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25 00:41:43

 

일본의 여류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남자들에게>라는 수상집에서 재미있는 말을 한다. 무언가 창조적인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살인(사전적 의미의 살인만이 아닌 사람을 밟아 매장시키는 일을 포함하여 말함)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글을 보면 남자를 잘 이해하는 여자, 소위 말하는 힘 있는 남자를 많이 상대하여 본 여자라는 생각이 든다. 마키아벨리의 열열한 팬인 그녀의 글을 보면 권력을 갖고 있는 남자들의 속성을 잘 꿰뚫어보고 있다는 생각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 실제로 살인을 해 본 사람은 박정희와 전두환일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전쟁터에서 살인을 했고, 권력을 잡고 유지하기 위해서 살인을 했다. 그리고 박정희와 전두환의 재임 중에 한국경제는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결론적으로 말해보자. 군사독재시절 국민 중 소수의 사람들은 심지어 생명을 빼앗기는 엄청난 정치적 탄압을 받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희망이 있고 더 나은 미래를 설계했으며 보다 나은 경제적 풍요를 누렸다.

 

민주화 시절부터, 김영삼대통령은 IMF로 나라를 말아 먹고 김대중대통령은 어설픈 세계화 민영화로 국내 알짜배기 기업을 왕창 외국에 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어설픈 개혁으로 지금 대한민국은 거덜나고 있는 중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제대로 일은 할 줄 아는 대통령이다. 그리하여 국가의 생산적 발전에 기여하였다. 하지만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일할 줄 모르고 말만 앞서는 대통령이고, 해 놓은 일이 없이 박정희와 전두환이 이룩한 경제적 성장의 과실을 말아먹었을 뿐이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은 386 개혁 세력을 앞세워 개혁을 한답시고 나라를 완전히 거덜내고 있다.

 

이것이 대다수 지금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기업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나라당은 주장한다. 박정희가 살아나면서 한 술 더 떠,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 경제가 살아나야 한다고, 민주주의보다는 독재가 더 나은 것이라는 그릇된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이것이 박정희가 다시 살아나는 망국적인 배경이라는 생각이다.

 

만주주의 보다 독재가 낫다는 생각이 확산되면 어찌될 것인가? 단언컨데 이러한 생각이 확산되면 우리사회는 필연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로 나아갈 것이라 어렵지 않게 예견할 수 있다. 현 집권층은 좌파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반대파가 군사독재를 그리워한다면 현 집권 세력이 보다 폭력적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러한 갈등의 심화는 우리사회를 자칫 내란의 상태로 몰고 갈 것이며, 종국에는 우리 모두를 공멸의 길로 이끌 것이다. 가진 것이 많고 지킬 것이 있는 사람은 막가지 못한다. 경제가 어려워져 무능함이 입증된 노대통령이 실각하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현 정권을 빨갱이라 생각하는 입장이라면, 경제가 거덜나고 한계상황에 내몰린 사람이 많아지면 그야말로 너 죽고 나 죽자는 식- 볼셰비키 식의 살륙이 자행되는 폭동이 일어나는 최악의 상황을 우려해야 하지않을까?. 박정희를 되살리는 것은 그야말로 기득권층에게 자살골이 된다는 것을 맹목적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포퓰리즘으로 대항하면 한나라당은 백전백패하게 되어있다. 한나라당이 현 집권층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한 구체적 실천방안을 갖는 정책을 제시할 때 가능하다.

 

우파적 관점에서 국가의 총생산이 커지는 것이 국가의 이익이라 주장한다. 좌파의 입장에서 국가의 총생산의 향상을 강조하는 우파적 견해는 필연적으로 기업이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이라 역설한다. 그러하기에 총생산의 극대화를 주장하는 우파적 논리는 필연적으로 사회갈등을 증폭시키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심화시킨다 강조한다. 그러하기에 일시적으로 고통스럽더라도 자본가의 횡포로부터 노동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보장하는 길만이 지속적인 번영의 길이라 주장한다. 다시 말해 우파는 국가전체의 이익을 주장하고, 좌파는 다수 국민의 이익을 주장한다.

 

박정희는 국가전체의 이익을 주장하며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훼손했다. 이는 결과가 잘못된 수단을 정당화하는 실적위주의 사회풍조를 조장했고, 국민과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야기하였다. 그 결과로 IMF환란을 맞고 한국경제가 거덜난 것이다. 한나라당은 아무런 이념도 사상도 없는, 기득권에 집착할 뿐인 정치집단이라는 생각이다. 온전한 국가정체성을 말하지 못하면서 기득권층의 이익을 옹호하며, 현 정권에 딴지를 거는 것이 전부인 정당으로부터 새로운 국가비젼에 대한 가능성을 찾을 수 있겠는가.

 

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를 주장한다. 국가이익과 경제를 말하기 전에 국민화해를 위한 국가질서의 확립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금과 같이 난장판으로 굴러가는 사회질서 속에서 경제성장을 말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일 것이다. 우리 모두가 기꺼이 지켜 나아갈 정의에 기초한 국가질서, 상호 존중 속에 의사소통이 활성화되는 사회질서, 공정한 경쟁질서를 갖는 시장을 형성하는 것으로부터 개혁과 국가발전의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믿는다. 이러한 국가목적을 실현하는 가운데 국가의 생산성은 당연히 증대된다.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현실적으로, 파이를 키워야 국민에게 먹을 것이 있다는 국가 운영방식- 오직 국가총생산을 극대화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운영방식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박근혜 대표와 한나라당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것으로 여겨진다. 박정희에서 시작하여 망가진 국가시스템의 실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박정희 공이란 단지 경제를 성장시켰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상실한 박정희식의 경제성장이 지속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간과한다. 나아가 박정희가 국가권력을 타락시켰고, 부정부패를 조장하고 사회갈등을 조장시켰다는 것을 외면하려 한다.

 

박정희를 되살리려는 사람들의 주장은 무엇인가? 박정희는 정치를 잘해 경제를 성장시켜 많은 사람들을 잘살게 했는데 노무현은 정치를 잘못해 경제가 망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박정희의 성공이란 지속적으로 성장 불가능한 잘못된 방식이었다는 것을 왜곡하려 한다. 어떤 이는 죽은 박정희가 되살아난 것이, 노무현 대통령이 깽판을 치며 나라를 거덜내었기 때문이라 말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반노세력의 구심점을 박정희로 설정하고 친 기득권적인 세력이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로 세력을 규합하기 위한 퇴행적 포퓰리즘이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국가의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 이 후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전체 국가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은 박정희를 따라가지 못한 것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다른 대통령들이 박정희보다 능력이 부족하다고 간단히 비교할 수 없다. 만약 현 정권이 박정희 식으로 대통령 욕만해도 잡아가는 방식으로 국론을 통일시키고, 경제에만 몰두하면 박정희 보다 더 잘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면 무엇이라 대답하려는가? 박정희나 전두환은 자신들의 강압적 국가통합능력이 한계에 부닥쳐서 죽음을 맞이했고, 민주개혁을 수용한 것이다. 박정희는 국가경제 발전이란 미명하에 전제적이고 강압적 국가질서를 전제로 영구집권을 꿈꾸었다.

 

어떤 이들은 박정희가 처음에는 잘했었다가 유신 이후 잘못되었다 말한다. 그렇지 않다. 박정희는 처음부터 잘못 시작하였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지속 불가능한 沙上樓閣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은 박정희의 성공을 한강의 기적이라며, 수많은 외국사람이 찬양한다 말한다. 유럽의 후진국에서 세계최강의 공업화를 이룩한 소련 경제의 발전에 대하여 수많은 유럽지식인들은 스탈린을 찬양하였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경제운용방식이 박정희와 다른 점이 있었을까? 김영삼도 경제에 관한 한 박정희를 인정하고 똑 같은 방식으로 경제를 운용했다. 김영삼 정부는 박정희시대에 성장한 관료들에 의하여 신경제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신한국창조를 역설하다가 IMF환란을 당한다. 박정희는 제대로 했는데 김영삼은 엉터리로 해서 망한 것일까? 아니다. 우리가 겪은 IMF환란이란 곧 박정희 식의 경제가 잘못되었다는 증거이다.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이러한 나의 주장의 핵심은 우리 사회가 전체주의 사회에서 자유주의 사회로 변혁을 이룩해야 한다 역설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려면, 박정희의 잘못된 점을 온전히 비판해야 하고, 박정희의 망령을 되살려서는 결코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없음을 역설하려는 것이다. 지금 박정희가 살아나는 것은 소위 말하는 반노 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한 전체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 저질 포퓰리즘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저질 포퓰리즘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그 누구보다 박근혜 대표에게 강조하여 말하고 싶다.

 

앞서 주장하였듯이 박정희는 아무런 이념도 사상도 없는 경제성장의 미명하에, 무제한의 권력에 집착하여 비참한 종말을 맞이한 파시스트일 뿐이다. 박정희에게 국가발전에 대한 이념과 사상이 있는가? 박정희에게 제대로 된 이념이 있었으면, 내가 앞장서서라도 박정희의 이념을 선전하고 싶다. 아버지를 종교로 떠받든다는 박근혜 대표에게 지금 우리사회를 이끌어갈 소용이 되는 박정희의 교리가 단 한 문장이라도 있겠는가?

 

지난 719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전당대회에서 2년 임기의 대표최고위원에 선출된 직후 수락연설을 통해 올해 말까지 한국을 선진화로 이끌기 위한 ''선진국가 개조계획'' 청사진을 마련해 국민 여러분 앞에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날 이같이 말하고 ''경제 및 삶의 질 선진화를 두 축으로 삼아 한국의 선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가 국가정체성 위기 국가비전의 위기 국가통합의 위기 3가지 중대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한 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정체성 선진화 국가발전 비전 국민 통합과 화해의 시대로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제가 한나라당과 나라, 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안주하거나 개인의 목적을 앞세우거나 영달을 추구해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준다면 언제든지 책임지고 흔쾌히 물러나겠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이 국가정체성을 확립할만한 정책을 제시할 능력이 있을까? 박대표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정체성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국가보안법 폐지에 목을 걸겠다 말했었다. 박대표가 말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정체성 선진화 국가발전 비전 국민 통합과 화해의 시대로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한나라당이 자유민주주의를 말하고 시장경제를 말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한 현 정권의 집단적 포퓰리즘과 좌파적인 무모한 386개혁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경제타령이나, 죽은 박정희 타령이 전부인 타락하고 퇴행적인 포퓰리즘이 아닌 사상에 의해서 자유주의 사상의 우월함을 국민들 앞에서 증거하는 구체적 정책을 개발하고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현 정권의 집단주의적 포퓰리즘에 대응하는 무기가 박정희를 되살리는 퇴행적 표퓰리즘이어서는 우리 사회는 최악의 대립 국면으로 치닫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싶다.

 

혼돈과 미망의 시대이다. 어떤 이는 영웅이 필요한 시대를 역설하며 박정희를 되살리려 한다.

 

우리사회가 혁명적 변혁을 요구하거나, 영웅적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 사회라면, 우리의 삶의 현실이 합리적인 방법으로 그 해결책을 찾아낼 수 없다는 징표이다. 합리주의적 사고나 합리적 원칙으로 이끌어지는 삶이나 사회는, 우리의 삶의 범주를 그 합리적 원칙의 틀 속에 가두어 놓고 한정시키려 하는 것이 아니다. 합리성에 기초한 삶은 공동체의 삶을 영위하는 우리에게 보다 개방적이고 협력하며, 때로는 예측 불가능한 현실 삶에 대한 우리들의 統御力을 강화하도록 만든다. 합리적 사고와 합리적 원칙은 공동의 삶의 번영을 모색하는 우리의 삶의 조건을 보다 믿을 만한 것으로 만든다. 합리적 사고는, 단지 우리들 앞에 주어진 삶의 상황과 추세를 예측하고 그 결과를 헤아리기 위한 이기적 목적에서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이성의 법칙으로 이끌며, 보편적 인간성을 실현하도록 만든다.

 

無知로 인하여 그릇된 희망을 기대려는 迷信이 성행한다. 무지로 인하여 행복이 거부되고 좌절하며 고난에 허덕인다. 불확실성 때문에 나약하고 겁 많은 인간은 자유로부터 도피하여 노예의 삶을 그리워한다. 이성은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패한 인간에게 그 어떠한 말도 건네지 않는다. 퇴행적 박정희 신드롬이 확산되는 병든 사회라면, 박정희 신화라는 그릇된 迷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라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내가 박정희를 비판하는 관점이란 전횡적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이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한다면 올바른 삶은 그 설 땅을 잃는다. 결과로 수단을 정당화하며 살아온 지난 40여 년의 우리들의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하여, 정당한 국가권력과 정당한 삶의 질서의 터전을 우리 사회에 마련하기 위해서, 박정희의 유산은 이제 떨쳐버리고 가자는 것이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에 젖은 사람들은 대다수 자신의 주체성이 결여되어 있고, 자아의 확립이 약하며, 대체로 무비판적 서구 지향적 정서를 갖는다. 힘있는 자에 빌붙고 약한 자에게 함부로 대한다. 자신의 우월성으로 다른 사람의 약점을 밟으려 한다. 지금 박정희의 향수를 가지는 사람들의 공통적 성향은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삶의 방식을 일방적이며 독단적으로 다른 사람에 강요하는 파시스트의 성향을 갖는다. 지배자에게 종속된 인간의 욕망은 지배자의 욕망에 종속된다. 당연한 귀결로 파시스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파시스트이다. 상호 존중 하에 의사소통이 활성화되는 사회를 위하여, 박정희를 되살리려는 파시스트 성향의 개인이 반사회적인 것은 명백하다.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박정희는 죽고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인물이다. 그로부터 민주주의 사회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는 데 배울 점이 무엇이 있는겠가? 당연히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의 앞 길을 개척하자고 말하는 것이다. 경제 성장위주의 개발독재의 국가관과 민주주의 헌정질서에 입각한 국가관은 서로 다른 새로운 국가관과 인간관에 기초한다. 나의 관점에서는 국민이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버느냐는 식의 저열한 삶의 방식- 양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지양하고, 어떠한 방법과 태도로 올바른 삶을 살아가느냐로 평가하는 보다 진화된 삶의 질의 개선을 촉구하는 것이다. 나는 개인의 자발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 믿는다. 특정 정치적 지도자에 목을 매는 국민이 많은 나라라면 병든 사회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전 국민이 노사모 되는 것이 개혁이라고 떠드는 인간을 경멸한다. 똑같은 이유에서 그 밑천을 다 털어먹고 남은 것이 없어져 버린, 박정희를 잃어버린 영웅으로 추앙하는 미신 또한 경멸한다. 나는 전체주의를 거부하고, 포퓰리즘에 기초한 개인 숭배적 저질 전체주의 정치를 혐오한다.

 

박정희의 리더쉽이란 양적인 관점에서 일시적으로 성공적이다. 그러나 국가 권력 행사의 정당성의 관점에서 보면 박정희의 리더쉽이란 조잡하고 지속불가능한 저열한 지배방식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는 박정희 한 개인에 대한 비판이 아닌 우리 모두가 처한 우리의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며, 이러한 반성적 성찰을 통하여, 새로운 우리들의 삶의 방식과 질서를 모색하는 것이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한다면 올바른 삶은 그 설 땅을 잃는다. 결과로 수단을 정당화하며 살아온 지난 40여 년의 우리들의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이제 우리는 정당한 국가권력과 정당한 삶의 질서의 터전을 우리 사회에 마련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처한 우리의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며, 이러한 반성적 성찰을 통하여, 새로운 우리들의 삶의 방식과 질서를 모색하는 것이다.

 

역사발전에서 유일하고 이상적이며 실용적인 원칙이란, 합리적 사고가 우리들에게 제공하는 원칙이라는 것을 믿는다. 진정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이 되기로 작정한다면, 합리적 사고에 기초한 이성적 삶의 질서를 찾아내고 만들어 갈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 새로운 역사적 도약을 이룩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박정희를 되살리는 것은 역사를 되돌리는 어리석은 짓이다.

그야말로 아무런 영양가 없고 되지 않을 그릇된 迷信을 타파하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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