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정치도박 그만 두라
2005-09-08 18:00:36
1. 대연정 제의 - 정치도박
2. 노대통령이 선지자(先知者)인가?
3. 독재정치는 안 된다.
4. 독선(獨善)과 아집(我執)이란 미숙함의 다른 이름이다.
1. 대연정 제의 - 정치도박
도박은 결국엔 망한다.
도박에 빠져드는 것은 도박에 성공한 맛을 보았기 때문이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기 마련이다. 탄핵 정국의 여파로 열린우리당이 대승을 거두었다. 40여 석 남짓 국회의원 수를 가졌던 열린 우리당이 국회 과반의석에 육박하는 의석을 획득했다. 그런데 지금 노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29%로 곧두박질 쳤다. 왜 이리 되었을까? 지난 17대 총선으로 열린우리당은 87년 이 후 선거로 최대 의석을 얻은 집권당이다. 이러한 지지를 받는 집권당이 어찌 이리 지리멸렬하는 것일까? 자신에 대한 지지율이 29% 밖에 안되기에 책임정치를 못하겠단다. 대통령의 도박으로 얻은 권력이기에 온전치 못한 것이다.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의한 노대통령과 박대표가 만나 회담을 했고, 2시간여의 공허한 만남 속에 아무런 성과없이 회담은 결렬됬다. 집권 당 내의 의견 수렴 조차 되지 않은 채 시도된 대통령의 제안이다. 회담결렬은 당연한 결과이다. 여야가 촉각을 곧두 세우고 노대통령의 다음 수가 무엇일가 긴장하는 모습이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즉흥적 제안에 대한 야당이나 국민의 반응을 체크하며 또 다른 쇼비지니스를 기획하려 할 것이다.
잘 될까? 잘라 말하겠다. 될 일이 아니다. 대통령직을 걸고 배째라는 식의 정치는 이제는 먹히지 않는다. 탄핵 때까지만 해도, 외로운 돛단배를 야당이 흔들어 대통령 노릇 못해먹겠다는 말이 국민들에게 먹혀들었고, 대책없이 대통령을 탄핵하여, 정치적 불확실성만을 증폭 시킨 야당에게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국민이 힘을 모아 집권당을 밀어주었다. 노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제대로 일 하지 못하여 지지율이 떨어졌다. 독단적이고 전횡적인 방식의 정치가 실패하자 이를 바로잡고 개선할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새로운 정치적 이슈를 들고 나오며, 대통령직을 걸고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대연정을 들고 나왔다. 여기에 무슨 진정성이 있고, 국정을 운영하는 대통령의 철학이 있겠는가? 대통령직 내걸고 마치 비장한 결심이라도 한 양 허풍치고, 한 건 잡아 정치 판을 한 번 뒤짚어 보겠다는 도박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2. 노대통령이 선지자(先知者)인가?
강준만은 한 칼럼에서, 4대 개혁입법 처리가 실패하자 유시민 의원은 국회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린 바 있고. 천정배 법무장관은 원내대표 시절 4대 개혁입법에 ‘목숨을 바치겠다 말했었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가 후퇴한다 말했었다. 단지 선지자적 혜안으로 여권의 간판 스타를 그렇게 추락시키고 정치개혁이 가능한가라 질문하며, 선지자’ 노릇을 한다는 점에선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노 대통령이나 다를 게 없다. 한국은 아직도 선지자의 나라인가? 조금 늦더라도 더불어 같이 가면 안 되는가? 반문하며 노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이 박정희와 다를 바 없는 독재정치라 비판한다. 대통령의 대연정 제의에 대하여 한나라당의 대통령에 대한 무시가, 연정 이 후 한나라당 인사들에 의하여 다시 재현된다면 연정은 끝나는가를 질문하며 노대통령의 연정제의가 비현실성을 꼬집는다. 나아가 무지한 국민을 거역하고 연정을 제의하는 노대통령에게 국민은 겨울ㆍ봄엔 위대하지만, 여름ㆍ가을엔 멍청한가 물으며, 노대통령의 전횡을 비판한다. (한국일보 9월 7일)
말이 되는 소리를 가지고 진정성을 주장하자. 대연정을 제의하는 노대통령의 진정성이 있다면, 4대 개혁입법에 목을 매었던 유시민의원과 천정배장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가 후퇴한다 말했던 이해찬 총리는 정치 모리배에 지나지 않는다 말이다. 대통령직을 걸고 내어 놓은 대연정 제의 – 딴에는 무슨 대단한 승부수라도 있는 것처럼 말한다. 지역구도해소와 선거구 개편이 제대로된 상관관계가 있을까? 나라 돌아가는 꼴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이를 돌파하기 위해 대책없이 한 건 벌려보자는 노대통령의 신경증적 행태을 드러내는 도박일 뿐이다.
탄핵 이후 노대통령은 국민의 지지기반을 등에 업고 여세를 몰아 성공적인 국정 운영 기회를 부여받은 셈이다. 하지만 대화를 통한 상생과 화해를 말한지 며칠만에 보수는 무조건 바꾸지 말자는 자들이라 상대방을 배척하고, 과거사 규명을 들고나오며 반대파 죽이기를 시작했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반대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곧 자신을 불신임하는 것이라는 식의 전횡적인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수천만 국민의 이해가 걸린 문제를 충분한 준비와 계획도 없이 충분한 국민적 합의도 없이 무모하게 추진한다. 결국 헌재의 판결로 수도 이전의 뜻은 좌절을 겪어야 했다. 자신에게 보내준 국민의 신뢰와 기대를 성급함과 독선적인 국정운영으로 헌신짝처럼 걷어찬 사람은 다른 사람 아닌 바로 노대통령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열린우리당의 문제가 무엇일까?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중 상당수가 자력(自力)으로 국회의원이된 것이 아니다. 대통령 탄핵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국정의 미래에 대하여 불확실성 우려하는 국민들이 자신들의 정파적 당리 당략적 이해(利害)를 바탕으로 노대통령을 탄핵한 것에 대하여, 기존의 국회의원을 파면시키는 선거를 했다. 덕분에 열린 우리당 의원은 그야말로 국회의원 자리를 거저 주은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생각하면 17대 총선의 승리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노대통령의 놀라운 승부사적 자질과 선지자적 혜안(?)에 의하여 이룩된 것이라는 여권 내의 노대통려에 대한 평가로 인하여, 노무현 우상화 노름이 여권에서 일어난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민주화 운동을 한 386 세대의 국회의원들이 노무현을 선지자로 부활 예수처럼 떠받들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몇 달전 청와대에서 대미관계에서 고슴도치론이 나올 때 알아봤었다. 고슴도치론은 북한이 주장하는 대미전략이다. 몇 년 전부터 미국을 대하는 북한의 위상은 <고슴도치>에서 <전갈>로 진화(進化)했다.
“며칠씩 굶은 <고슴도치>도 밟으면 바늘 같은 가시로 찌른다. 그리고 한번 찔리면 가시는 빠지지 않는다. 동물은 발이 썩으면 죽기 마련인데 북조선이라는 <고슴도치>의 강철가시에 찔리면 아파서 곤두박질을 치며 죽게 된다. <전갈>도 마찬가지다. <전갈>은 죽음에 이르는 독침을 가지고 있다.” 김정일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통하는 김명철 조미평화센터소장이 <김정일의 통일전략>이란 책자에서 밝히고 있는 주장이다.
평양 식의 어법으로 말하면 이제, <남조선 아이들>이 장군님의 통치방식을 흠모하여 선군영장이신 김정일 장군님의 대미전략과 영도원칙을 배워가는 중이라는 생각이다.
노대통령이 왜 부활 예수에 비교되고 선지자가 되는가? 주체사상이 말하는 <수령의 유일적 영도원칙>을 확립해 나아가려는 모양이다. 수령의 유일적 영도 밑에 전당(全黨), 전국, 전 인민이 한결같이 움직이는 강한 조직을 세워, 혁명 건설과 모든 문제를 풀어가는데 수령의 유일적 영도로 이끌어간다는 것이 김일성 수령님과 김정일 장군님의 영도예술이다. 수령-당-계급-대중을 하나의 전일 (全一)적 체계로 결합시켜 혁명과 건설을 다그치는 영도체계 - 이것이 수령 중심의 영도체계이다. 이러한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으니 전 국민이 노사모가 되어야 하고, 부활하신 예수 같은 노대통령이 선지자(先知者)가 되어야 한다.
3. 독재정치는 안 된다.
친노 성향의 정신과 전문의인 정혜신 또한 노대통령의 민심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비판한다. “역사 속에서 구현되는 민심을 읽는 것과 국민들의 감정적 이해관계에서 표출되는 민심을 다르게 읽을줄 알아야 한다.” 는 노대통령의 발언에 문제를 제기하며, 국민에 대한 ‘과감한 거역’을 표방하며 민심을 재정의하는 듯한 대통령 노대통령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노대통령의 생각 민심을 ‘잘 알고 있다’ 는 인식은 자신의 논리를 관철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지 진짜 민심을 알고 있다는 느낌은 아니다. 민심을 정확하게 읽는 일과 진정성은 별개다. 소신과 배짱을 굽히지 않아 대통령까지 되었지만 그런 개인적 성공경험이 어떤 경우에도 적용되는 만능의 법칙일 수는 없다. 노대통령의 자기인식은 대통령이 되기 전 정치인 노무현의 ‘선구자적 모습’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지만 지금 국민들의 눈에 비친 노대통령은 선구자가 아닌 계몽군주에 가깝다. 특정사안과 관련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더 많은 고민을 한 대통령의 눈에는 자신과 현격한 견해 차를 보이는 국민들의 반응이 어리석은 감정적 대응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의 무의식은 언제나 옳다> 말하며 노대통령의 독선을 비판한다.
한 개인이 수 많은 사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신을 지켜 대통령이 된 것은 개인의 문제이다. 성공적으로 대통령이 된 것과, 대통령의 직무로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자신이 생각이 옳다는 신념으로 이를 실천하고 관철시키려는 노력이 개인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지만,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써의 성공은 자신의 신념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동의없이 성공할 수 없다. 대통령은 국민의 동의와 이해를 구하며 국정을 이끌어 가야할 직분이기 때문이다.
유시민 의원은 노대통령에 대한 그야말로 맹목적 충성을 보이며, 대통령은 지역주의를 ''암적 존재''로 진단했다. 국민은 왕이라면 신하인 대통령은 전문의이다. 전문의가 CT, MRI 찍고 정밀진단해 암을 도려내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은 지금 건강하다면서 동의서를 써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돈벌이 목적으로 의사가 멀쩡한 사람 잡으려는 게 아니지 않나.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면서도, 진실된 전문의의 진단은 정확할 것이고, 이를 믿고 따르자고 호소했다. 노대통령 말씀 앞에서는 주의, 주장도 의견도 다 사라지는 없는 유시민 의원이다.
소신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노대통령의 신도(信徒)인 유시민 의원에 대해, 명민한 정혜신씨는 유머와 함께 허점투성이의 유시민의원 문제점 정확히 비판한다. <노 대통령에 대한 어법을 흉내내 먼저 밝혀두건대, 나 유시민 좋다.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좋다. 하지만 연정론과 관련된 최근 유시민의 말과 행동은 별로 안좋다. ‘지적 권위주의’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서다. 어떻게 해서든 상대의 논리를 내 논리에 종속시켜야 속이 후련한 것처럼 보인다 >
정혜신씨가 비판하는 유시민의 지적 권위주의를 프랑스의 비평가 롤랑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어떤 특정한 사유방식이나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모든 행태을 파시즘으로 규정한다 말한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도덕은 한 사람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개성을 존중하는 일이다. 인간이 누군가에 의해 자기 목적에 맞도록 가치관이 맞춰 조작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노대통령이 우매한 민심을 거역하겠다는 독단적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나, 유시민의원의 국민이 무조건 이를 믿고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파시스트의 사고방식이다. 잔재주 믿고 어설픈 논리적 우월성을 강조하며, 자신이 믿는 신념이나 삶의 방식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이 곧 파시스트의 사고 방식이다. 독재정치는 독재자의 욕구에 국민의 의사가 종속되기를 강요받는 정치체제이다. 노대통령이 선지자이고 전문의이기에 국민이 노대통령의 진정성을 헤아려 이를 좇아야 한다는 논리 이것이 바로 독재정치이고 파시스트의 사고방식이다.
4. 독선(獨善)과 아집(我執)이란 미숙함의 다른 이름이다
독재정치는 독재자의 욕구에 국민의 의사이 종속되기를 강요받는 정치체제이다. 이러한 사회체제에서 자율적인 인간과 개성적인 인간은 배제된다. 인간은 각자의 권리와 독자적인 가치관을 지닌 독립적인 존재이다. 설득하는 것은 좋지만, 강요하거나 위협하고, 하물며 세뇌 따위는 결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사회관계에서 기본적 도덕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며 그가 맺는 인간관계에서 그의 도덕적 가치관이 드러나게 된다. 상대방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일을, 또는 상대방이 바라지 않는 일을 자신이 옳다고 하여 상대방에게 요구하거나, 자신의 판단으로 상대방을 위한 일이라며 이를 강요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일은 <상대방에 좋은 일이다>하여 자신의 판단으로,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 요구하는 것은 무지와 무례에서 비롯된 독단이다. 자신의 생각으로 그것이 선행(善行)이라 할지라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부도덕하다.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인간 존중에 기초한 건전한 시민윤리이다.
노대통령에게 국민은 대통령 노릇 잘하라고 기대한다. 노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과 화합의 정치로 지역구도 타파해 국민화합을 이룩하고 신뢰 사회를 만드는 데에 반대하는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국민은 상생과 화해의 정치를 기대한다. 공정하고 투명하며, 예측 가능한 정치를 통하여 사회의 불확실성을 사라지고 사회안정을 통한 국가발전을 기대한다.
뜬금없이 대통령직을 내걸고 대연정을 제의하는 것이 공정과 투명의 정치이고 예측한 가능한 정치라고 강변할 터인가? 분열과 갈등, 증오와 불신이 정치를 누가 시작했는데, 국민이 지역구도를 타파하려는 대통령에게 국민이 전문의의 말을 불신하고 동의서 써주지 않는다니, 그야말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어처구니 없는 말이다. 불신과 증오로 인한 갈등과 대립의 병은 그 누구보다 노대통령의 마음 속에 있는 병이다. 정작 환자는 불신과 증오와 분노로 대립과 갈등을 사회분위기를 부추겨온 노대통령과 노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집권당 인사들이 환자이다.
병든 마음으로 스스로 전문의를 자처하며 멀쩡한 국민을 암환자라고 어리석고 모자란 국민이라 매도하는 꼴이다. 스스로 병든 마음과 잘못된 마음을 고쳐야 할 사람은 국민이 아니라 노대통령이다. 유시민의원을 말을 듣노라면 노대통령의 독선과 아집이라는 병은 집권당 내 창궐하고 있는 전염병이라는 생각이다.
나만이 옳고 내 생각만이 객관적이라 주장하는 것은 정신적 미숙의 한 징표이다. 성숙한 인격은 자신의 신념이나 생각의 한계와 범주를 이해하고, 자신이 선택하지 않는 삶이나 다른 사람이 어쩌면 자신보다 더 옳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열린 마음으로 타인의 반대 의견을 존중할 줄 안다. 그럼으로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학습하며 개선되는 삶을 살아간다. 지적 정직성은 자신의 주장의 개연성을 입증하는 데에 있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신의 주장을 포기한 조건을 이해하는 데에 있다.
스스로를 싸가지 없다고 말하며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유시민 의원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공직자의 언행이란 마땅히 품위를 지켜한다. 세상에 싸가지없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스스로 허물을 고치면 누구나 발전적이고 건설적인 삶이 가능하다. 잔 머리를 굴려 스스로를 싸가지없는 인간이란 표현을 쓰는 것을, 마치 자신의 잘못을 용기있게 인정하는 것으로 혼돈한다면 그야말로 교육학적으로 대책이 서지않는 인간으로 전락한다는 사실을 유념하길 기대한다. <나는 더 중요한 정치인 되고 싶지 않다> 외쳐댄다고 노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부각되는 것도, 자신의 독선과 아집이 정당화되는 것도 결코 아닐 것이다.
영국의 뛰어난 전략가(戰略家)이면 전쟁사가(戰爭史家)인 리델 하트(Liddell Hart)는 말했었다.
“대담성은 거의 대부분 옳지만, 도박은 거의 대부분 틀리다.”
도박 좋아하시는 우리들의 노대통령께서 부디 무모함과 대담성을 혼돈하는 어리석음 반복하지 않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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