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위기

2004-11-21 11:44:59

 

1. 정말 위기인가?

 

도처에서 사람들은 우리사회의 위기를 말한다. 최근 수도이전에 대한 헌재판결을 수용하지 못하고, 국회의원이 헌재를 사법구데타란 격한 말로 비판한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행정부가 의회를 수족 삼아 사법부를 격하하는 것이며,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가 다 진창 속으로 추락하고 있다 말하며,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의 둥지인데 둥지 자체가 썩어나가고 있다면서 위기적 국가현실을 개탄한다.

 

또 어떤 이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각계각층의 여론의 비판을 거론하며, 지금 우리가 처한 국가적 위기 현실에 대하여 반지성적 이성의 위기를 말한다. 386세대는 감성적 반미주의와 반엘리트주의 정서에 호소함으로써 정권 창출에 성공했다고 한다. 현정부의 개혁에 대하여 일방적 독선주의로 상대를 부도덕한 존재로 보고, 현실보다는 이상에, 오늘의 삶보다는 어제의 유무죄에, 이성적 판단보다는 도덕적 원리주의에 집착하기 때문에 국론은 분열되고 사회적 통합을 이루지 못한다 비판한다. 이들은 개혁. 평등. 동포애 등 추상적 명분을 앞세운 극단적 이기주의와 독선으로 이성적 대화의 가능성을 봉쇄하기 때문에 국정은 분열증세를 보이고 사회 분위기는 피폐하고 각박해졌다 말하며 이 시대의 사회적 불안 요인을 지성의 위기로 말하고 있다.

 

대다수 보수기득권층 인사들은, 386세대가 기득권층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논점의 핵심과 전략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집권당의 386세대는 무책임하게 일단은 구질서를 때려부수고, 기득권을 최대한 빼앗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구 시대적 색깔론으로 자신들을 매도하는 것은 부당하다 말한다. 현 정권은 결코 사회주의 정권이 아니다. 극우 세력이 말하는 김정일에게 나라를 바치려 한다는 비난은 부당하다. 하지만 지금 이루어지는 기득권층의 잘못된 과거를 개혁하는 관점은 명백히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시행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최대한 확장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회주의의 관점과 계급혁명의 관점에서 개혁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현 정권의 개혁이 사회주의 국가를 추구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현 정권의 개혁은 미래에 대한 비젼을 제시하지 못한다. 현 정권의 개혁은 오직 빼앗기 위한 그리고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확대하려는 개혁일 뿐이다. 현 정권이 추구하는 경제정책이 사회주의적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여전히 관치경제의 잔재를 남겨둔 채 시장경제정책을 추구한다. 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와 과거사의 청산과 언론개혁이 건전한 자유민주주의 체제 건설을 위한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지금 진행되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과거사의 청산, 언론 개혁 등은 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을 극복하는 계급혁명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방법이 기득권층을 때려부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개혁이, 현 정권 자신들이 서 있는 입지를 스스로 붕괴시킬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북한의 대남전략에 휘말려 대한민국의 존립기반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유민주주의를 말하고 시장경제를 하겠다 말하며, 사회주의 혁명방식의 개혁을 추진하는 모순된 현실이, 국론을 분열 시키고 국가의 정체성과 안보를 위협하며 우리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보다 근본적 이유라는 생각이다.

 

노무현 정권은 철학이 없다. 오직 권력욕만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현 정권을 빨갱이로 매도하는 것은 부당하다. 위기에 처한 국가의 현실은 의 이분법적 흑백논리로 상대방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주장만의 선이라고 고집하는 독단적 편견으로 갈등을 심화시키며 우리 사회를 위기로 몰아간다는 생각이다. 원칙과 합리성, 절차적 타당성을 결여한 현 정권의 잘못된 개혁이 우리 사회를 갈갈이 찢고 사회의 위기를 고조시키며, 우리 모두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 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2. 집권당의 386세대 개혁 마인드

 

386세대는 우리 사회의 본질을 신식민지국가 독점자본주의 체제로 파악하고 배우며 성장하여 왔다. 해방 이 후, 미국은 남한을 강점한 다음 자기들의 식민지 지배에 더 유리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남한의 사회 경제적 관계를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재편성한다. 매판자본을 키우는데 제1차적 의의를 부여하고, 남한을 미국의 잉여상품처리의 중계자, 미국의 자본 침투의 안내자, 자원 약탈과 미국 군수품의 현지조달자의 역할을 맡길 예속 자본을 키우는 데, 1차적 의의를 부여하였다. 미국은 한국에서 매판자본의 육성에 사활적 이해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매판 자본의 육성에 골몰하였다. 19459월부터 1960년 초에 이르기까지, 응당 국민의 소유가 되어 국민의 자주적 생활의 물질적 담보로 이용되어야 할, 일제 소유재산을 적산불하라는 명목 하에 개인자본과 투기업자에게 물려주고, 미국의 원조물자의 구입과 판매권을 독점하여, 폭리를 얻게 하는 방법으로 미국에 예속적인 자본가의 기반을 닦아 주었다. 미국에 의한 매판자본의 육성의 수단방법은 가장 파렴치하고 교활한 미국의 본성을 집중적으로 반영하였다.

 

후진국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경제적 예속정책은 신식민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이다. 2차 대전 이후 농업국으로부터 공업국으로 성공적으로 진입한 유일한 예가 한국이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싱가포르, 홍콩은 도시국가이다. 대만은 중국의 일개 으로 인정된다. 한국만이 유일하게 국가경제로 성공한 예이다. 핵심기술은 대외종속적이지만, 중화학공업이 성공하였고, 일정하게 생산재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고, 자동차, 조선, 철강 기계금속 산업이 발달해 왔다. 한국경제는 범세계적인 하나의 모범사례였다. 동남아시아 나라들은 이러한 한국경제모델을 따르려 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한국의 경제를 파탄 내는 것이, 초국적(超國的) 금융자본에 의해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세계전략을 실현하기 위하여 유리하다 판단하고 IMF환란을 일으킨다. 개방화,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세계화 등으로 요약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초국적 자본에 의한 세계지배 전략이다. 초국적 자본에 있어, 금융부분의 규모는 실물경제 부문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 실물경제의 움직임이 금융경제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경제의 움직임이 실물경제를 지배하는 양상이 일어나고, 금융부분 안에서도 장기적인 투자보다는 단기적 투기적 부분이 압도적으로 크다. 결과적으로 투기적 금융자본에 의한 한국경제에 대한 지배력은 보다 강화되었고, 노동자의 삶의 질은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초국적(超國的) 자본은 한국자본주의의 패권적 분파(재벌,관료)를 싫어한다. 이들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해 미국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초국적 자본이 요구하는 시장개방과,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보장하라는 재벌 구조조정 등에 순응하지 않았으며, 나아가 한국의 재벌이 국제시장에서 초국적기업의 경쟁자로 등장하였다. IMF환란을 통하여 초국적 자본은 한국 경제개혁의 기수가 되었다.

 

19971124일 클린턴은 APEC 정상회담 차 벤쿠버로 떠나면서, 미국은 아시아에서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말하고, 미국 핵심목표는 한반도 평화라고 말하며, 한국전쟁 이 후 처음으로 항구적 평화를 위해 다음달 4자 회담에 희망을 갖는다 말했었다.

 

IMF환란을 통하여, 미국은 동아시아 경제에서 자신들의 지배력을 집중적으로 강화하려 했고, 이러한 경제적 질서의 개편은 군사적 질서의 재편과 긴밀히 맞물려 추진되었다.

 

현 정권의 개혁은 이러한 미국에 종속적인 한국 사회의 지배질서의 판을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농간에 놀아나는 사회가 아닌, 민중주체적인 그리고 반미 자주적인 사회를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남한 사회의 국가질서란 미국과 친일세력으로 이어진 친미세력을 위한 지배질서이다. 정부란 친미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위원회에 불과하다. 모든 법과 제도는 타락하고 부패한 지배층을 위하여 만들어졌고, 민중을 수탈하고 착취하기 위하여 만들어 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정통성이 없는 미국의 괴뢰 정부일 뿐이다. 모든 기득권층 반동적 관료들은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민중을 수탈하고 착취하였고, 민족적의 양심은 말살되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한다. 국가보안법은 동족을 적대시하는 반통일 악법이다. 국가보안법은 이러한 미제와 사대매국노의 악랄한 본성을 깨닫고 반미자주화 운동과 반파쇼 민주화 운동을 벌여온 애국적 인사를 탄압한 반인권적 악법이다. 민중해방을 위해 나아가 민중주체가 되는 민족통일을 가로 막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여, 반독재민주화 사회를 건설하고, 반미자주화를 통한 우리들(남과 북)끼리의 통일을 이룩하여야 한다.

 

과거사 청산을 주장한다. 과거사 진상을 밝혀 냄으로써, 사대매국노들의 죄상을 역사 앞에 낱낱이 밝혀야한다. 그들의 악랄한 본성을 깨닫고 증오하는 사상이 형성되게 하여야 한다. 과거사 청산은 사대매국노의 반민족적 죄상을 등을 인식시키는 것으로 출발하여, 제국주의의 침력적 약탈적 본성을 일깨움으로써, 낡은 사상과 인습을 뿌리뽑아 버리고 민중을 선진사상으로 무장시키고 각성시키는 사상개조 운동이 되어야한다. 과거사 청산을 통하여 식민지적 국가질서를 때려부수고, 민중이 주체되는 민주화된 새로운 국가건설에 앞장서야 한다.

 

언론 개혁을 주장한다. 2000년대의 한국 사회는 명백한 계급사회로 상층은 계급의식적투표를 하는데, 저소득층이나 저학력층에서 계급의식적투표를 하지 않고 있다. 언론개혁운동은 보수언론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대안언론의 성장을 통해 대안적 소통이 가능해져야 성공할 수 있다. 언론이라는 것은 다양한 사건과 사실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공론장에 연관되어 있다. 그 동안 이러한 공론장(公論場)은 조중동 등 거대 보수언론에 의해 독점되어 있었고 국민들은 이렇게 독점화 된 공론장에서 기득권층을 옹호하며 왜곡되게 해석된 정보를 그냥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살아왔다. 이것이 대중 의식화를 가로막는 반동적 수구언론에 대한 언론개혁의 필요성이며 당위성이다.

 

각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언제나 지배자의 관념이었다. 현대국가의 행정부는 전체 기득권층의 공동사무를 관장하는 하나의 위원회에 불과하다. 정치 권력이란, 계급이 다른 계급을 압제하기 위해 조직된 권력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민중은 점차로 모든 자본을 기득권층으로부터 박탈하여, 모든 생산수단을 국가의 수중에, 즉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민중의 수중에 집중시켜, 최대한 신속하게 전체 생산력을 증대시킬 목적으로 그의 정치적 지배권을 사용해아 한다. 이러한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수도이전은 새로운 역사의 개벽이며, 우리시대의 절대절명의 과제인 것이다. 헌법재판관의 구테타적 반역사적 책동이야 말로 민중과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할 반동적 범죄이다.

 

 

3.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위기

 

위와 같은 주체사상과 사회주의적 혁명의 사고방식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현 개혁 주도세력은, 국가의 총생산을 높이려는 경제정책은 필연적으로 노동자를 착취하고 노동자의 삶을 위태롭게 만든다 생각한다. 착취가 없고 노동자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이 민주화의 핵심적 요체라 강조한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운용이 미국에 대한 예속적 경제상황을 심화시켰고, 실업률의 증가와 비정규노동직의 양산 등 노동자의 지위를 현저하게 악화시켰음을 말한다. 그러하기에 현 개혁의 주체세력은 자신들에게 모든 권한이 최대한 집중되도록 하여 민중해방을 위하여 총매진하는 것만이 개혁의 성공적 지름길이라 믿는다. 쉽게 말하면 온 국민이 노사모 되어 반동적 친미예속적 기득권세력을 궤멸시키는 것이 우리 민족이, 민중이 해방되는 날이라 생각한다.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지 못하는 파괴라면 그것은 우리 모두를 공멸의 길로 이끈다는 것을 현 정권의 개혁 세력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국정의 운영은 대통령부터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법을 지키면서 실행되어야 마땅하다. 개혁은 새로운 사회질서를 확립해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개혁이 성공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개혁한다는 이름으로, 현 집권층은 이미 수 없는 특권에 집착한 반칙을 저질러 왔다. 특권과 반칙으로 형성된 기득권층을 부수기 위한다는 이름으로 또 다른 특권과 반칙을 허용한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우리의 염원은 결단코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구체적 비젼과 실천방안과 개혁에 대한 상세한 프로그램 없이, 기득권층 때려부수기로 일관하고 있는 그릇된 개혁은 사회위기 국면을 고조시킨다.

 

지금 우리 사회의 위기의 근원이 무엇인가?

기득권층의 반민족적 죄상과 민중 수탈적 죄상을 밝혀내어 계급투쟁의 사회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불신과 반목, 대립과 갈등,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사회 개혁을 추진하려는 데에 있다. 대립과 갈등이 고조되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사회 상황에서, 있는 자들의 투자는 당연히 기피된다. 실업이 늘고 소비가 위축되어 생산기반마저 무너진다. 경제가 망가지는 것은 필연적 귀결이다. 현 정권의 개혁 세력은 반대 세력과의 논의를 거부한다. 대화할 줄 모르고 합의할 줄 모르며 화해할 줄 모른다. 이러한 대결의 국면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자신들만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는 편견과 독선으로 대립과 갈등을 심화시키며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국민화합을 통해 결집된 국민적 역량을 도출하여 국가발전을 모색해야 할 대통령이, 당파적 입장에서의 권력의 확장에만 급급하여, 반목과 불신으로 증오심과 적개심을 조장하고 편가르기하며 국가를 갈갈이 찢고 있는 것이 참담한 우리의 현실이다.

 

문제적 기존의 모든 질서를 때려 부수면 우리에게 새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는가?

 

억압된 삶을 살아온 사람은 억압의 대상을 때려부술 때, 자신들이 권력을 잡기만하면 해방을 맞이한다 착각한다. <지금은 노예이지만, 앞으로는 독재자가 될 것>이라며 프로레타리아 독재를 역설하는 마르크스 식의 구호가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다. 현 집권층은 권력만능이란 주술에 빠진 듯 여겨진다. 그들에게 권력이 주어져 있고 확장을 도모하는 한, 그들은 결코 국가적 위기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다. 현 정권의 개혁은 새로운 사회질서에 대한 구체적 실천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기득권 빼앗기 식의 노대통령과 집권당의 386세대의 당파적 이해에서 진행되고 있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며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진행되는 잘못된 개혁이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건설하지 못하고 파괴할 줄만 아는 개혁이 그들 스스로를 나아가 우리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재앙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창조(創造)할 수 있는 사람은 파괴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파괴한다고 다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밝힌 386세대의 관점에서 개혁을 진행하면, 제일 좋아할 사람은 김정일이다. 현 정권의 개혁은 창조할 줄 모르고 제대로 일할 줄 모른 채, 빼앗고 파괴하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여겨진다. 일이란 시작과 끝이 있는 법이고 순서를 지켜 차근차근해야 성사된다. 노대통령이 일을 제대로 할 생각은 없고 오직, 자의적이고 전황적 권력의 확장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 우리 모두를 서글프게 만든다. 수도이전을 추진한 정황을 살펴보면 거대한 국책사업을 구체적인 일정도 청사진도 국민적 합의도 다 무시하고 번개불에 콩 구어 먹듯 해치우려 했다. 무모한 수도 이전의 추진과 좌절 그리고 변칙적 재추진에서 드러나는, 국가권력의 작동원리가 실종된 현실이 위기에 처한 국가적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그 사회가 지닌 문제 해결능력을 초과하면 그 사회는 명백히 위기의 국면에 처해 있다는 표식이다. 위기를 겪고 있는 사회는 모든 조직이 그 기능을 수행하는 데에 장애를 겪게 된다. 반대자를 과도하게 억압하고, 일을 무모하게 추진하지만 문제의 해결이 구조적으로 해결불능상태에 처해 있다. 개인이나 집단 간의 이해의 상충이나 갈등에 대하여 이견을 절충하고 합의를 도출하는데 실패한다. 이러한 사회통합장애로 인하여 국론은 분열되고 대립과 갈등은 첨예화 된다. 개인의 삶의 방식이든 권력의 행사방식이든 더 이상 합리적이고 원칙적인 문제해결이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명백한 국가 위기의 상황이다. 하지만 파괴만을 능사로 여기고 권력의 확장에만 급급한 집권층은 이를 외면하려 한다.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위기- 이것이 우리가 처한 위기의 심각성이다.

 

증오심과 적개심을 혁명의 동력으로 하였던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역사의 필연일 것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사랑하고 이해하고 양보할 때, 보다 생산적인 삶의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기득권층이 다 멸망하는 세상을 꿈꾸며, 고통 받고 소외된 자들은 거대한 형제애를 느끼며 새 세상을 기대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환상이 지닌 아이러니를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천국을 예고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말하는 천국이 자신들이 빠져들어가는 지옥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지상 낙원을 땅 위에 실현하고자 하였던 시도는 예외 없이 언제나 지옥을 만들고 마는데 그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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