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한민국 헌법편이다.

2004-11-24 16:14:11

 

-개혁입법의 문제점

 

 

언제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국민(초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아버지에게,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라는 말을 수 없이 듣고 자랐다. 그리고 이 말을 제대로(?) 이해 하는데 30여 년이 걸린 셈이다.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란 <大學>의 처음 부분에 나오는 말이고,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한 삶의 자세에 관한 가르침이다. 대학은 삶과 사물을 이해하고 올바른 사고 방식과 삶의 전략에 대한 심오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

 

大學은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를 말하기 앞서,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대학의 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에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고,

<지극히 착한 데 머무는 데 있다> 고 시작한다.

머무를 데를 안 다음에야 정()하는 것이 있고,

정한 다음에야 고요할 수 있으며,

고요한 다음에야 편안할 수 있고

편안한 다음에야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한 다음에야 터득할 수 있다 말하고 있다.

 

에는 근본()과 지엽적인 것()이 있고, ()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니,

먼저하고 뒤에 할 바를 알면 에 가깝다 말하고 있다.

 

大學은 삶의 지혜의 근원을 <지극히 착한 데 머무르는 데에 있다> 말한다.

이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물의 본질이 이해되지 않고 일의 전 후 관계가 온전히 보여지지 않는다. 지극히 착한 데에 머문다는 것은, 마르크스식의 이데올르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의식이고, 실용주의적 관점이나 가치의 관점을 벗어난 가치중립적인 자유로운 의식 상태이다.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더함도 덜함도 없는 경지이며, 禪定에 들어 解脫한 경지를 지극히 착한 곳이라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大學은 첫 장에서 존재론과 인식론, 윤리학과 정치학을 포괄하며 뛰어넘는 심오한 테제를 설파한다.

 

지극히 착한 곳에 머물러, 사물의 이치가 탐구(格物)되어야, 삶의 본질이 이해되고(致知), 사물과 삶의 본질이 이해되어야 뜻이 정성스러워지고(誠意), 뜻이 정성스러워져야만 스스로 마음이 바르고(心正), 마음이 바른 뒤에야 스스로 덕이 닦이고(修身), 스스로 몸을 닦은 후에야 집안이 정돈되고(齊家), 집안이 다스려져야 나라가 다스려지고(治國),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야 천하가 평하게 된다(天下平)말하고 있다.

 

개혁이란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새롭게 하는 것은 지극히 착한 곳에 머무르게 하여, 막힌 것을 뚫고 맺힌 것을 풀어 사람들의 삶이 天理로 나아가게 하고, 사람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새로운 사회질서와 국가질서를 만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사회의 잘못된 질서는 힘 있는 자 들이 약한 자들을 억압하고, 있는 자들이 없는 자 들을 착취하며, 불의한 자들이 오히려 의로움을 주장하는 사람을 탄압하고 핍박해온 부끄러운 과거사를 살아 왔다. 개혁은 새로운 국가질서를 형성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국민을 억압하고 핍박했던 구질서를 부수는 것이 아닌 국민을 보호하고 행복한 삶을 가능하게 해 주는 건전한 사회질서를 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사회가 지닌 반민주성의 본질은 무엇일까? 국가권력이 국민을 억압하고, 있는 자가 없는 자를 억압하는 세상을 살아 왔다. 경제 성장의 그늘에는 수많은 노동자들과 소외 받고 악압 받은 자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개혁은 어떠한 것이 되어야 할까? 지금까지 강자의 위치에서 민중을 억압한 자들을 때려잡는 개혁이, 다수의 민중이 지배하는 국가질서를 만드는 것이 올바른 개혁인가? 이러한 한풀이 개혁이라면 그것은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엉터리 개혁이며 우리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잘못된 개혁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올바른 개혁이란, 힘있는 자가 부당하게 횡포를 부리지 못하게 하고, 성실한 노력이 정당하게 평가받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며, 기득권층의 기득권을 빼앗는 개혁이 아니라, 기득권층이 우리 모두의 공동의 번영을 위하여, 새로운 사회건설에 기꺼이 동참하는 개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의 개혁은 사회구조를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대립구조로, 강자와 약자로 구분하여, 다수의 약자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이름 하에, 강자를 응징한다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사회주의 혁명방식의 개혁은 성공할 수 없는 잘못된 개혁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강자와 약자, 자본가와 노동자로 구분하는 사회주의의 계급투쟁적 이분법으로 진행하는 개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이러한 방식의 개혁은 우리 사회를 불신과 반목 대립과 갈등을 증폭시키며 우리 모두를 파멸로 이끌어가는 길임을 직시해야 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강자인 남한과 약자인 북한을, 과거사 청산법은 강자인 친일 친미적 기득권층과 약자인 서민층을, 언론개혁법은 강자인 조중동과 약자인 여타의 중소 언론사를, 사학법은 강자인 재단이사와 약자인 교사 학생 학부모를 상정해 놓고 개혁을 진행한다.

 

이러한 사회주의적 개혁의 입장은 사회를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양분하여 이해한다. 약자는 우리이고 민중이며, 강자는 우리와 다른 그들이다. 사회적 모든 병폐는 강자로부터 생겨난다 주장한다. 예를 들면 노동에 대한 자본의 착취, 대기업 횡포에 대한 중소기업의 몰락, 학교 재단 이사의 전횡에 따른 교사의 자율권과 학생의 학습권의 위축, 언론사의 문제도 대규모 언론사와 사주의 부도덕한 행위에서 기인한다 주장한다.

 

강자에게는 적대적이면서, 민중에게는 매우 관대하고 일방적으로 옹호한다. 노동조합의 불법파업은 강자에 대한 약자의 지위향상을 위한 당연한 행동으로 치부한다. 고속도로를 점거한 농민의 범죄행위에 대하여서도 관대하다. 한반도에서 남한은 강자이고, 재벌 조,,동은 그들이고 적이며, 북한은 우리이고 동포이다.

 

사회주의적 개혁의 목표는 사회에서 기득권 세력을 없애는 것이 평등의 이념을 구현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수구세력을 제거하거나 적어도 약화시켜야 한다 주장한다. 약자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민중은 우리끼리 연대하여 뭉쳐야 한다 주장한다. 이러한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진보이며 역사발전이라 주장한다. 재벌, 사학재단, 극우보수 세력이 한국사회를 파탄의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 믿는다. 진보의 입장에서의 자유는 민중의 입장에서는 착취이며 생존을 위협하는 체제파괴라 믿는다.

 

보수반동이 더욱 준동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좌파지식인들은 무엇보다 언론개혁을 주장한다. 조중동이 신문시장의 70%를 차지하여, 좌파이념의 실현을 민중에 대한 계급의식화를 방해한다 생각한다. 2000년대의 한국 사회는 명백한 계급사회로, 상층은 계급의식적 투표를 하는데, 저소득층이나 저학력층에서 계급의식적 투표를 하지 않고 있다며 대중의식화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좌파, 진보적 신문이 구독자가 적은 것을 기존 신문의 판매망의 배타적 운영이나, 과도한 판촉비용에서 기인한다 주장한다. 신문시장 점유율에 대한 규제는 언론개혁의 중간단계로 보고 궁극적으로 소유구조를 바꾸어야 언론개혁이 완성된다 믿는다. 이러한 생각들이 전두환이나 노태우는 용서해도 조동을 용서 못하는 총리의 심정이 아닐까? 언론은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하고, 관련자 모두가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기존 언론사주의 경영권을 빼앗는 것이 개혁의 궁극적 목표라 주장하는 것이다. 어떤 기업인이 자신의 돈을 들여 신문사를 만들면 그 경영은 반드시 다른 사람이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지금 행하고자 하는 언론개혁의 목표이다.

 

헌법학을 전공했다는 열린우리당의 한 국회의원이 입법권이 어디에서 나오냐는 질문에 국민에게서 나온다 대답했다. 포퓰리즘적 사고에 젖어 입법이 헌법에 기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진행되는 4대 개혁입법의 문제가 무엇인가? 민중을 등에 업은 현 정권의 개혁은 현 집권 세력이 자신들의 권력을 확장하기 위한 엉터리 개혁이란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의 개혁이 엉터리인 이유는 적대감으로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데에 급급할 뿐, 진정 건전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개혁이 아닌 헌정질서와 법적안정성을 파괴하는 잘못된 개혁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개혁입법이라면, 입법권을 오남용되는 것을 방지하도록, 입법이 반드시 헌법에 羈束되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헌법정신이 온전히 구현되도록 해야 한다. 개혁은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어가고 진정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 참된 개혁이라면 사회를 작동하는 원칙이 확립되어 가는 개혁이어야 하고, 모두가 기꺼이 참여하는 개혁이어야 한다.

 

우리사회는 심각한 사회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문제적 요인에 대한 원인을 제거하면 개혁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 집권층의 잘못된 생각이다. 한 어린 아이가 있다고 하자. 온전하고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그 아이의 학습능력을 고려하지 않는 문제의 제기는 그 아이를 망칠 수 있다. 개혁의 성패 여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사회의 감당할 수 있는 문제해결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문제의 제기는 우리 모두를 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대통령이 사회를 분열시킨다면 그는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잘라 말하겠다. 우리 모두가 기꺼이 새로운 국가적 도약을 위한 개혁에 동참시키는 동기를 부여하는 리더쉽이 절실히 아쉽다.

 

참된 민주화 개혁이라면, 권력이 국민을 보호하고, 법은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평등의 이념을 내세워 약자옹호의 논리로 恣意적이고 전횡적인 권력을 정당화 하려는 현 정권의 개혁은 가짜의 개혁이다. 아무리 작은 권력이라도 권력의 恣意성을 극대화 하고 타인에 대한 자신의 威力을 극대화하려 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법률의 제재를 받지 않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타락하고 종국에는 국민의 정당한 권리를 짓밟는다. 순서를 알면 에 가깝다는 말을 생각하다가 요즈음 집권당의 몇 몇 인사들의 혈기방장한 태도로 할 말과 안할 말을 분간하지 못하고, 앞 뒤 분별을 못하는 작태가 개탄스럽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것은 대체적으로 볼 때 그 사회의 평균적인 윤리의식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윗사람은 제멋대로 아랫사람은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부패의 정도는 권력의 크기에 비례한다. 예나 지금이나 할 것 없이,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타락한 권력은 대통령이라는 생각이다. 사람이 행하는 정치는 결코 믿지 말라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이다. 헌정국가는 자유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이고, 헌정국가의 이념은 법치주의 이념을 실현함으로써 구체화된다. 법치주의의 최우선 과제는 통치권자의 권한의 오남용을 법률로 제제하는 데에 있다.

 

건강한 국가질서란 무엇일까? 제대로 된 개혁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힘있는 자를 때려잡는 개혁이란 가짜의 개혁이다. 개혁이란 부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사회질서를 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 당파적 이익에 집착하여서는 결단코 성공적인 개혁은 불가능하다. 앞서 大學의 언급처럼 지극히 착한 마음에 머무르며, 백성을 새롭게 하는 새로운 국가질서를 만드는 개혁이 가능하다 믿는다.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고, 다수의 약자의 편에서 민중의 편이라는 이름 하의 집단주의적 권력은 필연적으로 전횡적 폭정으로 전락한다.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를 무시하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다. 플라톤은 권력을 어리석음 없이 행사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며 이를 방지하는 것이 위대한 입법자의 의무라 말했다. 인간이 다스리는 정치는 저열한 정치이다. 보다 진화된 정치는 법과 원칙으로 다스린다. 제대로 된 리더쉽은 원칙을 중심으로 이끌려 지는 리더쉽이다. 자의적이고 전횡적 권력으로 헌법을 멋대로 유린한 박정희를 경멸한다. 똑 같은 이유로 김일성이나 김정일도 경멸하며, 이것이 포퓰리즘을 등에 업고 전횡적 권력을 꿈꾸며, 무늬만 민주주의 인 것을 민주주의라 착각하는 노대통령을 돌팔이 대통령이라 믿는 이유이다.

 

내가 이해하는 민주주의는 간단하고 명료하다. 법으로 국가권력의 횡포와 오남용을 통제하고, 법으로 국민의 자유롭고 건전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이다.

 

노빠도 딴빠도 못되는 나에게 사람들은 가끔 당신은 누구 편 이냐고 묻는다. 대다수 서민과 중산층 편을 말하는 정치인은 백이면 백 국민을 기만하며,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일한다. 나는 대한민국 헌법 편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신념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라 믿는다. 헌법정신은 정의와 자유의 이념을 가꾸어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살아 있는 한 정의는 무지와 투쟁한다. 합리적 이성은 언제나 정의 와 평화 우리 모두의 행복의 편에서 결단한다. 억압이 없는 한 진실은 스스로를 알린다. 정치가들의 말에 현혹되는 편가르기를 일삼으며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들의 무지와 싸울 것이다. 자신을 내세우는 정치인은 스스로 모자란 정치인이라 토로하는 것이다. 보다 진화되고 올바른 리더는 원칙으로, 스스로 그 원칙을 먼저 실천하여 감으로써 세상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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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길-포퓰리즘

2004-09-23 16:48:19

 

오늘을 사는 대다수 우리들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듣고 싶어한다. 자신과 신념이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배타적이고 거부적이다. 다른 사람들을 말 몇 마디로 판단해버린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가 상대방에게 얼마나 무례한 것인지에 대하여 인식조차 없다. 내가 객관적이고 자신이 아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신적 미숙의 표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사회는 문화적으로 성숙되지 못한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이다. 독단에 의한 오만과 편견, 자신이 선택하지 아니한 삶에 대한 무시,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삶의 태도는 사회지도층으로 올라갈수록 심하다.

 

이러한 삶의 행태들은 독재정치와 독재정치 하에서 살아야 했던 삶의 여건과 무관치 않다. 내 말을 추종하면 내편이고 내 말에 반대하면 적이라 여기는 것이 독재자의 지배방식이다. 독재자들은 반대자는 모조리 제거하는 방식으로 총화단결을 이룩했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독재자의 지배방식에 충실한 방식으로, 어떤 집단일 것 같으면 인사권자의 마음에 들도록 눈에 띄는 방식으로 줄을 서야 했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이제 우리는 어떠한 지배집단이나 정치집단의 의사에 추종할 것인가를 선택하게 되었다. 있는 자의 편에 설 것인가? 없는 자의 편에 것인가? 유능한 사람들의 편에 설 것인가? 도덕적인 사람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여당에 줄을 설 것인가 야당에 줄을 설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처럼 정치에 관심이 있을까? 이러한 비정상적 정치적 관심은 권력 만능 금전 만능의 사회적 분위기, 돈을 벌기 위해서는 관권이나 정치권력의 유착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우리 사회의 지역 간 세대 간 계층 간의 괴리는 더욱 심화되어왔다는 느낌이다. 민주화는 모든 문제의 책임을 사회의 책임으로 정치의 책임으로 돌려버리고, 개인의 사회적 책임을 무시해 버리며, 터무니없는 방종을 요구하는 타락한 지경에 이르렀다. 사회적 행동에서 자율적인 삶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부패한 제도와 부패한 제도 운영방식의 필연적인 귀결로 부패한 국민을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동기를 부여하는 자발적인 문화가 있는가? 대한민국에 자기창조적으로 자발적인 판단에 의하여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목적을 위하여 그릇된 수단이 정당화되고 용인되는 사회에 정의로운 삶은 발붙일 수 없다. 국민들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만이 정치발전이라 착각하고 서로 편을 가르며, 사실을 왜곡하여 상대방을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 하여 모함하고 모욕하는 사회에 미래가 있을까? 폭력이나 욕설은 정당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능력이 없거나 또는 정당한 방법의 의사전달이 좌절되었을 때 일어난다. 나만이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고집하는 독단적 사고 방식은 폭력을 정당화하려 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집단화되는 집단주의적 포퓰리즘은 건전한 민주주의 삶의 질서를 산산히 부수어 버리게 될 것이다. 있는 자에 대한 없는 자들의 질투와 열등감과 증오심과 적개심이 결부된 집단주의나, 패배적인 상황에 절망하고 비관하며 자신의 반대자에 대해 자신들의 의사에 대한 무제한의 폭행을 조장하는 또 다른 포퓰리즘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생존을위한 몸부림이니 이해해 달라며 자신들의 무지와 대책 없는 무능을 변명하고 싶을 것이다. 지금 보수 기득권층과 한나라당이 이 꼴로 허물어지고 있다. 노대통령은 대통령으로써 쓸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보수 기득권층을 때려 잡으려 한다.

 

이에 저항하여 보수기득층은 현 정권을 빨갱이로 몰아 부치고 노대통령을 하야시켜야 한다 생각한다. 그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대응을 한다. 박정희나 전두환은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온갖 악랄한 수단과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였었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정권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포퓰리즘을 이용했고, 의회권력을 장악했으니, 다수의 힘으로 법을 만들어 기득권층을 때려 잡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대통령의 권한 행사방식은 과거 모든 대통령이 그러했듯이 독재적이다. 물론 노대통령의 통치방식이 과거의 다른 대통령보다 더 독재적이라 비난할 근거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박정희를 종교처럼 떠받드는 박근혜씨가 노대통령의 이러한 통치방식에 대하여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국가보안법 폐지에 자신의 목을 걸겠다 했다. 전 한나라당 총재 이회창씨는 한나라당 국회의원 121명의 목을 함께 걸라 충고를 한다. 경솔하기 짝이 없다. 내가 박대표의 자질을 심각하게 문제 삼는 이유는 아버지인 박정희를 종교로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과 그녀는 이러한 태생적 한계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노대통령에게 국가정체성을 묻는 그들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정체성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지금은 경제가 어려우니 분란 일으키지 말고 경제를 살리자 말한다. 무슨 수로 경제를 살리는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업을 살려야 한다고 떠드는 것이 고작이다. 국론이 갈갈이 분열되었는데,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적대적인 관계로 대립하는데, 법도 원칙도 질서도 다 거덜났는데 무슨 수로 경제를 살릴 수 있단 말인가. 국보법 폐지에 대한 한나라당과 그녀의 대응은 북한의 태도에 변화가 없는데 국보법 폐지는 절대 안 된다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태도가 변하지 않았을까? 지난 5일 국보법 폐지문제가 나온 후, 통일관련 논문, 북한 관련 사이트, 김정일의 글과 김정일에 관한 관련 서적을 검토한 바 있다. 나의 판단으로는 북한의 태도는 변했다. 현 상태에서, 북한은 그리고 탁월한 전략가인 김정일은 남한에 대한 사회주의 폭력 혁명이나, 적화통일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쉽게 이야기하면 민노당이 의회 제1당이 되면, 대한민국은 김정일에게 넘어간다고 보면 된다. 자본주의 체제를 존속시키고 마치 중국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한 방식으로, 대한민국을 집어먹을 베짱이 있는 김정일이다. 이러한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을 통째로 말아 먹는건데 이건희 삼성회장에게 인민 영웅이라도 시켜주는 것이 그 무엇이 어려울까? 이러한 김정일의 전략이라면 국보법은 아예 필요가 없다. 국가보안법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킨다는 것이 웃기는 소리가 되어버린다. 그렇다고 김정일이 사회주의 혁명에 의한 대남적화를 포기한 것은 물론 아니다. 국보법 폐지를 놓고 여야 간에 그리고 보수와 진보 간에 머리 터지게 싸우면, 거덜나는 것은 대한민국이고, 깔깔대고 좋아할 사람은 김정일위원장 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문제를 타당성 여부를 가장 제대로 진단할 집단이 어디일까?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물론 아니다. 법원과 헌재는 헌법 위반과 법률적인 문제를 다룰 수 있을 뿐이다. 국정원이나 통일원이 가능할까? 국가보안법 폐지가 가져오는 국민들 간의 규범적 혼란을 이해하기에 부족하다.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방어의 의미에서 국가 안보의 체제를 수호한다는 차원에서 그래도 검찰이 비교적 온전히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주요 공안 사건을 다루는 검찰의 라인에는 서울 중앙지검에 공안 1,2부가 있고, 대검에 공안 1,2과가 있고, 수명의 공안연구관 공안기획관이 있고, 공안부장이 있다. 법무부에는 검찰 3과장이 있고 검찰국장이 있고 법무장관이 있다. 잘 조직되고 훈련된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집단이다. 이들이 국가보안법 폐지가 가져오는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영향 평가를 할 수 있을까? 국가보안법 폐지의 문제는 국민들 간의 대 북한관이나 규범상의 혼란 문제와 맞물려 군사, 외교 통일과 맞물려 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 문제를 가장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종합하고 판단할 사람은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노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의견이 제대로 된 것이고 올바른 것일까? 물론 깽판을 치시는 것이다. 나는 공산주의 이론과 혁명전략, 주체사상, 통일 외교 군사전략 법률 등에 대한 공부를 했고, 실무의 차원에서 청와대가 어떠한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개략적으로 이해한다.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이고 대한민국에서 최고 수준의 법 이론가임을 자부한다.

 

노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생각은 국가안보를 지극히 위협할 소지가 있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의 <냉전체제의 상징인 국보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법체계를 통해 대한민국이 결정적 우위에 서게 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되지 않을 헛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노대통령의 국보법 폐지의 의사 표명이 충분한 검토 없이 자의적이고 고작 정략적 판단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중차대한 현안에 대하여 쉽게 말해 법무장관과도 호흡을 맞추지 않았다.

 

문제는 여권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할지 어떠한 방식으로 개정 보안할지 아직은 모른다. 내가 확실하게 이해하는 것은 보수기득권층이 국보법폐지 결사반대 식으로 대응하며 노대통령 하야 같은 소리를 외쳐되면 그것은 보수층 스스로 무덤파는 일이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노대통령과 여권의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야권의 최선의 대응책은 그 문제점을 심도 있게 연구하여 국민에게 각성시키는 것이 최선일 뿐이다. 잘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의 약점을 방비하고 상대방의 강점에 대비한다. 스스로 갈고 닦으며 기다리면 기회가 오는 것이 세상 사는 이치이다. 양지만 바라보고 살아온 나약한 인간들이기에 실패를 극복할 줄 모르고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허우적대고 있다.

 

진정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지키려면 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체제가 북한의 체제보다 우수한지 이를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력이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은 이제 전혀 설득력이 없다. 북한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존속시키면서 대한민국에 민노당 또는 보다 주체사상에 충실한 민주적(?)정권이 집권하여 연방정부를 만들겠다는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통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임기5년 이다. 김정일은 죽을 때까지 왕이다. 미국은 대외정책에서 항상 불안정한 정권보다 독재정권 민주정권 할 것 없이 자국이익을 확실히 보장하는 정권을 지원한다. 대한민국이 포퓰리즘으로 난장판으로 흘러가면 미국은 당연히 대한민국을 버릴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님은 미국과 협상하여 미국의 이익을 보장해주고 대한민국을 말아먹을 궁리도 당연히 하고 계시다.

 

김정일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라는 요인의 무력화, 중립화, 단계적 배제에 의해 남한정권의 존재이유가 없어 지는 사태이다. 한국정권에는 민족적정당성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지탱해 온 것이 미국의 지원과 국가보안법인데, 미국이라는 요인이 배제됨과 동시에 국가보안법은 그 존재이유가 없어 진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의 페지 조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 김정일 통일전략의 중요한 목표이다.

 

대한민국엔 체제가 없고 포퓰리즘으로 돌아가는 나라이다. 제목은 참여정부이지만 4.15 총선 이후, 부활하신 노대통령의 영도 하에 온 국민이 노사모되기를 염원하는 대통령비서실장이었던 문희상 의원의 말처럼 포퓰리즘의 승리로 이룩한 노대통령의 독재정치 시대가 막을 연 것이다. 대통령 마음대로 법을 만들고 없애면 독재정치이다. 민주화 이 후 대통령은 멋대로 국가기관을 만들었었다. 그리하여 고비용 저효율의 거지 같은 국가시스템이 되어버린 것이 지금 우리의 현 주소이다. 북한은 대한민국을 체제가 없는 미국의 괴뢰정부라고 마치 옛날 일본의 괴뢰정부인 만주국과 비교한다. 포퓰리즘이 확산되고, 김용옥이처럼 민중의 함성이 헌법이고, 대한민국의 헌법기관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설쳐대는 인간이 들어난다면, 대한민국이 과연 얼마나 버티어 낼 수 있을까?

 

기득권층은 노대통령을 어리석고 모자란 사람으로 매도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노대통령은 이제껏 과거 그 어느 대통령보다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하는데 있어 가장 성공적으로 정국을 이끌어 왔다. 그야말로 수구꼴통들은 거덜나게 깨지고서도 아직도 노대통령을 무시하고 싶어 어쩔 줄 모른다. 우월감과 열등감과 패배주의가 뒤범벅되어 추태를 부린다. 물론 노대통령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 자신의 권력기반의 강화를 위하여 사회주의 계급투쟁 또는 북한의 인민해방 전략 전술과 궤를 같이하는 방법으로 정권기반을 강화해 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권 기반을 강화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우리 사회를 있는 자와 없는 자로 그리고 기득권 층의 비리의 폭로 위주 방식으로 세대 간의 갈등을 증폭시켰다. 이것이 국가의 안보와 노대통령에게 치명적인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해칠 수 있다. 까닥 잘못하면 온 나라가 폭삭 망할 수도 있다. 물론 만에 하나 지금 겪고 있는 이러한 진통이 획기적 역사적 도약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기창조적으로 생각할 줄 모르고, 미국과 서구에대한 수박 겉핧기 식의 흉내만이 능사인 보수 기득권집단의 패배주의에 젖은 호들갑처럼 대한민국이 금방 빨갱이 세상으로 거덜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고 분명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노대통령의 개혁엔 치명적 취약점이 있다. 개혁은 개혁으로 인한 고통을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비젼으로 국민이 기꺼이 동참하는 것이어야 성공한다. 개혁과 진보는 체제동일성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자기동일성을 지키지 못하면 개혁하다 망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구 소련은 세계최고 수준의 과학기술과 최고 수준의 문화가 있었고, 핵무기가 25천개 이상 부유하고 있었던 초강국이었다. 미국 CIA는 고르바쵸프가 집권할 당시 1975년부터 1985년까지 10년 간 소련은 평균 2.1%의 경제성장을 했다고 추정했었다. 80년 중반 소련은 더욱 경제적 성공을 이룩했는데, 833.3%, 86년에는 4.1%의 경제성장률을 보였었다. 어디에도 붕괴의 조짐은 없었다. 고르바쵸프의 개방정책이 화근이었다. 폐쇄사회에 균열이 생기면, 고르바쵸프에 의해서 소련이 붕괴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군중에 의해 구체제는 해체되었다. 인민의 자발적 협조 없이는 구체제는 붕괴된다. 그리고 구체제로의 회귀란 불가능하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역사의 진실이다.

 

한나라당이 생각하는 정치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도 없이 현 국가의 상황에 대한 온전한 상황인식 없이, 때려부수는 것만이 능사인 노대통령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 - 혼자 망하는 것은 괜찮지만 온 국민이 다 함께 쫄딱 망한다는 것을 염려해야 할 것이다. 헌법정신이 내 마음이라 말했었다. 하지만 헌법을 수호하고 헌법이념을 실천할 대통령이 헌법 위반을 밥 먹듯 해온 사실을 망각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박근혜같은 인사를 내세워 과거회귀를 꿈꾸는 한나라당은 역사적으로 마땅히 도태된다. 지금 20대의 한나라당 지지도는 17.8%대이고 민노당의 지지는 29.5%이다.

이것을 뒤집을 대책이 한나라당에 없다. 나약하고 무능한 정치인은 도태되어야 한다. 노대통령의 독주를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면 아는 것 없고 무능한 박근혜씨부터 제거해야 우리의 앞날이 있다. 노대통령이 들개라면 박근혜는 병아리 수준이고 김정일 위원장은 거의 호랑이에 가깝다. 밑천 뻔한 경제타령하고 노대통령에 딴지 거는 것이 전부인 한나라당에게 비젼이 있는가? 박근혜씨의 머리 속에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비슷한 그림이라도 있을까? 박근혜의 밑천은 박정희 향수에서 되살아난 퇴행적인 저질 포퓰리즘에서 기인한 것이다. 노대통령 탄핵국면에서 보수층이 완전히 거덜나게 될 것 같아, 억지 춘향이로 갖다 밀어준 박근혜이다. 노대통령이 포퓰리즘으로 재미를 보니, 노대통령 뒤쫓아 못된 짓을 배워 색깔론으로 국민을 선동하여 위기를 조장하고 노빠들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맞불 놓아 싸움질 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지키는 구국의 결단이라며 자신 무덤파는 줄 모르고 전의를 불사르고 있다. 정치인이 무식하면 국민에 대한 죄이다.

 

야권과 보수 기득권층의 노대통령의 존재를 부정하고 하야를 촉구하는 노력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까? 당연한 결과로 국민들에게 체제부정적인 무정부주의(아나키즘) 적 정서를 조장하고, 보수기득권층 스스로를 여권의 상징조작 전략에 휘말리는 계기를 만들어주게 된다. 박대표 국보법 사수발언에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급상승했었다. 박정희 향수를 부추키어 밑천없는 박근혜 대표를 띄우는 포퓰리즘에 하나 더 보태 색깔론으로 국가 위기감 고조시키고 현 정권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을 조장하는 선동적 포퓰리즘으로 공략하면 누가 좋아할까? 이야말로 한나라당의 절묘한 자살골이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김정일 위원장은 표정관리하며 대한민국 거저 주어먹을 궁리를 하실 것이다.

 

포퓰리즘은 집단주의적 국민들의 의식에 대하여, 정치권의 자신들의 권력강화를 위하여, 갖가지방식의 선전 선동 책략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문제적 현실의 해결을 외면한 채, 문제적 상황을 왜곡하고 호도하며, 문제점을 부풀리어 위기감을 고조시켜 자신의 반대세력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을 부추긴다.

 

미국의 뛰어난 정치평론가였던 리프만(Walter Lippmann)은 포퓰리즘의 위험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그들의 행동은 너무나 과격하고 파괴적이고 반동적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가슴은 찢기고, 마음은 분열되었으며, 그들에게는 불가능한 선택들만이 제공되어 있다.> 반항하면 반항하는 사람의 마음은 반항하는 대상의 욕망에 종속된다. 노대통령이 포퓰리즘으로 의회를 장악했다. 이를 흉내 내어 국보법 폐지에 대해 색깔론으로 국가 위기를 조장하고 현 정권을 몰아 부치면 먼저 거덜나는 것은 한나라당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그리고 헛다리 짚은 국가안보를 명분 삼아, 국가보안법의 피해자가 즐비한 국보법 폐지반대를 시민운동을 버리겠단다. 민주주의가 뭔지 제대로 모르는 파시스트 잔당인 한나라당과 박대표를 위해 한 수 가르쳐 주겠다.

 

데모크라시(democracy)는 그리이스 시대 이 후, 민중에 의한 정부를 의미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실재하는 정치체제가 아닌 한낱 문학적 낱말이었을 뿐이다. 민주주의가 오늘날 쓰이는 의미로 쓰여지게 된 것은 미국 및 프랑스 혁명 때에 이르러서야 일반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위클리(Ernest Weekley,1865~1954;영국의 어원학자, 언어학자)는 그의 저서 고대어와 현대어(Word Ancient and Modern)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에 이르러서야 데모크라시는 한낱 문학적 낱말이기를 중단하고 정치적 어휘의 일부가 되었다.

 

18세기말 이전에는 대부분의 使用例에서 민주주의(democracy)는 좋지 않게 쓰여졌었다. 쟈코방당의 과격주의(Jacobinism)나 폭도정치(mob-rule)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쓰여져 왔었다. 민주주의라는 말과 19세기 초의 민주주의자(democrat)란 보통 위험하고 파괴적인 폭동의 선동자로 생각되었다. 오늘날 말하는 민주주의는 법치국가이념과 헌정국가를 선언한 미국 독립선언, 프랑스인권선언에서부터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 이르며 발전해 온 헌정국가와 함께 발전되고 확립된 것이다. 법치주의의 근본이념은 법에 의한 개인의 삶의 규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법에 의한 국가권력의 제재에 있고, 법은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하여 존립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적 헌정국가는 정의와 자유 실현의 전제조건이고, 헌법에 기초한 헌정 국가 없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자유민주주의 핵심 요체는 국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헌법에 있고, 모든 정치는 제도를 다루는 문제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바란다.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에서 참여정부라는 말 자체가 가짜 자유민주주의의 표식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기대한다.

 

북한의 대남전략의 핵심은 반미 자주화와 반파쇼 민주화이다. 이때 말하는 민주화가 다름 아닌 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으로 대한민국을 무정부상태로 만들고, 중심을 잃어버린 남한을 주체조선에 흡수하려 한다. 김일성은 민족해방전술과 전략과 전술에서 혁명투쟁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인민대중이 동원되어야 혁명투쟁에서승리할 수 있다. 운동의 지도자는 응당 인민 속으로 들어가 인민대중을 각성시킴으로써 대중 자신이 주인이 되어 혁명투쟁을 전개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일은 민족해방을 위한 대중 의식화를 강조하며, 이러한 의식화 작업은 식민사회의 본질과 제국주의의 침략적 약탈적 본성과 사대 매국노들의 반민족적 죄상을 등을 인식시키는 것으로 출발하여 사대매국세력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을 형성해야 한다 말하고 있다. 현 정권의 과거사 청산은 북한 측의 대남전략에 의한 사대 매국노의 반민족죄상을 들추어내는 것과 무관치 않다.

 

북한의 대남전략의 최우선 과제는 <국가보안법 폐지><미군철수>이다. 현 정권이 행하는 과거사 청산과 국가보안법 폐지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민주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로 만들 수 있다. 나는 내 개인적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말하는 노대통령의 발언이 부적절한 것으로 여긴다. 노대통령과 현 정권은 과거사 청산과 국가보안법 페지를 말하며,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 확립을 위한 그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적 헌정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통치권자의 권력남용을 막기 위해, 권력분립의 헌정질서를 확고히 하고,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법률의 제약을 받아야 하며, 무엇보다 법률의 제정이나 개정 폐지 등이 엄격하게 헌법에 羈束되어야 하며, 법관의 재판이 법률에 기속되어야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평가할 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타락한 권력은 대통령과 법관이다. 포퓰리즘으로 난장판이 되어버린 우리사회의 질서를 파괴하고 지키지 못한 책임은 그 누구보다 대통령과 법관에게 있다.

 

포퓰리즘을 대한민국 땅에서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아니 된다. 포퓰리즘은 파시즘이나 공산당 독재보다 훨씬 위험하고 해악하다. 공산국가에도 헌법이 있다. 민중의 함성이 헌법이고, 민중의 뜻이 용왕님의 뜻이라는 포퓰리즘 정치는 그야말로 제멋대로 굴러가는 개판의 정치이다. 자신들의 정략적 의도에 의해 국민을 선동한다. 공포를 조장하고 증오심과 적개심을 자극한다. 노대통령이 갈갈이 국론을 찢어 재미 본 것 같으니, 한나라당이 이를 따라서 한다. 이제, 빨갱이 사냥을 하겠다고 악을 쓰며 되지 않을 구국의 결단을 말한다. 그야말로 나라가 망할 꼴이 되어간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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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宗

2004-08-24 14:48:34

 

1367(공민왕 16)~1422(세종 4).

 

조선의 제3대 왕(1401~18 재위).

 

 

조선의 제3대 임금 태종의 이름은 방원(芳遠). 자는 유덕(遺德). 아버지는 태조 이성계(李成桂)이며, 어머니는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韓氏)이다. 비는 원경왕후(元敬王后)로 민제(閔齊)의 딸이다. 태조의 아들들이 대개 무인으로 성장했지만 이방원은 무예나 격구보다는 학문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성균관에서 수학하고 1383(우왕 9)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392(공양왕 4) 3월 이성계의 낙마사건을 계기로 정몽주(鄭夢周)를 중심으로 한 고려의 중신들은 이성계파의 인물들을 유배시키고, 그간의 개혁법령을 폐지하는 등 반격을 시도했다. 이때 수하를 동원하여 정몽주를 살해함으로써 대세를 만회했으며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정도전(鄭道傳)조준(趙浚) 일파의 견제로 조선 건국 후 개국공신에도 들지 못했다. 정도전과 조준은 신진 사류 중에서도 급진적인 개혁을 추구한 인물로 이들의 정책은 이전의 권문세가나 이색을 중심으로 한 온건파의 불만을 야기했다. 이러한 때에 강비(康妃) 소생의 어린 방석(芳碩)이 세자로 책봉되고, 자신의 세력기반인 사병마저 혁파될 상황에 처하자 정변을 일으켜 정도전남은(南誾) 등을 제거하고 정치적 실권을 장악했다. 이후 정종을 즉위시키고 정사공신 1등이 되었으며 개국공신에도 추록되었다. 1400(정종 2) 동복형제인 방간(芳幹)이 주동이 된 제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고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1월에 정종이 양위의 형식으로 물러나자 왕위에 올랐다.

 

태종은 즉위 초반에는 구세력과 공신, 온건개혁파를 등용하고, 안렴사제 복구 등 복고적인 정책을 집행하기도 했으나 곧이어 하륜과 함께 이색 계열의 인물을 중용하여 계속 개혁을 추진했다. 그리하여 태종의 치세에 국가체제 전반에 걸쳐 남아 있던 고려의 유제들은 대부분 새로운 체제로 대체되었다. 우선 중앙행정기구의 개혁에 착수하여 1401(태종 1) 문하부를 철폐하고, 사평부(司平府)승추부(承樞府)3(三司)상서사(尙瑞司)와 같은 별도의 재정인사 기구를 폐지하거나 축소하여 인사는 이조와 병조, 재정은 호조, 군정은 병조로 귀속시키는 등 서무를 의정부와 그 아래의 6조로 통합했으며, 속아문제도(屬衙門制度)를 실시하여 각종 관아를 모두 6조 휘하에 소속시켰다. 또 재상권을 약화시키기 위해 6조직계제(六曹直啓制)를 시행하고, 사간원을 독립시켰다. 관리의 인사제도는 태조대에 이어 계속 정비했으며 특히 서리출신의 관리등용을 더욱 억제했다. 지방제도 정비에서는 군현통폐합과 특수촌락임내(任內)의 혁파를 계속하고, 경기좌우도를 통합하여 경기도로 했으며, 양계지역의 장관도 도순문사(都巡問使)에서 도관찰사(都觀察使)로 바꾸어 도의 장관을 통일시켰다. 또한 행정체제의 혼돈을 방지하기 위해 지명에 붙은 주()자를 모두 유사한 글자로 바꾸었으며, 감무(監務)도 현감으로 바꾸어 수령의 명칭에 일관성을 기하는 한편 수령의 임무와 고과규정을 정비했다.

 

태종은 군사제도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 사병을 완전히 혁파하고 군정체제를 정비하여 왕을 발령자로 하고 병조를 군정기관으로 하는 조선 군제의 전통을 수립했다. 지방군도 강화하여 전국의 영진군(營鎭軍)과 수성군(守城軍)을 정비했으며, 수군을 증설하고 죽은 자에 대한 복호, 완휼규정을 마련했다. 병선 건조와 개조에도 힘을 기울여 거북선을 만들어 실험하기도 했다. 또 양천불명자를 사재감(司宰監)의 수군으로 소속시키고 나중에 이들을 보충군으로 재편했으며, 양반유생노비 등을 망라하는 잡색군(雜色軍)을 조직하여 총동원체제를 이루었다. 이렇게 정비된 군제를 바탕으로 1418년에는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 섬[對馬島]원정을 단행했다. 한편 1405년부터 전국의 토지를 다시 양전(量田)하여 120만 결의 토지를 확보했다. 또 사전(私田)에 대한 국가의 지배를 강화하여 공신전에도 1/10의 세를 내게 했으며, 공신전의 전수를 제한하고 수신전휼양전의 액수를 감했다. 그밖에 사전의 하삼도(下三道) 이급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전을 군자전으로 이속시켜 사전액수의 감소를 꾀했다. 한편 재정절감을 위해 불필요한 관원을 도태시키고 검교직을 폐지했으며 저화 통용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여러 가지 진흥책을 시행했다. 서울의 시전제도도 정비하고 상공세(商工稅)공랑세(公廊稅) 등 세제를 마련했다. 또한 곡식의 보존을 위해 전국의 창고제도와 보관규정을 마련하고, 조운(漕運)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한때 육운(陸運)을 장려하기도 했다.

 

사회정책으로는 호적과 군적을 정비하고 호패법과 인보법을 제정했으며 양천불명자, 양천교혼(良賤交婚) 소생 등을 보충군으로 편입시켰다. 그러나 적서의 구분은 더욱 엄격히 하여 서얼차대와 한품서용(限品敍用) 규정을 마련했다. 노비 문제는 태종조에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였다. 태종은 한때 1인당 소유노비수를 제한하는 시책까지 고려했으나 이는 시행하지 못하고, 1413년에 노비중분법(奴婢中分法)을 시행하여 오랜 노비소송을 종결시켰다. 한편 유교적 사회질서의 정착을 위해 가례를 보급하고 군현의 음사(淫祀) 등 비유교적 풍습을 이사(里社)로 대체했으며 문묘를 중건하고 홍무예제 洪武禮制를 준용하여 예제와 조관복제(朝冠服制)를 정비했다. 반면 억불책을 강화하여 1406년 사원혁파를 단행하고 이로써 얻어진 노비와 전토를 국고에 환속시켰다. 1417년에는 서운관(書雲觀)에 소장된 각종 비기도참서를 소각했다.

 

교육문화 방면에서는 우선 권근을 책임자로 임명하여 성균관과 5부학당(五部學堂)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세자도 성균관에 입학하게 함으로써 성균관의 위상을 높였다. 또한 과거 고강법(考講法)을 사장을 중시하는 제술로 바꾸고, 고려 이래 폐단이던 좌주문생제(座主門生制)를 혁파했다. 1403년 주자소를 설치하여 계미자(癸未字)를 주조했으며 1413년 즉위 이후의 개혁사업을 총괄하여 경제육전을 재편찬, 원집상절 元集詳節속집상절 續集詳節2권을 완성했다. 1414년에는 정도전이 편찬한 고려사를 하륜을 시켜 개찬하게 했으며, 권근하륜에게 삼국사를 편찬하게 했다.

 

태종은 통찰력이 뛰어나고 예리한 인물이었다. 정사를 의논할 때 대신들이 형식적인 답변을 하거나 다른 뜻을 품은 우회적인 발언을 하면 바로 정곡을 찔러 무안을 주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탁월한 것은 정치력과 결단력이었다. 그는 여러 정치세력과 신하들의 입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활용했다. 문제를 판단하는 데는 명분이나 인연, 과거의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적으로 생각하며 신속하게 결단을 내리는 능력이 있었다. 태조의 배향공신을 책정할 때 그때까지 역적으로 규정되어 있던 정도전과 남은을 선발하게 했으며 자신에게 항거한 죄로 유배시켰던 황희(黃喜)를 세종에게 추천하여 중용하게 했다. 또한 장인 민제의 가문이 외척으로 성장하면서 이들이 양녕대군을 지지하고 그 주위에 수구파가 결집하자 장인과 처남들을 과감하게 제거했으며 세종에게 양위한 후에도 세종의 장인 심온(沈溫)을 병권남용의 죄를 들어 전격적으로 처형했다. 1418년 왕세자 제()를 폐하고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하여 2개월 후 선위했다. 그러나 선위한 후에도 군정과 중요한 정사는 직접 처리하면서 세종의 치세를 위한 토대를 닦았다. 세종대의 흥륭도 실은 태종의 업적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시호는 공정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恭定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이며, 묘호는 태종이다. 능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헌릉(獻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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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의 역할과 야당의 대응

2004-08-24 14:36:27

 

노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참모들에게 "나는 세종이 되고 싶었는데 태종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보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훌륭한 정치 지도자의 3대 요건은 역사의식과 권력 장악 능력, 살림살이 솜씨"라며 경제 활성화와 역사 정리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소득 1만달러 시대의 분기점을 넘어선 지금 2만달러 선진시대에 대비한 역사 정리로 질적 업그레이드의 사회적 토대를 구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태종 이방원은 조선의 개국공신이며, 조선 초 왕권을 확립하고, 원대한 국기의 비젼을 가지고 제도 개혁을 통한 국가체제를 정비하여 5백년 왕조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세종조의 빛나는 업적을 이룰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어떤 인물에 대한 평가는 그가 어떠한 업적을 이룩하였나로 평가된다. 하지만 그러한 업적이 있기까지는 그 업적을 이룩하기 위한 남다르고 뛰어난 삶의 과정이 없었다면 그러한 업적을 이룩할 수 없다. 조선 초 왕권을 확립한 바탕 위에, 위대한 문화적 업적을 이룬 세종 조의 영광은 태종의 존재를 인정하지 아니하고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노대통령의, 자신이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새로운 삶의 질적 향상과 도약을 위하여 태종의 역할을 하겠다는 발언에 대하여, 잘못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질적으로 업그래이드 된 사회적 토대를 만들겠다는 것에 대하여, 태종의 업적을 제대로 이해하고 새로운 국가의 초석을 다지는 역할을 하겠다는 대통령으로써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면 백 번 찬성할 일이다.

 

하지만 노대통령이 말하는 훌륭한 정치지도자의 덕목만으로 태종과 같은 업적을 이룩할 수 없다. 노대통령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질적으로 업그래이드된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젼이 없다. 그리고 질적으로 업그래이드된 보다 진화된 방식의 정치행태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8.15 경축사 이후 태종의 역할을 말하는 노대통령의 발언은, 전후 사정을 미루어 짐작할 때, 야당과 기득권층에 대한 선전포고로 들린다. 노대통령 또한 과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한결같이 그리했던 것처럼 재임 중 자신의 권력의 극대화를 위하여 개혁을 진행할 것임은 쉽사리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구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새로운 국가질서의 성공적 수립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 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자만이 새로운 질서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준 진실이다. 구 질서에 대한 파괴가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전제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질서에 대한 비젼과 설계도 없는 파괴라면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공멸의 길이 될 수 있다. 마르크스는 <공산당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존재해온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천민, 영주와 농노, 한 마디로 말하여 압제자와 피압제자가 끊임없이 상호 대립하는 가운데 대치한 채로, 어떤 때에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히 중단없는 싸움을 수행해 왔다. 이 싸움은 매번 사회 전체의 혁명적 재구성으로 끝나거나 또는 상쟁하는 계급의 공동의 파멸로 종말을 고하였다>

 

과거사청산이 옳고 그르냐를 따질 시기는 이미 지나버린 것 같다. 과거사의 청산이 학자에게 맡겨야 하고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말아야 한다고 백 날을 떠들어 보았자 되지 않을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말 것이다. 칼 자루는 이미 현 정권에 넘어가버렸으니 말이다. 현 정권의 개혁이 다음의 두 가지 문제적 상황을 피해갈 수 있다면, 개혁은 성공할 수 있다. 개혁으로 인하여 경제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어 민심이 이반되거나, 가시적이고 실현가능한 새로운 국가 비젼을 제시하지 못한 채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국론의 분열을 해소하지 못하고 대결 국면이 지속된다면, 현 정권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구 소련의 붕괴가 고르바쵸프의 준비가 안된 당위성에 의한 개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현 정권은 구체적이고 가시적 새로운 국가 비젼과 실천방안(Action Agenda)의 제시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현 정권의 과거사 청산에 대응하는 야당과 보수 기득권층의 대응이란 그야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경제가 살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강성노조를 때려잡고 기업활동을 최대한 지원하는 길이 나라가 사는 길이라 낡고 낡아 빠진 경제성장의 논리로 현 정권을 매도하는 데에 급급할 뿐이다. 현 정권의 정체성을 의심하고 내심으로 현 정권을 친북 좌경 세력으로 규정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과거사의청산 문제가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절망적인 푸념만을 늘어놓고 있다.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우월하다고 믿고 있는 논리로 현 정권의 문제점을 드러내려 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과거의 책임은 없다고, 우리가 지금껏 이만큼 살게 된 것이 자신들의 공이라 강변한다. 불행하게도 이를 동조할 국민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기득권층의 논리로는 4.15총선의 결과가 설명되지 않는다. 노대통령이 엉터리고 문제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있는 사람이 없는 삶을 업수이 여기고 함부로 대하며 횡포를 일삼았던 독재정치의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기득권층의 기대만큼 많지 않다.

 

노대통령의 문제점과 지금의 혼란한 국가 상황을 우려하며 박정희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개발독재 하에서 특혜적 특권을 누렸던 기득권층에서, 그리고 노대통령의 개혁에 반대하는 보수 언론에서 박정희 되살리기를 하는 것은 그야말로 되지 않을 바보짓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군사독재를 성공한 정치로 아무리 미화시켜 본 들, 스스로 정권유지가 감당이 안되어 무너진 군사독재가 또다시 가능할 수 있을까? 현 정권을 사회주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응하여 박정희 향수를 부추기고 이를 이용하여 박근혜대표를 노대통령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싶은 모양이다. 이것이 될 일일까? 가능하면 되도록 빨리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강성논조를 때려잡아야 경제가 산다고 말한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부추켜 박근혜 띄우기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국가관은 무엇일까? 한나라당이 박근혜를 중심으로 결속하려는 집단의 기대하는 정치 이념이 있기나 한가? 단 한가지의 논리만 있다. 경제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그리고 경제를 살리기 위하여 기업의 활동을 지원해야 하고 기업의 활동을 위축하는 그 어떠한 것도 제거해야 한다는 파시즘의 논리 이외에 그 아무것도 없다. 박근혜대표가, 기존의 기득권 세력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이념이 있는가? 박정희를 종교로 생각하는 그녀의 머리 속에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있을 턱이 없다. 박정희의 지배방식이란, 경제성장이란 국가목표를 설정해 놓고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사람은 강압적으로 탄압하고 제거하는 독재정치의 방식이다. 결과와 업적이 수단을 정당화 시키고, 비판과 이의 제기를 거부하는 저열하고 조잡한 지배방식이었다.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박정희를 성공한 대통령으로 되살리겠다면 그야말로 앞 뒤가 맞지 않는 어불성설이 될 것이다. 군사독재는 지속적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저열한 지배방식이기에 붕괴된 것이다.

 

파시즘의 지도자들은 어떠한 철학도 신념체계도 없다. 그들의 신념이란 논리적 사상체계를 지니지 못하고, 그들의 주장은 그 때 그 때 마다 상황의 논리에 이끌려 기회주의적으로 배합한다. 그들의 주장은 진리나 논리에 의해서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호소라는 견지에서 선택되었고, 때로는 지적 정직성을 비웃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들은 권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이해관계가 다른 이질적 집단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어떤 공통의 목적이나 원리 원칙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된 증오심과 공포에 호소 한다.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약속하는 정치가의 책략에 의하여 불안정상태로 결합 되어있다. (현대정치사상사2, 조지세이빈, 토마스 솔슨: 한길사)

 

박정희 향수를 자극하여, 박근혜의 지지기반을 견고히 하려는 의도가 무엇일까? 현 정권을 비판하는 보수언론은 좌경 세력에 대한 증오심에 호소하고, 경제위기감을 말하며 공포에 호소하고 있다. 파시즘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그야말로 가당치 않을 작태라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현 정권을 비판하는 관점에,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있는가? 현 정권에게 국가의 정체성을 질문하는 박근혜 대표의 머리 속에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을까? 당연히 없다.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대한 이해를 결하고 있기에, 시도 때도 없이, 유일한 레파토리인 경제타령만을 넋두리처럼 늘어 놓고 있는 것이다. 모든 자본주의 국가가 발전과정에서 공황도 겪었고 좌파정권도 한결같이 겪을 수 밖에 없었다. 경제성장의 논리를 백날 악을 쓰고 외쳐본들, 좌파성향이 확산된 작금의 우리의 현실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는 길이란, 그 무엇보다 먼저 자유민주주의 국가질서를 확립하는 데에 있다.

 

보다 복잡해지고 보다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목소리와 권리의 주장이 상충하는 지금의 우리 사회를 박정희방식으로 지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박근혜는 아니다. 그야말로 기구한 젊은 시절의 어려움을 겪고 오늘에 야당 대표에 이른 그녀의 개인적 삶에 대하여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우리의 내일을 열어갈 지도자로써 박근혜는 결코 아니다. 아버지를 존경하는 착한 딸이기에, 아버지가 그녀의 삶을 이끌어온 종교이었기 더욱 그녀는 아니다. 역사는 돌이킬 수 없다. 무차별적인 현 정권에 대응하는 야당의 생존전략을 위해서도 박근혜는 결코 아니다.

 

우리 나라의 고급관료들의 머리 속에 자유민주주의 철학이 몇 페이지의 분량이라도 들어 있는 줄 아는가? 유감스럽게도 철학이 있는 사람은 관리 노릇을 하지 않는다. 고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신념이 없어지고, 줄 서는 데에 눈치가 발달하여야 출세하는 것이 엄연한 우리의 공직사회의 현실이다. 노대통령을 반대하는 보수 기득권층에 이념이란 것은 없다. 줄 잘 서서 특혜적 권한을 향유했던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 자신의 반대자들을 이해하려고 수용하려는 자세는 갖추지 못한 채, 자신들이 오늘이 있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의 있었다는 사실은 잃어버린 채, 강성노조 때려잡으면 경제가 산다는, 나라가 살려면 경제가 살아야 한다 주장하는, 조잡하고 어설픈 주장으로 현실적으로 되지 않을 국가경영을 하고 있을 뿐이다.

 

 

보수주의란 어떠한 이름을 가져다 붙여도 무조건 바꾸지 말자는 사람들이라 말했던 노대통령의 주장이 일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우리의 기득권층 그리고 우리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스스로 자신을 개발하지 아니하고 공부하지 아니하며, 급변하는 국제적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만한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불공정과 특권에 집착하고,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고 거드름을 피우며, 사회통합을 이끄는 지도층으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해오지 못했었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들의 잘못과 문제점을 반성하기 보다는 변명과 자기 합리화에 급급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모두 화해하고 협력하는 성숙하고 발전된 사회를 위하여 그들이 기여한 일이 무엇이 있나를 묻고 싶다. 그들의 대답이 궁색한 것을 안다. 기업의 덩치가 커질수록 기업존립을 유지하기 어렵고, 권력이 커질수록 지위가 높을수록 경쟁이 치열하고 윗사람 눈치보기 바쁘고 자리 보존하기 어렵다고 변명을 늘어 놓을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과 자신들의 영달만을 위해 살았지, 그들의 지위와 부에 걸 맞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성해야 한다. 우리 모두의 공동의 번영을 위해 지도층의 입장에서 해야할 일을 제대로 해왔는가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

 

사회 지도층의 이러한 천민의식 때문에, 그리고 사회지도층이 갖추어야 할 사회적 책임의 부재가, 오늘 우리의 사회가 이처럼 분열되고 갈기 갈기 찢겨진 원인이라는 데에 대한 통렬한 자기 반성이 요구된다. 보수적 기득권층의 강자에 빌붙어 개인의 영달만을 꾀했던, 이러한 사회적 무책임과 돈과 권력만이 전부이며, 인간을 경시해온 풍조가 오늘의 우리 사회의 갈등의 근원적 뿌리라는 반성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개인의 하나의 행위는 삶의 총체성과 연관지어 이해될 때 온전히 균형감각을 가지고 평가된다. 삶의 원칙은 개별적 행위를 비판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삶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밝혀내어 올바른 삶의 방식에 우리의 관심과 노력을 경주하도록 하게 만든다. 이러한 비판적 이해와 반성적 성찰을 통하여 우리는 삶에 대한 보다 균형 잡힌 이해를 가능하게 하고 이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들의 삶을 보다 성공적인 것으로 가꾸어갈 수 있다.

 

현 정권이 자신들의 권력의 기반을 강화하고 권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하는 것은 여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현 정권이 의도하는 개혁이 성공하려면 그리하여 노대통령이, 舊習舊制度 왕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훈구세력을 타파하고 새로운 국가질서의 초석을 다지고 세종 조의 번영을 준비했던 태종과 같은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국가정체성과 비젼에 대한 제시가 전제되어야 한다. 문제적 현실의 타개라는 당위성만을 앞세워,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실행 방법을 갖지 못한 새로운 국가의 건설이란 한낱 공염불로 끝나고 말 것이다.

 

한나라당에 대하여 묻고 싶다. 노대통령의 개혁이 무모하게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려면 무엇을 준비하여야 하는가? 만약 잘못될 수 있는 노대통령의 개혁에 대비하여 우리의 다음을 책임질 지도자는 어떠해야 하는가?

 

현 정권의 이러한 공략에 대하여 한나라당 또한 구체적인 생존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성공적 생존전략은 성공적인 집권전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현 정권의 개혁은 특히 역사 바로 세우기는 사회주의 혁명의 방식으로 - 민중해방을 위한 민주화 운동과 민족해방을 위한 반제국주의 자주화 운동으로 친일청산이 진행될 개연성이 높다. 다행스러운 것은 현재 우리 사회에 친북적이고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집권당 또한 시장경제를 주장하고 있고, 노대통령 또한 <내 정신이 헌법정신>이라 말하고 있다. 이러한 현 정권의 對野 전략에 대하여 그에 합당한 대응전략을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과거사 청산이라는 여야의 대결국면에서 최후의 승자는 누가될 것인가?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민주주의 헌정질서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에 대한 가시적 국가 비젼과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개혁의 실천방안을 먼저 국민들 앞에 제시할 수 있는 정당이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 과거사청산이란 화살은 이미 활 시위를 떠난 듯 여겨진다. 과거사청산이란 通過祭儀를 치루고 나서 우리 사회는 보다 성숙한 사회로 그리고 새로운 역사적 도약을 이룩할 것이란 희망 어린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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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중심의 리더쉽

2004-08-23 13:13:13

 

과거청산을 통한 역사 바로 세우기가 여야 간의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며, 국론분열의 파국적 국면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한편에서는 경제가 어려운데, 국론 분열적인 과거사 들추기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올바른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서이다. 역사는 미래를 창조하는 뿌리이다. 밝힐 것은 밝히고 반성할 것은 반성해야 한다. 그 토대 위에서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길이라며 과거사의 청산을 강조하고 있다.

 

얼핏 들어보면 한 쪽은 경제상황의 어려움을 들어 상황논리를 주장하는 것 같고, 다른 한편에서는 원칙을 주장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기실은 상황논리도 아니고, 원칙에 대한 주장도 아니다. 과거사를 들추는 것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말한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 대다수 서민생활의 안정을 걱정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렇다면 진정,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기 위하여 과거사 청산을 주장하는 것일까? 이 또한 그 진정성을 믿기 어렵다.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아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과거사의 청산이라면 국가의 미래에 대한 비젼과 잘못된 과거사의 청산과 어떠한 연계의 고리를 가지고 있나를 밝혀야 한다. 올바른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역사 바로 세우기라면 과거로부터 이끌려온 현재의 국가의 정체성과 미래로의 비젼이 일관된 방향성을 가지고 제시되어야 한다. 여야 간의 과거사 공방이란 그 바닥을 들여다보면, 기득권층의 기득권 지키기와 현 정권의 기득권층에 대한 기득권 빼앗기의 싸움으로 비춰진다.

 

지금 대한민국을 바르게 이끌어가는 리더쉽이 존재하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금 우리는 국가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우리의 앞 날을 개척해 나아갈 방향성을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 난국에 처한 국가의 현실을 타개 지도자가 있는가? 진정 국가의 장래를 염려하고, 개인의 이익이나 당파적 이해에 얽매이지 않으며, 우리 모두의 장래를 모색하는 리더쉽이 남아 있기나 한 것인가? 어디를 둘러봐도 당파적 이익만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높을 뿐 진정 우리 모두의 화해와 협력을 통한 국가의 장래를 염려하는 목소리는 없는 듯 여겨진다.

 

지금과 같은 위기의 상황을 극복하고, 국가 발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리더쉽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만나는 모든 정치적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힘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당파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대다수 국민들 또한 자신이 지지하는 정파에 힘을 모아주는 것이 합당하고 현실적이라 생각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지난 40여 년 성장과 실적 위주의 삶을 살아오면서, 올바른 삶의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의 소중함을 잃어버린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무엇이 올바른 삶이고 무엇이 그릇된 삶이라는 자각조차 잊은 채,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하며 살아오면서 삶의 방향성을 상실한 것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국가경영에 대한 온전한 철학이 있는 지도자가 없고, 올바른 신념을 지키며 살기 보다는 물질적 풍요만을 좇아 갈팡질팡하며 살아온 것이 우리들의 지난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건전한 삶의 원칙을 상실한 사회를 바로잡는 리더쉽이란, 혼란한 사회 상황에서 원칙을 바로 잡아가는 그리하여 사회질서를 확립해 나아가는 원칙 중심의 리더쉽이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무질서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사회발전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군기가 바로 서지 않은 군대가 전투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자기 나름의 삶의 원칙을 확립하고 자신의 생활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성공적일 수 없다. 경찰관의 56%가 법을 지키면 손해라고 대답하는 사회, 모든 국민의 준법정신은 땅에 떨어졌고, 지도층 인사들은 법 위에서 특권적 권한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된 사회이다. 그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법과 원칙이 무너진 사회로부터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명백하다.

 

남을 다스리는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다스리라는 말이 있다.

간단히 생각하면 성공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는 쯤에서 이해할 수 도 있다. 성공을 위한 자기관리는 성공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성공적인 삶의 과정을 겪어오면서 실천한다. 하지만 승승장구하여 성공의 가도를 달리던 사람이 실패하였을 때, 예기치 못한 어려움을 당하였을 때,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자신이 기대한 삶의 상황과 실패한 현실상황의 엄청난 괴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극한적 선택을 하는 것을 언론매체의 보도 등을 통하여 보게 된다. 자신을 다스린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이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엄청난 책임이 부과된 불확실한 삶의 상황이나, 견디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삶을 겪게 되면, 말처럼 그렇게 쉽사리 자신을 다스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 백만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였다.

 

대통령이 자신을 다스려야 나라를 온전히 다스릴 수 있다.

대통령의 직무 상의 책임이란 엄청나다. 모든 국정에 대한 책임을 대통령 개인의 판단이나 의지로 감당하려 한다면, 세상에 대통령 노릇 성공적으로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 보아도 현명한 군주일수록 사람을 잘 써서 자신의 책임을 분담하면서 국정을 일관된 방향으로 통합해 이끌고, 법과 원칙을 바르게 하여 을 세우고 권위를 세워 세상을 다스렸다. 소수의 사람이나 한 사람이 세상을 다스리려 할 때 없어서는 아니 될 것이 권위이다. 권위 없이 세상은 지배될 수 없다. 지배의 권위는 그 지배의 원칙이 보편적 삶의 원리에서 기인할 때 확립된다. 탐욕스런 지배자가 국가의 권위를 올바르게 확립할 수 없다. 지도자가 탐욕스러우면 국가는 권위를 바로 서지 않는다. 지도자의 도덕성은, 국가경영이 지도자의 개인적 욕망에 기초한 것이 아닌, 보편적 삶의 원리에 기초한 것으로 만들어, 보다 폭넓은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내고, 국가권력의 영속성을 향상시킨다.

 

고도로 복잡하고 분화된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결코 개인의 탁월한 지도력에 의존하여서는 성공적일 수 없다. 그러하기에 사회통합을 이끌어 내고, 결집된 국민적 역량을 도출하는 지도력은, 국가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정밀하게 조직된 국가기관의 권위와 법의 권위를 통하여 성공적으로 국가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사회가 복잡할수록, 우리 앞에 주어진 삶의 상황이 혼란스럽고 어려울 때 일수록, 이러한 혼돈과 무질서를 극복하는 국가질서를 확립하고, 새로운 국가 비젼을 제시하는 리더쉽이란 국가의 조직의 원칙이나 국가운영의 원칙을 확립해 나아가는 원칙중심의 리더쉽이어야 할 것이다. 법치국가의 최우선 과제가 통치권자의 권한의 오남용을 방지하는데 있다 말할 때, 이는 통치권자의 권위와 지도력을 극대화하고 효율적이고 성공적으로 이끌게 위해서는 원칙중심의 리더쉽이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플라톤은 강력한 권력을 무절제(어리석음) 없이 받아들일 인간은 없기에 강력한 권력의 무절제를 방지하는 것이 입법자의 의무라 말하며, 국가 권력이 법에 의하여 다스려질 것을 강조했다.

 

원칙 중심의 리더쉽이란 원칙만을 강조하는 경직된 자세를 말하지 않는다. 지도자의 행동은 원칙을 지키며,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때, 국민은 지도자를 신뢰할 수 있다. 원칙을 제시하는 지도자는 자신이 실현하고자 하는 비젼을 구체화하는 원칙을 제시함으로써, 국가발전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국가발전에 대한 비젼을 제시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원칙을 확립해 나아가는 지도자의 신념과 리더쉽은 보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도자의 신념을 공유하고 국가발전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지금 우리는 세대 간, 계층 간, 지역 간으로 편가르기를 하며, 자신의 주장만이 정당하다고 고집하며 서로를 흠집 내는 싸움에 골몰하고 있다. 우리가 처한 난국을 극복하는 길이란 이러한 불신과 반목,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진정 우리가 하나되는 마음으로 화해와 협력을 이끌어 내는 리더쉽이 절실하게 아쉬운 싯점이다. 우리 시대에 가장 고갈된 자원은 <사회적 연대성>이라는 자원이다. 그리고 이 사회적 연대성의 이념은 우리의 헌법전문이 정신에 녹아 있다.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리더의 덕목은 무엇일까? 그것은 카리스마의 예언자적 능력이나, 영웅적 자질이 결코 아닐 것이다.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의 모습은 자신이 갖는 퍼스낼리티를 내세우는 지도자가 아닌, 우리 사회를 진정 화해와 협력으로 이끌어가는 원칙을 찾아내고 이를 실천하는 지도자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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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바로 세우기의 허와 실

2004-08-17 14:14:05

 

 

지금 우리는 문명사적 변혁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지식정보화 사회이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수 많은 정보 속에서,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자아와 인간실존에 대한 성찰 없이 주체성을 잃고, 오직 자신의 이기심의 극대화를 위해, 시류의 흐름에 쫓아다니기 급급한 바쁜 삶을 살고 있다고 여겨진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 자신이 죽는 일 것이다. 인간의 삶 중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반성하고 허물을 고쳐가면서 성장한다. 과거를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은 긍지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개척한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은 사람은 과거를 반성하여 스스로를 개선하며, 보다 나은 미래를 도모한다. 과거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현재의 자신의 역량와 균형 잡힌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보다 성공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과거를 얼마나 제대로 반성하고, 우리가 처한 현재의 상황에 대한 온전한 인식과 정돈된 삶의 질서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처한 우리의 앞날은 결코 낙관적이 아니다. 세계화는 우리에게 무한경쟁의 시대를 열어 놓았고, 국제질서는 경제전쟁과 패권주의시대로 흘러가는 양상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까? 약육강식의 강자의 논리를 따라서 강자의 길을 가야 하는가, 아니면 약자와 강자가 함께 사는 공생공영의 길로 가야 할까? 일방적으로 힘을 키우느냐, 아니면 도덕을 바탕으로 공동의 번영을 추구하는 힘을 키우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우리가 힘의 길을 간다면 그 길은 평화의 파괴로 이어질지 모른다. 인간의 생존에서 힘은 절대 필요한 것이지만 힘을 과도하게 믿는 사람은 힘 때문에 파멸할 수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과 위기의 국가 상황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경제만을 국가 발전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처한 위기가 강성노조 때문이라 말한다. 그리고 강성노조를 때려부수는 길만이 우리의 살길이라 강변한다. 어떻게 때려잡는가? 국가성장의 목표를 세워놓고 이에 대한 장애적 요인을 강압적으로 모조리 제거하는 독재정치로 되돌아가자는 말인가? 가당치 않은 이야기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우리가 살 길이란 노동자와 기업인이 서로 공동의 번영을 모색해야 우리의 미래가 있다. 과거처럼 수출하는 기업에 특혜적 정책금융을 지원하고, 기업의 이윤추구에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노동운동을 전적으로 탄압하는 방식으로 기업을 이끌어 갈 수는 없다. 특혜적 지원을 받던 기업이 정부의 지원 없이 세계화된 시장에서 무한 경쟁을 벌이는 일은 벅차다. 게다가 지금까지 투명하지 못했던 기업지배구조는 노사화합을 깨뜨린 원인으로 작용하였고, 노사간의 대립은 그 화해의 접점을 찾을 수 없을 만큼 회복 불능의 불신과 반목의 깊은 골이 파여져 있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해 나아가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에 대한 기대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대립의 근본적인 원인은 부패한 국가권력과 유착된 타락한 기업운영 방식과 무관치 않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갈등의 근원적 이유는 성장위주의 삶을 지향하면서, 정당한 삶의 방법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결과가 잘못된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사회라면 그 사회에서 정당한 삶의 방식은 그 설 땅을 잃게 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면, 도덕성과 인간의 존엄성은 필연적으로 훼손될 수 밖에 없다.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더 이상 기존의 방식으로 성장이 불가능하고, 각종 사회문제의 발생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해결 능력을 초과하는 데에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전에는 당연히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들이, 이제는 더 이상 점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점차로 많아지게 된다. 경제적 관점으로는 경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경제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화해의 기반이 무너지고 불신과 반목이 증폭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우리 시대의 가장 절실한 문제는 성장과 민주화 과정을 겪으면서 파괴될 대로 파괴된 사회적 연대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우리가 개척해야 할 새로운 사회란 공생공영의 인도적 사회라는 것은 자명해 진다. 근대화, 산업화 과정의 지난 20세기는 공생공영 보다는 외형적 힘을 키우는 데에 주력하였다. 외세로부터 해방을 위하여, 남북분단의 대결구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힘을 키워왔다. 그 결과 지금 세계 12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했고, 일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의 국민소득을 누리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그 힘을 키우기 위해, 인권이나, 도덕이니, 문화니, 복지는 뒷전으로 밀어놓았다. 경제 성장 위주의 국가 정책, 그리고 배금주의의 개인과 집단 간의 이기심 확산은 인간으로써의 품위를 손상하고, 도덕과 사회 기강을 어지럽히게 되었고,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의 갈등을 증폭시킨 혼돈의 경제대국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개인과 기업의 이윤만을 추구하며 기업윤리도 개인 윤리도 땅에 떨어지고, 범죄의 급증과 수많은 사건 사고를 발생시켰다. 서로 힘을 모아 국가발전을 위하여 힘을 모아 노력했었던 과거는 잃어버리고,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사회적 책임과 국민 통합을 무시한 채, 지역간 이익집단간 노사간의 갈등은 첨예화 되며, 잘 되던 경제마저 침체의 늪에 빠졌고 지금 우리 경제는 발전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위기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경제성장위주의 시절을 경유하며, 우리는 과소비와 사치 향락을 일삼고, 근면한 삶의 태도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역사는 현재를 위해서 쓰는 것이다. 현재의 과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과거 역사의 해석은 달라진다. 죽어 있는 과거에 생명을 불어 넣고 미래로 나아갈 길을 찾아주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이다. 그리고 역사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이 史觀이다. 올바른 사관은 우리를 밝은 미래로 인도하고, 잘못된 사관은 자칫 역사에 올가미를 씌우고 우리를 어두운 미래로 이끌어 갈 수 있다.

 

바람직한 사관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지난 40여 년간 지속되어온 개발독재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고 진정 민주주의적 사회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아가 민족분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성과 새로운 국가의 발전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국가적 과제는 무엇인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국가 위기 상황은 국가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국가체제가 정당성을 상실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수진영에서는 현 정부의 좌경화 경향과 현 정부의 개혁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받아들이며, 현 정권의 국가 정체성에 의문점을 제기한다. 그리고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현 정권과 보수진영의 대립은 사회주의와 파시즘의 계급투쟁전선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러한 대립 국면의 지속은 우리 모두를 공멸로 이끌어 가는,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사생결단의 극한 대립으로 여겨진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의 과제를 이해하며, 이를 바탕으로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로의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믿는다. 그것은 헌법전문이 표방하는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확립하고 국가권력의 정당성를 확립하는 일이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구체적 삶에서 민주주의적 생활질서를 구현해 나아가는 것이다.

 

현재의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정당한 삶의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상황의 논리로 부정한 삶의 방식을 옹호하는 것을 용인한다면 정당한 삶의 질서는 바로 세울 수 없다. 밥을 굶었다 하여, 빵을 훔치는 것이 정당화되어서는 아니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 볼 때, 정당한 삶의 질서와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위해서 친일행위는 규명되어야 마땅하다. 민족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고, 새로운 미래의 비젼을 보다 구체적인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잘못된 과거의 문제에 대한 반성이 없이는 우리의 역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진전되지 아니한다. 친일청산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민족분단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국가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는 것이어야 한다. 친일청산의 방향은 사적유론자들이 말하는 우리가 처한 억압연관에 대한, 파괴나 해체 그리고 보복이나 처벌이 아닌, 새로운 국가 비젼을 열어가는 쪽으로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 설정한 우리의 국가적 과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그 잘잘못을 규명하는 차원에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기초로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일제시대의 과거사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적 국가질서를 확립하는 데에 있어, 과거 개발독재로 인하여 상실한 정당한 삶의 질서의 회복을 위하여, 경제성장위주의 개발독재가 가져온 부정적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 또한 마땅하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한다면, 정당한 삶은 그 설 땅을 잃는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가? 정당한 삶의 질서와 정의에 입각한 법질서로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적 화합의 기초를 다지는 것이다.

 

국가 권력이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정당한 권력의 행사가 가장 심각하게 훼손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부터이다. 박정희의 지배방식은 권력의 법적 제제를 무시한 것 뿐 아니라 삼권분립의 헌정질서마저 깡그리 무시하고 진행된, 전횡적이고 자의적인 저열한 통치방식이라 비난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박정희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으로 박정희를 비난하는 것이라 착각한다. 절대빈곤의 시대적 상황에서 국민소득 1만불 시대까지 이끌어 오는데 박정희의 리더쉽이 그 견인차 역할을 하였고 그 업적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독재정치의 유산을 청산하지 못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정당한 국가질서는 바로 세울 수 없다. 민주주의 헌정질서는 민주주의 실현의 전제조건이 된다. 민주적 헌정질서는 법치국가와 법의 지배의 이념으로 구체화되고 법치국가의 최우선 과제는 통치권자의 권한의 오남용을 방지하는 데 있다

 

박정희를 비난하는 나의 관점은 정당한 방식으로 행사되는 국가권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새로운 우리의 역사를 개척해야 할 리더쉽이란, 복잡하고 다양한 개인과 계층의 요구를 수용하고, 인간의 개성을 존중하는 리더쉽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강압적인 방식으로 국민을 획일화 하여 국가를 이끌어가는 리더쉽이 지금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데에 전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고, 역사가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면 민주주의적 리더쉽이란 고도의 사회적 감수성과 각종 학문적 지식을 동원하여 주어진 상황을 균형있게 판단하고, 사실적인 문제와 규범적인 문제를 적절히 조합하여, 국가조직의 활력을 이끌고, 국민 통합을 이끌어 내는 리더쉽의 관점에서 독재정치란 저열하고 조잡한 지배방식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무분별한 통일논의와 막연한 통일기대의 확산으로, 국가 체제에 대한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국가정체성은 불투명해 보인다. 현 집권당이 행하는 과거사 청산은 국가의 정통성을 바로세우고 민주적 헌정질서를 확립하는 과거사의 청산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과거사 문제로 극한 대립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사회주의와 파시즘의 계급투쟁 전선의 형성으로 비추어진다. 또 과거사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란 국가의 정체성의 확립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현 정권의 과거사 청산은 국가정체성의 확립이 아닌, 정략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나아가 북한의 대남전략에 이용될 소지가 충분한, 반제국주의 자주화 운동으로써의 친일청산과, 반파쇼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써 악의적으로 박정희 깍아내려, 박근혜 죽이려는 얄팍한 정략으로 비추어진다.

 

현 정권이 진행하는 역사 바로 세우기가 진정,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민주주의적 국가 질서의 확립을 위한 과거사의 청산이라면 지금 진행되는 수도권 이전 사업 같은 것은 절대 해서는 아니될 일이다. 국가시스템을 업그래이드 하면서 다른 프로그램을 작동하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다. 컴퓨터의 시스템 장애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모든 프로그램을 종료시키고 안전모드에서 실행해야 한다. 현 정권은 국가의 근간을 바로 잡고 국기를 바로 잡으려, 그 사회적 파장이 엄청날 수 있는 역사 바로 세우기를 주장한다.

 

단호한 어조로 나는 현 정권에 경고한다.

올바른 사관은 우리를 밝은 미래로 인도하고, 잘못된 사관은 자칫 역사에 올가미를 씌우고 우리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 현 정권의 역사 바로 세우기란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역사 바로 세우기가 아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현 정권의 역사 바로 세우기의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그것이 우리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역사 바로 세우기가 아니라, 정략적 차원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존립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사적유물론에 의거한 민중해방과 민족해방을 위한, 역사 바로 세우기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정권이 주장하는 역사바로 세우기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역사 바로 세우기인가, 아니면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위한 역사 바로 세우기인가.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징표가 있다. 수도권 이전을 강행한다면 현 정권의 역사 바로 세우기가 가짜라는 표식이 될 것이다.

 

21세기를 준비하는 올바른 역사의식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그것은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민족적 자긍심을 드높이고, 평화와 도덕을 존중하는 歷史觀이어야 믿는다. 우리의 자존심이 소중하기에 우리의 경쟁력을 키우고, 인간성의 회복과 도덕성을 기초로 인류애를 구현해야 한다. 가장 우리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신념에 기초하는, 민족적 세계주의요 세계적 민족주의를 이 땅에 구현하여야 한다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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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과 국가정체성

2004-08-18 17:05:30

 

열린우리당 신기남(辛基南) 의장은 오는 19일 영등포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의장직 사퇴를 공식 발표한다. 열린우리당 핵심관계자는 18"신 의장이 선친의 일제하 헌병 복무 문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로 마음을 굳혔고, 이같은 심경을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와 당 중진들에게 전달했다""신 의장이 19일 오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퇴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중앙일보 818)

 

역사청산 친일청산을 소리 높여 외쳐 왔던 열린우리당 신기남 당의장의 부친이 일본군 헌병으로 자행한 과거 친일행적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신의장의 거짓말과 낯 간지러운 변명이 보도되었다. 신의장이 부친의 과거 행적에 대하여 광복회를 찾아가 사과하고, 당 의장직을 사퇴하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헌법 제133<모든 국민은 자신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상의 기본권을 모를 리 없는 변호사인 신씨가 헌법 상의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불이익을 감수하는 것을 바라보며, 친일청산의 진행 방향이 여론 몰이 식 인민재판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게 한다.

 

17일 노 대통령이 신의장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개인적으로 고통스럽겠지만, 그렇다고 가볍게 처신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신 의장="어떤 경우에도 대통령 뜻을 거스르는 결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신 의장은 노 대통령과 통화한 뒤 바로 라디오 프로그램에 전화로 출연했다. "현재로서 거취를 표명할 단계는 아니다. 국민 여론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우리 당원동지들의 뜻이 있기 때문에 가볍게 처신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며칠 전 8.15경축사의 노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우리에게는 애국선열에 대한 존경만큼이나 얼굴을 들기 어려운 부끄러움이 남아있습니다. 광복 예순 돌을 앞둔 지금도 친일의 잔재가 청산되지 못했고, 역사의 진실마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애국선열들이 하나뿐인 목숨까지 내놓고 투쟁했던 그 시간에 민족을 배반하고 식민통치를 앞장서 대변했던 친일행위가 여전히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습니다. 더욱 부끄러운 일은, 역사의 바른 길을 걸어 온 독립투사와 그 후손들은 광복 후에도 가난과 소외에 시달리고, 오히려 친일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사회 지도층으로 행세하면서 애국지사와 후손들을 박해하기도 했다는 사실입니다.>

 

친일문제 규명이 역사 바로 세우기라 말했었다.

이는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겠다는 어쩌면 새로운 국가질서를 만들겠다는 중차대한 국가의 대사이다. 신기남의장의 헤프닝은 현 정권의 역사 바로 세우기가 얼마나 어설프게 진행되는, 정략적 의도로 진행되는 한심한 작태인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하려면 그에 합당한 준비가 뒷바침 되어야 한다. 남을 다스리는 자는 먼저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는 말이 있다. 실언과 말바꾸기를 버릇처럼 해온 노대통령에게 상당한 수양을 한 인격자의 수준의 자제력을 기대하지 않는다. 적어도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무모한 짓을 해서는 안되고, 말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하며, 될 일 안 될 일 정도는 분간할 정도의 사리분별을 기대하는 것이다. 어떤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을 판단할 정도의 사람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에 이를 요구하는 것이 지나친 요구일까? 어찌 신기남씨와 같은 이와 더불어 친일청산을 말하고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하려했는가?

 

여권 고위관계자는 신기남의장 문제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다. "신 의장을 여론의 비난에서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친일 문제를 규명하는 중심을 세우는 게 더 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신 의장도 친일 조사에 협조하겠다고 했으니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도 협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 818)

 

역사는 현재를 위해서 쓰는 것이다. 현재의 과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과거 역사의 해석은 달라진다. 죽어 있는 과거에 생명을 불어 넣고 미래로 나아갈 길을 찾아주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이다. 그리고 역사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이 史觀이다. 올바른 사관은 우리를 밝은 미래로 인도하고, 잘못된 사관은 자칫 역사에 올가미를 씌우고 우리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이끌어 갈 수 있다.

 

노대통령은 8.15경축사에서 친일 청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진상이라도 명확히 밝혀서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올바른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역사는 미래를 창조해나가는 뿌리입니다. 분열과 갈등을 걱정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화합하고 포용하자고 하십니다. 그런데 왜 진실을 밝히는 일에 의견이 갈리고 대립이 있어야 하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진실은 합심해서 밝혀야 하는 것입니다. 진실이 밝혀져서 부끄러운 일이 있다 해도 회피할 일이 아닙니다. 밝힐 것은 밝히고 반성할 것은 반성해야 합니다. 그 토대 위에서 용서하고 화해할 때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진실을 밝히는 일에 의견의 갈리고 대립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는 관점에 대하여 현 정권은 그 관점을 밝히지 않고 있다. 현 정권이 생각하는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입장과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가 처한 현재의 국가적 과제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친일의 과거사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이 납득할 만한 관점을 밝히지 아니하고, 과거사를 규명한다 말한다. 이는 현 정권이 민중적 관점, 계급적 당파적 이데올로기에서 바라본 과거사를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득권 세력을 궤멸시키려 획책하려는 것으로 보여진다. 현 정권이 친일의 과거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무엇일까? 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제국주의 침략세력과 사대 매국노 세력을 척결하는 방식으로 반제국주의 민족 자주화 운동의 차원에서 친일 과거사를 규명하려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러한 관점에는 과거의 문제를 들추어 친일 세력을 궤멸시키고 파괴하려 한다. 국가 정체성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는 것은, 현 정권의 친일 규명의 의도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제국주의침략세력과 사대 매국노 세력을 척결하는 데에 방향지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50여 년 이룩해 온 대한민국의 정당성을 부인하고, 대한민국의 기득권 세력을 친일파의 잔당과 미제국주의자의 추종세력 규정하고, 이들을 척결하는 것이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과거사 청산의 목적으로 여겨진다.

 

신기남 의장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바라보면서,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란 진정성도 우리가 처한 현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시대적 과제를 바르게 설정하지 아니하고, 민족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친일 기득권 세력을 축출하는 민족해방전술전략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게 한다. 현 정권의 과거청산이 대한민국의 헌정질서의 범위에서 진행되는 것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민족해방과 민중해방을 위한 사회주의 혁명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인가를 묻겠다.

 

노대통령에 묻겠다. 현 정권이 국가정체성에 대한 개념이 있기나 한가? <내 마음이 헌법정신>이라는 노대통령의 발언이 사회주의혁명 방식의 개혁을 은폐하기 위한 발언은 아닌가 다시 묻겠다. 집권기반의 강화와 기득권층을 완전히 궤멸시킬 때가지, 정략적 술수로 국민을 기망하고 국정을 농단하는 얄팍한 재주가 얼마나 지속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묻고 싶다. 일시적으로 국민은 속이고 현혹시킬지 모른다. 하지만 그 속임수가 얼마나 가겠는가? 일시적으로 어떠한 국면에서 국민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속임수는 결코 지속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백성을 하늘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 조상들의 가르침이다. 백성을 속이고 하늘을 속이고, 스스로 자신을 속이면서 속이는 줄 모르고, 죄를 지으면서 죄를 짓는 줄 모른다. 속일수록 감출수록 죄는 자라나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治者가 되어서 성명을 온전히 보존하려면 마땅히 백성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治者가 되어서 백성을 속이는 것은,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다.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면 죄를 하늘에서 얻는 것이니, 빌어도 소용이 없다 하였거늘, 어찌 하늘이 두려운 줄 모른단 말인가?

 

왜곡된 과거사를 바로 잡고자 하려는 노력이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과거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우리의 관점이 현실 인식에 기초하고 있으며, 어떠한 방향으로 우리의 현대사의 발전방향을 설정하고 있느냐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가지지 못한 과거사의 청산이란 한 마디로 語不成說이라 할 것이다. 역사가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라는 것을 가정한다면, 역사발전의 매 단계마다의 각 位相들은 어떠한 의미와 연관성을 가지고 차례 차례 전개되는 것이어야 한다. 발전의 모든 단계는 그 앞 단계에 의해서 조건 지워지거나,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려 진행된다는 데에 대한 가시적인 言明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과거의 역사에 대하여 <왜냐>하고 질문하기 위하여서는, 동시에 우리가 현 싯점에서 <어디로> 향하고 있느냐에 대한 대답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은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말하면서, 우리의 정체성의 확립에 대한 노력은 없다. 미래에 대한 비젼의 제시 또한 찾아 볼 수 없다. 현 정권은 역사 바로 세우기를 말하기 앞서, 현 정권이 생각하는 국가정체성을 밝혀야 한다. 막연한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뿌리를 찾는 역사를 바로 세우기에 그쳐서는 역사가 바로 설 수 없다. 기득권층으로부터 기득권을 빼앗으려는 의도로, 민족해방과 민중해방을 위한 사회주의 혁명 차원에서의 과거청산을 행한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를 갈갈이 찢는 것이 될 것이고, 대한민국의 존립 기반을 허무는 그리하여 우리 모두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이끄는 친일 과거사의 규명이라는 것을 온 국민은 바르게 직시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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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이 국가이다

2004-08-04 15:35:57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여야의 논란이 극한 대결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듯 여겨진다.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2"우선 안정과 체제수호가 되고 정책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경제가 사는 것 아니냐" "야당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근본 문제를 해결할 것" 이라면서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대통령의 답변을 촉구 했다. 나아가 헌법은 생명과 같은 건데 잘 지켜지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간판을 내려야 한다고 강도 높게 여권을 비판했다.

 

요 며칠 나는,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에 대하여 서로 상반된 정치적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헌법에 대한 이해와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글을 썼다. 그것은 어떤 특정 정파나 정당을 지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를 상반되는 관점에서 접근하여 조망함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를 보다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여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하나의 관점은 현정부의 무분별한 개혁이 우리의 헌정질서를 위협하고 결과적으로 북한의 대남적화 전략에 휘말릴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한 우려의 표명이었다. 또 다른 관점은 현 정권의 잘못된 개혁에서 기인한 불확실성과 혼돈에 대한 반작용으로, 박정희 시대의 퇴행적 회기를 기대하는 포퓰리즘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런 현상은 야당 대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것과 무관치 않다고 여긴다.

 

나는 자유민주주의 신봉자이다. 나는 파시스트를 혐오하고, 북한의 주체사상을 당연히 배격한다. 현 정권의 포퓰리즘이 사회주의 쪽으로 진행되고 있고, 이것이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위협하는 것을 우려한다. 현 정권의 무능에 대한 반발로 과거 회기적이고 퇴행적인 박정희 붐은 우리나라의 민주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이는 자기 주체성이 확립되지 않고, 올바른 국가관에 대한 이해를 결한 채, 노무현 정권에 절망하는 사람들에 의해 확산되는 패배주의적이며 퇴행적인 신드롬(Syndrome)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북한의 대남적화전략의 일환으로, 남한은 일제잔당과 미제의 앞잡이들이 판을 벌려놓은 신식민지라는 주장에 대하여, 무엇이 문제이고, 이에 대한 합당한 대응책을 야당 측에서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박근혜씨는 헌법이 생명이라며, 그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간판을 내려야 한다며 강력한 대여 공세 발언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생명 같다는 헌법과 헌정질서 본질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인해, 구체적인 헌정질서와 국가정체성에 대한 비젼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반면 현 정권은 자신들의 정권기반 확장과 기득권 빼앗기에 급급하여, 헌정질서를 훼손하고 심지어는 북한의 대남전략을 이용하여 개혁을 진행하였다고 믿는다. 국가의 정체성,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에 대한 천명과 국가의 정체성의 확립 없이 행하여 지는 친일 과거사의 청산은 국론을 분열시키고, 결국 북한의 적화전략을 돕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국가의 정체성과 헌법에 관한 논의가 여야간에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며,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지만 정작 국가 정체성에 대한 비젼을 여야를 막론하고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하게 요청되는 것은 국가 정체성의 확립이며, 자유민주주의적 헌정질서를 천명하고 이를 기초로 하여 흐트러진 법질서와 제도를 정비하고, 공직기강을 확립해 나아가는 것이다. 법의 권위를 높여 국가의 질서를 바로 잡아가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행정이 여전히 박정희 시대의 독재행정의 틀을 깨지 못하고 있는 점을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기관의 법 집행 자체가 독단적이고 전횡적이다. 가장 엄격하게 법률이 해석 적용 선언되어야 할 법정에서, 똑 같은 범죄가 벌금형이 되기도 하고 2년 징역이 되기도 한다. 공권력의 자의적 재량을 허용하고, 이에 대한 제재가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명백한 독재권력이다. 이러한 잘못된 공권력의 행사와 제도운영의 관행을 독재적 행정에서, 자의적 재량권을 줄이고 투명하고 원칙을 확립해 나아가는 민주행정으로의 획기적인 변혁을 이룩해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국가의 정체성의 확립이란, 국가 권력의 행사가 헌법과 헌법에 의거한 법률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박정희의 실패의 핵심 내용이 무엇인 줄 알아야 한다. 박정희는 경제성장제일을 말하며,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가장 훼손한 대통령이라 비난 받아 마땅하다. 박정희는 독재정치의 유산으로 국가시스템이 통합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렸다. 정부 각 부처에서 행정적 필요에 의하여 법률을 만들었다. 그리고 각 부처에서 만든 법률이 다른 부처에서 만든 법률과 충돌하는 사례가 수도 없이 많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기에, 노태우 대통령 이 후의 모든 대통령은 실질적으로 행정부의 수반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통합장애는 각종 위원회 등 관변단체의 양산을 야기했고, 민주화 개혁을 하면 할수록 국가시스템의 통합장애는 심각해 졌다. 그 결과 국가는 고비용 저효율의 형편없는 시스템으로 망가져 버렸다.

 

국가의 본질은 규범적 강제질서이다. 국가는 국민에게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허용되는 일과 허용되지 않는 일을 법으로 정한다. 법은 마땅히 국민의 생활을 제약하는 데에 있어 최소한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건전한 삶을 위하여 권장되는 도덕적 규범과는 달리, 법규범은 국가가 이를 강제하는 최소한의 규범이며, 건전한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반드시 강제되고 준수되어야 하는 규범이다. 이러한 국가질서를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심각하게 훼손한 대통령으로 박정희와 노무현이 1.2위를 다투고 있다는 표현이 지나침이 없는 줄 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국가의 위기의 본질은 정당성의 위기이다. 국가나 개인이나 집단 할 것 없이, 무엇이 올바른 삶이고 무엇이 그른 삶인지 그 판단의 기준을 상실하였고, 국가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허용되는 개인의 행위의 범주가 무엇인가 말하는데 실패했다. 이러한 상황의 결과로, 사회의 분열과 혼란 나아가 국가기강의 문란이 가속화되었다.

 

작년 10월 노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으로부터 4.15총선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고비처 창설, 언론개혁, 과거사 청산 등의 일련의 개혁조치는 헌정질서 파괴적으로, 정권의 기반을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현 정권의 개혁은 자신의 정권적 기반의 확장을 위하여, 계급모순 타파와 민족모순을 극복을 위한 계급해방 민족해방의, 사회주의 혁명방식을 취하였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위협하고 국가와 사회의 질서를 문란케 하였으며 그 결과 북한의 대남전략에 휘말려 대한민국의 국가안보를 심각하게 위태롭게 하고 있다. 헌법을 수호하지 못하는 대통령은 그 존재의 이유를 잃게 될 것이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마음이 헌법정신이라 말했었다. 문제는 노대통령의 정권욕에 따라서, 노대통령의 마음이 변하고 필요하면 헌법정신을 유린해도 좋다고 여기는 데에 있다.

 

나는 국가정체성을 어떻게 바로 세우고, 우리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적어도 20년 이상을 공부해 왔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국가를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위하여, 우리 나라의 제도 운영 실태를 검토하고 무엇을 어떻게 보완 개선하여야 할 것인가를 공부해 왔다. 우리나라에서 제도가 어떠한 과정으로 만들어지고, 국가의 최고 의사결정이 어떻게 행하여 지는가를, 그리고 문제 있는 법이 집행되며 야기되는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또 잘못된 제도를 개선하기 위하여 어떠한 방법으로 이를 개선하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공부해 왔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국가의 정체성을 어떻게 확립하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법 이론과 사상, 실무의 차원에서 이를 적용시킬 수 있는 방안에 구체적 방안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독일의 국가학자이고 법학자인 한스 켈젠(Hans Kelsen)은 그의 <일반국가학>에서 국가는 모든 사회현상의 전체, 즉 개별적인 부분현상과 명백히 대조되는 유기체적인 총체라는 의미에서 공동체 사회를 말한다.” 했다. 또 무정부적 가상적 자유의 표현으로 폭력을 허용하고 노예제도를 존속시키는 사회악에 대립하여, 법률적 자유의 표현으로 국가를 표현한다. 자유의 원리로써, 국가는 국가가 없으면 강자의 지배를 받게 되는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방어체로 존립한다. 자유란 국가의 의사결정에 참여를 뜻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국가를 통해서만 자유가 타당성을 가진다. 그리하여 국가는 이타주의적이고 보편적인 원리의 상징으로, 사회는 이기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 원리의 표현으로 사용된다. 국가는 사회의 범주에 속하는 인간들의 결합이며, 국가의 존재(Sein)는 당위 (Sollen)로 이해된다. 국가는 그 사회의 범주에서 생활하는 성원들에게 당위로써 규범을 강제한다. 켈젠은 국가의 본질을 규범적 강제질서로 설명한다.

 

그렇다면 국가는 무엇을 위한 규범적 강제질서란 말인가?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본질적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헌법의 의미에서 찾을 수 있다. 절대적 의미에서의 헌법의 개념은 모든 실재적인 정치적 통일과 더불어 부여되는 존재양식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헌법이란 특정국가의 정치적 통일과 사회적 질서의 구체적인 전체 상태, 나아가 정치적 통일과 사회적 질서를 형성하는 일정한 원리가 헌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Politeia)에서 <한 도시 또는 한 지역의 인간이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공동 생활의 질서라 말했다. 국가에 있어서의 지배와 지배조직과 관련을 갖는 이러한 질서 속에는, 구체적인 정치구성체의 특성이 내포되어 있고, 구성체를 형성하는 질서의 목표(telos)가 존재한다. 이 질서의 목표가 헌법이다. 이러한 헌법이 없어지게 되면 국가도 없어지게 된다. 새로운 헌법이 확립되면 새로운 국가가 형성된다> 말했었다.

 

 

대한민국은 무엇을 위해 존립하는가? 당연히 헌법정신을, 헌법의 이념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구체화하기 위하여 존립하는 것이다. 국가는 곧 헌법이고 헌법의 목적이 국가의 목적이 되며, 국가의 은 헌법의 정신에 - 우리의 경우 헌법전문의 정신에 녹아 있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국가는 普遍的 眞理合理的 理性 그리고 正義自由, 平等理念國民主權理念을 포괄하는 憲法을 제정하고 이 헌법에 기초한 법으로 국가의 초석을 다져야 할 것이다. 국민은 헌법제정권력을 행사함으로써 주권을 헌법에 위임하고, 국가기관과 국민의 모든 권리와 의무는 헌법과 헌법에 의거해 만든 법률에 의하여 부여되고 부과되어야 한다. 이러한 국가의 존립을 전제로만 平和가 가능할 것이며, 憲政國家만이 국민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고 진정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국가와 사회의 전제조건이 될 것이다.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와 人道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여,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各人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안으로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다짐하는 헌법전문의 정신이 곧 우리의 대한민국이 존립하는 목적이다.

 

독일의 헌법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헌법은 사실로 현존하는 상태, 통일과 질서의 상태이다. 통일과 질서의 상태(Status)가 없어지면 그 존재도 소멸되기에 국가는 소멸한다. 헌법은 국가의 혼이고 구체적 생명이고 그 개별적인 실존이다. 국가가 헌법이다>라고 말했었다.

 

나라가 바로 서려면 무엇보다 헌정질서를 바르게 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헌법이 곧 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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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정체성을 밝히라

2004-07-27 13:58:48

 

집단주의자들은. 진보에 대한 정의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그릇된 것에 대한 격렬한 감정과 위대한 행위에 대한 충동을 가지고 있다. 이런 모든 자질들은 후기 자유주의에는 결핍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의 학문은 깊은 오해 위에 세워져 있으며.. 그들의 행동은 너무 파괴적이고 반동적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가슴은 찢기고, 마음은 분열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에게는 실현 불가능한 선택들만이 제공되게 된다.

 

- Walter Lippmann -

 

 

노대통령과 현 정권에게 묻는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무엇이냐고?

지금 당신들이 진행하고 있는 역사 바로 세우기의 실상이 무엇이며, 현 정권은 과연 우리를 어디로 이끌어 가느냐 묻겠다. 모든 국민은 이에 대한 대답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 정부는 이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해야할 의무가 있다. 노무현 정권 집권 2기를 맞이하여,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 고비처의 창설, 의문사 진상 규명 위원회의 납득하기 어려운 인사와 조사 진행과정, NNL침범에 대한 군의 보고체계와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납득하기 어렵다. 거물 간첩 송두율에 대한 석방으로 인한 국민의 안보의식의 혼란에 대하여 국가 안보가 위협받고 있다. 야당이 이에 관한 정부의 입장 표명을 요구했었다. 정부는 사법부의 판결에 대하여 정부가 말할 처지가 아니라고 어이없이 정부의 입장 표명의 거부했다.

 

그 사안의 중요성에 비추어 그 내용과 파급효과, 지불해야 할 댓가 등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수도 이전의 문제에 대하여, 반대의견을 말하는 것이 대통령의 불신임이라 강변하는, 국민 모독적인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다. 대통령이 무엇을 하는 자리인가? 어떠한 정책을 수행함에 있어 반대의견이 있을 수 있다. 자신에 대한 반대의견을 자신에 대한 지지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유능한 리더쉽이라 믿는다.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의견의 개진을 봉쇄하는 정권이라면 그것은 독재정권으로 비난 받아 마땅하다.

 

친일진상규명법을 만들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고 역사를 바로 잡는다 말한다.

 

왜곡된 과거사를 바로 잡고자 하려는 노력이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과거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우리의 관점이 현실 인식에 기초하고 있으며, 어떠한 방향으로 우리의 현대사의 발전방향을 설정하고 있느냐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가지지 못한 과거사의 청산이란 한 마디로 語不成說이라 할 것이다. 역사가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라는 것을 가정한다면, 역사발전의 매 단계마다의 각 位相들은 어떠한 의미와 연관성을 가지고 차례 차례 전개되는 것이어야 한다. 발전의 모든 단계는 그 앞 단계에 의해서 조건 지워지거나,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려 진행된다는 데에 대한 가시적인 言明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과거의 역사에 대하여 <왜냐>하고 질문하기 위하여서는, 동시에 우리가 현 싯점에서 <어디로> 향하고 있느냐에 대한 대답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역사학의 탐구에 있어서도 객관적 사회역사적 사실의 규명이란 지극히 어려운 과제이다. 과거 역사 속의 진상을 정확하게 알려면, 역사 속의 인물의 행위에 대한 심리나 의도를 분명하게 알아야 하고, 동시에 기록된 사료 속에 기록자의 주관적 의도를 분명하게 배제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는 것은 올바른 국가관을 갖는 것보다 훨씬 난해한 과제일 수 있다. 정부 주도하에 올바른 역사 바로 세우기가 성공적이기 위하여서는, 올바른 국가관과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 나아가 균형잡인 현실인식과 미래지향적 역사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단지 과거의 비리를 들추어 이를 응징하고 처벌하며, 보복하는 것이라면, 과거에 대한 증오심을 길러 우리 사회를 갈갈이 찢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온 국민을 갈갈이 찢어 국론을 분열시킨다면, 정부가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게 될 것이다. 올바른 역사관의 확립과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개념 정립이 전제되지 아니한 역사 바로 세우기란 불가능하다. 역사 바로 세우기란 미명 하에 과거의 잘못을 폭로하는 식의 법률을 만들고, 그 법률에 의하여 소급적으로 과거의 행동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정신 나간 짓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노대통령과 친일진상규명법의 입법을 추진하는 집권당에 답변을 촉구한다. 현 정권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명명백백히 밝히라는 것이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역사발전이 어떠한 역사적 원칙이나 법칙 또는 공식에 의하여 역사발전이 진행되는 것이며, 역사발전의 지향점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역사적 진상을 규명하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것이 설득력을 가지고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어떠한 현실인식과 미래에 대한 비젼을 바탕으로, 과거사의 진상을 규명할 것인가에 대한 관점을 모든 국민에게 설득력 있게 밝혀야 한다. 그래야만 역사가 바로 선다.

 

친일 진상규명법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포함된 데 대하여,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친일 진상규명법이 악법일 뿐 아니라,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진행되는 것이라 비난했다. 그리고 박 전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해볼 테면 해볼라 항변했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진상규명, 의문사 진상규명이든 친일진상규명은 역사가의 역사적 탐구의 영역이 아닌 법률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이는 죄형법정주의, 형벌의 시효의 개념을 완전히 무시하여 법적 안정성을 파괴하고 이루어지는 소급입법을 통하여 진행되고 있다.

 

김일성은, 레닌(Vladimir Ilich Lenin)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극도로 달한 제국주의 시대에 활동하면서, 마르크스가 발견한 자본주의의 발생, 발전, 사멸에 관한 법칙에 기초하여, 자본주의의 최고의 단계이고, 최종 단계로써의 제국주의의 본질과 역사적 지위를 밝혀, 그 멸망의 불가피성을 논증하고, 처음으로 일국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에 대한 이론을 명확히 내세웠다고 평가했다.

 

나는 현 정부에 묻고 싶다. 친일 진상규명법이 반제국주의, 반미 자주화 운동의 차원에서, 사회주의 혁명 전략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냐 묻고 싶다. 국민이 참여, 국민이 사회역사의 주체가 되며, 사회발전의 동력이 되는 사회로의 발전을 모색하는 것을 역사발전이라 말하겠느냐 묻고 싶다. 역사의 주체는 근로인민대중이며, 반동적 착취계급은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없고, 반동적 착취계급으로부터 국민과 대중이 승리한 참여 정부의 출범이 이러한 계급적 관점에서의 역사발전이라 생각하느냐 묻고 싶다. 이러한 나의 견해가 참여 정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라면 바로 잡아주길 기대한다.

 

참여정부의 정체가 무엇인가?

노대통령 집권 2기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말로는 상생과 화해를 외쳐왔지만, 보수는 무조건 개혁을 거부하고 반대만을 일삼는 집단으로 규정해버리고 배제의 정치와 배타적인 독단의 정치를 행했었다. 노대통령에 대한 낯 뜨거운 우상화와, 온 국민 노사모되는 것이 개혁의 성공이란 망발이 주장되었다. 부패척결이란 이름으로 정적을 숙청하기 위한 방법으로 <고비처>신설이 추진되었다. 간첩죄 전과가 있는 자가, 조사관이 되어 군 사령관을 조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기소된 거물간첩 송두율 같은 자의 재판에서 판사는 그 죄를 엄중히 묻겠다고 하면서 그를 민주화 인사로 칭송하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졌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며 지금 대한민국은 적화 중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게 된다.

 

마르크스주의는 엄격한 결정론에 입각한 역사주의의 입장을 취한다. 사회 역사의 운동의 법칙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던 마르크스주의는 스스로 <과학적 사회주의>임을 내세웠다. 과학적 사회주의가 과거의 역사의 탐구를 통하여 사회가 움직이는 거시적인 일반적 법칙을 발견하는 데 성공적이었기에 과학적 사회철학의 창시자로써 마르크스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믿는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상적 사회제도를 건설하는 수단과 방법을 가르치지 못했다.

 

주체사상은, 마르크스가 하지 못한 이상적 사회제도를, 김일성이 이를 실천하여 위대한 주체조선을 건설하였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주체철학이 인류철학 발전에 혁명적 발전을 이룩한 철학이라 터무니없는 망상에 가까운 말을 늘어 놓고 있다. 주체철학은 선행한 노동계급의 철학이 이루어 온 사상이론적인 업적을 옹호하고, 창조적으로 발전시키는 가운데 새롭게 창시된 철학이며, 철학의 근본문제, 인간관, 세계관, 사회역사관을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새롭게 제기하고 창조적으로 해명한 철학- 인류 철학사에서 처음으로 밝힌 위대한 진리라 말을 한다.

 

주체사상은 민족 모순, 계급모순을 극복하여, 미제국주의자를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수령과 당의 영도 하에 이룩하자는 대남적화전략일 뿐이다. 민족의 태양이고 어버이이신 수령님, 위대한 선군령장이신 김정일 장군님 말씀을 거역하면 절대로 안되는 사상. 요딴 것에 사상이나 철학이란 말을 붙이고 있으니 가소로운 일이다.

 

4.15총선으로 집권당은 의회 제 1당이 되었고, 대통령 마음대로 법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대통령이 자신의 마음대로 법을 만드는 것을 나는 독재정치라 부른다. 대통령이나 국가 권력기관이 그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당연히 지켜야 할 절차를 무시하고, 자의적 권한의 행사를 위해 대통령 직속의 위원회를 만든다. 그리하여 기존의 법 체계를 훼손하며 국가시스템을 고비용 저효율의 저질 시스템으로 망가뜨린다. 대통령은 자의적 재량권을 확장하고, 인사권을 확장하며, 보다 많은 돈을 주무르게 된다. 국민의 혈세는 어이없이 낭비되고, 되는 일은 없고 공무원의 업무의 효율과 사기를 떨어뜨리고, 국가권력은 타락하게 된다.

 

지금 노무현 정권의 개혁은 2개의 중심 축으로 움직이는 듯 여겨진다.

의문사 진상규명과 친일진상규명 운동이 대표적 본보기라 할 것이다. 이를 통하여 현 정권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다시 말해 의문사 진상의 성격은 반파쇼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계급모순을 극복하는 것이며, 친일진상을 규명하여 민족의 정통성을 회복하여, 반제국주의 자주화 운동을 가열차게 벌여감으로써, 대한민국과 민족의 정통성을 세워가자는 이야기이다. 다시말해 주체사상의 대남적화전략에 의하여, 북한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이 실현되기 위한 선결조건들을 현 정권이 앞장 서서 하나씩 착착 진행되는 현실에 대한 우려이다.

 

친일청산을 말하며, 역사 바로 세우기를 말한다. 민주주의를 이 땅에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과거 폭압적인 독재정권하에서 목숨을 잃은 민주화 인사에 들에 대한 의문사 진상규명이라면 백 번 찬성이다. 하지만 어찌하여 빨치산 출신의 미전향 장기수가 졸지에 민주화 인사로 둔갑하는가?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자주국가로써의 위상을 확립하고 진정 민주주의 국가질서를 위한 미래지향적이고 건설적인 친일청산이라면 얼마든지 찬성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규정이 없는 나아가 미래지향적이고 건설적인 대한민국에 대한 비젼이 없는, 단지 기득권층으로부터 기득권을 빼앗고, 보복을 하기 위해, 국론을 분열시키고 우리사회를 갈갈이 찢기 위한 개혁이라면, 현 정권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그릇된 개혁이라는 것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마르크스에 말에 의하면 공산주의자에게,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 하지만 북한에는 선군영장이신 김정일 장군님의 주체조선이 주체93년 연호를 달고 세습왕조처럼 버티고 있다.

 

문제덩어리인 대한민국임을 잘 안다. 하지만 이 대한민국을 세우고 지키기 위해, 수많은 순국선열이 고귀한 목숨을 던져 지켜온 나라이다. 타락한 집권욕, 열등감에서 비롯된 증오심 그리고, 무지에 비롯된 되지 않을 개혁으로, 온 나라를 말아먹는 일을 벌이고 있다. 이러다 끝내 우리 대한민국을 김정일씨에게 고스란히 진상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상황에 대하여 온 국민은 경각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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