당의 무소신,무원칙의 맹목적인 권력욕이 개탄스럽기 짝이 없을 뿐이다.

친일예찬을 규탄하며....

2005-03-07 17:09:21

 

 

한승조씨의 친일예찬은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다. 일제강점시대에 대해 러시아에 먹히지 않은 것이 불행 중 다행이고, 탈산업사회, 세계화 시대에서는 친일행위가 애국애족행위로 평가받을 세상이 온다는 정신나간 헛소리를 한다. 일제하에서 우리민족이 핍박받고 수탈 당하며 살아온 세월을 축복이라고 말하는 한씨 같은 반국가적 반민족적 망언을 멋대로 입에 담는 자에게,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고 되묻고 싶다.

 

분단의 아픔을 안고 아직도 온전한 독립을 하지 못하였지만,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을 딛고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수많은 애국지사와 순국 선열의 고귀한 피를 흘렸다. 인간이 되어서 나라와 겨레에 보탬이 되지는 못할지언정, 나라와 겨레를 위한 숭고한 뜻으로 목숨마저 초개와 같이 버린 가신 님들의 숭고한 뜻을, 비열하고 너절한 지식으로 멋대로 폄척(貶斥)한다. 우리의 역사를 정략적 당파적 이해에 얽혀 왜곡하고 국민적 자존심을 능멸하는 짓을 서슴없이 하는 자가 한승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어줍잖은 얄팍한 지식으로 국가와 민족을 욕보이는 파렴치한 망언을 다른 곳 아닌 일본의 잡지에 기고하고 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한씨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더러운 만행을 변명하고 합리화하기에 급급하다. 파렴치한 양심의 한승조와 같은 인간에게, 국가와 민족과 국민적 자존심을 능멸한 大罪가 있는데 죄의식조차 없다.

 

한 세기 동안이나 우리는 치욕의 역사를 살아야 했다.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국권을 상실하고 식민인으로 전락해야 했다. 日人들이 우리 땅에서 물러갔지만 우리는 우리 힘으로 조국을 되찾지 못했다. 조국은 2차대전 승전국의 전리품이 되어 두동강이 나고 말았다. 조국해방전쟁이라는 김일성의 성급하고 무모한 결정으로 인하여 동족상잔의 엄청난 비극을 감내해야 했다. 결과적으로는 동서대립의 전후구도에서 동서진영 간의 세력다툼의 대리전을 우리민족이 피를 흘리면서 치러내야 했던 것이다. 수백만의 동포가 희생되었고 지금도 천만 이산가족이 단장의 세월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치욕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식민지인의 잔재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자기창조적으로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 왔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것이 곧 일제의 식민지수탈에 협조하는 것이 되었던 시절을 살았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보다 세상을 거부하고 냉소적으로 비판만을 일삼는 사람이 보다 윤리적으로 평가 받던 불행한 시대를 살아 온 것이다. 식민지인의 삶에 있어 그들을 위한 삶을 강요 받았을 뿐 <나와 우리>를 위한 삶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수 십년 간 군사독재 치하의 삶을 살아오면서 개인의 자발성이나 창의성이 마땅히 존중되는 인간다운 생활을 거의 짓밟히면서 살아야 했었다. 오직 독재자의 결정에 순종하고 총화단결을 강요 받는 상황에서 자주적이고 건전함 삶을 지속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 개인의 사회적 책임이 단지 독재자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인 상황에서 개인의 자발성이나 사회적 책임을 기대할 수 없다. 먹고 사는 것이 그리고 살아남는 것이 0순위인 세월을 살면서, 약자에게는 멋대로 횡포를 자행하고, 강자에게는 빌붙어 굴종하는 삶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부끄러운 한 세기를 살아온 것이다. 이제, 이러한 역사는 마감되어야 한다.

 

나는 우리민족에게 분단의 을 심어준 제국주의자들을 혐오하는 민족주의자이며, 사회주의이든 파시즘이든 전체주의를 혐오하는 자유주의자이다. 나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나라사랑과 겨레사랑의 소중함을 힘주어 말하고 싶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른는 사람은 남을 사랑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내 나라 내 민족을 사랑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 다음에 인류애와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것이 올바른 국가관, 민족관, 세계관이라 나는 믿는다.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충실할 때, 보편적 인간성이 실현된다. 이것이 내가 민족적 세계주의와 세계적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이유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보수인사들 사이에, 민족주의적 사고가 세계화에 반하는 배타적인 것이고 심지어는 민족주의는 친북이고 빨갱이라는 등식이 많은 사람에 퍼져있는 현실을 우려한다. 이러한 생각이 만연하게 된 배경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가 주로 의존한 史觀이 배타적인 국수적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에 의한 사적유물론이었음과 무관치 않다. 하지만 한씨와 같은 쓰레기 같은 자들이, 부끄러운 과거사를 반성하기는 커녕 자신들의 기득권의 보호에 연연하여 혹세무민하는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즈음의 우리의 세태가 좌파와 우파의 대립과 갈등이 증폭되는 가운데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한씨의 발언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는 것은 국민화합과 국가 발전을 위해 심히 우려스럽다.

 

한씨와 마찬가지로 보수세력 중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젊은이들 세대를 배타적 민족주의로 반일 반미 감정을 우려한다. 나아가 젊은이들을 친북세력으로 매도하려 한다. 나는 이러한 경직된 보수세력의 왜곡되고 편협한 사고방식을 우려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부 몰지각한 기성세대의 그릇된 사고방식이 성장기의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청소년들에게 정말로 심각하게 해악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친일하고, 친미하며, 독재자들에게 힘있는 자들에게 줄 서고 빌붙어 눈치보며 살아온 기성세대들이다. 반면 젊은 세대들은 강압적 권위를 싫어하고 자유롭고 자기 주장이 강하다. 미국을 싫어하고 북한을 좋아하는 대학생들이 좌파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자유롭고 남의 눈치보는 것 싫어하고 자기 주장이 강하다. 마르크시즘이나 좌파이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빨갱이는 나쁘다는 식의 무지몽매함이 한씨와 같은 이러한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상주의적으로 여겨지기 쉬운 좌파이념이란 정의와 소외계층에 대한 동정, 위대한 행위에 대한 충동을 고무시킬 줄 모르지만 상당히 금욕주의적이고 소위 말하는 보통 사람의 정서와는 잘 맞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요즈음 포스트386세대가 좌파의 불온(?) 사상에 물들 염려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이 좋은가 미국이 좋은가 질문하면 북한이 좋다고 대답할 젊은이들 중 거의 대다수가, 북한에 가서 살래 미국에 가서 살래라 질문한다면 미국에 가서 산다고 대답할 것이다. 젊은이가 반항적이고 도전적인 것은 얼마든지 바람직 할 수 있다. 기존의 체제에 도전적이고 기성 세대의 사고방식에 도전적인 것이 무슨 흠이 있겠는가? 독재정권 하에서 4지선다형 정답 고르기를 잘하고 순응적인 인간만이 출세하는 사회로부터 건전하고 창의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제멋대로 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때론 버릇없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자기 주장이 강하고 반항적이고 도전적인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이 우리사회의 역동성을 증거하는 것이라 믿는다.

 

인간은 자신이 스스로 자신이기를 바라는 것으로부터 주체성을 확립해 나아간다. 우리가 우리이기를 바라고 대한민국이 자주국가임을 바라는 것, 분단의 아픔을 겪고 살아온 우리가 하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 어떠한 잘못이 있겠는가?

 

일제식민지와 독재정치의 강압적 시절을 살아오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자긍심을 느끼는 대한국민의 삶을 살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이러한 부끄럽고 어두운 과거의 역사는 청산되지 못했다. 부끄러운 식민지의 역사는 청산되지 않았고, 어쩌면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우리의 역사는 친일파가 득세한 역사였고, 해방 이 후, 친일파들은 친미정권으로 재빠른 변신을 꾀하였다. 올해로 광복 60년을 맞이하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외세의존적이며, 자주적이고 독립적이지 못하며, 온 국민이 기꺼이 몸 바쳐 헌신할 수 있는 국가정통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다.

 

좌파정권이라 말해지는 현 정권의 과거사 청산에는 구체적인 성과나 실천에서는 여러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분명히 우리가 역사적 도약을 이룩하기 위하여 잘못된 과거의 역사를 바로 잡아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이행되어야 할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1. 모든 사회의 질서는 일부 성원들에 의한 타 성원의 강압에 기초한다.

 

2. 모든 사회는 언제나 갈등을 내포하고 있고, 갈등 또한 편재적이다.

 

3. 통합에 실패한 사회의 모든 요소는 사회변동을 유발한다.

 

4.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의 기득권이란 정당한 노력의 대가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친일과 친미행위의 그리고 권력자에 기생하는 특혜적 지원의 소산으로 이룩된 것이고, 이러한 기득권의 왜곡된 편중으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확립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불평등이 국가권력의정당성 나아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의 확립을 저해왔기에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잡는 것은 국가발전의 전제가 된다. 건전한 국가의 정통성의 확립은 국가발전의 초석이 되어야 한다.

 

5. 지난 17년 간 민주화를 통하여, 이러한 왜곡과 편재는 부분적으로 해소되었다고 하지만,

개혁의 주체 노력 또한 당파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현 정권의 과거사 청산이란 사회부조리를 있게 한 문제적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억압연관을 해체하려는 노력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란 건강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형성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과제임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현 정권이 새로운 국가질서나 미래에 대한 비젼의 제시 없이 기득권 세력의 기득권을 빼앗으려 할 뿐, 파괴적 노력이외에 건설적 노력을 찾아볼 수 없다는 데에 기인한다. 새로운 국가의 비젼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우리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고 국민화해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통합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이유이다.

 

현실은 현실로 인정하고 과거는 과거대로 인정하자는 것이, 이념이나 원칙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저열한 우리 사회 보수집단 보수인사들의 주장이다. 한승조의 말처럼 잘난 사람은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다. 한씨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죽이기 위하여 현 정권이 과거사 청산을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잘난 사람은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다. 오로지 오늘 해야 할 일, 풀어야 할 숙제 그리고 미래의 일을 생각하며 준비하는데 全力投球(전력투구) 한다. 한승조의 이러한 발언은 반성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학습할 줄 모르는 저열하고 몰지각한 기득권층의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현재의 박근혜씨의 정치적 위상은 과거에 집착하는 박정희 향수에서 비롯된 패배주의적이며 퇴행적 포퓰리즘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표에게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비젼이 있기나 한 것인가? 박정희 향수라는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 아닌, 10분 분량의 말할 내용의 정치적 신념조차 없는 박근혜 대표의 지지세력이다.

 

현재의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정당한 삶의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국가질서의 건설을 위하여 과거의 우리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며, 우리의 미래는 현재의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상황의 논리로 부정한 삶의 방식을 옹호하는 것을 용인한다면 정당한 삶의 질서는 바로 세울 수 없다. 밥을 굶었다 하여, 빵을 훔치는 것이 정당화되어서는 아니 된다. 상황의 논리를 들어 친일행위를 미화한다면, 국권을 상실한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변명한다면 누가 목숨을 걸고 우리 자신의 삶과 조국의 미래를 지키려 한단 말인가?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 볼 때, 정당한 삶의 질서와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위해서 친일행위는 규명되어야 하고 지탄받아 마땅하다. 민족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고, 새로운 미래의 비젼을 보다 구체적인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잘못된 과거의 문제에 대한 반성이 없이는 우리의 역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진전되지 아니한다. 과거사청산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민족분단의 모순을 극복하고 통일 조국을 모색하기 위한 방법으로, 5천년 문화민족의 자랑스러운 민족 정통성과 국가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는 것으로, 나아가 새로운 국가와 민족의 도약을 계기로 삼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과거사의 청산은 보복이나 처벌이 아닌, 새로운 국가 비젼을 열어가는 쪽으로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 설정한 우리의 국가적 과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그 잘잘못을 규명하는 차원에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기초로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과거사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가?

민주주의적 국가질서를 확립하는 데에 있어, 과거 개발독재로 인하여 상실한 정당한 삶의 질서의 회복을 위하여, 경제성장위주의 개발독재가 가져온 부정적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 또한 마땅하다. 정당한 삶의 질서와 정의에 입각한 법질서로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적 화합의 기초를 다져 새로운 국가질서를 확립하여야 한다. 우리에게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대립과 반목을 해소하고 그야말로 화해와 협력으로 국민적 통합을 이룩해야 할 때이다.

 

21세기를 준비하는 올바른 역사의식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역사는 현재를 위해서 쓰는 것이다. 현재의 과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과거 역사의 해석은 달라진다. 죽어 있는 과거에 생명을 불어 넣고 미래로 나아갈 길을 찾아주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이다. 그리고 역사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이 史觀이다. 올바른 사관은 우리를 밝은 미래로 인도하고, 잘못된 사관은 자칫 역사에 올가미를 씌우고 우리를 어두운 미래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역사란 현실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미래란 건전하고 정의에 기초한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고, 이러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에 있어 삐뚜러진 과거사를 바로잡지 아니하고 새로운 역사적 도약을 기약하기 어렵다.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반성할 때 성장한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삶을 모색하는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뒤돌아 보며 반성할 줄 안다. 우리는 외세 의존적인 과거사와 독재정치로 얼룩진 잘못된 과거사를 반성하는 토대 위에 자주적이고 독립된 자랑스러운 조국을 건설하려는 새로운 미래로의 전망을 찾아야 한다 믿는다. 참되고 바르게 사는 삶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고 상호 존중하에 화해하며 협력하는 삶의 가치를 우리 모두가 공유하게 될 때, 편견이나 배타적 독선이 아닌 합리성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칙이 될 때, 우리는 새로운 역사적 도약을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꾸어 나아갈 새로운 사회는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민족적 자긍심을 드높이고, 평화와 도덕을 존중하는 歷史觀에 기초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믿는다. 우리의 자존심이 소중하기에 우리의 경쟁력을 키우고, 인간성의 회복과 도덕성을 기초로 인류애를 구현해야 한다. 가장 우리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신념에 기초하는, 민족적 세계주의요 세계적 민족주의를 이 땅에 구현하여야 한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

개혁의 최우선 과제

2004-06-21 10:04:14

 

최근 행정수도 이전의 문제를 바라보며, 느끼는 것은 우리사회의 위기가 정말 심각하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사회가 일어나는 문제보다 이를 감당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점차로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수도권이전 문제를 놓고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상황이 또 다시 국론을 분열시키는 계기로 되어가는 불안감을 지워버릴 수 없습니다.

 

건국이래 최대의 役事가 될 수 있는 이러한 사안에 대해서 도대체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국정운영원리가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자기 사는 지역의 땅값이 오른다는 이유로 천도를 찬성합니다. 그 타당성 검토가 충분한 고려 없이 졸속으로 법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구체적 타당성을 검토가 되지 아니한 사안을 가지고, 국민투표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온전한 대책과 일관된 정책 없이 집권층의 자의적 판단으로 고집되고 집행되고 있습니다. 대통령 재신임부터 탄핵정국 그리고 총선, 수도권 이전의 문제까지 모든 문제의 접근 방식은 개인과 집단의 이해와 이기심에 기초한 필요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습니다.

 

개인의 삶의 방식이든 권력의 행사방식이든 더 이상 합리적이고 원칙적인 문제해결 방식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일을 벌리려 하는 집권당과 그 문제점을 당리당략의 차원에서 딴지를 거는 집단이 있을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여론이나 국민의 의사가 지금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생각일 것입니다. 정부의 정책의 시행에 대하여 그 잘잘못 판단할 능력이 국민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이 정책을 결정할 능력은 없습니다. 다수결에 의하여, 어떠한 국가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발상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어떠한 정책은 국가나 전문가 집단에 의하여 충분히 연구되고 검토된 후, 그리하여 그 문제점과 효과 등이 일반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만한 대립적이거나, 또는 다른 몇 개의 정책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국민의 판단을 구하는 것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정말 시급히 해결하여야할 개혁의 최우선 과제는 정부도 정당도 국민도 너나 할 것 없이 아무도 모른 채, 대책없이 허동대고 있는 것이 위기의 현실에서 국가질서 사회질서 그리고 개인의 삶의 질서를 하나씩 둘씩 찾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는 국가의 기강을 바로 잡는 것이며, 국가의 운영의 원칙과 삶의 원칙을 하나 둘씩 바로 세우고, 국가의 질서와 삶의 질서를 가다듬는 일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일거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흐트러진 삶의 질서를 바로잡아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회안정과 국가질서를 확립하지 못하고 진행되는 그 어떠한 사업도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난 17년 민주화 운동은 한결같이 실패해왔습니다. 철학이 없고 민주적 사회질서를 바로 잡을 능력이 없었기에, 모든 대통령들은 새로운 일거리 벌리고 사업 벌리며, 정부 기구를 팽창하는 데 몰두해왔습니다. 수도권 이전 같이 준비도 없이 거대한 국책사업이 어이없이 벌어지는 상황은 노통이 개인적인 잘못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가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된 것이고, 그것은 제대로 된 민주화 개혁을 이해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이같이 혼란스러운 국가질서를 바로 잡는 것이 개혁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국가가 통치자 한 사람의 지도력에 의존하는 것으로부터 탈피하여 합리적인 지배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라 확신합니다. <합리적 지배>란 근대국가의 특징을 이루는, 법률에 의한 지배를 말합니다. 모든 국가권력의 행사는 법률에 의해 제재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法治主義根本理念입니다.

 

보편적 진리과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정당한 법에 의하여 사회통합을 달성하게 된다면 망국적인 지역감정이나 패거리 정치의 폐단, 계층 간의 갈등 등은 저절로 불식될 것입니다. 이러한 성취를 바탕으로 우리는 진정 세계화된 의식과 삶의 토양을 다져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사회는 보다 공정하고 활력있는 사회로 탈바꿈하게 될 것입니다.

 

현대사회는, 그리고 오늘의 우리사회는 한 개인의 영도적 결단이나 영웅적 지도력만으로 이끌어 나갈 수 없습니다. 합리적 이성과 정당한 법에 기초한 지배질서의 구축은 독재정치를 청산하고 실질적 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한 시대적, 역사적 최우선 과제임을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국가의 질서, 국민 통합을 위한 국법질서의 확립해야 하는데 있어서의

최우선 과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국가 기강을 바로 잡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국가기강의 근본은 무엇보다 형벌에 공정성을 확립하는 데에 있습니다.

 

법의 적용이 한 삶의 인생을 바꾸기도 하고 심지어는 생사를 결정하는 것이 형벌입니다. 형벌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못하는 사회에서, 국민주권을 말하고, 정의를 말하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을 아무리 외쳐본 들 그것은 대답이 없는공허한 메아리로 그치고 말 것입니다.

 

조선 5백년사에 가장 위대한 인물 중의 하나인 삼봉 정도전

일찌기, 국가의 본질을 <규범적 강제질서>로 이해한 탁월한 사상가이고 정치가이며 혁명가입니다. 서양에서 18~20세기에 걸쳐 이룩한, 근대법치국가의 이념을 무려 4~5백년 앞서 정립하고, 그러한 자신의 思想에 기초하여 朝鮮의 초석을 다진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는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에게 올린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형법이 한번 흔들리면, 난동을 금지하는 도구가 먼저 훼손되는 것입니다.

(난동을 억제하는) 힘이 없어 먼저 화를 입게 되고, 나아가

사람들의 마음이 편치 못하니, 난동이 그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대저, 사람이 하는 일이 공의에 맞지 아니하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사사로운 정에 이끌리게 될 것입니다

 

刑法一搖 禁亂之具先毁 力未得而禍先至 心未安而亂不正矣

大抵人之所爲 不合於公議 則必有合於私情

 

三峯 鄭道傳三峯集: 恭讓王에 올리는 중에서

 

 

 

죄는 벌해야 합니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해도 죄는 벌해야 마땅합니다. 그래야만 정의로운 사회와 정의로운 국가라 할 것입니다. 범죄가 발생하면 정의사회는 훼손됩니다. 정의사회를 복원하기 위하여 죄는 벌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고, 그러기에 모든 인간은 범죄에 대하여 고발할 권리를 갖습니다. 나아가 범죄자 또한 이성이 있는 사람으로 존중되고,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아갈 권리와 건전한 삶을 살 권리에 기초하여자신의 죄에 대하여 처벌할 권리를 갖는다 할 것입니다.

 

헤겔(G.W.F. Hegel)은 그의 <법철학>에서

범죄자 자신의 권리로서의 형벌(Punishment as a Right)을 말하며

범죄자는 理性者로 존중되고, 형벌은 범죄자 자신의 권리로서 그의 행위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범죄자 자신을 위해서도 죄는 벌해야 합니다. 훼손된 정의사회를 위하여 죄는 반드시 벌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刑事司法正義가 바로 섭니다.

 

범죄에 대해, 백 중의 하나 정도는 판사가 은전을 베풀어도 괜찮다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형을 선고받았던 범죄자가 아주 영향력있는 변호인을 선임하거나, 수명의 변호인을 선임해서 항소심에서 벌금형으로 풀려날 수 있는 현실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한 전직 법무장관은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범죄행위가 비슷하다 할지라도 양형이 다르게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거예요. 또 어떤 의미에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습니다.똑같은 절도를 저질렀다 해도 아버지가 없고 어머니는 매일 파출부로 일을 나간다면 부모있는 부자집 아들보다 재범할 위험성이 많지 않겠습니까. 그러다보면 가난한 집 자식은 소년원에 가고 부잣집 아들은 풀려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계적으로 양형을 평등하게 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有錢無罪, 無錢有罪!

이것이 우리나라 법조인들의 상식이고 법률문화의 현주소입니다. 이는 형사사법정의에 대한 몰이해를 유감없이 발휘한 발언이라 할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온전한 형사사법정의를 염려하는 법조인은 없는 것같습니다.

 

바른 刑罰이란 범죄에 상응하는 형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범죄자와 다른 범죄자와의 관계에서 그 양자의 책임에 비례하여 처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刑事司法正義입니다. 훼손된 정의를 위하여 죄를 벌하여야 하는 것이 刑事司法平均的正義라면, 범죄자 간의 책임에 비례하여 공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것은 刑事司法配分的正義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刑事司法에서 平均的正義配分的正義 모두를 온전하게 구현해야 비로소 정의로운 국가사회의 초석을 다졌다 할 것입니다.

 

형사사법정의가 온전하게 구현되어 있고 준법정신이 보편화된 사회라면, 위의 전직 법무장관의 발언은, 형사정책 운영 상 충분히 논의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국가권력이나 국민 모두 형편없는 준법정신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러한 발언은 刑事司法正義本末顚倒시킬 수도 있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 할 것입니다.

 

을 바로 세운다는 차원에서나, 국민화합을 위해서도 무엇보다 형벌을 엄정하고 공정하게 집행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正義法的安定性, 合目的性을 추구하는 刑法理念意義,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습니다. 형벌은 범죄로부터 정의로운 국가나 사회를 보호하는 수단입니다. 형벌은 공정하고 정의롭게 행해져야 합니다. 동시에 형벌은 어떤 법률의 보호법익을 구현하는 수단입니다. 이러한 형법의 이념을 온전히 구현하고 발전시켜 나아감으로써, 刑事司法正義, 나아가 正義國家, 社會를 건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위기

2004-11-21 11:44:59

 

1. 정말 위기인가?

 

도처에서 사람들은 우리사회의 위기를 말한다. 최근 수도이전에 대한 헌재판결을 수용하지 못하고, 국회의원이 헌재를 사법구데타란 격한 말로 비판한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행정부가 의회를 수족 삼아 사법부를 격하하는 것이며,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가 다 진창 속으로 추락하고 있다 말하며,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의 둥지인데 둥지 자체가 썩어나가고 있다면서 위기적 국가현실을 개탄한다.

 

또 어떤 이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각계각층의 여론의 비판을 거론하며, 지금 우리가 처한 국가적 위기 현실에 대하여 반지성적 이성의 위기를 말한다. 386세대는 감성적 반미주의와 반엘리트주의 정서에 호소함으로써 정권 창출에 성공했다고 한다. 현정부의 개혁에 대하여 일방적 독선주의로 상대를 부도덕한 존재로 보고, 현실보다는 이상에, 오늘의 삶보다는 어제의 유무죄에, 이성적 판단보다는 도덕적 원리주의에 집착하기 때문에 국론은 분열되고 사회적 통합을 이루지 못한다 비판한다. 이들은 개혁. 평등. 동포애 등 추상적 명분을 앞세운 극단적 이기주의와 독선으로 이성적 대화의 가능성을 봉쇄하기 때문에 국정은 분열증세를 보이고 사회 분위기는 피폐하고 각박해졌다 말하며 이 시대의 사회적 불안 요인을 지성의 위기로 말하고 있다.

 

대다수 보수기득권층 인사들은, 386세대가 기득권층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논점의 핵심과 전략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집권당의 386세대는 무책임하게 일단은 구질서를 때려부수고, 기득권을 최대한 빼앗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구 시대적 색깔론으로 자신들을 매도하는 것은 부당하다 말한다. 현 정권은 결코 사회주의 정권이 아니다. 극우 세력이 말하는 김정일에게 나라를 바치려 한다는 비난은 부당하다. 하지만 지금 이루어지는 기득권층의 잘못된 과거를 개혁하는 관점은 명백히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시행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최대한 확장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회주의의 관점과 계급혁명의 관점에서 개혁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현 정권의 개혁이 사회주의 국가를 추구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현 정권의 개혁은 미래에 대한 비젼을 제시하지 못한다. 현 정권의 개혁은 오직 빼앗기 위한 그리고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확대하려는 개혁일 뿐이다. 현 정권이 추구하는 경제정책이 사회주의적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여전히 관치경제의 잔재를 남겨둔 채 시장경제정책을 추구한다. 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와 과거사의 청산과 언론개혁이 건전한 자유민주주의 체제 건설을 위한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지금 진행되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과거사의 청산, 언론 개혁 등은 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을 극복하는 계급혁명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방법이 기득권층을 때려부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개혁이, 현 정권 자신들이 서 있는 입지를 스스로 붕괴시킬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북한의 대남전략에 휘말려 대한민국의 존립기반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유민주주의를 말하고 시장경제를 하겠다 말하며, 사회주의 혁명방식의 개혁을 추진하는 모순된 현실이, 국론을 분열 시키고 국가의 정체성과 안보를 위협하며 우리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보다 근본적 이유라는 생각이다.

 

노무현 정권은 철학이 없다. 오직 권력욕만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현 정권을 빨갱이로 매도하는 것은 부당하다. 위기에 처한 국가의 현실은 의 이분법적 흑백논리로 상대방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주장만의 선이라고 고집하는 독단적 편견으로 갈등을 심화시키며 우리 사회를 위기로 몰아간다는 생각이다. 원칙과 합리성, 절차적 타당성을 결여한 현 정권의 잘못된 개혁이 우리 사회를 갈갈이 찢고 사회의 위기를 고조시키며, 우리 모두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 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2. 집권당의 386세대 개혁 마인드

 

386세대는 우리 사회의 본질을 신식민지국가 독점자본주의 체제로 파악하고 배우며 성장하여 왔다. 해방 이 후, 미국은 남한을 강점한 다음 자기들의 식민지 지배에 더 유리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남한의 사회 경제적 관계를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재편성한다. 매판자본을 키우는데 제1차적 의의를 부여하고, 남한을 미국의 잉여상품처리의 중계자, 미국의 자본 침투의 안내자, 자원 약탈과 미국 군수품의 현지조달자의 역할을 맡길 예속 자본을 키우는 데, 1차적 의의를 부여하였다. 미국은 한국에서 매판자본의 육성에 사활적 이해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매판 자본의 육성에 골몰하였다. 19459월부터 1960년 초에 이르기까지, 응당 국민의 소유가 되어 국민의 자주적 생활의 물질적 담보로 이용되어야 할, 일제 소유재산을 적산불하라는 명목 하에 개인자본과 투기업자에게 물려주고, 미국의 원조물자의 구입과 판매권을 독점하여, 폭리를 얻게 하는 방법으로 미국에 예속적인 자본가의 기반을 닦아 주었다. 미국에 의한 매판자본의 육성의 수단방법은 가장 파렴치하고 교활한 미국의 본성을 집중적으로 반영하였다.

 

후진국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경제적 예속정책은 신식민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이다. 2차 대전 이후 농업국으로부터 공업국으로 성공적으로 진입한 유일한 예가 한국이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싱가포르, 홍콩은 도시국가이다. 대만은 중국의 일개 으로 인정된다. 한국만이 유일하게 국가경제로 성공한 예이다. 핵심기술은 대외종속적이지만, 중화학공업이 성공하였고, 일정하게 생산재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고, 자동차, 조선, 철강 기계금속 산업이 발달해 왔다. 한국경제는 범세계적인 하나의 모범사례였다. 동남아시아 나라들은 이러한 한국경제모델을 따르려 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한국의 경제를 파탄 내는 것이, 초국적(超國的) 금융자본에 의해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세계전략을 실현하기 위하여 유리하다 판단하고 IMF환란을 일으킨다. 개방화,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세계화 등으로 요약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초국적 자본에 의한 세계지배 전략이다. 초국적 자본에 있어, 금융부분의 규모는 실물경제 부문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 실물경제의 움직임이 금융경제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경제의 움직임이 실물경제를 지배하는 양상이 일어나고, 금융부분 안에서도 장기적인 투자보다는 단기적 투기적 부분이 압도적으로 크다. 결과적으로 투기적 금융자본에 의한 한국경제에 대한 지배력은 보다 강화되었고, 노동자의 삶의 질은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초국적(超國的) 자본은 한국자본주의의 패권적 분파(재벌,관료)를 싫어한다. 이들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해 미국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초국적 자본이 요구하는 시장개방과,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보장하라는 재벌 구조조정 등에 순응하지 않았으며, 나아가 한국의 재벌이 국제시장에서 초국적기업의 경쟁자로 등장하였다. IMF환란을 통하여 초국적 자본은 한국 경제개혁의 기수가 되었다.

 

19971124일 클린턴은 APEC 정상회담 차 벤쿠버로 떠나면서, 미국은 아시아에서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말하고, 미국 핵심목표는 한반도 평화라고 말하며, 한국전쟁 이 후 처음으로 항구적 평화를 위해 다음달 4자 회담에 희망을 갖는다 말했었다.

 

IMF환란을 통하여, 미국은 동아시아 경제에서 자신들의 지배력을 집중적으로 강화하려 했고, 이러한 경제적 질서의 개편은 군사적 질서의 재편과 긴밀히 맞물려 추진되었다.

 

현 정권의 개혁은 이러한 미국에 종속적인 한국 사회의 지배질서의 판을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농간에 놀아나는 사회가 아닌, 민중주체적인 그리고 반미 자주적인 사회를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남한 사회의 국가질서란 미국과 친일세력으로 이어진 친미세력을 위한 지배질서이다. 정부란 친미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위원회에 불과하다. 모든 법과 제도는 타락하고 부패한 지배층을 위하여 만들어졌고, 민중을 수탈하고 착취하기 위하여 만들어 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정통성이 없는 미국의 괴뢰 정부일 뿐이다. 모든 기득권층 반동적 관료들은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민중을 수탈하고 착취하였고, 민족적의 양심은 말살되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한다. 국가보안법은 동족을 적대시하는 반통일 악법이다. 국가보안법은 이러한 미제와 사대매국노의 악랄한 본성을 깨닫고 반미자주화 운동과 반파쇼 민주화 운동을 벌여온 애국적 인사를 탄압한 반인권적 악법이다. 민중해방을 위해 나아가 민중주체가 되는 민족통일을 가로 막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여, 반독재민주화 사회를 건설하고, 반미자주화를 통한 우리들(남과 북)끼리의 통일을 이룩하여야 한다.

 

과거사 청산을 주장한다. 과거사 진상을 밝혀 냄으로써, 사대매국노들의 죄상을 역사 앞에 낱낱이 밝혀야한다. 그들의 악랄한 본성을 깨닫고 증오하는 사상이 형성되게 하여야 한다. 과거사 청산은 사대매국노의 반민족적 죄상을 등을 인식시키는 것으로 출발하여, 제국주의의 침력적 약탈적 본성을 일깨움으로써, 낡은 사상과 인습을 뿌리뽑아 버리고 민중을 선진사상으로 무장시키고 각성시키는 사상개조 운동이 되어야한다. 과거사 청산을 통하여 식민지적 국가질서를 때려부수고, 민중이 주체되는 민주화된 새로운 국가건설에 앞장서야 한다.

 

언론 개혁을 주장한다. 2000년대의 한국 사회는 명백한 계급사회로 상층은 계급의식적투표를 하는데, 저소득층이나 저학력층에서 계급의식적투표를 하지 않고 있다. 언론개혁운동은 보수언론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대안언론의 성장을 통해 대안적 소통이 가능해져야 성공할 수 있다. 언론이라는 것은 다양한 사건과 사실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공론장에 연관되어 있다. 그 동안 이러한 공론장(公論場)은 조중동 등 거대 보수언론에 의해 독점되어 있었고 국민들은 이렇게 독점화 된 공론장에서 기득권층을 옹호하며 왜곡되게 해석된 정보를 그냥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살아왔다. 이것이 대중 의식화를 가로막는 반동적 수구언론에 대한 언론개혁의 필요성이며 당위성이다.

 

각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언제나 지배자의 관념이었다. 현대국가의 행정부는 전체 기득권층의 공동사무를 관장하는 하나의 위원회에 불과하다. 정치 권력이란, 계급이 다른 계급을 압제하기 위해 조직된 권력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민중은 점차로 모든 자본을 기득권층으로부터 박탈하여, 모든 생산수단을 국가의 수중에, 즉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민중의 수중에 집중시켜, 최대한 신속하게 전체 생산력을 증대시킬 목적으로 그의 정치적 지배권을 사용해아 한다. 이러한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수도이전은 새로운 역사의 개벽이며, 우리시대의 절대절명의 과제인 것이다. 헌법재판관의 구테타적 반역사적 책동이야 말로 민중과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할 반동적 범죄이다.

 

 

3.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위기

 

위와 같은 주체사상과 사회주의적 혁명의 사고방식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현 개혁 주도세력은, 국가의 총생산을 높이려는 경제정책은 필연적으로 노동자를 착취하고 노동자의 삶을 위태롭게 만든다 생각한다. 착취가 없고 노동자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이 민주화의 핵심적 요체라 강조한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운용이 미국에 대한 예속적 경제상황을 심화시켰고, 실업률의 증가와 비정규노동직의 양산 등 노동자의 지위를 현저하게 악화시켰음을 말한다. 그러하기에 현 개혁의 주체세력은 자신들에게 모든 권한이 최대한 집중되도록 하여 민중해방을 위하여 총매진하는 것만이 개혁의 성공적 지름길이라 믿는다. 쉽게 말하면 온 국민이 노사모 되어 반동적 친미예속적 기득권세력을 궤멸시키는 것이 우리 민족이, 민중이 해방되는 날이라 생각한다.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지 못하는 파괴라면 그것은 우리 모두를 공멸의 길로 이끈다는 것을 현 정권의 개혁 세력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국정의 운영은 대통령부터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법을 지키면서 실행되어야 마땅하다. 개혁은 새로운 사회질서를 확립해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개혁이 성공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개혁한다는 이름으로, 현 집권층은 이미 수 없는 특권에 집착한 반칙을 저질러 왔다. 특권과 반칙으로 형성된 기득권층을 부수기 위한다는 이름으로 또 다른 특권과 반칙을 허용한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우리의 염원은 결단코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구체적 비젼과 실천방안과 개혁에 대한 상세한 프로그램 없이, 기득권층 때려부수기로 일관하고 있는 그릇된 개혁은 사회위기 국면을 고조시킨다.

 

지금 우리 사회의 위기의 근원이 무엇인가?

기득권층의 반민족적 죄상과 민중 수탈적 죄상을 밝혀내어 계급투쟁의 사회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불신과 반목, 대립과 갈등,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사회 개혁을 추진하려는 데에 있다. 대립과 갈등이 고조되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사회 상황에서, 있는 자들의 투자는 당연히 기피된다. 실업이 늘고 소비가 위축되어 생산기반마저 무너진다. 경제가 망가지는 것은 필연적 귀결이다. 현 정권의 개혁 세력은 반대 세력과의 논의를 거부한다. 대화할 줄 모르고 합의할 줄 모르며 화해할 줄 모른다. 이러한 대결의 국면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자신들만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는 편견과 독선으로 대립과 갈등을 심화시키며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국민화합을 통해 결집된 국민적 역량을 도출하여 국가발전을 모색해야 할 대통령이, 당파적 입장에서의 권력의 확장에만 급급하여, 반목과 불신으로 증오심과 적개심을 조장하고 편가르기하며 국가를 갈갈이 찢고 있는 것이 참담한 우리의 현실이다.

 

문제적 기존의 모든 질서를 때려 부수면 우리에게 새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는가?

 

억압된 삶을 살아온 사람은 억압의 대상을 때려부술 때, 자신들이 권력을 잡기만하면 해방을 맞이한다 착각한다. <지금은 노예이지만, 앞으로는 독재자가 될 것>이라며 프로레타리아 독재를 역설하는 마르크스 식의 구호가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다. 현 집권층은 권력만능이란 주술에 빠진 듯 여겨진다. 그들에게 권력이 주어져 있고 확장을 도모하는 한, 그들은 결코 국가적 위기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다. 현 정권의 개혁은 새로운 사회질서에 대한 구체적 실천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기득권 빼앗기 식의 노대통령과 집권당의 386세대의 당파적 이해에서 진행되고 있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며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진행되는 잘못된 개혁이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건설하지 못하고 파괴할 줄만 아는 개혁이 그들 스스로를 나아가 우리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재앙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창조(創造)할 수 있는 사람은 파괴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파괴한다고 다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밝힌 386세대의 관점에서 개혁을 진행하면, 제일 좋아할 사람은 김정일이다. 현 정권의 개혁은 창조할 줄 모르고 제대로 일할 줄 모른 채, 빼앗고 파괴하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여겨진다. 일이란 시작과 끝이 있는 법이고 순서를 지켜 차근차근해야 성사된다. 노대통령이 일을 제대로 할 생각은 없고 오직, 자의적이고 전황적 권력의 확장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 우리 모두를 서글프게 만든다. 수도이전을 추진한 정황을 살펴보면 거대한 국책사업을 구체적인 일정도 청사진도 국민적 합의도 다 무시하고 번개불에 콩 구어 먹듯 해치우려 했다. 무모한 수도 이전의 추진과 좌절 그리고 변칙적 재추진에서 드러나는, 국가권력의 작동원리가 실종된 현실이 위기에 처한 국가적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그 사회가 지닌 문제 해결능력을 초과하면 그 사회는 명백히 위기의 국면에 처해 있다는 표식이다. 위기를 겪고 있는 사회는 모든 조직이 그 기능을 수행하는 데에 장애를 겪게 된다. 반대자를 과도하게 억압하고, 일을 무모하게 추진하지만 문제의 해결이 구조적으로 해결불능상태에 처해 있다. 개인이나 집단 간의 이해의 상충이나 갈등에 대하여 이견을 절충하고 합의를 도출하는데 실패한다. 이러한 사회통합장애로 인하여 국론은 분열되고 대립과 갈등은 첨예화 된다. 개인의 삶의 방식이든 권력의 행사방식이든 더 이상 합리적이고 원칙적인 문제해결이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명백한 국가 위기의 상황이다. 하지만 파괴만을 능사로 여기고 권력의 확장에만 급급한 집권층은 이를 외면하려 한다.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위기- 이것이 우리가 처한 위기의 심각성이다.

 

증오심과 적개심을 혁명의 동력으로 하였던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역사의 필연일 것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사랑하고 이해하고 양보할 때, 보다 생산적인 삶의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기득권층이 다 멸망하는 세상을 꿈꾸며, 고통 받고 소외된 자들은 거대한 형제애를 느끼며 새 세상을 기대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환상이 지닌 아이러니를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천국을 예고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말하는 천국이 자신들이 빠져들어가는 지옥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지상 낙원을 땅 위에 실현하고자 하였던 시도는 예외 없이 언제나 지옥을 만들고 마는데 그치고 말았다.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위기

2004-11-21 11:44:59

 

1. 정말 위기인가?

 

도처에서 사람들은 우리사회의 위기를 말한다. 최근 수도이전에 대한 헌재판결을 수용하지 못하고, 국회의원이 헌재를 사법구데타란 격한 말로 비판한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행정부가 의회를 수족 삼아 사법부를 격하하는 것이며,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가 다 진창 속으로 추락하고 있다 말하며,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의 둥지인데 둥지 자체가 썩어나가고 있다면서 위기적 국가현실을 개탄한다.

 

또 어떤 이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각계각층의 여론의 비판을 거론하며, 지금 우리가 처한 국가적 위기 현실에 대하여 반지성적 이성의 위기를 말한다. 386세대는 감성적 반미주의와 반엘리트주의 정서에 호소함으로써 정권 창출에 성공했다고 한다. 현정부의 개혁에 대하여 일방적 독선주의로 상대를 부도덕한 존재로 보고, 현실보다는 이상에, 오늘의 삶보다는 어제의 유무죄에, 이성적 판단보다는 도덕적 원리주의에 집착하기 때문에 국론은 분열되고 사회적 통합을 이루지 못한다 비판한다. 이들은 개혁. 평등. 동포애 등 추상적 명분을 앞세운 극단적 이기주의와 독선으로 이성적 대화의 가능성을 봉쇄하기 때문에 국정은 분열증세를 보이고 사회 분위기는 피폐하고 각박해졌다 말하며 이 시대의 사회적 불안 요인을 지성의 위기로 말하고 있다.

 

대다수 보수기득권층 인사들은, 386세대가 기득권층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논점의 핵심과 전략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집권당의 386세대는 무책임하게 일단은 구질서를 때려부수고, 기득권을 최대한 빼앗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구 시대적 색깔론으로 자신들을 매도하는 것은 부당하다 말한다. 현 정권은 결코 사회주의 정권이 아니다. 극우 세력이 말하는 김정일에게 나라를 바치려 한다는 비난은 부당하다. 하지만 지금 이루어지는 기득권층의 잘못된 과거를 개혁하는 관점은 명백히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시행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최대한 확장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회주의의 관점과 계급혁명의 관점에서 개혁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현 정권의 개혁이 사회주의 국가를 추구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현 정권의 개혁은 미래에 대한 비젼을 제시하지 못한다. 현 정권의 개혁은 오직 빼앗기 위한 그리고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확대하려는 개혁일 뿐이다. 현 정권이 추구하는 경제정책이 사회주의적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여전히 관치경제의 잔재를 남겨둔 채 시장경제정책을 추구한다. 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와 과거사의 청산과 언론개혁이 건전한 자유민주주의 체제 건설을 위한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지금 진행되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과거사의 청산, 언론 개혁 등은 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을 극복하는 계급혁명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방법이 기득권층을 때려부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개혁이, 현 정권 자신들이 서 있는 입지를 스스로 붕괴시킬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북한의 대남전략에 휘말려 대한민국의 존립기반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유민주주의를 말하고 시장경제를 하겠다 말하며, 사회주의 혁명방식의 개혁을 추진하는 모순된 현실이, 국론을 분열 시키고 국가의 정체성과 안보를 위협하며 우리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보다 근본적 이유라는 생각이다.

 

노무현 정권은 철학이 없다. 오직 권력욕만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현 정권을 빨갱이로 매도하는 것은 부당하다. 위기에 처한 국가의 현실은 의 이분법적 흑백논리로 상대방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주장만의 선이라고 고집하는 독단적 편견으로 갈등을 심화시키며 우리 사회를 위기로 몰아간다는 생각이다. 원칙과 합리성, 절차적 타당성을 결여한 현 정권의 잘못된 개혁이 우리 사회를 갈갈이 찢고 사회의 위기를 고조시키며, 우리 모두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 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2. 집권당의 386세대 개혁 마인드

 

386세대는 우리 사회의 본질을 신식민지국가 독점자본주의 체제로 파악하고 배우며 성장하여 왔다. 해방 이 후, 미국은 남한을 강점한 다음 자기들의 식민지 지배에 더 유리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남한의 사회 경제적 관계를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재편성한다. 매판자본을 키우는데 제1차적 의의를 부여하고, 남한을 미국의 잉여상품처리의 중계자, 미국의 자본 침투의 안내자, 자원 약탈과 미국 군수품의 현지조달자의 역할을 맡길 예속 자본을 키우는 데, 1차적 의의를 부여하였다. 미국은 한국에서 매판자본의 육성에 사활적 이해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매판 자본의 육성에 골몰하였다. 19459월부터 1960년 초에 이르기까지, 응당 국민의 소유가 되어 국민의 자주적 생활의 물질적 담보로 이용되어야 할, 일제 소유재산을 적산불하라는 명목 하에 개인자본과 투기업자에게 물려주고, 미국의 원조물자의 구입과 판매권을 독점하여, 폭리를 얻게 하는 방법으로 미국에 예속적인 자본가의 기반을 닦아 주었다. 미국에 의한 매판자본의 육성의 수단방법은 가장 파렴치하고 교활한 미국의 본성을 집중적으로 반영하였다.

 

후진국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경제적 예속정책은 신식민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이다. 2차 대전 이후 농업국으로부터 공업국으로 성공적으로 진입한 유일한 예가 한국이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싱가포르, 홍콩은 도시국가이다. 대만은 중국의 일개 으로 인정된다. 한국만이 유일하게 국가경제로 성공한 예이다. 핵심기술은 대외종속적이지만, 중화학공업이 성공하였고, 일정하게 생산재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고, 자동차, 조선, 철강 기계금속 산업이 발달해 왔다. 한국경제는 범세계적인 하나의 모범사례였다. 동남아시아 나라들은 이러한 한국경제모델을 따르려 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한국의 경제를 파탄 내는 것이, 초국적(超國的) 금융자본에 의해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세계전략을 실현하기 위하여 유리하다 판단하고 IMF환란을 일으킨다. 개방화,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세계화 등으로 요약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초국적 자본에 의한 세계지배 전략이다. 초국적 자본에 있어, 금융부분의 규모는 실물경제 부문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 실물경제의 움직임이 금융경제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경제의 움직임이 실물경제를 지배하는 양상이 일어나고, 금융부분 안에서도 장기적인 투자보다는 단기적 투기적 부분이 압도적으로 크다. 결과적으로 투기적 금융자본에 의한 한국경제에 대한 지배력은 보다 강화되었고, 노동자의 삶의 질은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초국적(超國的) 자본은 한국자본주의의 패권적 분파(재벌,관료)를 싫어한다. 이들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해 미국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초국적 자본이 요구하는 시장개방과,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보장하라는 재벌 구조조정 등에 순응하지 않았으며, 나아가 한국의 재벌이 국제시장에서 초국적기업의 경쟁자로 등장하였다. IMF환란을 통하여 초국적 자본은 한국 경제개혁의 기수가 되었다.

 

19971124일 클린턴은 APEC 정상회담 차 벤쿠버로 떠나면서, 미국은 아시아에서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말하고, 미국 핵심목표는 한반도 평화라고 말하며, 한국전쟁 이 후 처음으로 항구적 평화를 위해 다음달 4자 회담에 희망을 갖는다 말했었다.

 

IMF환란을 통하여, 미국은 동아시아 경제에서 자신들의 지배력을 집중적으로 강화하려 했고, 이러한 경제적 질서의 개편은 군사적 질서의 재편과 긴밀히 맞물려 추진되었다.

 

현 정권의 개혁은 이러한 미국에 종속적인 한국 사회의 지배질서의 판을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농간에 놀아나는 사회가 아닌, 민중주체적인 그리고 반미 자주적인 사회를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남한 사회의 국가질서란 미국과 친일세력으로 이어진 친미세력을 위한 지배질서이다. 정부란 친미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위원회에 불과하다. 모든 법과 제도는 타락하고 부패한 지배층을 위하여 만들어졌고, 민중을 수탈하고 착취하기 위하여 만들어 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정통성이 없는 미국의 괴뢰 정부일 뿐이다. 모든 기득권층 반동적 관료들은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민중을 수탈하고 착취하였고, 민족적의 양심은 말살되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한다. 국가보안법은 동족을 적대시하는 반통일 악법이다. 국가보안법은 이러한 미제와 사대매국노의 악랄한 본성을 깨닫고 반미자주화 운동과 반파쇼 민주화 운동을 벌여온 애국적 인사를 탄압한 반인권적 악법이다. 민중해방을 위해 나아가 민중주체가 되는 민족통일을 가로 막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여, 반독재민주화 사회를 건설하고, 반미자주화를 통한 우리들(남과 북)끼리의 통일을 이룩하여야 한다.

 

과거사 청산을 주장한다. 과거사 진상을 밝혀 냄으로써, 사대매국노들의 죄상을 역사 앞에 낱낱이 밝혀야한다. 그들의 악랄한 본성을 깨닫고 증오하는 사상이 형성되게 하여야 한다. 과거사 청산은 사대매국노의 반민족적 죄상을 등을 인식시키는 것으로 출발하여, 제국주의의 침력적 약탈적 본성을 일깨움으로써, 낡은 사상과 인습을 뿌리뽑아 버리고 민중을 선진사상으로 무장시키고 각성시키는 사상개조 운동이 되어야한다. 과거사 청산을 통하여 식민지적 국가질서를 때려부수고, 민중이 주체되는 민주화된 새로운 국가건설에 앞장서야 한다.

 

언론 개혁을 주장한다. 2000년대의 한국 사회는 명백한 계급사회로 상층은 계급의식적투표를 하는데, 저소득층이나 저학력층에서 계급의식적투표를 하지 않고 있다. 언론개혁운동은 보수언론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대안언론의 성장을 통해 대안적 소통이 가능해져야 성공할 수 있다. 언론이라는 것은 다양한 사건과 사실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공론장에 연관되어 있다. 그 동안 이러한 공론장(公論場)은 조중동 등 거대 보수언론에 의해 독점되어 있었고 국민들은 이렇게 독점화 된 공론장에서 기득권층을 옹호하며 왜곡되게 해석된 정보를 그냥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살아왔다. 이것이 대중 의식화를 가로막는 반동적 수구언론에 대한 언론개혁의 필요성이며 당위성이다.

 

각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언제나 지배자의 관념이었다. 현대국가의 행정부는 전체 기득권층의 공동사무를 관장하는 하나의 위원회에 불과하다. 정치 권력이란, 계급이 다른 계급을 압제하기 위해 조직된 권력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민중은 점차로 모든 자본을 기득권층으로부터 박탈하여, 모든 생산수단을 국가의 수중에, 즉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민중의 수중에 집중시켜, 최대한 신속하게 전체 생산력을 증대시킬 목적으로 그의 정치적 지배권을 사용해아 한다. 이러한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수도이전은 새로운 역사의 개벽이며, 우리시대의 절대절명의 과제인 것이다. 헌법재판관의 구테타적 반역사적 책동이야 말로 민중과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할 반동적 범죄이다.

 

 

3.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위기

 

위와 같은 주체사상과 사회주의적 혁명의 사고방식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현 개혁 주도세력은, 국가의 총생산을 높이려는 경제정책은 필연적으로 노동자를 착취하고 노동자의 삶을 위태롭게 만든다 생각한다. 착취가 없고 노동자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이 민주화의 핵심적 요체라 강조한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운용이 미국에 대한 예속적 경제상황을 심화시켰고, 실업률의 증가와 비정규노동직의 양산 등 노동자의 지위를 현저하게 악화시켰음을 말한다. 그러하기에 현 개혁의 주체세력은 자신들에게 모든 권한이 최대한 집중되도록 하여 민중해방을 위하여 총매진하는 것만이 개혁의 성공적 지름길이라 믿는다. 쉽게 말하면 온 국민이 노사모 되어 반동적 친미예속적 기득권세력을 궤멸시키는 것이 우리 민족이, 민중이 해방되는 날이라 생각한다.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지 못하는 파괴라면 그것은 우리 모두를 공멸의 길로 이끈다는 것을 현 정권의 개혁 세력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국정의 운영은 대통령부터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법을 지키면서 실행되어야 마땅하다. 개혁은 새로운 사회질서를 확립해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개혁이 성공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개혁한다는 이름으로, 현 집권층은 이미 수 없는 특권에 집착한 반칙을 저질러 왔다. 특권과 반칙으로 형성된 기득권층을 부수기 위한다는 이름으로 또 다른 특권과 반칙을 허용한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우리의 염원은 결단코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구체적 비젼과 실천방안과 개혁에 대한 상세한 프로그램 없이, 기득권층 때려부수기로 일관하고 있는 그릇된 개혁은 사회위기 국면을 고조시킨다.

 

지금 우리 사회의 위기의 근원이 무엇인가?

기득권층의 반민족적 죄상과 민중 수탈적 죄상을 밝혀내어 계급투쟁의 사회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불신과 반목, 대립과 갈등,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사회 개혁을 추진하려는 데에 있다. 대립과 갈등이 고조되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사회 상황에서, 있는 자들의 투자는 당연히 기피된다. 실업이 늘고 소비가 위축되어 생산기반마저 무너진다. 경제가 망가지는 것은 필연적 귀결이다. 현 정권의 개혁 세력은 반대 세력과의 논의를 거부한다. 대화할 줄 모르고 합의할 줄 모르며 화해할 줄 모른다. 이러한 대결의 국면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자신들만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는 편견과 독선으로 대립과 갈등을 심화시키며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국민화합을 통해 결집된 국민적 역량을 도출하여 국가발전을 모색해야 할 대통령이, 당파적 입장에서의 권력의 확장에만 급급하여, 반목과 불신으로 증오심과 적개심을 조장하고 편가르기하며 국가를 갈갈이 찢고 있는 것이 참담한 우리의 현실이다.

 

문제적 기존의 모든 질서를 때려 부수면 우리에게 새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는가?

 

억압된 삶을 살아온 사람은 억압의 대상을 때려부술 때, 자신들이 권력을 잡기만하면 해방을 맞이한다 착각한다. <지금은 노예이지만, 앞으로는 독재자가 될 것>이라며 프로레타리아 독재를 역설하는 마르크스 식의 구호가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다. 현 집권층은 권력만능이란 주술에 빠진 듯 여겨진다. 그들에게 권력이 주어져 있고 확장을 도모하는 한, 그들은 결코 국가적 위기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다. 현 정권의 개혁은 새로운 사회질서에 대한 구체적 실천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기득권 빼앗기 식의 노대통령과 집권당의 386세대의 당파적 이해에서 진행되고 있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며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진행되는 잘못된 개혁이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건설하지 못하고 파괴할 줄만 아는 개혁이 그들 스스로를 나아가 우리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재앙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창조(創造)할 수 있는 사람은 파괴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파괴한다고 다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밝힌 386세대의 관점에서 개혁을 진행하면, 제일 좋아할 사람은 김정일이다. 현 정권의 개혁은 창조할 줄 모르고 제대로 일할 줄 모른 채, 빼앗고 파괴하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여겨진다. 일이란 시작과 끝이 있는 법이고 순서를 지켜 차근차근해야 성사된다. 노대통령이 일을 제대로 할 생각은 없고 오직, 자의적이고 전황적 권력의 확장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 우리 모두를 서글프게 만든다. 수도이전을 추진한 정황을 살펴보면 거대한 국책사업을 구체적인 일정도 청사진도 국민적 합의도 다 무시하고 번개불에 콩 구어 먹듯 해치우려 했다. 무모한 수도 이전의 추진과 좌절 그리고 변칙적 재추진에서 드러나는, 국가권력의 작동원리가 실종된 현실이 위기에 처한 국가적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그 사회가 지닌 문제 해결능력을 초과하면 그 사회는 명백히 위기의 국면에 처해 있다는 표식이다. 위기를 겪고 있는 사회는 모든 조직이 그 기능을 수행하는 데에 장애를 겪게 된다. 반대자를 과도하게 억압하고, 일을 무모하게 추진하지만 문제의 해결이 구조적으로 해결불능상태에 처해 있다. 개인이나 집단 간의 이해의 상충이나 갈등에 대하여 이견을 절충하고 합의를 도출하는데 실패한다. 이러한 사회통합장애로 인하여 국론은 분열되고 대립과 갈등은 첨예화 된다. 개인의 삶의 방식이든 권력의 행사방식이든 더 이상 합리적이고 원칙적인 문제해결이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명백한 국가 위기의 상황이다. 하지만 파괴만을 능사로 여기고 권력의 확장에만 급급한 집권층은 이를 외면하려 한다.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위기- 이것이 우리가 처한 위기의 심각성이다.

 

증오심과 적개심을 혁명의 동력으로 하였던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역사의 필연일 것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사랑하고 이해하고 양보할 때, 보다 생산적인 삶의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기득권층이 다 멸망하는 세상을 꿈꾸며, 고통 받고 소외된 자들은 거대한 형제애를 느끼며 새 세상을 기대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환상이 지닌 아이러니를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천국을 예고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말하는 천국이 자신들이 빠져들어가는 지옥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지상 낙원을 땅 위에 실현하고자 하였던 시도는 예외 없이 언제나 지옥을 만들고 마는데 그치고 말았다.

[법치국가론2] 형법과 형사소송법의 이념

2005-04-27 09:52:23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사회는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국가는 인간의 사악함 때문에 만들어 졌다. 사회는 인간을 애정으로 결합시킴으로써 적극적으로 우리의 행복에 이바지 하고, 국가는 을 억제함으로써 소극적으로 우리의 행복에 기여한다. 사회는 그 성원들의 화합을 조성하지만 정부는 구별을 만든다. 사회는 그 성원의 보호자이고 국가는 성원의 처벌자의 역할을 한다.” 말했다

 

사회는 이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사회통합을 달성하고,

국가는 규제와 처벌을 통하여 국가목적을 달성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가장 작은 정부는 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파괴하는 범죄만을 처벌하고 다른 나머지는 국가의 성원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좋은 정부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란, 정부란 브르죠아의 이익을 대변하는 행정위원회에 불과하다 말하며 국가 존립 자체를 부정하였다. 근대 자본주의 국가의 발전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입법은 압력단체나 통치자의 권력의 확장방식으로 사회의 공정성을 파괴하며 성장하였다.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고전적 자유주의적 경제학이나 신자유주의적 경제학을 막론하고, 자유주의적 경제학은 시장에 국가개입을 반대한다. 규제가 적은 사회일수록 건전한 사회라 주장하는 것이 자유주의 이념이다.

 

이 때 말하는 규제의 최소화란 국가 경제행위에 개입할 때 야기되는 시장질서의 왜곡으로 인하여 시장자율성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기에, 국가주도의 경제발전이란 필연적으로 붕괴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자유주의적 경제학의 이념이다.

 

하지만 최소한 국가질서가 확실하게 확립되어 있지 않는다면, 사회질서는 물론 시장질서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때 최소한의 국가질서란 범죄로부터 국가를 방어하는 경찰국가의 기능만을 가진 국가질서- 다시 말해 범죄와 위법행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국가질서이다.

 

이 최소한의 국가질서가 어떠한 형태의 국가에 있어서도 국가질서의 근본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범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는 존립할 수 없다.

 

 

 

1. 형법의 이념

 

죄는 벌해야 한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해도 죄는 벌해야 마땅하다. 그래야만 정의로운 사회와 정의로운 국가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건전한 국가가 존립하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최우선으로 범죄로부터 국가와 사회가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하기에 죄는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죄를 처벌하지 않으면 정의로운 국가존립은 아니 국가라는 조직 자체가 존립 불가능하게 된다.

 

범죄가 발생하면 사회 안정이 깨어지고 정의의 국가질서는 훼손된다. 정의사회를 복원하기 위하여 죄는 반드시 벌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고, 그러기에 모든 인간은 범죄에 대하여 고발할 권리를 갖는다. 나아가 범죄자 또한 이성이 있는 사람으로 존중되고,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아갈 권리와 건전한 삶을 살 권리에 기초하여, 자신의 죄에 대하여 처벌할 권리를 갖는다.

 

헤겔(G.W.F. Hegel)은 그의 <법철학>에서

범죄자 자신의 권리로서의 형벌(Punishment as a Right)을 말하며, 범죄자는 理性者로 존중되고, 형벌은 범죄자 자신의 권리로서 그의 행위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범죄자 자신을 위해서도 죄는 마땅히 벌해야 한다. 훼손된 정의사회를 위하여 죄는 반드시 벌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刑事司法正義가 바로 설 수 있다.

 

작금의 有錢無罪 無錢有罪의 잘못된 관행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실형을 받았던 피고인이 아주 영향력 있는 변호인을 선임하거나, 수명의 변호인을 선임해서, 항소심에서 벌금형으로 풀려날 수 있는 현실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항소하면 할수록 변호사 비용을 많이 들이면 들일수록 형량이 줄어드는 현실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박상천 전 법무장관은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었다.

범죄행위가 비슷하다 할지라도 양형이 다르게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거예요. 또 어떤 의미에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습니다. 똑같은 절도를 저질렀다 해도 아버지가 없고 어머니는 매일 파출부로 일을 나간다면 부모있는 부자집 아들보다 재범할 위험성이 많지 않겠습니까. 그러다보면 가난한 집 자식은 소년원에 가고 부잣집 아들은 풀려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계적으로 양형을 평등하게 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단지 박 전 장관만의 생각 아닌, 여전히 법조계 전반에 상식처럼 통하는 생각이다. 이는 왜곡된 우리의 저질 법률문화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바른 刑罰이란 범죄에 상응하는 형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범죄자와 다른 범죄자와의 관계에서 그 양자의 책임에 비례하여 처벌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온전하게 실현되어야 刑事司法正義가 바로 설 수 있다. 훼손된 정의를 위하여 죄를 벌하여야 하는 것이 刑事司法平均的正義라면, 범죄자 간의 책임에 비례하여 공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것은 刑事司法配分的正義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刑事司法에서 平均的正義配分的正義 모두를 온전하게 구현해야, 국가의 기강이 바로 선다.

 

사회는 이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사회통합을 달성하고, 국가는 규제와 처벌을 통하여 국가목적을 달성한다는 국가의 본질적 성격을 이해한다면, 나아가 국가의 본질은 규범적 강제질서라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형벌의 공정성이 국가기강의 근본 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형벌이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 정의 사회질서는 기대할 수 없고, 정의사회 질서 없이 사회는 온전한 통합을 이루어낼 수 없고, 당연한 귀결로 국가는 국가목적을 온전히 수행할 수 없다. 범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지 못한다면 사회 안정과 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 안정과 평화가 없는 사회가 번영을 구가할 없음은 자명한 것이다.

 

형사사법정의가 온전하게 구현되어 있고 준법정신이 보편화된 사회라면, 법조계에서 변명거리처럼 말하는 재범방지를 위한 양형의 재량적 폭은 형사정책 운영 상 충분히 논의될 수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국가권력이나 국민 모두 형편없는 준법정신을 가지고 있고, 서울 부산에서 똑 같은 범죄에 대한 양형이 다른, 법의 권위가 송두리 채 실종된 난장판의 우리현실에서, 유전무죄 유전무죄에 대한 법조계의 이러한 시각은 刑事司法正義本末顚倒시키는 무지한 발상이라 비난받아 마땅하다. 지금 우리 사회의 질서를 바로 잡으려면 을 바로 세운다는 차원에서나, 국민화합을 위해서도 무엇보다 형벌을 엄정하고 공정하게 집행하는 일이 개혁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마땅하다.

 

正義法的安定性, 合目的性을 추구하는 刑法理念意義,

첫째, 형벌은 범죄로부터 정의로운 국가나 사회를 보호하는 수단이다.

둘째, 형벌은 공정하고 정의롭게 행해져야 한다.

 

형벌은 어떤 법률의 보호법익을 구현하는 수단이다. 복잡한 현대사회는 수많은 법률에 의하여 규율된다. 만약 법률의 의사가 위법행위에 의하여 침해된다면 사회질서는 유지되지 못하고, 개인의 권리는 보장되지 못한다. 이러한 법률의 의사를 보호하고 사회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다름 아닌 형벌이다. 흔히 검사를 체제수호의 선봉에 선 공익의 대표자라 말한다. 이는 형법의 이념을 온전히 구현하는 것은 刑事司法正義, 나아가 正義國家, 社會를 건설할 수는 출발점이 된다.

 

 

 

2. 형사소송법의 이념

 

 

건전한 국가의 존립을 위하여 죄는 벌해야 된다는 것이 형법의 이념이다. 절대왕정시대에도 전제국가에서도 죄는 벌해왔다. 민주주의 발전은 국가권력이 오남용으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인권을 발전시켜온 역사이다. 특히 국가 형벌권이 남용되고 오용된다면 무고한 사람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민주주의적 법치국가에서의 형법의 이념은 <죄는 벌하여야 한다>는 가치와 <적법절차에 의하여 입증된 죄만을 처벌해야 한다>는 가치가 동일 한 가치를 지닌다. 열명의 범죄자를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되는 것이 민주주의 법치국가의 형법이념이다.

 

그러하기에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 무엇보다 국가형벌권을 행사함에 그 절차를 철저히 법률로 통제하고, 권력분립의 원칙에 의하여, 강제수사 등에 대하여 사법적 통제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국가권력에 의한 형벌권의 오남용을 방지하고, 수사에서 공판 그리고 재판의 집행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국가권력 행사를 엄격하게 규제하는 법이 형사소송법이다.

 

형사소송법이 온전히 지켜지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는 곧 민주주의가 제대로 시행되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의 문제이다. 형사소송법의 이념은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의 준수라는 말 속에 함축되어 있다. 나아가 형사 소송법의 이념은 모든 행정의 원칙을 포괄하는 법치국가의 근본 원리를 함축한다.

 

행정의 근본원리는 인간의 감정과 주관이 배제된, 몰인정 (impersonality)한 객관성에 기초하며 전문성이 보장되는 합리적인 것이어야 한다. 평등대우와 과도제한 금지는 행정의 대원칙이고, 이는 무엇보다 행정절차가 적법절차를 준수할 때 가능하다. 관리의 재량권의 행사가 부당하게 개인의 권리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아니된다. 개인의 권리나 자유의 제한은 반드시 법률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민주주의 이념을 구현하는 법치국가에서 이러한 원칙을 가장 철저하게 지킬 것을 요구하는 것이 다름 아닌 국가형벌권의 행사이다. 형벌의 공정성이 국가기강의 근본이라면, 형사소송체계는 국가시스템의 핵심 중에 핵심사항이다. 국가권력에 의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가장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는 소지가 있는 것이 다름 아닌 형벌권의 행사이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 이념을 실현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이 국민의 인권를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가에 대한 척도가 된다. 형사소송법은 국가형벌권의 행사가 권력분립의 원칙에 의한 사법적통제라는 외부적 통제를 받고, 적법절차의 철저한 준수라는 내부적 통제를 받는다.

 

피고인은 확정판결이 있을 때가지 무죄로 추정되며, 형사소송의 당사자의 지위에서 자신의 피의사실을 항변할 수 있는 지위와 권리를 같는다. 형사소송법은 형사피의자가 수사과정에서 법률에 의거하지 아니한 부당한 방법으로 인권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한다. 적법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수사기관의 수사와 이에 근거한 검사의 공소사실은 그 진정성을 의심받게 되고 나아가 소송요건 이 不備된 된 것으로 보아 공소기각이나 면소판결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이 형사소송법의 수사기관의 권한 행사가 적법절차를 무시한 과도한 제제로 인한 국가권력의 오남용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의 근본이념은 국가권력에게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의 준수를 요구하고, 국가형벌권이 감정이나 정치적 이해에 의하여 오용되고 남용되는 것을 철저히 금지한다. 형사소송법은 무엇보다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로부터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국가권력은 본질적으로 건전한 사회를 보호하기 위하여, 범죄나 위법행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처벌권의 성격을 갖는다. 국가는 범죄와 위법행위를 예방하고 처벌함으로써 형사사법정의 구현하고, 사회안정을 통한 정의사회의 기초를 마련한다.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구현하는 법치국가는 형사소송법의 이념을 온전히 구현할 때 비로소 국가의 기강이 확립될 수 있다. 형사소송법은 무엇보다 국가가 국가형벌권을 오남용하는 것을 방지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여,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기강의 근본법이다.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적 법치국가의 국가질서는 그 무엇보다 형사소송법에 의하여 보장되는 것이다.

 

최근 정부 여당이 설립하고자 하는 공수처법은 이러한 형사소송절차의 근간을 훼손하여 국가기강을 문란케 한다.

 

공수처의 수사란 처음부터 형사소송절차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이 시작되게 되어 있다.

원래 시민단체 등에서 검찰권의 부패를 기소독점에서 비롯된 것이라 잘못 알고 수사권과 공소권을 분리시키는 것과 검찰 이외에 공소권을 갖는 수사기관을 만드는 것이 검찰을 견제하고 검찰의 부패를 막는 것이라 생각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시민단체의 주장이란 그야말로 형사소송법 체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수처법에 의하면 부패와 비리의 냄새가 나면 범죄혐의자의 가족까지 수사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예를 들면 여론의 지탄을 받을 만한 사안이면 무조건 구속수사 같은 것이 이루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이다. 공수처법은 형사소송절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공수처법 제14(수사권의 발동)는 수사처는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때에는 즉시 수사에 착수한다.

1. 고위공직자 또는 그 가족의 범죄행위를 인지한 때

2. 범죄행위에 대한 고소.고발이 있는 때

3. 15조의 규정에 의하여 국회. 감사원. 대검찰청 또는 국방부로부터

수사의 의뢰가 있는 때 수사권을 발동(?)하게 되어 있다.

 

형사소송법 제195조는 검사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 과 증거를 수사하여야 한다며, 증거에 기초한 수사를 수사개시조건을 명시한다. 나아가 형사소송법 제200조부터 215조는 체포로부터 구속 그 이외의 강제적인 수사처분에 대하여 영장주의를 채택하여 수사에 대한 엄격한 사법적 통제를 요구하고 있다.

 

공수처법에는 구속 등 강제수사의 조건 따위는 아예 표시되어 있지도 않다.

 

부정부패 척결의 국민 요구라는 미명하에, 대통령 직속의 부패방지위원회 산하에 공수처를 설립한다 한다. 그리고 공수처의 특별 수사관이 형사소송법체계의 근간을 자의적 판단에 의하여 뒤흔들 수 있는 법을 만들고 있다. 그야말로 國紀를 뒤흔드는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의 정신나간 망발이라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

[법치국가론1]국가의 개념에 대한 일반적 오해

2005-04-24 16:51:47

 

국가의 개념에 대한 일반적 오해

 

 

최근 친미가 애국이냐, 반미가 애국이냐 식의 논란이 뜨겁다. 어떤 이는 박정희를 국가를 일으킨 영웅이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반민주적 행태를 꼬집어 그를 비난한다. 사람들에게 국가가 무엇인가 물어보면 대답이 시원치가 않다. 국가발전이 무엇이냐 말하면 어떤 사람은 민주화의 진전 정도로 말하고 또 어떤 이는 경제발전이 국가발전이라 말한다. 심지어는 한승조 같은 쓰레기 같은 지식인은 탈산업사회, 세계화 시대에서는 친일행위가 애국애족행위로 평가 받을 세상이 온다 헛소리를 해 된다.

 

국가관이란 국가를 통일적인 전체로 보아 그 목적, 의의, 가치 등에 관한 견해를 말한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 등 정치에 관하여 말하는 국민들 너 나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애국을 말하고 국가발전을 말한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빠져있다. 국가가 무엇이냐는 정확한 정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국민적인 합의가 없다.

 

이러한 혼란이 야기되는 데에는 국가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그릇되었기 때문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란 일정한 영토와 그곳에 사는 일정한 주민들로 이루어져, 통치조직을 갖는 사회집단이라는 것이 사전적 의미의 국가의 개념이다. 국가를 형태별로는 왕정, 귀족정, 민주정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전제국가도 국가이고, 독재국가도 국가이며, 공산주의 국가도 국가이다. 다시 말해 사전적 의미의 국가로는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국가의 의미가 정확하게 이해될 수 없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민주공화국이다. 분명하게 못박고 있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에서는 민주주의 국가만이 국가로써의 온전한 의미를 갖는 국가일 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란 국가의 의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친일행위가 애국애족행위라는 망언이 나오고, 박정희가 국부이고 영웅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잘못 각인 되어 있다. 이러한 그릇된 생각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국가정통성을 그 본질에서부터 훼손한다.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없이, 그냥 사전적 의미의 국가라는 개념을 두리 뭉실 잘못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혼란이 오고, 우리 사회는 저마다 애국 애족을 외쳐대며 당파적 이익추구에 여념 없이 국가발전 방향조차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다. 여야 할 것 없이 새로운 국가 비젼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이 오로지 당리 당략에 입각한 권력투쟁만 난무한 채, 사회갈등이 심화되고 우리 사회는 혼돈과 미망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건국이래 한번도 국가의 정통성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한 채, 대한민국 헌정사는 그야말로 오욕의 헌정사를 걸어 왔다. 역대 대통령 중 그 어느 누구도 성공한 대통령이지 못했다. 불과 반 세기 남짓한 세월 동안 9번의 헌법 개정을 한 나라-이것이 국가정통성을 뿌리 내리지 못한 우리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헌정사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국가란 국민을 잘살게 해주기 위해 존립해야 된다고 정도로 막연하게 이해하는 것이 거의 대다수 사람에게 그릇되게 인식된 국가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지금 미국은 세계최강의 위치에서 국가의 번영을 누리고 있다. 미국이 지금의 번영을 누릴 수 있는 배경에는 지난 200여 년 민주주의 발전사에 있어서 가장 균형 잡힌 국가관에 기초하여 건국하였고, 처음부터 통일적인 민주주의 이념의 국가관에 기초하여 새롭게 건국된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미국민주주의의 출발에는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왕권이나 귀족 세력 구 제도(ancien régime)가 없다. 미국은 출발부터 왕권이나 귀족의 반발 없이 서구의 그 어느 나라보다 온전한 관점으로 민주주의를 시작하고 민주주의 이념을 꽃피워 세계 최강국의 대열에 오를 수 있었다.

 

민주주의 국가란 무엇인가? 미국 건국의 이념적 토대를 제공하였던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은 그의 저서 상식(Common Sence)의 맨 처음 시작 부분에서 아주 적절하고 간략하게 국가(정부)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어떤 저술가들은 사회와 국가를 혼돈하고 이들 간의 구분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 국가와 사회는 서로 다른 것이고 그 기원에부터 다른 것이다. 사회는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국가는 인간의 사악함 때문에 만들어 졌다. 사회는 인간을 애정으로 결합시킴으로써 적극적으로 우리의 행복에 이바지 하고, 국가는 을 억제함으로써 소극적으로 우리의 행복에 기여한다. 사회는 그 성원들의 화합을 조성하지만 정부는 구별을 만든다. 사회는 그 성원의 보호자이고 국가는 성원의 처벌자의 역할을 한다.

 

토마스 페인은 국가를 일종의 필요 악으로 이해한다.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제3대 미국 대통령 제퍼슨(Thomas Jefferson)정부 없는 신문보다는 신문 없는 정부를 택하겠다.” 말한 것은 이러한 국가관에 바탕에 나온 말이다. 전제국가나 절대왕정국가에서, 왕도정치를 해왔던 동양의 국가에서 제퍼슨과 같은 말을 했다면 그를 온전한 정신이 있는 자로 볼 사람이 있을까? 제퍼슨 말에 공감을 표시할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말은, 민주주의 이념에 입각한 토마스 페인이 말한 <국가의 성원에 대한 처벌자>로서의 국가관을 온전히 이해해야 비로소 납득될 수 있다.

 

이러한 민주주의 국가관은 근대법치국가의 발전 과정에서 국가의 본질을 규범적 강제질서로 이해하는 데에 이르도록 발전시킨다. 국가란 국가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에 따라 물리적 강제력을 동원할 수 있는 규범 강제질서이다. 국가는 사회 전체의 공동 을 추구하는 국가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이를 저해하는 사회적 유인과 행동에 대한 규제를 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물리적 강제를 동반하는 처벌권을 갖는다.

 

사회는 이해와 협력을 바탕을 사회통합을 달성하고,

국가는 규제와 처벌을 통하여 국가목적을 달성한다.

 

국가권력은 국가 목적과 국가의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하여, 개인의 자유를 규제하고 국가목적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형벌을 부과하기도 한다. 이러한 까닭에 국가권력의 강제력은 철저히 법률에 의하여 통제될 때 한하여, 민주주의 이념은 온전하게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국가권력의 행사는 적법절차를 거쳐, 정당하고 투명하며 일관되게 이루어져야 한다. 나아가 잘못된 국가권력 행사에 대한 국민의 이의 제기, 개선을 위한 노력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제도를 가져야 명실상부한 민주주의 국가이다.

 

국가는 본질적으로 규범적 강제질서라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이념이고 근대 법치국가의 이념이다. 그리고 민주주의 발전은 이러한 국가권력의 오남용을 억제하는 제도적 장치의 개발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력분립론이니 법의 지배의 이념에 기초한 법치국가가 민주주의국가의 근간이다.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보장 헌법이념을 실현하려는 헌정국가만이 민주국가이다. 나아가 국가권력의 행사를 법으로 통제하여 국가권력의 오남용에 의한 국민의 권리를 침해되는 것이 없도록 하여야 민주주의 국가이다. 국가의 정통성은 헌법에서 비롯되며 모든 국가기관의 권력이 법에서 나와야 하고 국가권력의 행사가 적법할 때 한하여 정당성을 갖게 된다. 권력이 恣意적으로 법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 법으로부터 권력이 나오는 원칙이 확립될 때 비로소 민주주의 이념은 제도적으로 정착될 수 있다.

 

국가의 정통성은 헌정질서를 확립하고 모든 국가기관의 법률에 기속(羈束)이 실천될 때, 나아가 법이 국민을 안전을 보장하고 사회안정과 평화를 보장할 때, 국가의 지속적 번영은 가능하다.

 

국가목적이 경제성장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민주주의적 국가관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경제성장이 국가의 발전의 한 척도로 이해할 수 있다. 박정희는 경제성장의 미명 하에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가가 국민의 인권을 탄압하고 국가가 마치 사익집단처럼 운영했다. 당연한 귀결로 경제는 성장했지만 성장할수록 지역 간 계층 간의 갈등은 심화되고, 행정 상의 편의나 특정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입법 방식이 지속적으로 헌정질서 국법질서의 통일성을 파괴해 왔다. 온전한 의미의 민주주의 국가관을 바르게 이해했다면 박정희의 업적이란 사상누각이라는 것을 쉽사리 알 수 있게 된다.

 

역사는 우리의 현재 이해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고, 우리의 현실에서 우리가 가꾸어 나아가 새로운 국가질서가 무엇인지에 의하여 과거의 역사는 평가된다. 우리가 추구해야할 국가의 이념과 새로운 국가질서란 마땅히 자유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구체화하는 국가질서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방법으로 헌정국가를 확립하고 법치국가질서를 확립하는 시대적 과제임을 올바르게 인식한다면 박정희는 전횡적 권력에 탐착하여,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국법질서를 파괴한 국가의 반역자로써의 그의 죄상을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박정희 식의 국가운영방식은 아직도 극복되지 못하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표류하고 있다. 박정희는 역사의 쓰레기 통에 내던져야만이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의 정통성을 법의 지배의 이념을 매개로 헌법 위에 공고하게 확립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정치의 핵심과제는 경제성장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의 핵심과제는 조화와 균형, 화해와 협력을 통하여 사회적 연대성을 도출하고 결집된 국민적 역량을 극대화 하는 제도적 환경을 조성해 나아가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데에 있다. 경제성장은 이러한 국가환경의 당연한 결과물로 나오게 되는 것일 뿐이다.

 

박정희가 성공한 지도자로 평가한다면 그것은 국민통합을 강압적 방식에 의하여 일시적으로 이루어낸 데에서 가능한 것이다. 박정희의 정치란 국민의 이기심을 자극했을 뿐이 <강압과 탐욕>의 의거한 저열한 정치이다. 박정희 정치가 지속적 번영이 불가능한 저열한 정치 방식임을 바르게 안다면, 오직 타락한 기득권층에 대한 <증오와 파괴>만을 앞세운 저질 포퓰리즘 또한 새로운 국가질서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건설할 줄 모르는 개혁이라는 이름의 파괴는 그 필연적 귀결로 현 집권층에게 스스로 무덤을 파게 되는 잘못된 정치임을 바르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정질서와 국법질서는 경제성장의 미명하에 성장과 실적주의, 행정편의주의 만을 추구한 수많은 잘못된 입법으로 철저이 망가졌었다. 지난 18년 민주화과정은 제데로 된 민주주의 국가질서를 확립하지 못하고, 독재권력을 파괴하는 것이 전부였던, 천박한 자유주의에 기초한 잘못된 민주화로 거덜이 나 버린 것이 작금의 실정이다.

 

올해로 해방 60년을 맞는다.

가장 시급한 국가적 과제는 진정한 의미의 국민화합의 국가질서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온 국민 그 무엇보다 국민적 화합과 사회적 연대성을 회복하는 길만이, 우리가 처한 혼돈과 미망의 현실을 타개하고 우리가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 유일한 비상구임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문명사적인 변혁의 시대를 살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강대국의 세력 다툼의 각축장으로 되어가고 있는 냉혹한 국제정치- 그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에 우리가 서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것이 우리가 처한 절대 절명의 시대적 과제라는 국민적 각성이 절실한 싯점이다.

 

헌정질서를 확립하는 길만이 국가정통성을 확립하는 길이며, 우리 모두가 화해하고 협력하는 밝은 미래의 국가질서를 만들어 가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가 진정 민주주의를 이 땅 위에 뿌리 내리려면 헌정국가만이 제대로 된 국가라는 사실을 올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오직 법치국가만이 민주주의 이념을 실질적으로 구체화할 수 유일한 길이라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아닌 원칙이 지배하는 국가질서를 가꾸어 나아가야 한다.

역사 바로 세우기의 허와 실

2004-08-17 14:14:05

 

 

지금 우리는 문명사적 변혁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지식정보화 사회이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수 많은 정보 속에서,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자아와 인간실존에 대한 성찰 없이 주체성을 잃고, 오직 자신의 이기심의 극대화를 위해, 시류의 흐름에 쫓아다니기 급급한 바쁜 삶을 살고 있다고 여겨진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 자신이 죽는 일 것이다. 인간의 삶 중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반성하고 허물을 고쳐가면서 성장한다. 과거를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은 긍지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개척한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은 사람은 과거를 반성하여 스스로를 개선하며, 보다 나은 미래를 도모한다. 과거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현재의 자신의 역량와 균형 잡힌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보다 성공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과거를 얼마나 제대로 반성하고, 우리가 처한 현재의 상황에 대한 온전한 인식과 정돈된 삶의 질서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처한 우리의 앞날은 결코 낙관적이 아니다. 세계화는 우리에게 무한경쟁의 시대를 열어 놓았고, 국제질서는 경제전쟁과 패권주의시대로 흘러가는 양상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까? 약육강식의 강자의 논리를 따라서 강자의 길을 가야 하는가, 아니면 약자와 강자가 함께 사는 공생공영의 길로 가야 할까? 일방적으로 힘을 키우느냐, 아니면 도덕을 바탕으로 공동의 번영을 추구하는 힘을 키우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우리가 힘의 길을 간다면 그 길은 평화의 파괴로 이어질지 모른다. 인간의 생존에서 힘은 절대 필요한 것이지만 힘을 과도하게 믿는 사람은 힘 때문에 파멸할 수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과 위기의 국가 상황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경제만을 국가 발전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처한 위기가 강성노조 때문이라 말한다. 그리고 강성노조를 때려부수는 길만이 우리의 살길이라 강변한다. 어떻게 때려잡는가? 국가성장의 목표를 세워놓고 이에 대한 장애적 요인을 강압적으로 모조리 제거하는 독재정치로 되돌아가자는 말인가? 가당치 않은 이야기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우리가 살 길이란 노동자와 기업인이 서로 공동의 번영을 모색해야 우리의 미래가 있다. 과거처럼 수출하는 기업에 특혜적 정책금융을 지원하고, 기업의 이윤추구에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노동운동을 전적으로 탄압하는 방식으로 기업을 이끌어 갈 수는 없다. 특혜적 지원을 받던 기업이 정부의 지원 없이 세계화된 시장에서 무한 경쟁을 벌이는 일은 벅차다. 게다가 지금까지 투명하지 못했던 기업지배구조는 노사화합을 깨뜨린 원인으로 작용하였고, 노사간의 대립은 그 화해의 접점을 찾을 수 없을 만큼 회복 불능의 불신과 반목의 깊은 골이 파여져 있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해 나아가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에 대한 기대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대립의 근본적인 원인은 부패한 국가권력과 유착된 타락한 기업운영 방식과 무관치 않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갈등의 근원적 이유는 성장위주의 삶을 지향하면서, 정당한 삶의 방법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결과가 잘못된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사회라면 그 사회에서 정당한 삶의 방식은 그 설 땅을 잃게 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면, 도덕성과 인간의 존엄성은 필연적으로 훼손될 수 밖에 없다.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더 이상 기존의 방식으로 성장이 불가능하고, 각종 사회문제의 발생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해결 능력을 초과하는 데에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전에는 당연히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들이, 이제는 더 이상 점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점차로 많아지게 된다. 경제적 관점으로는 경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경제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화해의 기반이 무너지고 불신과 반목이 증폭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우리 시대의 가장 절실한 문제는 성장과 민주화 과정을 겪으면서 파괴될 대로 파괴된 사회적 연대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우리가 개척해야 할 새로운 사회란 공생공영의 인도적 사회라는 것은 자명해 진다. 근대화, 산업화 과정의 지난 20세기는 공생공영 보다는 외형적 힘을 키우는 데에 주력하였다. 외세로부터 해방을 위하여, 남북분단의 대결구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힘을 키워왔다. 그 결과 지금 세계 12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했고, 일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의 국민소득을 누리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그 힘을 키우기 위해, 인권이나, 도덕이니, 문화니, 복지는 뒷전으로 밀어놓았다. 경제 성장 위주의 국가 정책, 그리고 배금주의의 개인과 집단 간의 이기심 확산은 인간으로써의 품위를 손상하고, 도덕과 사회 기강을 어지럽히게 되었고,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의 갈등을 증폭시킨 혼돈의 경제대국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개인과 기업의 이윤만을 추구하며 기업윤리도 개인 윤리도 땅에 떨어지고, 범죄의 급증과 수많은 사건 사고를 발생시켰다. 서로 힘을 모아 국가발전을 위하여 힘을 모아 노력했었던 과거는 잃어버리고,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사회적 책임과 국민 통합을 무시한 채, 지역간 이익집단간 노사간의 갈등은 첨예화 되며, 잘 되던 경제마저 침체의 늪에 빠졌고 지금 우리 경제는 발전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위기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경제성장위주의 시절을 경유하며, 우리는 과소비와 사치 향락을 일삼고, 근면한 삶의 태도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역사는 현재를 위해서 쓰는 것이다. 현재의 과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과거 역사의 해석은 달라진다. 죽어 있는 과거에 생명을 불어 넣고 미래로 나아갈 길을 찾아주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이다. 그리고 역사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이 史觀이다. 올바른 사관은 우리를 밝은 미래로 인도하고, 잘못된 사관은 자칫 역사에 올가미를 씌우고 우리를 어두운 미래로 이끌어 갈 수 있다.

 

바람직한 사관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지난 40여 년간 지속되어온 개발독재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고 진정 민주주의적 사회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아가 민족분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성과 새로운 국가의 발전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국가적 과제는 무엇인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국가 위기 상황은 국가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국가체제가 정당성을 상실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수진영에서는 현 정부의 좌경화 경향과 현 정부의 개혁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받아들이며, 현 정권의 국가 정체성에 의문점을 제기한다. 그리고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현 정권과 보수진영의 대립은 사회주의와 파시즘의 계급투쟁전선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러한 대립 국면의 지속은 우리 모두를 공멸로 이끌어 가는,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사생결단의 극한 대립으로 여겨진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의 과제를 이해하며, 이를 바탕으로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로의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믿는다. 그것은 헌법전문이 표방하는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확립하고 국가권력의 정당성를 확립하는 일이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구체적 삶에서 민주주의적 생활질서를 구현해 나아가는 것이다.

 

현재의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정당한 삶의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상황의 논리로 부정한 삶의 방식을 옹호하는 것을 용인한다면 정당한 삶의 질서는 바로 세울 수 없다. 밥을 굶었다 하여, 빵을 훔치는 것이 정당화되어서는 아니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 볼 때, 정당한 삶의 질서와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위해서 친일행위는 규명되어야 마땅하다. 민족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고, 새로운 미래의 비젼을 보다 구체적인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잘못된 과거의 문제에 대한 반성이 없이는 우리의 역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진전되지 아니한다. 친일청산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민족분단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국가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는 것이어야 한다. 친일청산의 방향은 사적유론자들이 말하는 우리가 처한 억압연관에 대한, 파괴나 해체 그리고 보복이나 처벌이 아닌, 새로운 국가 비젼을 열어가는 쪽으로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 설정한 우리의 국가적 과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그 잘잘못을 규명하는 차원에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기초로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일제시대의 과거사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적 국가질서를 확립하는 데에 있어, 과거 개발독재로 인하여 상실한 정당한 삶의 질서의 회복을 위하여, 경제성장위주의 개발독재가 가져온 부정적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 또한 마땅하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한다면, 정당한 삶은 그 설 땅을 잃는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가? 정당한 삶의 질서와 정의에 입각한 법질서로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적 화합의 기초를 다지는 것이다.

 

국가 권력이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정당한 권력의 행사가 가장 심각하게 훼손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부터이다. 박정희의 지배방식은 권력의 법적 제제를 무시한 것 뿐 아니라 삼권분립의 헌정질서마저 깡그리 무시하고 진행된, 전횡적이고 자의적인 저열한 통치방식이라 비난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박정희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으로 박정희를 비난하는 것이라 착각한다. 절대빈곤의 시대적 상황에서 국민소득 1만불 시대까지 이끌어 오는데 박정희의 리더쉽이 그 견인차 역할을 하였고 그 업적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독재정치의 유산을 청산하지 못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정당한 국가질서는 바로 세울 수 없다. 민주주의 헌정질서는 민주주의 실현의 전제조건이 된다. 민주적 헌정질서는 법치국가와 법의 지배의 이념으로 구체화되고 법치국가의 최우선 과제는 통치권자의 권한의 오남용을 방지하는 데 있다

 

박정희를 비난하는 나의 관점은 정당한 방식으로 행사되는 국가권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새로운 우리의 역사를 개척해야 할 리더쉽이란, 복잡하고 다양한 개인과 계층의 요구를 수용하고, 인간의 개성을 존중하는 리더쉽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강압적인 방식으로 국민을 획일화 하여 국가를 이끌어가는 리더쉽이 지금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데에 전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고, 역사가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면 민주주의적 리더쉽이란 고도의 사회적 감수성과 각종 학문적 지식을 동원하여 주어진 상황을 균형있게 판단하고, 사실적인 문제와 규범적인 문제를 적절히 조합하여, 국가조직의 활력을 이끌고, 국민 통합을 이끌어 내는 리더쉽의 관점에서 독재정치란 저열하고 조잡한 지배방식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무분별한 통일논의와 막연한 통일기대의 확산으로, 국가 체제에 대한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국가정체성은 불투명해 보인다. 현 집권당이 행하는 과거사 청산은 국가의 정통성을 바로세우고 민주적 헌정질서를 확립하는 과거사의 청산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과거사 문제로 극한 대립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사회주의와 파시즘의 계급투쟁 전선의 형성으로 비추어진다. 또 과거사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란 국가의 정체성의 확립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현 정권의 과거사 청산은 국가정체성의 확립이 아닌, 정략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나아가 북한의 대남전략에 이용될 소지가 충분한, 반제국주의 자주화 운동으로써의 친일청산과, 반파쇼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써 악의적으로 박정희 깍아내려, 박근혜 죽이려는 얄팍한 정략으로 비추어진다.

 

현 정권이 진행하는 역사 바로 세우기가 진정,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민주주의적 국가 질서의 확립을 위한 과거사의 청산이라면 지금 진행되는 수도권 이전 사업 같은 것은 절대 해서는 아니될 일이다. 국가시스템을 업그래이드 하면서 다른 프로그램을 작동하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다. 컴퓨터의 시스템 장애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모든 프로그램을 종료시키고 안전모드에서 실행해야 한다. 현 정권은 국가의 근간을 바로 잡고 국기를 바로 잡으려, 그 사회적 파장이 엄청날 수 있는 역사 바로 세우기를 주장한다.

 

단호한 어조로 나는 현 정권에 경고한다.

올바른 사관은 우리를 밝은 미래로 인도하고, 잘못된 사관은 자칫 역사에 올가미를 씌우고 우리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 현 정권의 역사 바로 세우기란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역사 바로 세우기가 아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현 정권의 역사 바로 세우기의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그것이 우리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역사 바로 세우기가 아니라, 정략적 차원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존립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사적유물론에 의거한 민중해방과 민족해방을 위한, 역사 바로 세우기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정권이 주장하는 역사바로 세우기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역사 바로 세우기인가, 아니면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위한 역사 바로 세우기인가.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징표가 있다. 수도권 이전을 강행한다면 현 정권의 역사 바로 세우기가 가짜라는 표식이 될 것이다.

 

21세기를 준비하는 올바른 역사의식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그것은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민족적 자긍심을 드높이고, 평화와 도덕을 존중하는 歷史觀이어야 믿는다. 우리의 자존심이 소중하기에 우리의 경쟁력을 키우고, 인간성의 회복과 도덕성을 기초로 인류애를 구현해야 한다. 가장 우리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신념에 기초하는, 민족적 세계주의요 세계적 민족주의를 이 땅에 구현하여야 한다 믿는다.

 

새로운 시대를 위한 민족주의

2005-03-15 12:22:30

 

 

<민족주의는 救國주의이다. 主義란 무엇인가. 주의란 일종의 思想이고 信念이다. 무릇 사람이 어떤 한 가지 일에 관하여 알맞은 이치를 탐구하면, 제일 먼저 사상이 생기고 사상이 철저하여지면 곧 신념이 굳어지고 신념이 강해지면 힘이 생긴다. 사람들이 家族주의 宗族주의를 숭배하지만 국가를 숭배하지 않는다. 민족주의란 한 마디로 國族주의(국가와 민족이 곧 하나라는 신념)라 말할 수 있다. 우리가 고금의 역사에서 민족 생존의 도리를 거울 삼아, 중국을 구하고 중국 민족의 영원한 생존을 바란다면 반드시 민족주의를 제창하여야 한다.>

 

三民主義 중에서 -孫 文-

 

 

1. 수난 당하는 민족주의

 

최근 곳곳에서 민족의 의미가 수난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한 술 더 떠, 민족주의적 색채를 강화하는 일본이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을 능멸하는 가운데,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의 친일예찬 친일 행위의 정당화의 발언이 양식있는 많은 이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나는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고 시급한 역사적 과제가 민족정신의 고양과 민족정기의 확립에 있다 믿는다. 민족정신을 바탕으로 5천년 이어 내려온 한민족 공동체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 나아가 이를 기초한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여 통일 조국의 미래를 모색할 때라 믿는다. 바로 세워야 할 민족정신이, 냉전 시대의 유물인 때 지나버린 반공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는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에 의하여 유린 당하는 현실에 대하여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스스로 보수를 자처하면서 민족이나 국가는 소멸될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확산되는 경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서구 정치사상사의 발전 과정에서 민족주의를 처음 제창하고 강조하였던 사람들은 보수 우파와 자유주의자들이었다. 민족을 부정하고 국가가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자들은 공산주의자들이었다. 노동자에게 조국이 어디 있느냐고 마르크스는 민족의 意義를 부정한다. 공산주의자들은 국가란 브르죠아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행정위원회에 불과하며, 모든 지배질서, 도덕률 법률 등은 브르죠아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허위의식의 소산이라 말한다. 노동자들의 삶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사슬을 끊어버리기 위해, 국가를 전복하라며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할 것을 역설하며 공선당 선언은 끝맺는다. 작금 우리 사회의 좌파가 민족을 강조하고, 우파를 자처하는 자들이 민족과 국가를 부정하는 현실이 아이러니칼하다.

 

민족을 부정하려는 자들에게 무슨 이념이나 소신이 있는 것일까? 그저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감추고 미국의 눈치를 보며, 북한을 적대시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반민족을 말하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조차 모르면서 심지어는 국가의 해체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역설하였던 박정희가 되살아난다면 자신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이들의 이런 꼴을 보고 무엇이라 말할까? 박정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였던 통치이념은 국민교육헌장에 잘 드러나 있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 에 이바지할 때다.> 말했던 박정희의 통치 이념은 민족주체성의 확립, 전통과 진보의 조화를 통한 새로운 민족문화의 창조, 개인과 국가의 조화를 통한 민주주의 발전으로 집약될 수 있다. 박정희는 국가를 단지 민족공동체로 이해한 것으로 여겨진다. 박정희는 국민통합을 상부상조의 전통에 의한 민족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국민교육헌장은 민족문화 창달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는 박정희의 통치 이념을 엿볼 수 있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 상조의 전통을 이어 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 정신을 드높인다.> 박정희가 말하는 국민정신이란 다름 아닌 민족 정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박정희는 국가목적과 국가이념을 구현하고 동시에 국민통합과 평화의 전제조건으로써의 강제적 규범질서인 국가의 본질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최근 극우 세력에서 주장되는 친일예찬 또는 반민족적 친일행위를 정당화하는 주장이 확산되는 것이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상황의 논리를 들어 그릇된 삶이 정당화된다면 올바른 삶이란 그 설 토양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친일행위가 정당화된다면 밝고 건강한 사회를 가꾸어 가려는 노력과 우리의 주체성의 확립을 기초로 한 자주국가, 나아가 통일국가를 모색하는 노력은 시작조차 할 수 없다. 민족이란 세계화의 시대에 없어져야 할 개념이라며 그야말로 민족이나, 민족주의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에서 비롯된 단지 정략적 발언이 확산되는 현실을 우려한다.

 

 

2.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민족주의는 사람들은 누구나 민족국가(국민국가)에 대하여 최고의 충성심을 품게 된다는 신조로 정책이나 사상체계라기보다는 정치적 견해라고 할 것이다. . 역사적으로는 자기 민족을 다른 민족이나 국가와 구별하고 그 통일?독립?발전을 지향하는 사상 혹은 운동이며, 정치적으로는 민족을 사회공동체의 기본단위로 보고 그 자유의지에 의하여 국가적 소속을 결정하려는 입장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천 년에 걸친 중세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이상의 모습으로 부각되었던 것은 보편적인 세계국가였지 분할된 정치단위가 아니었다. 18세기가 되기까지 국가나 영토는 민족성에 따라서 규정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도시국가, 봉토?영주?왕조국가?종교단체?교파 등에 묶여 있었다. 민족국가의 개념은 역사상 대단히 새로운 것이었으며, 과거에는 이상적 국가형태로 서술되지도 않았다. 로마 제국은 중세에 신성 로마 제국으로 명맥을 유지했을 뿐 아니라 ''레스 푸블리카 크리스티아나''(그리스도교 공화국 혹은 공동체)의 개념 속에 살아 있었으며 세속화가 진행된 뒤에는 ''일치된 세계문명''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일민족(一民族) 일국가(一國家)의 원리를 주장하는 이러한 민족주의는 민족의식에 대한 자각이 확산된 근대 이후의 현상으로서 민족주의의 발달은 시민적 자유주의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한다. 루쏘(Jean-Jacques Rousseau), 헤르더(Johann Gottfried von Herder)는 초기의 민족주의 사상가이다.

 

민족주의는 근대적인 운동이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를 연구하고 깊이 자극된 루소는 인간의 정치성향과 종교적인 추구 사이의 괴리를 메꾸기 위해서 <민족>이란 정치적 공동체가 모든 생활양태의 근간을 이루어야 한다고 보았다. 바람직한 국가는 전 시민이 일반의지(volonte generale)의 형성에 참여해야 하며, 정치체제는 공동체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므로 공동체의 특수성을 온전히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동체의 특수성은 <민족>에 가장 잘 반영된 것으로 이해했다. 독일의 철학자 헤르더는 사회공동체를 문화공동체로 이해하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로 민간전승과 민족적 전통의 역할을 강조했다.

 

민족주의는 무엇보다 문화공동체의 精粹로 이해되어야 한다.

 

장 자크 루소는 국민주권과 민족의지를 형성하는 구성원 전체의 협력을 강조하고 일반 대중을 진정한 문명의 주체로 간주함으로써 프랑스 민족주의에 이론적 바탕을 제공했지만, 프랑스 혁명에서 드러난 민족주의에서 보편적 인간성과 자유로운 진보에 대한 이성적 믿음의 표출은 루소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널리 알려진 ''자유?평등?박애''의 혁명이념 및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은 프랑스 국민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 대하여 호소력을 지니는 것으로 모든 자유민주주의적 민족주의의 공통분모가 되었다. 축제와 깃발들, 음악, , 국경일, 애국적인 설교들이 프랑스인의 삶 곳곳에서 피어났다. 혁명적 민족주의는 민족의식의 형성에 있어서 개인의 의사를 강조했다. 국민국가란 구성원들의 의사결정 행위에 의하여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었고 국민투표가 국민의사의 표현방식으로 채택되었다. 프랑스 혁명의 민족주의는 사회진화사상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것은 불평등하고 권위주의적인 과거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등의 세계공동체를 추구했다.

 

18세기가 끝날 무렵 교육 및 공공생활의 민족주의화 경향은 정치적 충성의 범위를 넘어 민족적 차원으로 나아갔다. 문화적 민족주의를 처음으로 입에 담았던 시인?학자들은 자국어(속어)를 개척하여 문어체의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민족의 전통들을 하나하나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정신을 물려받은 민중들은 장차 민족국가의 형성을 요구하게 된다. 18세기 이전 일부 세력들 사이에서는 민족적 감정이 생성되었고 특히 민족 간의 갈등이 빚어졌을 때 민족감정은 두드러졌다.

 

정치적으로 중요성을 띠는 민족주의 의식의 발전은

절대군주가 등장하여 중세 봉건사회의 지방 분권주의(分權主義)를 타파하고 영토확장과 함께 중앙집권적 국민(민족)국가를 탄생시켰으며, 생활 및 교육의 세속화가 진행됨에 따라 자국어가 유행하고 교회와 종단의 구속력이 약해졌으며, 상업이 발전됨으로써 중산 시민계층과 자본주의적 기업형태를 창출해냈다.

 

국가의 중심으로 자처하고 있던 군주는 국민주권 이론과 인권사상에 밀려났다. 군주는 더 이상 민족이나 국가가 아니었고 국가는 국민의 국가, 민족적 국가, 조국이어야 했다. 국가는 민족과 동일시되었으며 문명은 민족적 문명을 의미했다.

 

민족주의를 고전적 민족주의 ''나치오니스무스''(Nationismus)와 확장적 민족주의 ''나치오날리스무스''(Nationalismus)로 구분하기도 한다. 20세기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의 식민지 민족주의는 전자를, 제국주의 열강의 세계 분할정책은 후자를 대표한다.

 

19세기말 제국주의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민족주의의 반동화(反動化)는 점차 심화되어갔다. 1870년대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종말을 고했던 1914년까지는 유럽의 각 민족국가가 자본주의에 의한 세계발전을 추구하여 제국주의적 영토분할과 식민지 공략에 치중했던 기간이었다. 제국주의는 민족주의의 부정임과 동시에 그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민족국가의 테두리를 넘어서 타민족을 지배하려는 면에서는 민족주의의 부정임에 틀림없었으나, 민족의 힘을 과시하고 권위를 높이려는 것이었으므로 발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부르주아지는 민족주의를 최대한 이용했다. 그들에게 민족주의는 대외침략과 제국주의 전쟁을 미화하고 약소민족에 대한 압제를 합리화하며 식민지 주민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한 사상적인 근거로 생각되었다. 반동화는 20세기의 1920~30년대에 걸쳐 파시즘이 대두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 체제하에서는 개인의 자유?평등?인간성의 가치가 부정된 반면 국가나 민족이 절대시되고 민족적 이기주의와 침략전쟁이 신성화되었다.

 

아시아에서 반동적 민족주의를 발전시킨 나라는 일본이었다. 일본은 프로이센과 비스마르크의 영향을 받아 천황제(天皇制)라는 절대주의 체제를 확립하고 천황?귀족?지주 중심의 민족주의를 전개했다. 일본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두자 자본주의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킴과 동시에 대규모 침략전쟁에 나섰다. ''만세일계(萬世一系)의 황통(皇統)''이니 ''세계무비(世界無比)의 국제(國制)''니 하면서 그것을 지킨다는 구실 아래 국민의 자유가 억압되었으며 침략전쟁에는 이른바 성전(聖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민족주의가 자유의 적에게 봉사하며 반동화되어 가고 있을 때, 제국주의의 핍박을 받고 있던 식민지?반식민지에서는 새로운 민족주의가 혁명적 정신의 기수로서 성장하고 있었다. 식민지 민족주의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식민지 세계의 전역에 퍼져나갔다.

 

식민지 민족주의는 고전적 민족주의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다. 고전적 민족주의는 자본주의가 봉건세력의 억압에 항거하여 성장하는 과정에서 탄생된 민족주의였으므로 한결같이 반봉건적 성격을 띠고 있었으나, 식민지 민족주의의 경우는 보다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무르익어 제국주의의 단계로 접어든 시기에 제국주의의 압제로 신음하던 식민지에서 일어난 것이었으므로 대개 식민지 민족주의에는 반제국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과거 일제하에서 일어났던 민족독립운동이 반 외세 반제국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3.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계를 위한 민족주의

 

헤르더는 사회공동체를 문화공동체로 이해하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로 민간전승과 민족적 전통의 역할을 강조했다. 다시말해 사회공동체의 정체성은 무엇보다 민족정신에서 찾아야 한다 말한다. 지금의 우리의 싯점에서 결집된 국가적 역량을 발휘하여, 역사적 도약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동력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마땅히 민족정신으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수 천년 시련의 역사 속에서 자랑스런 문화를 꽃피우며 면면히 이어온 우리의 민족적 역량과 저력을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난 한 세기 우리 사회의 민족주의가 외세를 배척하는 일변도의 배타적 국수적인 민족주의와 사적 유물론의 사관에 기초하여 주도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현 정권의 과거사 청산이 미래를 위한 자성의 노력이기보다, 잘못된 과거사의 모순을 척결한다는 편향된 관점에서 진행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현 정권을 반대하는 이유로 대책 없이 국가와 민족마저 부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반민족적 행태의 확산은 북한을 적대시하는 반공이데올로기와 자주성을 결여한 무조건적인 친미의식과 무관치 않다. 우리의 미래는 보다 자유롭고 개성이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리라 믿는다. 자신의 생각만을 절대화하고 사회가 획일적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을 고집하는 것은 구 시대의 낡은 유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면서 경쟁상대이고, 북한 또한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적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여 통일된 조국을 함께 가꾸어 나아갈 동포이기도 하다. 통일이나 외교에 관한 정책이 감정적인 대응을 허용해서는 안되겠지만, 북한을 냉전 시대의 시각으로 적대시 하는 것으로 보다 발전적이고 건설적인 국가의 장래를 기약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새로운 역사적 도약을 하기 위해, 외세 의존적이었던 식민지인의 삶을 극복하고 우리가 우리들의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주체성의 확립이 나아가 민족의 정체성과 국가의 정통성 확립이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시대적 역사적 과제라 믿는다. 지난 한 세기 유구한 우리의 역사가 단절된 채, 국권을 상실하고, 한 가족이 함께 살지 못하는 피맺힌 분단의 세월을 살아왔다. 부모 형제를 함께 살지 못하게 하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는 국가로서의 노릇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망국민의 설움은 아직도 온전히 극복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은 통한의 조국의 분단이 국가적 국민적 민족적 수치라는 사람조차 점차로 잊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부모형제가 함께 살지 못한 천만 이산가족이 있는 조국의 현실을 극복하고, 세계의 중심국가로 당당하게 거듭나기 위해서, 우리에게 시급한 과제는 먼저 평화와 화해의 국가질서를 구축하는 것이고, 평화와 화해의 국가질서란 무엇보다 성실하고 정당한 노력이 평가받고, 특혜와 특권의식이 사라지는 공정한 사회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다. 국가 권력의 정당성을 확립하고 공정한 삶의 질서가 보장되는 사회가 지금 우리가 처한 가장 시급한 국가적 과제라 믿는다. 일제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잘못된 사회질서는 바로잡아 가야하고, 과거사의 청산은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미래지향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는 사회공동체의 평화를 수호하고 공동의 번영을 모색하는 강제질서이다.

반면 민족은 동일한 언어 동일한 관습과 풍습 등을 공유하는 문화공동체이다. 찬란했던 민족문화와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려는 우리들의 노력은 올바른 역사인식과 사회인식을 전제로 식민지와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고 우리 스스로의 주체성을 확립하여 자주국가 자주민족의 독립성과 정통성을 올곧게 세우려는 노력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18061026일 나폴레옹 군대에 프러시아 군대를 격파하고 베를린이 점령당한다. 18129월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에서 패망할 때까지 독일은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었다. 독일 국민은 완전히 사기를 잃고 속수무책으로 지리멸렬 할 때, 베를린 대학의 초대 총장이며, 애국적 철학자인 피히테는 다음과 같이 역설했었다.

 

<이기심과 사리사욕의 무제한의 추구는 사리사욕 자체를 부정할 뿐 아니라 사리사욕의 자주성마저도 상실하게 된다. 이기심은 이기심 그 자체 이외의 그 어떤 목적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외세에 눌려서 우리는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는 다른 목적을 강요 당한다.

 

자주독립을 잃어버린 민족은 시대의 조류를 자유스럽게 결정하는 능력까지도 상실하게 된다. 그 민족이 이와 같은 상태를 계속해 나간다면 시대뿐 만 아니라 시대와 더불어 민족자체도 외세에 지배되고 말 것이다. 그 결과 민족의 운명은 민족의 자주적 결정과는 멀어지게 되고, 현실의 세계에선 오직 외세에 대한 복종의 영광만이 남게 된다. 외세에 의한 사리사욕에 빠진 국가는 붕괴한다. 우리는 <自我> <時代> 그리고 <世界>까지도 잃어버린 민족이다. 새로운 자아 및 새로운 시대창조의 수단으로서 새로운 세계를 출현시켜야 한다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전면적인 이해를 요구한다.

 

외국과의 합류에 의한 국민의 몰락을 방지하고, 외국에 의존하는 종속성으로 말미암아 능력을 잃어버린 자아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민족정신>이라는 우리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독일 국민에게 고함: Reden an die deutsche Nation-J.G. Fichte -

 

 

 

4. 가장 우리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지금 우리는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다. 민족주의가 세계화에 역행하는가?

피히테의 지적처럼 우리는 외세에 의하여 <자아><시대><세계>를 상실한 부끄러운 역사를 살아왔다. 진정 한민족의 자아를 회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 보다 개방적이고 세계화된 성숙한 문화를 확립하기 위하여 무엇보다 민족정신을 회복하고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여야 한다. 앞 서 살펴보았듯이 근대국가의 형성과 브르죠아적 자유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의 발전은 민족주의와 그 맥을 함께하며 발전 되어왔다. 프랑스 혁명의 민족주의는 사회진화사상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것은 불평등하고 권위주의적인 과거에서 벗어나 오늘날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는 민주주의의 근본이념을 확립하고 나아가 자유와 평등의 세계공동체를 추구했다.

 

캐나다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이며 문명비평가인 맥루한(M. McLuhan)지구촌이란 이론을 주장한다. 각종 미디어의 발전으로 인하여 거리가 단축되고 사회가 평준화됨으로써는 지구는 좁아졌으며 지구는 하나의 마을로 축소되었다 말한다. 하지만 지구촌이라는 말은 행정구역 상의 마을과는 아무런 공통점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늘날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 맺어주는 사람들의 접촉은 종래의 종족공동체와는 공통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모르는 사람들, 낯선 민족, 이국적인 사회의 삶에 대한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관심이 실질적인 공동체에서의 사회참여와는 다른 것이다. 세계화나 지구촌에 대한 환상은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동경 그리고 질투와 선망 부러움, 고독과 불안감 속에 휩싸여 있는 현대인의 절실한 꿈인 동시에 악몽의 표현이다. 흔히들 생각 없이 말해지는 세계화로부터 우리는 그 어떠한 공동체적 유대감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주체성(identity)을 확립하지 못하는 개인은 변화하는 삶의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다함으로써 사회성원으로써의 유대감을 느끼면서 自我를 실현한다. 국가의 성원들의 건전한 자아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와 역사 나아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 민족은 우리들에게 무엇보다 역사적 문화적 공동체로써의 유대감의 뿌리를 형성한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때, 온 국민의 감정을 하나로 만들고 세계를 놀라게 한 우리의 힘의 근원은 다름 아닌 민족감정이며 민족정신이다. 한 세기 한 맺힌 통한의 역사를 살아온 민족이기에 우리들 가슴 속에 우리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정서로 하나된 힘을 발휘할 수 있었고, 이러한 정서적으로 일치된 민족적 유대감이 세계를 놀라게 한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하게 만들었다.

 

지금 우리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상실된 정신이 우리가 사는 국가나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라고 생각한다. 식민지인으로 그리고 외세 의존적 삶을 살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잃고 살아왔고, 그러한 삶에 대하여 생존을 위한 것이라 변명하는 삶을 살아왔다. 친일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후손에 물려 줄 자긍심을 발견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스스로를 위하여 무엇보다 시급하게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 다름 아닌 민족적 자긍심이라 나는 믿는다. 반미적이고 친북적인 젊은이들이 많다.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삶을 변명하기 위하여 그들을 빨갱이로 매도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다. 때론 반항적이고 무책임하게 여겨지는 그들의 시각을 자주적이고 자긍심을 가꾸어 나아가는 한 과정으로 이해하는 보다 포용적이고 유연하며 성숙한 자유주의적 사고와 개방적인 삶의 태도만이 우리의 역사의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되게 할 것이다.

 

우리는 외세 의존적인 과거사와 독재정치로 얼룩진 잘못된 과거사를 반성하는 토대 위에 자주적이고 독립된 자랑스러운 조국을 건설하려는 새로운 미래로의 전망을 찾아야 한다 믿는다. 참되고 바르게 사는 삶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고 상호 존중 하에 화해하며 협력하는 삶의 가치를 우리 모두가 공유하게 될 때, 편견이나 배타적 독선이 아닌 합리성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칙이 될 때, 우리는 새로운 역사적 도약을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꾸어 나아갈 새로운 사회는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민족적 자긍심을 드높이고, 평화와 도덕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믿는다. 우리의 자존심이 소중하기에 우리의 경쟁력을 키우고, 인간성의 회복과 도덕성을 기초로 인류애를 구현해야 한다. 인간은 가장 자신다울 때, 주체성을 확립하며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성을 실현한다.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란 서구문화의 흉내내기가 아닌, 우리가 가장 우리 다울 때 가능한 것이다. 세계화란 무엇보다 먼저 우리 역사와 뿌리를 올바르게 알고, 민족문화와 전통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민족 주체성과 국가정통성을 확립해야 나가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가 처한 오늘의 삶의 현실에 대한 올바른 위상을 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고 실천해 나아갈 때, 우리는 보편적인 인간성을 구현하며 참된 의미의 세계화된 삶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한 세기 동안 갈갈이 찢겨진 민족정신을 복원하고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길이 우리의 주체성 확립의 최우선 과제이고, 민족주체성의 확립이야말로 급변하는 문명사적 변혁의 시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성공적인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약속하기 위한 선행과제임을 역설하고 싶다. 가장 우리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신념에 기초하는, 민족적 세계주의요 세계적 민족주의를 이 땅에 구현하여야 한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

최재천의원-헌재결정 왜곡말라

2004-11-08 09:48:24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026일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과 관련, "국회의 헌법상 권능이 손상됐고 정치지도자와 정치권 전체가 신뢰의 타격을 입었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앞으로 이처럼 국회의 입법권이 헌재에 의해 무력화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헌정질서의 혼란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국민의 절반 이상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수도 이전 문제를 제대로 된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아니하고 추진하도록 한 법률이 위헌이라 결정했다. <국민투표를 거쳐야할 사안을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과 신행정수도이전에 관한 법률이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절차적 사항을 정하기 위한 법률임에도 불구하고, 실체적 사항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고, 수도이전계획에 대하여 대통령이 승인하기 전에 국회에서 먼저 정하도록 하여 국회가 대통령의 하위기관인 것처럼 규정하고 있으며, 수도이전지역을 특정지역으로 확정하고 있어서 법규범상호간에 준수되어야 할 체계의 정당성이 결여되었다 판시하였다. 또한 수도이전지역으로 규정된 충청권에 비하여 합리적 이유없이 다른 지역을 차별하는 것으로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청구인들에게는 수도의 이전으로 인하여 경제사회생활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 예상되는데 청구인들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이유로 위헌결정을 했었다.

 

수도이전에 관한 이것이 위헌 결정을 내린 핵심 내용이다. 열린우리당은 위헌에 대한 본질적 논점을 왜곡하여, 관습헌법문제가 위헌 판결의 핵심인 양 헌재결정을 왜곡하여, 편법적인 방법으로 헌재판결을 묵살하며 실질적으로 수도이전 사업을 진행하려 한다는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 114일 디국 1주년 포럼에 참가한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은 수도이전에 대한 위헌결정에 대하여 집권당의 무지와 무능력 무책임, 입법에 있어서 절차적 하자에 대한 집권당의 독단에서 비롯된 실책에 대한 반성 없이, 자신들의 과오를 호도하고 헌재에 책임을 전가하는 데 급급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반성 없이 수도이전에 대한 책임을 헌재에 전가하며, 그야말로 얄팍한 헌법지식으로 어줍잖게 헌법재판를 비난하고 있었다.

 

최재천 의원에게 묻겠다. 재판의 역할과 법관의 직책이 무엇인지는 아는가? 법관은 재판을 통하여 한 사회가 안정을 위협받고 있을 때, 법적 의의를 명확하게 선언함으로써 조정기능을 담당하여 사회 안정을 도모한다. 법관의 선언을 통하여 문제적 상황은 법적 정당성을 부여 받는다. 정당한 법관의 권력은 한 사회가 안정을 위협받고 있을 때, 사회가 조정의 기능을 부여하는 지배체제의 핵심에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법관에게 임의적 자의적 판단의 영역을 극소화하고 공적 권위를 제도적으로 구현할 능력과 자질을 요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관습헌법을 창설하여 헌법재판을 한 것은 결코 용납 될 수 없는 헌법 파괴행위라 비난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헌법재판이 잘못되었다면, 헌법의 수호자로써의 대통령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헌법재판관을 지체없이 탄핵해야할 것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수도이전에 관한 헌법재판의 내용과 성격을 왜곡하고 당리당략의 차원에서 국회의원 등의 입을 빌어 국민을 선동하며 법질서를 문란케하고 있다. 헌법기관의 권위를 실추케하는 이러한 비열한 작태야말로 헌정질서 파괴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노대통령은 헌법재판관을 탄핵할 수 없을 것이다. 지은 죄가 많아서...)

 

최재천의원은 어설픈 법률지식으로 그야말로 망언을 입에 담고 있다. 헌법재판을 말하며, <논란이 있는 것 자체는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획일화된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헌재 결정을 둘러싼 논쟁은 합리적이다. 정치인으로서 올해는 의미있는 해라고 생각한다. 드디어 국민들이 헌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최종 깃발은 헌법임을 알게 됐다. > 법원의 재판도 판결이 못마땅하면 인민재판을 하고 싶은가 보다. <헌재 결정을 둘러싼 논쟁은 합리적이다.> 라 주장하는 것 자체가 헌정질서 파괴적이다. 헌법재판은 논란을 종식시키는 것이고 헌법의 규범력을 강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관습헌법에 대한 주장은 청구인인 서울시장이 한 것이고 이에 대한 판단을 헌재가 한 것이다. 그럼에도 열우당은 관습헌법이란 말을 헌재가 만들어 낸 것처럼 헌재의 결정 내용을 왜곡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되어서 어설픈 지식으로 법률가를 자칭하며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문란케 하는 것이 개탄스러운 현실이다. 헌법이 무엇인지, 헌법재판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는 어설픈 법조인이 사회의 법적안정성을 파괴하고 헌정질서를 危害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좋다! 그렇다면 최의원 소원대로, 헌재의 결정에 대한 합리적 논쟁을 한 번 해보자.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 등으로 탄핵 되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이 단순히 선거법 위반일까? 17대 국회가 정상적인 국회인가? 17대 국회는 국회의원을 선출한 국회가 아니다. 열린우리당 간판 걸고 반탄핵의 은덕으로 아무나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던 17대 국회이다. 노희찬 의원은 열린우리당 의원은 길바닥에서 지갑 줍듯이 국회의원을 주었다 말했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반 탄핵으로 국론이 분열되어 치루어진 탄핵심판으로 탄생한 17대 국회이다. 열린우리당이 17대 국회 과반수를 차지했다는 사실 자체가 노대통령이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민의 선거권을 유린하고 왜곡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율이 국회의석수처럼 국민의 과반수를 넘긴 적이 단 하루라도 있었던가. 열린우리당이 17대 국회에서 제1당이 된 것이 국민의 지지가 아닌, 국민을 농락한 노대통령의 쇼비즈니스 덕택으로 탄생한 사실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지금처럼 헛점 투성이의 무모한 개혁입법으로 스스로 몰락을 자초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기대한다. 개혁입법은 마땅히 헌법을 준수하며 추진되어야 한다.

 

헌법 재판관들은 노대통령 탄핵재판도 이번의 수도권 이전에 관한 재판도 헌법을 수호하고 헌법의 법적안정성과 규범력을 강화하며, 합리적 수락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못하고, 여론에 편승하여 오히려 헌법을 규법력을 훼손하는 잘못된 결정을 한 것이다. 헌법재판의 과제는 건전하고 통일적인 국가질서를 확립하고 나아가 법률이 국민의 기본권과 권리보장을 위한 일관성있는 질서를 형성해 나아가도록 하는데 있다 엄격한 법리적 측면에서 말하자면, 노무현 대통령은 마땅히 탄핵되어야 하고, 위법하고 하자 있는 법률행위(17대 총선은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해 선거한 것이 아니라 탄핵을 응징하기 위한 선거로 국회의원 선거의 본질을 왜곡시켰다.)의 결과로 탄생한 17대 국회는 해산되어야 마땅하다. 관습헌법 운운하며, 새로운 헌법을 창설한 헌법재판관의 헌정질서 파괴행위는 마땅히 탄핵되어야 한다. 헌법 제66조는 대통령에게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부과하고 있다. 헌법의 수호자인 대통령이 대통령 노릇을 제대로 하려 한다면, 헌법 재판관을 지체없이 탄핵해야할 것이다. 관습헌법으로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헌재 결정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여론을 조작하여. 구렁이 담 넘듯 수도이전 사업을 벌리고 싶은 것이 현 정권의 속내일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어서 정치를 이처럼 반칙과 편법으로 행하겠다면 우리나라의 장래가 어찌될 것인가?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는 오명을 씻고, 이번 기회에 대통령도 대의를 알고 공명정대함을 존중하며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온 국민에 보여주길 기대한다.

 

재판의 의의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최의원이 법률가라 자칭하는 모습은 안스럽고 딱하다. 판결문에는 형식적 기재사항과 主文理由를 쓴다. 최의원이, 판결문에 주문을 쓰고 이유를 쓰는 지 그 까닭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판결의 중요과제는 법적안정성과 합리적 수락가능성을 확보하는 데에 있다. 主文에는 법률의 해석 적용을 판시하여 개별적 사건에서의 법률 의의를 선언하여 법률의 규범력을 강화하고 법적안정성을 도모한다. 판결문에서 理由를 밝히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판결을 합리적로 수락하게 하려는 것이다. 의회의 입법권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헌법학을 전공하였다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다. 국회의원의 입법권은 헌법에서 나온다. 도올 김용옥은 헌법학을 전공한 사람이 없다고 헌법재판관을 터무니없이 비난하며 꼴 값을 떨었었다. 헌법학을 공부하는 것과 헌법재판을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재판이란 당사자 간의 권리의 주장으로 쟁송이 일어났을 때, 법률의 해석적용을 판시하여 당사자 간의 권리의무의 존부를 확정하는 절차이다. 헌법재판을 재판 중에서 가장 어려운 재판이다. 재판은 학문적 지식만이 아닌, 휼륭한 인격과 수많은 경험을 필요로 하는 난해한 업무이다.

 

헌법재판은 무엇인가?

하나의 사건 속에 다수의 기본권이 충돌하든, 법률과 기본권이 충돌하든, 법률과 법률이 충돌하든, 의회와 정부가 충돌하든, 헌법재판은 언제나 충돌의 사례만을 다룬다. 그리고 이것들에 대한 결정이란 언제나 예외 없이 원칙의 결정이다. 사법적 결정은 언제나 법에 구속을 받기 때문에(대한민국에서는 판사들이 恣意적으로 재판하는 것이 비일비재함) 판결의 합리성은 법률의 정당성에 달려있고 법률의 정당성은 입법과정의 정당성에 의존한다. 합헌적 질서 안에서 입법된 법률만이 정당하다. 헌법재판의 의의를 제대로 모르는 노대통령은 헌재가 의회의 입법권을 침해하고 헌정질서를 위협한다는 무지한 발언을 한다. 입법권이란 아무리 민주화가 잘되었다 하더라도 의회의 운영과정에서 수많은 이익단체와 유권자들의 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헌법재판은 이러한 자유주의적 입법과정이 가져오는 폐단을 방지하여, 사회복지국가의 강령이나 共和政의 이념을 보완함으로써 국가 전체의 건전성을 보호한다. 박정희 이 후 타락하고 부패한 정치의 본질은, 국가권력이 법을 멋대로 만드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건전한 국가 질서와 헌정질서를 보호하는 데에 헌법재판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지난 40여 년간 권력자 멋대로 법을 만들어 왔다. 법전체계 자체가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제도를 정비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헌법재판의 역할이다. 국가를 시스템의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헌법재판은 국가시스템을 최적화하는 시스템이다.(Optimize System)

 

국회의원의 입법권은 국민이 아닌 헌법에서 나와야 한다. 입법이 헌법에 기속되어야 제대로 된 법치주의 국가 된다. 입법권이 어디에서 비롯되느냐는 질문에 최의원은 국민에서 나온다 말하고 있다. 최의원 같이 입법권이 국민에서 나온다는 포퓰리즘적 사고방식이, 위헌적 요소 투성인 4대 개혁입법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당파적 이익에 집착하여 실시하는 타락한 현 정권의 개혁입법의 태도이다. 헌법을 전공한 최의원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면,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것 빼고는 다 법률로 만들 수 있다는 천정배의원의 황당한 발언이 이해될 것도 같다. 하기사 우리들의 노대통령부터, 법을 헌법을 준수하며 국민적 합의에 기초해 제대로 만들 생각은 아니하고, 자신들 멋대로 법을 만들려 한다. 수도 이전의 의도가 좌절되자, 자신들의 무모함과 권력에 대한 과욕과 입법과정의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과오에 대한 반성 없이, 헌법재판관을 비난하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 정권의 수도이전이 왜 좌절되었는가? 입은 삐뚜러졌더라도 말은 똑바로 하자. 수도이전에 대하여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것조차 자신에 한 불신임으로 간주한다며 대 국민 협박을 했었던 노대통령이다. 개혁입법과 수도권이전을 추진함에 있어서 민주적 절차는 깡그리 무시되고 진행되었다. 헌법재판의 역할은 무엇보다 입법의 민주적 역할을 보호하는 데에 있다. 나아가 어떤 법률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는가를 심사한다.

 

현 싯점에서 노대통령과 집권당정권의 수도이전이 좌절되었다. 이러한 무모한 국정운영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당하고 했다. 누구 책임인가? 전적으로 노대통령과 집권당의 책임이다. 집권당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야비한 주장을 하며 헌정질서를 문란케 하고 있다. 유시민 의원 같은 자는 헌법재판관을 칭하며, 맛이 간 인간들이 재판을 잘못했다고 헌법기관을 모독하는 막말을 아무런 가책도 없이 떠들어 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국가공무원법 63조는 공무원은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있다. 대통령 총리 국회의원할 것 없이 깽판치고 막말하고, 헛튼 소리를 밥먹듯 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집권당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최재천의원의 어줍잖은 불문헌법 논의는, 노대통령의 국회의 입법권이 헌재에 의해 무력화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헌정질서의 혼란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발언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최의원은 헌법재판의 의의 이해하지 못하면서 헌재의 결정을 왜곡하고 비난한다. 허술하고 터무니 없이 진행된 수도이전에 대한 실패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에 사죄하고 이를 극복하고 개선하려는 태도는 보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헌법재판관이 헌법을 제대로 읽지 못하였다 사실을 왜곡하며 어설픈 논리로 하며 자신의 헌법재판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다. 최의원은 헌법재판에 대하여 불문헌법을 말하며 헌법재판의 잘못을 비난한다. 헌법학 박사학위를 갖은 사람이 이 같은 무지한 소리를 하는 것을 보여 안스럽다.

 

최재천의원에게 한 수 가르쳐 주겠다. 모든 법률의 기본원리가 민법총칙에 있다는 것을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을 공부하였으니 되돌이켜 생각면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관습헌법 운운하는 헌법재판관이 돌팔이 법조인 것은 틀림이 없다. <대한민국 수도가 서울이다>는 관습헌법이란 헌재의 판결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관습헌법이란 말은 그야말로 법률학의 족보에는 없는 말이다. 민법 제1(法源) <민사에 관하여, 법률의 규정이 없으면 관습법에 의하고, 관습법에 없으면 條理에 의한다.>라 규정한다. 성문법에 규정이 있는 사항에 대하여, 이와 모순되는 관습법의 규정이 있더라도 그 관습법을 성문법규에 우선시킬 수 없다. , 민법 제1조는 관습법이 성문법을 보완하는 효력을 인정하고 있으나, 성문법을 개폐하는 효력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관습헌법을 말하는 헌재의 판결은 법률의 대원칙을 파괴한 있을 수없는 판결이다.

 

관습이 관습법이 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구성원이 법적 구속력이 있다고 의식하는 <법적 確信>이 필요하다. 대다수 국민들이 대한민국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것이 헌법규범이라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수도가 서울인 것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헌법적 규범력을 지닌 규범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할 것이다. 그러므로 수도가 서울이라는 사실에 관습헌법의 규범적 효력을 부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위헌소송을 한 청구인조차 헌법적 규범력을 확신할 수 없었기에 수도이전에서 수도이전에 관한 법률의 위헌성을 주장함에 있어 국회의 헌법 개정절차와 헌법 제130조의 국민투표를 주장하는 것이 아닌,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를 주장한 것이다. 최의원의 젊은 객기를 이해한다. 하지만 헌재의 판결를 비판하려면, 변호사 노릇하면서 취득한 박사학위 학력으로 어설프게 나서서 아는 척할 일이 아니다.

 

최의원은 자신이 하는 말 중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혼동하며, 입법권과 헌정제정권력을 헷갈리는 횡설수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최의원은 개인적 생각이라며 역사발전 단계로 볼 때 모든 권력은 분산돼야 미래를 위해서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웃기는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권력 분산을 말하며 지난 17년 간 민주화 운동이 진행되었고, 권력분산 타령을 하며 거지같은 위원회 관변단체 등 수많은 새로운 국가기구를 창설하며, 국가시스템을 고비용 저비용으로 만들어버렸다. 속된 말로 피바가지 쓰는 것은 국민뿐이다. 집권층이 바뀔 때 마다. 통치자들은 한결같이 인사권을 확장하고 보다 많은 돈을 주무르고 싶은 타락한 권력의 모습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지난 17년 민주화 과정에서 집권당이 말하는 권력의 분산이란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 국민의 혈세를 물쓰듯 쓰고, 부정부패를 조장한 결과를 만들어왔다.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말로 포장된 속보이는 쇼는 하지 말자. 경제가 바닥을 치고 한국경제에 대한 비젼이 불투명한 것이 현실인데, 국토균형발전 타령을 하며, 거대한 비용소모적 사업을 벌리는 것이 과연 상식적일까? 수도권 이전 문제처럼 거대한 이권사업이 또 어디 있을까? 현 집권당이 수도권 이전에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도권 과밀현상 해소, 지역의 균형발전 백 번 좋다. 그런데 30여 년이 소요되는 중요하고 거대한 사업을 국민적 합의나 수도이전의 절차 대한 상세한 프로그램의 제시 없이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 해치우려 하는가? 속보이는 이야기 아닌가? 그것은 현 기득권층으로부터 부를 박탈하고, 현 집권층의 경제적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비즈니스가 수도권이전 사업이라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한 수도이전이라면 그 개발이익 시장의 논리에 의해서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노무현정권이 수도 이전을 구체적인 영향평가, 그리고 진행상의 문제점들에 관한 구체적 실천방안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아니하고 날림으로 강행하려는 속셈은 뻔하다. 특권과 반칙으로 현 집권층이 수도권이전에 따른 개발이익을 독점적으로 말아먹겠다는 속셈이 아닐까? 특권에 대한 집착과 반칙을 저지르며, 수익사업을 벌려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공명정대하고 명명백백하게 상세한 마스터플랜을 제시하고 누구나 공감이 되도록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행정도시건설 사업을 추진하면 된다.

 

최의원은 <개인적 생각인데 역사발전 단계로 볼 때 모든 권력은 분산돼야 미래를 위해서 바람직하다.>말하고 있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소리인 줄 모르겠다. 잘 알지도 못하는 지식을 남들 앞에서 떠벌려 말하는 것은 공인으로써의 합당한 자세가 아니다. 최의원이 말하는 역사발전단계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에서 말하는 역사발전 단계를 어디서 주어들은 것이 아닐까? 나는 역사발전 단계를 말하는 결정론적 역사관을 반대한다.) 권력이 분산되는 것이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사회가 통제되지 않고 난장판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황당한 발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학 교과서 한권만이라도 제대로 읽었어도 하지 않았을 헛소리로 들린다. 정치는 분화의 기능과 통합의 기능이 균형있게 이루어져야 건강하다. 국민의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되고 나아가 성공적인 사회통합를 이룩해내는 규범질서와 리더쉽이 있어야 건강한 사회와 국가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 현 정권과 노대통령은 사회통합을 이끌어내는 정치적 지도력이 점수가 나오지 않을 만큼 깽판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17년 동안 진행된 민주화개혁은 권력의 분산을 말하며 턱없이 국가기관의 몸집만을 부풀려온 것이 잘못된 개혁이었다. 이 판국에 오직 당리당략의 이해가 얽힌 수도이전을 강조하며 분권타령을 하는 것이 한심스러운 우리시대의 정치인들의 모습이다.

 

국가의 발전은 국가의 권력이 법률적으로 통제되어, 물리적 강제력을 갖는 국가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을 방지하고, 보다 자유롭고 건전한 삶의 질서를 가꾸어가고 합리성과 보편적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로 나아가며, 인간의 존엄성과 상호존중에 기초한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활력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역사발전이어야 한다 믿는다. 정치는 다양한 계층의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고 동시에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법으로써 건전한 사회질서와 국민통합을 이룩하고 결집된 국력을 발휘하게될 때 국가의 영속적 발전은 가능해진다. 무엇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며 말로만 설쳐대는 철부지 386세대 정치인들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분간하지 못하며, 대책 없이 나라를 말아먹고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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