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8-09 13:39:47

 

 

경제에 대한 정부와 민간의 인식차가 너무 크다.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엊그제 "올해 5%, 내년도 5.2~5.3%의 성장이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그는 "투자와 소비가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으며 유가 상승도 충분히 반영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삼성경제연구소는 내년 성장률을 3.7%로 전망하는 등 민간 측 예상은 훨씬 어둡다. 세계적 투자기관인 모건스탠리는 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뛰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까지 제기한다. 스테그플래이션은 경기가 침체한 상태에서도 물가가 꾸준히 오르는 현상이다.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물가 상승없이 고용문제를 풀기 위해 꾸준히 지속해야할 적정 성장률)5%이다. 그런데 이게 2-3%대로 떨어진다면 경제의 활력이 확 떨어지고,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게 될 것이다. 실제 내년 경제성장이 3%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미국 모건스탠리나 국내 삼성경제연구소는 전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물가가 4%대 이상으로 오른다면 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뛰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될 것이다.

 

우리 경제의 앞날에 미래가 있는가?

어떤 이는 강성노조를 없애고 신자유주의적 시장질서의 확립을 주장한다. 또 분배가 아니라 성장 위주의 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낙관적인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도덕적 해이와 규범의식은 시장질서 자체가 형성되지 못할 만큼 편법과 불법이 난무하는 난장판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분배가 아닌 성장이란 말도 그렇다. 지금 우리사회가 분배구조가 개선되고 있는 줄 아는가?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분배구조가 더욱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의 경제상황은 성장이 가능해 보이지 않을 만큼 대책 없이 망가져버렸다. 한술 더 떠 정부는 개혁을 한답시고, 있는 자와 없는 자를 편가르기 하여, 있는 자에 대한 없는 자의 증오심을 부추기어, 사회안정을 훼손하였고, 투자 분위기는 극도로 악화되어 있다.

 

IMF환란 이후 분배구조는 훨씬 악화되었고, 빈부격차, 업종간의 격차 산업구조도 악화되었다.. 신용불량자 400만의 시대, 가구당 부채가 사상최대를 기록하는 경제적 악영향의 파장은 자못 심각해 보인다. 내수소비가 위축되는 것은 단순한 소비 위축에 그치지 아니하고, 생산 기반을 위협하며, 생산 기반의 위축은 기업을 도산으로 몰고, 그로 인하여 또 소비가 위축되는 경제의 악순환 고리를 형성하게 되었다.

 

우리 경제현실과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개방화 세계화 하면서 시장경제를 소리 높여 외쳤었다. 국내 10대 기업의 외국인 지분율이 50~70%나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국내 은행의 외국인 지분률도 30%를 넘고 있다. 외자유치, 외자유치를 대책 없이 외쳐 되었고, 한국은 투기적 외국자본의 표적이 되어버렸다. 자주화를 역설하는 현 정권에 말한다. 우리의 경제현실은 국가의 경제주권이 위협받고 있는 심각한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경제주권을 지키고, 우리의 힘으로 국민경제를 되살려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 정권은 여전히, 새로운 미래의 국가 비젼의 제시도 없이, 어이 없는 과거사 들추기로, 기득권층의 기득권을 빼앗고 죽이기에 급급하며, 사회안정을 파괴하고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경제현실이다. 이처럼 정부가 앞장서서 사회의 안정 분위기를 깨고 있는 상황에서 투자가 이루어지겠는가? 기업인들의 기업활동은 위축되고, 돈 있는 사람들이 투자를 기피하며, 한국에서 기업하는 사람들이 외국으로 빠져 나아가는 실정이다. 게다가 비용소모적인 거대한 국책사업인 수도 이전을 국민의 반대의견을 아예 봉쇄한 채, 대통령의 전횡으로 추진하려 하고 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란 위기를 넘어 절망적이란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성공하는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 일의 성취를 통하여 그의 능력은 보다 향상된다. 실패하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을 한다. 무모하게 일을 벌리고 실패를 겪으며, 그 자신 스스로 상처를 받는다. 성공을 하기 위하여서는 우리의 처지를 바르게 알아야 하고, 어떠한 일을 실천하기 위하여 그 목표가 적당한 것이 되게 하여야 하며, 그 일을 하는 데에 있어 적절한 방안을 가지고 일을 추진해야 한다. 무지한 사람들은 <하면 된다>식으로 일을 추진한다. 하지만 정말 일을 잘하는 사람은 <제대로 해야 일이 된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 일을 추진하는 중에 잘못된 것인 줄 알면 미련없이 포기하는 것 또한 지혜이다.

 

정치는 파워 게임일 수 있다. 하지만 국가경제는 게임으로 되지 않는다. 정부가 국가경제의 주체가 되었었던 개발독재의 경제패라다임이 끝장 난지 이미 오래이다. 민주화를 진행하면서 우리 경제가 거덜났던 근본적인 이유가, 타락한 정치 권력이 보다 많을 돈을 주무르려는 사업을 벌린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국가경제의 핵심적 주체는 기업이란 사실, 그리고 정부는 기업이 기업 활동을 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려는 것이, 침체에 빠진 국가경제를 살리는 것이 정부의 본분임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이러한 정부의 전향적 태도와 국민경제를 살리려는 올바른 관점에 입각한 노력만이 빈사상태에 빠져 버린 한국경제에 돌파구를 열게 되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국제유가가 사상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는 상황을 미루어 생각할 때, 경기 침제는 가속화되고 물가가 뛰게 되는 스테그플레이션의 가능성을 제기하는 모건 스탠리의 지적은 우리들의 가슴을 더욱 짓누르고 있다.

 

시중에 부동산시장 등을 쫓아다니는 부동 자금이 약 400조원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는 5대 개혁 대상 중 하나로 서울 강남에 사는 사람이라는 어이없는 발상을 하고 있다. 나아가 기업인을 죄인 시하는 풍토가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400조원의 부동자금이 생산적인 산업자금으로 투입되지 못하고, 투기 시장 등을 떠도는 데에 대하여, 정부는 이들 자금에 대한 적대적 의식을 버리고, 투자 유인을 제공하려는 정책을 개발하여야 마땅할 것이다.

 

취약한 정권 기반 하에서, 집권 기반의 강화를 위해서,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대결구도를 통하여 집권기반을 강화한 것을, 이제 더 이상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구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있는 사람들을 때려잡는다 하여 더 이상 신바람을 낼 사람도 없을 만큼 우리의 살림살이는 지치고 고단하다.

 

여름 휴가를 다녀와 심기일전의 마음으로 새롭게 국정에 임하는 노대통령께 부탁한다. 반파쇼 민주화와 반미 자주화라는 낡은 사고의 잔재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이러한 낡은 사고를 과감이 떨쳐버리라고 말하겠다. 왜 이 어려운 싯점에서, 새로운 국가 비젼의 제시 없는, 역사 바로 세우기를 말하며 국론을 분열시키고,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려는가? 반대하고 징벌하며 파괴하는 리더쉽이 아닌,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고 어려운 처지의 국민을 격려하며, 이끌어 주는 새로운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생산적인 리더쉽이란, 국민에게 희망과 비젼을 제시하여, 리더가 제시하는 목표에 한 마음으로 국론을 결집시키는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국가의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이라 믿는다.

 

우리 시대에 가장 고갈된 자원은 <사회적 연대성>이라는 자원이다.

스스로를 믿는 자만이 남을 믿을 수 있다. 철학과 국가발전에 투철한 신념이 있다면 반대자들 마저 끝내는 지지자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참된 리더쉽이라 생각한다. 노대통령에 기대한다. 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모두의 번영을 위하여, 힘든 줄 모르고 팔을 걷어 부치며, 우리들의 삶을 개척하는 데에 힘을 모을 수 있는 지도력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이것이 대화와 협력을 통한 상생과 통합의 큰 정치라는 사실을, 이제 안정된 정권적 기반을 가진 강력한 집권당을 이끄는 노대통령이 그 누구보다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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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10 15:00:07

 

천정배 원내대표는 특위 발족 기자회견에서 Ŝ월 임시국회와 9월 정기국회를 민생.경제 살리기 국회로 만들 것" 이라며 열린우리당이 민생. 경제회생을 외치고 있다. 경제를 살리겠다며 3개 특위, 일자리창출. 규제개혁. 미래전략특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 원장은 10일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열린 최근 한국경제 이슈주제의 국제회의에서 우리나라는 지금 기본적인 경제원리가 결여된 채로 평등주의라는 주술에 걸려 정체성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연 한국의 민주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바람직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뒤 한국적 민주주의는 평등을 추구하는 쪽으로 변해왔으며 이런 맥락에서 정부 정책이 경제활동의 성과를 획일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대학교수는 한 신문 기고문에서, 소비자 기대지수, 생산자 물가지수, 성장률 등이 모두 최악이다. 한국경제의 위기를 경고하며, 그 문제에 대한 진단으로, 외국기업이건 국내기업이건 투자를 꺼리는 이유는 세율이 높아서, 이자율이 높아서, 또는 환율이 적절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투쟁적 노동행위, 반기업정서, 불필요한 정부규제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경제가 위기의 국면에 처해 있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한 사회가 갖는 문제해결 능력이 그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발생을 감당하지 못하면 그 사회는 위기의 국면에 처하게 된다. 기존의 체제가 지닌 한계가 드러나,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점차로 많아지게 되면 그 사회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징표가 될 것이다. 의회의 의석이 모자라 대통령 노릇을 못해먹겠다고 말했었다. 4.15총선 이후 의회1당이 된 집권당, 강력한 정치기반을 확보한 노무현 정부가 우리에게 가시적인 비젼을 보여주고 있는가? 그 체제가 당연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문제, 그리고 당연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체제위기는 발생한다. 분배구조도 악화되고 성장률도 악화되며, 소비자기대지수 물가지수 모두 악화 일로에 있다. 이런 위기적 상황에 대하여, 3개 특위를 발족하여 대응하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집권당의 대응과 보수적 집단과 야당 등의 경제의 위기진단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단편적이며 무지몽매한 것인가를 생각하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876.10 항쟁 이후, 민주화의 진행은 결과적으로 한국경제를 말아먹은 꼴이 되었다. 하지만 좌승희 원장의 한국경제에 대한 진단은 그야말로 장님이 코끼리 다리만지기 식의 진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화가 되어서 경제가 거덜났다는 것의 뉘앙스 이외에, 아무 내용도 없는 푸념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지금 겪고 있는 경제적 위기와 한국경제의 실패는 민주화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개발독재의 국가주도형 경제 패라다임으로부터, 민주주의 질서에 걸 맞는 경제모델을 개발하지 못한 데에 기인하는 것이다. 껍데기는 민주화이고 말로는 민주주의를 외쳐왔지만, 정부의 권한 행사방식과 대기업의 지배구조가 건전한 시장질서가 요구하는 투명성과 신뢰성를 주지 못한 채, 개발독재의 경제 운영방식에서 탈피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의 근본적인 이유는 투쟁적 노동행위, 반기업정서, 불필요한 정부규제라고 말하는 주장 또한 단편적이고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 누구도 개발독재에 의해 이끌어 온 우리 경제의 문제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또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며, 단편적이고 피상적 개인적 의견을 피력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정신이 온전한 투자자라면 대한민국에 투자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경제에 비젼이 없다는 것을 판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로 미루어 보면 결코 투자할 나라가 아니다. 전체 경제인구의 3분의 1400만이 신용불량자이다. 건전한 시장이 존립하려면, 개인 간의 계약과 약속이 존중되어야 하고, 경제 주체의 책임성과 신용이 전제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신용이 없는 국민이다. 게다가 대통령의 국가 정책에 대한 생각이 수시로 바뀌고,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인지, 자유민주주의를 하자는 것인지 헷갈리고 있다. 현 정권의 개혁이 민주주의 헌정질서와 자유주의적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개혁인지, 계급해방을 위한 사회주의 혁명인지도 헷갈린다. 외국인이 무책임하고 무질서하며 난장판인 나라에, 국가의 정체성과 방향성도 헷갈리는 나라에 무엇을 믿고 투자를 하겠는가?

 

투쟁적 노동행위가 기업의 활동을 위축한다고 말한다. 백 번 옳은 말이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투쟁적 노동행위보다 훨씬 심각하다.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준법의식이 희박하고, 다중의 위력으로 뗑깡을 부리면 자신의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서로 상반된 이해관계 속에서 집단적 반목 갈등과 대립이 횡횡하고 사회질서가 망가진 사회이다. 한국 사회에서 기업을 한다는 것은, 지나친 불확실성의 난장판 세상에서 기업을 하는 것이다. 돈 많은 자본가에게 물어보라. 한국에서 고용을 필요로 하는 산업에 투자할 의향이 있겠는가? 제조업을 하겠다고 손들고 나올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다면 이러한 강성노조가 발생한 원인이 무엇인 줄 제대로 아는가?

이제껏 기업의 지배구조가 투명했느냐는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불공정하고 투명하지 못한 기업 경영의 배경에는, 범죄와 부정부패와 정치자금의 제공을 통한 특혜적 기업의 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기업이 망하여 수 천명의 노동자가 하루 아침에 거리에 나 앉아도 기업인은 망하지 않았었다. 기업의 운영방식과 정부의 기업활동에 대한 지원이나 규제가 불투명하게 이루어 졌고 그것은 부패한 권력과 특혜적 성장을 기대하는 타락한 기업 윤리가 공생 관계를 이루며 한국경제를 이끌어 왔던 것이다.

 

국가가 사익집단과 결탁한 신식민지 독점자본주의라는 좌파 운동권의 비판에 대하여 항변할 이유를 대지 못하게 되었고, 민주화 과정에서 국가나 경제주체 모두 민주주의에 입각한 자유민주의적 시장질서에 알맞은 국가 경영 방식과, 기업경영 방식을 만들어 내지 못했던 것이며, 그러하기에 자유주의적 시장질서에 대한 경제철학에 기초한 일관된 정책을 수립하지 못했다. 사안별 필요에 따라 진행된 개방화는 투기적 국제자본에 대한 국부의 유출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국내의 알짜 기업과 금융산업을 외국에 내어주게 되어, 이제 우리는 국가의 경제 주권을 위협 받는 상황에 이르게까지 된 것이다.

 

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완화는 10년 이상을 외쳐온 구호이다. 외국자본에 대하여 특혜적으로 규제완화를 해주며 국부가 털리는 데에도 계속해서, 규제완화를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업인들이 말하는 규제완화는 대한민국을 무정부 상태로 만들고 기업인 마음대로 기업 활동을 해달라고 주장하는 것인가?

 

환경 등과 같은 공공의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기업활동을 제약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정부는 무엇을 규제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규제 완화의 우선순위를 정하여 이를 착실하게 실행했어야 했다. 과거, 개발독재 하의, 관리의 타성에 젖어 가능한한 관리의 재량적 행위를 확장하고 임의적으로 행사하여, 행정의 투명성을 잃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기업을 해 본 외국인 CEO들이나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에 대한 한결같은 불만은, 기업의 지배구조가 투명하지 못하고, 정부의 공권력 행사가 투명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정부의 공권력 행사가 불투명하고 예측가능하지 못하다면, 기업은 자신이 처한 기업환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어렵고, 경영 계획을 제대로 수립할 수 없게 된다.

 

법질서가 확립되고, 개인의 사업의 영역을 제약하는 공권력의 행사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정당성 승인청구나 타당성 승인청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민주주의적 법치질서가 전제되지 않으면 시장질서의 구축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경제의 주체, 경제행위에 가담하는 개인의 신용과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감을 갖지 못하는 사회가, 온전한 시장을 갖지 못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경제적 강자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가격이나 다른 시장 정보를 조작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건전한 시장질서는 처음부터 불가능해 진다.

 

건전한 시장이란 자발적인 협력을 통한 경제활동이, 경제 행위의 주체들에 의하여 스스로 조정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시장의 존립의 전제는 경제거래가 쌍방에 의해서 자발적이고, 충분한 정보가 교환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경제학은 정치경제학이다. 마르크스의 경제학은 자본가의 착취로부터 노동자가 해방되는 정치적인 문제이다. 레닌이 노동조합을 정치의 학교라 말한 것은, 노동조합의 활동을 통하여 노동자들의 결속과 정치의식화를 겨냥하였기 때문이다. 정치적 자유 없이 경제적 자유가 없다는 것이 마르크시즘의 기본적 교리이다. 하지만 정치적 자유를 획득한 공산주의 국가에서 프로레타리아가 진정 정치적 자유를 획득하였던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한다는 공산주의 체제의 경제적자유가 실현된 국가가 있었던가? 북한의 체제가 정치적으로 해방된 인간이 경제적 자유를 한없이 구가하는 지상낙원이란 말인가? 지상낙원을 이룩하고자 하였던 시도는 예외 없이 지옥을 만드는데 그치고 말았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경제적 자유 없이, 정치적 자유가 없다는 것이 신자유주의를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다. 경제제도는 자유사회를 진흥시키는 데에 이중의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 경제제도 내에서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자유의 한 구성 요소를 확대하는 것이기에, 경제적 자유는 그 자체로서 자유의 목적이 된다.

 

둘째, 경제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를 달성하는 데에 있어서는 아니 될 수단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대다수 지식인이나 정신적인 영역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이를 반대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물질적인 것보다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하므로 물질적인 것을 중시하는 이러한 태도에 반대하는 강한 편견을 갖기 쉽다. 하지만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이 전체 인구 중에 차지하는 비중이란 0.1%미만일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에게서는 경제적 자유를 얻는 것이 정치적 자유를 얻게 되는 수단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 보편 타당한 현상이라 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 겪고 있는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란 근본적으로는,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는 일이다.

 

지금의 시점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대통령이 일관된 신념으로 민주적 헌정질서를 구축하고, 국가권력의 행사에 원칙과 투명성을 확보함으로써 사회안정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우선 대통령과 집권당부터 솔선하여, 경제 살리기 위한 정책과 비젼을 제시하고 이를 착실히 실천함으로써 국민적 신뢰를 얻는 일이다.

 

한국경제에 관한 한 정부나 기업이나 국민 모두가 성공자이면서 동시에 실패자이다. 다시 말해 박정희식 경제성장방식은 성공한 것처럼 여겨졌으나 지금의 싯점에서는 그 방식이 완전히 쓸모 없는 실패한 방식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주의적 시장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경제적인 과제이고 이 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국가의 기본적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법의 권위를 회복하는 일이며,국민의 준법정신과 사회적 책임을 갖는 건전한 시민정신의 확립이 시급한 과제라는 것을 정치권과 함께 모든 국민이 자각해야 할 문제라 여긴다.

 

노대통령에 당부한다. 이 난국에 처한 우리의 현실에서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손에 손을 잡고,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어도 넘기기 만만치 않은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다. 진정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로써, 우리 모두를 위한 대통령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노대통령의 마음 먹기에 따라, 우리는 파멸의 나락으로 추락할 수도 있고, 진정 국가적 도약의 기틀을 마련할 수도 있다 믿는다.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나와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기꺼이 발벗고 나서는 것 이외에 위기의 우리 현실을 극복할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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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2 14:32:00

 

우리에게 희망이 가능한가?

 

경기(景氣)침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정치권이 과거사() 문제로 빠져들면서, 사회에 불안 심리가 고조되고 있다. 혹자는 기득권층이 경제 위기의 분위기를 조장한다 말한다. 기업인과 서민들은 분노하던 단계를 넘어 바야흐로 체념하고 포기하는 단계로 가고 있다. 기업인과 서민들이 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에 기대를 버린 이유는 간단하다. 이 정권의 경기감각이 아직도 부양책을 쓰느냐 마느냐 하는 초보적 논란을 정리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금리인하, 투기지역 해제 등으로 사실상 부양책을 쓰면서, 다른 쪽에서는 이를 부인하며 정반대 메시지를 보낸다. 이쯤 되면 어느 쪽이 진심인지 알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질 수 밖에 없다. 안정성을 상실한 사회에서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득권층이 위기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돈 있는 사람들이 불안정한 사회분위기에서 기업활동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하면, 기업활동이 위축되고 투자를 기피하게 될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돈 있는 사람이 위기 의식을 느껴 투자를 기피하는 상황만으로도 곧바로 경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국제원유가는 치솟고, 물가는 오르고 경기는 끝이 보이지 않는 침체의 늪으로 빠져드는 상황이다.

 

노대통령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은 현 정권에게 희망을 가지고 싶어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노대통령이 잘못하여 대한민국이 거덜난다고 주장한다. 노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처지나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적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현 정권에 기대한다. 마찬가지로 노대통령이 잘못하여 나라가 거덜난다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점을 오직 노대통령의 잘못 때문이라 강변한다. 노대통령이 아닌 박근혜 대표가 대통령을 한다면 지금보다 나아질까? 대통령이 바뀌어 해결될 문제라면 우리의 문제란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란 대통령이 바뀌어 해결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사회구조적인 문제이며, 지금 대한민국은 심각한 체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바르게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경제는 외부적인 변화에 적응하는 것조차 실패한 것으로 여겨진다. IMF환란 이후,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상관없이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는 정부주도의 경제로 이끌어온 우리에게 혁명적 변혁을 요구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우리 경제가 어렵고 위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기업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 주도의 경제운용방식에서 각종 특혜를 누리며 성장해 온 기업들에게, 무한 경쟁의 세계시장에서 살아남는 것만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을 것이다. 기업이 기업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기업활동에 장애가 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주장하고 강성노조를 때려잡는 것이 경제를 살리는 일이라 주장한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는가? 우리의 경제를 살리기 위하여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부도 민간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정부주도의 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변화가 어떠한 것을 요구하는가에 대한 온전한 이해 없이, 여전히 기업활동의 활성화와 생산성의 증대 같은 경제성장의 논리로 경제회생을 말하고 있다.

 

지금 처한 경제적 위기 상황은 경제문제의 차원에서 해결될 수 없다.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전제되지 않는 상태에서, 성장을 위한 기업활동의 촉진을 말하며, 기업활동에 유리한 시장경제의 요소만을 도입하려는 것으로 경제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물론 국민경제를 생산성향상을 도외시한 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올바른 상황인식과 방향성을 설정하지 못하는 경제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 성공적인 경제개혁은 제대로 된 시장질서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설정되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천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부주도의 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이란 새로운 패라다임으로 경제를 이끌어가야 하는 혁명적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시장경제의 도입은 단지 경제적 차원에서 이룩될 수 없다. 시장 경제는 17세기 영국을 기점으로 해서 미국과 유럽 그리고 서방 세계의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시장경제와 헌정국가는 상호의존적인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함께 발전해 온 제도이기 때문이다. 시민적 시장경제는 헌정국가의 사회학적 실체를 이루며, 헌정국가 역시 시민적 시장사회의 요구에 의하여 형성되고 발전되어 왔다. 정치적 운동으로서의 <자유주의>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목표- 헌정국가와 시장경제를 추구하고 있다. 자유주의는 권력분립과 개인의 인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경제적 자유주의 - 다시 말해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두 축으로 하여 발전되어 왔다.

 

헌정국가와 시장경제는 다음의 점에서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발전되어 왔다. 헌정국가는 법적 안정성, 의회의 영향력, 경제적 자유, 특히 소유권의 보장을 통하여 시장경제에 제반 요건을 조성하여 준다.

 

첫째, 시장경제는 경영계획의 수립의 전제조건으로 법적안정성을 요구한다. 기업을 운영함에 있어, 예측 가능한 데이터에 관한 지식이 정확할수록 기업의 활동은 용이해 진다. 노무현 정권은 이러한 점에서 시장경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경제를 운용을 하고 있다. 국가권력이 기업활동의 안전을 보장해 주기는 커녕, 오히려 기업경영의 영역을 침해하려 한다면, 기업은 생존을 위하여 본능적 거부반응을 보일 것이다. 국가 권력이 자의적으로 법을 운용하고, 기존의 법적 안정성을 깨뜨린다면 법적 안정성과 사회의 안정성은 파괴되고, 당연할 귀결로 기업활동은 위축될 것이다. 법적 안정성을 위하여 일반적으로 법관이 법률에 기속되어야 하고, 법관의 인적 물질적 독립이 보장되어야 하며, 투명하고 예측가능한 국가권력의 행사로 법률은 형식성과 공개성, 일반성과 신뢰성, 나아가 내용상의 명확성을 가지고 운용되어야 한다.

 

둘째, 시장경제를 주장하는 기업인들이 의회에 대한 영향력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자유주의가 자유주의적 헌정국가를 옹호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의회의 고전적 3대 기능이란, 입법과 조세와 정부통제에 있고, 이러한 모든 기능이 기업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셋째, 헌정국가에서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 중에는, 경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자유를 포함한다. 이러한 자유들은 기업 경영상의 재산권의 처분과 상품의 자유거래를 가능하게 해 준다. 직업 선택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소유권과 같은 기본권이 그것이다.

 

헌정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지, 시장경제를 보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헌정국가가 보장하려는 개인의 자유의 파생효과로 시장경제의 활동을 촉진한다. 하지만 헌정국가의 자유보장의 목적이 시장경제의 보호에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헌정국가이념을 훼손하고, 결과적으로 시장경제를 왜곡하게 될 것이다.

 

시장경제이론은 경제적 번영의 최적 조건을 모색한다. 시장경제이론의 출발점은 공공의 이익이다. 아담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모든 생산의 목적은 소비에 있고, 생산자의 이익은 소비자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한도 내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영업행위를 하는 사람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어야만이 자신의 이윤추구가 가능하다. 다시 말해 고객의 이익을 극대화시켜 줄 때, 기업의 이윤도 극대화된다. 시장경제에서 이러한 협동의 관계가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개인은 사적 이윤을 추구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조정이라도 되듯 결과적으로 공동의 번영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개인의 이기심을 극대화하려는 소유적 개인주의의 출발점은 자기 자신, 독자적 자기 능력으로 자기 재산을 축적하려는 소유권자로써의 개인이다. 소유적 개인주의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타인의 이익을 빼앗고, 헌정국가를 부패 타락시킨다. 그리하여 소유적 개인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으며, 결국에는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말게 된다. 그리하여 소유적 개인주의는 공공의 이익을 극대화 하려는 시장경제 질서를 왜곡한다.

 

경제 성장의 논리로 기업활동을 지원하는 제반 조건을 제공함으로써 우리 경제는 살아날 수 없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근본적인 개혁의 방향이란, 건전한 시장질서를 확립해 나아가는 데에 있다 할 것이다. 과거, 유치자본을 육성하여 산업자본으로 만들고, 국가가 경제개발을 주도하여 수출기업에 정책적 지원 등을 통하여 경제를 운용하던 방식은 이제 더 이상 쓸모 없어져 버린 낡은 경제 운용의 방식이라 할 것이다. 지난날 우리가 추구해온 경제학이 경제의 규모를 키우고 성장을 촉진하였던 <규모의 경제학>이었다면, 앞으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야할 경제학은 생산과 소비를 원활하게 매개하고 유통을 활성화하는 <흐름의 경제학>으로의 패라다임의 전환이 시급하게 요구된다 할 것이다.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의 핵심 내용은

<양자간의 교환이 자발적이라면, 양자 모두 이익이 되어야만 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 파는 자와 사는 자 사이의 교환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가격- 자유시장의 가격이 각자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수백만의 사람들이 협동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하여, 경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이제 우리 경제는 생산성 향상과 성장률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성공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경제는 이제 더 이상 경제의 문제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시장의 기능이 보다 원활하게 작동하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형성하는 것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시장이 활성화 되기 위하여 무엇보다 법과 원칙이 확립되고, 책임감 있고 신용 있는 경제 주체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시장은 활성화 되지 않는다. 국내 항공사에서 예약제를 도입하려 했으나, 예약하고 탑승하지 않는 고객이 70%나 되어 예약제를 포기하였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사적 소유권에 대한 보장과, 법률이 준수되고, 시장이 운용되는 관행이 확립되지 아니한다면 시장의 활성화는 불가능해진다. 개인간에 약속이나 계약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 건전한 시장질서를 기대할 수 없다. 시장에서의 모른 경제행위는 자발성에 기초한다. 이러한 자발성은 상대방에 대한 상호 존중과 신뢰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시장 메커니즘은 작동되지 않을 것이다. 시장에서의 거래는 쌍방 간에 자발적이며, 충분하고 공정한 정보교환이 전제되어야 가능하여 진다. 나아가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이 건전한 시장질서를 왜곡하는 것을 철저히 방지할 때, 건전한 시장질서가 유지될 것이다.

 

개인의 삶에서 돈보다는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삶의 건전성을 상실한 병든 인간에게 물질적 풍요가 그의 삶을 개선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배금주의와 실적주의에 젖어 정당한 삶의 가치를 상실하고, 반칙과 편법이 난무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계층간, 세대 간, 지역간의 반목에 의한 사회갈등이 지금처럼 심화되고 국론 분열이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현실에서 우리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기득권층이 이룩한 성취가 특권과 편법, 불공정에 대한 집착으로 이룩된 부분이 있음을 그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현 정권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비젼의 제시 없이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며, 기득권층에 대한 기득권 빼앗기에 몰두하는 것으로 비추어진다. 우리 모두가 기꺼이 동참하여 지켜갈 국가에 대한 비젼의 제시 없이, 과거의 문제를 까발리고 들추어내어 기득권 빼앗기에 여념이 없는 현 정권의 무지와 무능력과 무책임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자신들의 눈 앞의 정권적 이익에 급급하여, 지금과 같이 국가를 갈갈이 찢는 일이 결국 현 정권 스스로의 무덤을 파고 있다는 사실을 가능하면 빠른 시일 안에 깨닫기 바란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경제적 도약을 위해, 가장 근원적이고 절실하며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은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에 입각한 국가질서를 바로 세우고, 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한 건전한 사회 윤리를 가꾸어 나아가며 이를 바탕으로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형성해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인간관계에서 도덕적 가치관이 드러나게 된다. 상대방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일을, 또는 상대방이 바라지 않는 일을 자신이 옳다고 하여 상대방에게 요구하거나, 자신의 판단으로 상대방을 위한 일이라며 일을 행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 <내가 하는 일은 상대방에 좋은 일이다> 생각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독단이다. 그리고 자신의 독단으로 상대방에 연관된 행위를 하는 것은 마땅히 부도덕하다. 부모가 자식을 욕심으로 키우면 이러한 짓을 자식에게 반복적으로 행하게 되고, 아이가 성장하면 이러한 부모 자식과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악화된다. 그것이 선행이라 할지라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부도덕하다는 것이 자유주의적 윤리이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도덕은, 개인에 대한 인간존엄성을 인정하고, 개성을 존중하는 일이다. 인간이 누군가에 의해 자기 목적에 맞도록 가치관이 맞춰 조작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성장제일주의 기치 아래 인간존엄성을 짓밟고 이룩하여 온 개발독재와, 국가권력에 기생하며 특권을 누리며 성장해온 소유적 개인주의는 이제 마땅히 배격되어야 한다. 파시즘은 독재자의 욕망에 모든 국민의 욕망이 종속되기를 강요받는 정치체제이다. 이러한 체제에서 자율적인 인간과 개성적인 인간은 배제된다. 인간은 각자의 권리와 독자적인 가치관을 지닌 독립적인 존재이다. 설득하는 것은 좋지만, 강요하거나 위협하고, 하물며 세뇌 따위는 결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사회관계에서 기본적 도덕이 되어야 한다.

 

자유주의적 이념에 기초한 국가질서와 규범질서 나아가 사회윤리와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한 상호 존중의 새로운 모랄을 확립하지 못하고 경제를 살려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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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8 18:46:04

 

 

자유주의와 전체주의와의 투쟁에 있어서 궁극적인 결말은 武器가 아니라 思想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 사람들을 구별하며 그들의 손에 무기를 쥐어주어, 누구를 위하여 그리고 누구에 대항하여 그것을 사용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것은 바로 사상이다. 무기가 아닌 思想만이 궁극적인 승리를 결정할 것이다.

 

루드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

 

 

 

자유주의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신문기사를 검색하던 중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한 기사를 발견했다. 지난 429일자 중앙일보의 <'신자유주의'여 안녕? 김영희 칼럼>이라는 기사이다. 우리의 현실은 신자유주의적 경제를 수용해야 할 입장에 있다. 잘못된 지식은 부패한 식품보다 훨씬 위험하다

 

<자연계의 동식물은 신()이나 인간의 간섭이 없어도 약한 놈은 멸종되고 강한 놈은 살아 남는다는 찰스 다윈의 이론이 자연도태설이다. 뒤집으면 자연선택설이다. 다윈의 이론에서 힌트를 얻은 영국의 철학자.과학자 허버트 스펜서는 인간 생활을 생존을 위한 무한투쟁으로 보고 강자가 약자 위에 군림하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을 주장했다. 이것이 사회다윈주의(Social Darwinism).

 

사회다윈주의는 제국주의.식민지주의. 앵글로색슨족의 문화적.생물학적 우월론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는데 이용됐다. 사회다윈주의는 경제에서는 자유방임(自由放任)의 자본주의, 정치에서는 보수주의 이론을 떠받쳤다. 그리고 20세기 후반, 특히 1980년대 이후에는 로널드 레이건, 마거릿 대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조지 부시들의 신자유주의가 사회다윈주의의 정신적 맥을 이었다.

 

신자유주의는 경쟁지상주의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부()와 권력을 차지한다. 가난과 실패는 본인 책임이다. 정부와 사회가 약자를 배려하는 것은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 정부는 가급적 작은 것이 좋다. 레이건 8년에서 아버지 부시와 클린턴 12년을 건너 뛰어 아들 부시에 이르는 미국 공화당 정부의 사회.경제정책이 부자들을 위한 쪽으로 치우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국제관계에서 신자유주의는 경제적.정치적 상호의존을 강조하여 세계무역기구.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19세기 자유방임주의를 닮은 신자유주의의 폭주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사회가 약자와 패자를 배려하지 않으면 결국 사회복지 비용의 몇배가 되는 사회비용을 물게 된다. 영국과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사회주의도 아니고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도 아닌 제3의 길을 모색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글을 써대고 있다. 이것이 김영희라는 한 개인의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이것은 우리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수박 겉핧기 식의 단편적 지식으로 세상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수백 수천의 케이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1. 사회진화론- 하이예크(F.A. Hayek)의 자생적 질서

 

 

사회에 대한 진화론적 합리주의 사상은 다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하이예크는 진화론적 자생적 질서관의 기원은 16세기 스콜라 학파지만, 사회적 진화론과 자생적 질서관을 형성한 것은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 데이비드 흄(D.Hume), 아담 스미스(A. Smith), 애덤 퍼거슨(A. Ferguson) 같은 이들이라고 말한다.

 

흄은 인간 이성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인간의 지식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치와 법, 도덕을 인위적으로 계획하여 만드는 것에 회의적 견해를 표명했다. 그러기에 그는 유토피아적 개혁을 포기할 것을 그리고 지적으로 제한적으로 이해하며 도덕적으로 부족한 인간을 전제로 사회이론과 철학을 개발할 것을 촉구한다. 아담 스미스는 자생적 질서관을 적용한다. ‘보이지않는 손이 그것이다. 스미스는 합리주의적 자연법 사상과 사회계약론을 비판하면서, 정치와 법을 인위적으로 형성함에 있어 인간 이성을 과대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애담 퍼거슨은 사회현상의 생성은 인간 행동의 결과이지, 인간에 의한 디자인의 집행이 아니다.”(The result of human action, but not the execution of any human design)라고 주장한다.

 

경제학에서의 사회진화론의 입장은 오스트리아 경제학파의 창시자인 맹거(C. Manger) 와 하이예크 자생적 질서이론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회진화론은 다윈의 진화론에 훨신 앞서서 주장된 이론이다. 하이예크는 <적자생존>이라는 말 때문에 사회진화론에 대한 거부감이 생겼다 말하며, 사회적 진화론의 사상을 다음의 다섯 가지로 요약한다.

 

인위적인 사회질서에 대한 자생적 사회질서에 대한 강조

목적 합리성에 대한 가치합리성에 강조

말로 표현되지 못하는 암묵적 지식의 강조

증명되지 않는 지식의 강조

지식의 오류가능성을 인정

 

하이예크는 자유를 보호하는 행동규칙들은 장구한 역사적 과정 속에서 수많은 인간들이 시행과 착오(trial and error)를 거쳐 자생적으로 형성된다 파악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기계론적 유물론(Mechanical Matrialism)과 사적 유물론에 대항하여, 칼 포퍼(K. Popper)는 역사발전의 과학적 이론을 부정한다. 과학적 지식이 미래에 어떻게 성장할 수 있다고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논증한다. 하이예크의 진화론 자생적 질서이론은 칼 포퍼의 이러한 역사인식과 그 궤를 같이한다.

 

경제에 있어 계획경제는 전체주의적이고 시장경제는 자유주의적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경제가 자유방임적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무엇보다 질서의 경제학을 강조한다. 하이예크는 법학박사이다. 하이예크의 시장에서의 자생적 질서는 정의에 기초한 헌정질서를 전제한 것이다. 나아가 건전한 시장의 전제조건으로 법의 지배의 이념이 실천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정치적 운동으로 자유주의는 일반적으로 <헌정국가><시장경제>를 동시에 추구한다.

 

신자유주의 운동은 나찌즘과 마르크시즘에 대한 비판과 관련되어 있다. 신자유주의운동은 무엇보다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자유주의적 사상 운동이다. 2차 대전 직 후 1947년 신자유주의자들의 결사인 몽 페르랭(Mont-Pelerin) 협회가 창립되었다. 미제스, 하이예크, 오이켄 프리드만 같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참여하여, 다음 해인 1948년 신자유주의의 연보인 <올드>를 창간하였다.

 

 

2. 오이켄(W. Eucken)의 질서정책

 

 

서독의 라인강의 기적을 있게 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오이켄(W. Eucken)은 하이예크와는 다른 입장에서 경제학의 과제를 어떻게 하면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질서>를 만드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오이켄은 <경제질서>는 하이예크가 생각하는 것처럼 저절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이켄에 의하면, <자유방임체제>는 경제적 강자의 시장의 독점화를 가져오고, 가격기구의 기능이 손상되어 공정한 분배와 사회적 안정이 깨어지며 결국엔 개인의 자유 자체도 억압 받게 된다. 반면 정부에 의한 중앙관리 경제는, 파시즘이건 사회주의 체제이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며, 자원의 합리적 배치를 불가능하게 하며 국가권력은 도전받게 되어, 결국은 정치면이나 경제면에서 무정부 상태로 나아간다 주장한다. 또한 케인즈주의적인 완전 고용정책 등 각국에서 시도되는 부분적인 중앙지도 정책도 결국에는 경제의 균형을 깨뜨리고, 중앙관리정책으로 나아간다고 보았다.

 

이러한 비판을 기초로 하여 오이켄은 자유방임과는 다른 <경쟁질서>를 말한다.

 

첫째, <경쟁질서>는 사람과 사물의 본성에 맞는 자연적인 질서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인격이며, 인격의 특질은 자율성에 있다. 인격적인 인간은 삶의 안전과 자율적인 삶이 보장될 때 가능하다. 중앙관리체제 경제하에서의 사람들이 누리는 안정이란 노예의 안정이다. 자유경쟁의 시장경제는 <사물의 본성> 곧 경제의 자연적 논리에 합치된다. 경제는 본래의 모습은 소비가 생산을 이끌고, 재화의 희소성이 정확히 표시되어, 이에 따라 자원이나 노동이 공간적 시간적으로 가장 적절하게 배치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역할을 시장경제 체제에 의존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둘째, <경쟁질서><諸秩序相互依存>의 원칙으로 형성된다. 중앙에서 관리하는 경제하 에서 개인생활의 자유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장경제에 있어서의 건전한 <경쟁질서>는 도덕률, 정치질서 나아가 인간 생활 전체를 구성하는 생활의 모든 질서와 불가분의 상호의존 관계를 가지고 있다.

 

오이켄이 구상한 <경쟁질서>는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고, 시장에서의 유통기능을 보다 활성화할 수 있는 질서를 말한다.

 

자유와 질서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를 억압하는 질서는 지속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수많은 개인과 집단이 어울려 사는 사회에서 질서 없는 자유는 실현 불가능하다. 질서는 자유를 보호하고 보장할 때 그 존립의 의의를 갖는다.

 

오이켄은 개인들에게 경제생활에서 자유 및 자유로운 행동을 보장하는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구성적 원칙> <규제적 원칙> <국가정책적 원칙>3원칙을 제안한다.

 

<구성적 원칙>은 경제 주체들이 자유롭게 행동하기 위한 경제질서 틀을 만드는 원칙이다.

<규제적 원칙>은 경쟁질서 틀 내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주체들의 행동과정과 시장 과정의 결과를 수정하기 위한 정책이다.

<국가정책적 원칙>은 국가 활동의 행동준칙을 말한다.

 

 

 

3. 헌정질서와 법치국가에 기초한 신자유주의

 

 

파시즘은 아무런 정책도 가지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오직 권력의 확장이란 목표가 있을 뿐이다. 오이켄이 살았던 나찌 시대의 국가의 경제정책은 원칙도 없이 임기 응변식 정책으로 일관하였다. 힘있는 이익단체들과 기업들에 의해 국가는 조종되었다. 하이예크 표현을 빌자면 국가는 이익단체들의 축구공이었다. 법은 멋대로 만들어 졌고 국가는 정의에 기초한 정당한 규범에 구속되지 않았다.

 

오이켄은 경쟁질서의 생성 과정을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성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책을 강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강조한다. 따라서 그는 무엇보다 국가의 권위를 회복하고, 시장시스템과 상호의존성을 갖는 법치국가의 실현을 위해 국가의 행동준칙을 제시한다.

 

<강력한 국가> 국가는 사적인 이익단체들의 요구를 물리칠 수 있을만큼 그리고 독점을 통제하고 카르텔 형성을 방지하여, 건전한 시장시스템 기초가 되는 질서를 확립할 수 있어야 할 만큼 강력해야 한다.

 

<국가권력의 억제> 강력한 국가가 무제한의 권력을 갖는 국가를 말하지 않는다. 정부의 권력은 건전한 <경쟁질서>의 구성적 원칙에 제한을 받아야 한다. 시장시스템을 구성하는 정부의 역할은 입헌주의의 전통 - 헌법이념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질서정책의 우위성> 오이켄은 시장 시스템을 형성하는 구성적 원칙과 잘못된 시장 메카니즘을 교정하는 규제적 원칙 중 구성적 원칙의 우위를 강조한다. 규제적 원칙은 어디까지나 구성적 원칙을 보완하고 보충하는 것이어야 한다.

 

<경제정책의 불변성> 경제정책이 조변석개(朝變夕改) 식으로 변동되어서는 안된다. 정부는 정책쇼크를 발생시켜서는 안된다. 경제정책은 예측 가능하고, 사전에 충분히 예고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계와 기업은 합리적인 경영계획과 행동을 할 수 없게 된다. 정책의 일관성이 없고 사전에 충분히 예고되어 예측 가능하지 못하다면 정부 정책은 신뢰를 상실하게 된다. 정부의 권위도 실추된다.

 

하이예크는 개인의 경제생활과 사회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잘못된 풍조를 지적하며 <제한적 민주주의>를 제안하고 있다.

 

하이예크는 다음의 관점에서 국민주권의 문제를 제기한다.

자유는 법의 내용을 묻는 반면(책임 있는 개인은 자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에 대하여, 그 법률이 과연 정당한가 그리고 타당한가를 질문한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사를 법의 원천으로 간주한다. 민주주의에서는 그것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다수가 지지하면 법으로 인정된다. 다수의 지지를 받은 정당이나 정치가가 정부를 형성한다. 이러한 정치적 결과물로, (다수의 의사)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그룹에게 차별적으로 제공되는 각양각색의 특혜의 단순한 합()에 지나지 않게된다.

 

정치과정에서, 이익단체들은 의회를 둘러싸고 시장시스템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권력화시키려 한다. 국회의원(입법)은 재선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익단체의 영향력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입법부는 법치국가적 입장에서 입법을 하지 못하고, 이익단체의 대변자로서 입법을 하게 된다.

 

하이예크는 이를 무제한적 민주주의 폐단이라 이해하고 이를 제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헌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입법이 헌법에 기속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실질적으로 법을 만드는 정부와 의회의 입법에 관하여, 정부와 의회의 분쟁을 해소하고, 입법의 민주적 절차와 헌법에 위반여부를 심판하는 헌법재판소를 두어 제정되는 법이 정의로운 행동규칙의 성격을 갖도록 해야 한다 주장한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경제학이 아니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목표는 경제주체의 자유와 시장의 원활한 흐름을 보장하는 건전한 <시장질서>의 확립을 위한 <질서의 경제학>이다.

 

 

 

4.자유주의를 위한 투쟁

 

수도이전에 관한 위헌 결정에 대하여 노대통령은 국회의 입법권이 헌재에 의해 무력화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헌정질서의 혼란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었다.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는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것 빼고는 모두 법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언론법 개정에 대하여, 이종걸 의원은 한 TV토론회에서 신문업의 공공성을 고려하여, 1사업자 시장점유율 30%, 3이하의 사업자의 시장 점유율 60%가 넘을 때,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한다가 아닌 <간주>한다라 말하고 있었다. 눈앞의 당파적 이익에 급급하여 법률의 의사를 외면하고 조중동을 억지로라도 엮을 궁리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법률은 시장질서 파괴적이다. 현 정권의 4대개혁 입법은 민중의 계급적 당파성에 입각한 전체주의적 발상에서 출발한다. 입법이 기존의 법률과 상치되어 법적 안정성을 파괴하면 그리고 헌법을 위반하는 입법이 허용되면 건전한 국가질서는 훼손된다. 현 정권의 개혁입법은 기득권층으로부터 기득권을 빼앗기 위해, 시장질서를 파괴하고 사회 안정을 훼손하며 나아가 헌정질서를 문란케 하고 있다.

 

자신들의 집권기반을 확장하기 위해서, 헌정질서와 법적안정성을 깨뜨리는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지 못하는 개혁에 대하여 국민들이 외면할 것이다.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파괴만을 일삼는 사회에서 경제가 가속적으로 침제될 것은 뻔한 노릇이다. 불확실성과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개혁이 사회안정과 경제에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불확실성 때문에, 소비는 위축되고 소비의 위축으로 인하여 생산기반이 와해된다.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는 유보되며. 불확실성에 처한 경제주체들의 심리적인 요인이 일자리창출을 기피하게 만든다. 연기금을 동원하여 10조원을 SOC사업에 투자한다고 한다. 한국판 뉴딜정책을 구상한다고 한다. 현 정권은 일관된 경제정책이 없다. 부동산 시장에 갈 곳 모르고 헤매는 400조원이 떠도는 것을 알고 있다. 현 정권의 경제정책이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가? 어디 경제정책 뿐일까? 연기금을 10조 동원하려는 위험한 정책을 행하려는 정부가, 400조원에 대한 투자 유인책을 개발해 내지 못한다. 이것이 현 정권의 무능력을 실체이다. 현 정권은 자신들이 내세울 수 있는 이념적 정책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스스로 빨갱이가 아니라고 말한 것 이외에 현 정권의 이념적 성향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들은 바 없다. 온 국민이 노사모되면 개혁이 성공한다는 말을 전해 들은 것이 전부이다. 현 정권은 저질 포퓰리즘을 등에 업고, 국민적 합의를 무시하고 법정안정성을 파괴하며, 그야말로 되지 않을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성공하는 사람은 할 수 있는 것을 행한다. 자신의 역량을 바르게 알고 상황을 온전히 파악하고 적당한 목표와 적절한 방법을 가지고 이를 실천할 때 성공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아는 데는 현명하나 상대방을 아는 데는 어리석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어느 쪽도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스스로를 알고 상대방을 아는 자만이 승리할 수 있다. 진정 용기 있는 자는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복 당하기를 두려워하는 자는 필연적으로 패망한다. 오직 강자만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실패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는다. 우리가 학습할 줄 모른다면, 자유민주주의에 대하여 사상적으로 무장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지혜의 여신은 용기 없는 자에게 결단코 손을 내밀지 않을 것이다.

 

평생을 군사독재와 전체주의를 혐오하며, 관리의 횡포에 대항하며 싸워왔다.

군사독재는 사라졌지만 이제, 포퓰리즘을 등에 업은 집단주의적 전체주의가 자유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은 기득권층의 기반을 와해시킬 목적으로, 개발독재의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개발독재로 민중의 삶이 개선될까? 이것이야말로 현 정권의 기만적 술책을 증거하는 것이 아닐까? 시장경제만이 우리가 살 길이며 새로운 도약으로 나아가는 길이라 믿는다. 시장경제는 최우선적으로 건전한 헌정질서를 요구한다. 이것이 내가 대한민국의 헌법 편이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헌법의 편에 서서, 자유주의를 옹호하며 집단적 전체주의와 투쟁할 것이다.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자유주의의 이념은 우리 모두를 위해, 우리가 함께 공유해야할 우리들 신념의 武器가 되어야 할 것이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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