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를 위한 민족주의

2005-03-15 12:22:30

 

 

<민족주의는 救國주의이다. 主義란 무엇인가. 주의란 일종의 思想이고 信念이다. 무릇 사람이 어떤 한 가지 일에 관하여 알맞은 이치를 탐구하면, 제일 먼저 사상이 생기고 사상이 철저하여지면 곧 신념이 굳어지고 신념이 강해지면 힘이 생긴다. 사람들이 家族주의 宗族주의를 숭배하지만 국가를 숭배하지 않는다. 민족주의란 한 마디로 國族주의(국가와 민족이 곧 하나라는 신념)라 말할 수 있다. 우리가 고금의 역사에서 민족 생존의 도리를 거울 삼아, 중국을 구하고 중국 민족의 영원한 생존을 바란다면 반드시 민족주의를 제창하여야 한다.>

 

三民主義 중에서 -孫 文-

 

 

1. 수난 당하는 민족주의

 

최근 곳곳에서 민족의 의미가 수난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한 술 더 떠, 민족주의적 색채를 강화하는 일본이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을 능멸하는 가운데,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의 친일예찬 친일 행위의 정당화의 발언이 양식있는 많은 이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나는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고 시급한 역사적 과제가 민족정신의 고양과 민족정기의 확립에 있다 믿는다. 민족정신을 바탕으로 5천년 이어 내려온 한민족 공동체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 나아가 이를 기초한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여 통일 조국의 미래를 모색할 때라 믿는다. 바로 세워야 할 민족정신이, 냉전 시대의 유물인 때 지나버린 반공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는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에 의하여 유린 당하는 현실에 대하여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스스로 보수를 자처하면서 민족이나 국가는 소멸될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확산되는 경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서구 정치사상사의 발전 과정에서 민족주의를 처음 제창하고 강조하였던 사람들은 보수 우파와 자유주의자들이었다. 민족을 부정하고 국가가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자들은 공산주의자들이었다. 노동자에게 조국이 어디 있느냐고 마르크스는 민족의 意義를 부정한다. 공산주의자들은 국가란 브르죠아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행정위원회에 불과하며, 모든 지배질서, 도덕률 법률 등은 브르죠아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허위의식의 소산이라 말한다. 노동자들의 삶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사슬을 끊어버리기 위해, 국가를 전복하라며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할 것을 역설하며 공선당 선언은 끝맺는다. 작금 우리 사회의 좌파가 민족을 강조하고, 우파를 자처하는 자들이 민족과 국가를 부정하는 현실이 아이러니칼하다.

 

민족을 부정하려는 자들에게 무슨 이념이나 소신이 있는 것일까? 그저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감추고 미국의 눈치를 보며, 북한을 적대시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반민족을 말하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조차 모르면서 심지어는 국가의 해체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역설하였던 박정희가 되살아난다면 자신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이들의 이런 꼴을 보고 무엇이라 말할까? 박정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였던 통치이념은 국민교육헌장에 잘 드러나 있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 에 이바지할 때다.> 말했던 박정희의 통치 이념은 민족주체성의 확립, 전통과 진보의 조화를 통한 새로운 민족문화의 창조, 개인과 국가의 조화를 통한 민주주의 발전으로 집약될 수 있다. 박정희는 국가를 단지 민족공동체로 이해한 것으로 여겨진다. 박정희는 국민통합을 상부상조의 전통에 의한 민족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국민교육헌장은 민족문화 창달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는 박정희의 통치 이념을 엿볼 수 있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 상조의 전통을 이어 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 정신을 드높인다.> 박정희가 말하는 국민정신이란 다름 아닌 민족 정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박정희는 국가목적과 국가이념을 구현하고 동시에 국민통합과 평화의 전제조건으로써의 강제적 규범질서인 국가의 본질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최근 극우 세력에서 주장되는 친일예찬 또는 반민족적 친일행위를 정당화하는 주장이 확산되는 것이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상황의 논리를 들어 그릇된 삶이 정당화된다면 올바른 삶이란 그 설 토양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친일행위가 정당화된다면 밝고 건강한 사회를 가꾸어 가려는 노력과 우리의 주체성의 확립을 기초로 한 자주국가, 나아가 통일국가를 모색하는 노력은 시작조차 할 수 없다. 민족이란 세계화의 시대에 없어져야 할 개념이라며 그야말로 민족이나, 민족주의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에서 비롯된 단지 정략적 발언이 확산되는 현실을 우려한다.

 

 

2.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민족주의는 사람들은 누구나 민족국가(국민국가)에 대하여 최고의 충성심을 품게 된다는 신조로 정책이나 사상체계라기보다는 정치적 견해라고 할 것이다. . 역사적으로는 자기 민족을 다른 민족이나 국가와 구별하고 그 통일?독립?발전을 지향하는 사상 혹은 운동이며, 정치적으로는 민족을 사회공동체의 기본단위로 보고 그 자유의지에 의하여 국가적 소속을 결정하려는 입장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천 년에 걸친 중세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이상의 모습으로 부각되었던 것은 보편적인 세계국가였지 분할된 정치단위가 아니었다. 18세기가 되기까지 국가나 영토는 민족성에 따라서 규정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도시국가, 봉토?영주?왕조국가?종교단체?교파 등에 묶여 있었다. 민족국가의 개념은 역사상 대단히 새로운 것이었으며, 과거에는 이상적 국가형태로 서술되지도 않았다. 로마 제국은 중세에 신성 로마 제국으로 명맥을 유지했을 뿐 아니라 ''레스 푸블리카 크리스티아나''(그리스도교 공화국 혹은 공동체)의 개념 속에 살아 있었으며 세속화가 진행된 뒤에는 ''일치된 세계문명''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일민족(一民族) 일국가(一國家)의 원리를 주장하는 이러한 민족주의는 민족의식에 대한 자각이 확산된 근대 이후의 현상으로서 민족주의의 발달은 시민적 자유주의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한다. 루쏘(Jean-Jacques Rousseau), 헤르더(Johann Gottfried von Herder)는 초기의 민족주의 사상가이다.

 

민족주의는 근대적인 운동이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를 연구하고 깊이 자극된 루소는 인간의 정치성향과 종교적인 추구 사이의 괴리를 메꾸기 위해서 <민족>이란 정치적 공동체가 모든 생활양태의 근간을 이루어야 한다고 보았다. 바람직한 국가는 전 시민이 일반의지(volonte generale)의 형성에 참여해야 하며, 정치체제는 공동체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므로 공동체의 특수성을 온전히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동체의 특수성은 <민족>에 가장 잘 반영된 것으로 이해했다. 독일의 철학자 헤르더는 사회공동체를 문화공동체로 이해하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로 민간전승과 민족적 전통의 역할을 강조했다.

 

민족주의는 무엇보다 문화공동체의 精粹로 이해되어야 한다.

 

장 자크 루소는 국민주권과 민족의지를 형성하는 구성원 전체의 협력을 강조하고 일반 대중을 진정한 문명의 주체로 간주함으로써 프랑스 민족주의에 이론적 바탕을 제공했지만, 프랑스 혁명에서 드러난 민족주의에서 보편적 인간성과 자유로운 진보에 대한 이성적 믿음의 표출은 루소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널리 알려진 ''자유?평등?박애''의 혁명이념 및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은 프랑스 국민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 대하여 호소력을 지니는 것으로 모든 자유민주주의적 민족주의의 공통분모가 되었다. 축제와 깃발들, 음악, , 국경일, 애국적인 설교들이 프랑스인의 삶 곳곳에서 피어났다. 혁명적 민족주의는 민족의식의 형성에 있어서 개인의 의사를 강조했다. 국민국가란 구성원들의 의사결정 행위에 의하여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었고 국민투표가 국민의사의 표현방식으로 채택되었다. 프랑스 혁명의 민족주의는 사회진화사상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것은 불평등하고 권위주의적인 과거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등의 세계공동체를 추구했다.

 

18세기가 끝날 무렵 교육 및 공공생활의 민족주의화 경향은 정치적 충성의 범위를 넘어 민족적 차원으로 나아갔다. 문화적 민족주의를 처음으로 입에 담았던 시인?학자들은 자국어(속어)를 개척하여 문어체의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민족의 전통들을 하나하나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정신을 물려받은 민중들은 장차 민족국가의 형성을 요구하게 된다. 18세기 이전 일부 세력들 사이에서는 민족적 감정이 생성되었고 특히 민족 간의 갈등이 빚어졌을 때 민족감정은 두드러졌다.

 

정치적으로 중요성을 띠는 민족주의 의식의 발전은

절대군주가 등장하여 중세 봉건사회의 지방 분권주의(分權主義)를 타파하고 영토확장과 함께 중앙집권적 국민(민족)국가를 탄생시켰으며, 생활 및 교육의 세속화가 진행됨에 따라 자국어가 유행하고 교회와 종단의 구속력이 약해졌으며, 상업이 발전됨으로써 중산 시민계층과 자본주의적 기업형태를 창출해냈다.

 

국가의 중심으로 자처하고 있던 군주는 국민주권 이론과 인권사상에 밀려났다. 군주는 더 이상 민족이나 국가가 아니었고 국가는 국민의 국가, 민족적 국가, 조국이어야 했다. 국가는 민족과 동일시되었으며 문명은 민족적 문명을 의미했다.

 

민족주의를 고전적 민족주의 ''나치오니스무스''(Nationismus)와 확장적 민족주의 ''나치오날리스무스''(Nationalismus)로 구분하기도 한다. 20세기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의 식민지 민족주의는 전자를, 제국주의 열강의 세계 분할정책은 후자를 대표한다.

 

19세기말 제국주의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민족주의의 반동화(反動化)는 점차 심화되어갔다. 1870년대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종말을 고했던 1914년까지는 유럽의 각 민족국가가 자본주의에 의한 세계발전을 추구하여 제국주의적 영토분할과 식민지 공략에 치중했던 기간이었다. 제국주의는 민족주의의 부정임과 동시에 그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민족국가의 테두리를 넘어서 타민족을 지배하려는 면에서는 민족주의의 부정임에 틀림없었으나, 민족의 힘을 과시하고 권위를 높이려는 것이었으므로 발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부르주아지는 민족주의를 최대한 이용했다. 그들에게 민족주의는 대외침략과 제국주의 전쟁을 미화하고 약소민족에 대한 압제를 합리화하며 식민지 주민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한 사상적인 근거로 생각되었다. 반동화는 20세기의 1920~30년대에 걸쳐 파시즘이 대두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 체제하에서는 개인의 자유?평등?인간성의 가치가 부정된 반면 국가나 민족이 절대시되고 민족적 이기주의와 침략전쟁이 신성화되었다.

 

아시아에서 반동적 민족주의를 발전시킨 나라는 일본이었다. 일본은 프로이센과 비스마르크의 영향을 받아 천황제(天皇制)라는 절대주의 체제를 확립하고 천황?귀족?지주 중심의 민족주의를 전개했다. 일본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두자 자본주의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킴과 동시에 대규모 침략전쟁에 나섰다. ''만세일계(萬世一系)의 황통(皇統)''이니 ''세계무비(世界無比)의 국제(國制)''니 하면서 그것을 지킨다는 구실 아래 국민의 자유가 억압되었으며 침략전쟁에는 이른바 성전(聖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민족주의가 자유의 적에게 봉사하며 반동화되어 가고 있을 때, 제국주의의 핍박을 받고 있던 식민지?반식민지에서는 새로운 민족주의가 혁명적 정신의 기수로서 성장하고 있었다. 식민지 민족주의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식민지 세계의 전역에 퍼져나갔다.

 

식민지 민족주의는 고전적 민족주의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다. 고전적 민족주의는 자본주의가 봉건세력의 억압에 항거하여 성장하는 과정에서 탄생된 민족주의였으므로 한결같이 반봉건적 성격을 띠고 있었으나, 식민지 민족주의의 경우는 보다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무르익어 제국주의의 단계로 접어든 시기에 제국주의의 압제로 신음하던 식민지에서 일어난 것이었으므로 대개 식민지 민족주의에는 반제국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과거 일제하에서 일어났던 민족독립운동이 반 외세 반제국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3.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계를 위한 민족주의

 

헤르더는 사회공동체를 문화공동체로 이해하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로 민간전승과 민족적 전통의 역할을 강조했다. 다시말해 사회공동체의 정체성은 무엇보다 민족정신에서 찾아야 한다 말한다. 지금의 우리의 싯점에서 결집된 국가적 역량을 발휘하여, 역사적 도약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동력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마땅히 민족정신으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수 천년 시련의 역사 속에서 자랑스런 문화를 꽃피우며 면면히 이어온 우리의 민족적 역량과 저력을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난 한 세기 우리 사회의 민족주의가 외세를 배척하는 일변도의 배타적 국수적인 민족주의와 사적 유물론의 사관에 기초하여 주도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현 정권의 과거사 청산이 미래를 위한 자성의 노력이기보다, 잘못된 과거사의 모순을 척결한다는 편향된 관점에서 진행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현 정권을 반대하는 이유로 대책 없이 국가와 민족마저 부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반민족적 행태의 확산은 북한을 적대시하는 반공이데올로기와 자주성을 결여한 무조건적인 친미의식과 무관치 않다. 우리의 미래는 보다 자유롭고 개성이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리라 믿는다. 자신의 생각만을 절대화하고 사회가 획일적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을 고집하는 것은 구 시대의 낡은 유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면서 경쟁상대이고, 북한 또한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적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여 통일된 조국을 함께 가꾸어 나아갈 동포이기도 하다. 통일이나 외교에 관한 정책이 감정적인 대응을 허용해서는 안되겠지만, 북한을 냉전 시대의 시각으로 적대시 하는 것으로 보다 발전적이고 건설적인 국가의 장래를 기약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새로운 역사적 도약을 하기 위해, 외세 의존적이었던 식민지인의 삶을 극복하고 우리가 우리들의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주체성의 확립이 나아가 민족의 정체성과 국가의 정통성 확립이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시대적 역사적 과제라 믿는다. 지난 한 세기 유구한 우리의 역사가 단절된 채, 국권을 상실하고, 한 가족이 함께 살지 못하는 피맺힌 분단의 세월을 살아왔다. 부모 형제를 함께 살지 못하게 하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는 국가로서의 노릇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망국민의 설움은 아직도 온전히 극복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은 통한의 조국의 분단이 국가적 국민적 민족적 수치라는 사람조차 점차로 잊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부모형제가 함께 살지 못한 천만 이산가족이 있는 조국의 현실을 극복하고, 세계의 중심국가로 당당하게 거듭나기 위해서, 우리에게 시급한 과제는 먼저 평화와 화해의 국가질서를 구축하는 것이고, 평화와 화해의 국가질서란 무엇보다 성실하고 정당한 노력이 평가받고, 특혜와 특권의식이 사라지는 공정한 사회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다. 국가 권력의 정당성을 확립하고 공정한 삶의 질서가 보장되는 사회가 지금 우리가 처한 가장 시급한 국가적 과제라 믿는다. 일제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잘못된 사회질서는 바로잡아 가야하고, 과거사의 청산은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미래지향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는 사회공동체의 평화를 수호하고 공동의 번영을 모색하는 강제질서이다.

반면 민족은 동일한 언어 동일한 관습과 풍습 등을 공유하는 문화공동체이다. 찬란했던 민족문화와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려는 우리들의 노력은 올바른 역사인식과 사회인식을 전제로 식민지와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고 우리 스스로의 주체성을 확립하여 자주국가 자주민족의 독립성과 정통성을 올곧게 세우려는 노력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18061026일 나폴레옹 군대에 프러시아 군대를 격파하고 베를린이 점령당한다. 18129월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에서 패망할 때까지 독일은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었다. 독일 국민은 완전히 사기를 잃고 속수무책으로 지리멸렬 할 때, 베를린 대학의 초대 총장이며, 애국적 철학자인 피히테는 다음과 같이 역설했었다.

 

<이기심과 사리사욕의 무제한의 추구는 사리사욕 자체를 부정할 뿐 아니라 사리사욕의 자주성마저도 상실하게 된다. 이기심은 이기심 그 자체 이외의 그 어떤 목적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외세에 눌려서 우리는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는 다른 목적을 강요 당한다.

 

자주독립을 잃어버린 민족은 시대의 조류를 자유스럽게 결정하는 능력까지도 상실하게 된다. 그 민족이 이와 같은 상태를 계속해 나간다면 시대뿐 만 아니라 시대와 더불어 민족자체도 외세에 지배되고 말 것이다. 그 결과 민족의 운명은 민족의 자주적 결정과는 멀어지게 되고, 현실의 세계에선 오직 외세에 대한 복종의 영광만이 남게 된다. 외세에 의한 사리사욕에 빠진 국가는 붕괴한다. 우리는 <自我> <時代> 그리고 <世界>까지도 잃어버린 민족이다. 새로운 자아 및 새로운 시대창조의 수단으로서 새로운 세계를 출현시켜야 한다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전면적인 이해를 요구한다.

 

외국과의 합류에 의한 국민의 몰락을 방지하고, 외국에 의존하는 종속성으로 말미암아 능력을 잃어버린 자아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민족정신>이라는 우리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독일 국민에게 고함: Reden an die deutsche Nation-J.G. Fichte -

 

 

 

4. 가장 우리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지금 우리는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다. 민족주의가 세계화에 역행하는가?

피히테의 지적처럼 우리는 외세에 의하여 <자아><시대><세계>를 상실한 부끄러운 역사를 살아왔다. 진정 한민족의 자아를 회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 보다 개방적이고 세계화된 성숙한 문화를 확립하기 위하여 무엇보다 민족정신을 회복하고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여야 한다. 앞 서 살펴보았듯이 근대국가의 형성과 브르죠아적 자유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의 발전은 민족주의와 그 맥을 함께하며 발전 되어왔다. 프랑스 혁명의 민족주의는 사회진화사상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것은 불평등하고 권위주의적인 과거에서 벗어나 오늘날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는 민주주의의 근본이념을 확립하고 나아가 자유와 평등의 세계공동체를 추구했다.

 

캐나다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이며 문명비평가인 맥루한(M. McLuhan)지구촌이란 이론을 주장한다. 각종 미디어의 발전으로 인하여 거리가 단축되고 사회가 평준화됨으로써는 지구는 좁아졌으며 지구는 하나의 마을로 축소되었다 말한다. 하지만 지구촌이라는 말은 행정구역 상의 마을과는 아무런 공통점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늘날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 맺어주는 사람들의 접촉은 종래의 종족공동체와는 공통점을 발견하기 어렵다. 모르는 사람들, 낯선 민족, 이국적인 사회의 삶에 대한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관심이 실질적인 공동체에서의 사회참여와는 다른 것이다. 세계화나 지구촌에 대한 환상은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동경 그리고 질투와 선망 부러움, 고독과 불안감 속에 휩싸여 있는 현대인의 절실한 꿈인 동시에 악몽의 표현이다. 흔히들 생각 없이 말해지는 세계화로부터 우리는 그 어떠한 공동체적 유대감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주체성(identity)을 확립하지 못하는 개인은 변화하는 삶의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다함으로써 사회성원으로써의 유대감을 느끼면서 自我를 실현한다. 국가의 성원들의 건전한 자아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와 역사 나아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 민족은 우리들에게 무엇보다 역사적 문화적 공동체로써의 유대감의 뿌리를 형성한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때, 온 국민의 감정을 하나로 만들고 세계를 놀라게 한 우리의 힘의 근원은 다름 아닌 민족감정이며 민족정신이다. 한 세기 한 맺힌 통한의 역사를 살아온 민족이기에 우리들 가슴 속에 우리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정서로 하나된 힘을 발휘할 수 있었고, 이러한 정서적으로 일치된 민족적 유대감이 세계를 놀라게 한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하게 만들었다.

 

지금 우리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상실된 정신이 우리가 사는 국가나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라고 생각한다. 식민지인으로 그리고 외세 의존적 삶을 살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잃고 살아왔고, 그러한 삶에 대하여 생존을 위한 것이라 변명하는 삶을 살아왔다. 친일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후손에 물려 줄 자긍심을 발견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스스로를 위하여 무엇보다 시급하게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 다름 아닌 민족적 자긍심이라 나는 믿는다. 반미적이고 친북적인 젊은이들이 많다.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삶을 변명하기 위하여 그들을 빨갱이로 매도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다. 때론 반항적이고 무책임하게 여겨지는 그들의 시각을 자주적이고 자긍심을 가꾸어 나아가는 한 과정으로 이해하는 보다 포용적이고 유연하며 성숙한 자유주의적 사고와 개방적인 삶의 태도만이 우리의 역사의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되게 할 것이다.

 

우리는 외세 의존적인 과거사와 독재정치로 얼룩진 잘못된 과거사를 반성하는 토대 위에 자주적이고 독립된 자랑스러운 조국을 건설하려는 새로운 미래로의 전망을 찾아야 한다 믿는다. 참되고 바르게 사는 삶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고 상호 존중 하에 화해하며 협력하는 삶의 가치를 우리 모두가 공유하게 될 때, 편견이나 배타적 독선이 아닌 합리성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칙이 될 때, 우리는 새로운 역사적 도약을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꾸어 나아갈 새로운 사회는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민족적 자긍심을 드높이고, 평화와 도덕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믿는다. 우리의 자존심이 소중하기에 우리의 경쟁력을 키우고, 인간성의 회복과 도덕성을 기초로 인류애를 구현해야 한다. 인간은 가장 자신다울 때, 주체성을 확립하며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성을 실현한다.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란 서구문화의 흉내내기가 아닌, 우리가 가장 우리 다울 때 가능한 것이다. 세계화란 무엇보다 먼저 우리 역사와 뿌리를 올바르게 알고, 민족문화와 전통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민족 주체성과 국가정통성을 확립해야 나가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가 처한 오늘의 삶의 현실에 대한 올바른 위상을 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고 실천해 나아갈 때, 우리는 보편적인 인간성을 구현하며 참된 의미의 세계화된 삶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한 세기 동안 갈갈이 찢겨진 민족정신을 복원하고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길이 우리의 주체성 확립의 최우선 과제이고, 민족주체성의 확립이야말로 급변하는 문명사적 변혁의 시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성공적인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약속하기 위한 선행과제임을 역설하고 싶다. 가장 우리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신념에 기초하는, 민족적 세계주의요 세계적 민족주의를 이 땅에 구현하여야 한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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