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8-11 15:53:32

 

국가의 목적이 그리고 국가의 발전이 경제성장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박정희는 모자랐다.

경제 성장이 되면 민주화가 된다 말했었다. 민주화가 제대로 되었는가? 박정희 경제성장의 비결은 경제개발계획을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하여, 온 국민을 총화단결시키는 강압적 리더쉽으로 경제 성장을 이룩한 것이다. 전두환 때에도 경제는 눈부신 성장을 했다. 그러나 박정희와 전두환이 이룩한 경제성장이 제대로 된 국가의 성공적 발전이던가? 나는 개발독재는 실패작이라고 말하겠다. 박정희를 폄하하기 위해서인가?

 

내가 박정희를 비판하는 것은 박정희를 폄하하기 위함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질서를 모색하기 위함이다. 성공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업적에 대한 부정적 요소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언젠가 나는 내가 쓴 글에서 우리 시대를 지배해온 정신은 박정희의 경제성장제일주의의 국가관이라며, 박정희를 넘어서야 우리의 미래가 있다고 주장했었다.

 

박정희가 일단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기강을 확립하고, 철저하게 상명하복의 국가조직을 장악하였기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한국경제의 성공의 1등 공신은, 박정희와 관리 그리고 노동자에게 강요된 총화단결로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개인과 집단의 자신들의 이기심에 기초한 권리 주장만 높아졌지 사회적 책임의식은 실종되었고, 법질서 국가기강이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지역간 계층 간 세대 간의 갈등을 고조시키고, 국민들은 패거리 작당하여 정치인들의 농간에 놀아난 셈이다.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의식이 무엇일까? 특정 정당을 지지하고, 현 정권을 매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일까? 기강이 잡히지 않는 군대가 전투력이 있을 수 없다. 삶의 질서가 정돈되어 있지 않은 개인이 성공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기강이 확립되어 있지 않는 사회나 국가 또한 발전을 기약하기 어렵다.

 

이제까지 우리나라를 지배해 온 시대정신이란 박정희의 경제성장 제일주의이고,

이제 우리가 처한 현실을 경제성장만을 주장하여 성장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박정희의 잘못은 무엇인가? 박정희가 생각하는 국민의 총화단결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만 국가를 위한 충정이 진심이면 국민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 믿었던 것 같다. 돈만 벌면 민주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되었음이 지난 17년의 역사가 말해주는 것이다.

 

내가 박정희를 비판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나는 기존의 어느 정당이나 정치적 당파도 지지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가 경제 살리기라고 말을 한다. 여전히 대다수의 국민들은 국가가 경제의 주체이고, 국가의 존립 목적은 국민의 풍요로운 삶을 위하여,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에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경제현실은 아무리 성장을 외쳐봤자 성장이 가능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혹자는 지금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의 근본적인 이유는 투쟁적 노동행위, 반기업정서, 불필요한 정부규제라고 말하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란 단편적이고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정신이 온전한 투자자라면 대한민국에 투자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경제에 비젼이 없다는 것을 판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로 미루어 보면 결코 투자할 나라가 아니다. 전체 경제인구의 3분의 1400만이 신용불량자이다. 건전한 시장이 존립하려면, 개인 간의 계약과 약속이 존중되어야 하고, 경제 주체의 책임성과 신용이 전제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신용이 없는 국민이다. 게다가 대통령의 국가 정책에 대한 생각이 수시로 바뀌고,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인지, 자유민주주의를 하자는 것인지 헷갈리고 있다. 현 정권의 개혁이 민주주의 헌정질서와 자유주의적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개혁인지, 계급해방을 위한 사회주의 혁명인지도 헷갈린다. 외국인이 무책임하고 무질서하며 난장판인 나라에, 국가의 정체성과 방향성도 헷갈리는 나라에 무엇을 믿고 투자를 하겠는가?

 

투쟁적 노동행위가 발생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가?

이제껏 기업의 지배구조가 투명했느냐는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불공정하고 투명하지 못한 기업 경영의 배경에는, 범죄와 부정부패와 정치자금의 제공을 통한 특혜적 기업의 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기업이 망하여 수 천명의 노동자가 하루 아침에 거리에 나 앉아도 기업인은 망하지 않았었다. 기업의 운영방식과 정부의 기업활동에 대한 지원이나 규제가 불투명하게 이루어 졌고 그것은 부패한 권력과 특혜적 성장을 기대하는 타락한 기업 윤리가 공생 관계를 이루며 한국경제를 이끌어 왔던 것이다.

 

국가가 사익집단과 결탁한 신식민지 독점자본주의라는 좌파 운동권의 비판에 대하여 항변할 이유를 대지 못하게 되었고, 민주화 과정에서 국가나 경제주체 모두 민주주의에 입각한 자유민주의적 시장질서에 알맞은 국가 경영 방식과, 기업경영 방식을 만들어 내지 못했던 것이며, 그러하기에 자유주의적 시장질서에 대한 경제철학에 기초한 일관된 정책을 수립하지 못했다. 사안별 필요에 따라 진행된 개방화는 투기적 국제자본에 대한 국부의 유출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국내의 알짜 기업과 금융산업을 외국에 내어주게 되어, 이제 우리는 국가의 경제 주권을 위협 받는 상황에 이르게까지 된 것이다.

 

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완화는 10년 이상을 외쳐온 구호이다. 외국자본에 대하여 특혜적으로 규제완화를 해주며 국부가 털리는 데에도 계속해서, 규제완화를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업인들이 말하는 규제완화는 대한민국을 무정부 상태로 만들고 기업인 마음대로 기업 활동을 해달라고 주장하는 것인가?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이고 분배위주의 경제정책이고 할 것 없이, 그 어떠한 대책도 위기에 처한 돌파구를 찾을 수 없게 된 것이 암울한 우리 경제의 현실이다. 경제, 경제를 아무리 외쳐보았자 되살아날 경제가 아니다. 경제적 관점으로는 더 이상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일관된 주장이다.

 

경제성장 위주의 박정희의 국가관이 이미 쓸모 없는 것이고, 박정희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 그 이름을 아무리 외쳐본들 우리 경제의 돌파구를 찾을 수 없다. 나는 경제성장 위주의 국가관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국가발전은, 한 축은 국가 생산성의 향상이고 또 다른 축은 국가권력의 지배력 향상을 통한 국민 통합의 능력으로 결정된다. 박정희는 국민통합을, 정당성이 결여된 물리적 강제력으로 이룩했었다. 생산성 향상만이 국가발전의 목표였던 이러한 국가관이 박정희에서 비롯된 것이다.하지만 국민통합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서는 국가권력의 행사가 정당성을 획득해야하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가 처한 시대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를 개척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가에게 경제를 살리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국가권력의 행사가 정당성에 기초하여야 하고,법의 권위를 세워 국가의기강 사회질서를 자로잡고, 이러한 질서를 바탕으로 결집된 국민적 역량을 모아야 한다는것을 역설하려는 것이다. 국가 기강과 법질서 확립 없이 나아가, 국민 화합없이 경제의 미래가 없다는 것이 한결 같은 나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박정희의 가장 큰 오류는 무엇인가.

국가 발전을 온전한 시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편향되고 제한된 시각에서만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국가권력의 행사의 정당성이 왜 중요한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국가권력의 행사가 정당하여야 지속적인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국민경제를 살리는 길이 최우선 과제라고 믿고 이를 전횡적 독단으로 밀어부쳐던 것이다. 정당성을 갖지 못하는 정치가 지속될 수 없는 것은 필연적 귀결이다. 일시적으로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독재정치가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전횡적 독단으로 이끌어지는 사회가 지속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라 믿는다.

 

자유주의적 사회질서의 기초는 무엇보다 인간 간에 상호 존중, 신뢰, 건전한 시민의식를 전제로 하여 이룩된다. 확립된 법치국가 질서 준법정신이 전제되지 아니한다면, 세상은 그야말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의 약육강식의 난장판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법질서의 근본이 망가진 현실에서 신자유주의고 시장이고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다.

 

역사는 누적적으로 계승 발전되지 않는다.

나는 지난 한 세기 우리 사회의 주조를 이루어론 사적 유물론에 의한 역사결정론에 반대한다. 과거의 역사를 토대로 미래의 역사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역사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다. 나는 과거가 오늘의 우리에게 끼친 공헌을 찾아, 그 공을 우리의 미래를 계승 발전 시킨다는 역사적 관점에 대해 부정적이다.

 

흔히들 패라다임이란 표현을 많이 쓴다. 이 말은 1962년 시카고 대학의 과학사 교수인 토마스 쿤이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처음 사용한 말로 알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지금까지의 과학사의 발전이 누적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세계관에 기초한 패러다임의 혁명적 변화로 이룩되어 왔음을 보여주었다.

 

나는 사회가 새로운 발전을 위해서, 민주적 도약을 위해서, 그리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하여서도 국가의 목적이 경제발전에 있다는 박정희 식의 낡은 패라다임을 포기해야 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국가의 본질은 규범적 강제질서이고, 국가는 헌법정신을 구현하기 위하여 존립한다는 새로운 패라다임의 국가관을 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는 인식과 관점 그리고 과거사를 바라보는 평가의 의의를 다르게 한다. 사람들은 박정희를 경제성장을 이룩한 대통령으로 평가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평가방식을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경제성장을 목표로하여서는 우리의 국가의 미래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국가 권력이 정당한 행사가 전제되고, 정당한 권력의 행사와 정당한 삶의 질서가 확립되지 아니 하고는 우리의 미래가 없다고 역설하는 것이다. 나는 박정희와 노무현을 똑 같은 관점에서 비판한다. 둘 다 헌법을 위반하고 법률의 제제를 무시하고 멋대로 권력을 휘두른다는 이유로 비판한다. 수도 이전의 문제에 대하여 반대하는 것은 자신의 대한 불신임이라 말하는 것은 국가 권력이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라 비판한다. 특정 언론을 목표로 하여, 언론 개혁을 말하고, 고비처 같은 것을 창설하여, 형사소송질서를 파괴하는 것을 비난한다. 이와 똑같은 관점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만들어 체육관 대통령 되고, 법관의 인사권 마저 장악한 박정희를 정치가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우리 헌정사에서 부끄러운 것이라 말하려는 것이다.

 

내가 박정희를 비판하는 관점이란 전횡적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이다.

이것이 지금의 싯점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포퓰리즘을 등에 업은 노대통령의 전횡적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 상황 논리에 의해 전횡적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권력에 대해 결단코 용서하지 말자는 국민적 각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한다면 올바른 삶은 그 설 땅을 잃는다. 결과로 수단을 정당화하며 살아온 지난 40여 년의 우리들의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하여, 정당한 국가권력과 정당한 삶의 질서의 터전을 우리 사회에 마련하기 위해서, 박정희의 유산은 이제 떨쳐버리고 가자는 것이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에 젖은 사람들은 대다수 자신의 주체성이 결여되어 있고, 자아의 확립이 약하며, 대체로 무비판적 서구 지향적 정서를 갖는다. 힘있는 자에 빌붙고 약한 자에게 함부로 대한다. 자신의 우월성으로 다른 사람의 약점을 밟으려 한다. 지금 박정희의 향수를 가지는 사람들의 공통적 성향은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삶의 방식을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에 강요하는 파시스트의 성향을 갖는다. 지배자에게 종속된 인간의 욕망은 지배자의 욕망에 종속된다. 당연한 귀결로 파시스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파시스트이다. 노사모가 파시즘에 젖어 있는 것과 똑같이 박정희를 추앙하는 사람 또한 파시즘의 사고에 젖어 있다.

 

이렇게 박정희를 비판하는 나의 의도가 무엇인가?

박정희는 죽고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인물이다. 그로부터 민주주의 사회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는 데 배울 점이 무엇이 있는가? 당연히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의 앞 길을 개척하자고 말하는 것이다.

 

경제 성장위주의 개발독재의 국가관과 민주주의 헌정질서에 입각한 국가관은 서로 다른 새로운 국가관과 인간관에 기초한다. 나의 관점에서는 국민이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버느냐는 식의 저열한 삶의 방식- 양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지양하고, 어떠한 방법과 태도로 올바른 삶을 살아가느냐로 평가하는 보다 진화된 삶의 질의 개선을 촉구하는 것이다. 나는 개인의 자발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 믿는다. 특정 정치적 지도자에 목을 매는 국민이 많은 나라라면 병든 사회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전 국민이 노사모 되는 것이 개혁이라고 떠드는 인간을 경멸한다. 똑같은 이유에서 그 밑천을 다 털어먹고 남은 것이 없어져 버린, 박정희를 잃어버린 영웅으로 추앙하는 미신 또한 경멸한다. 나는 전체주의를 거부하고, 개인 숭배에 의한 저질 전체주의 정치를 혐오한다.

 

박정희의 리더쉽이라 양적인 관점에서 성공적이다. 그러나 국가 권력의 행사가 정당성의 관점에서 보면 박정희의 리더쉽이란 조잡하고 저열한 지배방식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는 박정희 한 개인에 대한 비판이 아닌 우리 모두가 처한 우리의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며, 이러한 반성적 성찰을 통하여, 새로운 우리들의 삶의 방식과 질서를 모색하는 것이다.

 

19791026일 박정희는 죽었다.

노통이 부활했다고 사기를 친다고

덩달아 박정희의 부활을 외치는 모자란 인간들이 볼상 사납다.

 

 

2004-08-12 16:41:22

 

우리사회가 혁명적 변혁을 요구하거나, 영웅적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 사회라면, 우리의 삶의 현실이 합리적인 방법으로 그 해결책을 찾아낼 수 없다는 징표이다. 합리주의적 사고나 합리적 원칙으로 이끌려지는 삶이나 사회는, 우리의 삶의 범주를 그 합리적 원칙의 틀 속에 가두어 놓고 한정시키려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삶을 영위하는 우리에게 보다 개방적이고 협력하며, 때로는 예측 불가능 현실 삶에 대한 우리들의 통어력을 강화하도록 만든다. 합리적 사고와 합리적 원칙은 공동의 삶의 번영을 모색하는 우리의 삶의 조건을 보다 믿을 만한 것으로 만든다. 합리적 사고는, 단지 우리들 앞에 주어진 삶의 상황과 추세를 예측하고 그 결과를 헤아리기 위한 이기적 목적에서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이성의 법칙으로 이끌며, 보편적 인간성을 실현하도록 만든다.

 

우리의 선택에 의하여 민주주의 제도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바람에 의하여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게 된 것도 아니다. 우리의 힘이 아닌 미국의 힘을 빌어 식민지에서 독립을 했기에 민주주의를 받아들였고, IMF환란이 후,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환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세계화 개방화 민영화의 방향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질서를 요청받은 것이다.

 

지난 17년간 민주화 개혁은 분배 문제만을 신경을 쓴 나머지 성장하는 데 실패했다는 주장이 있다. 경제적 여유가 어느 정도 생기게 되면 정치적 민주화가 이룩된다 말해 왔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처한 경제적 위기의 상황은 정치민주화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진단한다. 지금 우리가 처한 경제위기의 현실이 단지 분배문제만을 중시한 결과에서 비롯된 것일까? 경제적 위기의 본질은 그처럼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분배구조도 악화되었다. 성장률도 떨어지고 각종 경기지표 또한 적신호가 켜진 상태이다.

 

경제체제의 위기란 우연히 발생된 것이 아니다. 기존의 경제운영 체제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점차로 증가하면서 위기의 국면이 발생하는 것이다. 노사간의 갈등이 회사와 노동자의 공동의 번영을 위한 진통이 아니라, 자본가들 착취로부터 노동자의 게급해방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의 경제체제 나아가 국가 체제가 붕괴되는 것은 필연적 귀결이 될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변동할 때, 그 사회가 갖는 자기 동일성은 불투명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의 불안정성은 그 사회가 발전해 나아가는 학습과정의 변동일 수 있고, 체제 해체과정을 경유하는 체제 붕괴과정일 수도 있다. 지금과 같은 위기의 경제상황에서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부가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우리 사회의 발전에 대한 비젼을 밝히는 것이다. 이 비젼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것은, 지금 변동을 겪고 있는 노사 문제 등으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의 경제현안들에 대하여, 이들 문제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문제해결의 원칙을 밝히는 구체적 비젼을 정부가 제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회를 그리고 경제를 시스템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시스템의 역할은 발생하는 각종 사회 경제 문제에 대한 제어 메카니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스템은 각종 경제문제를 해결하고 활동방향을 제시한다. 나아가 기존의 운영체제로 해결되지 못하는 변칙적이고 이례적인 상황의 허용범위를 결정한다. 경제질서나 시장질서는 이를 제어하는 규범적 구조 - 법질서를 전제로 한다. 그러기에 제대로 분화된 사회에서 정치, 행정시스템은 사회, 문화시스템과 경제시스템에 대하여 상위의 지위를 차지한다. 정치시스템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한 사회에서 경제시스템은 제대로 작동될 수 없다. 제도와 법률에 의해서 그 체제 내의 성원의 경제활동은 환경과 범주를 이해하고, 경영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온전한 경제시스템은 이를 운영하는 제도적 뒷받침 없이 작동 불가능하다.

 

국가의 발전은 두 가지 축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는 국가의 생산성 확대라는 측면과 다른 하나는 체제 자율성 강화를 통한 국가의 사회통합 능력의 신장이다. 사회통합능력은 사회성원의 합의에 기초한 정당한 법과 사실적으로 규범력을 갖는 타당한 법일 때 한하여 향상된다. 국가권력이 그리고 사회상황을 규율하는 법과 제도가 정당하지 못하다면 사회통합을 기약할 수 없다.

 

경제성장 위주의 국가관은 우리 현실에서 더 이상 실행 불가능한 낡은 국가관이라 주장한다. 성장률이 떨어지고 분배구조도 악화되고, 국제유가는 사상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 경기침체 물가가 오르는 스테그플레이션의 조짐이 보이는 것이 우리 경제의 현실이다. 나는 경제성장 위주의 국가관으로는 더 이상 대한민국호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우리가 처한 시대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를 개척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가에게 경제를 살리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결집된 국민적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역설하려는 것이다. 국가 기강과 법질서 확립 없이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한 국민 화합 없이 경제의 미래가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경제성장이 국가의 발전이고, 국가의 목적은 국부을 축적하는 것이라는 관점의 국가관은 이제 더 이상 쓸모 없는 낡은 패라다임의 국가관이다. 이러한 국가관은 국가 발전을 온전한 시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편향되고 제한된 시각에서만 이해하고 있다. 박정희 이후의 모든 대통령은 국가권력의 행사의 정당성이 왜 중요한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국가권력의 행사가 정당하여야 지속적인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국민경제를 살리는 길이 최우선 과제라고 믿고 이를 전횡적 독단으로 밀어부쳤던 것이다. 정당성을 갖지 못하는 정치가 지속될 수 없는 것은 필연적 귀결이다. 일시적으로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독재정치가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전횡적 독단으로 이끌어지는 사회가 지속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지난 17년 간 민주화의 결실이란 고비용 저효율로 거덜나버린 국가시스템과 난장판으로 망가져 어디에서부터 손을 댈지 모르게 대책 없이 망가진 국가 사회의 질서이다. 지배되지 않고 대통령으로부터 거리의 시위대에 이르기까지 깽판과 뗑깡으로 막가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라 믿는다. 국가질서와 국법질서의 확립 없이 이제 대한민국이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자유주의적 사회질서의 기초는 무엇보다 인간 간에 상호 존중, 신뢰, 건전한 시민의식를 전제로 하여 이룩된다. 확립된 법치국가 질서 준법정신이 전제되지 아니한다면, 세상은 그야말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의 약육강식의 난장판으로 전락되고 말 것이다. 법질서의 근본이 망가진 현실에서 신자유주의고 시장이고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다.

 

역사는 누적적으로 계승 발전되지 않는다.

나는 지난 한 세기 우리 사회의 주조를 이루어론 사적 유물론에 의한 역사결정론에 반대한다. 과거의 역사를 토대로 미래의 역사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역사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다. 나는 과거가 오늘의 우리에게 끼친 공헌을 찾아, 그 공을 우리의 미래를 계승 발전 시킨다는 역사적 관점에 대해 부정적이다.

 

흔히들 패라다임이란 표현을 많이 쓴다. 이 말은 1962년 시카고 대학의 과학사 교수인 토마스 쿤이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처음 사용한 말로 알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지금까지의 과학사의 발전이 누적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세계관에 기초한 패러다임의 혁명적 변화로 이룩되어 왔음을 보여주었다.

 

나는 사회가 새로운 발전을 위해서, 민주적 도약을 위해서, 그리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하여서도 국가의 목적이 경제발전에 있다는 박정희 식의 낡은 패라다임을 포기해야 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국가의 본질은 규범적 강제질서이고, 국가는 헌법정신을 구현하기 위하여 존립한다는 새로운 패라다임의 국가관을 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는 인식과 관점 그리고 과거사를 바라보는 평가의 의의를 다르게 한다. 사람들은 박정희를 경제성장을 이룩한 대통령으로 평가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평가방식을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여서는 우리의 국가의 미래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국가 권력의 정당한 행사가 전제되고, 정당한 권력의 행사와 정당한 삶의 질서가 확립되지 아니 하고는 우리의 미래가 없다고 역설하는 것이다.

 

건국 이 후의 모든 대통령이 독재자였고, 가장 타락한 권력이 대통령이었다. 권력의 부패의 정도는 평균적으로 권력의 크기에 비례했다. 나는 박정희 이후의 모든 대통령이 본색은 독재자 였다는 것을 강조한다. 대통령의 자의적 판단으로 기존의 법질서를 파괴하며 법을 만들 수 있는 권력이라면 명백한 독재권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박정희는 가장 타락한 독재자였고, 노무현 대통령 또한 문제가 심각해 보인다. 포퓰리즘을 등에 업고 노대통령이 전횡적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 상황 논리에 의해 전횡적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권력에 대해 결단코 용서하지 말자는 국민적 각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한다면 올바른 삶은 그 설 땅을 잃는다. 결과로 수단을 정당화하며 살아온 지난 40여 년의 우리들의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하여, 정당한 국가권력과 정당한 삶의 질서의 터전을 우리 사회에 마련하기 위해서 박정희의 유산은 이제, 떨쳐버리고 가자는 것이다.

 

경제 성장위주의 개발독재의 국가관과 민주주의 헌정질서에 입각한 국가관은 서로 다른 새로운 국가관과 인간관에 기초한다. 나의 관점에서는 국민이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버느냐는 식의 저열한 삶의 방식- 양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지양하고, 어떠한 방법과 태도로 올바른 삶을 살아가느냐가 평가되는 보다 진전된 삶의 질의 개선을 촉구하는 것이다. 나는 개인의 자발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 믿는다. 특정 정치적 지도자에 목을 매는 국민이 많은 나라라면 병든 사회이다.

 

박정희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전횡적 권력을 국가를 이끌어왔던 박정희의 향수는 버려야 한다. 박정희는 죽고 이미 역사 속에 사라진 인물이다. 그로부터 민주주의 사회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는 데, 배울 점이 무엇이 있는가? 당연히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의 앞 길을 개척하자고 말하는 것이다.

 

박정희의 리더쉽이란 양적인 관점에서 성공적이다. 그러나 국가 권력의 행사가 정당성의 관점에서 보면 박정희의 리더쉽이란 조잡하고 저열한 지배방식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는 박정희 한 개인에 대한 비판이 아닌 우리 모두가 처한 우리의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며, 이러한 반성적 성찰을 통하여, 새로운 우리들의 삶의 방식과 질서를 모색하는 것이다.

 

역사발전에서 유일하고 이상적이며 실용적인 원칙이란, 합리적 사고가 우리들에게 제공하는 원칙이라는 것을 믿는다. 진정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이 되기로 작정한다면, 합리적 사고에 기초한 이성적 삶의 질서를 찾아내고 만들어 갈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 새로운 역사적 도약을 이룩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2004-10-01 16:42:46

 

1.

내 개인적 견해로 대한민국 헌법 중에서 가장 제대로 된 헌법은 대통령 4년 중임을 말하고 있는, 19621226일 개정된 제3공화국 헌법이다. 대통령 중임제는 선거에 의하여 국민이 대통령을 해임할 수 있는 장치를 보장한 헌법이다. 또 대통령 임기 5, 국회의원 임기가 4년이어서 이로 인한 국정의 혼란이 야기되는 현행 헌법과는 달리 제3공화국 헌법에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같은 시기에 이루어져 代議민주주의 이념과 책임정치를 조화시킨 헌법이라 평가한다.

 

이처럼 박정희는 시작은 좋았다. 1968125일 공표된 국민교육헌장은, 건전한 민족주의적 국가관에 입각하여 민족 정통성과 국가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힘썼고, 물질과 정신의 조화를 꾀하고자 하였던 사회관을 강조하고 있다. 요즘 경제 타령만 하며 민족주의를 배격하고 물질만능, 경제 제일주의에 젖어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과 지지자들에게 정독을 권하고 싶다.

 

 

 

2. 국민교육헌장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 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 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 상조의 전통을 이어 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 과 의무를 다하여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 정신을 드높인다.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 세계의 이 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 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1968125일 대통령 박정희

 

 

 

국민교육헌장이 제정된 이유는

첫째, 조상의 훌륭한 전통과 유산이 계승 발전되지 못하고 있으며, 둘째, 물량적 발전에 비하여 정신적 가치관 사이의 조화로운 융합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고, 셋째, 국민의 국가의식과 사회의식이 결여되어 민족 주체성이 결핍되어 있으며, 넷째, 국민교육의 지표가 불분명하여 학교교육에서 정신적 도덕적 교육이 소홀히 취급되고 있다는 시대적 환경적 여건의 불합리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헌장은 개인 사회 국가의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시키고 앞으로 국민이나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국민교육헌장은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 등 모든 교육의 근본 지표가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헌장은 초장에서 한민족의 긍지와 사명의식을, 중장에서는 생활의 규범 덕목을, 종장에서는 조국통일의 실현과 민주주의 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헌장의 기본정신은 민족주체성의 확립, 전통과 진보의 조화를 통한 새로운 민족문화의 창조, 개인과 국가의 조화를 통한 민주주의 발전으로 집약될 수 있다.

 

 

 

3. 박정희의 통치철학

 

박정희는 <경제제일주의><조국근대화>를 구호로 내걸고, 경제건설을 위한 재원조달을 위해, 한일 국교 정상화와 베트남 파병에 최우선적으로 역점을 두었다. 1965622일 한 일 협정이 체결되었다. 한 일 협정이 국회에서 비준된 8월 베트남 파병안이 국회에서 하루 먼저 비준되었다. 한 일 협정을 종용했던 미국의 강력한 파병 요청을 정부가 수락한 것이다. 정부는 파병의 대가로 이른바 브라운 각서’ (196637일 주한 미 대사 브라운을 통하여 한국정부에 전달된 각서. 주요 내용은 한국군 장비의 현대화, 베트남 특수의 허용, 미국의 한국에 대한 신규차관 지원을 골자로 하고 있다.) 1965년부터 70년 초까지 55천명의 전투병이 베트남 전에 파병되었다. <젊은 이의 피를 파는 행위>라는 야당의 비판도 있었고 실제로 많은 장병이 희생되었으며, 고엽제로 인한 각종 후유 장애에 시달리는 환자가 있다. 베트남에는 건설업체도 진출하여 인력수출의 길이 트였으며, 전쟁이 끝난 후 그 인력과 장비가 중동으로 진출하게 되었고 이것이 한국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박정희의 통치철학은 교육 문화 전반에 <주체적 민족사관>을 강조하고, 이를 교육 이념에 정착시키기 위해 국민 교육헌장을 제정하고, 학생들에게 이을 암송케 하였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은 <국가의 발전이 곧 나의 발전>이요, 민족중흥의 시대적 사명이라는 강한 국가주의적 역사의식을 고취하였다. 이러한 국가의 발전을 우선 시 하는 박정희의 국가관은 국가가 국민을 위하여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존재하여 한다는 자유주의 정치 이념에 반하는 전체주의적 국가관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박정희는 민족문화 창달을 위한 민족 주체성 확립에 노력하였고, 자주 독립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이념과 자주독립적 국가관을 높이기 위해 1970년도 이후로는 국사 교육을 강화하고, 국민윤리라는 새로운 과목을 신설하였다. 문화정책면에서 일제시대에 파괴된 성곽이나 고적들을 복원하고, 이순신이나 강감찬과 같은 애국 무장들의 사당에 대한 성역화 사업이 이루어졌다. 정부는 국학연구와 고급인력의 연수교육을 겸한 연구기관으로 1978년 한국 정신문화원을 설립하였고, 이 연구원에서는 10여 년의 작업 끝에, 27권의 방대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88~1991)을 편찬하였다.

 

 

 

3. 타락해 가는 정치

 

19699월 학생과 여론의 거센 반발에도 삼선 개헌을 변칙적으로 처리하여, 714월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 해 가을에 학생 데모가 치열해지자 위수령을 발동하고, 7112월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만들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초강경 탄압에 나선다.

 

1971년은 대외적으로 긴박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중국이 유엔에 가입하고 닉슨 미국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미.중 화해가 시작되었으며, 베트남은 내전 위기에 몰려 공산화가 점쳐지는 시기였다.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위기와 기회로 받아들이고,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70년부터 남북교류를 제의하고, 71년에는 남북 간에 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위한 적십자대표 예비회담이 열렸다. 남북대화가 진행되는 도중 정부는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을 평양에 보내 김일성과 만나게 하고, 1972747개항으로 이루어진 남북공동성명, <통일은 외세의 간섭 없이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사상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 대단결을 도모한다>는 자주평화통일원칙을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하였다.

 

국민의 놀라움과 환호를 받은 7.4 공동 성명을 계기로, 정부는 남북 대화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국민총화><능률의 극대화>를 명분으로 내걸고 박정희의 영구집권과 권력강화를 위한 유신체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박정희 자신도 김일성과 같은 영구집권을 구상하여 만들어 낸 것이 7.4 공동성명이다.

 

 

 

4. 유신체제와 박정희의 종말

 

7.4 공동 성명 이후 남북 간에 처음으로 대화의 문이 열렸다. 8월과 9월에는 적십자회담이 서울과 평양에서 열려 이산가족 찾기 문제를 논의하고, 1130일에는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하였으며 남북 회담용 직통전화도 가설 되었다.

 

남북 해빙무드가 국민의 기대를 모으는 가운데, 1017, 박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국회를 해산시키고, 비상국무회의에서 유신헌법을 제정하고, 11월 국민투표를 통하여 확정하였다. 새 헌법(유신헌법) 의해, 1215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2395) 선거가 실시되었고, 이어 1223일 장충체육관에서 박정희를 8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통일주체국민회의는 도시에서는 대선구제, 농촌에서는 소선거구제로 선출하였고, 대통령 선출기능을 맡았는데, 실질적으로 대통령이 통일주체국민회의 의장이 되어 대통령 직속기구나 다름 없었다. 대통령 직속기구가 대통령을 선출하였던 것이 유신헌법이다. 유신헌법은 국회의원의 3분의 1(維新政友會,유정회) 대통령이 임명하였고, 대통령이 법관에 대한 인사권도 가질 수 있게 하였으며, 대통령은 긴급조치권, 국회해산권을 갖도록 하였다. 대통령의 중임 제한을 없애고, 국회와 사법부를 대통령이 통제할 수 있도록 하면서 이를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선전하였다. 하지만 국민은 이를 민주주의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따라서 유신체제에 대한 반발과 저항이 거세어지고, 학생들은 민주청년학생연합(민청학련)을 조직하여 전국적 연대투쟁을 벌였고, 언론인들도 자유언론수호투위를 결성하는 등 저항의 강도를 높였다.

 

유신체제가 출범하자 북한은 19738월 남북대화 중단을 선언하여, 남북관계는 경색되고, 1975430일 베트남 공산화에 자극되어, 정부는 학도호국단, 민방위대를 설치하는 등 군사통치를 한층 강화하였다.

 

19787월 박대통령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해 10월 취임하였는데, 이보다 앞서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인 신민당의 득표율이 여당인 공화당의 득표율을 앞서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러한 민심을 감안하여 여당에서 이탈자가 속출하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인권탄압을 비판하는 목소리로 더 이상 권력유지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무렵 불어닥친 제2 국제 원유값폭등 (오일쇼크) 으로 인한 경제불황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19795월 말 신민당 당수로 선출된 김영삼총재가 적극적인 민주화 투쟁을 전개하자, 국회는 10월 그를 제명조치 하였다. 이 사건으로 국내여론의 비난이 거세어지고, 부산과 마산 등에서 시작된 저항운동(부마사태)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갔다. 정부는 국민의 저항에 굴복하느냐, 아니면 군대를 풀어 무력으로 이를 진압하느냐의 갈림길에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1026일 궁정동 만찬장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하여 대통령은 저격 당하여 숨지고 박정희시대는 18년 만에 종말을 고했다.

 

2004-12-22 18:15:10

 

국익을 위해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가 묻는 惠王에게 孟子가 답하여,

왕께서는 하필 만을 말씀하십니까? 역시 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말씀하시길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 하시면, 大夫들은 말하기를 어떻게 내 집을 이롭게 할까 하며, 선비와 서인들은 말하기를 어떻게 내 몸을 이롭게 할까 하여, 위 아래가 서로 이익만을 취하고자 한다면 나라는 위태로울 것입니다. 진실로 를 뒤로 하고 를 앞세우면 서로 빼앗지 아니하고는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왕께서 하려 하신다면 어찌 그 근본으로 돌아가지 않으십니까?말하고 있다.

 

孟子:梁惠王章

 

 

 

국가의 발전은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첫째, 국가의 생산성 향상이다.

 

둘째, 체제 자율성의 향상을 통한 지배력(국민통합능력)의 강화이다.

 

 

국가발전을 위한 국가지배력의 강화문제는 국가 시스템의 효율성의 향상과 최적화(optimize)를 어떻게 이룩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국민통합은 국가의 성원 들간의 불신과 반목을 극복하고 합의의 기초가 되는 법과 원칙을 확립하며, 국가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각 분야에서의 활동이 전체적으로 국가목적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복잡한 현대국가의 상황은 지도자 개인의 의지로만 이끌려질 수 없다. 국가권력의 恣意적 행사를 제제하고 정의와 합리성, 이성에 기초한 법률에 의하여 국가권력이 통제되지 않는다면, 국가 목적은 온전히 수행될 수 없다. 박정희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박정희는 경제성장의 기치 아래 개인의 강압적 리더쉽으로 국민통합을 이룩해 왔고, 이를 통하여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데에 성공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은 오해한다. 혹자는 자본 축척이 제로에 가까운 그 당시 한국이 택해야 했던 최선의 방식이 박정희의 개발독재라 강변한다. 박정희로 인하여 발생된 문제점을 풀어 나갈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며, 많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의 경제개발은 옳았다고 억측한다.

 

박정희로 인하여 발생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란 무엇일까? 박정희가 틀렸다고 말하는 관점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박정희에 대한 비판을 거부하는 관점이란 그야말로 속보이는 저질 포퓰리즘에 의한 박근혜 띄우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다.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부패하고 타락한 파시스트 박정희를 비판하는 것에 그 어떠한 잘못이 있는가?

 

나는 박정희의 국가 경영 패러다임이란 아무런 思想理念도 없는 저질 파시즘이라 비판한다. 우리의 역사가 산업화 민주화를 통한 발전의 연속선 상에 있다고 주장하는 기득권층의 사고방식으로는 우리는 결코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수 없다. 역사란 현실을 이해하고 미래를 기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나는 박정희가 저열한 정치가라 단언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입각한 국가경영의 패러다임은 박정희의 개발독재와 결코 연결 지을 수 없는 새로운 국가의 조직 및 운영방식이라 믿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이는 낡은 방식의 국가운영의 패러다임을 버릴 때,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국가운영방식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하려 하는 것이다. 박정희의 공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관점이란 박정희 시절로부터 누려온 특권과 불공정에 대한 집착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득권에 대한 집착으로 박정희에 대한 왜곡된 평가가 우리가 새로운 방식의 국가를 건설하려는 노력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것이 박근혜가 야당 총재가 될 수 있는 이유이고, 박정희의 딸로 대를 이어 충성하는 기득권 세력이, 새로운 방식의 국가발전에 장애가 되는 이유이다.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것은 박정희 방식의 경제성장 위주의 국가발전의 낡은 패러다임을 버리고 민주주의적 헌정국가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끌려지는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시대적 과제라는 사실을 역설하고자 하는 것이다.

 

관치경제가 시장경제와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개발독재의 결실로 이룩한 경제성장의 바탕 위에서 민주주의가 건설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만약 진정 전체주의적 사회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 한다면, 오해되어 온 박정희의 경제적 업적이 아닌 자유주의 사상과 이념을 무기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며, 우리사회가 사회주의적 전체주의로 나아가는 것을 방어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신자유주의에 적합한 정당이고 박정희를 영웅으로 생각한다는, 열열한 한나라당 지지자는 하이예크의 주장을 예를 들어 사회주의 경제의 실패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몀한다. <하이에크는 인간이 구조적으로 무지할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회주의 국가들은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인간이 발휘할 수 있다고 믿었지요. 무지한 놈이 아는 척 하고 모든 것을 지가 다 알아서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국 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하이에크가 일관되게 주장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어 쓰면, 박정희는 무지한 놈이 아는 척하고 모든 것을 지가 다 알아서 하려다 나라를 말아먹은 장본인이다. 하이예크는 계획경제는 필연적으로 실패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하이예크는 新自由主義에 입각하여 <자유경쟁원리가 법의 지배 아래 적절히 보장된다면 자원배분이 效率的으 로 이루어지고 國富가 증진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소득분배문제나 경기변동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복지국가와 혼합경제의 이념은 단기적으로는 얼마간의 성과를 보일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원래의 의도와 달리 기득권층의 이익만을 보장해 주거나 스태그플레이션과 같은 크나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고 역설하였다. 박정희 방식의 경제성장이 일시적으로는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박정희 식의 개발독재는 필연적으로 붕괴될 수 밖에 없는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많은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박정희 당시의 상황을 들추어 박정희의 정당함을 억측하는 주장이 도대체 왜 소용되는 것인가?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려는 관점에서 왜 박정희에 대한 비판이 제약되어야 하는가? 박정희는 무엇보다 헌정질서와 국가시스템을 파괴하였고, 경제성장의 미명 하에 자신에의 절대권력만을 추구한 권력에 대한 편집광적인 집착을 보인 타락하고 열등한 정치가일 뿐이다. 박정희의 성공은 한강의 기적이 아닌, 지속적 번영이 불가한 沙上樓閣이라는 것을 온 국민이 온전히 깨달을 때,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심지어는 노무현 대통령조차, 박정희가 처음부터 무지하고 열등한 정치지도자 이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박정희 식의 성장위주의 개발독재는 국가가 발전할수록 필연적으로 국가권력은 부패하며, 경제가 성장할수록 경제주체들 간의 갈등은 증폭되게 되어있다. 박정희는 국가발전이 두 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군인 출신의 무지한 파시스트일 뿐이다. 그는 정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으며, 제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고 근대국가가 헌정질서를 기초로 하여야 한다는 것을 멋대로 무시했다. 박정희는 무식하였기에 용감했던 것이다. 박정희는 무모하게 국가발전을 단지 경제성장만으로 이해하여 사회갈등을 증폭시키다가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뭇솔리니나 히틀러의 파시즘은 공산당에 반대하여 탄생했다. 파시즘은 자신들의 적대자들을 전멸시키려는 정책을 천명하고 그 같은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무자비한 살륙을 주저함 없이 자행한 공산주의 운동에 반대하여 성장한 것이다. 파시즘은 1917년 제3차 세계공산당 대회를 반대하여 시작된 軍國主義, 民族主義 운동이다. 파시스트는 공산주의자가 사용했던 무자비한 살륙의 방법 등을 자신들도 망설임 없이 사용하겠다는 것을 주장한다. 박정희 또한 軍國主義적이고, 民族主義적이었으며 자신의 政敵을 무자비하게 숙청하며 권력을 유지했었다.

 

현 정권의 개혁을 사회주의적으로 받아들이는 한나라당의 대응방식은 명백히 파시즘의 성격을 지닌다. 경제성장을 위하여 강성노조를 때려잡아야 한다는 식의 발상은 명백한 파시스트의 발상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강성노조를 때려잡는 방식에 대한 구체적 정책대안은 전혀 내놓지 못한다. 이것을 무엇을 의미하는가? 야당이 집권하면 강제적으로 강성노조를 때려잡겠다는 강압적 정책을 실시하겠다는 것의 암시일 수 있다. 파시즘은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폭력이 지닌 문제해결 능력을 과신한다. 파시스트는 확실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승리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지니고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최선의 정책이라 믿는다.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의 여성적 부드러운 이미지 뒤에 파시즘의 폭력성을 은폐한다.

 

박정희의 후광을 등에 업으려는 퇴행적이고 선동적인 포퓰리즘으로는 한나라당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포퓰리즘은 집단주의적 국민들의 의식에 대하여, 정치권의 자신들의 권력강화를 위하여, 갖가지 방식의 선전 선동 책략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문제적 현실의 해결을 외면한 채, 문제적 상황을 왜곡하고 호도하며, 문제점을 부풀리어 위기감을 고조시켜 자신의 반대세력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을 부추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여야 할 것 없이 저질 포퓰리즘으로 반대세력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며 국론을 분열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대립구도가 지속된다면 내란이 될 것이고 이러한 분쟁에서의 최후의 승리자는 수적으로 우세한 측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소수집단은 비록 그들이 유능하고 활력 있는 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더라도 다수의 의사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결단코 승리할 수 없다.

 

승리를 위한 핵심적인 질문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정당이 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전적으로 知的인 것이고, 승리는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知的武器로만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전체주의와의 투쟁에 있어서 궁극적인 결말은 武器가 아니라 思想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 야당은 현 정권의 개혁이 국론분열적이며 경제파탄의 책임이 현 정권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노무현과 박정희를 유비시켜, 박정희 경제성장에 대한 성공을 과장하고, 노무현의 무능함을 부각시키려 한다. 이러한 퇴행적인 네가티브 전략으로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를 앞세워 현 정권에 대응하려 한다. 그야말로 386 개혁세력의 대응전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하기 짝이 없는 저질 포퓰리즘이라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

 

좌파 개혁 세력은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으로 이해하려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좌파의 주장은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마치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덩어리처럼, 있는 자들에 대한 없는 자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사회적 갈등은 증폭되고 있다. 대기업은 외국인에게 갈취 당하고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짓밟히고,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자영업자는 몰락하고 영세상인, 농민은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IMF환란 이 후 소리 높여 외쳐왔던 세계화란 미국에의 경제적 예속화를 심화시키고, 투기적 외국 자본이 한국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장활성화를 외치며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말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확대 등 노동자의 삶이 더욱 불안하고 비참한 것이 되고 말았다. 노동자를 죽이고 기업만이 생존하는 기업의 생존방식은 결국 기업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는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 기업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노동자의 삶의 질을 약화시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로 인하여 중산층이 무너지고 빈민화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소비시장이 위축되고 그리하여 생산기반이 무너지며 중소기업이 몰락하여가는 것이 심각한 경제현실이다. 지금의 우리 경제현실은 마르크스가 공산당선언에서 이야기한 몰락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과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그러하기에 우리 현실이 사회주의 사상이 확산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치가라면 마땅히 왜 사회주의가 잘못이고, 자유주의가 우월한가 국민들이 충분하게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구체적 실천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빨갱이가 악이고, 현 정권이 친북세력이라는 식의 선동적 대응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들의 기득권층에 대한 반감을 온전히 이해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이는 국가의 운영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환하는 새로운 패라다임의 정치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나는 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한 헌정국가와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우리는 박정희가 실패한 정치가라는 사실과 박정희의 이념이란 이제 우리가 버리고 가야 할, 빈 껍질 뿐인 타락한 파시즘이라는 것을 우리들 마음 속에 새겨야 한다 믿는다. 파시즘이란 아무런 사상도 이념도 없는 단지 폭력적 권력욕일 뿐이다.

 

나아가 국가의 목표가 국가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에 국한하는 것이 오류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박정희는 강압적인 사회통합이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사회통합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국가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기초한 구체적 정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이념이란 우리 모두가 기꺼이 지켜 나아갈 정의에 기초한 국가질서, 상호 존중 속에 의사소통이 활성화되는 사회질서, 공정한 경쟁질서를 갖는 시장을 형성하는 것으로 출발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목적을 실현하는 가운데 국가의 생산성은 당연히 증대된다.

 

박정희는 국가 목적의 본말을 전도시키며 타락하고 부패한 독재권력으로 국가를 이끌어 왔다. 국가의 목표가 국가 이익이 될 때, 孟子의 말처럼, 국가는 필연적으로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며 이익을 목표로 하는 국가질서는 필연적으로 내부 붕괴의 길을 걷는다.

 

이러한 나의 주장이 함축하고 있는 내용의 핵심은 우리 사회가 전체주의 국가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이다. 국가의 운영이 개인의 리더쉽 중심이 아닌 원칙 중심의 리더쉽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국가적 과제란 국가발전을 위한 체제통합능력을 향상시켜야 함을 강조하며 체제(국가시스템)정비의 시급성을 역설하려는 것이다. 나아가 국가발전을 위한 사회통합능력은 본질적으로 개인의 리더쉽이 아닌 제도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2004-12-25 00:41:43

 

일본의 여류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남자들에게>라는 수상집에서 재미있는 말을 한다. 무언가 창조적인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살인(사전적 의미의 살인만이 아닌 사람을 밟아 매장시키는 일을 포함하여 말함)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글을 보면 남자를 잘 이해하는 여자, 소위 말하는 힘 있는 남자를 많이 상대하여 본 여자라는 생각이 든다. 마키아벨리의 열열한 팬인 그녀의 글을 보면 권력을 갖고 있는 남자들의 속성을 잘 꿰뚫어보고 있다는 생각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실제로 살인을 해 본 사람은 박정희와 전두환일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전쟁터에서 살인을 했고, 권력을 잡고 유지하기 위해서 살인을 했다. 그리고 박정희와 전두환의 재임 중에 한국경제는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결론적으로 말해보자. 군사독재시절 국민 중 소수의 사람들은 심지어 생명을 빼앗기는 엄청난 정치적 탄압을 받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희망이 있고 더 나은 미래를 설계했으며 보다 나은 경제적 풍요를 누렸다.

 

민주화 시절부터, 김영삼대통령은 IMF로 나라를 말아 먹고 김대중대통령은 어설픈 세계화 민영화로 국내 알짜배기 기업을 왕창 외국에 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어설픈 개혁으로 지금 대한민국은 거덜나고 있는 중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제대로 일은 할 줄 아는 대통령이다. 그리하여 국가의 생산적 발전에 기여하였다. 하지만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일할 줄 모르고 말만 앞서는 대통령이고, 해 놓은 일이 없이 박정희와 전두환이 이룩한 경제적 성장의 과실을 말아먹었을 뿐이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은 386 개혁 세력을 앞세워 개혁을 한답시고 나라를 완전히 거덜내고 있다.

 

이것이 대다수 지금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기업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나라당은 주장한다. 박정희가 살아나면서 한 술 더 떠,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 경제가 살아나야 한다고, 민주주의보다는 독재가 더 나은 것이라는 그릇된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이것이 박정희가 다시 살아나는 망국적인 배경이라는 생각이다.

 

만주주의 보다 독재가 낫다는 생각이 확산되면 어찌될 것인가? 단언컨데 이러한 생각이 확산되면 우리사회는 필연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로 나아갈 것이라 어렵지 않게 예견할 수 있다. 현 집권층은 좌파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반대파가 군사독재를 그리워한다면 현 집권 세력이 보다 폭력적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러한 갈등의 심화는 우리사회를 자칫 내란의 상태로 몰고 갈 것이며, 종국에는 우리 모두를 공멸의 길로 이끌 것이다. 가진 것이 많고 지킬 것이 있는 사람은 막가지 못한다. 경제가 어려워져 무능함이 입증된 노대통령이 실각하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현 정권을 빨갱이라 생각하는 입장이라면, 경제가 거덜나고 한계상황에 내몰린 사람이 많아지면 그야말로 너 죽고 나 죽자는 식- 볼셰비키 식의 살륙이 자행되는 폭동이 일어나는 최악의 상황을 우려해야 하지않을까?. 박정희를 되살리는 것은 그야말로 기득권층에게 자살골이 된다는 것을 맹목적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포퓰리즘으로 대항하면 한나라당은 백전백패하게 되어있다. 한나라당이 현 집권층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한 구체적 실천방안을 갖는 정책을 제시할 때 가능하다.

 

우파적 관점에서 국가의 총생산이 커지는 것이 국가의 이익이라 주장한다. 좌파의 입장에서 국가의 총생산의 향상을 강조하는 우파적 견해는 필연적으로 기업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이라 역설한다. 그러하기에 총생산의 극대화를 주장하는 우파적 논리는 필연적으로 사회갈등을 증폭시키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심화시킨다 강조한다. 그러하기에 일시적으로 고통스럽더라도 자본가의 횡포로부터 노동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보장하는 길만이 지속적인 번영의 길이라 주장한다. 다시 말해 우파는 국가전체의 이익을 주장하고, 좌파는 다수 국민의 이익을 주장한다.

 

박정희는 국가전체의 이익을 주장하며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훼손했다. 이는 결과가 잘못된 수단을 정당화하는 실적위주의 사회풍조를 조장했고, 국민과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야기하였다. 그 결과로 IMF환란을 맞고 한국경제가 거덜난 것이다. 한나라당은 아무런 이념도 사상도 없는, 기득권에 집착할 뿐인 정치집단이라는 생각이다. 온전한 국가정체성을 말하지 못하면서 기득권층의 이익을 옹호하며, 현 정권에 딴지를 거는 것이 전부인 정당으로부터 새로운 국가비젼에 대한 가능성을 찾을 수 있겠는가.

 

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를 주장한다. 국가이익과 경제를 말하기 전에 국민화해를 위한 국가질서의 확립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금과 같이 난장판으로 굴러가는 사회질서 속에서 경제성장을 말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일 것이다. 우리 모두가 기꺼이 지켜 나아갈 정의에 기초한 국가질서, 상호 존중 속에 의사소통이 활성화되는 사회질서, 공정한 경쟁질서를 갖는 시장을 형성하는 것으로부터 개혁과 국가발전의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믿는다. 이러한 국가목적을 실현하는 가운데 국가의 생산성은 당연히 증대된다.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현실적으로, 파이를 키워야 국민에게 먹을 것이 있다는 국가 운영방식- 오직 국가총생산을 극대화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운영방식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박근혜 대표와 한나라당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것으로 여겨진다. 박정희에서 시작하여 망가진 국가시스템의 실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박정희 공이란 단지 경제를 성장시켰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상실한 박정희식의 경제성장이 지속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간과한다. 나아가 박정희가 국가권력을 타락시켰고, 부정부패를 조장하고 사회갈등을 조장시켰다는 것을 외면하려 한다.

 

박정희를 되살리려는 사람들의 주장은 무엇인가? 박정희는 정치를 잘해 경제를 성장시켜 많은 사람들을 잘살게 했는데 노무현은 정치를 잘못해 경제가 망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박정희의 성공이란 지속적으로 성장 불가능한 잘못된 방식이었다는 것을 왜곡하려 한다. 어떤 이는 죽은 박정희가 되살아난 것이, 노무현 대통령이 깽판을 치며 나라를 거덜내었기 때문이라 말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반노세력의 구심점을 박정희로 설정하고 친 기득권적인 세력이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로 세력을 규합하기 위한 퇴행적 포퓰리즘이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국가의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 이 후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전체 국가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은 박정희를 따라가지 못한 것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다른 대통령들이 박정희보다 능력이 부족하다고 간단히 비교할 수 없다. 만약 현 정권이 박정희 식으로 대통령 욕만해도 잡아가는 방식으로 국론을 통일시키고, 경제에만 몰두하면 박정희 보다 더 잘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면 무엇이라 대답하려는가? 박정희나 전두환은 자신들의 강압적 국가통합능력이 한계에 부닥쳐서 죽음을 맞이했고, 민주개혁을 수용한 것이다. 박정희는 국가경제 발전이란 미명하에 전제적이고 강압적 국가질서를 전제로 영구집권을 꿈꾸었다.

 

어떤 이들은 박정희가 처음에는 잘했었다가 유신 이후 잘못되었다 말한다. 그렇지 않다. 박정희는 처음부터 잘못 시작하였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지속 불가능한 沙上樓閣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은 박정희의 성공을 한강의 기적이라며, 수많은 외국사람이 찬양한다 말한다. 유럽의 후진국에서 세계최강의 공업화를 이룩한 소련 경제의 발전에 대하여 수많은 유럽지식인들은 스탈린을 찬양하였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경제운용방식이 박정희와 다른 점이 있었을까? 김영삼도 경제에 관한 한 박정희를 인정하고 똑 같은 방식으로 경제를 운용했다. 김영삼 정부는 박정희시대에 성장한 관료들에 의하여 신경제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신한국창조를 역설하다가 IMF환란을 당한다. 박정희는 제대로 했는데 김영삼은 엉터리로 해서 망한 것일까? 아니다. 우리가 겪은 IMF환란이란 곧 박정희 식의 경제가 잘못되었다는 증거이다.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이러한 나의 주장의 핵심은 우리 사회가 전체주의 사회에서 자유주의 사회로 변혁을 이룩해야 한다 역설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려면, 박정희의 잘못된 점을 온전히 비판해야 하고, 박정희의 망령을 되살려서는 결코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없음을 역설하려는 것이다. 지금 박정희가 살아나는 것은 소위 말하는 반노 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한 전체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 저질 포퓰리즘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저질 포퓰리즘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그 누구보다 박근혜 대표에게 강조하여 말하고 싶다.

 

앞서 주장하였듯이 박정희는 아무런 이념도 사상도 없는 경제성장의 미명하에, 무제한의 권력에 집착하여 비참한 종말을 맞이한 파시스트일 뿐이다. 박정희에게 국가발전에 대한 이념과 사상이 있는가? 박정희에게 제대로 된 이념이 있었으면, 내가 앞장서서라도 박정희의 이념을 선전하고 싶다. 아버지를 종교로 떠받든다는 박근혜 대표에게 지금 우리사회를 이끌어갈 소용이 되는 박정희의 교리가 단 한 문장이라도 있겠는가?

 

지난 719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2년 임기의 대표최고위원에 선출된 직후 수락연설을 통해 올해 말까지 한국을 선진화로 이끌기 위한 ''선진국가 개조계획'' 청사진을 마련해 국민 여러분 앞에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날 이같이 말하고 ''경제 및 삶의 질 선진화를 두 축으로 삼아 한국의 선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가 국가정체성 위기 국가비전의 위기 국가통합의 위기 3가지 중대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한 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정체성 선진화 국가발전 비전 국민 통합과 화해의 시대로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제가 한나라당과 나라,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안주하거나 개인의 목적을 앞세우거나 영달을 추구해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준다면 언제든지 책임지고 흔쾌히 물러나겠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이 국가정체성을 확립할만한 정책을 제시할 능력이 있을까? 박대표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정체성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국가보안법 폐지에 목을 걸겠다 말했었다. 박대표가 말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정체성 선진화 국가발전 비전 국민 통합과 화해의 시대로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한나라당이 자유민주주의를 말하고 시장경제를 말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한 현 정권의 집단적 포퓰리즘과 좌파적인 무모한 386개혁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경제타령이나, 죽은 박정희 타령이 전부인 타락하고 퇴행적인 포퓰리즘이 아닌 사상에 의해서 자유주의 사상의 우월함을 국민들 앞에서 증거하는 구체적 정책을 개발하고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현 정권의 집단주의적 포퓰리즘에 대응하는 무기가 박정희를 되살리는 퇴행적 표퓰리즘이어서는 우리 사회는 최악의 대립 국면으로 치닫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싶다.

 

혼돈과 미망의 시대이다. 어떤 이는 영웅이 필요한 시대를 역설하며 박정희를 되살리려 한다.

 

우리사회가 혁명적 변혁을 요구하거나, 영웅적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 사회라면, 우리의 삶의 현실이 합리적인 방법으로 그 해결책을 찾아낼 수 없다는 징표이다. 합리주의적 사고나 합리적 원칙으로 이끌어지는 삶이나 사회는, 우리의 삶의 범주를 그 합리적 원칙의 틀 속에 가두어 놓고 한정시키려 하는 것이 아니다. 합리성에 기초한 삶은 공동체의 삶을 영위하는 우리에게 보다 개방적이고 협력하며, 때로는 예측 불가능한 현실 삶에 대한 우리들의 統御力을 강화하도록 만든다. 합리적 사고와 합리적 원칙은 공동의 삶의 번영을 모색하는 우리의 삶의 조건을 보다 믿을 만한 것으로 만든다. 합리적 사고는, 단지 우리들 앞에 주어진 삶의 상황과 추세를 예측하고 그 결과를 헤아리기 위한 이기적 목적에서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이성의 법칙으로 이끌며, 보편적 인간성을 실현하도록 만든다.

 

無知로 인하여 그릇된 희망을 기대려는 迷信이 성행한다. 무지로 인하여 행복이 거부되고 좌절하며 고난에 허덕인다. 불확실성 때문에 나약하고 겁 많은 인간은 자유로부터 도피하여 노예의 삶을 그리워한다. 이성은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패한 인간에게 그 어떠한 말도 건네지 않는다. 퇴행적 박정희 신드롬이 확산되는 병든 사회라면, 박정희 신화라는 그릇된 迷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라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내가 박정희를 비판하는 관점이란 전횡적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이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한다면 올바른 삶은 그 설 땅을 잃는다. 결과로 수단을 정당화하며 살아온 지난 40여 년의 우리들의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하여, 정당한 국가권력과 정당한 삶의 질서의 터전을 우리 사회에 마련하기 위해서, 박정희의 유산은 이제 떨쳐버리고 가자는 것이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에 젖은 사람들은 대다수 자신의 주체성이 결여되어 있고, 자아의 확립이 약하며, 대체로 무비판적 서구 지향적 정서를 갖는다. 힘있는 자에 빌붙고 약한 자에게 함부로 대한다. 자신의 우월성으로 다른 사람의 약점을 밟으려 한다. 지금 박정희의 향수를 가지는 사람들의 공통적 성향은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삶의 방식을 일방적이며 독단적으로 다른 사람에 강요하는 파시스트의 성향을 갖는다. 지배자에게 종속된 인간의 욕망은 지배자의 욕망에 종속된다. 당연한 귀결로 파시스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파시스트이다. 상호 존중 하에 의사소통이 활성화되는 사회를 위하여, 박정희를 되살리려는 파시스트 성향의 개인이 반사회적인 것은 명백하다.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박정희는 죽고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인물이다. 그로부터 민주주의 사회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는 데 배울 점이 무엇이 있는겠가? 당연히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의 앞 길을 개척하자고 말하는 것이다. 경제 성장위주의 개발독재의 국가관과 민주주의 헌정질서에 입각한 국가관은 서로 다른 새로운 국가관과 인간관에 기초한다. 나의 관점에서는 국민이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버느냐는 식의 저열한 삶의 방식- 양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지양하고, 어떠한 방법과 태도로 올바른 삶을 살아가느냐로 평가하는 보다 진화된 삶의 질의 개선을 촉구하는 것이다. 나는 개인의 자발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 믿는다. 특정 정치적 지도자에 목을 매는 국민이 많은 나라라면 병든 사회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전 국민이 노사모 되는 것이 개혁이라고 떠드는 인간을 경멸한다. 똑같은 이유에서 그 밑천을 다 털어먹고 남은 것이 없어져 버린, 박정희를 잃어버린 영웅으로 추앙하는 미신 또한 경멸한다. 나는 전체주의를 거부하고, 포퓰리즘에 기초한 개인 숭배적 저질 전체주의 정치를 혐오한다.

 

박정희의 리더쉽이란 양적인 관점에서 일시적으로 성공적이다. 그러나 국가 권력 행사의 정당성의 관점에서 보면 박정희의 리더쉽이란 조잡하고 지속불가능한 저열한 지배방식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는 박정희 한 개인에 대한 비판이 아닌 우리 모두가 처한 우리의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며, 이러한 반성적 성찰을 통하여, 새로운 우리들의 삶의 방식과 질서를 모색하는 것이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한다면 올바른 삶은 그 설 땅을 잃는다. 결과로 수단을 정당화하며 살아온 지난 40여 년의 우리들의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이제 우리는 정당한 국가권력과 정당한 삶의 질서의 터전을 우리 사회에 마련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처한 우리의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며, 이러한 반성적 성찰을 통하여, 새로운 우리들의 삶의 방식과 질서를 모색하는 것이다.

 

역사발전에서 유일하고 이상적이며 실용적인 원칙이란, 합리적 사고가 우리들에게 제공하는 원칙이라는 것을 믿는다. 진정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이 되기로 작정한다면, 합리적 사고에 기초한 이성적 삶의 질서를 찾아내고 만들어 갈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 새로운 역사적 도약을 이룩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박정희를 되살리는 것은 역사를 되돌리는 어리석은 짓이다.

그야말로 아무런 영양가 없고 되지 않을 그릇된 迷信을 타파하자는 말이다.

 

2004-12-27 13:07:54

 

 

혹자는 내가 이미 죽은 망자의 공을 폄하하려 한다 비난한다. 이는 전혀 오해되고 잘못된 생각이다.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주장하는 것은, 박정희의 잘못을 바로 알고 이를 바탕으로 보다 진화된 새로운 국가질서를 모색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나를 비난하는 한 필자의 글이다.

 

<지난 김영삼 김대중정권 담당자들이 오죽 못났으면 다시 ''박정희''가 살아났을까요. 길게는 김영삼정권 이래 짧게는 이 노무현정권까지 오죽이나 정권담당자들이 자기 할 짓을 못하고 있어 ''죽은 박정희''가 홀연히 돌아와 ''산 박정희''가 되었을까요. ''박정희''를 다시 살려낸 그 인물들을 먼저 욕을 하고 비판을 하고 벌을 주십시요. ''죽은 박정희가 살아돌아오기를 기원하는 국민들''만을 나무라십니까? 원인제공자는 내버려두고 그 결과물로 ''박정희''를 찾는 국민들에게 욕을 하고 계십니까? 지금 현재가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그것도 모자라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잃어버렸다면 과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건 아닌가요. 현재도 고통스럽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고 과거도 반추하지 못한다면 그럼 국민들은 죄다 어디가서 죽어야 하는 겁니까? >

 

박정희 신드롬이 확산되는 현실에 대하여 나는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퇴행적 포퓰리즘이라 우려한다. 위의 독자의 지적처럼 현 정권이 잘못했다 하여 대책없는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과거에 매달려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국민이라면 그것이 5천만 전 국민이라 하더라도 나는 단호한 어조로 그들을 잘못이라 말할 것이다. 힘들다고 내일을 모색하려는 노력 없이 과거를 뒤돌아보는 국민에게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겠는가? 노무현 대통령이 잘못해서 나라가 망했다 가정해보자. 당신의 자식이 나라가 망하도록 당신은 무엇을 했느냐 비난하면 당신은 무엇이라 대답하려는가? 나는 현 정권에 대한 비판하는 글을 박정희를 비판하는 글보다는 10배는 썼을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려, 우리 모두가 다 잘사는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며 글을 쓴다. 나는 다만 우리 모두 잘 사는 세상을 위해, 많은 이들에게 유익한 글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글을 쓰려 노력할 뿐이고 이러한 나의 방식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믿을 뿐이다.

 

 

현 정권의 잘못만을 물고 늘어지고 비난이 고작인 한나라당에게 미래가 있는가? 미래를 도모하고 국민에게 새로운 비젼을 제시하겠다는 말뿐인 박근혜 대표, 단지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없고 반노 결집세력을 중심으로 얼굴마담 역할만 할 능력 밖에 되지 못한다면 박근혜 대표는 그녀의 말처럼 스스로의 무능을 자인하고 지체없이 야당대표직을 그만 두어야할 것이다.

 

우리사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사회적 연대성>을 가꾸어가는 것이라 믿는다. 우리사회가 분열과 대립 반목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하여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로 탈바꿈해야 한다. 나는 한번도 엇나가지 않고 헌정질서를 올곧게 이 땅 위에 세우는 것만이 우리가 미래를 위한 길이라 일관되게 역설해 왔다. 우리가 뭉치면 살고 싸우면 죽는다 강조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자신들의 입장만을 상대편에 강요하려하는 우리 사회의 극우세력과 극좌 세력에 다 우리사회의 화해와 갈등을 저해하는 반사회적 집단으로 생각한다. 현실이 어렵다 하여 과거에 매달려 연연해 하는 나약한 국민이라면 우리에게 약속된 미래는 결코 없을 것이다. 어려운 세월을 살아오면서 배워온 삶의 진실이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삶이란 뒤돌아 보는 것이 아니다.

 

 

 

1. 나는 왜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주장하는가

 

시대정신이란 알고 보면 한 사람의 정신이다.

지난 40여 년 우리나라를 지배해온 시대정신은 <잘 살아보세>로 시작한 경제성장의 국가이념이고 그것은 박정희라는 한 사람의 향도해온 시대정신이었다. 1979년 인간 박정희는 사망하였지만 그 정신은 다시 살아나 87년까지 지속되었고, 876월 항쟁 이 후 붕괴의 길을 걸어왔다. 지난 17년간 하나의 역사는 붕괴되어 왔지만 진정 새로운 역사는 시작되지 못했다. 지난 17년간 민주화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국가 질서는 확립되지 못했다. 민주화의 이름으로 개인과 집단의 권리의 주장과 이익의 추구는 소리 높이 主唱되었지만 우리사회는 점점 혼란과 무질서의 방향으로 이끌려 왔고, 국가와 사회 각 분야의 지도력은 점진적으로 약화되었다.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사회통합능력은 저하되었다.

 

1993년 김영삼정부가 구상했던 신경제 5개년 계획은 박정희의 경제개발 계획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997IMF환란은 박정희 식의 제 성장 모델이 실패하였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김영삼은 자신이 집권하는 것이 곧 민주화고 말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국가가 해야할 일(Agenda)을 제시하지 못했다. 김대중은 50년만의 정권교체를 말했었다. 하지만 김대중이 건설한 민주주의 국가의 실체가 있기나 한 것인가?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발하였고, 2004415일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걸고 그야말로 완전한 의미의 정권교체를 성취하였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로 집권층이 바뀌었다. 그러나 아직 새로운 대한민국은 등장하고 못하고 있다. 새로운 역사는 여전히 출발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국가질서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새로운 역사는 시작된다

 

실패가 확인되었다면 목표를 재설정하여야 한다. 하지만 어떠한 목표를 설정하여 그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을 때에도, 우리는 새로운 삶의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박정희식 국가 발전모델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일인당 국민소득 100불에서 10000불의 시대로 이끌어 온 대한민국의 산업화 과정은 박정희의 리더쉽을 중심으로 이룩하였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성공하였다는 관점에서 말하자면 박정희식의 국가모델은 그 목적을 달성하였기에 새로운 국가모델이 만들어져야 한다. 실패하였다는 관점에서 말할 때, IMF환란이 박정희식 경제운용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 또한 이해해야 한다. 혹자는 IMF환란이 김영삼의 책임이지 왜 박정희의 책임이냐고 되물을지 모른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논점은 누구의 책임을 추궁하자는 것이 아니다. 2004년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의 국가모델은 박정희가 만든 것이고, 우리 시대에 새로운 국가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 박정희 식의 국가모델을 어떻게 극복해 내느냐를 논의하고자 하는 때문이다. 박정희를 폄하하고 비난하기 위해서 박정희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박정희의 국가운영방식이 이제는 낡고 쓸모 없는 것이라는 분명히 이해하고 새로운 국가 운영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정희 방식의 국가지배질서를 뛰어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국가질서를 만들어야 우리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2. 민주주의적 국가질서

 

그렇다면 새로운 국가질서는 어떤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독재국가에서 민주국가로 거듭나는 일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유민주주의 국가체제를 확립하는 길이다.

 

지난 17년 간 민주화 운동은 반체제적으로 진행되었다. 통합을 위한 국가권력은 해체되기 시작했다. 노태우 정권 이후의 정부가 주도한 민주화 노력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보통사람의 시대를 연다는 명분하에, 사회통합을 위하여 꼭 필요한 권위마저도 파괴하고 말았다. 심지어는 국가기관의 개혁입법조차, 국가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터무니없이 기구를 팽창하는 데 급급하여 예산만 낭비해 온 것으로 평가된다. 40년 독재정치에 대한 누적된 각종 사회병폐로 인하여 대다수 국민, 지식인, 시민단체, 심지어는 사법부와 행정부 일각에서 조차, 국가권력을 분권화하고 국가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것을 민주화라 여기며 개혁입법을 추진해 왔다.

 

국가권력의 본질과 국법의 기본질서에 대한 이해 없이 당파적 이해에 얽매여 개혁을 실시해 온 것이다. 부처이기주의라는 희한한 말도 생겨났다. 이러한 말이 생겨났다는 것이 곧 정부 조직내의 통합능력이 훼손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정부의 민주화 개혁 또한 기구를 팽창하여 예산을 낭비하고 국가권력을 분권화하여 국가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수많은 관변단체가 생겨났고,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정부는 고비용 저 효율의 엉망진창의 시스템으로 고물화 되어갔다. 이러한 어이없는 개혁의 추진이 공무원의 부패를 조장하고 사회혼란을 가중시킬 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다. 88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었고 - 16년 지난 지금 지방자치단체는 부패의 온상이 되어버렸다

 

국민주권주의를 말하며, 무책임한 지식인들이나 시민단체들은 국민의 요구대로 국정이 이끌어져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고 이러한 잘못된 생각이 사회전반에 퍼져 있다. 대다수 국민들은, 국가권력을 무력화시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것이 민주화 운동이라고 착각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사회를 통합의 원칙보다는 분화의 원칙으로만 설명하려 하고, 조화나 사회통합을 이룩하기 위한 동질성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도외시한 채, 국가권력을 無力化시키고, 개인과 집단의 욕망을 극대화하는 것이 진리인 듯 외쳐대는 천박한 자유주의가 민주화 운동의 주조를 이루어 왔던 것이다.

 

국가의 기강은 무너졌고, 사회윤리가 실종되었으며, 우리들의 삶의 질서는 혼돈 속에 빠져버린 것이 우리가 처한 이 시대의 상황이다.

 

안타깝게도 6.29선언 이후 지속되어온 이러한 사회위기 상황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각종 사회문제에 대하여 때로는 과도한 제어를 시도하고, 결국에는 부패한 세상 탓, 국민이 저질인 탓으로 방치해 버리고 마는, 국가권력의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구조적 해결불능상태를 지속시켜 왔던 것이다.

 

독재정치의 폐해로 누적되어온 이러한 위기상황은 결국 우리로 하여금 파국적인 IMF체제로 가지 않으면 아니 될 국난을 초래했다. 현재의 국가위기는 본질적으로 박정희 이 후 개발독재에서 비롯된 <국가의 정당성의 위기>이다. 국가나 국민 할 것 없이, 어떠한 삶이 정당한 것이고, 어떠한 방법이 적절한 것이며 어떠한 목표가 적당한 것인가를 규율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지난 40년 동안 국가권력은 통치자의 필요에 의해 독단적으로 법을 만들어 국민을 지배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반민주적인 지배방식은 수 없는 국민적인 저항에 부딪혔고 이제는 그 설 땅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대대적 정부 혁신을 단행하였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의 정부조직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정부조직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김대중 정부의 정부혁신 또한 제대로 된 국가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했고 설정하지 못했다. 제대로 된 지배방식을 창출해내지 못한 국가가 국민의 눈치를 살피며 <국민의 요구에 의한> <수요자중심> <고객중심>의 행정을 한다며 국가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다. 지난 40여 년 동안 정부의 행정행위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었다. 판례가 있는 법보다는 판례가 없는 법이 훨씬 많은 나라. 유권해석으로 움직이는 나라. 법이 여전히 국민에게는 필요에 따라 강제규정이고 공직자에게는 훈시규정으로 남아 있는 나라. 박정희에서 시작된 독재행정의 폐해는 여전히 극복되지 못하였다.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이러한 나의 주장은, 국가운영방식이 독재행정의 구태를 말끔히 씻어버리고 민주주적 의사결정 체제를 갖춘 나라로의 도약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원칙에 의하여, 헌법정신에 기초한 국가의 조직과 제도을 정비하여야 한다는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3. 새로운 국가의 모색

 

강력하고, 효율적인 국력은,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활과 삶의 상황을 성공적이고 효율적으로 統御하여, 결집된 국민적 역량을 이끌어낼 때 가능하다. 박정희는 이를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아래 강압적 방식으로 국민통합을 이끌어내었다. 그리고 일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정당성이 결여된 이러한 강압적 통합방식은 지속적으로 국민을 지지를 받을 수 없음은 물론이다.

 

국민통합을 위한 국가적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과제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는 확고한 원칙 하에 조직되고 운영되어야 하고, 이러한 원칙은 보편적 진리와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정당한 원칙이어야 한다. 책임 있는 개인은 어떠한 규범을 자신의 행동을 제약하는 원칙으로 수용함에 있어 그 규범이 자신의 행위를 拘束하는 準據로 정당한가를 물을 것이다. 또 일정한 시기에 일정한 적용의 영역 내에서 규범적으로나 사실적으로 효력을 갖는 규범인가를 따질 것이다. 따라서 은 정당하고, 구체적으로 타당하며, 실효성이 있고, 문제가 발견될 경우 이의제기를 통한 <정당성 승인청구><타당성 승인청구>가 완전히 보장되야 한다. 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법은 반드시 개정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통치자의 의사대로 국가를 경영하는 것은 독재정치이다. 국민의 뜻대로 국가를 운영한다면 그 또한 프로레타리아 독재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각기 다른 국민들의 요구란 이질적이고 때로는 상호모순적이기도 하다. 이러한 국민의 요구로 국가를 이끌어 간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국가는 普遍的 眞理合理的 理性, 그리고 正義自由, 平等理念國民主權理念을 포괄하는 憲法을 제정하고 이 헌법에 기초한 법으로 국가의 초석을 다져야 한다. 이러한 국가의 존립을 전제로만 平和가 가능하다. 또 이러한 憲政國家만이 국민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고 진정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사회의 전제조건이 된다.

 

40년 간의 독재정치와 독재행정에서 비롯된 독단적 의사결정방식은 이제 합법적이고 예측가능하며 투명한 행정을 실천함으로써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실천적 의미의 민주주의 행정을 구현해 나아가야 한다. 예측가능하고 공정한 경쟁질서를 갖는 사회를 전제로 하여야만이 건전한 시장질서가 형성된다.

 

확고한 원칙하에 나라의 을 올곧게 세워야 한다.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자유주의적 경제질서>를 양 축으로 하는 확고한 국가질서를 바탕으로, 고용의 불안, 빈부격차의 확대 등이 야기될 수 있는 신자유주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경제권력이 시장질서를 왜곡할 수 없도록 경제를 다스릴 수 있는 정치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함으로써 우리는 진정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게 될 것이다.

 

IMF구제금융의 여파는 경제부문만이 아닌 사회전반에 걸쳐 수많은 문제를 배태하고 있다. 강제된 급격한 구조조정으로 야기되는 실업, 실업가정의 파탄, 전통적 공동체 사회의 붕괴, 젊은 세대의 가치관 상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에서 비롯되는 자살율 이혼율의 급증, 출산율의 현저한 저하, 범죄의 폭발 등 수많은 사회문제의 폭발을 예고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국가의 사회통제능력이 현저히 저하될 것이며 국가 위기의 국면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의학적 관점에서 위기의 개념은 인체 내부의 저항력이 외부에서 침투하는 병원체의 증식력보다 약하면 그 생명체는 위기의 국면을 맞이한다. 이를 방치하게 되면 결국 그 생명체는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

 

우리사회의 위기의 국면 또한 이와 마찬가지이다. 건강한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범죄 등 각종 사회문제 발생의 증가율이 국가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능력보다 커지게 된다면 국가나 건전한 사회의 존속은 결국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위기의 상황은 정권의 교체나 혁명 등 급격한 사회변혁의 요구를 증대시키게 될 것이다. 이것이 국가의 위기국면이다.

 

우리가 처한 국가 위기 상황은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국민들의 삶을 지배하는 원칙을 상실했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지난 40년간 말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이념을 표방하였으나 실질적으로 독재정치로 일관해오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이념을 확립하는데 실패했다.

 

학연, 지연 등 연고 중심의 사회운영과 특혜지향적인 그릇된 삶의 방식의 추구로 인하여, 합리성이나 공정성에 기초한 건전한 사회작동원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국가권력 또한 통치자의 의사에 순종하는 방식만을 강제했을 뿐, 정당한 법에 기초한 효율적인 행정, 합법적인 권한행사방식을 확립하는데 실패했다.

 

성장제일주의와 실적주의의 기치아래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합법적인 삶의 가치는 외면 당해 왔다. 독재자들은 자신들의 정권유지의 방편으로 국토의 균형발전을 훼손하고 지역감정을 유발하여 국민화합의 기반을 파괴했다.

 

국가권력은 정당하지 못했으며 권력을 가진 자들은 특권과 불공정에 집착하며 不法과 전횡을 일삼아 왔다. 그 결과 국가는 지배력을 상실하게 되고, 복잡해지는 사회현상과 계층과 이해집단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데 구조적 해결불능상태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것이 현 국가 위기 상황의 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국가와 지배체제가 법을 지키지 않고 만들어 졌다. 권력자는 법 위에 군림했고, 고위관리일수록 恣意적 권한행사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준법정신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이다. 독재정치로 일관해 온 지난 40년 동안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준법정신은 그야말로 악화일로로 치달아 왔다.

 

자율성을 상실하고, 지배되지 않는 사회-

이것이 국가 질서가 무너져버린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난국에 처한 위기의 사회 현실의 본질이 무엇일까?

박정희와 전두환의 경제성장의 배경에는 강압적인 대다수 국민의 사회통합이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지난 17년간 민주화의결과로 사회통합을 이룩하는 데에 실패하고 우리 사회가 계층과 지역간 세대 간의 갈등이 증폭되었기 때문이다. 잘못된 민주화로 국가와 사회질서는 난장판이 되었고, 서로가 자신의 이익만을 고집하는 불신과 반목, 대립과 갈등이 증폭되는 세상에서, 경제가 망가진 것은 어쩌면 필연적 귀결이다.

 

박정희는 총칼로 일어서서 총칼로 망한 사람이다. 헌정질서와 국가의 정통성을 경제성장의 논리로 멋대로 유린했다. 5.16 군사구테타로, 공작정치에 의한 정치탄압의 방식을 삼선개헌을 했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헌법을 깡그리 무시하고 영구집권을 꿈꾸며 유신헌법을 만들었다. 결국 심복의 총에 비참한 최후를 맞아야 했다. 헌법을 유린한 박정희를 되살리는 것은, 헌정질서 확립과 국가 정통성 확립에 어쩔 수 없이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박정희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다음 세대에 물려줄 대한민국의 미래는 무엇이냐고? 당신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국가관의 실체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박정희를 찬양하는 민중의 함성이 헌법이라 말하고 싶은가? 도대체 당신들이 말하는 보수의 의미가 무엇인가 묻고 싶다. 나는 우리 사회의 질서의 근간을 헌법에 두어야 한다고 믿는다. 헌법은 국가의 이고 生命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헌법에 세우고 국민화합과 사회적 연대성의 이념을 헌법에서 이끌어 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대한민국 헌법편이다. 그리고 헌정질서를 올곧게 세워가는 것만이 희망찬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는 초석이라 믿는다.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와 퇴행적인 박정희 향수가 살아나는 현실에서, 민주주의와 헌법에 기초한 건전한 국가질서 사회질서를 온전하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경제성장의 논리로, 실적이나 업적 위주의 정치로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훼손한다면 우리는 결코 국민화합을 이룩할 수 없고, 결집된 국민적 역량을 전제로 하지 아니하고는 아무것도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한 국가의 건전성은 국민이 국가(헌정)질서를 수호하는데 얼마만큼 헌신적으로 노력하는냐로 평가된다 믿는다. 나는 개인의 강압적 리더쉽에 의존하는 국가운영 방식을 버리고, 우리사회의 헌정질서를 올바르게 세우고자 역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헌정질서로부터 우리는 우리의 후손에 물려줄 자랑스러운 조국의 미래에 대한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의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4. 희망을 위하여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리의 현실에 좌절한다. 나는 희망이 없는 것 같은 세상에서 희망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반목과 대립으로 서로 자신들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가 싸우면 망하고 뭉치면 산다는 말을 역설하고자 한다. 박정희 이 후 모든 대통령이 박정희를 뛰어넘지 못했다. 박정희 이 후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모두 독재자라는 것이 나의 일관된 생각이다.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국정개혁의 요체는 과거 독단적 의사결정에 의하여 운영되어 왔던 독재정치 및 독재행정의 폐해를 타파하고 의사소통의 공정성이 보장된, 상호존중의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으로 운영되는 국가, 자유민주주의적 헌정질서에 기초한 정의롭고 활력 있는 국가와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모든 국가권력의 행사는 법률의 제재를 받아야 한다는 법치주의의 이념을 철저하게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확고한 원칙하에 국가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헌정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헌정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신장하는 자유 실현의 전제조건이 되며..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의 확립이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전제 조건이 됨을 바르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나라의 근본인 헌정질서를 올곧게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모든 국가권력의 행사는 법의 제재를 받는다는 법치주의 이념을 구현하고, 예측 가능한 행정으로 을 바로 세운다면, 부정부패의 척결, 지역감정해소, 법과 질서의 수호, 나아가 국민화합도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러한 헌정질서를 전제로만이 건전한 시장질서도 형성될 수 있다.

 

먼저 국가권력의 사회통합능력과 문제해결능력의 향상이 전제되어야만 성공적인 개혁이 가능할 것이다.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일은 나중으로 미루어야 한다. 먼저 헝클어진 기존의 제도를 정비하여, 국가의 내부질서를 강화시켜야 한다. 혼돈의 문제적 상황을 하나씩 둘씩 차근차근 정리해 나아가면서 흔들림 없이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위기의 국가 상황에서는, 법과 공권력의 권위를 드높이고 국가의 지배력을 사회통합 역량을 강화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국가는 정부 주도하에 운영되어야 마땅하고,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권한 행사방식은 <으로>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 누구보다도 대통령 자신이, 정치란 오직 세가지가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법을 만들고(立法), 법을 운영하고(行政), 법을 선언하는 것(司法). 법을 지키면서 타당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 법의 제제 하에 실효성 있는 공권력이 행사되어야 한다.

 

법관이 법률에 기속(羈束)되어야 한다.

 

기강과 절도가 없는 군대가 강력한 전투력을 가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강과 질서를 상실한 국가나 사회가 지리멸렬 할 것은 명백하다. 법질서를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정당한 법이 선언되어야 한다. 이러한 확고한 국가관에 기초하여 국정을 이끌어가는 길만이 이 땅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 첩경임을 그리고 개혁의 성공적인 돌파구를 마련해 나아가는 길인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적 헌정국가는 다음과 같은 사회를 건설할 것을 목표 해야 한다. 새로운 국가는 민주주의 이념에 입각한 행정과 법체계를 확립하고, 이러한 바탕 위에 국민의 건전한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국가는 성실하고 정직하며 부지런히 학습하고 훈련하는 국민의 삶의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합법적인 삶의 방식이 지켜지고, 인간의 德性이 최고의 가치로 존중되는 사회를 구현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고, 자유, 평등, 정의와 인류애를 구현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새로운 사회는 <능력이 지배하는 사회>, <법이 지배하는 사회>, 의사소통의 공정성이 보장되어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되는 사회>를 정착해 나아감으로써 기강이 서있고, 활력과 질서가 있어 경쟁력 있는 국가질서의 확립을 목표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오천년 유구한 역사 문화민족의 자긍심은 우리로 하여금 기필코 세계사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게 할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시련의 시대를 위대한 역사를 창조한 전기로 기억되게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 믿는다.

공직자 윤리도 모르는 인사수석

2005-03-29 17:37:43

 

 

김완기 청와대 인사수석은 28일 강동석 건교부 장관의 사표 수리 배경을 설명하며 최근 고위층 인사들의 잇따른 낙마에 대해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성, 청렴성의 기준에 대해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하며, 청렴. 투명사회로 가는 기류가 급물살을 타고 있어 많은 고위 공직자가 치명상을 입고 불명예 퇴진하는데 이것이 공직자만의 문제겠느냐. 사회 전체가 고민하고 대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 50~60대를 기용하려면 많은 분이 흠이 있어서라기보다 홀랑 벗고 까발려지는 상황에서 인격적 약점이 될 수 있다고 판단, 임용을 거절하고 있다. 너무 이런 방향으로 급격하게 변화가 진전되면 청렴, 투명사회는 앞당길 수 있으나 좋은 인적 자원을 활용할 수 없다.” 말했다.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이 고위 공직자 비리를 거론하며, 사회전체가 고민하고 대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 말하고 있다. 고위공직자 비리를 말하며 이것이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되어 있는 비리의 일면이며, 50~60대 인사들은 대다수 부패하였고, 청렴성과 투명성 강조하면 좋은 인적 자원을 활용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고 심란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김수석은 우리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성 청렴성의 기준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 말한다. 공직기강과 공직자윤리에 대하여 아무 생각도 대책도 없는 사람이 대통령 인사수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수석의 말을 들어보면, 공직사회에 부정부패가 만연한 이유를 모른 채, 현 정권의 고위층의 비리에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는 생각이다. 公私의 구분이 분명하고, 옳고 그름을 바르게 분별하여 올바름을 실천하는 건전한 공직자 윤리를 갖은 사람이라면, 인사수석의 직분으로, 도덕성과 청렴성의 기준이 무엇인지 몰라 사회전체가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식의 이런 무책임한 발언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도덕성과 청렴성의 기준은 마땅히 정부가 앞장 서서 실천하며 만들어 가야한다. 고위 공직자들로부터 솔선수범하여 공직자 윤리를 바로 세우고 건전하고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단초를 제시하여야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지는 법이다. 부방위는 고위 공직자의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만든다고 한다. 공수처를 만들어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척결하겠다는 정부의 부패척결에 대한 결연(?) 자세를 생각해 보면, 김수석이 무엇을 믿고 청렴성 투명성을 강조하면 좋은 인적자원을 활용할 수 없다.”는 식의 정부의 부패척결 의지에 반하는 이율배반적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지 아연할 따름이다. 도덕성 청렴성을 강조하면 좋은 인적 자원을 활용할 수 없다는 김수석의 이같은 어처구니 없는 발언은, 친일인사들의 친일행위를 정당화하는 발언과 그 사고방식이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이는 김수석 스스로 무지하고 무능하며 부패한 공직자임을 토로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어떤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그 사회가 갖는 평균 정도의 도덕성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판단하면 친일파의 친일행위는 정당화될 것이고, 김수석의 청렴성과 도덕성을 강조하다 보면 좋은 인적 자원을 활용할 수 없다는 발언은 그럴 듯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의 어려움을 핑계로, 비리와 부정이 정당화될 수 있다면 올바른 삶의 방식은 그 설 땅을 잃게 되고 말 것이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신이 하면 로맨스란 말이 있다. 비리인사가 야권이면 기득권층의 타락한 범죄이고, 비리인사가 여권의 인사일 때면 비리가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에서 비롯된 도덕성과 청렴성의 기준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 강변하고 있는 꼴이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이 있다. 청와대 인사수석이란 사람이 공직자윤리가 무엇인지, 고위공직자가 부패한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공직기강이 무엇인지, 나아가 공직자 윤리가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사람이 인사수석을 하고 있는 정권으로부터 깨끗한 정부로의 개혁을 기대할 수 있을까?

 

대통령 인사수석비서관이라면 마땅히 공직자의 도덕성과 청렴성에 대한 건전한 공직자 윤리의식을 가지고 투철한 원칙과 신념 하에 사명감을 가지고 대통령이 원할하게 국정운영을 하는 데에 꼭 소용되는 사람을 쓸 수 있도록 보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현 정권 스스로 자신들의 허물을 고치고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며 구차한 변명이나 늘어놓으면서, 어찌 성공적인 개혁을 할 수 있으며, 어찌 다른 사람의 잘못을 다스릴 수 있단 말인가? 현 정권은 부정부패의 근본적인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부패척결을 외형만을 제거하려 한다. 고위공직자의 부패가 심각하다는 인식만 했지, 왜 고위공직자가 부패했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고위 공직자의 부정부패의 실체가 무엇인가?

 

그것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특권과 불공정에 대한 집착하며, 그 권한을 오용하고 남용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 정부는 이러한 부정부패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하여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기득권층이 기득권에 집착하여 저지른 부패에 대하여 이를 응징하면 부패가 척결될 것이라는 단순무지한 발상으로 부정부패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한 술 더 떠 고위공직자비리 수사처(공수처)와 같은 특별수사기관을 만들어 국가형벌권 행사에 있어 국가訴追주의의 이념을 훼손하며, 정치 권력이 국가형벌권을 행사하는 것이 부패척결의 첩경이라 오해한다.

 

이러한 잘못된 개혁 의지는 필연적으로 부패척결이 아닌 부패한 기득권 층에 대한, 새로운 집권 세력의 기득권 빼앗기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과거 부패한 기득권층이 그러했듯이 현 집권 세력과 자신들의 권력에서 파생되는 특권과 불공정에 집착한다. 그러하기 때문에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과거사 청산을 외치는 현 정권의 인사수석의 입에서, 도덕성과 청렴성을 강조하면 좋은 인적 자원을 활용할 수 없다는 식의 발언- 친일파가 친일행위를 정당화하는 것과 같은 사고방식의 황당한 발언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부정부패의 근본적 원인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눈 앞의 당리당략에 급급하여, 터무니 없는 <공수처> 같은 것을 만들어 부패척결이 가능하다 오해하는 현 정권에게 우리 사회가 지닌 부정부패의 구조적 원인을 몇 가지 관점에서 분석해 보이고자 한다.

 

첫째, 산업화 과정에서의 성장위주의 개발독재 아래서, 행정 편의적으로 만든 제도가 정당성 구체적 타당성을 결한 부패한 제도였다. 독재자들은 자신들의 恣意적 의사로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특권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부당하게 법을 만들었고, 불공정하게 법을 집행하였다. 국가권력의 행사는 정당하지 못하고, 합법적인 절차를 무시한 채, 법은 독재자의 지배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오용되고 남용되었다. 제도가 좋아도 부패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제도가 부패했다면 그 제도하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부패할 수 밖에 없다. 지난 40여 년 성장 위주의 국가정책은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파괴해 왔다. 업적과 성과로 부당한 방식의 국가권력행사를 정당화하는 국가운영방식-이것이 부정부패의 근원적 뿌리이다.

 

둘째, 지난 18년 간의 민주화 과정은 이러한 왜곡된 지배질서를 해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화 과정에서의 개혁이, 건전한 민주적인 사회질서를 만들지 못하고 천박한 자유주의에 근거하여 개인과 집단의 권리 주장에만 급급하여 질서 파괴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사회 여건에서 공권력의 오남용은 더욱 촉발되었다.

 

셋째, 기업가형 정부, 수요자 고객 중심의 행정이 그리고 공직자를 성과로 평가하는 행정방식이 부정부패를 조장했다. 나아가 행정의 효율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공무원의 재량권을 확대하는 방식의 행정개혁이 행정의 예측가능성을 훼손하여 법질서를 어지럽히고 공무원의 부패를 조장하였다

 

넷째, 개발독재 하에서의 공직자들은, 행정편의위주의 재량권을 확장하는 부패한 방식으로, 되도록 많은 이권을 챙길 수 있는 타락한 방식으로 공권력을 행사되었다. 예를 들면 예산을 보다 많이 끌어다 쓰는 것이 기관장의 능력으로 평가되었다. 또 기업가형 정부로의 행정개혁이 행정의 효율성과 실적과 성과 위주 행정을 주장하며, 공직자들은 재량권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권한을 행사하였고 그 결과 국가권력 스스로 법질서와 법적 안정성을 훼손하는 것이 관행화 되었다.

 

다섯째,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국민들의 준법의식이 망가지고, 공동체의 共同 善을 추구하고자 하는 價値 公準이 무너지고 사회의 일원으로써 사회적 책임감과 법적 책임감을 상실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난 40여 동안 경제 성장위주의 국가정책을 시행하면서 국가권력의 정당성 행사가 외면되었다. 부정부패의 근원적인 뿌리는 국가권력의 정당성의 훼손에서 비롯된 것이고,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라 말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법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닌 사람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통치자와 국가기관이 법을 마음대로 만들었고 마음대로 집행하였으며, 상황논리에 따라 마음대로 뜯어고쳤다.

 

원칙과 절차를 무시하고 <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 하라>는 식의 결과와 실적 위주의 독선적 지배방식은 필연적으로 국가권력을 부패하게 만든다. 윗 사람은 멋대로 하고, 아랫 사람에게는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 효율적 행정을 위한 것이라 생각되어 왔었다. 부하 직원의 공은 가로채려 하고, 책임은 전가하려는 행태가 비일비재한 것이 오늘의 공직사회의 현실이다. 이러한 일방적인 지시로 운영되는 조직으로부터 자발적이고 창의적이며 생산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독재정치나 독재행정은 필연적으로 IQ가 모자란 국가조직을 만들게 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아직도 이러한 독재행정의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다.

 

무사안일과 보신주의에 젖어 여전히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타성에 젖어 있는 것이 공직사회의 현실이다. 의사결정에 있어서 재량권을 확장하고, 성과와 실적을 중시하는 방식이 공직자의 사기를 높이고, 행정의 능률성을 높인다는 잘못된 사고방식은 여전히 공직사회를 움직이는 원리이며, 우리 사회의 지도원리이다.

 

대통령 인사수석이 공직자의 도덕성과 청렴성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토로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공직기강의 확립에 대하여 대책이 없다고 실토하는 것이다. 원칙 없는 사회가 부패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공직기강 확립에 대한 구체적 대책이 없으니 장관급 인사들이 줄줄이 부패에 연루되어 낙마하는데, 이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사회 전체가 고민하고 대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 말하며 현 정권의 부패의 실상을 은폐하고 호도하기 급급하다. 행정철학과 원칙 없이 코드를 맞추어 줄 세우는 인사방식은 국가조직의 활력을 저하시키고, 우리사회의 성원들 간의 불신을 조장하며 나아가 지역 간, 계층 간, 세대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게 될 것이다.

 

권력은 부패한다.

 

권력은 아무리 작은 권력일지라도 恣意적으로 행사하려는 속성을 갖는다. 자의적 재량권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권력자는 스스로 자존심을 높이고, 타인에 대한 威力(권위)을 높여 지배력을 강화시키려 한다. 권력은 주어진 한계를 넘어서려 하며, 권력자는 권력자체를 위해, 권력을 탐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모든 국가기관은 스스로 관료주의를 지향하고, 모든 관리는 스스로 권력을 남용하고 싶어한다.

 

법과 원칙에 입각하여 행사되는 국가권력만이 건전성을 담보하고 공직기강을 확립하며 나아가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시발점임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부패 없는 건전한 사회는 법과 원칙이 지배하는 확고한 행정철학을 가지고 공직기강을 바로잡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법치주의의 핵심원리는 무엇보다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법의 意思에서 벗어나 권력을 오남용하는 것을 막도록 하는 원리이다.

 

남을 다스리는 자는 먼저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한 태도만이 성공적인 개혁을 통한 보다 나은 우리의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 철학도 원칙도 심지어는 제대로 된 신념조차 없이, 자신들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개혁이라면 우리 사회에 분열과 갈등만을 조장하는 살풀이 식의 헤프닝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시대정신의 부재와 국가위기

2004-06-01 17:01:50

 

1. 상황

 

시대정신이란 알고 보면 한 사람의 정신이다.

지난 40여 년 우리나라를 지배해온 시대정신은 <잘 살아보세>로 시작한

경제성장의 국가이념이고

그것은 박정희라는 한 사람의 향도해온 시대정신이었다.

1979년 인간 박정희는 사망하였지만 그 정신은 다시 살아나 87년까지 지속되었고,

876월 항쟁 이 후 붕괴의 길을 걸어왔다.

지난 17년간 하나의 역사는 붕괴되어 왔지만 진정 새로운 역사는 시작되지 못했다.

지난 17년간 민주화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국가 질서는 확립되지 못했다.

민주화의 이름으로 개인과 집단의 권리의 주장과 이익의 추구는 소리 높이 主唱되었지만

우리사회는 점점 혼란과 무질서의 방향으로 이끌려 왔고,

국가와 사회 각 분야의 지도력은 점진적으로 약화되었다.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사회통합능력은 저하되었다.

 

1993년 김영삼정부가 구상했던 신경제 5개년 계획은

박정희의 경제개발 계획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997IMF환란은 박정희 식의 제 성장 모델이용도 폐기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김영삼은 자신이 집권하는 것이 곧 민주화고 말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국가가 해야할 일(Agenda)을 제시하지 못했다.

김대중은 50년만의 정권교체를 말했었다.

하지만 김대중이 건설한 민주주의 국가의 실체가 있기나 한 것인가?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발하였고,

2004415일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걸고 그야말로 완전한 의미의 정권교체를 성취하였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로 집권층이 바뀌었다.

그러나 아직 새로운 대한민국은 등장하고 못하고 있다.

새로운 역사는 여전히 출발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국가질서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새로운 역사는 시작된다

 

실패가 확인되었다면 목표를 재설정하여야 한다.

하지만 어떠한 목표를 설정하여 그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을 때에도,

우리는 새로운 삶의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박정희식 국가 발전모델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일인당 국민소득 100불에서 10000불의 시대로 이끌어 온 대한민국의 산업화 과정은

박정희의 리더쉽을 중심으로 이룩하였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성공하였다는 관점에서 말하자면

박정희식의 국가모델은 그 목적을 달성하였기에 새로운 국가모델이 만들어져야 한다.

실패하였다는 관점에서 말할 때,

IMF환란이 박정희식 경제운용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 또한 이해해야 한다.

혹자는 IMF환란이 김영삼의 책임이지 왜 박정희의 책임이냐고 되물을지 모른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논점은 누구의 책임을 추궁하자는 것이 아니다.

2004년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의 국가모델은 박정희가 만든 것이고,

우리 시대에 새로운 국가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

박정희 식의 국가모델을 어떻게 극복해 내느냐를 논의하고자 하는 때문이다.

 

 

 

2. 반성

 

이러한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독재국가에서 민주국가로 거듭나는 일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유민주주의 국가체제를 확립하는 길이다.

 

지난 17년 간 민주화 운동은 반체제적으로 진행되었다.

통합을 위한 국가권력은 해체되기 시작했다.

노태우 정권 이후의 정부가 주도한 민주화 노력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보통사람의 시대를 연다는 명분하에,

사회통합을 위하여 꼭 필요한 권위마저도 파괴하고 말았다.

심지어는 국가기관의 개혁입법조차, 국가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터무니없이 기구를 팽창하는 데 급급하여 예산만 낭비해 온 것으로 평가된다.

40년 독재정치에 대한 누적된 각종 사회병폐로 인하여

대다수 국민, 지식인, 시민단체, 심지어는 사법부와 행정부 일각에서 조차,

국가권력을 분권화하고 국가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것을

민주화라 여기며 개혁입법을 추진해 왔다.

 

국가권력의 본질과 국법의 기본질서에 대한 이해 없이

당파적 이해에 얽매여 개혁을 실시해 온 것이다.

부처이기주의라는 희한한 말도 생겨났다.

이러한 말이 생겨났다는 것이 곧 정부 조직내의 통합능력이 훼손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정부의 민주화 개혁 또한 기구를 팽창하여 예산을 낭비하고

국가권력을 분권화하여 국가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수많은 관변단체가 생겨났고,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정부는 고비용 저 효율의 엉망진창의 시스템으로 고물화 되어갔다.

이러한 어이없는 개혁의 추진이 공무원의 부패를 조장하고

사회혼란을 가중시킬 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다.

88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었고 - 16년 지난 지금

지방자치단체는 부패의 온상이 되어버렸다

 

국민주권주의를 말하며, 무책임한 지식인들이나 시민단체들은

국민의 요구대로 국정이 이끌어져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고

이러한 잘못된 생각이 사회전반에 퍼져 있다.

대다수 국민들은, 국가권력을 무력화시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것이

민주화 운동이라고 착각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사회를 통합의 원칙보다는 분화의 원칙으로만 설명하려 하고,

조화나 사회통합을 이룩하기 위한 동질성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도외시한 채,

국가권력을 無力化시키고, 개인과 집단의 욕망을 극대화하는 것이

진리인 듯 외쳐대는 천박한 자유주의가 민주화 운동의 주조를 이루어 왔던 것이다.

 

국가의 기강은 무너졌고, 사회윤리가 실종되었으며, 우리들의

삶의 질서는 혼돈 속에 빠져버린 것이 우리가 처한 이 시대의 상황이다.

 

안타깝게도 6.29선언 이후 지속되어온 이러한 사회위기 상황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각종 사회문제에 대하여 때로는 과도한 제어를 시도하고,

결국에는 부패한 세상 탓, 국민이 저질인 탓으로 방치해 버리고 마는,

국가권력의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구조적 해결불능상태를 지속시켜 왔던 것이다.

 

독재정치의 폐해로 누적되어온 이러한 위기상황은

결국 우리로 하여금 파국적인 IMF체제로 가지 않으면 아니 될 국난을 초래했다.

현재의 국가위기는 본질적으로 <국가의 정당성의 위기>이다.

국가나 국민 할 것 없이, 어떠한 삶이 정당한 것이고, 어떠한 방법이 적절한 것이며

어떠한 목표가 적당한 것인가를 규율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지난 40년 동안 국가권력은 통치자의 필요에 의해 독단적으로 법을 만들어

국민을 지배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반민주적인 지배방식은 수 없는

국민적인 저항에 부딪혔고 이제는 그 설 땅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제대로 된 지배방식을 창출해내지 못한 국가가 국민의 눈치를 살피며

<국민의 요구에 의한> <수요자중심> <고객중심>의 행정을 한다며

국가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다.

 

 

 

3. 모색

 

국가발전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첫째는 국가의 생산성의 향상이다.

 

둘째, 체제의 자율성 강화를 통한,

공동 선과 국가 목적을 실현키 위한 지배력의 강화로 이해할 수 있다.

 

강력하고, 효율적인 국력은,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활과 삶의 상황을

성공적이고 효율적으로 統御하여, 결집된 국민적 역량을 이끌어낼 때 가능하다.

그러기에 국가는 확고한 원칙 하에 조직되고 운영되어야 하고,

이러한 원칙은 보편적 진리와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정당한 원칙이어야 한다.

책임 있는 개인은 어떠한 규범을 자신의 행동을 제약하는 원칙으로 수용함에 있어

그 규범이 자신의 행위를 拘束하는 準據로 정당한가를 물을 것이다.

또 일정한 시기에 일정한 적용의 영역 내에서

규범적으로나 사실적으로 효력을 갖는 규범인가를 따질 것이다.

따라서 은 정당하고, 구체적으로 타당하며, 실효성이 있고, 문제가 발견될 경우

이의제기를 통한 <정당성 승인청구><타당성 승인청구>가 완전히 보장되야 한다.

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법은 반드시 개정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통치자의 의사대로 국가를 경영하는 것은 독재정치이다.

국민의 뜻대로 국가를 운영한다면 그 또한 프로레타리아 독재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각기 다른 국민들의 요구란 이질적이고 때로는 상호모순적이기도 하다.

이러한 국민의 요구로 국가를 이끌어 간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국가는 普遍的 眞理合理的 理性, 그리고

正義自由, 平等理念國民主權理念을 포괄하는 憲法을 제정하고

이 헌법에 기초한 법으로 국가의 초석을 다져야 한다.

이러한 국가의 존립을 전제로만 平和가 가능하다.

또 이러한 憲政國家만이 국민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고

진정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사회의 전제조건이 된다.

 

40년 간의 독재정치와 독재행정에서 비롯된 독단적 의사결정방식은

이제 합법적이고 예측가능하며 투명한 행정을 실천함으로써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실천적 의미의 민주주의 행정을 구현해 나아가야 한다.

 

확고한 원칙하에 나라의 을 올곧게 세워야 한다.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자유주의적 경제질서>를 양 축으로 하는

확고한 국가질서를 바탕으로, 고용의 불안, 빈부격차의 확대 등이 야기될 수 있는

신자유주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경제권력이 시장질서를 왜곡할 수 없도록

경제를 다스릴 수 있는 정치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함으로써

우리는 진정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게 될 것이다.

 

IMF구제금융의 여파는 경제부문만이 아닌 사회전반에 걸쳐 수많은 문제를 배태하고 있다.

강제된 급격한 구조조정으로 야기되는 실업, 실업가정의 파탄,

전통적 공동체 사회의 붕괴, 젊은 세대의 가치관 상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에서 비롯되는

자살율 이혼율의 급증, 출산율의 현저한 저하, 범죄의 폭발 등

수많은 사회문제의 폭발을 예고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국가의 사회통제능력이 현저히 저하될 것이며

국가 위기의 국면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의학적 관점에서 위기의 개념은 인체 내부의 저항력이

외부에서 침투하는 병원체의 증식력보다 약하면

그 생명체는 위기의 국면을 맞이한다.

이를 방치하게 되면 결국 그 생명체는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

 

우리사회의 위기의 국면 또한 이와 마찬가지이다.

건강한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범죄 등 각종 사회문제 발생의 증가율이

국가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능력보다 커지게 된다면

국가나 건전한 사회의 존속은 결국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위기의 상황은 정권의 교체나 혁명 등

급격한 사회변혁의 요구를 증대시키게 될 것이다.

이것이 국가의 위기국면이다.

 

우리가 처한 국가 위기 상황은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국민들의 삶을 지배하는 원칙을 상실했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지난 40년간 말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이념을 표방하였으나

실질적으로 독재정치로 일관해오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이념을 확립하는데 실패했다.

 

학연, 지연 등 연고 중심의 사회운영과 특혜지향적인 그릇된 삶의 방식의 추구로 인하여,

합리성이나 공정성에 기초한 건전한 사회작동원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국가권력 또한 독재자의 의사에 순종하는 방식만을 강제했을 뿐,

정당한 법에 기초한 효율적인 행정, 합법적인 권한행사방식을 확립하는데 실패했다.

 

성장제일주의와 실적주의의 기치아래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합법적인 삶의 가치는 외면 당해 왔다.

독재자들은 자신들의 정권유지의 방편으로

국토의 균형발전을 훼손하고 지역감정을 유발하여 국민화합의 기반을 파괴했다.

국가권력은 정당하지 못했으며 권력을 가진 자들은

특권과 불공정에 집착하며 不法과 전횡을 일삼아 왔다.

그 결과 국가는 지배력을 상실하게 되고,

복잡해지는 사회현상과 계층과 이해집단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데

구조적 해결불능상태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것이 현 국가 위기 상황의 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국가와 지배체제가 법을 지키지 않고 만들어 졌다.

권력자는 법 위에 군림했고, 고위관리일수록 恣意적 권한행사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준법정신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이다.

독재정치로 일관해 온 지난 40년 동안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준법정신은 그야말로 악화일로로 치닫아 왔다.

 

자율성을 상실하고, 지배되지 않는 사회-

이것이 국가 질서가 무너져버린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변명

2004-07-28 14:24:59

 

나는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다.

흔히들 술 자리에서 안주 삼아 말하는, 보수주의자고 진보주의자라는 식의 말이 아닌, 자유민주주의 사상체계를 나 나름대로 확립하고자 애써 왔다. 나는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을 구체화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그리고 대한민국이 독재정치를 극복하고 진정한 의미의 자유민주의의 체제를 어떻게 이룩할 수 있느냐에 대해 연구해 왔다.

 

두 달전에 출세하기 위해 판사가 되고 싶었다던 노대통령이, 며칠 전에는 유신헌법으로 고시공부를 했던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었다. 그야말로 웃기는 이야기다. 유신헌법으로 고시공부하는 것이 부끄러웠으면, 고시공부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인간이 되어서 왜 부끄러운 짓을 하며 사는가? 스스로 양심에 부끄러운 짓을 해놓고, 부끄러운 짓을 마치 자랑인 듯 떠벌리는 것은 염치를 모르는 것이다.

 

한 사회나 조직의 성원이 된다는 것은 그 사회나 조직의 작동원리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이기도 하다. 적어도 나는 유신헌법으로 움직이는 세상 - 머리 길다고 길 바닥에서 바리깡들고 머리깍고, 짭새들이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가방 뒤지는 개같은 세상이 싫어, 남들 다 가는 대학도 가지 않고, 고시공부도 하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무엇보다 민주적 헌정질서를 전제로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리고 민주주의는 단지 정치적인 주장이 아닌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제도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법률 공부도 오래 했다. 누가 무엇이라 비난하여도 그것이 내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고, 가난하고 별 볼일 없게 살아왔지만, 내 양심에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았다. 대통령이면 무슨 소용인가? 인간이 되어서 더럽고 치사하고 구질구질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평소의 소신이다. 누가 무어라 해도 내 자식이나 자라나는 우리의 젊은이들에게도 눈 앞에 이익보다는 언제나 자존심을 가지고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라 말해주고 싶다. 노대통령과 같이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모르면서 아는 척하며, 치사찬란하고 비겁하기 능수능란할 뿐인 사람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자라나는 우리 어린이들의 교육상 아주 바람직하지 못하다. 노대통령에게 한 마디 묻고 싶다. 인생을 왜 그렇게 사시느냐고?

 

자신의 집권 기반을 확장하기 위해, 헌법을 어겨 재신임을 묻고, 정권욕에 눈이 어두워 불법행위가 당당했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대통령 탄핵소추의 국면에서 민중의 함성이 헌법이란 식의 선동적인 구호가 소리높게 외쳐되었다. 국회의원 선거에 대통령의 재신임을 묻게 하여, 국민을 기망하고 집권 기반을 강화하였다. 이 따위 짓을 해 놓고 아직도 헌법정신에 참여정부의 정체성이 있다고 대 국민 사기극을 벌리고 있다. 대통령 취임 후에 단 한번이라도 헌법 정신에 충실하여 제대로 대통령의 직무를 행한 것이 있기나 한 줄 아는가? 노대통령은 일을 벌릴 때마다 헌법파괴적인 행동을 일삼아 왔다고 하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대통령 노릇 못해먹겠다고 하고, 어이없는 실정으로 지지율이 떨어지자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를 한다고 했다. 이것이 대통령으로써 헌정질서의 수호 책무를 온전히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 할 수 있는가? 무책임하고,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대통령이다. 열등감과 증오심에 사로 잡혀 오직 정적과 기득권층의 기득권을 빼앗는 것이 전부인 우리의 대통령이다

 

나는 자유민주주의가 이 땅에 뿌리내리고, 국가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바로 잡아 국민화합을 이룩하여 결집된 국력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발전하고 통일조국을 이룩하여 민족의 번영을 염원하고 살아 왔다. 개인적으로 노대통령을 미워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 내 평생을 이 땅에서 독재정치가 청산되고,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길 염원하고 이를 위해, 내 나름으로 노력해 왔다고 자부한다.

 

취임 후 노대통령이 벌려온 일련의 행적은 과거 전횡적인 권력으로 국민을 억압했던 대통령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전임 대통령보다 끔찍한 것은 자신의 집권욕을 위하여 계급 혁명을 선동해왔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북한의 대남적화전략에 휘말리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일반인들에 비하여 마르크스 레닌주의 등 공산주의 사상과 혁명전략을 제대로 공부했고, 주체사상도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참여 정부의 5대 개혁 대상이라는, 서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개혁 대상인 사법부도 아니며, 조중동에 관련된 사람도 아니고, 삼성 직원도 아니며, 서울 강남에 사는 사람도 아닌, 서울에 사는 중하층민 정도의 서민의 생활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 나의 주장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마르크시즘이나 주체사상의 실상을 충분히 모른 체, 무조건 현 정권을 빨갱이로 몰고 싶어하는 색깔론이라 말하겠는가?

 

내가 현 정권을 비판하는 의도는 명백하다. 이 땅에서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온전히 확립하는 것이 개혁의 최우선 과제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현 정권이 의도적이 아니라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현 정권이 지금 벌리고 있는 개혁은 개혁이 아닌 계급혁명의 성격이 가깝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개혁이라 말하려면, 개혁의 비젼을 제시하고, 그 비젼을 실현해 나아가기 위해, 올바른 문제제기는 어떠한 것이고, 합리적인 해결방법은 무엇이며, 개혁을 진행하는 데에 있어서의 실행하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드러내 보여 주어야 한다.

 

현 정권이 실시하는 개혁은, 있는 자들에 대한 없는 자의 증오심을 부추키어 국론을 분열시켜 왔다. 남한에 민중이 주체가 되는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하기 위하여, 나아가 북한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을 실천하기 위한 선결조건을 착실히 수행해 왔다고 말하여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나는 노대통령의 의도와 관계 없이 현 정권이, 김정일의 대남적화전략의 의도에 말려들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생각이 진정 나의 잘못된 판단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것을 현 정부가 온 국민을 향하여 일깨워 주기를 기대한다.

 

이는 국민의 화합이나, 노대통령이 성공적으로 대통령직을 완수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를 해명하고, 국민에 대한 이해를 구해야 할 중차대한 문제이다. 나는 현 정부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명을 국가의 안보가 걸린 중요하고 심각한 사실이라 점을 깨닫고 가능하면 조속한 시간에 해명하기를 촉구한다.

 

민주개혁을 하기 위해서, 노 정권이 한 일이 무엇인가? 우리 사회의 단결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한 일이 있기나 한 것인가? 자신의 집권 기반의 강화를 위하여 우리 사회를 있는 자와 없는 자로 갈갈이 짖고, 기업인을 죄인을 만들고 그 결과 경제는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노대통령 집권 이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확립되어 사회가 안정되었는가. 친미와 반미로, 친북과 반북으로, 친노와 반노로 온 국민이 갈라져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오늘에 처한 우리의 실정이다.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기 위하려는 정부의 노력에 오로지 기득권을 지키기만을 급급하여 현 정권을 발목 잡는 것만이 능사인 야당 탓을 할 터인가. 통일이 대한민국의 내부적으로 통일된 국민적 합의 없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야당과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을 배제하고 진행되는 통일을 위한 현 정군의 노력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부인하고 민중이 주체가 되는 사회주의 정권이나 공산주이 정권을 수립하는 것이 노 정권의 정체성이냐고 다시 한번 묻겠다.

 

긴 말 필요 없다. 자유민주의의를 부정하고 민중민주의를 주장하는 민주노동당이 위헌 정당인가? 아닌가? 이에 대한 올바른 대답을 하면, 현 정권에 대한 정체성은 분명해 이해될 것이다.

 

국가의 정통성을 말하며 친일청산을 말하는 노대통령에게 애정어린 충고 한 마디 하겠다.

국가의 정통성이란 말의 뜻을 온전히 아는가? 국민의 유권자의 과반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였는데, 노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그것이 헌법과 헌법에 의해 만들어진 법률에 의하여 선출된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의 대통령으로써의 지위의 정통성은 국민이 부여한 것이 아니라 법률이 부여한 것이다. 그런데 탄핵 소추 때에는, 민중의 함성이 용왕님이 되어 노대통령을 구했다고 말했었다. 이것이 노대통령이 헌정질서의 의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써 행정부의 수반으로써 권위를 가지고 온전하게 그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 권한의 행사가 적법하게 하여, 법률에 의하여 정당성(Legitimacy)를 부여 받아야 한다. 또 그 권한의 행사는 구체적 타당성을 가지고 있어 국민들이 납득하고 수용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수도 이전에 대하여 반대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자신에 대한 불신임이라는 어이없는 발언을 했었다. 국가 권력의 정당성이 어떻게 부여되는가를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이 같은 멍청한 소리를 하고 국민이 지지율이 떨어지자 우왕좌왕하며 허우적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통령도 모를 수 있고, 잘못할 수 있으며, 허물이 있을 수 있다. 모르면 배우면 되고, 잘못과 허물의 고치는 것을 꺼려하면 안된다. 모르면서 아는 척을 하지 말고 살기 바란다. 잘못을 했으면서 잘했다고 끝까지 우기는 것이 벼슬인줄 착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商高 나왔다고 기죽지 말고 남이 무시할까 보아 지레 겁 먹고 너무 폼 잡지 말고,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모르고 부족한 점 배워가면서, 제발 사고는 그만 치시고, 말 실수하여 망신 당하지 말고 남은 임기 성공적으로 마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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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중심잡기

2004-10-04 09:34:24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는가?

과거사 청산, 국가보안법 철폐, 수도 이전 문제를 놓고 여야 간의 사생 결단 대립 구도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과거사 청산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증폭시켜 사회 안정을 깨뜨리고 경제를 어렵게 만든다. 국가보안법 폐지가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을 보다 용이하게 만들고 국가의 안보를 위협한다. 국가보안법 철폐가 가져오는 안보의 위협이란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용이하게 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 사회, 대한민국의 내부 결속력을 와해하고 우리 사회에 계급 혁명의 조건을 보다 유리하게 하여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나아가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협한다. 국제 유가가 최악이고, 신용불량자 문제 등으로 국내 소비가 최악이며,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갈등은 보다 첨예화되고, 개혁 정책으로 인한 사회적 불확실성이 증폭되어 국내에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재정 적자 규모가 200조원이 넘는 어려운 경제환경에서, 거대한 재정 지출을 요구하는 비용 소모적 수도 이전의 문제가 적절한 것인지 충분한 검토없이 실행되는 수도 이전 문제에 대하여, 이를 반대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불신임으로 간주하겠다는 노대통령의 발언은 반민주적 발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이제껏 온전히 지켜지고 확립된 적이 있었던가?

국가보안법은 군사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민주인사를 탄압하고 오용되고 남용되어온 반민주 악법임에는 틀림이 없다. 수도권 인구 과밀이 가져오는 심각한 문제가 산적한 것은 사실이다. 여야 대립 구도에서 여당의 주장도 야당의 주장도 일리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그 중심을 잃고 있다.

지금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국론은 분열되고 우리는 위기의 국가 현실에 봉착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노대통령은 무엇을 위한 개혁인가에 대한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야당 또한 자신들의 주장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설득력 있는 반대를 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사 청산과 국가보안법 폐지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본질은 대한민국의 정체성 정통성에 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 없이 서로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건국이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점을 많은 사람들은 간과하고 있다.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1948년 제헌의회에서 헌법을 제정한 이래, 대한민국 헌법은 한번도 온전하게 수호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아직도 확립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 우리 사회가 계급혁명의 분위기에 휩싸여 국가의 존립을 위협받는다할 때, 우리가 지켜야할 국가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북한과 계급혁명 세력은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부인하고 민중해방과 민족해방을 외치며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려 한다. 무엇으로 이를 막아야 하는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의 확립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대한민국의 헌법을 수호하고, 헌법정신의 이념에서 국가의 정통성이 나온다는 것을 온 국민이 자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미국의 국가 정통성은 어디에 있는가? 프랑스의 국가 정통성은 어디에 있을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의 정통성은 헌법에서 비롯된다. (근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이념은 프랑스인권 선언에 집약되어 있다.) 헌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조화와 자율을 바탕으로 국가 공동의 번영을 모색한다. 국가의 목적은 헌법의 목적을 실현하는 데에 있고, 이러한 헌정질서는 자유민주주의실현의 전제조건이 된다. 헌법은 우리 대한민국의 이고 생명이어야 한다.

 

지금은 국가정체성의 확립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게 요구되는 싯점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누가 대통령을 하느냐가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 생각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헌법이 온전히 수호될 때, 그리고 이 땅에서 헌법정신이 온전히 구현될 때, 국가의 정통성이 확립되는 것이며 이를 전제로 할 때만이 대한민국의 영속적 번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온 국민 자각하여야할 때라 믿는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많은 사람은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가 왜 이처럼 어려운가? 노사가 반목하고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불신하고, 법도 원칙도 없이, 다중에 의한 시위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시민의식이 팽배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국민의 잘못만이 아니다. 부패한 제도와 잘못된 국가권력의 행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다. 대통령이 법을 지키지 아니하고 법관이 법을 지키지 아니한다. 경관의 56%가 법을 지키면 손해라는 나라에서 국민의 준법정신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부당하기조차한 것이 부끄러운 우리의 현실이다.

 

헌법이념은 법치국가 법의 지배의 이념을 통하여 구체화된다. 법의 권위가 바로서야 국가의 질서가 확립되고 헌정질서가 확립되는 것은 물론이다. 법치국가의 최우선 과제는 통치권자의 권한을 법으로 제제하는데 있다. 국가권력의 행사가 법률에 의하여 규율되어야 하며, 법관의 판결이 법에 기속되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은 이러한 법치주의 이념에 입각하여 제대로 국가권력이 건강하게 행사된 적이 한번도 없다. 대통령에 의한 헌법파괴가 마치 상식처럼 이어져 온 것이 부끄러운 헌정사이다.

 

많은 사람들은 박정희를 경제성장의 공을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오직 힘을 숭상하는 국가가 오래도록 번영한 나라가 역사에 있었던가? 역사는 현재를 위해서 쓰는 것이다. 현재의 과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과거 역사의 해석은 달라진다. 과거의 역사에 대한 평가는 현재의 관점에서 우리가 앞으로 지향해야할 역사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는가에 따라 엇갈린다. 현재 혼돈스러운 국가질서를 확립하고, 북한의 대남적화통일과 우리 사회 내부의 계급혁명 세력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일까? 갈갈이 찢겨진 국론을 통일하고, 국민화해와 조화와 자율을 통한 국민화해와 국가의 번영을 위하여 우리가 지키며 가꾸어 나아갈 대한민국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국가 정체성의 확립이란 다름아닌 헌정질서 확립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건국이래 한번도 헌정질서를 확립하지 못한 채, 독재자의 권력으로 헌법이 유린되어온 부끄러운 헌정사이다. 박정희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심각하게 헌법을 파괴해온 독재자이다. 권력분립의 기반을 와해시켰고, 경제성장의 미명하에, 행정 편의에 의하여 멋대로 법을 만들고, 관리들에게 자의적으로 법을 집행하도록 하여 대한민국에서 법치주의의 근간을 뿌리뽑았다. 박정희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철저하게 유린한 독재자로 평가하는 관점을 바르게 이해해야 비로소 헌정질서 확립을 통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바로 세울 수 있다.

 

이제껏 대한민국은 헌정국가도 법치국가도 아닌 무늬만 민주주의인 가짜 민주주의를 해왔다는 것이 우리의 과거사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일 것이다. 과거를 온전한 시각으로 제대로 반성해야, 우리는 새로운 밝은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 군사독재를 자유민주주의로,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멋대로 둔갑시켜 놓고서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고 가꾸어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거사를 왜곡하는 국가로부터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정통성이 없었던 과거 대한민국을 정통성 있는 것이라 거짓되게 고집한다면, 우리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시도하려는 집단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없게 된다. 민중의 함성이 헌법이라고 주장하고, 헌법기관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들에게, 대한민국의 헌법은 명백히 실정법으로 존재하는 것임을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실정법은 반드시 집행해야 만이 대한민국의 체제를 수호하고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할 수 있다.

 

경제살리기를 말한다.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의 확립 없이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 또한 불가능하다. 우리는 여전히 관치경제를 행하며, 시장경제를 말하는 모순된 경제현실을 살고 있다. 행정의 예측가능성, 투명성, 법적 안정성의 토대로 기업의 투자환경이 결정된다는 것은 시장경제의 상식이다. 한 토론회에서 한나라당의 의원은 과거사 국보법 문제로 여야간이 대립하면, 경제정책의 타이밍이 중요한데 제때 법안처리가 되지 않아 경제에 발목을 잡는다 말한다. 제도를 타이밍 잡아 실시한다는 철저히 개발독재식의 발상이다. 청와대와 열우당 그리고 행정부의 정책 조율의 부조화가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비판에 대하여, 여당의 한 의원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과는 다르게 이러한 이견과 마찰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말하고 있다. 하기야 한 방송과의 대담에서 대통령도 출자총액제한에 대한 정부의 입장에서 기업과 정부 간의 줄다리기를 당연한 것을 말하고 있다. 건전한 시장의 전제조건이 투명한 행정, 예측가능한 행정, 법적안정성이 전제되어야 만이 기업은 주어진 제도적 조건하에서 경영기획을 할 수 있다는 시장경제의 기초적 지식조차 정치권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한심한 현실이다. 여야 막론하고 경제정책의 문제가 제도의 문제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제대로 된 제도가 요구하는 법적 요건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 경제의 현주소이다. 이것이 박정희 시대의 관치경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시장경제와 관치경제로 뒤범벅되어 허우적대고 있는 우리 경제정책의 한심한 현 주소이다.

 

시장경제의 도입은 단지 경제적 차원에서 이룩될 수 없다. 시장 경제는 17세기 영국을 기점으로 해서 미국과 유럽 그리고 서방 세계의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시장경제와 헌정국가는 상호의존적인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함께 발전해 온 제도이기 때문이다. 시민적 시장경제는 헌정국가의 사회학적 실체를 이루며, 헌정국가 역시 시민적 시장사회의 요구에 의하여 형성되고 발전되어 왔다. 정치적 운동으로서의 <자유주의>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목표- 헌정국가와 시장경제를 추구하고 있다. 자유주의는 권력분립과 개인의 인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경제적 자유주의 - 다시 말해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두 축으로 하여 발전되어 왔다.

 

헌정국가와 시장경제는 다음의 점에서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발전되어 왔다. 헌정국가는 법적 안정성, 의회의 영향력, 경제적 자유, 특히 소유권의 보장을 통하여 시장경제에 제반 요건을 조성하여 준다.

 

첫째, 시장경제는 경영계획의 수립의 전제조건으로 법적안정성을 요구한다. 기업을 운영함에 있어, 예측 가능한 데이터에 관한 지식이 정확할수록 기업의 활동은 용이해 진다. 노무현 정권은 이러한 점에서 시장경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경제를 운용을 하고 있다. 국가권력이 기업활동의 안전을 보장해 주기는 커녕, 오히려 기업경영의 영역을 침해하려 한다면, 기업은 생존을 위하여 본능적 거부반응을 보일 것이다. 국가 권력이 자의적으로 법을 운용하고, 기존의 법적 안정성을 깨뜨린다면 법적 안정성과 사회의 안정성은 파괴되고, 당연할 귀결로 기업활동은 위축될 것이다. 법적 안정성을 위하여 일반적으로 법관이 법률에 기속되어야 하고, 법관의 인적 물질적 독립이 보장되어야 하며, 투명하고 예측가능한 국가권력의 행사로 법률은 형식성과 공개성, 일반성과 신뢰성, 나아가 내용상의 명확성을 가지고 운용되어야 한다.

 

둘째, 시장경제를 주장하는 기업인들이 의회에 대한 영향력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자유주의가 자유주의적 헌정국가를 옹호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의회의 고전적 3대 기능이란, 입법과 조세와 정부통제에 있고, 이러한 모든 기능이 기업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셋째, 헌정국가에서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 중에는, 경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자유를 포함한다. 이러한 자유들은 기업 경영상의 재산권의 처분과 상품의 자유거래를 가능하게 해 준다. 직업 선택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소유권과 같은 기본권이 그것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하여, 무엇보다 투자여건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 그것은 정부의 정책수행이 일관성을 가지고 예측가능하게 해야 하며, 법적 안정성을 유지해 주어야 한다. 헌정질서의 확립을 통한 법적안정성을 통하여 사회적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국민통합과 사회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경제를 살리기 위한 보다 근본적 처방이다.

 

헌정질서를 확립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질서는 무엇인가?

국가권력과 법률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존립하는 것을 국민에게 실증하는 것으로부터 헌정질서가 확립되어야 한다. 나아가 법치국가 질서가 확립되어야 한다. 법치국가의 최우선 과제는 최고 통치권의 권력의 오남용을 방지하는 데에 있다. 최고통치자의 권력남용은 실질적으로 정부입법을 행정편의적으로 실시함으로써 기존의 법적 안정성을 파괴하는 입법으로 행하여 진다. 나아가 다수당의 횡포에 의하여 헌법을 위반하는 입법행위가 근절되어야 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로 헌정질서가 위협받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들 마음 속에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신뢰하고 이를 지키고 가꾸어 나아갈 확고한 의지만 있다면 국가보안법 폐지는 오히려 우리에게 자유민주주의적 헌정질서를 수호하고 발전시켜 나아갈 전화위복의 계기를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헌법은 국가의 이고 생명이다.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리는 우리 대한민국을 올곧게 일으켜 세우고 우리모두의 공동의 번영을 위한 노력은 그 무엇보다 국가의 중심을 헌법에 두고 헌정질서를 확립하는 것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헌정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곧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길이다. 모든 국민의 마음 속에 이러한 마음이 자리잡을 때, 우리는 대내외적 국가적 도전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의 역사를 개척해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대한민국의 중심은 나아가 대한민국의 생명과 은 헌법에 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헌법에서 비롯된다. 헌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이러한 확고한 신념만이 위기의 국가적 현실로부터 우리를 구하는 최우선 과제임을 우리 모두 자각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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