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을 모색한다.
2005-01-03 16:36:49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4일 CBS 창사 5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대통령에 대한 언론의 비판은 좋지만 대통령이 밉다고 국민의 희망과 용기까지 깨거나 훼손하는 일은 없도록 했으면 좋겠다 말하며, (대통령이) 밉더라도 한국은 다 같이 잘되게 해보자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언론은 강한 힘을 갖고 있다"며 "날이 잘 드는 양날의 칼과 같아 잘 쓰이면 역사를 진전케 하는 힘이지만 잘못 쓰이거나 권력과 결탁했을 때는 그 폐해가 엄청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기 이익과 경영자의 이익을 위해 그 막강한 힘이 남용됐을 때는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불가사리와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바른 언론이 되자면 항상 바른 소리를 해야 한다"며 "정치는 올바른 목표는 있지만 전략을 위해 둘러가기도 하고 때로는 술수도 용납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가끔 내게 언론이 쓴소리를 하고 보통 말로 ''왜 조질까''라고 생각도 해보지만 짜지 않은 소금이 무슨 소금이겠느냐"면서 "언론이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고 정론(正論)을 펴는 한 그 비판은 기꺼이 받아들이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교적 건전해 보이는 이러한 노대통령의 언론관에 대하여,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正論이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이제껏 우리 사회에 참된 의미의 정론이 있었을까? 하는 반성적 성찰과 함께 정론의 의의를 모색해 본다.
지금 우리사회의 언론은 그야말로 대 변혁기를 겪고 있다는 생각이다. 종이 신문에서 인터넷 신문의 전환으로 언론의 사회적 역할과 사회발전을 위하여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 어느 때 보다 신장되었다. 하지만 언론의 정론으로써의 자리매김은 더욱 어렵게 여겨지는 상황이기도 하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개인과 집단의 당파적 이익에 기초한 권리의 주장은 목소리는 높아졌지만 사회적 책임은 실종되고, 대립과 갈등이 증폭되어 왔다는 생각이다. 언론 또한 언론이 해야할 사회적 책임보다는 때로는 언론사주의 이익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가진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공익보다는 언론기관을 위한 언론이 아니었나에 대한 자기반성이 필요한 싯점이라 여겨진다.
正論이라면 편집권의 독립이 보장되어야 한다. 신문업이란 공익성을 추구하여야 하며, 기업 경영을 성공하여야 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정론이라면 편집권이 경영권과 동등한 관계에 있거나 편집에 관한 한 우위에 있어야 정론이 될 수 있다. 正論은 不偏不黨하고 是非曲直을 논함에 있어 시시비비의 보도자세가 명확하여야 한다.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하고, 경제적 이익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한다. 정론은 미래지향적이면서 사회의 보편적이고도 합리적 가치를 추구한다. 政論紙라면 신문의 경영적 이익보다 공적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 마땅하다. 정론지는 사회적 책임의식과 공익 수호에 대한 사명감이 강한 신문이어야 한다. 신문 제작의 측면에서는 고급지를, 경영의 측면에서는 일반지를 지향하는 것이 정론지가 가야할 길일 것이다. 이것이 정론지가 갖추어야 할 이상적이 모델이다. 하지만 정론지를 만든다는 것이 말은 쉽지만 신문 경영 현실 상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그것이 언론사주의 건전한 경영철학의 부재와 언론 종사자들의 자질 나아가 우리의 사회문화 수준이 정론지를 만들어갈 여건이 성숙하지 못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87 민주화 이전에는 신문이 검열을 받아야 하는 시절이었다. 그리고 정부가 국가에서 고급 정보를 독점하고 있었다. 정부의 행정방식은 공개되지 않았었다. 그러던 것이 김대중정부 이후 인터넷 보급의 확대 등으로 언론사나 대기업의 정보 능력이 국가를 앞지르는 부분이 생기기 시작하고, 정부가 사회통합을 위해 언론의 비판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언론개혁 시민단체등 에서 안티조선 운동 등 언론개혁운동이 확대된 배경과 맞물려, 조중동 등 기존의 보수 언론이 DJ 정부에 비판적 시각이 드러나면서 정부와 보수언론사 간의 관계가 뒤틀려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되돌아보면 DJ 정부시절 조, 중, 동 국민일보 등의 언론사주들이 줄줄이 구속되었다. 이들 모두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구속되었었지만 알고 보면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김태정씨 부인의 옷 로비 사건이 발단이 되어 언론사주들이 줄줄이 구속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기억이다. 그리고 당시 옷로비사건을 장장 몇 달에 걸쳐 DJ정권을 흠집내기에 열을 올렸던 언론의 보도자세는 분명 앞서 언급한 正論의 자세에서 벗어난 것이라 비난받을 이유가 충분하다. 언론이 정부를 비판함에 있어 얄팍한 상업주의를 등에 없고 센세이션날이즘(Sensationalism)으로 마녀 사냥을 했다 비난의 소지가 있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러한 저질 센셔이션날리즘에 입각한 폭로 위주의 상업주의적 보도자세는 正論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에 아직은 제대로 된 정론지는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나는 우리 나라에 정론이 가능하다는 것에 도전하며, 우리 언론에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려는 자세로 내 나름으로 무던히 애쓰면서 지난 8개월 동안 글 쓰기를 해왔다. 인터넷신문이라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進化된 매체환경이 우리에게 새로운 문화의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는 생각이다. 인터넷 환경에서 글쓰기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적응하여 처음 글쓰기를 할 때보다 여러 관점에서 훨씬 유리한 여건이 조성되었다는 생각이다. 나아가 혼란스러운 정치사회 현상에 대한 비평적 이해를 요구하는 독자의 수요가 증가한 사회상황이 이러한 나의 도전을 가능케 하였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나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경제적 이익으로부터 자유롭다. 내 자신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그 대가가 주어지든 말든, 사회발전에 기여하려는 노력이 나의 신념을 실천하는 길이라 믿고 글을 쓰는 것이기에, 정치권력이나 경제적 이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나는 作家의 삶을 살아왔다.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하여, 그리고 다른 예술적 작업에 대하여, 작가마다 제각기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어떠한 사람에게는 글을 쓰다는 것은 현실에서의 도피일 수도 있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수단일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또 다른 사람에게는 자신의 생각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켜, 자신의 생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기대한다.
내게 있어 글쓰기는 하나의 도전이다.
기존의 사유방식을 뛰어넘어, 새로운 사유의 영역이나 새로 방식의 체험을 전달함으로써, 사물과 삶의 현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인간의 知覺과 감수성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도전이다. 나는 우리들 세상이 보다 밝고 건강한 사회로의 발전을 염원하며 글을 쓴다. 국법질서가 확립되지 못하고 정치가 왜곡된 현실에서, 사회문화적 발전이나 정치적 발전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글이나 思想은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 내 개인적 생각이다.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철학이라면 자족적이며 사변적 푸념이거나 지식의 장사꾼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현실을 자신의 철학으로 끌어올리지 못하는 철학이란 현실 이하로 추락한다.
성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쾌락을 위하여 자신을 망치는 일이요, 영예를 추구하는 일은 자기자신을 완전히 상실하는 일이라는 작가 윤리를 프랑스의 작가 플로베르에게서 배웠다. 지위가 없음을 근심하지 말고, 설 곳을 근심하며,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알아줄만한 사람이 되기를 힘쓰며,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함을 염려하지 말고 내가 세상을 알지 못함을 염려하라고 배웠다.
스스로에게 정직해야만 세상을 온전하고 균형 있게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적 정직성은 자신의 주장의 개연성을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의 한계와 범주를 이해하고 나아가 자신의 주장을 포기할 조건을 이해하는 데에 있다고 믿는다. 겸손해야만 배울 수 있고, 용기 있는 자만이 스스로의 허물을 인정하고 고치며, 이를 바탕으로 학습하며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혜로운 자는 迷惑함이 없고, 용기 있는 자는 두려움이 없고, 어진 사람이라야 근심이 없다고 배웠다. 소크라테스는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라며 無知의 知를 강조했었다. 공자님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말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 말했었다.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은 철학은 말할 수 있는 것을 명료하게 묘사함으로써, 말할 수 없는 것을 보다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었다.
때로는 부족함을 인정하는 용기, 자신의 한계를 아는 지혜와 마음의 평온함이 지혜의 근원이라 생각한다. 추측의 대담함과 사고의 정밀함으로 인간은 새로운 사유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정론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의 글로써 입증하고 싶다. 그리하여 우리 언론 문화수준을 한 단계 향상시키려는 데에 도전하려 한다. 정론을 위하여 나의 글을 쓰는 입장은 명명백백하다.
이성은 편견과 독단과 투쟁한다. 살아있는 한 정의는 무지와 투쟁한다. 나는 불신과 반목 대립과 갈등으로 혼란 속에서 국가와 사회의 발전의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우리 사회에서, 법과 원칙이 확립되는 정치문화의 향상을 위하여 글을 쓴다. 자신들만이 옳고 다른 사람은 잘못이라 배격하는 독단과 편견에 기초한 편가르기의 부당성을 역설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발전의 방향에서 일탈하여 당파적 이익에 입각하여 개혁을 실시하는 현 정권을 비판하고 나아가 개혁과 국가발전의 방향이 새로운 국법질서를 확립해 나아가는 방향으로 가능하면 대안을 제시하며 비판할 것이다. 한편 자신들의 기득권과 특권에 집착하여 공정한 사회질서로의 발전을 거부하는 수구반동 세력이 새로운 정치발전을 위해 노력하도록 비판할 것이다. 그 사회나 개인이 가지고 있는 학습능력을 고려하지 않는 문제의 제기는 사회발전을 위하여 바람직하지 못하다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정론이라면 마땅히 문제를 제기한 사안에 대하여, 대안과 해결책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 전제되어야만, 사회 발전에 동기를 부여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정론으로써의 위상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의 발전의 기본동력이 보편적 진리와 합리적 이성에 기초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생각하는 국민만이, 깨어있고 공부하는 국민에게만 보다 밝은 미래가 있다는 것을 역설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에게 주어진 수많은 사건과 현안들에 대하여 보다 다각적인 관점에서 해설하고 비평함으로써 우리들의 삶에 보다 가치 있고 유익한 정보를 독자들에게 제공하려 한다.
나는 독자의 요구나 독자의 눈치를 보고 글을 쓰지 않는다. 내가 쓴 글이 독자들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면 독자가 늘어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독자가 줄어들 것이다. 나의 견해가 자신의 견해와 다르다 하여 자신의 사고방식을 내게 요구하는 어처구니없는 독자를 가끔 만난다. 하지만 남들이 내게 아무리 요구한다 하더라도 나의 능력 밖의 일이니 하지 못한다. 나는 내가 알고 이해하는 것만을, 내가 최선이라 생각하는 방식으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가능한 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독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이 아닌, 내 스스로의 삶과 생각이 보편적 세계관을 배우려 노력할 때 가능하다 믿는다. 인기에 영합하고 독자의 눈치를 보는 작가라면 베스트 셀러의 작가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저질 상업주의 작가 밖에는 되지 못한다는 것이 지금껏 지켜온 나의 신념이다. 나는 독자의 의견에 개의치 않고, 내 스스로의 삶에 충실하며, 끊임없는 반성을 통해 내 스스로의 삶을 보편적 진리와 세계관에 기초하려는 성찰과 실천을 통하여, 보다 향상된 언론문화, 정치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내 주장은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정답이 결코 아니다. 사회현상에 정답이 있을 수 있는가? 정답을 말할 능력이란 처음부터 내게 있을 수 없다. 나의 주장이란 내 개인적인 견해이며, 특정한 사회현안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일 뿐이다. 사람들은 나의 주장을 결론으로만 평가하려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결론보다도 그러한 주장을 하게 되는 사유의 과정에 주안점을 두고 글을 쓰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는 우리 문화의 저열성에 대하여 서구문화의 껍데기만을 배워왔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여긴다. 우리가 진정 선진문화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그 업적이 아니라 그 업적에 이르기까지의 사유과정과 삶의 태도와 노력을 배워야 한다 믿는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의 국가의 발전은 무엇보다 문화의 발전에 의존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억압이 없는 한 진실은 스스로를 알린다. 진실에 기초하여 글을 쓰는 것만이 독자들을 위하여 나아가 국가와 사회발전을 위하여 가장 유익한 일이라 믿고 있을 뿐이다. 그러하기에 나의 생각이 가능하면 진실에 근접할 수 있도록, 그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반성적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을 다짐해 본다. 나는 우리사회에 正論이 가능하다는 것을 나의 삶과 나의 삶에 기초한 글로써 입증하고 싶다.
결국엔 정직만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것을 굳게 믿는다.
내 살아가는 모습이 다 출판된다 하더라도 부끄럼 없이 살아야겠다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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