合意가 법을 만든다.
2004-10-26 17:15:51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에 대하여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헌재가 위헌 판결을 내린 것을 납득할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첫째, 관습헌법을 그 바탕으로 했는데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은 경국대전에 나와 있는 것처럼 관습은 되지만 왜 그것이 헌법적 효력을 갖는 관습헌법인지 이해할 수 없다.
둘째, 과연 헌재가 불문헌법에 대해서 그 존재를 인정하고 해석하고 그것에 따라서 국회가 만든 법안을 무효화할 수 있는 것인지. 영국은 불문헌법 국가다. 그러나 영국은 헌재가 없다. 의회가 만든 법안은 무조건 다 통과다.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것 말고는 다 된다는 것이 그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명백히 성문헌법 가지고 있고 그 헌법을 최종적으로 해석하고 위헌됐다 말았다 하는 것을 헌재에 맡기고 있다. 국회가 만든 것이라 해도 그 성문에 위반된 것이라면 위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문헌법에 없는 관습헌법을 근거로 성문헌법을 위헌이라고 하면 국회가 도대체 입법을 어떻게 하겠나. 입법을 하면서 과연 관습헌법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면서 입법을 할 수 있겠나. 실질적으로 어떻게 따라야 하나. 국민들이 제정한 성문헌법에 의해 만들어진 헌재가 그 성문헌법을 뒤짚을 수 있는 것인지.
이번 위헌 대상은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이다. 수도를 서울로 옮기자는 것이 아니었다. 서울 그대로 두고 제한된 의미의 행정수도 만들자는 것이었다. 설령 서울을 관습헌법 상의 수도라 한다 하더라도 그것과 어긋나는 것인지 모르겠다.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에 담고 있는 내용은 수도 서울의 일부를 충청권으로 옮기자는 것이었다. 헌재가 이것을 알고 판결을 내렸는지 의문이다.
여당의 원대대표가 되어서 어찌 이러한 무지한 발언을 할 수 있는지 심란하다. 헌재의 판결문을 제대로 읽어나 보고 한 소리인지 모르겠다. 명색이 변호사인 천대표가 헌재의 판결문을 제대로 독해조차 하지 못하는 데에 대하여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헌재의 판결문은, 관습헌법의 성립 요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관습헌법이 성립하기 위하여서는 관습법의 성립에서 요구되는 일반적 성립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러한 요건으로서 첫째, 기본적 헌법사항에 관하여 어떠한 관행 내지 관례가 존재하고, 둘째, 그 관행은 국민이 그 존재를 인식하고 사라지지 않을 관행이라고 인정할 만큼 충분한 기간 동안 반복 내지 계속되어야 하며(반복•계속성), 셋째, 관행은 지속성을 가져야 하는 것으로서 그 중간에 반대되는 관행이 이루어져서는 아니 되고(항상성), 넷째, 관행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정도로 모호한 것이 아닌 명확한 내용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명료성). 또한 다섯째, 이러한 관행이 헌법관습으로서 국민들의 승인 내지 확신 또는 폭넓은 컨센서스를 얻어 국민이 강제력을 가진다고 믿고 있어야 한다(국민적 합의). 이와 같이 관습헌법의 성립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요건들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수도의 문제는 내용적으로 헌법사항에 속하는 것이며 그것도 국가의 정체성과 기본적 조직 구성에 관한 중요하고 기본적인 헌법사항으로서 국민이 스스로 결단하여야 할 사항이므로 대통령이나 정부 혹은 그 하위기관의 결정에 맡길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
다시 말해 헌재의 위헌판결의 핵심 요지는, 국민의 절반 이상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수도 이전 문제를 제대로 된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아니하고 추진하도록 한 법률이 위헌이라 판시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국회가 만든 법안은 무조건 다 통과되어야 한다고 강변하는 천대표의 몰상식한 발언은 유감스럽기 그지없다. 이러한 몰지각한 법률 상식을 가지고 있는 이가 변호사인 것이 신기하고, 앞으로 수많은 입법을 주도할 집권당의 원내대표인 것이 더욱 심란하게 여겨진다. 법률이 국회다수당의 의사대로 만들어진다는 발상이, 최근 추진되고 있는 집권당의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 청산법, 언론개혁법 등에 반영되고 있는 것 같아 유감스럽다.
집권당의 원내 대표가 제대로 된 법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국회의원 다수의 의사로 멋대로 법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법의 제정은 마땅히 헌법에 羈束되어야 한다.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법률이 위헌판결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법률은 정의에 기초한 공정하고 정당한 법이어야 하며, 그 법을 준수하여야 할 국민이 그 타당성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개별적인 사안을 규제하는 것이 아닌, 시간적 공간적으로 동일하게 적용되는 일반적이며 실질적으로 법률의 의사를 관철시키는 유효한 법이어야 한다.
“합의(合意)가 법을 만든다.”[Consensus Facit Legim.(Latin)] 라는 法諺이 있다. 합의는 당사자 간의 법을 만든다는 것으로, 그것에 의하여 拘束받을 것을 동의한 當事者간의 합의는 법으로 효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현행 프랑스 민법과 이탈리아 민법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근대 자유주의 국가관은, 국가는 개인의 합의에 의하여 성립된다는 사회계약설에 기초한다. 루쏘(J. Rousseau)나 칸트(I. Kant)는 본래 자유스러운 인간이 국가 안에 있어서 국가 권력의 구속 하에 놓이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서는, 이론적으로 국가 존립의 기초를 국민의 자발적인 합의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국가관의 입장에서 본다면 국민적 합의는 헌법률(Verfassung Recht)보다 상위에 있는 헌법(Verfassung) 이라 할 것이고, 국민적 합의를 외면한 법률이 위헌이라 판시한 헌재의 판결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할 것이다.
책임 있는 개인은 어떠한 규범이 자신의 행위를 제약하고 구속할 때, 그 규범이 내적으로 정당한 규범인가를 질문할 것이고, 실질적으로 타당한 규범인가를 묻게 된다. 법률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제약하는 것이라면 법률의 정당성과 타당성에 나아가 공정성에 대한 질문은 보다 절박한 것이 된다.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지 않은 법률이 타당성을 가질 수 없고, 구체적 타당성을 갖지 못한 법률이 규범적 효력주장을 할 수 없다 것을 바르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정당성과 구체적 타당성과 실효성을 갖는 법률만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규범으로써의 효력을 온전하게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합의는 법을 이긴다.”(Convenances vainquent loi.) 라는 法諺이나, 계약 자유의 원칙을 천명한 “계약이 법률을 이긴다.”(Conventio vincit legim)는 法諺은 법률행위에 있어서의 합의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예를 들면, 권투선수가 시합 중 상대방 선수를 죽게 하였더라도 그 권투선수는 계약에 의하여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지금 열린우리당의 국민적 지지율은 좋게 보아도 30% 내외라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탄핵정국에서 비정상적으로 의회권력을 장악한 열린우리당이 국민적 합의를 도외시한 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당파적 이해에 얽매어 입법권을 오용하고 남용한다면, 현 정권의 개혁은 필연적으로 국민적 저항에 부닥치게 된다는 사실을 이번 행정수도이전에 대한 헌재의 위헌 판결을 계기로 깨달아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에 절실하게 아쉬운 정치적 리더쉽이란 합의를 도출하는 능력을 갖는 리더쉽이라 믿는다.
불신과 반목, 대립과 갈등으로 우리 사회가 갈갈이 찢기고 있는 현실이 심히 우려스럽다. 한 국가의 몰락은 외국의 침략과 같은 외적인 폭력보다, 분열과 갈등 불신과 반목으로 심화되고 대립되는 내부의 무질서에 의하여 와해된다는 것을 온 국민이 상기하며, 서로 반대편에 대한 비난만을 일삼고 있는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때라 생각한다.
정당한 법은 그리고 적법절차를 준수하며 공정하게 운영되는 법의 원리는, 대립과 갈등으로 內訌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 합의의 기초를 제공하는 가장 기본적인 국가와 사회의 질서이다. 현 정권의 성패는 개혁의지를 구체화하는 새로운 사회질서를 성공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느냐로 판가름 날 것이고, 그것은 현 정권의 개혁입법이 국민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아닌,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합헌적인 정당한 법이란 전제 하에서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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