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국가론2] 형법과 형사소송법의 이념

2005-04-27 09:52:23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사회는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국가는 인간의 사악함 때문에 만들어 졌다. 사회는 인간을 애정으로 결합시킴으로써 적극적으로 우리의 행복에 이바지 하고, 국가는 을 억제함으로써 소극적으로 우리의 행복에 기여한다. 사회는 그 성원들의 화합을 조성하지만 정부는 구별을 만든다. 사회는 그 성원의 보호자이고 국가는 성원의 처벌자의 역할을 한다.” 말했다

 

사회는 이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사회통합을 달성하고,

국가는 규제와 처벌을 통하여 국가목적을 달성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가장 작은 정부는 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파괴하는 범죄만을 처벌하고 다른 나머지는 국가의 성원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좋은 정부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란, 정부란 브르죠아의 이익을 대변하는 행정위원회에 불과하다 말하며 국가 존립 자체를 부정하였다. 근대 자본주의 국가의 발전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입법은 압력단체나 통치자의 권력의 확장방식으로 사회의 공정성을 파괴하며 성장하였다.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고전적 자유주의적 경제학이나 신자유주의적 경제학을 막론하고, 자유주의적 경제학은 시장에 국가개입을 반대한다. 규제가 적은 사회일수록 건전한 사회라 주장하는 것이 자유주의 이념이다.

 

이 때 말하는 규제의 최소화란 국가 경제행위에 개입할 때 야기되는 시장질서의 왜곡으로 인하여 시장자율성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기에, 국가주도의 경제발전이란 필연적으로 붕괴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자유주의적 경제학의 이념이다.

 

하지만 최소한 국가질서가 확실하게 확립되어 있지 않는다면, 사회질서는 물론 시장질서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때 최소한의 국가질서란 범죄로부터 국가를 방어하는 경찰국가의 기능만을 가진 국가질서- 다시 말해 범죄와 위법행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국가질서이다.

 

이 최소한의 국가질서가 어떠한 형태의 국가에 있어서도 국가질서의 근본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범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는 존립할 수 없다.

 

 

 

1. 형법의 이념

 

죄는 벌해야 한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해도 죄는 벌해야 마땅하다. 그래야만 정의로운 사회와 정의로운 국가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건전한 국가가 존립하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최우선으로 범죄로부터 국가와 사회가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하기에 죄는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죄를 처벌하지 않으면 정의로운 국가존립은 아니 국가라는 조직 자체가 존립 불가능하게 된다.

 

범죄가 발생하면 사회 안정이 깨어지고 정의의 국가질서는 훼손된다. 정의사회를 복원하기 위하여 죄는 반드시 벌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고, 그러기에 모든 인간은 범죄에 대하여 고발할 권리를 갖는다. 나아가 범죄자 또한 이성이 있는 사람으로 존중되고,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아갈 권리와 건전한 삶을 살 권리에 기초하여, 자신의 죄에 대하여 처벌할 권리를 갖는다.

 

헤겔(G.W.F. Hegel)은 그의 <법철학>에서

범죄자 자신의 권리로서의 형벌(Punishment as a Right)을 말하며, 범죄자는 理性者로 존중되고, 형벌은 범죄자 자신의 권리로서 그의 행위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범죄자 자신을 위해서도 죄는 마땅히 벌해야 한다. 훼손된 정의사회를 위하여 죄는 반드시 벌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刑事司法正義가 바로 설 수 있다.

 

작금의 有錢無罪 無錢有罪의 잘못된 관행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실형을 받았던 피고인이 아주 영향력 있는 변호인을 선임하거나, 수명의 변호인을 선임해서, 항소심에서 벌금형으로 풀려날 수 있는 현실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항소하면 할수록 변호사 비용을 많이 들이면 들일수록 형량이 줄어드는 현실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박상천 전 법무장관은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었다.

범죄행위가 비슷하다 할지라도 양형이 다르게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거예요. 또 어떤 의미에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습니다. 똑같은 절도를 저질렀다 해도 아버지가 없고 어머니는 매일 파출부로 일을 나간다면 부모있는 부자집 아들보다 재범할 위험성이 많지 않겠습니까. 그러다보면 가난한 집 자식은 소년원에 가고 부잣집 아들은 풀려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계적으로 양형을 평등하게 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단지 박 전 장관만의 생각 아닌, 여전히 법조계 전반에 상식처럼 통하는 생각이다. 이는 왜곡된 우리의 저질 법률문화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바른 刑罰이란 범죄에 상응하는 형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범죄자와 다른 범죄자와의 관계에서 그 양자의 책임에 비례하여 처벌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온전하게 실현되어야 刑事司法正義가 바로 설 수 있다. 훼손된 정의를 위하여 죄를 벌하여야 하는 것이 刑事司法平均的正義라면, 범죄자 간의 책임에 비례하여 공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것은 刑事司法配分的正義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刑事司法에서 平均的正義配分的正義 모두를 온전하게 구현해야, 국가의 기강이 바로 선다.

 

사회는 이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사회통합을 달성하고, 국가는 규제와 처벌을 통하여 국가목적을 달성한다는 국가의 본질적 성격을 이해한다면, 나아가 국가의 본질은 규범적 강제질서라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형벌의 공정성이 국가기강의 근본 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형벌이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 정의 사회질서는 기대할 수 없고, 정의사회 질서 없이 사회는 온전한 통합을 이루어낼 수 없고, 당연한 귀결로 국가는 국가목적을 온전히 수행할 수 없다. 범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지 못한다면 사회 안정과 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 안정과 평화가 없는 사회가 번영을 구가할 없음은 자명한 것이다.

 

형사사법정의가 온전하게 구현되어 있고 준법정신이 보편화된 사회라면, 법조계에서 변명거리처럼 말하는 재범방지를 위한 양형의 재량적 폭은 형사정책 운영 상 충분히 논의될 수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국가권력이나 국민 모두 형편없는 준법정신을 가지고 있고, 서울 부산에서 똑 같은 범죄에 대한 양형이 다른, 법의 권위가 송두리 채 실종된 난장판의 우리현실에서, 유전무죄 유전무죄에 대한 법조계의 이러한 시각은 刑事司法正義本末顚倒시키는 무지한 발상이라 비난받아 마땅하다. 지금 우리 사회의 질서를 바로 잡으려면 을 바로 세운다는 차원에서나, 국민화합을 위해서도 무엇보다 형벌을 엄정하고 공정하게 집행하는 일이 개혁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마땅하다.

 

正義法的安定性, 合目的性을 추구하는 刑法理念意義,

첫째, 형벌은 범죄로부터 정의로운 국가나 사회를 보호하는 수단이다.

둘째, 형벌은 공정하고 정의롭게 행해져야 한다.

 

형벌은 어떤 법률의 보호법익을 구현하는 수단이다. 복잡한 현대사회는 수많은 법률에 의하여 규율된다. 만약 법률의 의사가 위법행위에 의하여 침해된다면 사회질서는 유지되지 못하고, 개인의 권리는 보장되지 못한다. 이러한 법률의 의사를 보호하고 사회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다름 아닌 형벌이다. 흔히 검사를 체제수호의 선봉에 선 공익의 대표자라 말한다. 이는 형법의 이념을 온전히 구현하는 것은 刑事司法正義, 나아가 正義國家, 社會를 건설할 수는 출발점이 된다.

 

 

 

2. 형사소송법의 이념

 

 

건전한 국가의 존립을 위하여 죄는 벌해야 된다는 것이 형법의 이념이다. 절대왕정시대에도 전제국가에서도 죄는 벌해왔다. 민주주의 발전은 국가권력이 오남용으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고 인권을 발전시켜온 역사이다. 특히 국가 형벌권이 남용되고 오용된다면 무고한 사람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민주주의적 법치국가에서의 형법의 이념은 <죄는 벌하여야 한다>는 가치와 <적법절차에 의하여 입증된 죄만을 처벌해야 한다>는 가치가 동일 한 가치를 지닌다. 열명의 범죄자를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되는 것이 민주주의 법치국가의 형법이념이다.

 

그러하기에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 무엇보다 국가형벌권을 행사함에 그 절차를 철저히 법률로 통제하고, 권력분립의 원칙에 의하여, 강제수사 등에 대하여 사법적 통제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국가권력에 의한 형벌권의 오남용을 방지하고, 수사에서 공판 그리고 재판의 집행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국가권력 행사를 엄격하게 규제하는 법이 형사소송법이다.

 

형사소송법이 온전히 지켜지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는 곧 민주주의가 제대로 시행되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의 문제이다. 형사소송법의 이념은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의 준수라는 말 속에 함축되어 있다. 나아가 형사 소송법의 이념은 모든 행정의 원칙을 포괄하는 법치국가의 근본 원리를 함축한다.

 

행정의 근본원리는 인간의 감정과 주관이 배제된, 몰인정 (impersonality)한 객관성에 기초하며 전문성이 보장되는 합리적인 것이어야 한다. 평등대우와 과도제한 금지는 행정의 대원칙이고, 이는 무엇보다 행정절차가 적법절차를 준수할 때 가능하다. 관리의 재량권의 행사가 부당하게 개인의 권리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아니된다. 개인의 권리나 자유의 제한은 반드시 법률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민주주의 이념을 구현하는 법치국가에서 이러한 원칙을 가장 철저하게 지킬 것을 요구하는 것이 다름 아닌 국가형벌권의 행사이다. 형벌의 공정성이 국가기강의 근본이라면, 형사소송체계는 국가시스템의 핵심 중에 핵심사항이다. 국가권력에 의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가장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는 소지가 있는 것이 다름 아닌 형벌권의 행사이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 이념을 실현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이 국민의 인권를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가에 대한 척도가 된다. 형사소송법은 국가형벌권의 행사가 권력분립의 원칙에 의한 사법적통제라는 외부적 통제를 받고, 적법절차의 철저한 준수라는 내부적 통제를 받는다.

 

피고인은 확정판결이 있을 때가지 무죄로 추정되며, 형사소송의 당사자의 지위에서 자신의 피의사실을 항변할 수 있는 지위와 권리를 같는다. 형사소송법은 형사피의자가 수사과정에서 법률에 의거하지 아니한 부당한 방법으로 인권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한다. 적법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수사기관의 수사와 이에 근거한 검사의 공소사실은 그 진정성을 의심받게 되고 나아가 소송요건 이 不備된 된 것으로 보아 공소기각이나 면소판결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이 형사소송법의 수사기관의 권한 행사가 적법절차를 무시한 과도한 제제로 인한 국가권력의 오남용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의 근본이념은 국가권력에게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의 준수를 요구하고, 국가형벌권이 감정이나 정치적 이해에 의하여 오용되고 남용되는 것을 철저히 금지한다. 형사소송법은 무엇보다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로부터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국가권력은 본질적으로 건전한 사회를 보호하기 위하여, 범죄나 위법행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처벌권의 성격을 갖는다. 국가는 범죄와 위법행위를 예방하고 처벌함으로써 형사사법정의 구현하고, 사회안정을 통한 정의사회의 기초를 마련한다.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구현하는 법치국가는 형사소송법의 이념을 온전히 구현할 때 비로소 국가의 기강이 확립될 수 있다. 형사소송법은 무엇보다 국가가 국가형벌권을 오남용하는 것을 방지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여,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기강의 근본법이다.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적 법치국가의 국가질서는 그 무엇보다 형사소송법에 의하여 보장되는 것이다.

 

최근 정부 여당이 설립하고자 하는 공수처법은 이러한 형사소송절차의 근간을 훼손하여 국가기강을 문란케 한다.

 

공수처의 수사란 처음부터 형사소송절차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이 시작되게 되어 있다.

원래 시민단체 등에서 검찰권의 부패를 기소독점에서 비롯된 것이라 잘못 알고 수사권과 공소권을 분리시키는 것과 검찰 이외에 공소권을 갖는 수사기관을 만드는 것이 검찰을 견제하고 검찰의 부패를 막는 것이라 생각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시민단체의 주장이란 그야말로 형사소송법 체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공수처법에 의하면 부패와 비리의 냄새가 나면 범죄혐의자의 가족까지 수사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예를 들면 여론의 지탄을 받을 만한 사안이면 무조건 구속수사 같은 것이 이루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이다. 공수처법은 형사소송절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공수처법 제14(수사권의 발동)는 수사처는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때에는 즉시 수사에 착수한다.

1. 고위공직자 또는 그 가족의 범죄행위를 인지한 때

2. 범죄행위에 대한 고소.고발이 있는 때

3. 15조의 규정에 의하여 국회. 감사원. 대검찰청 또는 국방부로부터

수사의 의뢰가 있는 때 수사권을 발동(?)하게 되어 있다.

 

형사소송법 제195조는 검사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 과 증거를 수사하여야 한다며, 증거에 기초한 수사를 수사개시조건을 명시한다. 나아가 형사소송법 제200조부터 215조는 체포로부터 구속 그 이외의 강제적인 수사처분에 대하여 영장주의를 채택하여 수사에 대한 엄격한 사법적 통제를 요구하고 있다.

 

공수처법에는 구속 등 강제수사의 조건 따위는 아예 표시되어 있지도 않다.

 

부정부패 척결의 국민 요구라는 미명하에, 대통령 직속의 부패방지위원회 산하에 공수처를 설립한다 한다. 그리고 공수처의 특별 수사관이 형사소송법체계의 근간을 자의적 판단에 의하여 뒤흔들 수 있는 법을 만들고 있다. 그야말로 國紀를 뒤흔드는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의 정신나간 망발이라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

[법치국가론1]국가의 개념에 대한 일반적 오해

2005-04-24 16:51:47

 

국가의 개념에 대한 일반적 오해

 

 

최근 친미가 애국이냐, 반미가 애국이냐 식의 논란이 뜨겁다. 어떤 이는 박정희를 국가를 일으킨 영웅이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반민주적 행태를 꼬집어 그를 비난한다. 사람들에게 국가가 무엇인가 물어보면 대답이 시원치가 않다. 국가발전이 무엇이냐 말하면 어떤 사람은 민주화의 진전 정도로 말하고 또 어떤 이는 경제발전이 국가발전이라 말한다. 심지어는 한승조 같은 쓰레기 같은 지식인은 탈산업사회, 세계화 시대에서는 친일행위가 애국애족행위로 평가 받을 세상이 온다 헛소리를 해 된다.

 

국가관이란 국가를 통일적인 전체로 보아 그 목적, 의의, 가치 등에 관한 견해를 말한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 등 정치에 관하여 말하는 국민들 너 나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애국을 말하고 국가발전을 말한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빠져있다. 국가가 무엇이냐는 정확한 정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국민적인 합의가 없다.

 

이러한 혼란이 야기되는 데에는 국가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그릇되었기 때문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란 일정한 영토와 그곳에 사는 일정한 주민들로 이루어져, 통치조직을 갖는 사회집단이라는 것이 사전적 의미의 국가의 개념이다. 국가를 형태별로는 왕정, 귀족정, 민주정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전제국가도 국가이고, 독재국가도 국가이며, 공산주의 국가도 국가이다. 다시 말해 사전적 의미의 국가로는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국가의 의미가 정확하게 이해될 수 없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민주공화국이다. 분명하게 못박고 있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에서는 민주주의 국가만이 국가로써의 온전한 의미를 갖는 국가일 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란 국가의 의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친일행위가 애국애족행위라는 망언이 나오고, 박정희가 국부이고 영웅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잘못 각인 되어 있다. 이러한 그릇된 생각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국가정통성을 그 본질에서부터 훼손한다.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없이, 그냥 사전적 의미의 국가라는 개념을 두리 뭉실 잘못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혼란이 오고, 우리 사회는 저마다 애국 애족을 외쳐대며 당파적 이익추구에 여념 없이 국가발전 방향조차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다. 여야 할 것 없이 새로운 국가 비젼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이 오로지 당리 당략에 입각한 권력투쟁만 난무한 채, 사회갈등이 심화되고 우리 사회는 혼돈과 미망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건국이래 한번도 국가의 정통성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한 채, 대한민국 헌정사는 그야말로 오욕의 헌정사를 걸어 왔다. 역대 대통령 중 그 어느 누구도 성공한 대통령이지 못했다. 불과 반 세기 남짓한 세월 동안 9번의 헌법 개정을 한 나라-이것이 국가정통성을 뿌리 내리지 못한 우리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헌정사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국가란 국민을 잘살게 해주기 위해 존립해야 된다고 정도로 막연하게 이해하는 것이 거의 대다수 사람에게 그릇되게 인식된 국가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지금 미국은 세계최강의 위치에서 국가의 번영을 누리고 있다. 미국이 지금의 번영을 누릴 수 있는 배경에는 지난 200여 년 민주주의 발전사에 있어서 가장 균형 잡힌 국가관에 기초하여 건국하였고, 처음부터 통일적인 민주주의 이념의 국가관에 기초하여 새롭게 건국된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미국민주주의의 출발에는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왕권이나 귀족 세력 구 제도(ancien régime)가 없다. 미국은 출발부터 왕권이나 귀족의 반발 없이 서구의 그 어느 나라보다 온전한 관점으로 민주주의를 시작하고 민주주의 이념을 꽃피워 세계 최강국의 대열에 오를 수 있었다.

 

민주주의 국가란 무엇인가? 미국 건국의 이념적 토대를 제공하였던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은 그의 저서 상식(Common Sence)의 맨 처음 시작 부분에서 아주 적절하고 간략하게 국가(정부)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어떤 저술가들은 사회와 국가를 혼돈하고 이들 간의 구분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 국가와 사회는 서로 다른 것이고 그 기원에부터 다른 것이다. 사회는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국가는 인간의 사악함 때문에 만들어 졌다. 사회는 인간을 애정으로 결합시킴으로써 적극적으로 우리의 행복에 이바지 하고, 국가는 을 억제함으로써 소극적으로 우리의 행복에 기여한다. 사회는 그 성원들의 화합을 조성하지만 정부는 구별을 만든다. 사회는 그 성원의 보호자이고 국가는 성원의 처벌자의 역할을 한다.

 

토마스 페인은 국가를 일종의 필요 악으로 이해한다.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제3대 미국 대통령 제퍼슨(Thomas Jefferson)정부 없는 신문보다는 신문 없는 정부를 택하겠다.” 말한 것은 이러한 국가관에 바탕에 나온 말이다. 전제국가나 절대왕정국가에서, 왕도정치를 해왔던 동양의 국가에서 제퍼슨과 같은 말을 했다면 그를 온전한 정신이 있는 자로 볼 사람이 있을까? 제퍼슨 말에 공감을 표시할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말은, 민주주의 이념에 입각한 토마스 페인이 말한 <국가의 성원에 대한 처벌자>로서의 국가관을 온전히 이해해야 비로소 납득될 수 있다.

 

이러한 민주주의 국가관은 근대법치국가의 발전 과정에서 국가의 본질을 규범적 강제질서로 이해하는 데에 이르도록 발전시킨다. 국가란 국가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에 따라 물리적 강제력을 동원할 수 있는 규범 강제질서이다. 국가는 사회 전체의 공동 을 추구하는 국가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이를 저해하는 사회적 유인과 행동에 대한 규제를 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물리적 강제를 동반하는 처벌권을 갖는다.

 

사회는 이해와 협력을 바탕을 사회통합을 달성하고,

국가는 규제와 처벌을 통하여 국가목적을 달성한다.

 

국가권력은 국가 목적과 국가의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하여, 개인의 자유를 규제하고 국가목적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형벌을 부과하기도 한다. 이러한 까닭에 국가권력의 강제력은 철저히 법률에 의하여 통제될 때 한하여, 민주주의 이념은 온전하게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국가권력의 행사는 적법절차를 거쳐, 정당하고 투명하며 일관되게 이루어져야 한다. 나아가 잘못된 국가권력 행사에 대한 국민의 이의 제기, 개선을 위한 노력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제도를 가져야 명실상부한 민주주의 국가이다.

 

국가는 본질적으로 규범적 강제질서라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이념이고 근대 법치국가의 이념이다. 그리고 민주주의 발전은 이러한 국가권력의 오남용을 억제하는 제도적 장치의 개발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력분립론이니 법의 지배의 이념에 기초한 법치국가가 민주주의국가의 근간이다.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보장 헌법이념을 실현하려는 헌정국가만이 민주국가이다. 나아가 국가권력의 행사를 법으로 통제하여 국가권력의 오남용에 의한 국민의 권리를 침해되는 것이 없도록 하여야 민주주의 국가이다. 국가의 정통성은 헌법에서 비롯되며 모든 국가기관의 권력이 법에서 나와야 하고 국가권력의 행사가 적법할 때 한하여 정당성을 갖게 된다. 권력이 恣意적으로 법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 법으로부터 권력이 나오는 원칙이 확립될 때 비로소 민주주의 이념은 제도적으로 정착될 수 있다.

 

국가의 정통성은 헌정질서를 확립하고 모든 국가기관의 법률에 기속(羈束)이 실천될 때, 나아가 법이 국민을 안전을 보장하고 사회안정과 평화를 보장할 때, 국가의 지속적 번영은 가능하다.

 

국가목적이 경제성장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민주주의적 국가관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경제성장이 국가의 발전의 한 척도로 이해할 수 있다. 박정희는 경제성장의 미명 하에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가가 국민의 인권을 탄압하고 국가가 마치 사익집단처럼 운영했다. 당연한 귀결로 경제는 성장했지만 성장할수록 지역 간 계층 간의 갈등은 심화되고, 행정 상의 편의나 특정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입법 방식이 지속적으로 헌정질서 국법질서의 통일성을 파괴해 왔다. 온전한 의미의 민주주의 국가관을 바르게 이해했다면 박정희의 업적이란 사상누각이라는 것을 쉽사리 알 수 있게 된다.

 

역사는 우리의 현재 이해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고, 우리의 현실에서 우리가 가꾸어 나아가 새로운 국가질서가 무엇인지에 의하여 과거의 역사는 평가된다. 우리가 추구해야할 국가의 이념과 새로운 국가질서란 마땅히 자유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구체화하는 국가질서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방법으로 헌정국가를 확립하고 법치국가질서를 확립하는 시대적 과제임을 올바르게 인식한다면 박정희는 전횡적 권력에 탐착하여,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국법질서를 파괴한 국가의 반역자로써의 그의 죄상을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박정희 식의 국가운영방식은 아직도 극복되지 못하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표류하고 있다. 박정희는 역사의 쓰레기 통에 내던져야만이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의 정통성을 법의 지배의 이념을 매개로 헌법 위에 공고하게 확립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정치의 핵심과제는 경제성장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의 핵심과제는 조화와 균형, 화해와 협력을 통하여 사회적 연대성을 도출하고 결집된 국민적 역량을 극대화 하는 제도적 환경을 조성해 나아가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데에 있다. 경제성장은 이러한 국가환경의 당연한 결과물로 나오게 되는 것일 뿐이다.

 

박정희가 성공한 지도자로 평가한다면 그것은 국민통합을 강압적 방식에 의하여 일시적으로 이루어낸 데에서 가능한 것이다. 박정희의 정치란 국민의 이기심을 자극했을 뿐이 <강압과 탐욕>의 의거한 저열한 정치이다. 박정희 정치가 지속적 번영이 불가능한 저열한 정치 방식임을 바르게 안다면, 오직 타락한 기득권층에 대한 <증오와 파괴>만을 앞세운 저질 포퓰리즘 또한 새로운 국가질서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건설할 줄 모르는 개혁이라는 이름의 파괴는 그 필연적 귀결로 현 집권층에게 스스로 무덤을 파게 되는 잘못된 정치임을 바르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정질서와 국법질서는 경제성장의 미명하에 성장과 실적주의, 행정편의주의 만을 추구한 수많은 잘못된 입법으로 철저이 망가졌었다. 지난 18년 민주화과정은 제데로 된 민주주의 국가질서를 확립하지 못하고, 독재권력을 파괴하는 것이 전부였던, 천박한 자유주의에 기초한 잘못된 민주화로 거덜이 나 버린 것이 작금의 실정이다.

 

올해로 해방 60년을 맞는다.

가장 시급한 국가적 과제는 진정한 의미의 국민화합의 국가질서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온 국민 그 무엇보다 국민적 화합과 사회적 연대성을 회복하는 길만이, 우리가 처한 혼돈과 미망의 현실을 타개하고 우리가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 유일한 비상구임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문명사적인 변혁의 시대를 살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강대국의 세력 다툼의 각축장으로 되어가고 있는 냉혹한 국제정치- 그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에 우리가 서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것이 우리가 처한 절대 절명의 시대적 과제라는 국민적 각성이 절실한 싯점이다.

 

헌정질서를 확립하는 길만이 국가정통성을 확립하는 길이며, 우리 모두가 화해하고 협력하는 밝은 미래의 국가질서를 만들어 가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가 진정 민주주의를 이 땅 위에 뿌리 내리려면 헌정국가만이 제대로 된 국가라는 사실을 올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오직 법치국가만이 민주주의 이념을 실질적으로 구체화할 수 유일한 길이라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아닌 원칙이 지배하는 국가질서를 가꾸어 나아가야 한다.

역사 바로 세우기의 허와 실

2004-08-17 14:14:05

 

 

지금 우리는 문명사적 변혁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지식정보화 사회이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수 많은 정보 속에서,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자아와 인간실존에 대한 성찰 없이 주체성을 잃고, 오직 자신의 이기심의 극대화를 위해, 시류의 흐름에 쫓아다니기 급급한 바쁜 삶을 살고 있다고 여겨진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 자신이 죽는 일 것이다. 인간의 삶 중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반성하고 허물을 고쳐가면서 성장한다. 과거를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은 긍지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개척한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은 사람은 과거를 반성하여 스스로를 개선하며, 보다 나은 미래를 도모한다. 과거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현재의 자신의 역량와 균형 잡힌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보다 성공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지금 우리는 과거를 얼마나 제대로 반성하고, 우리가 처한 현재의 상황에 대한 온전한 인식과 정돈된 삶의 질서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처한 우리의 앞날은 결코 낙관적이 아니다. 세계화는 우리에게 무한경쟁의 시대를 열어 놓았고, 국제질서는 경제전쟁과 패권주의시대로 흘러가는 양상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까? 약육강식의 강자의 논리를 따라서 강자의 길을 가야 하는가, 아니면 약자와 강자가 함께 사는 공생공영의 길로 가야 할까? 일방적으로 힘을 키우느냐, 아니면 도덕을 바탕으로 공동의 번영을 추구하는 힘을 키우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우리가 힘의 길을 간다면 그 길은 평화의 파괴로 이어질지 모른다. 인간의 생존에서 힘은 절대 필요한 것이지만 힘을 과도하게 믿는 사람은 힘 때문에 파멸할 수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과 위기의 국가 상황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경제만을 국가 발전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처한 위기가 강성노조 때문이라 말한다. 그리고 강성노조를 때려부수는 길만이 우리의 살길이라 강변한다. 어떻게 때려잡는가? 국가성장의 목표를 세워놓고 이에 대한 장애적 요인을 강압적으로 모조리 제거하는 독재정치로 되돌아가자는 말인가? 가당치 않은 이야기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우리가 살 길이란 노동자와 기업인이 서로 공동의 번영을 모색해야 우리의 미래가 있다. 과거처럼 수출하는 기업에 특혜적 정책금융을 지원하고, 기업의 이윤추구에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노동운동을 전적으로 탄압하는 방식으로 기업을 이끌어 갈 수는 없다. 특혜적 지원을 받던 기업이 정부의 지원 없이 세계화된 시장에서 무한 경쟁을 벌이는 일은 벅차다. 게다가 지금까지 투명하지 못했던 기업지배구조는 노사화합을 깨뜨린 원인으로 작용하였고, 노사간의 대립은 그 화해의 접점을 찾을 수 없을 만큼 회복 불능의 불신과 반목의 깊은 골이 파여져 있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해 나아가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에 대한 기대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대립의 근본적인 원인은 부패한 국가권력과 유착된 타락한 기업운영 방식과 무관치 않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갈등의 근원적 이유는 성장위주의 삶을 지향하면서, 정당한 삶의 방법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결과가 잘못된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사회라면 그 사회에서 정당한 삶의 방식은 그 설 땅을 잃게 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면, 도덕성과 인간의 존엄성은 필연적으로 훼손될 수 밖에 없다.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더 이상 기존의 방식으로 성장이 불가능하고, 각종 사회문제의 발생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해결 능력을 초과하는 데에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전에는 당연히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들이, 이제는 더 이상 점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점차로 많아지게 된다. 경제적 관점으로는 경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경제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화해의 기반이 무너지고 불신과 반목이 증폭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우리 시대의 가장 절실한 문제는 성장과 민주화 과정을 겪으면서 파괴될 대로 파괴된 사회적 연대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우리가 개척해야 할 새로운 사회란 공생공영의 인도적 사회라는 것은 자명해 진다. 근대화, 산업화 과정의 지난 20세기는 공생공영 보다는 외형적 힘을 키우는 데에 주력하였다. 외세로부터 해방을 위하여, 남북분단의 대결구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힘을 키워왔다. 그 결과 지금 세계 12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했고, 일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의 국민소득을 누리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그 힘을 키우기 위해, 인권이나, 도덕이니, 문화니, 복지는 뒷전으로 밀어놓았다. 경제 성장 위주의 국가 정책, 그리고 배금주의의 개인과 집단 간의 이기심 확산은 인간으로써의 품위를 손상하고, 도덕과 사회 기강을 어지럽히게 되었고,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의 갈등을 증폭시킨 혼돈의 경제대국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개인과 기업의 이윤만을 추구하며 기업윤리도 개인 윤리도 땅에 떨어지고, 범죄의 급증과 수많은 사건 사고를 발생시켰다. 서로 힘을 모아 국가발전을 위하여 힘을 모아 노력했었던 과거는 잃어버리고,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사회적 책임과 국민 통합을 무시한 채, 지역간 이익집단간 노사간의 갈등은 첨예화 되며, 잘 되던 경제마저 침체의 늪에 빠졌고 지금 우리 경제는 발전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위기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경제성장위주의 시절을 경유하며, 우리는 과소비와 사치 향락을 일삼고, 근면한 삶의 태도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역사는 현재를 위해서 쓰는 것이다. 현재의 과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과거 역사의 해석은 달라진다. 죽어 있는 과거에 생명을 불어 넣고 미래로 나아갈 길을 찾아주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이다. 그리고 역사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이 史觀이다. 올바른 사관은 우리를 밝은 미래로 인도하고, 잘못된 사관은 자칫 역사에 올가미를 씌우고 우리를 어두운 미래로 이끌어 갈 수 있다.

 

바람직한 사관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지난 40여 년간 지속되어온 개발독재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고 진정 민주주의적 사회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아가 민족분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성과 새로운 국가의 발전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국가적 과제는 무엇인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국가 위기 상황은 국가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국가체제가 정당성을 상실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수진영에서는 현 정부의 좌경화 경향과 현 정부의 개혁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받아들이며, 현 정권의 국가 정체성에 의문점을 제기한다. 그리고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현 정권과 보수진영의 대립은 사회주의와 파시즘의 계급투쟁전선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러한 대립 국면의 지속은 우리 모두를 공멸로 이끌어 가는,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사생결단의 극한 대립으로 여겨진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의 과제를 이해하며, 이를 바탕으로 잘못된 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로의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믿는다. 그것은 헌법전문이 표방하는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확립하고 국가권력의 정당성를 확립하는 일이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구체적 삶에서 민주주의적 생활질서를 구현해 나아가는 것이다.

 

현재의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정당한 삶의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상황의 논리로 부정한 삶의 방식을 옹호하는 것을 용인한다면 정당한 삶의 질서는 바로 세울 수 없다. 밥을 굶었다 하여, 빵을 훔치는 것이 정당화되어서는 아니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 볼 때, 정당한 삶의 질서와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위해서 친일행위는 규명되어야 마땅하다. 민족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고, 새로운 미래의 비젼을 보다 구체적인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잘못된 과거의 문제에 대한 반성이 없이는 우리의 역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진전되지 아니한다. 친일청산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민족분단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국가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는 것이어야 한다. 친일청산의 방향은 사적유론자들이 말하는 우리가 처한 억압연관에 대한, 파괴나 해체 그리고 보복이나 처벌이 아닌, 새로운 국가 비젼을 열어가는 쪽으로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 설정한 우리의 국가적 과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그 잘잘못을 규명하는 차원에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기초로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일제시대의 과거사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적 국가질서를 확립하는 데에 있어, 과거 개발독재로 인하여 상실한 정당한 삶의 질서의 회복을 위하여, 경제성장위주의 개발독재가 가져온 부정적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 또한 마땅하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한다면, 정당한 삶은 그 설 땅을 잃는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가? 정당한 삶의 질서와 정의에 입각한 법질서로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적 화합의 기초를 다지는 것이다.

 

국가 권력이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정당한 권력의 행사가 가장 심각하게 훼손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부터이다. 박정희의 지배방식은 권력의 법적 제제를 무시한 것 뿐 아니라 삼권분립의 헌정질서마저 깡그리 무시하고 진행된, 전횡적이고 자의적인 저열한 통치방식이라 비난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박정희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으로 박정희를 비난하는 것이라 착각한다. 절대빈곤의 시대적 상황에서 국민소득 1만불 시대까지 이끌어 오는데 박정희의 리더쉽이 그 견인차 역할을 하였고 그 업적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독재정치의 유산을 청산하지 못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정당한 국가질서는 바로 세울 수 없다. 민주주의 헌정질서는 민주주의 실현의 전제조건이 된다. 민주적 헌정질서는 법치국가와 법의 지배의 이념으로 구체화되고 법치국가의 최우선 과제는 통치권자의 권한의 오남용을 방지하는 데 있다

 

박정희를 비난하는 나의 관점은 정당한 방식으로 행사되는 국가권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새로운 우리의 역사를 개척해야 할 리더쉽이란, 복잡하고 다양한 개인과 계층의 요구를 수용하고, 인간의 개성을 존중하는 리더쉽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강압적인 방식으로 국민을 획일화 하여 국가를 이끌어가는 리더쉽이 지금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데에 전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고, 역사가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면 민주주의적 리더쉽이란 고도의 사회적 감수성과 각종 학문적 지식을 동원하여 주어진 상황을 균형있게 판단하고, 사실적인 문제와 규범적인 문제를 적절히 조합하여, 국가조직의 활력을 이끌고, 국민 통합을 이끌어 내는 리더쉽의 관점에서 독재정치란 저열하고 조잡한 지배방식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무분별한 통일논의와 막연한 통일기대의 확산으로, 국가 체제에 대한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국가정체성은 불투명해 보인다. 현 집권당이 행하는 과거사 청산은 국가의 정통성을 바로세우고 민주적 헌정질서를 확립하는 과거사의 청산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과거사 문제로 극한 대립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사회주의와 파시즘의 계급투쟁 전선의 형성으로 비추어진다. 또 과거사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란 국가의 정체성의 확립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현 정권의 과거사 청산은 국가정체성의 확립이 아닌, 정략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나아가 북한의 대남전략에 이용될 소지가 충분한, 반제국주의 자주화 운동으로써의 친일청산과, 반파쇼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써 악의적으로 박정희 깍아내려, 박근혜 죽이려는 얄팍한 정략으로 비추어진다.

 

현 정권이 진행하는 역사 바로 세우기가 진정,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민주주의적 국가 질서의 확립을 위한 과거사의 청산이라면 지금 진행되는 수도권 이전 사업 같은 것은 절대 해서는 아니될 일이다. 국가시스템을 업그래이드 하면서 다른 프로그램을 작동하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다. 컴퓨터의 시스템 장애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모든 프로그램을 종료시키고 안전모드에서 실행해야 한다. 현 정권은 국가의 근간을 바로 잡고 국기를 바로 잡으려, 그 사회적 파장이 엄청날 수 있는 역사 바로 세우기를 주장한다.

 

단호한 어조로 나는 현 정권에 경고한다.

올바른 사관은 우리를 밝은 미래로 인도하고, 잘못된 사관은 자칫 역사에 올가미를 씌우고 우리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 현 정권의 역사 바로 세우기란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역사 바로 세우기가 아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현 정권의 역사 바로 세우기의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그것이 우리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역사 바로 세우기가 아니라, 정략적 차원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존립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사적유물론에 의거한 민중해방과 민족해방을 위한, 역사 바로 세우기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정권이 주장하는 역사바로 세우기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역사 바로 세우기인가, 아니면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위한 역사 바로 세우기인가.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징표가 있다. 수도권 이전을 강행한다면 현 정권의 역사 바로 세우기가 가짜라는 표식이 될 것이다.

 

21세기를 준비하는 올바른 역사의식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그것은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민족적 자긍심을 드높이고, 평화와 도덕을 존중하는 歷史觀이어야 믿는다. 우리의 자존심이 소중하기에 우리의 경쟁력을 키우고, 인간성의 회복과 도덕성을 기초로 인류애를 구현해야 한다. 가장 우리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신념에 기초하는, 민족적 세계주의요 세계적 민족주의를 이 땅에 구현하여야 한다 믿는다.

 

새로운 시대를 위한 민족주의

2005-03-15 12:22:30

 

 

<민족주의는 救國주의이다. 主義란 무엇인가. 주의란 일종의 思想이고 信念이다. 무릇 사람이 어떤 한 가지 일에 관하여 알맞은 이치를 탐구하면, 제일 먼저 사상이 생기고 사상이 철저하여지면 곧 신념이 굳어지고 신념이 강해지면 힘이 생긴다. 사람들이 家族주의 宗族주의를 숭배하지만 국가를 숭배하지 않는다. 민족주의란 한 마디로 國族주의(국가와 민족이 곧 하나라는 신념)라 말할 수 있다. 우리가 고금의 역사에서 민족 생존의 도리를 거울 삼아, 중국을 구하고 중국 민족의 영원한 생존을 바란다면 반드시 민족주의를 제창하여야 한다.>

 

三民主義 중에서 -孫 文-

 

 

1. 수난 당하는 민족주의

 

최근 곳곳에서 민족의 의미가 수난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한 술 더 떠, 민족주의적 색채를 강화하는 일본이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을 능멸하는 가운데,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의 친일예찬 친일 행위의 정당화의 발언이 양식있는 많은 이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나는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고 시급한 역사적 과제가 민족정신의 고양과 민족정기의 확립에 있다 믿는다. 민족정신을 바탕으로 5천년 이어 내려온 한민족 공동체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 나아가 이를 기초한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여 통일 조국의 미래를 모색할 때라 믿는다. 바로 세워야 할 민족정신이, 냉전 시대의 유물인 때 지나버린 반공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는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에 의하여 유린 당하는 현실에 대하여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스스로 보수를 자처하면서 민족이나 국가는 소멸될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확산되는 경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서구 정치사상사의 발전 과정에서 민족주의를 처음 제창하고 강조하였던 사람들은 보수 우파와 자유주의자들이었다. 민족을 부정하고 국가가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자들은 공산주의자들이었다. 노동자에게 조국이 어디 있느냐고 마르크스는 민족의 意義를 부정한다. 공산주의자들은 국가란 브르죠아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행정위원회에 불과하며, 모든 지배질서, 도덕률 법률 등은 브르죠아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허위의식의 소산이라 말한다. 노동자들의 삶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사슬을 끊어버리기 위해, 국가를 전복하라며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할 것을 역설하며 공선당 선언은 끝맺는다. 작금 우리 사회의 좌파가 민족을 강조하고, 우파를 자처하는 자들이 민족과 국가를 부정하는 현실이 아이러니칼하다.

 

민족을 부정하려는 자들에게 무슨 이념이나 소신이 있는 것일까? 그저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감추고 미국의 눈치를 보며, 북한을 적대시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반민족을 말하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조차 모르면서 심지어는 국가의 해체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역설하였던 박정희가 되살아난다면 자신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이들의 이런 꼴을 보고 무엇이라 말할까? 박정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였던 통치이념은 국민교육헌장에 잘 드러나 있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 에 이바지할 때다.> 말했던 박정희의 통치 이념은 민족주체성의 확립, 전통과 진보의 조화를 통한 새로운 민족문화의 창조, 개인과 국가의 조화를 통한 민주주의 발전으로 집약될 수 있다. 박정희는 국가를 단지 민족공동체로 이해한 것으로 여겨진다. 박정희는 국민통합을 상부상조의 전통에 의한 민족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국민교육헌장은 민족문화 창달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는 박정희의 통치 이념을 엿볼 수 있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 상조의 전통을 이어 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 정신을 드높인다.> 박정희가 말하는 국민정신이란 다름 아닌 민족 정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박정희는 국가목적과 국가이념을 구현하고 동시에 국민통합과 평화의 전제조건으로써의 강제적 규범질서인 국가의 본질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최근 극우 세력에서 주장되는 친일예찬 또는 반민족적 친일행위를 정당화하는 주장이 확산되는 것이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상황의 논리를 들어 그릇된 삶이 정당화된다면 올바른 삶이란 그 설 토양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친일행위가 정당화된다면 밝고 건강한 사회를 가꾸어 가려는 노력과 우리의 주체성의 확립을 기초로 한 자주국가, 나아가 통일국가를 모색하는 노력은 시작조차 할 수 없다. 민족이란 세계화의 시대에 없어져야 할 개념이라며 그야말로 민족이나, 민족주의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에서 비롯된 단지 정략적 발언이 확산되는 현실을 우려한다.

 

 

2.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민족주의는 사람들은 누구나 민족국가(국민국가)에 대하여 최고의 충성심을 품게 된다는 신조로 정책이나 사상체계라기보다는 정치적 견해라고 할 것이다. . 역사적으로는 자기 민족을 다른 민족이나 국가와 구별하고 그 통일?독립?발전을 지향하는 사상 혹은 운동이며, 정치적으로는 민족을 사회공동체의 기본단위로 보고 그 자유의지에 의하여 국가적 소속을 결정하려는 입장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천 년에 걸친 중세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이상의 모습으로 부각되었던 것은 보편적인 세계국가였지 분할된 정치단위가 아니었다. 18세기가 되기까지 국가나 영토는 민족성에 따라서 규정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도시국가, 봉토?영주?왕조국가?종교단체?교파 등에 묶여 있었다. 민족국가의 개념은 역사상 대단히 새로운 것이었으며, 과거에는 이상적 국가형태로 서술되지도 않았다. 로마 제국은 중세에 신성 로마 제국으로 명맥을 유지했을 뿐 아니라 ''레스 푸블리카 크리스티아나''(그리스도교 공화국 혹은 공동체)의 개념 속에 살아 있었으며 세속화가 진행된 뒤에는 ''일치된 세계문명''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일민족(一民族) 일국가(一國家)의 원리를 주장하는 이러한 민족주의는 민족의식에 대한 자각이 확산된 근대 이후의 현상으로서 민족주의의 발달은 시민적 자유주의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한다. 루쏘(Jean-Jacques Rousseau), 헤르더(Johann Gottfried von Herder)는 초기의 민족주의 사상가이다.

 

민족주의는 근대적인 운동이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를 연구하고 깊이 자극된 루소는 인간의 정치성향과 종교적인 추구 사이의 괴리를 메꾸기 위해서 <민족>이란 정치적 공동체가 모든 생활양태의 근간을 이루어야 한다고 보았다. 바람직한 국가는 전 시민이 일반의지(volonte generale)의 형성에 참여해야 하며, 정치체제는 공동체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므로 공동체의 특수성을 온전히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동체의 특수성은 <민족>에 가장 잘 반영된 것으로 이해했다. 독일의 철학자 헤르더는 사회공동체를 문화공동체로 이해하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로 민간전승과 민족적 전통의 역할을 강조했다.

 

민족주의는 무엇보다 문화공동체의 精粹로 이해되어야 한다.

 

장 자크 루소는 국민주권과 민족의지를 형성하는 구성원 전체의 협력을 강조하고 일반 대중을 진정한 문명의 주체로 간주함으로써 프랑스 민족주의에 이론적 바탕을 제공했지만, 프랑스 혁명에서 드러난 민족주의에서 보편적 인간성과 자유로운 진보에 대한 이성적 믿음의 표출은 루소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널리 알려진 ''자유?평등?박애''의 혁명이념 및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은 프랑스 국민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 대하여 호소력을 지니는 것으로 모든 자유민주주의적 민족주의의 공통분모가 되었다. 축제와 깃발들, 음악, , 국경일, 애국적인 설교들이 프랑스인의 삶 곳곳에서 피어났다. 혁명적 민족주의는 민족의식의 형성에 있어서 개인의 의사를 강조했다. 국민국가란 구성원들의 의사결정 행위에 의하여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었고 국민투표가 국민의사의 표현방식으로 채택되었다. 프랑스 혁명의 민족주의는 사회진화사상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것은 불평등하고 권위주의적인 과거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등의 세계공동체를 추구했다.

 

18세기가 끝날 무렵 교육 및 공공생활의 민족주의화 경향은 정치적 충성의 범위를 넘어 민족적 차원으로 나아갔다. 문화적 민족주의를 처음으로 입에 담았던 시인?학자들은 자국어(속어)를 개척하여 문어체의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민족의 전통들을 하나하나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정신을 물려받은 민중들은 장차 민족국가의 형성을 요구하게 된다. 18세기 이전 일부 세력들 사이에서는 민족적 감정이 생성되었고 특히 민족 간의 갈등이 빚어졌을 때 민족감정은 두드러졌다.

 

정치적으로 중요성을 띠는 민족주의 의식의 발전은

절대군주가 등장하여 중세 봉건사회의 지방 분권주의(分權主義)를 타파하고 영토확장과 함께 중앙집권적 국민(민족)국가를 탄생시켰으며, 생활 및 교육의 세속화가 진행됨에 따라 자국어가 유행하고 교회와 종단의 구속력이 약해졌으며, 상업이 발전됨으로써 중산 시민계층과 자본주의적 기업형태를 창출해냈다.

 

국가의 중심으로 자처하고 있던 군주는 국민주권 이론과 인권사상에 밀려났다. 군주는 더 이상 민족이나 국가가 아니었고 국가는 국민의 국가, 민족적 국가, 조국이어야 했다. 국가는 민족과 동일시되었으며 문명은 민족적 문명을 의미했다.

 

민족주의를 고전적 민족주의 ''나치오니스무스''(Nationismus)와 확장적 민족주의 ''나치오날리스무스''(Nationalismus)로 구분하기도 한다. 20세기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의 식민지 민족주의는 전자를, 제국주의 열강의 세계 분할정책은 후자를 대표한다.

 

19세기말 제국주의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민족주의의 반동화(反動化)는 점차 심화되어갔다. 1870년대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종말을 고했던 1914년까지는 유럽의 각 민족국가가 자본주의에 의한 세계발전을 추구하여 제국주의적 영토분할과 식민지 공략에 치중했던 기간이었다. 제국주의는 민족주의의 부정임과 동시에 그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민족국가의 테두리를 넘어서 타민족을 지배하려는 면에서는 민족주의의 부정임에 틀림없었으나, 민족의 힘을 과시하고 권위를 높이려는 것이었으므로 발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부르주아지는 민족주의를 최대한 이용했다. 그들에게 민족주의는 대외침략과 제국주의 전쟁을 미화하고 약소민족에 대한 압제를 합리화하며 식민지 주민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한 사상적인 근거로 생각되었다. 반동화는 20세기의 1920~30년대에 걸쳐 파시즘이 대두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 체제하에서는 개인의 자유?평등?인간성의 가치가 부정된 반면 국가나 민족이 절대시되고 민족적 이기주의와 침략전쟁이 신성화되었다.

 

아시아에서 반동적 민족주의를 발전시킨 나라는 일본이었다. 일본은 프로이센과 비스마르크의 영향을 받아 천황제(天皇制)라는 절대주의 체제를 확립하고 천황?귀족?지주 중심의 민족주의를 전개했다. 일본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두자 자본주의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킴과 동시에 대규모 침략전쟁에 나섰다. ''만세일계(萬世一系)의 황통(皇統)''이니 ''세계무비(世界無比)의 국제(國制)''니 하면서 그것을 지킨다는 구실 아래 국민의 자유가 억압되었으며 침략전쟁에는 이른바 성전(聖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민족주의가 자유의 적에게 봉사하며 반동화되어 가고 있을 때, 제국주의의 핍박을 받고 있던 식민지?반식민지에서는 새로운 민족주의가 혁명적 정신의 기수로서 성장하고 있었다. 식민지 민족주의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식민지 세계의 전역에 퍼져나갔다.

 

식민지 민족주의는 고전적 민족주의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다. 고전적 민족주의는 자본주의가 봉건세력의 억압에 항거하여 성장하는 과정에서 탄생된 민족주의였으므로 한결같이 반봉건적 성격을 띠고 있었으나, 식민지 민족주의의 경우는 보다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무르익어 제국주의의 단계로 접어든 시기에 제국주의의 압제로 신음하던 식민지에서 일어난 것이었으므로 대개 식민지 민족주의에는 반제국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과거 일제하에서 일어났던 민족독립운동이 반 외세 반제국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3.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계를 위한 민족주의

 

헤르더는 사회공동체를 문화공동체로 이해하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로 민간전승과 민족적 전통의 역할을 강조했다. 다시말해 사회공동체의 정체성은 무엇보다 민족정신에서 찾아야 한다 말한다. 지금의 우리의 싯점에서 결집된 국가적 역량을 발휘하여, 역사적 도약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동력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마땅히 민족정신으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수 천년 시련의 역사 속에서 자랑스런 문화를 꽃피우며 면면히 이어온 우리의 민족적 역량과 저력을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난 한 세기 우리 사회의 민족주의가 외세를 배척하는 일변도의 배타적 국수적인 민족주의와 사적 유물론의 사관에 기초하여 주도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현 정권의 과거사 청산이 미래를 위한 자성의 노력이기보다, 잘못된 과거사의 모순을 척결한다는 편향된 관점에서 진행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현 정권을 반대하는 이유로 대책 없이 국가와 민족마저 부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반민족적 행태의 확산은 북한을 적대시하는 반공이데올로기와 자주성을 결여한 무조건적인 친미의식과 무관치 않다. 우리의 미래는 보다 자유롭고 개성이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리라 믿는다. 자신의 생각만을 절대화하고 사회가 획일적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을 고집하는 것은 구 시대의 낡은 유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면서 경쟁상대이고, 북한 또한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적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여 통일된 조국을 함께 가꾸어 나아갈 동포이기도 하다. 통일이나 외교에 관한 정책이 감정적인 대응을 허용해서는 안되겠지만, 북한을 냉전 시대의 시각으로 적대시 하는 것으로 보다 발전적이고 건설적인 국가의 장래를 기약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새로운 역사적 도약을 하기 위해, 외세 의존적이었던 식민지인의 삶을 극복하고 우리가 우리들의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주체성의 확립이 나아가 민족의 정체성과 국가의 정통성 확립이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시대적 역사적 과제라 믿는다. 지난 한 세기 유구한 우리의 역사가 단절된 채, 국권을 상실하고, 한 가족이 함께 살지 못하는 피맺힌 분단의 세월을 살아왔다. 부모 형제를 함께 살지 못하게 하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는 국가로서의 노릇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망국민의 설움은 아직도 온전히 극복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은 통한의 조국의 분단이 국가적 국민적 민족적 수치라는 사람조차 점차로 잊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부모형제가 함께 살지 못한 천만 이산가족이 있는 조국의 현실을 극복하고, 세계의 중심국가로 당당하게 거듭나기 위해서, 우리에게 시급한 과제는 먼저 평화와 화해의 국가질서를 구축하는 것이고, 평화와 화해의 국가질서란 무엇보다 성실하고 정당한 노력이 평가받고, 특혜와 특권의식이 사라지는 공정한 사회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다. 국가 권력의 정당성을 확립하고 공정한 삶의 질서가 보장되는 사회가 지금 우리가 처한 가장 시급한 국가적 과제라 믿는다. 일제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잘못된 사회질서는 바로잡아 가야하고, 과거사의 청산은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미래지향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는 사회공동체의 평화를 수호하고 공동의 번영을 모색하는 강제질서이다.

반면 민족은 동일한 언어 동일한 관습과 풍습 등을 공유하는 문화공동체이다. 찬란했던 민족문화와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려는 우리들의 노력은 올바른 역사인식과 사회인식을 전제로 식민지와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고 우리 스스로의 주체성을 확립하여 자주국가 자주민족의 독립성과 정통성을 올곧게 세우려는 노력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18061026일 나폴레옹 군대에 프러시아 군대를 격파하고 베를린이 점령당한다. 18129월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에서 패망할 때까지 독일은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었다. 독일 국민은 완전히 사기를 잃고 속수무책으로 지리멸렬 할 때, 베를린 대학의 초대 총장이며, 애국적 철학자인 피히테는 다음과 같이 역설했었다.

 

<이기심과 사리사욕의 무제한의 추구는 사리사욕 자체를 부정할 뿐 아니라 사리사욕의 자주성마저도 상실하게 된다. 이기심은 이기심 그 자체 이외의 그 어떤 목적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외세에 눌려서 우리는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는 다른 목적을 강요 당한다.

 

자주독립을 잃어버린 민족은 시대의 조류를 자유스럽게 결정하는 능력까지도 상실하게 된다. 그 민족이 이와 같은 상태를 계속해 나간다면 시대뿐 만 아니라 시대와 더불어 민족자체도 외세에 지배되고 말 것이다. 그 결과 민족의 운명은 민족의 자주적 결정과는 멀어지게 되고, 현실의 세계에선 오직 외세에 대한 복종의 영광만이 남게 된다. 외세에 의한 사리사욕에 빠진 국가는 붕괴한다. 우리는 <自我> <時代> 그리고 <世界>까지도 잃어버린 민족이다. 새로운 자아 및 새로운 시대창조의 수단으로서 새로운 세계를 출현시켜야 한다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전면적인 이해를 요구한다.

 

외국과의 합류에 의한 국민의 몰락을 방지하고, 외국에 의존하는 종속성으로 말미암아 능력을 잃어버린 자아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민족정신>이라는 우리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독일 국민에게 고함: Reden an die deutsche Nation-J.G. Fichte -

 

 

 

4. 가장 우리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지금 우리는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다. 민족주의가 세계화에 역행하는가?

피히테의 지적처럼 우리는 외세에 의하여 <자아><시대><세계>를 상실한 부끄러운 역사를 살아왔다. 진정 한민족의 자아를 회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 보다 개방적이고 세계화된 성숙한 문화를 확립하기 위하여 무엇보다 민족정신을 회복하고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여야 한다. 앞 서 살펴보았듯이 근대국가의 형성과 브르죠아적 자유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의 발전은 민족주의와 그 맥을 함께하며 발전 되어왔다. 프랑스 혁명의 민족주의는 사회진화사상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것은 불평등하고 권위주의적인 과거에서 벗어나 오늘날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는 민주주의의 근본이념을 확립하고 나아가 자유와 평등의 세계공동체를 추구했다.

 

캐나다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이며 문명비평가인 맥루한(M. McLuhan)지구촌이란 이론을 주장한다. 각종 미디어의 발전으로 인하여 거리가 단축되고 사회가 평준화됨으로써는 지구는 좁아졌으며 지구는 하나의 마을로 축소되었다 말한다. 하지만 지구촌이라는 말은 행정구역 상의 마을과는 아무런 공통점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늘날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 맺어주는 사람들의 접촉은 종래의 종족공동체와는 공통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모르는 사람들, 낯선 민족, 이국적인 사회의 삶에 대한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관심이 실질적인 공동체에서의 사회참여와는 다른 것이다. 세계화나 지구촌에 대한 환상은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동경 그리고 질투와 선망 부러움, 고독과 불안감 속에 휩싸여 있는 현대인의 절실한 꿈인 동시에 악몽의 표현이다. 흔히들 생각 없이 말해지는 세계화로부터 우리는 그 어떠한 공동체적 유대감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주체성(identity)을 확립하지 못하는 개인은 변화하는 삶의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다함으로써 사회성원으로써의 유대감을 느끼면서 自我를 실현한다. 국가의 성원들의 건전한 자아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와 역사 나아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 민족은 우리들에게 무엇보다 역사적 문화적 공동체로써의 유대감의 뿌리를 형성한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때, 온 국민의 감정을 하나로 만들고 세계를 놀라게 한 우리의 힘의 근원은 다름 아닌 민족감정이며 민족정신이다. 한 세기 한 맺힌 통한의 역사를 살아온 민족이기에 우리들 가슴 속에 우리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정서로 하나된 힘을 발휘할 수 있었고, 이러한 정서적으로 일치된 민족적 유대감이 세계를 놀라게 한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하게 만들었다.

 

지금 우리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상실된 정신이 우리가 사는 국가나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라고 생각한다. 식민지인으로 그리고 외세 의존적 삶을 살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잃고 살아왔고, 그러한 삶에 대하여 생존을 위한 것이라 변명하는 삶을 살아왔다. 친일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후손에 물려 줄 자긍심을 발견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스스로를 위하여 무엇보다 시급하게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 다름 아닌 민족적 자긍심이라 나는 믿는다. 반미적이고 친북적인 젊은이들이 많다.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삶을 변명하기 위하여 그들을 빨갱이로 매도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다. 때론 반항적이고 무책임하게 여겨지는 그들의 시각을 자주적이고 자긍심을 가꾸어 나아가는 한 과정으로 이해하는 보다 포용적이고 유연하며 성숙한 자유주의적 사고와 개방적인 삶의 태도만이 우리의 역사의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되게 할 것이다.

 

우리는 외세 의존적인 과거사와 독재정치로 얼룩진 잘못된 과거사를 반성하는 토대 위에 자주적이고 독립된 자랑스러운 조국을 건설하려는 새로운 미래로의 전망을 찾아야 한다 믿는다. 참되고 바르게 사는 삶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고 상호 존중 하에 화해하며 협력하는 삶의 가치를 우리 모두가 공유하게 될 때, 편견이나 배타적 독선이 아닌 합리성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칙이 될 때, 우리는 새로운 역사적 도약을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꾸어 나아갈 새로운 사회는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민족적 자긍심을 드높이고, 평화와 도덕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믿는다. 우리의 자존심이 소중하기에 우리의 경쟁력을 키우고, 인간성의 회복과 도덕성을 기초로 인류애를 구현해야 한다. 인간은 가장 자신다울 때, 주체성을 확립하며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성을 실현한다.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란 서구문화의 흉내내기가 아닌, 우리가 가장 우리 다울 때 가능한 것이다. 세계화란 무엇보다 먼저 우리 역사와 뿌리를 올바르게 알고, 민족문화와 전통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민족 주체성과 국가정통성을 확립해야 나가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가 처한 오늘의 삶의 현실에 대한 올바른 위상을 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고 실천해 나아갈 때, 우리는 보편적인 인간성을 구현하며 참된 의미의 세계화된 삶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한 세기 동안 갈갈이 찢겨진 민족정신을 복원하고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길이 우리의 주체성 확립의 최우선 과제이고, 민족주체성의 확립이야말로 급변하는 문명사적 변혁의 시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성공적인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약속하기 위한 선행과제임을 역설하고 싶다. 가장 우리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신념에 기초하는, 민족적 세계주의요 세계적 민족주의를 이 땅에 구현하여야 한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

최재천의원-헌재결정 왜곡말라

2004-11-08 09:48:24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026일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과 관련, "국회의 헌법상 권능이 손상됐고 정치지도자와 정치권 전체가 신뢰의 타격을 입었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앞으로 이처럼 국회의 입법권이 헌재에 의해 무력화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헌정질서의 혼란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국민의 절반 이상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수도 이전 문제를 제대로 된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아니하고 추진하도록 한 법률이 위헌이라 결정했다. <국민투표를 거쳐야할 사안을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과 신행정수도이전에 관한 법률이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절차적 사항을 정하기 위한 법률임에도 불구하고, 실체적 사항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고, 수도이전계획에 대하여 대통령이 승인하기 전에 국회에서 먼저 정하도록 하여 국회가 대통령의 하위기관인 것처럼 규정하고 있으며, 수도이전지역을 특정지역으로 확정하고 있어서 법규범상호간에 준수되어야 할 체계의 정당성이 결여되었다 판시하였다. 또한 수도이전지역으로 규정된 충청권에 비하여 합리적 이유없이 다른 지역을 차별하는 것으로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청구인들에게는 수도의 이전으로 인하여 경제사회생활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 예상되는데 청구인들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이유로 위헌결정을 했었다.

 

수도이전에 관한 이것이 위헌 결정을 내린 핵심 내용이다. 열린우리당은 위헌에 대한 본질적 논점을 왜곡하여, 관습헌법문제가 위헌 판결의 핵심인 양 헌재결정을 왜곡하여, 편법적인 방법으로 헌재판결을 묵살하며 실질적으로 수도이전 사업을 진행하려 한다는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 114일 디국 1주년 포럼에 참가한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은 수도이전에 대한 위헌결정에 대하여 집권당의 무지와 무능력 무책임, 입법에 있어서 절차적 하자에 대한 집권당의 독단에서 비롯된 실책에 대한 반성 없이, 자신들의 과오를 호도하고 헌재에 책임을 전가하는 데 급급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반성 없이 수도이전에 대한 책임을 헌재에 전가하며, 그야말로 얄팍한 헌법지식으로 어줍잖게 헌법재판를 비난하고 있었다.

 

최재천 의원에게 묻겠다. 재판의 역할과 법관의 직책이 무엇인지는 아는가? 법관은 재판을 통하여 한 사회가 안정을 위협받고 있을 때, 법적 의의를 명확하게 선언함으로써 조정기능을 담당하여 사회 안정을 도모한다. 법관의 선언을 통하여 문제적 상황은 법적 정당성을 부여 받는다. 정당한 법관의 권력은 한 사회가 안정을 위협받고 있을 때, 사회가 조정의 기능을 부여하는 지배체제의 핵심에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법관에게 임의적 자의적 판단의 영역을 극소화하고 공적 권위를 제도적으로 구현할 능력과 자질을 요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관습헌법을 창설하여 헌법재판을 한 것은 결코 용납 될 수 없는 헌법 파괴행위라 비난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헌법재판이 잘못되었다면, 헌법의 수호자로써의 대통령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헌법재판관을 지체없이 탄핵해야할 것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수도이전에 관한 헌법재판의 내용과 성격을 왜곡하고 당리당략의 차원에서 국회의원 등의 입을 빌어 국민을 선동하며 법질서를 문란케하고 있다. 헌법기관의 권위를 실추케하는 이러한 비열한 작태야말로 헌정질서 파괴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노대통령은 헌법재판관을 탄핵할 수 없을 것이다. 지은 죄가 많아서...)

 

최재천의원은 어설픈 법률지식으로 그야말로 망언을 입에 담고 있다. 헌법재판을 말하며, <논란이 있는 것 자체는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획일화된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헌재 결정을 둘러싼 논쟁은 합리적이다. 정치인으로서 올해는 의미있는 해라고 생각한다. 드디어 국민들이 헌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최종 깃발은 헌법임을 알게 됐다. > 법원의 재판도 판결이 못마땅하면 인민재판을 하고 싶은가 보다. <헌재 결정을 둘러싼 논쟁은 합리적이다.> 라 주장하는 것 자체가 헌정질서 파괴적이다. 헌법재판은 논란을 종식시키는 것이고 헌법의 규범력을 강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관습헌법에 대한 주장은 청구인인 서울시장이 한 것이고 이에 대한 판단을 헌재가 한 것이다. 그럼에도 열우당은 관습헌법이란 말을 헌재가 만들어 낸 것처럼 헌재의 결정 내용을 왜곡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되어서 어설픈 지식으로 법률가를 자칭하며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문란케 하는 것이 개탄스러운 현실이다. 헌법이 무엇인지, 헌법재판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는 어설픈 법조인이 사회의 법적안정성을 파괴하고 헌정질서를 危害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좋다! 그렇다면 최의원 소원대로, 헌재의 결정에 대한 합리적 논쟁을 한 번 해보자.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 등으로 탄핵 되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이 단순히 선거법 위반일까? 17대 국회가 정상적인 국회인가? 17대 국회는 국회의원을 선출한 국회가 아니다. 열린우리당 간판 걸고 반탄핵의 은덕으로 아무나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던 17대 국회이다. 노희찬 의원은 열린우리당 의원은 길바닥에서 지갑 줍듯이 국회의원을 주었다 말했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반 탄핵으로 국론이 분열되어 치루어진 탄핵심판으로 탄생한 17대 국회이다. 열린우리당이 17대 국회 과반수를 차지했다는 사실 자체가 노대통령이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민의 선거권을 유린하고 왜곡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율이 국회의석수처럼 국민의 과반수를 넘긴 적이 단 하루라도 있었던가. 열린우리당이 17대 국회에서 제1당이 된 것이 국민의 지지가 아닌, 국민을 농락한 노대통령의 쇼비즈니스 덕택으로 탄생한 사실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지금처럼 헛점 투성이의 무모한 개혁입법으로 스스로 몰락을 자초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기대한다. 개혁입법은 마땅히 헌법을 준수하며 추진되어야 한다.

 

헌법 재판관들은 노대통령 탄핵재판도 이번의 수도권 이전에 관한 재판도 헌법을 수호하고 헌법의 법적안정성과 규범력을 강화하며, 합리적 수락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못하고, 여론에 편승하여 오히려 헌법을 규법력을 훼손하는 잘못된 결정을 한 것이다. 헌법재판의 과제는 건전하고 통일적인 국가질서를 확립하고 나아가 법률이 국민의 기본권과 권리보장을 위한 일관성있는 질서를 형성해 나아가도록 하는데 있다 엄격한 법리적 측면에서 말하자면, 노무현 대통령은 마땅히 탄핵되어야 하고, 위법하고 하자 있는 법률행위(17대 총선은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해 선거한 것이 아니라 탄핵을 응징하기 위한 선거로 국회의원 선거의 본질을 왜곡시켰다.)의 결과로 탄생한 17대 국회는 해산되어야 마땅하다. 관습헌법 운운하며, 새로운 헌법을 창설한 헌법재판관의 헌정질서 파괴행위는 마땅히 탄핵되어야 한다. 헌법 제66조는 대통령에게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부과하고 있다. 헌법의 수호자인 대통령이 대통령 노릇을 제대로 하려 한다면, 헌법 재판관을 지체없이 탄핵해야할 것이다. 관습헌법으로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헌재 결정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여론을 조작하여. 구렁이 담 넘듯 수도이전 사업을 벌리고 싶은 것이 현 정권의 속내일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어서 정치를 이처럼 반칙과 편법으로 행하겠다면 우리나라의 장래가 어찌될 것인가?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는 오명을 씻고, 이번 기회에 대통령도 대의를 알고 공명정대함을 존중하며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온 국민에 보여주길 기대한다.

 

재판의 의의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최의원이 법률가라 자칭하는 모습은 안스럽고 딱하다. 판결문에는 형식적 기재사항과 主文理由를 쓴다. 최의원이, 판결문에 주문을 쓰고 이유를 쓰는 지 그 까닭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판결의 중요과제는 법적안정성과 합리적 수락가능성을 확보하는 데에 있다. 主文에는 법률의 해석 적용을 판시하여 개별적 사건에서의 법률 의의를 선언하여 법률의 규범력을 강화하고 법적안정성을 도모한다. 판결문에서 理由를 밝히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판결을 합리적로 수락하게 하려는 것이다. 의회의 입법권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헌법학을 전공하였다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다. 국회의원의 입법권은 헌법에서 나온다. 도올 김용옥은 헌법학을 전공한 사람이 없다고 헌법재판관을 터무니없이 비난하며 꼴 값을 떨었었다. 헌법학을 공부하는 것과 헌법재판을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재판이란 당사자 간의 권리의 주장으로 쟁송이 일어났을 때, 법률의 해석적용을 판시하여 당사자 간의 권리의무의 존부를 확정하는 절차이다. 헌법재판을 재판 중에서 가장 어려운 재판이다. 재판은 학문적 지식만이 아닌, 휼륭한 인격과 수많은 경험을 필요로 하는 난해한 업무이다.

 

헌법재판은 무엇인가?

하나의 사건 속에 다수의 기본권이 충돌하든, 법률과 기본권이 충돌하든, 법률과 법률이 충돌하든, 의회와 정부가 충돌하든, 헌법재판은 언제나 충돌의 사례만을 다룬다. 그리고 이것들에 대한 결정이란 언제나 예외 없이 원칙의 결정이다. 사법적 결정은 언제나 법에 구속을 받기 때문에(대한민국에서는 판사들이 恣意적으로 재판하는 것이 비일비재함) 판결의 합리성은 법률의 정당성에 달려있고 법률의 정당성은 입법과정의 정당성에 의존한다. 합헌적 질서 안에서 입법된 법률만이 정당하다. 헌법재판의 의의를 제대로 모르는 노대통령은 헌재가 의회의 입법권을 침해하고 헌정질서를 위협한다는 무지한 발언을 한다. 입법권이란 아무리 민주화가 잘되었다 하더라도 의회의 운영과정에서 수많은 이익단체와 유권자들의 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헌법재판은 이러한 자유주의적 입법과정이 가져오는 폐단을 방지하여, 사회복지국가의 강령이나 共和政의 이념을 보완함으로써 국가 전체의 건전성을 보호한다. 박정희 이 후 타락하고 부패한 정치의 본질은, 국가권력이 법을 멋대로 만드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건전한 국가 질서와 헌정질서를 보호하는 데에 헌법재판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지난 40여 년간 권력자 멋대로 법을 만들어 왔다. 법전체계 자체가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제도를 정비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헌법재판의 역할이다. 국가를 시스템의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헌법재판은 국가시스템을 최적화하는 시스템이다.(Optimize System)

 

국회의원의 입법권은 국민이 아닌 헌법에서 나와야 한다. 입법이 헌법에 기속되어야 제대로 된 법치주의 국가 된다. 입법권이 어디에서 비롯되느냐는 질문에 최의원은 국민에서 나온다 말하고 있다. 최의원 같이 입법권이 국민에서 나온다는 포퓰리즘적 사고방식이, 위헌적 요소 투성인 4대 개혁입법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당파적 이익에 집착하여 실시하는 타락한 현 정권의 개혁입법의 태도이다. 헌법을 전공한 최의원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면,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것 빼고는 다 법률로 만들 수 있다는 천정배의원의 황당한 발언이 이해될 것도 같다. 하기사 우리들의 노대통령부터, 법을 헌법을 준수하며 국민적 합의에 기초해 제대로 만들 생각은 아니하고, 자신들 멋대로 법을 만들려 한다. 수도 이전의 의도가 좌절되자, 자신들의 무모함과 권력에 대한 과욕과 입법과정의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과오에 대한 반성 없이, 헌법재판관을 비난하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 정권의 수도이전이 왜 좌절되었는가? 입은 삐뚜러졌더라도 말은 똑바로 하자. 수도이전에 대하여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것조차 자신에 한 불신임으로 간주한다며 대 국민 협박을 했었던 노대통령이다. 개혁입법과 수도권이전을 추진함에 있어서 민주적 절차는 깡그리 무시되고 진행되었다. 헌법재판의 역할은 무엇보다 입법의 민주적 역할을 보호하는 데에 있다. 나아가 어떤 법률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는가를 심사한다.

 

현 싯점에서 노대통령과 집권당정권의 수도이전이 좌절되었다. 이러한 무모한 국정운영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당하고 했다. 누구 책임인가? 전적으로 노대통령과 집권당의 책임이다. 집권당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야비한 주장을 하며 헌정질서를 문란케 하고 있다. 유시민 의원 같은 자는 헌법재판관을 칭하며, 맛이 간 인간들이 재판을 잘못했다고 헌법기관을 모독하는 막말을 아무런 가책도 없이 떠들어 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국가공무원법 63조는 공무원은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있다. 대통령 총리 국회의원할 것 없이 깽판치고 막말하고, 헛튼 소리를 밥먹듯 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집권당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최재천의원의 어줍잖은 불문헌법 논의는, 노대통령의 국회의 입법권이 헌재에 의해 무력화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헌정질서의 혼란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발언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최의원은 헌법재판의 의의 이해하지 못하면서 헌재의 결정을 왜곡하고 비난한다. 허술하고 터무니 없이 진행된 수도이전에 대한 실패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에 사죄하고 이를 극복하고 개선하려는 태도는 보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헌법재판관이 헌법을 제대로 읽지 못하였다 사실을 왜곡하며 어설픈 논리로 하며 자신의 헌법재판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다. 최의원은 헌법재판에 대하여 불문헌법을 말하며 헌법재판의 잘못을 비난한다. 헌법학 박사학위를 갖은 사람이 이 같은 무지한 소리를 하는 것을 보여 안스럽다.

 

최재천의원에게 한 수 가르쳐 주겠다. 모든 법률의 기본원리가 민법총칙에 있다는 것을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을 공부하였으니 되돌이켜 생각면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관습헌법 운운하는 헌법재판관이 돌팔이 법조인 것은 틀림이 없다. <대한민국 수도가 서울이다>는 관습헌법이란 헌재의 판결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관습헌법이란 말은 그야말로 법률학의 족보에는 없는 말이다. 민법 제1(法源) <민사에 관하여, 법률의 규정이 없으면 관습법에 의하고, 관습법에 없으면 條理에 의한다.>라 규정한다. 성문법에 규정이 있는 사항에 대하여, 이와 모순되는 관습법의 규정이 있더라도 그 관습법을 성문법규에 우선시킬 수 없다. , 민법 제1조는 관습법이 성문법을 보완하는 효력을 인정하고 있으나, 성문법을 개폐하는 효력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관습헌법을 말하는 헌재의 판결은 법률의 대원칙을 파괴한 있을 수없는 판결이다.

 

관습이 관습법이 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구성원이 법적 구속력이 있다고 의식하는 <법적 確信>이 필요하다. 대다수 국민들이 대한민국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것이 헌법규범이라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수도가 서울인 것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헌법적 규범력을 지닌 규범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할 것이다. 그러므로 수도가 서울이라는 사실에 관습헌법의 규범적 효력을 부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위헌소송을 한 청구인조차 헌법적 규범력을 확신할 수 없었기에 수도이전에서 수도이전에 관한 법률의 위헌성을 주장함에 있어 국회의 헌법 개정절차와 헌법 제130조의 국민투표를 주장하는 것이 아닌,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를 주장한 것이다. 최의원의 젊은 객기를 이해한다. 하지만 헌재의 판결를 비판하려면, 변호사 노릇하면서 취득한 박사학위 학력으로 어설프게 나서서 아는 척할 일이 아니다.

 

최의원은 자신이 하는 말 중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혼동하며, 입법권과 헌정제정권력을 헷갈리는 횡설수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최의원은 개인적 생각이라며 역사발전 단계로 볼 때 모든 권력은 분산돼야 미래를 위해서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웃기는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권력 분산을 말하며 지난 17년 간 민주화 운동이 진행되었고, 권력분산 타령을 하며 거지같은 위원회 관변단체 등 수많은 새로운 국가기구를 창설하며, 국가시스템을 고비용 저비용으로 만들어버렸다. 속된 말로 피바가지 쓰는 것은 국민뿐이다. 집권층이 바뀔 때 마다. 통치자들은 한결같이 인사권을 확장하고 보다 많은 돈을 주무르고 싶은 타락한 권력의 모습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지난 17년 민주화 과정에서 집권당이 말하는 권력의 분산이란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 국민의 혈세를 물쓰듯 쓰고, 부정부패를 조장한 결과를 만들어왔다.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말로 포장된 속보이는 쇼는 하지 말자. 경제가 바닥을 치고 한국경제에 대한 비젼이 불투명한 것이 현실인데, 국토균형발전 타령을 하며, 거대한 비용소모적 사업을 벌리는 것이 과연 상식적일까? 수도권 이전 문제처럼 거대한 이권사업이 또 어디 있을까? 현 집권당이 수도권 이전에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도권 과밀현상 해소, 지역의 균형발전 백 번 좋다. 그런데 30여 년이 소요되는 중요하고 거대한 사업을 국민적 합의나 수도이전의 절차 대한 상세한 프로그램의 제시 없이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 해치우려 하는가? 속보이는 이야기 아닌가? 그것은 현 기득권층으로부터 부를 박탈하고, 현 집권층의 경제적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비즈니스가 수도권이전 사업이라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한 수도이전이라면 그 개발이익 시장의 논리에 의해서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노무현정권이 수도 이전을 구체적인 영향평가, 그리고 진행상의 문제점들에 관한 구체적 실천방안에 대한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아니하고 날림으로 강행하려는 속셈은 뻔하다. 특권과 반칙으로 현 집권층이 수도권이전에 따른 개발이익을 독점적으로 말아먹겠다는 속셈이 아닐까? 특권에 대한 집착과 반칙을 저지르며, 수익사업을 벌려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공명정대하고 명명백백하게 상세한 마스터플랜을 제시하고 누구나 공감이 되도록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행정도시건설 사업을 추진하면 된다.

 

최의원은 <개인적 생각인데 역사발전 단계로 볼 때 모든 권력은 분산돼야 미래를 위해서 바람직하다.>말하고 있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소리인 줄 모르겠다. 잘 알지도 못하는 지식을 남들 앞에서 떠벌려 말하는 것은 공인으로써의 합당한 자세가 아니다. 최의원이 말하는 역사발전단계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에서 말하는 역사발전 단계를 어디서 주어들은 것이 아닐까? 나는 역사발전 단계를 말하는 결정론적 역사관을 반대한다.) 권력이 분산되는 것이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다는 생각은 사회가 통제되지 않고 난장판으로 돌아가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황당한 발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학 교과서 한권만이라도 제대로 읽었어도 하지 않았을 헛소리로 들린다. 정치는 분화의 기능과 통합의 기능이 균형있게 이루어져야 건강하다. 국민의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되고 나아가 성공적인 사회통합를 이룩해내는 규범질서와 리더쉽이 있어야 건강한 사회와 국가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 현 정권과 노대통령은 사회통합을 이끌어내는 정치적 지도력이 점수가 나오지 않을 만큼 깽판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17년 동안 진행된 민주화개혁은 권력의 분산을 말하며 턱없이 국가기관의 몸집만을 부풀려온 것이 잘못된 개혁이었다. 이 판국에 오직 당리당략의 이해가 얽힌 수도이전을 강조하며 분권타령을 하는 것이 한심스러운 우리시대의 정치인들의 모습이다.

 

국가의 발전은 국가의 권력이 법률적으로 통제되어, 물리적 강제력을 갖는 국가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을 방지하고, 보다 자유롭고 건전한 삶의 질서를 가꾸어가고 합리성과 보편적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로 나아가며, 인간의 존엄성과 상호존중에 기초한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활력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역사발전이어야 한다 믿는다. 정치는 다양한 계층의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고 동시에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법으로써 건전한 사회질서와 국민통합을 이룩하고 결집된 국력을 발휘하게될 때 국가의 영속적 발전은 가능해진다. 무엇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르며 말로만 설쳐대는 철부지 386세대 정치인들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분간하지 못하며, 대책 없이 나라를 말아먹고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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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 헌법편이다.

2004-11-24 16:14:11

 

-개혁입법의 문제점

 

 

언제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국민(초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아버지에게,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라는 말을 수 없이 듣고 자랐다. 그리고 이 말을 제대로(?) 이해 하는데 30여 년이 걸린 셈이다.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란 <大學>의 처음 부분에 나오는 말이고,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한 삶의 자세에 관한 가르침이다. 대학은 삶과 사물을 이해하고 올바른 사고 방식과 삶의 전략에 대한 심오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

 

大學은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를 말하기 앞서,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대학의 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에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고,

<지극히 착한 데 머무는 데 있다> 고 시작한다.

머무를 데를 안 다음에야 정()하는 것이 있고,

정한 다음에야 고요할 수 있으며,

고요한 다음에야 편안할 수 있고

편안한 다음에야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한 다음에야 터득할 수 있다 말하고 있다.

 

에는 근본()과 지엽적인 것()이 있고, ()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니,

먼저하고 뒤에 할 바를 알면 에 가깝다 말하고 있다.

 

大學은 삶의 지혜의 근원을 <지극히 착한 데 머무르는 데에 있다> 말한다.

이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물의 본질이 이해되지 않고 일의 전 후 관계가 온전히 보여지지 않는다. 지극히 착한 데에 머문다는 것은, 마르크스식의 이데올르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의식이고, 실용주의적 관점이나 가치의 관점을 벗어난 가치중립적인 자유로운 의식 상태이다.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더함도 덜함도 없는 경지이며, 禪定에 들어 解脫한 경지를 지극히 착한 곳이라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大學은 첫 장에서 존재론과 인식론, 윤리학과 정치학을 포괄하며 뛰어넘는 심오한 테제를 설파한다.

 

지극히 착한 곳에 머물러, 사물의 이치가 탐구(格物)되어야, 삶의 본질이 이해되고(致知), 사물과 삶의 본질이 이해되어야 뜻이 정성스러워지고(誠意), 뜻이 정성스러워져야만 스스로 마음이 바르고(心正), 마음이 바른 뒤에야 스스로 덕이 닦이고(修身), 스스로 몸을 닦은 후에야 집안이 정돈되고(齊家), 집안이 다스려져야 나라가 다스려지고(治國),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야 천하가 평하게 된다(天下平)말하고 있다.

 

개혁이란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새롭게 하는 것은 지극히 착한 곳에 머무르게 하여, 막힌 것을 뚫고 맺힌 것을 풀어 사람들의 삶이 天理로 나아가게 하고, 사람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새로운 사회질서와 국가질서를 만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사회의 잘못된 질서는 힘 있는 자 들이 약한 자들을 억압하고, 있는 자들이 없는 자 들을 착취하며, 불의한 자들이 오히려 의로움을 주장하는 사람을 탄압하고 핍박해온 부끄러운 과거사를 살아 왔다. 개혁은 새로운 국가질서를 형성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국민을 억압하고 핍박했던 구질서를 부수는 것이 아닌 국민을 보호하고 행복한 삶을 가능하게 해 주는 건전한 사회질서를 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사회가 지닌 반민주성의 본질은 무엇일까? 국가권력이 국민을 억압하고, 있는 자가 없는 자를 억압하는 세상을 살아 왔다. 경제 성장의 그늘에는 수많은 노동자들과 소외 받고 악압 받은 자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개혁은 어떠한 것이 되어야 할까? 지금까지 강자의 위치에서 민중을 억압한 자들을 때려잡는 개혁이, 다수의 민중이 지배하는 국가질서를 만드는 것이 올바른 개혁인가? 이러한 한풀이 개혁이라면 그것은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엉터리 개혁이며 우리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잘못된 개혁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올바른 개혁이란, 힘있는 자가 부당하게 횡포를 부리지 못하게 하고, 성실한 노력이 정당하게 평가받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며, 기득권층의 기득권을 빼앗는 개혁이 아니라, 기득권층이 우리 모두의 공동의 번영을 위하여, 새로운 사회건설에 기꺼이 동참하는 개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의 개혁은 사회구조를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대립구조로, 강자와 약자로 구분하여, 다수의 약자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이름 하에, 강자를 응징한다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사회주의 혁명방식의 개혁은 성공할 수 없는 잘못된 개혁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강자와 약자, 자본가와 노동자로 구분하는 사회주의의 계급투쟁적 이분법으로 진행하는 개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이러한 방식의 개혁은 우리 사회를 불신과 반목 대립과 갈등을 증폭시키며 우리 모두를 파멸로 이끌어가는 길임을 직시해야 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강자인 남한과 약자인 북한을, 과거사 청산법은 강자인 친일 친미적 기득권층과 약자인 서민층을, 언론개혁법은 강자인 조중동과 약자인 여타의 중소 언론사를, 사학법은 강자인 재단이사와 약자인 교사 학생 학부모를 상정해 놓고 개혁을 진행한다.

 

이러한 사회주의적 개혁의 입장은 사회를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양분하여 이해한다. 약자는 우리이고 민중이며, 강자는 우리와 다른 그들이다. 사회적 모든 병폐는 강자로부터 생겨난다 주장한다. 예를 들면 노동에 대한 자본의 착취, 대기업 횡포에 대한 중소기업의 몰락, 학교 재단 이사의 전횡에 따른 교사의 자율권과 학생의 학습권의 위축, 언론사의 문제도 대규모 언론사와 사주의 부도덕한 행위에서 기인한다 주장한다.

 

강자에게는 적대적이면서, 민중에게는 매우 관대하고 일방적으로 옹호한다. 노동조합의 불법파업은 강자에 대한 약자의 지위향상을 위한 당연한 행동으로 치부한다. 고속도로를 점거한 농민의 범죄행위에 대하여서도 관대하다. 한반도에서 남한은 강자이고, 재벌 조,,동은 그들이고 적이며, 북한은 우리이고 동포이다.

 

사회주의적 개혁의 목표는 사회에서 기득권 세력을 없애는 것이 평등의 이념을 구현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수구세력을 제거하거나 적어도 약화시켜야 한다 주장한다. 약자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민중은 우리끼리 연대하여 뭉쳐야 한다 주장한다. 이러한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진보이며 역사발전이라 주장한다. 재벌, 사학재단, 극우보수 세력이 한국사회를 파탄의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 믿는다. 진보의 입장에서의 자유는 민중의 입장에서는 착취이며 생존을 위협하는 체제파괴라 믿는다.

 

보수반동이 더욱 준동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좌파지식인들은 무엇보다 언론개혁을 주장한다. 조중동이 신문시장의 70%를 차지하여, 좌파이념의 실현을 민중에 대한 계급의식화를 방해한다 생각한다. 2000년대의 한국 사회는 명백한 계급사회로, 상층은 계급의식적 투표를 하는데, 저소득층이나 저학력층에서 계급의식적 투표를 하지 않고 있다며 대중의식화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좌파, 진보적 신문이 구독자가 적은 것을 기존 신문의 판매망의 배타적 운영이나, 과도한 판촉비용에서 기인한다 주장한다. 신문시장 점유율에 대한 규제는 언론개혁의 중간단계로 보고 궁극적으로 소유구조를 바꾸어야 언론개혁이 완성된다 믿는다. 이러한 생각들이 전두환이나 노태우는 용서해도 조동을 용서 못하는 총리의 심정이 아닐까? 언론은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하고, 관련자 모두가 경영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기존 언론사주의 경영권을 빼앗는 것이 개혁의 궁극적 목표라 주장하는 것이다. 어떤 기업인이 자신의 돈을 들여 신문사를 만들면 그 경영은 반드시 다른 사람이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지금 행하고자 하는 언론개혁의 목표이다.

 

헌법학을 전공했다는 열린우리당의 한 국회의원이 입법권이 어디에서 나오냐는 질문에 국민에게서 나온다 대답했다. 포퓰리즘적 사고에 젖어 입법이 헌법에 기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진행되는 4대 개혁입법의 문제가 무엇인가? 민중을 등에 업은 현 정권의 개혁은 현 집권 세력이 자신들의 권력을 확장하기 위한 엉터리 개혁이란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의 개혁이 엉터리인 이유는 적대감으로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데에 급급할 뿐, 진정 건전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개혁이 아닌 헌정질서와 법적안정성을 파괴하는 잘못된 개혁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개혁입법이라면, 입법권을 오남용되는 것을 방지하도록, 입법이 반드시 헌법에 羈束되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헌법정신이 온전히 구현되도록 해야 한다. 개혁은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어가고 진정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 참된 개혁이라면 사회를 작동하는 원칙이 확립되어 가는 개혁이어야 하고, 모두가 기꺼이 참여하는 개혁이어야 한다.

 

우리사회는 심각한 사회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문제적 요인에 대한 원인을 제거하면 개혁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 집권층의 잘못된 생각이다. 한 어린 아이가 있다고 하자. 온전하고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그 아이의 학습능력을 고려하지 않는 문제의 제기는 그 아이를 망칠 수 있다. 개혁의 성패 여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사회의 감당할 수 있는 문제해결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문제의 제기는 우리 모두를 파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대통령이 사회를 분열시킨다면 그는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잘라 말하겠다. 우리 모두가 기꺼이 새로운 국가적 도약을 위한 개혁에 동참시키는 동기를 부여하는 리더쉽이 절실히 아쉽다.

 

참된 민주화 개혁이라면, 권력이 국민을 보호하고, 법은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평등의 이념을 내세워 약자옹호의 논리로 恣意적이고 전횡적인 권력을 정당화 하려는 현 정권의 개혁은 가짜의 개혁이다. 아무리 작은 권력이라도 권력의 恣意성을 극대화 하고 타인에 대한 자신의 威力을 극대화하려 하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법률의 제재를 받지 않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타락하고 종국에는 국민의 정당한 권리를 짓밟는다. 순서를 알면 에 가깝다는 말을 생각하다가 요즈음 집권당의 몇 몇 인사들의 혈기방장한 태도로 할 말과 안할 말을 분간하지 못하고, 앞 뒤 분별을 못하는 작태가 개탄스럽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것은 대체적으로 볼 때 그 사회의 평균적인 윤리의식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윗사람은 제멋대로 아랫사람은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부패의 정도는 권력의 크기에 비례한다. 예나 지금이나 할 것 없이,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타락한 권력은 대통령이라는 생각이다. 사람이 행하는 정치는 결코 믿지 말라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이다. 헌정국가는 자유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이고, 헌정국가의 이념은 법치주의 이념을 실현함으로써 구체화된다. 법치주의의 최우선 과제는 통치권자의 권한의 오남용을 법률로 제제하는 데에 있다.

 

건강한 국가질서란 무엇일까? 제대로 된 개혁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힘있는 자를 때려잡는 개혁이란 가짜의 개혁이다. 개혁이란 부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사회질서를 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 당파적 이익에 집착하여서는 결단코 성공적인 개혁은 불가능하다. 앞서 大學의 언급처럼 지극히 착한 마음에 머무르며, 백성을 새롭게 하는 새로운 국가질서를 만드는 개혁이 가능하다 믿는다.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고, 다수의 약자의 편에서 민중의 편이라는 이름 하의 집단주의적 권력은 필연적으로 전횡적 폭정으로 전락한다.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를 무시하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다. 플라톤은 권력을 어리석음 없이 행사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며 이를 방지하는 것이 위대한 입법자의 의무라 말했다. 인간이 다스리는 정치는 저열한 정치이다. 보다 진화된 정치는 법과 원칙으로 다스린다. 제대로 된 리더쉽은 원칙을 중심으로 이끌려 지는 리더쉽이다. 자의적이고 전횡적 권력으로 헌법을 멋대로 유린한 박정희를 경멸한다. 똑 같은 이유로 김일성이나 김정일도 경멸하며, 이것이 포퓰리즘을 등에 업고 전횡적 권력을 꿈꾸며, 무늬만 민주주의 인 것을 민주주의라 착각하는 노대통령을 돌팔이 대통령이라 믿는 이유이다.

 

내가 이해하는 민주주의는 간단하고 명료하다. 법으로 국가권력의 횡포와 오남용을 통제하고, 법으로 국민의 자유롭고 건전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이다.

 

노빠도 딴빠도 못되는 나에게 사람들은 가끔 당신은 누구 편 이냐고 묻는다. 대다수 서민과 중산층 편을 말하는 정치인은 백이면 백 국민을 기만하며,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일한다. 나는 대한민국 헌법 편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신념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라 믿는다. 헌법정신은 정의와 자유의 이념을 가꾸어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살아 있는 한 정의는 무지와 투쟁한다. 합리적 이성은 언제나 정의 와 평화 우리 모두의 행복의 편에서 결단한다. 억압이 없는 한 진실은 스스로를 알린다. 정치가들의 말에 현혹되는 편가르기를 일삼으며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들의 무지와 싸울 것이다. 자신을 내세우는 정치인은 스스로 모자란 정치인이라 토로하는 것이다. 보다 진화되고 올바른 리더는 원칙으로, 스스로 그 원칙을 먼저 실천하여 감으로써 세상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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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길-포퓰리즘

2004-09-23 16:48:19

 

오늘을 사는 대다수 우리들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듣고 싶어한다. 자신과 신념이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배타적이고 거부적이다. 다른 사람들을 말 몇 마디로 판단해버린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가 상대방에게 얼마나 무례한 것인지에 대하여 인식조차 없다. 내가 객관적이고 자신이 아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신적 미숙의 표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사회는 문화적으로 성숙되지 못한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이다. 독단에 의한 오만과 편견, 자신이 선택하지 아니한 삶에 대한 무시,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삶의 태도는 사회지도층으로 올라갈수록 심하다.

 

이러한 삶의 행태들은 독재정치와 독재정치 하에서 살아야 했던 삶의 여건과 무관치 않다. 내 말을 추종하면 내편이고 내 말에 반대하면 적이라 여기는 것이 독재자의 지배방식이다. 독재자들은 반대자는 모조리 제거하는 방식으로 총화단결을 이룩했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독재자의 지배방식에 충실한 방식으로, 어떤 집단일 것 같으면 인사권자의 마음에 들도록 눈에 띄는 방식으로 줄을 서야 했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이제 우리는 어떠한 지배집단이나 정치집단의 의사에 추종할 것인가를 선택하게 되었다. 있는 자의 편에 설 것인가? 없는 자의 편에 것인가? 유능한 사람들의 편에 설 것인가? 도덕적인 사람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여당에 줄을 설 것인가 야당에 줄을 설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처럼 정치에 관심이 있을까? 이러한 비정상적 정치적 관심은 권력 만능 금전 만능의 사회적 분위기, 돈을 벌기 위해서는 관권이나 정치권력의 유착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우리 사회의 지역 간 세대 간 계층 간의 괴리는 더욱 심화되어왔다는 느낌이다. 민주화는 모든 문제의 책임을 사회의 책임으로 정치의 책임으로 돌려버리고, 개인의 사회적 책임을 무시해 버리며, 터무니없는 방종을 요구하는 타락한 지경에 이르렀다. 사회적 행동에서 자율적인 삶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부패한 제도와 부패한 제도 운영방식의 필연적인 귀결로 부패한 국민을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동기를 부여하는 자발적인 문화가 있는가? 대한민국에 자기창조적으로 자발적인 판단에 의하여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목적을 위하여 그릇된 수단이 정당화되고 용인되는 사회에 정의로운 삶은 발붙일 수 없다. 국민들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만이 정치발전이라 착각하고 서로 편을 가르며, 사실을 왜곡하여 상대방을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 하여 모함하고 모욕하는 사회에 미래가 있을까? 폭력이나 욕설은 정당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능력이 없거나 또는 정당한 방법의 의사전달이 좌절되었을 때 일어난다. 나만이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고집하는 독단적 사고 방식은 폭력을 정당화하려 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집단화되는 집단주의적 포퓰리즘은 건전한 민주주의 삶의 질서를 산산히 부수어 버리게 될 것이다. 있는 자에 대한 없는 자들의 질투와 열등감과 증오심과 적개심이 결부된 집단주의나, 패배적인 상황에 절망하고 비관하며 자신의 반대자에 대해 자신들의 의사에 대한 무제한의 폭행을 조장하는 또 다른 포퓰리즘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생존을위한 몸부림이니 이해해 달라며 자신들의 무지와 대책 없는 무능을 변명하고 싶을 것이다. 지금 보수 기득권층과 한나라당이 이 꼴로 허물어지고 있다. 노대통령은 대통령으로써 쓸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보수 기득권층을 때려 잡으려 한다.

 

이에 저항하여 보수기득층은 현 정권을 빨갱이로 몰아 부치고 노대통령을 하야시켜야 한다 생각한다. 그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대응을 한다. 박정희나 전두환은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온갖 악랄한 수단과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였었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정권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포퓰리즘을 이용했고, 의회권력을 장악했으니, 다수의 힘으로 법을 만들어 기득권층을 때려 잡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대통령의 권한 행사방식은 과거 모든 대통령이 그러했듯이 독재적이다. 물론 노대통령의 통치방식이 과거의 다른 대통령보다 더 독재적이라 비난할 근거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박정희를 종교처럼 떠받드는 박근혜씨가 노대통령의 이러한 통치방식에 대하여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국가보안법 폐지에 자신의 목을 걸겠다 했다. 전 한나라당 총재 이회창씨는 한나라당 국회의원 121명의 목을 함께 걸라 충고를 한다. 경솔하기 짝이 없다. 내가 박대표의 자질을 심각하게 문제 삼는 이유는 아버지인 박정희를 종교로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과 그녀는 이러한 태생적 한계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노대통령에게 국가정체성을 묻는 그들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정체성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지금은 경제가 어려우니 분란 일으키지 말고 경제를 살리자 말한다. 무슨 수로 경제를 살리는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업을 살려야 한다고 떠드는 것이 고작이다. 국론이 갈갈이 분열되었는데,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적대적인 관계로 대립하는데, 법도 원칙도 질서도 다 거덜났는데 무슨 수로 경제를 살릴 수 있단 말인가. 국보법 폐지에 대한 한나라당과 그녀의 대응은 북한의 태도에 변화가 없는데 국보법 폐지는 절대 안 된다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태도가 변하지 않았을까? 지난 5일 국보법 폐지문제가 나온 후, 통일관련 논문, 북한 관련 사이트, 김정일의 글과 김정일에 관한 관련 서적을 검토한 바 있다. 나의 판단으로는 북한의 태도는 변했다. 현 상태에서, 북한은 그리고 탁월한 전략가인 김정일은 남한에 대한 사회주의 폭력 혁명이나, 적화통일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쉽게 이야기하면 민노당이 의회 제1당이 되면, 대한민국은 김정일에게 넘어간다고 보면 된다. 자본주의 체제를 존속시키고 마치 중국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한 방식으로, 대한민국을 집어먹을 베짱이 있는 김정일이다. 이러한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을 통째로 말아 먹는건데 이건희 삼성회장에게 인민 영웅이라도 시켜주는 것이 그 무엇이 어려울까? 이러한 김정일의 전략이라면 국보법은 아예 필요가 없다. 국가보안법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킨다는 것이 웃기는 소리가 되어버린다. 그렇다고 김정일이 사회주의 혁명에 의한 대남적화를 포기한 것은 물론 아니다. 국보법 폐지를 놓고 여야 간에 그리고 보수와 진보 간에 머리 터지게 싸우면, 거덜나는 것은 대한민국이고, 깔깔대고 좋아할 사람은 김정일위원장 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문제를 타당성 여부를 가장 제대로 진단할 집단이 어디일까?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물론 아니다. 법원과 헌재는 헌법 위반과 법률적인 문제를 다룰 수 있을 뿐이다. 국정원이나 통일원이 가능할까? 국가보안법 폐지가 가져오는 국민들 간의 규범적 혼란을 이해하기에 부족하다.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방어의 의미에서 국가 안보의 체제를 수호한다는 차원에서 그래도 검찰이 비교적 온전히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주요 공안 사건을 다루는 검찰의 라인에는 서울 중앙지검에 공안 1,2부가 있고, 대검에 공안 1,2과가 있고, 수명의 공안연구관 공안기획관이 있고, 공안부장이 있다. 법무부에는 검찰 3과장이 있고 검찰국장이 있고 법무장관이 있다. 잘 조직되고 훈련된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집단이다. 이들이 국가보안법 폐지가 가져오는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영향 평가를 할 수 있을까? 국가보안법 폐지의 문제는 국민들 간의 대 북한관이나 규범상의 혼란 문제와 맞물려 군사, 외교 통일과 맞물려 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 문제를 가장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종합하고 판단할 사람은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노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의견이 제대로 된 것이고 올바른 것일까? 물론 깽판을 치시는 것이다. 나는 공산주의 이론과 혁명전략, 주체사상, 통일 외교 군사전략 법률 등에 대한 공부를 했고, 실무의 차원에서 청와대가 어떠한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개략적으로 이해한다.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이고 대한민국에서 최고 수준의 법 이론가임을 자부한다.

 

노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생각은 국가안보를 지극히 위협할 소지가 있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의 <냉전체제의 상징인 국보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법체계를 통해 대한민국이 결정적 우위에 서게 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되지 않을 헛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노대통령의 국보법 폐지의 의사 표명이 충분한 검토 없이 자의적이고 고작 정략적 판단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중차대한 현안에 대하여 쉽게 말해 법무장관과도 호흡을 맞추지 않았다.

 

문제는 여권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할지 어떠한 방식으로 개정 보안할지 아직은 모른다. 내가 확실하게 이해하는 것은 보수기득권층이 국보법폐지 결사반대 식으로 대응하며 노대통령 하야 같은 소리를 외쳐되면 그것은 보수층 스스로 무덤파는 일이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노대통령과 여권의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야권의 최선의 대응책은 그 문제점을 심도 있게 연구하여 국민에게 각성시키는 것이 최선일 뿐이다. 잘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의 약점을 방비하고 상대방의 강점에 대비한다. 스스로 갈고 닦으며 기다리면 기회가 오는 것이 세상 사는 이치이다. 양지만 바라보고 살아온 나약한 인간들이기에 실패를 극복할 줄 모르고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허우적대고 있다.

 

진정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지키려면 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체제가 북한의 체제보다 우수한지 이를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력이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은 이제 전혀 설득력이 없다. 북한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존속시키면서 대한민국에 민노당 또는 보다 주체사상에 충실한 민주적(?)정권이 집권하여 연방정부를 만들겠다는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통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임기5년 이다. 김정일은 죽을 때까지 왕이다. 미국은 대외정책에서 항상 불안정한 정권보다 독재정권 민주정권 할 것 없이 자국이익을 확실히 보장하는 정권을 지원한다. 대한민국이 포퓰리즘으로 난장판으로 흘러가면 미국은 당연히 대한민국을 버릴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님은 미국과 협상하여 미국의 이익을 보장해주고 대한민국을 말아먹을 궁리도 당연히 하고 계시다.

 

김정일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라는 요인의 무력화, 중립화, 단계적 배제에 의해 남한정권의 존재이유가 없어 지는 사태이다. 한국정권에는 민족적정당성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지탱해 온 것이 미국의 지원과 국가보안법인데, 미국이라는 요인이 배제됨과 동시에 국가보안법은 그 존재이유가 없어 진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의 페지 조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 김정일 통일전략의 중요한 목표이다.

 

대한민국엔 체제가 없고 포퓰리즘으로 돌아가는 나라이다. 제목은 참여정부이지만 4.15 총선 이후, 부활하신 노대통령의 영도 하에 온 국민이 노사모되기를 염원하는 대통령비서실장이었던 문희상 의원의 말처럼 포퓰리즘의 승리로 이룩한 노대통령의 독재정치 시대가 막을 연 것이다. 대통령 마음대로 법을 만들고 없애면 독재정치이다. 민주화 이 후 대통령은 멋대로 국가기관을 만들었었다. 그리하여 고비용 저효율의 거지 같은 국가시스템이 되어버린 것이 지금 우리의 현 주소이다. 북한은 대한민국을 체제가 없는 미국의 괴뢰정부라고 마치 옛날 일본의 괴뢰정부인 만주국과 비교한다. 포퓰리즘이 확산되고, 김용옥이처럼 민중의 함성이 헌법이고, 대한민국의 헌법기관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설쳐대는 인간이 들어난다면, 대한민국이 과연 얼마나 버티어 낼 수 있을까?

 

기득권층은 노대통령을 어리석고 모자란 사람으로 매도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노대통령은 이제껏 과거 그 어느 대통령보다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하는데 있어 가장 성공적으로 정국을 이끌어 왔다. 그야말로 수구꼴통들은 거덜나게 깨지고서도 아직도 노대통령을 무시하고 싶어 어쩔 줄 모른다. 우월감과 열등감과 패배주의가 뒤범벅되어 추태를 부린다. 물론 노대통령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 자신의 권력기반의 강화를 위하여 사회주의 계급투쟁 또는 북한의 인민해방 전략 전술과 궤를 같이하는 방법으로 정권기반을 강화해 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권 기반을 강화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우리 사회를 있는 자와 없는 자로 그리고 기득권 층의 비리의 폭로 위주 방식으로 세대 간의 갈등을 증폭시켰다. 이것이 국가의 안보와 노대통령에게 치명적인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해칠 수 있다. 까닥 잘못하면 온 나라가 폭삭 망할 수도 있다. 물론 만에 하나 지금 겪고 있는 이러한 진통이 획기적 역사적 도약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기창조적으로 생각할 줄 모르고, 미국과 서구에대한 수박 겉핧기 식의 흉내만이 능사인 보수 기득권집단의 패배주의에 젖은 호들갑처럼 대한민국이 금방 빨갱이 세상으로 거덜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고 분명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노대통령의 개혁엔 치명적 취약점이 있다. 개혁은 개혁으로 인한 고통을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비젼으로 국민이 기꺼이 동참하는 것이어야 성공한다. 개혁과 진보는 체제동일성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자기동일성을 지키지 못하면 개혁하다 망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구 소련은 세계최고 수준의 과학기술과 최고 수준의 문화가 있었고, 핵무기가 25천개 이상 부유하고 있었던 초강국이었다. 미국 CIA는 고르바쵸프가 집권할 당시 1975년부터 1985년까지 10년 간 소련은 평균 2.1%의 경제성장을 했다고 추정했었다. 80년 중반 소련은 더욱 경제적 성공을 이룩했는데, 833.3%, 86년에는 4.1%의 경제성장률을 보였었다. 어디에도 붕괴의 조짐은 없었다. 고르바쵸프의 개방정책이 화근이었다. 폐쇄사회에 균열이 생기면, 고르바쵸프에 의해서 소련이 붕괴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군중에 의해 구체제는 해체되었다. 인민의 자발적 협조 없이는 구체제는 붕괴된다. 그리고 구체제로의 회귀란 불가능하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역사의 진실이다.

 

한나라당이 생각하는 정치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도 없이 현 국가의 상황에 대한 온전한 상황인식 없이, 때려부수는 것만이 능사인 노대통령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 - 혼자 망하는 것은 괜찮지만 온 국민이 다 함께 쫄딱 망한다는 것을 염려해야 할 것이다. 헌법정신이 내 마음이라 말했었다. 하지만 헌법을 수호하고 헌법이념을 실천할 대통령이 헌법 위반을 밥 먹듯 해온 사실을 망각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박근혜같은 인사를 내세워 과거회귀를 꿈꾸는 한나라당은 역사적으로 마땅히 도태된다. 지금 20대의 한나라당 지지도는 17.8%대이고 민노당의 지지는 29.5%이다.

이것을 뒤집을 대책이 한나라당에 없다. 나약하고 무능한 정치인은 도태되어야 한다. 노대통령의 독주를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면 아는 것 없고 무능한 박근혜씨부터 제거해야 우리의 앞날이 있다. 노대통령이 들개라면 박근혜는 병아리 수준이고 김정일 위원장은 거의 호랑이에 가깝다. 밑천 뻔한 경제타령하고 노대통령에 딴지 거는 것이 전부인 한나라당에게 비젼이 있는가? 박근혜씨의 머리 속에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비슷한 그림이라도 있을까? 박근혜의 밑천은 박정희 향수에서 되살아난 퇴행적인 저질 포퓰리즘에서 기인한 것이다. 노대통령 탄핵국면에서 보수층이 완전히 거덜나게 될 것 같아, 억지 춘향이로 갖다 밀어준 박근혜이다. 노대통령이 포퓰리즘으로 재미를 보니, 노대통령 뒤쫓아 못된 짓을 배워 색깔론으로 국민을 선동하여 위기를 조장하고 노빠들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맞불 놓아 싸움질 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지키는 구국의 결단이라며 자신 무덤파는 줄 모르고 전의를 불사르고 있다. 정치인이 무식하면 국민에 대한 죄이다.

 

야권과 보수 기득권층의 노대통령의 존재를 부정하고 하야를 촉구하는 노력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까? 당연한 결과로 국민들에게 체제부정적인 무정부주의(아나키즘) 적 정서를 조장하고, 보수기득권층 스스로를 여권의 상징조작 전략에 휘말리는 계기를 만들어주게 된다. 박대표 국보법 사수발언에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급상승했었다. 박정희 향수를 부추키어 밑천없는 박근혜 대표를 띄우는 포퓰리즘에 하나 더 보태 색깔론으로 국가 위기감 고조시키고 현 정권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을 조장하는 선동적 포퓰리즘으로 공략하면 누가 좋아할까? 이야말로 한나라당의 절묘한 자살골이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김정일 위원장은 표정관리하며 대한민국 거저 주어먹을 궁리를 하실 것이다.

 

포퓰리즘은 집단주의적 국민들의 의식에 대하여, 정치권의 자신들의 권력강화를 위하여, 갖가지방식의 선전 선동 책략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문제적 현실의 해결을 외면한 채, 문제적 상황을 왜곡하고 호도하며, 문제점을 부풀리어 위기감을 고조시켜 자신의 반대세력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을 부추긴다.

 

미국의 뛰어난 정치평론가였던 리프만(Walter Lippmann)은 포퓰리즘의 위험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그들의 행동은 너무나 과격하고 파괴적이고 반동적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가슴은 찢기고, 마음은 분열되었으며, 그들에게는 불가능한 선택들만이 제공되어 있다.> 반항하면 반항하는 사람의 마음은 반항하는 대상의 욕망에 종속된다. 노대통령이 포퓰리즘으로 의회를 장악했다. 이를 흉내 내어 국보법 폐지에 대해 색깔론으로 국가 위기를 조장하고 현 정권을 몰아 부치면 먼저 거덜나는 것은 한나라당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그리고 헛다리 짚은 국가안보를 명분 삼아, 국가보안법의 피해자가 즐비한 국보법 폐지반대를 시민운동을 버리겠단다. 민주주의가 뭔지 제대로 모르는 파시스트 잔당인 한나라당과 박대표를 위해 한 수 가르쳐 주겠다.

 

데모크라시(democracy)는 그리이스 시대 이 후, 민중에 의한 정부를 의미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실재하는 정치체제가 아닌 한낱 문학적 낱말이었을 뿐이다. 민주주의가 오늘날 쓰이는 의미로 쓰여지게 된 것은 미국 및 프랑스 혁명 때에 이르러서야 일반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위클리(Ernest Weekley,1865~1954;영국의 어원학자, 언어학자)는 그의 저서 고대어와 현대어(Word Ancient and Modern)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에 이르러서야 데모크라시는 한낱 문학적 낱말이기를 중단하고 정치적 어휘의 일부가 되었다.

 

18세기말 이전에는 대부분의 使用例에서 민주주의(democracy)는 좋지 않게 쓰여졌었다. 쟈코방당의 과격주의(Jacobinism)나 폭도정치(mob-rule)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쓰여져 왔었다. 민주주의라는 말과 19세기 초의 민주주의자(democrat)란 보통 위험하고 파괴적인 폭동의 선동자로 생각되었다. 오늘날 말하는 민주주의는 법치국가이념과 헌정국가를 선언한 미국 독립선언, 프랑스인권선언에서부터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 이르며 발전해 온 헌정국가와 함께 발전되고 확립된 것이다. 법치주의의 근본이념은 법에 의한 개인의 삶의 규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법에 의한 국가권력의 제재에 있고, 법은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하여 존립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적 헌정국가는 정의와 자유 실현의 전제조건이고, 헌법에 기초한 헌정 국가 없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자유민주주의 핵심 요체는 국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헌법에 있고, 모든 정치는 제도를 다루는 문제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바란다.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에서 참여정부라는 말 자체가 가짜 자유민주주의의 표식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기대한다.

 

북한의 대남전략의 핵심은 반미 자주화와 반파쇼 민주화이다. 이때 말하는 민주화가 다름 아닌 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으로 대한민국을 무정부상태로 만들고, 중심을 잃어버린 남한을 주체조선에 흡수하려 한다. 김일성은 민족해방전술과 전략과 전술에서 혁명투쟁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인민대중이 동원되어야 혁명투쟁에서승리할 수 있다. 운동의 지도자는 응당 인민 속으로 들어가 인민대중을 각성시킴으로써 대중 자신이 주인이 되어 혁명투쟁을 전개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일은 민족해방을 위한 대중 의식화를 강조하며, 이러한 의식화 작업은 식민사회의 본질과 제국주의의 침략적 약탈적 본성과 사대 매국노들의 반민족적 죄상을 등을 인식시키는 것으로 출발하여 사대매국세력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을 형성해야 한다 말하고 있다. 현 정권의 과거사 청산은 북한 측의 대남전략에 의한 사대 매국노의 반민족죄상을 들추어내는 것과 무관치 않다.

 

북한의 대남전략의 최우선 과제는 <국가보안법 폐지><미군철수>이다. 현 정권이 행하는 과거사 청산과 국가보안법 폐지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민주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로 만들 수 있다. 나는 내 개인적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말하는 노대통령의 발언이 부적절한 것으로 여긴다. 노대통령과 현 정권은 과거사 청산과 국가보안법 페지를 말하며,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 확립을 위한 그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적 헌정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통치권자의 권력남용을 막기 위해, 권력분립의 헌정질서를 확고히 하고,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법률의 제약을 받아야 하며, 무엇보다 법률의 제정이나 개정 폐지 등이 엄격하게 헌법에 羈束되어야 하며, 법관의 재판이 법률에 기속되어야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평가할 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타락한 권력은 대통령과 법관이다. 포퓰리즘으로 난장판이 되어버린 우리사회의 질서를 파괴하고 지키지 못한 책임은 그 누구보다 대통령과 법관에게 있다.

 

포퓰리즘을 대한민국 땅에서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아니 된다. 포퓰리즘은 파시즘이나 공산당 독재보다 훨씬 위험하고 해악하다. 공산국가에도 헌법이 있다. 민중의 함성이 헌법이고, 민중의 뜻이 용왕님의 뜻이라는 포퓰리즘 정치는 그야말로 제멋대로 굴러가는 개판의 정치이다. 자신들의 정략적 의도에 의해 국민을 선동한다. 공포를 조장하고 증오심과 적개심을 자극한다. 노대통령이 갈갈이 국론을 찢어 재미 본 것 같으니, 한나라당이 이를 따라서 한다. 이제, 빨갱이 사냥을 하겠다고 악을 쓰며 되지 않을 구국의 결단을 말한다. 그야말로 나라가 망할 꼴이 되어간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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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宗

2004-08-24 14:48:34

 

1367(공민왕 16)~1422(세종 4).

 

조선의 제3대 왕(1401~18 재위).

 

 

조선의 제3대 임금 태종의 이름은 방원(芳遠). 자는 유덕(遺德). 아버지는 태조 이성계(李成桂)이며, 어머니는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韓氏)이다. 비는 원경왕후(元敬王后)로 민제(閔齊)의 딸이다. 태조의 아들들이 대개 무인으로 성장했지만 이방원은 무예나 격구보다는 학문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성균관에서 수학하고 1383(우왕 9)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392(공양왕 4) 3월 이성계의 낙마사건을 계기로 정몽주(鄭夢周)를 중심으로 한 고려의 중신들은 이성계파의 인물들을 유배시키고, 그간의 개혁법령을 폐지하는 등 반격을 시도했다. 이때 수하를 동원하여 정몽주를 살해함으로써 대세를 만회했으며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정도전(鄭道傳)조준(趙浚) 일파의 견제로 조선 건국 후 개국공신에도 들지 못했다. 정도전과 조준은 신진 사류 중에서도 급진적인 개혁을 추구한 인물로 이들의 정책은 이전의 권문세가나 이색을 중심으로 한 온건파의 불만을 야기했다. 이러한 때에 강비(康妃) 소생의 어린 방석(芳碩)이 세자로 책봉되고, 자신의 세력기반인 사병마저 혁파될 상황에 처하자 정변을 일으켜 정도전남은(南誾) 등을 제거하고 정치적 실권을 장악했다. 이후 정종을 즉위시키고 정사공신 1등이 되었으며 개국공신에도 추록되었다. 1400(정종 2) 동복형제인 방간(芳幹)이 주동이 된 제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고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1월에 정종이 양위의 형식으로 물러나자 왕위에 올랐다.

 

태종은 즉위 초반에는 구세력과 공신, 온건개혁파를 등용하고, 안렴사제 복구 등 복고적인 정책을 집행하기도 했으나 곧이어 하륜과 함께 이색 계열의 인물을 중용하여 계속 개혁을 추진했다. 그리하여 태종의 치세에 국가체제 전반에 걸쳐 남아 있던 고려의 유제들은 대부분 새로운 체제로 대체되었다. 우선 중앙행정기구의 개혁에 착수하여 1401(태종 1) 문하부를 철폐하고, 사평부(司平府)승추부(承樞府)3(三司)상서사(尙瑞司)와 같은 별도의 재정인사 기구를 폐지하거나 축소하여 인사는 이조와 병조, 재정은 호조, 군정은 병조로 귀속시키는 등 서무를 의정부와 그 아래의 6조로 통합했으며, 속아문제도(屬衙門制度)를 실시하여 각종 관아를 모두 6조 휘하에 소속시켰다. 또 재상권을 약화시키기 위해 6조직계제(六曹直啓制)를 시행하고, 사간원을 독립시켰다. 관리의 인사제도는 태조대에 이어 계속 정비했으며 특히 서리출신의 관리등용을 더욱 억제했다. 지방제도 정비에서는 군현통폐합과 특수촌락임내(任內)의 혁파를 계속하고, 경기좌우도를 통합하여 경기도로 했으며, 양계지역의 장관도 도순문사(都巡問使)에서 도관찰사(都觀察使)로 바꾸어 도의 장관을 통일시켰다. 또한 행정체제의 혼돈을 방지하기 위해 지명에 붙은 주()자를 모두 유사한 글자로 바꾸었으며, 감무(監務)도 현감으로 바꾸어 수령의 명칭에 일관성을 기하는 한편 수령의 임무와 고과규정을 정비했다.

 

태종은 군사제도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 사병을 완전히 혁파하고 군정체제를 정비하여 왕을 발령자로 하고 병조를 군정기관으로 하는 조선 군제의 전통을 수립했다. 지방군도 강화하여 전국의 영진군(營鎭軍)과 수성군(守城軍)을 정비했으며, 수군을 증설하고 죽은 자에 대한 복호, 완휼규정을 마련했다. 병선 건조와 개조에도 힘을 기울여 거북선을 만들어 실험하기도 했다. 또 양천불명자를 사재감(司宰監)의 수군으로 소속시키고 나중에 이들을 보충군으로 재편했으며, 양반유생노비 등을 망라하는 잡색군(雜色軍)을 조직하여 총동원체제를 이루었다. 이렇게 정비된 군제를 바탕으로 1418년에는 왜구의 소굴인 쓰시마 섬[對馬島]원정을 단행했다. 한편 1405년부터 전국의 토지를 다시 양전(量田)하여 120만 결의 토지를 확보했다. 또 사전(私田)에 대한 국가의 지배를 강화하여 공신전에도 1/10의 세를 내게 했으며, 공신전의 전수를 제한하고 수신전휼양전의 액수를 감했다. 그밖에 사전의 하삼도(下三道) 이급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전을 군자전으로 이속시켜 사전액수의 감소를 꾀했다. 한편 재정절감을 위해 불필요한 관원을 도태시키고 검교직을 폐지했으며 저화 통용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여러 가지 진흥책을 시행했다. 서울의 시전제도도 정비하고 상공세(商工稅)공랑세(公廊稅) 등 세제를 마련했다. 또한 곡식의 보존을 위해 전국의 창고제도와 보관규정을 마련하고, 조운(漕運)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한때 육운(陸運)을 장려하기도 했다.

 

사회정책으로는 호적과 군적을 정비하고 호패법과 인보법을 제정했으며 양천불명자, 양천교혼(良賤交婚) 소생 등을 보충군으로 편입시켰다. 그러나 적서의 구분은 더욱 엄격히 하여 서얼차대와 한품서용(限品敍用) 규정을 마련했다. 노비 문제는 태종조에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였다. 태종은 한때 1인당 소유노비수를 제한하는 시책까지 고려했으나 이는 시행하지 못하고, 1413년에 노비중분법(奴婢中分法)을 시행하여 오랜 노비소송을 종결시켰다. 한편 유교적 사회질서의 정착을 위해 가례를 보급하고 군현의 음사(淫祀) 등 비유교적 풍습을 이사(里社)로 대체했으며 문묘를 중건하고 홍무예제 洪武禮制를 준용하여 예제와 조관복제(朝冠服制)를 정비했다. 반면 억불책을 강화하여 1406년 사원혁파를 단행하고 이로써 얻어진 노비와 전토를 국고에 환속시켰다. 1417년에는 서운관(書雲觀)에 소장된 각종 비기도참서를 소각했다.

 

교육문화 방면에서는 우선 권근을 책임자로 임명하여 성균관과 5부학당(五部學堂)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세자도 성균관에 입학하게 함으로써 성균관의 위상을 높였다. 또한 과거 고강법(考講法)을 사장을 중시하는 제술로 바꾸고, 고려 이래 폐단이던 좌주문생제(座主門生制)를 혁파했다. 1403년 주자소를 설치하여 계미자(癸未字)를 주조했으며 1413년 즉위 이후의 개혁사업을 총괄하여 경제육전을 재편찬, 원집상절 元集詳節속집상절 續集詳節2권을 완성했다. 1414년에는 정도전이 편찬한 고려사를 하륜을 시켜 개찬하게 했으며, 권근하륜에게 삼국사를 편찬하게 했다.

 

태종은 통찰력이 뛰어나고 예리한 인물이었다. 정사를 의논할 때 대신들이 형식적인 답변을 하거나 다른 뜻을 품은 우회적인 발언을 하면 바로 정곡을 찔러 무안을 주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탁월한 것은 정치력과 결단력이었다. 그는 여러 정치세력과 신하들의 입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활용했다. 문제를 판단하는 데는 명분이나 인연, 과거의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적으로 생각하며 신속하게 결단을 내리는 능력이 있었다. 태조의 배향공신을 책정할 때 그때까지 역적으로 규정되어 있던 정도전과 남은을 선발하게 했으며 자신에게 항거한 죄로 유배시켰던 황희(黃喜)를 세종에게 추천하여 중용하게 했다. 또한 장인 민제의 가문이 외척으로 성장하면서 이들이 양녕대군을 지지하고 그 주위에 수구파가 결집하자 장인과 처남들을 과감하게 제거했으며 세종에게 양위한 후에도 세종의 장인 심온(沈溫)을 병권남용의 죄를 들어 전격적으로 처형했다. 1418년 왕세자 제()를 폐하고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하여 2개월 후 선위했다. 그러나 선위한 후에도 군정과 중요한 정사는 직접 처리하면서 세종의 치세를 위한 토대를 닦았다. 세종대의 흥륭도 실은 태종의 업적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시호는 공정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恭定聖德神功文武光孝大王)이며, 묘호는 태종이다. 능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헌릉(獻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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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의 역할과 야당의 대응

2004-08-24 14:36:27

 

노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참모들에게 "나는 세종이 되고 싶었는데 태종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보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훌륭한 정치 지도자의 3대 요건은 역사의식과 권력 장악 능력, 살림살이 솜씨"라며 경제 활성화와 역사 정리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소득 1만달러 시대의 분기점을 넘어선 지금 2만달러 선진시대에 대비한 역사 정리로 질적 업그레이드의 사회적 토대를 구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태종 이방원은 조선의 개국공신이며, 조선 초 왕권을 확립하고, 원대한 국기의 비젼을 가지고 제도 개혁을 통한 국가체제를 정비하여 5백년 왕조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세종조의 빛나는 업적을 이룰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어떤 인물에 대한 평가는 그가 어떠한 업적을 이룩하였나로 평가된다. 하지만 그러한 업적이 있기까지는 그 업적을 이룩하기 위한 남다르고 뛰어난 삶의 과정이 없었다면 그러한 업적을 이룩할 수 없다. 조선 초 왕권을 확립한 바탕 위에, 위대한 문화적 업적을 이룬 세종 조의 영광은 태종의 존재를 인정하지 아니하고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노대통령의, 자신이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새로운 삶의 질적 향상과 도약을 위하여 태종의 역할을 하겠다는 발언에 대하여, 잘못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질적으로 업그래이드 된 사회적 토대를 만들겠다는 것에 대하여, 태종의 업적을 제대로 이해하고 새로운 국가의 초석을 다지는 역할을 하겠다는 대통령으로써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면 백 번 찬성할 일이다.

 

하지만 노대통령이 말하는 훌륭한 정치지도자의 덕목만으로 태종과 같은 업적을 이룩할 수 없다. 노대통령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질적으로 업그래이드된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젼이 없다. 그리고 질적으로 업그래이드된 보다 진화된 방식의 정치행태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8.15 경축사 이후 태종의 역할을 말하는 노대통령의 발언은, 전후 사정을 미루어 짐작할 때, 야당과 기득권층에 대한 선전포고로 들린다. 노대통령 또한 과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한결같이 그리했던 것처럼 재임 중 자신의 권력의 극대화를 위하여 개혁을 진행할 것임은 쉽사리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구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새로운 국가질서의 성공적 수립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 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자만이 새로운 질서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준 진실이다. 구 질서에 대한 파괴가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전제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질서에 대한 비젼과 설계도 없는 파괴라면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공멸의 길이 될 수 있다. 마르크스는 <공산당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존재해온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천민, 영주와 농노, 한 마디로 말하여 압제자와 피압제자가 끊임없이 상호 대립하는 가운데 대치한 채로, 어떤 때에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히 중단없는 싸움을 수행해 왔다. 이 싸움은 매번 사회 전체의 혁명적 재구성으로 끝나거나 또는 상쟁하는 계급의 공동의 파멸로 종말을 고하였다>

 

과거사청산이 옳고 그르냐를 따질 시기는 이미 지나버린 것 같다. 과거사의 청산이 학자에게 맡겨야 하고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말아야 한다고 백 날을 떠들어 보았자 되지 않을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말 것이다. 칼 자루는 이미 현 정권에 넘어가버렸으니 말이다. 현 정권의 개혁이 다음의 두 가지 문제적 상황을 피해갈 수 있다면, 개혁은 성공할 수 있다. 개혁으로 인하여 경제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어 민심이 이반되거나, 가시적이고 실현가능한 새로운 국가 비젼을 제시하지 못한 채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국론의 분열을 해소하지 못하고 대결 국면이 지속된다면, 현 정권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구 소련의 붕괴가 고르바쵸프의 준비가 안된 당위성에 의한 개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현 정권은 구체적이고 가시적 새로운 국가 비젼과 실천방안(Action Agenda)의 제시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현 정권의 과거사 청산에 대응하는 야당과 보수 기득권층의 대응이란 그야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경제가 살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강성노조를 때려잡고 기업활동을 최대한 지원하는 길이 나라가 사는 길이라 낡고 낡아 빠진 경제성장의 논리로 현 정권을 매도하는 데에 급급할 뿐이다. 현 정권의 정체성을 의심하고 내심으로 현 정권을 친북 좌경 세력으로 규정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과거사의청산 문제가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절망적인 푸념만을 늘어놓고 있다.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우월하다고 믿고 있는 논리로 현 정권의 문제점을 드러내려 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과거의 책임은 없다고, 우리가 지금껏 이만큼 살게 된 것이 자신들의 공이라 강변한다. 불행하게도 이를 동조할 국민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기득권층의 논리로는 4.15총선의 결과가 설명되지 않는다. 노대통령이 엉터리고 문제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있는 사람이 없는 삶을 업수이 여기고 함부로 대하며 횡포를 일삼았던 독재정치의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기득권층의 기대만큼 많지 않다.

 

노대통령의 문제점과 지금의 혼란한 국가 상황을 우려하며 박정희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개발독재 하에서 특혜적 특권을 누렸던 기득권층에서, 그리고 노대통령의 개혁에 반대하는 보수 언론에서 박정희 되살리기를 하는 것은 그야말로 되지 않을 바보짓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군사독재를 성공한 정치로 아무리 미화시켜 본 들, 스스로 정권유지가 감당이 안되어 무너진 군사독재가 또다시 가능할 수 있을까? 현 정권을 사회주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응하여 박정희 향수를 부추기고 이를 이용하여 박근혜대표를 노대통령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싶은 모양이다. 이것이 될 일일까? 가능하면 되도록 빨리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강성논조를 때려잡아야 경제가 산다고 말한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부추켜 박근혜 띄우기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국가관은 무엇일까? 한나라당이 박근혜를 중심으로 결속하려는 집단의 기대하는 정치 이념이 있기나 한가? 단 한가지의 논리만 있다. 경제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그리고 경제를 살리기 위하여 기업의 활동을 지원해야 하고 기업의 활동을 위축하는 그 어떠한 것도 제거해야 한다는 파시즘의 논리 이외에 그 아무것도 없다. 박근혜대표가, 기존의 기득권 세력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이념이 있는가? 박정희를 종교로 생각하는 그녀의 머리 속에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있을 턱이 없다. 박정희의 지배방식이란, 경제성장이란 국가목표를 설정해 놓고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사람은 강압적으로 탄압하고 제거하는 독재정치의 방식이다. 결과와 업적이 수단을 정당화 시키고, 비판과 이의 제기를 거부하는 저열하고 조잡한 지배방식이었다.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박정희를 성공한 대통령으로 되살리겠다면 그야말로 앞 뒤가 맞지 않는 어불성설이 될 것이다. 군사독재는 지속적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저열한 지배방식이기에 붕괴된 것이다.

 

파시즘의 지도자들은 어떠한 철학도 신념체계도 없다. 그들의 신념이란 논리적 사상체계를 지니지 못하고, 그들의 주장은 그 때 그 때 마다 상황의 논리에 이끌려 기회주의적으로 배합한다. 그들의 주장은 진리나 논리에 의해서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호소라는 견지에서 선택되었고, 때로는 지적 정직성을 비웃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들은 권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이해관계가 다른 이질적 집단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어떤 공통의 목적이나 원리 원칙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된 증오심과 공포에 호소 한다.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약속하는 정치가의 책략에 의하여 불안정상태로 결합 되어있다. (현대정치사상사2, 조지세이빈, 토마스 솔슨: 한길사)

 

박정희 향수를 자극하여, 박근혜의 지지기반을 견고히 하려는 의도가 무엇일까? 현 정권을 비판하는 보수언론은 좌경 세력에 대한 증오심에 호소하고, 경제위기감을 말하며 공포에 호소하고 있다. 파시즘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그야말로 가당치 않을 작태라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현 정권을 비판하는 관점에,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있는가? 현 정권에게 국가의 정체성을 질문하는 박근혜 대표의 머리 속에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을까? 당연히 없다.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대한 이해를 결하고 있기에, 시도 때도 없이, 유일한 레파토리인 경제타령만을 넋두리처럼 늘어 놓고 있는 것이다. 모든 자본주의 국가가 발전과정에서 공황도 겪었고 좌파정권도 한결같이 겪을 수 밖에 없었다. 경제성장의 논리를 백날 악을 쓰고 외쳐본들, 좌파성향이 확산된 작금의 우리의 현실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는 길이란, 그 무엇보다 먼저 자유민주주의 국가질서를 확립하는 데에 있다.

 

보다 복잡해지고 보다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목소리와 권리의 주장이 상충하는 지금의 우리 사회를 박정희방식으로 지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박근혜는 아니다. 그야말로 기구한 젊은 시절의 어려움을 겪고 오늘에 야당 대표에 이른 그녀의 개인적 삶에 대하여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우리의 내일을 열어갈 지도자로써 박근혜는 결코 아니다. 아버지를 존경하는 착한 딸이기에, 아버지가 그녀의 삶을 이끌어온 종교이었기 더욱 그녀는 아니다. 역사는 돌이킬 수 없다. 무차별적인 현 정권에 대응하는 야당의 생존전략을 위해서도 박근혜는 결코 아니다.

 

우리 나라의 고급관료들의 머리 속에 자유민주주의 철학이 몇 페이지의 분량이라도 들어 있는 줄 아는가? 유감스럽게도 철학이 있는 사람은 관리 노릇을 하지 않는다. 고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신념이 없어지고, 줄 서는 데에 눈치가 발달하여야 출세하는 것이 엄연한 우리의 공직사회의 현실이다. 노대통령을 반대하는 보수 기득권층에 이념이란 것은 없다. 줄 잘 서서 특혜적 권한을 향유했던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 자신의 반대자들을 이해하려고 수용하려는 자세는 갖추지 못한 채, 자신들이 오늘이 있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의 있었다는 사실은 잃어버린 채, 강성노조 때려잡으면 경제가 산다는, 나라가 살려면 경제가 살아야 한다 주장하는, 조잡하고 어설픈 주장으로 현실적으로 되지 않을 국가경영을 하고 있을 뿐이다.

 

 

보수주의란 어떠한 이름을 가져다 붙여도 무조건 바꾸지 말자는 사람들이라 말했던 노대통령의 주장이 일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우리의 기득권층 그리고 우리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스스로 자신을 개발하지 아니하고 공부하지 아니하며, 급변하는 국제적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만한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불공정과 특권에 집착하고,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고 거드름을 피우며, 사회통합을 이끄는 지도층으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해오지 못했었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들의 잘못과 문제점을 반성하기 보다는 변명과 자기 합리화에 급급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모두 화해하고 협력하는 성숙하고 발전된 사회를 위하여 그들이 기여한 일이 무엇이 있나를 묻고 싶다. 그들의 대답이 궁색한 것을 안다. 기업의 덩치가 커질수록 기업존립을 유지하기 어렵고, 권력이 커질수록 지위가 높을수록 경쟁이 치열하고 윗사람 눈치보기 바쁘고 자리 보존하기 어렵다고 변명을 늘어 놓을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과 자신들의 영달만을 위해 살았지, 그들의 지위와 부에 걸 맞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성해야 한다. 우리 모두의 공동의 번영을 위해 지도층의 입장에서 해야할 일을 제대로 해왔는가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

 

사회 지도층의 이러한 천민의식 때문에, 그리고 사회지도층이 갖추어야 할 사회적 책임의 부재가, 오늘 우리의 사회가 이처럼 분열되고 갈기 갈기 찢겨진 원인이라는 데에 대한 통렬한 자기 반성이 요구된다. 보수적 기득권층의 강자에 빌붙어 개인의 영달만을 꾀했던, 이러한 사회적 무책임과 돈과 권력만이 전부이며, 인간을 경시해온 풍조가 오늘의 우리 사회의 갈등의 근원적 뿌리라는 반성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개인의 하나의 행위는 삶의 총체성과 연관지어 이해될 때 온전히 균형감각을 가지고 평가된다. 삶의 원칙은 개별적 행위를 비판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삶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밝혀내어 올바른 삶의 방식에 우리의 관심과 노력을 경주하도록 하게 만든다. 이러한 비판적 이해와 반성적 성찰을 통하여 우리는 삶에 대한 보다 균형 잡힌 이해를 가능하게 하고 이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들의 삶을 보다 성공적인 것으로 가꾸어갈 수 있다.

 

현 정권이 자신들의 권력의 기반을 강화하고 권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하는 것은 여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현 정권이 의도하는 개혁이 성공하려면 그리하여 노대통령이, 舊習舊制度 왕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훈구세력을 타파하고 새로운 국가질서의 초석을 다지고 세종 조의 번영을 준비했던 태종과 같은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국가정체성과 비젼에 대한 제시가 전제되어야 한다. 문제적 현실의 타개라는 당위성만을 앞세워,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실행 방법을 갖지 못한 새로운 국가의 건설이란 한낱 공염불로 끝나고 말 것이다.

 

한나라당에 대하여 묻고 싶다. 노대통령의 개혁이 무모하게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려면 무엇을 준비하여야 하는가? 만약 잘못될 수 있는 노대통령의 개혁에 대비하여 우리의 다음을 책임질 지도자는 어떠해야 하는가?

 

현 정권의 이러한 공략에 대하여 한나라당 또한 구체적인 생존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성공적 생존전략은 성공적인 집권전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현 정권의 개혁은 특히 역사 바로 세우기는 사회주의 혁명의 방식으로 - 민중해방을 위한 민주화 운동과 민족해방을 위한 반제국주의 자주화 운동으로 친일청산이 진행될 개연성이 높다. 다행스러운 것은 현재 우리 사회에 친북적이고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집권당 또한 시장경제를 주장하고 있고, 노대통령 또한 <내 정신이 헌법정신>이라 말하고 있다. 이러한 현 정권의 對野 전략에 대하여 그에 합당한 대응전략을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과거사 청산이라는 여야의 대결국면에서 최후의 승자는 누가될 것인가?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민주주의 헌정질서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에 대한 가시적 국가 비젼과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개혁의 실천방안을 먼저 국민들 앞에 제시할 수 있는 정당이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 과거사청산이란 화살은 이미 활 시위를 떠난 듯 여겨진다. 과거사청산이란 通過祭儀를 치루고 나서 우리 사회는 보다 성숙한 사회로 그리고 새로운 역사적 도약을 이룩할 것이란 희망 어린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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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중심의 리더쉽

2004-08-23 13:13:13

 

과거청산을 통한 역사 바로 세우기가 여야 간의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며, 국론분열의 파국적 국면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한편에서는 경제가 어려운데, 국론 분열적인 과거사 들추기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올바른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서이다. 역사는 미래를 창조하는 뿌리이다. 밝힐 것은 밝히고 반성할 것은 반성해야 한다. 그 토대 위에서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길이라며 과거사의 청산을 강조하고 있다.

 

얼핏 들어보면 한 쪽은 경제상황의 어려움을 들어 상황논리를 주장하는 것 같고, 다른 한편에서는 원칙을 주장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기실은 상황논리도 아니고, 원칙에 대한 주장도 아니다. 과거사를 들추는 것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말한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 대다수 서민생활의 안정을 걱정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렇다면 진정,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기 위하여 과거사 청산을 주장하는 것일까? 이 또한 그 진정성을 믿기 어렵다.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아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과거사의 청산이라면 국가의 미래에 대한 비젼과 잘못된 과거사의 청산과 어떠한 연계의 고리를 가지고 있나를 밝혀야 한다. 올바른 미래를 창조하기 위한 역사 바로 세우기라면 과거로부터 이끌려온 현재의 국가의 정체성과 미래로의 비젼이 일관된 방향성을 가지고 제시되어야 한다. 여야 간의 과거사 공방이란 그 바닥을 들여다보면, 기득권층의 기득권 지키기와 현 정권의 기득권층에 대한 기득권 빼앗기의 싸움으로 비춰진다.

 

지금 대한민국을 바르게 이끌어가는 리더쉽이 존재하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금 우리는 국가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우리의 앞 날을 개척해 나아갈 방향성을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 난국에 처한 국가의 현실을 타개 지도자가 있는가? 진정 국가의 장래를 염려하고, 개인의 이익이나 당파적 이해에 얽매이지 않으며, 우리 모두의 장래를 모색하는 리더쉽이 남아 있기나 한 것인가? 어디를 둘러봐도 당파적 이익만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높을 뿐 진정 우리 모두의 화해와 협력을 통한 국가의 장래를 염려하는 목소리는 없는 듯 여겨진다.

 

지금과 같은 위기의 상황을 극복하고, 국가 발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리더쉽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만나는 모든 정치적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힘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당파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대다수 국민들 또한 자신이 지지하는 정파에 힘을 모아주는 것이 합당하고 현실적이라 생각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지난 40여 년 성장과 실적 위주의 삶을 살아오면서, 올바른 삶의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의 소중함을 잃어버린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무엇이 올바른 삶이고 무엇이 그릇된 삶이라는 자각조차 잊은 채,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하며 살아오면서 삶의 방향성을 상실한 것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국가경영에 대한 온전한 철학이 있는 지도자가 없고, 올바른 신념을 지키며 살기 보다는 물질적 풍요만을 좇아 갈팡질팡하며 살아온 것이 우리들의 지난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건전한 삶의 원칙을 상실한 사회를 바로잡는 리더쉽이란, 혼란한 사회 상황에서 원칙을 바로 잡아가는 그리하여 사회질서를 확립해 나아가는 원칙 중심의 리더쉽이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무질서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사회발전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군기가 바로 서지 않은 군대가 전투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자기 나름의 삶의 원칙을 확립하고 자신의 생활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성공적일 수 없다. 경찰관의 56%가 법을 지키면 손해라고 대답하는 사회, 모든 국민의 준법정신은 땅에 떨어졌고, 지도층 인사들은 법 위에서 특권적 권한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된 사회이다. 그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법과 원칙이 무너진 사회로부터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명백하다.

 

남을 다스리는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다스리라는 말이 있다.

간단히 생각하면 성공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는 쯤에서 이해할 수 도 있다. 성공을 위한 자기관리는 성공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성공적인 삶의 과정을 겪어오면서 실천한다. 하지만 승승장구하여 성공의 가도를 달리던 사람이 실패하였을 때, 예기치 못한 어려움을 당하였을 때,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자신이 기대한 삶의 상황과 실패한 현실상황의 엄청난 괴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극한적 선택을 하는 것을 언론매체의 보도 등을 통하여 보게 된다. 자신을 다스린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이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엄청난 책임이 부과된 불확실한 삶의 상황이나, 견디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삶을 겪게 되면, 말처럼 그렇게 쉽사리 자신을 다스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 백만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였다.

 

대통령이 자신을 다스려야 나라를 온전히 다스릴 수 있다.

대통령의 직무 상의 책임이란 엄청나다. 모든 국정에 대한 책임을 대통령 개인의 판단이나 의지로 감당하려 한다면, 세상에 대통령 노릇 성공적으로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 보아도 현명한 군주일수록 사람을 잘 써서 자신의 책임을 분담하면서 국정을 일관된 방향으로 통합해 이끌고, 법과 원칙을 바르게 하여 을 세우고 권위를 세워 세상을 다스렸다. 소수의 사람이나 한 사람이 세상을 다스리려 할 때 없어서는 아니 될 것이 권위이다. 권위 없이 세상은 지배될 수 없다. 지배의 권위는 그 지배의 원칙이 보편적 삶의 원리에서 기인할 때 확립된다. 탐욕스런 지배자가 국가의 권위를 올바르게 확립할 수 없다. 지도자가 탐욕스러우면 국가는 권위를 바로 서지 않는다. 지도자의 도덕성은, 국가경영이 지도자의 개인적 욕망에 기초한 것이 아닌, 보편적 삶의 원리에 기초한 것으로 만들어, 보다 폭넓은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내고, 국가권력의 영속성을 향상시킨다.

 

고도로 복잡하고 분화된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결코 개인의 탁월한 지도력에 의존하여서는 성공적일 수 없다. 그러하기에 사회통합을 이끌어 내고, 결집된 국민적 역량을 도출하는 지도력은, 국가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정밀하게 조직된 국가기관의 권위와 법의 권위를 통하여 성공적으로 국가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사회가 복잡할수록, 우리 앞에 주어진 삶의 상황이 혼란스럽고 어려울 때 일수록, 이러한 혼돈과 무질서를 극복하는 국가질서를 확립하고, 새로운 국가 비젼을 제시하는 리더쉽이란 국가의 조직의 원칙이나 국가운영의 원칙을 확립해 나아가는 원칙중심의 리더쉽이어야 할 것이다. 법치국가의 최우선 과제가 통치권자의 권한의 오남용을 방지하는데 있다 말할 때, 이는 통치권자의 권위와 지도력을 극대화하고 효율적이고 성공적으로 이끌게 위해서는 원칙중심의 리더쉽이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플라톤은 강력한 권력을 무절제(어리석음) 없이 받아들일 인간은 없기에 강력한 권력의 무절제를 방지하는 것이 입법자의 의무라 말하며, 국가 권력이 법에 의하여 다스려질 것을 강조했다.

 

원칙 중심의 리더쉽이란 원칙만을 강조하는 경직된 자세를 말하지 않는다. 지도자의 행동은 원칙을 지키며,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때, 국민은 지도자를 신뢰할 수 있다. 원칙을 제시하는 지도자는 자신이 실현하고자 하는 비젼을 구체화하는 원칙을 제시함으로써, 국가발전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국가발전에 대한 비젼을 제시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원칙을 확립해 나아가는 지도자의 신념과 리더쉽은 보다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지도자의 신념을 공유하고 국가발전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지금 우리는 세대 간, 계층 간, 지역 간으로 편가르기를 하며, 자신의 주장만이 정당하다고 고집하며 서로를 흠집 내는 싸움에 골몰하고 있다. 우리가 처한 난국을 극복하는 길이란 이러한 불신과 반목,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진정 우리가 하나되는 마음으로 화해와 협력을 이끌어 내는 리더쉽이 절실하게 아쉬운 싯점이다. 우리 시대에 가장 고갈된 자원은 <사회적 연대성>이라는 자원이다. 그리고 이 사회적 연대성의 이념은 우리의 헌법전문이 정신에 녹아 있다.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리더의 덕목은 무엇일까? 그것은 카리스마의 예언자적 능력이나, 영웅적 자질이 결코 아닐 것이다.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의 모습은 자신이 갖는 퍼스낼리티를 내세우는 지도자가 아닌, 우리 사회를 진정 화해와 협력으로 이끌어가는 원칙을 찾아내고 이를 실천하는 지도자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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