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법은 언론 탄압법이다.
2004-10-18 15:33:46
지난 주말 열린우리당은 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내놓았다. 법률의 명칭을 <신문 등의 기능보장 및 독자의 권익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 바꾸고, 이 법률의 목적을 <신문 등 정기간행물의 발행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정기 간행물의 사회적 책임을 높여 언론의 자유신장과 민주적인 여론형성 및 국민의 복리증진을 도모하고 언론의 건전한 발전 및 독자의 권익보호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 정하였다.
이 법률이 언론의 자유를 신장하고 건전한 언론의 발전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일까?
<신문 등의 기능보장 및 독자의 권익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신문법)은 정부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고, 헌법 제21조에 명시한 언론과 출판에 대한 자유권적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법률이라 할 것이다. 헌법은 언론에 대하여 허가나 검열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생각하는 언론의 자유와 언론의 발전이란, 집권당에 대한 비판적 언론에 대한 탄압이라 비난받아 마땅하다.
언론의 자유란 무엇인가?
언론의 자유의 본질은 다음의 세가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의 인격적 정신활동- 사상 종교 예술 학문 등- 을 외부에 표현하는 자유를 말한다.
이는 천부적인 자연권으로 국가의 간섭을 배제하는 기본권이다.
둘째, 언론을 민주주의 사회의 성립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제도로 보고, 공공에
관련된 정보를 자유롭게 수집 전달하고, 다양한 의견을 표시하고 반영함으로써,
건전한 여론의 형성에 기여하려는 공적 책임을 갖는 언론의 자유의 보장이다.
셋째, 표현의 자유를 전제로 하여, 사상과 이념의 자유 경쟁에 의한 진리의 추구가 가장 효과적이라 주장된다. 사상의 자유시장(Marketplace of Ideas)의 개념은 존 밀턴이 영국정부의 출판검열조치에 반발하여 출판한 아레오파지티카 (Areopagitica) 에서 비롯된 것으로, 정부의 검열을 거부하고, 국민 개개인이 진실과 오류를 판단할 수 있도록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주장했다. 진실과 오류가 만나면 결국 진실이 승리하므로 정부의 언론의 통제는 부당하다는 것이다.
1952년 언론자유의 수호 및 질 향상을 목적으로 발족한 국제신문인협회 (International Press Institute)는 언론의 자유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①발행의 자유 ②뉴스원에 접근할 수 있는 자유 ③보도, 전달의 자유 ④의견 표시의 자유
권력의 지배를 받지않는 독립언론은 자유주의 국가의 본질적 구성요소이고, 민주적 정치구조의 기본적 구성요건이 된다. 자유롭게 국가권력을 비판하는 언론 없이, 건전한 민주주의 국가의 존립은 불가능하다.
아테네의 위대한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정책을 입안할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그것을 비판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자유민주주의 질서의 핵심적 요인은 1차적으로 국가권력의 행사을 법률로 통제하는 것이며, 국가권력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이 보장될 때 건전한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가 확립될 수 있다. 다수의 전횡으로, 헌법을 위반하여 정파적 이익으로 법률을 만드는 것이 허용된다면 헌정질서는 온전히 보존될 수 없다. 나아가 국가권력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봉쇄하고 무력화시킬 목적으로, 언론사의 자율적인 편집권을 침해하고, 언론사의 경영을 정부가 감시할 수 있도록 한 법률이라면 자유민주주의 발전과 건전한 시장의 경쟁질서를 파괴하는 반민주악법이라 비난 받아 마땅하다.
신문업은 다른 산업과는 달리 오직 영리추구만으로 운영될 수 없다. 기업 경영으로도 성공하여야 하고, 동시에 국민생활에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건전한 여론 형성에 기여하여 공익성을 추구해야 하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언론의 공익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국가권력이나 광고주, 각종 이익단체 등의 외부적 통제 요인과 경영진에 의한 내부적 통제요인이 건전한 언론의 자유와 발전을 제약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신문사의 편집권이 신문사의 경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나아가 신문의 보도나 편집이 국가권력이나 광고주나 특정 이익집단에 의하여 제약받기도 한다.
새로 개정된 신문법은 신문사업자가 해마다 발행부수, 구독료, 광고료, 주식발행과 소유내역 등을 정부에 보고할 것을 의무화하여 정부가 신문사의 경영을 감시하려 한다. 신문법 제15조((자료의 신고)①일간신문 또는 일반주간신문을 경영하는 정기간행물사업자는 당해 법인의 결산일로부터 5개월 이내에 직전 회계연도의 신문사업에 관한 다음 각호의 사항을 문화관광부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
1. 정기간행물의 전체 발행부수와 유가 판매부수, 인쇄부수
2. 구독료와 광고료
3. 대통령령이 정하는 표준회계방식에 따른 재무제표, 영업보고서 및 감사보고서
4. 기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
②일간신문을 경영하는 정기간행물사업자는 매 결산기로부터 5월 이내에 총 발행주식 또는 지분총수와 자본내역, 그리고 100분의 50이상의 주식 또는 지분을 소유한 주주 또는 사원의 개인별 내역에 관한 사항을 문화관광부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
이것은 언론사의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억제하여 국가권력이 언론을 통제하겠다는 교묘한 수법의 명백한 언론 탄압이다. 다시 말해 어떤 신문사가 정부에 반대하는 비판적 기사를 쓰면, 언제든지 경영상의 압박을 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이는 언론의 자유 중 <발행의 자유>를 침해하며, 신문사로 하여금 정부에 대한 비판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
편집위원회와 편집규약 제정을 법으로 강제하여, 경영과 편집의 분리를 강조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경영진의 편집에 대한 간섭을 배제함으로써 건전한 언론을 육성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여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야비하기 짝이 없는 언론의 탄압이다. 신문사가 경영 상의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언론의 자유의 구현은 불가능하다. 우리 현실에서 신문이 상업성과 공익성을 조화롭게 이끌어 가지 못하면 신문업은 파산할 수 밖에 없다. 공익성을 무시하고 상업성 만을 추구하는 신문이 성공할 수 있을까? 다행스러운 것은 공익성과 독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신문은 상업적으로 실패한다. 다른 산업과는 달리 신문업에서의 경영상의 성공은 공익성을 추구하고 독자의 이익을 극대화할 때 가능하다.
열린우리당의 신문법안의 배경에는, 신문사 경영진의 편집권 침해를 막는 것이 건전한 언론 자유를 위해 최우선적 과제인 것처럼 보여주고 있다. 지난 세월 경영진의 편집권 간섭이 건전한 언론의 발전을 저해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을 통한 신문업의 경영상황의 변화는 경영진의 편집권 간섭을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경영진의 편집권에 대한 통제와 간섭은 이제는 독자가 용납하지 않는다. 언론개혁을, 언론의 공공성과 국민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케 하려는 정부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정부가 경영진인 서울신문이 구독률 1위가 되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객관성과 공정성에 기초한 편집권 독립이 제일 시급하고 절실하게 요청되는 신문이 재경부와 포항제철과 KBS가 99.6%의 주식을 소유한 서울신문이 아닐까?
새로 만든 신문법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제4조②항에서, 정기간행물 및 인터넷언론은 국민의 화합과 조화로운 국가의 발전 및 민주적 여론형성에 이바지하여야 하며, 사회 각계 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균형있게 수렴하여야 하고, 지역간․세대간․계층간․성별간의 갈등을 조장하여서는 아니된다.
제7조 (독자의 권익보호)정기간행물사업자 및 인터넷언론사업자는 독자가 정기간행물 및 인터넷언론의 편집 또는 제작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편집 또는 제작의 기본방침이 독자의 이익에 충실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법 조항을 입안한 열린우리당에 묻고 싶다.
예를 들면 세대간․계층간․성별간의 갈등을 조장하여 공정성을 훼손하는 정도가 한겨레 신문이 심할까 아니면 중앙일보가 심할까? 독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독자가 편집 제작에 대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독자의 이익에 충실한 것이 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일을 해보지 않고, 경영이 무엇인지 모르니 이러한 현실성 없는 어처구니 없는 법안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신문사 경영진이라면 독자의 이익에 충실하지 않게 신문을 편집 제작하면 신문사가 망한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특정 정파나 종교집단을 위한 신문이 전체 국민과 독자의 이익에 충실하게 제작하지 못하기 때문에 판매부수가 뒤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신문법을 만든 집권당 인사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편집, 제작의 방침이 독자의 이익에 충실하도록 하라는 법률의 취지가 상업성 위주로 신문을 제작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공공성에 입각하여 신문을 제작하라는 취지인지 분간이 안 간다. 이 같은 내용을 법률에 집어넣은 집권당의 몰상식이 보기에 민망하다.
신문법 제16조는 일간신문을 경영하는 정기간행물사업자중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사업자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불구하고 같은 법 제2조(정의)제7호의 규정에 의한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한다.
1.1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100분의 30 이상
2. 3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의 합계가 100분의 60 이상. 다만, 이 경우에 시장점유율이 100분의 10 미만인 자는 제외한다.
신문법 제16조야 말로 열린우리당의 언론개혁의 실체가 조중동 죽이기라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4조는 동법 2조 7호의 규정에 의한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하는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1. 1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100분의 50 이상
2. 3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의 합계가 100분의 75 이상. 다만, 이 경우에 시장 점유율이 100분의 10 미만인 자는 제외한다.
모든 산업에 적용되는 독점 규제에 있어서 시장지배적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을 유독 신문업에서만, 1사업자의 점유율 100분의 30이고, 3 사업자의 점유율 합계를 100분의 60이라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조중동이 다른 신문사의 시장진입을 방해하는가? 3개 신문사가 지배적 지위를 남용하여 신문가격을 담합하거나 기타 다른 방법으로 소비자의 이익을 현저하게 저해하는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판단함에 있어서, 시장점유율, 진입장벽의 존재 및 정도, 경쟁사업자의 상대적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되어 있다. 이러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제대로 준용하여 신문법을 운용한다면, 집권당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조중동은 절대로 시장지배적 사업자일 수 없다. (독점규제및 공정거래에관한 법률 제2조 7항의 시장지배적사업자의 정의 - "시장지배적사업자"라 함은 일정한 거래분야의 공급자나 수요자로서 단독으로 또는 다른 사업자와 함께 상품이나 용역의 가격ㆍ수량ㆍ품질 기타의 거래조건을 결정ㆍ유지 또는 변경할 수 있는 시장지위를 가진 사업자를 말한다. 시장지배적사업자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시장점유율, 진입장벽의 존재 및 정도, 경쟁사업자의 상대적 규모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우리나라의 일간지의 자본금의 현황을 살펴 보면 독점규제법에서 말하는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없다. 각 신문사의 자본금 현황은 다음과 같다 (1999년.2월 기준)
경향신문(133억원),국민일보(300억원), 동아일보(150억원), 문화일보(538.7억원)
서울신문(544억원) 세계일보(452.5억원), 조선일보(170억원), 중앙일보(130억원),
한겨레(197억원), 한국일보(100억원)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 일간신문업 자체가
전혀 독점산업이 전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신문법 제16조가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과 다르게, 오직 신문업에만 다른 비율로 시장지배적사업자를 추정하는 것은 헌법 제11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는 <법 앞의 평등>의 이념을 위반한 것이기에 마땅히 위헌법률이라 해야 할 것이다.
국보법 폐지를 말하며, 사상과 양심과 표현을 강조하는 집권당이, 이같이 터무니 없는 언론탄압을 개혁아란 이름으로 추진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반대의견을 봉쇄하고, 정부의 시책만이 최선이라 고집하는 권력이라면 마땅히 독재권력이라 비난 받아 마땅하다. 온 국민이 노사모 되기를 꿈꾸며, 신문법과 같은 불공정하고 야비한 방식으로,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정권이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있을까?
J.S.Mill은 그의 <자유론>에서 사상과 언론의 자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것이 확실하다는 이유을 들어- 확실하다는 것을 자신들이 확신한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견해에 대한 반대는 금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우리들과 의견을 같이 하는 자만이 판정자가 될 수 있으며, 반대자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판정하는 것이 옳다고 가정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J.S.Mill의 견해에 따르면, 정부를 비난하는 보수기득권층의 견해와 보수기득권층을 비난하는 집권세력이 둘 다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딴빠와 노빠로 갈려 서로 자신들의 주장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매도를 일삼는 우리 모두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주장만이 옳고 정당하며 객관적이라 주장하는 것은 정신적 미숙을 드러내는 것과 다름 아니다. 성숙한 인격은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타인과 세상에 대하여 개방적 사고를 견지한다. 국론분열의 위기적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우리의 삶에서 편견과 독단적인 사고를 배제시키고, 가능한한 반성적 성찰을 통하여 합리성과 이성을 회복하고, 대화와 협력을 통한 국민적 화해를 모색하여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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