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22 18:15:10
국익을 위해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가 묻는 惠王에게 孟子가 답하여,
『왕께서는 하필 利만을 말씀하십니까? 역시 仁과 義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말씀하시길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 하시면, 大夫들은 말하기를 어떻게 내 집을 이롭게 할까 하며, 선비와 서인들은 말하기를 어떻게 내 몸을 이롭게 할까 하여, 위 아래가 서로 이익만을 취하고자 한다면 나라는 위태로울 것입니다. … 진실로 義를 뒤로 하고 利를 앞세우면 서로 빼앗지 아니하고는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 왕께서 行하려 하신다면 어찌 그 근본으로 돌아가지 않으십니까?』 말하고 있다.
孟子:梁惠王章
국가의 발전은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첫째, 국가의 생산성 향상이다.
둘째, 체제 자율성의 향상을 통한 지배력(국민통합능력)의 강화이다.
국가발전을 위한 국가지배력의 강화문제는 국가 시스템의 효율성의 향상과 최적화(optimize)를 어떻게 이룩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국민통합은 국가의 성원 들간의 불신과 반목을 극복하고 합의의 기초가 되는 법과 원칙을 확립하며, 국가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각 분야에서의 활동이 전체적으로 국가목적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복잡한 현대국가의 상황은 지도자 개인의 의지로만 이끌려질 수 없다. 국가권력의 恣意적 행사를 제제하고 정의와 합리성, 이성에 기초한 법률에 의하여 국가권력이 통제되지 않는다면, 국가 목적은 온전히 수행될 수 없다. 박정희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박정희는 경제성장의 기치 아래 개인의 강압적 리더쉽으로 국민통합을 이룩해 왔고, 이를 통하여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데에 성공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은 오해한다. 혹자는 자본 축척이 제로에 가까운 그 당시 한국이 택해야 했던 최선의 방식이 박정희의 개발독재라 강변한다. 박정희로 인하여 발생된 문제점을 풀어 나갈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며, 많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의 경제개발은 옳았다고 억측한다.
박정희로 인하여 발생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란 무엇일까? 박정희가 틀렸다고 말하는 관점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박정희에 대한 비판을 거부하는 관점이란 그야말로 속보이는 저질 포퓰리즘에 의한 박근혜 띄우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다.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부패하고 타락한 파시스트 박정희를 비판하는 것에 그 어떠한 잘못이 있는가?
나는 박정희의 국가 경영 패러다임이란 아무런 思想도 理念도 없는 저질 파시즘이라 비판한다. 우리의 역사가 산업화 민주화를 통한 발전의 연속선 상에 있다고 주장하는 기득권층의 사고방식으로는 우리는 결코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수 없다. 역사란 현실을 이해하고 미래를 기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나는 박정희가 저열한 정치가라 단언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입각한 국가경영의 패러다임은 박정희의 개발독재와 결코 연결 지을 수 없는 새로운 국가의 조직 및 운영방식이라 믿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이는 낡은 방식의 국가운영의 패러다임을 버릴 때,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국가운영방식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하려 하는 것이다. 박정희의 공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관점이란 박정희 시절로부터 누려온 특권과 불공정에 대한 집착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득권에 대한 집착으로 박정희에 대한 왜곡된 평가가 우리가 새로운 방식의 국가를 건설하려는 노력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것이 박근혜가 야당 총재가 될 수 있는 이유이고, 박정희의 딸로 대를 이어 충성하는 기득권 세력이, 새로운 방식의 국가발전에 장애가 되는 이유이다.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것은 박정희 방식의 경제성장 위주의 국가발전의 낡은 패러다임을 버리고 민주주의적 헌정국가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끌려지는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시대적 과제라는 사실을 역설하고자 하는 것이다.
관치경제가 시장경제와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개발독재의 결실로 이룩한 경제성장의 바탕 위에서 민주주의가 건설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만약 진정 전체주의적 사회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 한다면, 오해되어 온 박정희의 경제적 업적이 아닌 자유주의 사상과 이념을 무기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며, 우리사회가 사회주의적 전체주의로 나아가는 것을 방어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신자유주의에 적합한 정당이고 박정희를 영웅으로 생각한다는, 열열한 한나라당 지지자는 하이예크의 주장을 예를 들어 사회주의 경제의 실패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몀한다. <하이에크는 인간이 구조적으로 무지할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회주의 국가들은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인간이 발휘할 수 있다고 믿었지요. 무지한 놈이 아는 척 하고 모든 것을 지가 다 알아서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국 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하이에크가 일관되게 주장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어 쓰면, 박정희는 무지한 놈이 아는 척하고 모든 것을 지가 다 알아서 하려다 나라를 말아먹은 장본인이다. 하이예크는 계획경제는 필연적으로 실패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하이예크는 新自由主義에 입각하여 <자유경쟁원리가 법의 지배 아래 적절히 보장된다면 자원배분이 效率的으 로 이루어지고 國富가 증진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소득분배문제나 경기변동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복지국가와 혼합경제의 이념은 단기적으로는 얼마간의 성과를 보일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원래의 의도와 달리 기득권층의 이익만을 보장해 주거나 스태그플레이션과 같은 크나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고 역설하였다. 박정희 방식의 경제성장이 일시적으로는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박정희 식의 개발독재는 필연적으로 붕괴될 수 밖에 없는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많은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박정희 당시의 상황을 들추어 박정희의 정당함을 억측하는 주장이 도대체 왜 소용되는 것인가?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려는 관점에서 왜 박정희에 대한 비판이 제약되어야 하는가? 박정희는 무엇보다 헌정질서와 국가시스템을 파괴하였고, 경제성장의 미명 하에 자신에의 절대권력만을 추구한 권력에 대한 편집광적인 집착을 보인 타락하고 열등한 정치가일 뿐이다. 박정희의 성공은 한강의 기적이 아닌, 지속적 번영이 불가한 沙上樓閣이라는 것을 온 국민이 온전히 깨달을 때,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심지어는 노무현 대통령조차, 박정희가 처음부터 무지하고 열등한 정치지도자 이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박정희 식의 성장위주의 개발독재는 국가가 발전할수록 필연적으로 국가권력은 부패하며, 경제가 성장할수록 경제주체들 간의 갈등은 증폭되게 되어있다. 박정희는 국가발전이 두 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군인 출신의 무지한 파시스트일 뿐이다. 그는 정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으며, 제도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고 근대국가가 헌정질서를 기초로 하여야 한다는 것을 멋대로 무시했다. 박정희는 무식하였기에 용감했던 것이다. 박정희는 무모하게 국가발전을 단지 경제성장만으로 이해하여 사회갈등을 증폭시키다가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뭇솔리니나 히틀러의 파시즘은 공산당에 반대하여 탄생했다. 파시즘은 자신들의 적대자들을 전멸시키려는 정책을 천명하고 그 같은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무자비한 살륙을 주저함 없이 자행한 공산주의 운동에 반대하여 성장한 것이다. 파시즘은 1917년 제3차 세계공산당 대회를 반대하여 시작된 軍國主義, 民族主義 운동이다. 파시스트는 공산주의자가 사용했던 무자비한 살륙의 방법 등을 자신들도 망설임 없이 사용하겠다는 것을 주장한다. 박정희 또한 軍國主義적이고, 民族主義적이었으며 자신의 政敵을 무자비하게 숙청하며 권력을 유지했었다.
현 정권의 개혁을 사회주의적으로 받아들이는 한나라당의 대응방식은 명백히 파시즘의 성격을 지닌다. 경제성장을 위하여 강성노조를 때려잡아야 한다는 식의 발상은 명백한 파시스트의 발상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강성노조를 때려잡는 방식에 대한 구체적 정책대안은 전혀 내놓지 못한다. 이것을 무엇을 의미하는가? 야당이 집권하면 강제적으로 강성노조를 때려잡겠다는 강압적 정책을 실시하겠다는 것의 암시일 수 있다. 파시즘은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폭력이 지닌 문제해결 능력을 과신한다. 파시스트는 확실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승리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지니고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최선의 정책이라 믿는다.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의 여성적 부드러운 이미지 뒤에 파시즘의 폭력성을 은폐한다.
박정희의 후광을 등에 업으려는 퇴행적이고 선동적인 포퓰리즘으로는 한나라당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포퓰리즘은 집단주의적 국민들의 의식에 대하여, 정치권의 자신들의 권력강화를 위하여, 갖가지 방식의 선전 선동 책략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문제적 현실의 해결을 외면한 채, 문제적 상황을 왜곡하고 호도하며, 문제점을 부풀리어 위기감을 고조시켜 자신의 반대세력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을 부추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여야 할 것 없이 저질 포퓰리즘으로 반대세력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며 국론을 분열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대립구도가 지속된다면 내란이 될 것이고 이러한 분쟁에서의 최후의 승리자는 수적으로 우세한 측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소수집단은 비록 그들이 유능하고 활력 있는 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더라도 다수의 의사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결단코 승리할 수 없다.
승리를 위한 핵심적인 질문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정당이 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전적으로 知的인 것이고, 승리는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知的인 武器로만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전체주의와의 투쟁에 있어서 궁극적인 결말은 武器가 아니라 思想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 야당은 현 정권의 개혁이 국론분열적이며 경제파탄의 책임이 현 정권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노무현과 박정희를 유비시켜, 박정희 경제성장에 대한 성공을 과장하고, 노무현의 무능함을 부각시키려 한다. 이러한 퇴행적인 네가티브 전략으로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를 앞세워 현 정권에 대응하려 한다. 그야말로 386 개혁세력의 대응전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하기 짝이 없는 저질 포퓰리즘이라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
좌파 개혁 세력은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으로 이해하려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좌파의 주장은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마치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덩어리처럼, 있는 자들에 대한 없는 자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사회적 갈등은 증폭되고 있다. 대기업은 외국인에게 갈취 당하고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짓밟히고,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자영업자는 몰락하고 영세상인, 농민은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IMF환란 이 후 소리 높여 외쳐왔던 세계화란 미국에의 경제적 예속화를 심화시키고, 투기적 외국 자본이 한국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장활성화를 외치며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말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확대 등 노동자의 삶이 더욱 불안하고 비참한 것이 되고 말았다. 노동자를 죽이고 기업만이 생존하는 기업의 생존방식은 결국 기업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는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 기업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노동자의 삶의 질을 약화시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로 인하여 중산층이 무너지고 빈민화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소비시장이 위축되고 그리하여 생산기반이 무너지며 중소기업이 몰락하여가는 것이 심각한 경제현실이다. 지금의 우리 경제현실은 마르크스가 공산당선언에서 이야기한 몰락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과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그러하기에 우리 현실이 사회주의 사상이 확산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치가라면 마땅히 왜 사회주의가 잘못이고, 자유주의가 우월한가 국민들이 충분하게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구체적 실천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빨갱이가 악이고, 현 정권이 친북세력이라는 식의 선동적 대응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들의 기득권층에 대한 반감을 온전히 이해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이는 국가의 운영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환하는 새로운 패라다임의 정치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나는 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한 헌정국가와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우리는 박정희가 실패한 정치가라는 사실과 박정희의 이념이란 이제 우리가 버리고 가야 할, 빈 껍질 뿐인 타락한 파시즘이라는 것을 우리들 마음 속에 새겨야 한다 믿는다. 파시즘이란 아무런 사상도 이념도 없는 단지 폭력적 권력욕일 뿐이다.
나아가 국가의 목표가 국가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에 국한하는 것이 오류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박정희는 강압적인 사회통합이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사회통합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국가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기초한 구체적 정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이념이란 우리 모두가 기꺼이 지켜 나아갈 정의에 기초한 국가질서, 상호 존중 속에 의사소통이 활성화되는 사회질서, 공정한 경쟁질서를 갖는 시장을 형성하는 것으로 출발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목적을 실현하는 가운데 국가의 생산성은 당연히 증대된다.
박정희는 국가 목적의 본말을 전도시키며 타락하고 부패한 독재권력으로 국가를 이끌어 왔다. 국가의 목표가 국가 이익이 될 때, 孟子의 말처럼, 국가는 필연적으로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며 이익을 목표로 하는 국가질서는 필연적으로 내부 붕괴의 길을 걷는다.
이러한 나의 주장이 함축하고 있는 내용의 핵심은 우리 사회가 전체주의 국가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이다. 국가의 운영이 개인의 리더쉽 중심이 아닌 원칙 중심의 리더쉽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국가적 과제란 국가발전을 위한 체제통합능력을 향상시켜야 함을 강조하며 체제(국가시스템)정비의 시급성을 역설하려는 것이다. 나아가 국가발전을 위한 사회통합능력은 본질적으로 개인의 리더쉽이 아닌 제도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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