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착각

2004-09-16 17:47:42

 

국가보안법의 존폐여부를 놓고 여야간 보수와 진보 사이의 의견대립이 분분하고, 극한 대립의 국론분열 양상으로 치닫는 것이 우려스럽다. 보수진영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이 위협받는 일이며, 대한민국의 무장해제를 의미하는 것이라 강조한다. 그리하여 현 정권의 친북 좌파 세력으로 규정한다.

 

소설가 이문열은 보안법 문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질 낮은 네거티브 문화 때문이라 한다. 존중해야 할 권위나 보장되어야 할 전문성은 오래 전에 지워졌고, 경청할 만한 교훈이나 준수해야 할 판정도 없어졌다. 교훈이나 판정이 내게 유리하면 우리 편이고, 상대편에 유리하면 적일 뿐이다. 충고나 조정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해에 따라 우리 편과 적이 있을 뿐이다. 주제넘은 줄 알면서도 하나 제안을 하자. 여당은 먼저 형법의 어떤 조항을 어떻게 개정하여 보안법 없이 안보의 공백을 메울지를 제시하라. 인권을 확보했으면 안보의 우려도 해소해주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그리고 야당은 여당의 형법 개정안이 우리 안보를 담보할 수만 있다면 보안법 폐지에 선선히 동의해주라. 법의 이름이야 어떠하건 안보란 실질만 확보하면 되지 않는가.

 

이씨는 어설픈 지식으로 보안법문제로 인한 우리사회의 대립현상을 내전심리라며 갈등을 부추킨다. 전문성 없는 지식으로 질 낮은 네가티브 문화를 말한다. 언제부터인지 우리사회의 지식인 이라는 자들은 특정 정당의 나팔수가 되어 어설픈 지식을 떠들어 대는 꼴은 볼상 사납다. 제대로 된 지식이 없으면서 주제넘은 소리를 떠드는 것은 지식인으로써의 최소한의 양식을 저버리는 것임을 제대로 알고 주제넘는 소리는 삼가고 살길 기대한다.

 

제대로 아는 것 없이 폼 잡는 것이 능사인 수구꼴통 들에게 한마디 하겠다. 사회원로라는 자들이 종교계의 지도층인사라는 자들이 국가보안법의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국민이 불안해 하니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때가 이르다는 식의 설득력 없는 어설픈 푸념을 늘어놓는다. 방편이 없는 지혜는 지혜가 아니다. 구차하게 자신들이 살아온 세월을 내세우며 젊은이들의 방자함을 비난한다. 이것이 잘못 살아 늙어버린 어른들의 모습이 아닌가? 나는 자식이 잘못되면 부모의 책임이고, 자식이 잘되면 자식이 잘나 잘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어른들의 도리라 생각한다. 젊은이를 바르게 가르칠 능력이 없으면 어른 노릇은 그만두는 것이 욕을 면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길 기대한다. 老貪이 붙으면 볼 상 사납다. 나이를 먹으면,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나서야 할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를 분별할 지혜가 있어야 한다. 모름지기 늙은 이는, 자신의 하루의 임무를 다하고 석양을 곱게 물들이며 사라지는 태양처럼 조용히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진정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제대로 확립된다면, 국가보안법 같은 것은 없어져도 국가안보에 전혀 상관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국민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 받을 수 없는 정체성 없는 정체불명의 파시즘을 자유민주주의라 우겨대니 불안하고, 올바르게 살아오지 못한 세월이 드러나 두려운 인간들이 기득권층이다. 과거의 진실을 왜곡한 채 우리에게 미래가 있을 턱이 없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말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착각과 무지를 일깨우려 이 글을 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5MBC 특별대담 중<국민이 주인이 되는 국민주권시대, 인권존중의 시대로 가기 위해서는 (독재시대에 있던) 낡은 유물인 국가보안법을 폐기하는 것이 좋겠다" 국가보안법이 위헌이다, 아니다 해석이 갈릴 수 있다. 그러나 위헌이든 아니든 또 악법은 악법일 수 있다. 국가보안법을 법리적으로 자꾸 얘기할 것이 아니라 지난날 국가보안법이 우리 역사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어떤 기능을 했는가를 보면 대체로 국가를 위태롭게 한 사람들을 처벌한 것이 아니라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데 압도적으로 많이 쓰여 왔다. 국가보안법을 너무 법리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역사의 결단으로 봐야 한다. 형법이 있다. 꼭 필요하다면 형법 몇 조항을 고쳐서라도, 국가를 보위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항이 있으면 형법 몇 조항 고쳐서라도 형법으로 하고 국가보안법은 없애야 한다. 국가보안법은 없애야 대한민국이 문명의 국가로 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가보안법 폐기는) 그런 상징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었다.

 

변호사인 노대통령이 국가보안법의 문제를 법리적으로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국가보안법 폐지의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고, 경솔하게 국가의 안보문제를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역사적 결단, 문명국가로 가려는 의도로 비약시키는 데에 있어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위해 보다 시급한 몇 가지 과제를 제시하려 한다.

 

 

1. 국가보안법 문제는 국가권력의 정당성 행사의 문제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위기 상황은 본질적으로 정당성의 위기이다. 국가기관이고, 개인이나 집단을 막론하고, 규범질서가 무너져 무엇이 올바른 삶의 방식인가를 상실한 채,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과거 성장과 실적 위주의 삶을 살아오면서 정당한 삶의 방식을 상실하였고, 국가 또한 정당성의 기초를 잃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정체성이 있는가? 당연히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대통령 맘이 지배질서인 나라에서 체제이념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정체성을 잃어버린 나라에서 국보법을 없애는 문제는 체제의 존립을 위협하는 아주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국가의 정체성은 국가권력이 정당성을 가지고 행사되어야만이 비로소 정체성 확립이 가능하다. 국가권력의 정당성은 세가지 차원에서 충족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헌정질서에 의해 확립되고 법치국가, 법의지배의 이념으로부터 구체화 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정당한 국가권력은

 

첫째, 국가의 최고권력이 국민의 지지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그리고 법치국가의 최우선 과제는 최고 통치권자의 권한의 행사가 법률에 지배를 받아야 한다.

 

둘째, 국가권력과 국가기관의 권한의 행사가 법률의 제제를 받아 정당한 것이어야 한다.

 

셋째, 국가기관과 관리의 권한의 행사에 대한 이의제기가 보장되어야 하고 정당성 승인청구나 타당성 승인청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어 이에 대한 심판이 행정법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보안법은 상황논리에 의하여 합헌적 고려 없이 만들어 졌고, 법률의 집행이 수사기관 정보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하여 수많은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였다. 국가보안법에 긴급조치까지 보태어, 포장마차에서 소주 마시다 박정희 욕만해도 잡아 간 세월이었다. 비단 국가보안법 뿐만 아니다. 대한민국에서는 국가기관의 권한 행사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 자체로만 괘씸죄가 되어 정당한 권리를 짓밟히며 살아온 세상이었다. 정당한 국가권력 그리고 국가권력의 정당성의 차원에서 바라볼 때 국가보안법이 가장 악랄한 반민주악법이라는 사실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민주주의의 성패는 국가권력의 정당성(Legitimacy)에 기초한다.

파시즘과 공산독재는 지배방식에 있어 이러한 정통화 메커니즘을 갖지 못한 독재자 의사대로, 멋대로 국가권력이 행사되는 저열하고 조잡한 지배의 방식이다. 박정희를 영웅이라고 외쳐대는 주체성이 결여된 사람들에게는 섭섭할지 모르지만, 박정희의 지배방식이란 저열하고 조잡한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이란 깡그리 무시한 모자란 정치가라는 것을 바르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박정희나 전두환은 정치가로써는 점수가 나오지 않는 사람임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모든 국민이 바로 알아야 하고, 민주시민으로써 주권의식과 주체성의 확립이 절실히 요청된다. 정치란 인간 존중 하에, 정의와 자유, 평등과 박애의 이념에 입각하고 국민통합을 이룩하고, 국민 삶의 활력과 행복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나의 양식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그 어떠한 정치가, 정치제도도 용납할 수 없다.

 

노대통령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거론하며 국민주권을 말하고 문명국가를 말한다. 순서가 틀렸다. 국민주권을 말하고 문명국가를 말하려면, 헌정질서의 확립의지를 표명하고, 최고통치자부터 권한 행사가 법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실천함으로써 법치주의를 실천하여야 한다. 국가보안법의 비민주성은 자의적 권력의 오남용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민의 감정을 자극하여 적개심과 증오심을 부추기는 반문명적 선동정치를 지양하고 합리성으로 지배되는 사회를 위하여 인간존중에 기초한 상호존중의 자세로 사회통합을 이끌어야 한다. 민주주의와 국민주권 문명국가를 말하기 앞서, 국가보안법의 비민주성을 말하고 문명국가를 지향한다면, 대통령이 먼저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 적법절차를 준수하여 헌법이념을 실천하는 국정운영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질적으로 향상된 정치를 실천함으로써, 나아가 헌법을 철저히 엄수함으로써 국민주권을 실질적으로 실천하여 보다 발전된 민주사회와 문명국가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성패의 핵심은 국가권력행사가 절차적으로 정당한가에 달려 있다.

이점에서 국가보안법은 반민주악법이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주장하는 노대통령 자신은 적법절차를 지키며 대통령직을 수행하는가? 이점에 관하여서는 87년 민주화 이 후의 대통령 중 가장 엉터리로 깽판을 치며 대통령직을 수행해온 사람이 노대통령일 것이다. 측근비리를 재판도 받기 전에 재신임을 받겠다고 말하며, 사법부의 존재 의의를 부정해 버렸다. 탄핵정국을 유도하여, 국회의원 총선거를 사실 상 대통령 재신임 투표로 변질시켜, 헌정질서를 유린했다. 수도권 이전의 문제에 대하여서도 반대의견의 개진은 자신에 대한 불신임 운동이라 어처구니 없는 반민주적인 협박을 하고 있다. 헌법수호와 헌법준수는 안중에도 없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노대통령이다.

 

멍청한 야당은 노대령통에게 계속적으로 당하고 두들겨 맞으면서도, 박정희 타령만을 하며, 노대통령을 무시하는 데에 여념이 없다. 영리한 노대통령은 적어도 아는 척 하지 않고 폼을 잡지는 않는다. 자신이 공격 당하면 상대방을 확실히 공격한다. 학벌 좋고 자칭 똑똑한 기득권층은 거덜나도록 망가지고도 자신들이 왜 깨졌는지 모를만큼 멍청하고 무지몽매하다. 반성이 되지 않으니 도통 개선이 되지 않는 것이다.

 

노대통령의 승리의 전략은 한 마디로 포퓰리즘에 의한 승리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폼 잡고 잘난 척하고 있는 척하고 아는 척하는 인간을 싫어한다는 것을 노대통령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최대한 활용하여 자신의 정권기반을 강화하여 권력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것인 과연 잘되기만 한 일일까? 포퓰리즘으로 지배되는 세상이란 공산독재만도 못한 그야말로 개판의 세상이다. 우리 사회에 포률리즘이 만연된 것은 876.10 항쟁 이 후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헌법 제1조에서 말하는 국민주권의 의의가 철저히 잘못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2. 국민주권의 의의

 

국민이 권력의 객체가 아니라 권력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다. 이러한 사고 방식이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마르크스는 자유(브르죠아)민주주의에서 국가란, 브르죠아 이익을 대변하여 프로레타리아를 착취하기 위원회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고, 국가는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국가권력을 억제하여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관점 보다 국민이 국가권력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주의 이념이 훨씬 설득력있고 좋아보인다. 하지만 역사 상 국민이 국가권력의 주체가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마르크스는 무정부주의적이다.

 

서구 민주주의 발달사는 귀족이 독점하고 있던 각종의 권리가 브로죠아로 확산되는, 나아가 보다 많은 사람들로 확산되는 헤겔의 말처럼 자유의 저변확대의 역사이다. 서구에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된 것이 얼마나 되었을까? 보통선거가 실시된 것은, 초기 근대국가에서 제한되어 있던 선거권에 대해 신흥사회 세력들이 참정권을 요구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1948년 프랑스에서 재산에 의한 제한선거가 철폐된 이래 세계 각국에서 재산과 여성참정권이 완전히 철폐되어 전세계적으로 보통선거제가 확립되었다.

 

자유민주주의는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권력의 오남용을 어떻게 제어하느냐의 관점에서 발전되어 왔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권력자를 불신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권력분립의 이론이나 헌정국가, 법치국가의 이념은 한결같이 권력의 타락을 어떻게 방지하느냐의 관점에서 발전되어 왔다.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은, 전체주의 군주나 공산주의 국가의 지도자들이 자유민주체제의 지도자들보다 대부분 정치지도자로서의 자질과 역량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이다. 레닌이나 스탈린, 모택동이나 김일성 등, 공산국가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사상적인 지도자이기도 하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공산주의에 열광했고, 과학적 사회철학의 창시자로써의 마르크스의 업적은 서구 사상사의 최고의 지위가 결코 무색하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그 어떤 전체주의 체제보다, 파시즘이나 공산주의 체제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우월하다는 것을 확신한다. 아무리 우수한 인간에 의하여 지배되는 국가나 사회도 지도자의 독단에 의하여 지배되는 사회나 국가는 당연히 오래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는 역사적 교훈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있다. 플라톤은 말했었다. 그 어떠한 인간도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오류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고, 이를 방지하는 것이 위대한 입법자의 의무라 말했었다.

 

국민주권의 이론적 기반은, 프랑스혁명의 이론적 성과라 할 수 있는 헌법제정권력(pouvoir constituent)과 헌법에 의하여 조직된 권력(pouvoir constitue)의 구별에 있다. 국민주권은 무엇보다 헌법제정권력을 행사함으로써 그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일단 헌법이 제정되면 국민주권은 헌법에 의하여 조직된 권력에 위임되는 것이다.

 

헌법은 국민의 국가권력의 담당자로서의 지위와 국민주권의 행사를 구별하고 있다. 1791년 프랑스 헌법은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국민은 위임에 의해서만 이를 행사할 수 있다.> 국민주권은 국가권력의 담당자로써의 지위로 헌법이 제정되면 헌법 속에 해소된다. 헌정국가에서 규정된 국민은 헌법 상 규정된 권한만 갖는다.

 

국민주권의 이념의 이론적 핵심은 첫째, <헌법제정권력>과 둘째, <국가권력의 담당자로서의 지위>를 말하는 것이다. 국민주권의 의의는 국민이 권력을 행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헌법기관에서 행사되는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헌정국가 내에서 국민은 선거나 투표, 정당참여, 집회 결사, 여론 형성 등에 관한 권한만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주권의 이념에 대하여, 대다수 국민들은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로 반발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대한민국에 온전한 헌정질서가 있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부패한 실상을 다 까발리면 대한민국에서 온전한 국가기관이 있기나 할까? 독재정치는 온전한 체제가 아니다. 대통령 마음이 법이 되는 체제가 체제인가? 지난 17년 간의 민주화는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회복하는 것이 아닌 국가권력의 오남용에 대하여 이를 억제하는 새로운 기구 만들기 여념이 없었던 잘못된 개혁이었다. 보다 많은 돈을 주무르고 인사권 팽창이 능사인 방식으로 개혁을 해왔다.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될 때마다 새로운 기구를 창설하는 것이 민주화였고, 국가권력의 정당성과 법의 권위를 지켜야 할 사법부가 앞장서서 관료화되었고 기구팽창하기에 여념 없는 타락하고 부패한 권력이 되어 버렸다.

 

 

 

3. 개혁을 성공하려면

 

국민들 저마다 길 바닥에 나와 몽둥이들고 돌 던지고 뗑강부리면 공권력이 굴복해버리는 나라에 미래가 있겠는가?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엉망진창으로 망가져버린 국가기관이 국민을 탓할 자격이 없다.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통째로 부정하며, 북한의 대남적화전략인 반파쇼민주화와 반미 자주화에 동조하는 민주노동당의 지지도가 20%에 육박하고 있다. 북한은 남한에 대한 사회주의혁명이란 말이나 적화통일 이란 말을 더 이상 쓰지 않는다. 남한 사회의 민주화를 통하여 사회주의 국가끼리의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은 말하고 있다. 남북한 국력의 격차는 이미 경쟁이 의미가 없는 상태로 벌어졌다며 냉전체제의 상징인 국보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법체계를 통해 대한민국이 결정적 우위에 서게 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집권당의 의장이란 자가 대책 없이 거덜난 우리나라의 법체계의 실상을 알고나 말하는 것인가? 국보법 폐지와 미군철수가 북한의 대남적화의 최우선과제라는 것을 알고 하는 소리인가? 국보법 폐지로 결정적 우위에 서게 되었다니 이 무슨 가당치 않은 헛소리인가?

 

개혁과 민주화의 요체는 국가권력행사의 정당성을 회복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자유민주주의의 헌정질서를 반석 위에 올려 놓는 것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대통령이 법을 지키며 권한을 행사하여야 한다. 부정부패가 무엇인가 그것은 국가권력이 오남용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투명한 행정과 예측 가능한 행정, 권한행사에 있어서의 적법절차의 준수가 부정부패를 없애고 체제효율을 높인다는 것을 대통령부터 올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권한 행사의 절차를 무시한 국보법이 악법인 줄 안다면, 대통령부터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확립을 위해 적법절차를 지키는 대통령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화 과정에서 보여준 법원의 민주화란 그 실상을 알고 보면 기가 차고 말이 나오지 않을 만큼 엉터리 민주화였음을 알아야 한다. 지난 10여 년 법관의 수가 2배는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똑 같은 사안에 대한 재판의 결과가 서울과 부산에서 다르고, 판사마다 다른 판결이 나오는 것이 오늘의 법원의 타락한 현실이다. 인권보장의 미명 하에 수사기관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훨씬 복잡하게 늘어났다. 인권보장을 말했었다. 판사의 권한이 세어지고, 변호사의 사업영역이 확장되었고,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불공정성은 심화되고 사법정의는 땅에 쳐 박은 사법개혁이었다. 이제, 가사사건에서는 기소권도 갖고 싶다는 법원이다. 건전한 사법부 없이 민주주의의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판사들이 끗발을 높이기 위하여, 변호사들 사업영역의 확장을 위하여 법의 권위를 땅에 쳐 박아 놓은 것이 오늘의 타락한 사법부의 현실이다.

 

법에 권위가 어디 있는가? 김용옥이 같은 자는 민중의 함성이 헌법이라 주장하고, 대한민국의 헌법기관을 모조리 때려 엎자는 식의 내란선동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떠벌리고 다닌다. 대통령 스스로 헌정질서 파괴적 포퓰리즘을 용왕님 덕이라 칭송했었다. 이 난장판 세상을 바로잡지 아니하고, 포퓰리즘을 등에 업고 얼마나 더 대통령 노릇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가?

 

대한민국의 장래와 노대통령의 성공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노대통령에게 애정어린 충고를 하겠다. 대통령 노릇을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솔선 수범하여 헌법을 지키라고 충고하고 싶다. 대통령부터 먼저 정당한 헌정질서를 바로 잡아가야만이 개혁을 성공할 수 있다. 비젼이란 실현 가능한 새로운 삶의 질서에 대한 전망이다. 확고한 이념과 철학 없이 정책적 일관성 없이 저질 포퓰리즘에 기대어 기득권층 때려부수기가 전부인 정치가 얼마나 갈 것 같은가? 재정적자 200조로 굴러가는 나라에서, 경제는 곤두박질 치고 있다. 무엇을 믿고 비용소모적인 수도이전을 감행하려는가? 그 돈을 무엇으로 충당할 것이며, 대한민국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을 무슨 근거로 주장하려는가? 민주화 개혁- 백 번 찬성이다. 새로운 비젼없이 기득권층을 때려부수는 것만이 전부라면 대통령 또한 온 국민과 함께 같이 망한다는 것을 깨닫기 기대한다. 변덕스러운 것이 민심이다. 잘못 헛디뎌 경제가 거덜나면, 순식간에 뒤집히는 것이 민심이란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개혁이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은 잠시 고통을 겪더라도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개혁에 동참할 것이다. 현 정권이 개혁에 성공하려면, 새로운 국가의 질서를 보여주어야 한다. 반대자에 대한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하는 개혁이라면 당장 때려치워야 할 개혁이란 것을 유념하시길 바란다. MBC와의 인터뷰 중 한미 관계가 효선양 미선양 촛불시위로 영향 받는 사실을 말하는 것을 보며, 노대통령의 외교적 미숙함이 심란하게 여겨진다. 고도의 보안과 전략을 요구하는 외교를 포퓰리즘에 의존한다면 그야말로 정신 나간 짓이라 비난 받아 마땅하다. 정치 외교 군사 그 어느 하나도 예외 없이 감정이 있어서는 아니 되고 공평무사하고 평정심을 잃으면 곧 망국의 길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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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를 생각한다

2004-05-28 16:56:00

 

힘센 사람이 마음대로 하는 횡설수설

 

보수는 힘센 사람이 좀 맘대로 하자는 것"

노무현 대통령은 27"'가급적 바꾸지 말자'가 보수고, '고쳐가며 살자'가 진보"라며

"한국에서 뻑하면 진보는 좌파고 좌파는 빨갱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암적인 존재"라고 지적했다.

 

"한국처럼 오른쪽에 있는 나라는 더더욱 바꾸지 말자는 기득권 향수가 강할 수밖에 없다"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의별 보수를 갖다 놓아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수는 힘센 사람이 '좀 맘대로 하자, 적자생존을 철저히 적용해 경쟁에서 이긴 사람에게

거의 모든 보상을 주는 약육강식이 우주섭리에 가깝다'고 말하는 쪽"이라고 말했다.

반면 "진보는 '더불어 살자, 인간은 어차피 사회를 이뤄 살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느냐는 것'"

이라고 대통령은 지적했다.

 

대통령은 "한때 소련이 붕괴됐을 때 진보. 수가 바뀌었다"

"그래서 부득이 보수가 공산주의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 이이가 진정 대한민국의 대통령인가?

노대통령의 말을 듣고 보니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띵해진다.

황당함의 극치다.

 

보수는 사회안정을 바라고, 진보는 사회 발전을 바라는 것이라는 정도만 말했어도

이런 황당한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혁을 성공하기 위해서 철학이 있어야 하고 신념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고,

현실의 문제를 어떻게 분석하며, 새로운 미래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실현 가능한 방법을 모색하고, 일의 우선 순위를 정하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 나가는 것으로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조금씩 구체화 하는 리더쉽이 절실한 것이다.

 

그런데 노대통령의 위의 발언을 읽어보면 신념은 고사하고,

사회발전에 대한 생각에 대하여, 교통정리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의 상황인식을 드러낸다.

교통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 부적절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노대통령의 보수에 진보에 대한 이해의 수준은

교통사고 수준이다.

한 마디로 좀 힘이 있다고 아무데서 아무 이야기를 마구 할 수 있는 것을

권력가진 사람이 누리는 특권 쯤으로 생각하는 황당함을 보여준다.

 

노 대통령은 <힘센 사람이 좀 맘대로 하자는 것>이라는 것을 대학생들과의

대화에서 마음 놓고 횡설 수설을 하고 계시다.

 

<진보는 좌파고 좌파는 빨갱이라고 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암적인 존재라 말하고 있다.>

참여정부라 하며, 기득권 층을 몰아내고, 보다 많은 국민이

국가권력의 주체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민은 권력의 객체가 아니라 국민은 권력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주의 이념은 용도 페기된 이념이며,

우리 사회에 만연된 이러한 사회주의적 진보의 개념을 진보가 아닌

몰락의 개념으로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소련연방이 붕괴했다. 유럽은 좌파 정권, 좌파 지식인의 입깁으로 백년 동안 노쇠했다.

좌파의 이념을 진보라 믿는 것, 그것은 북한을 선진 사상으로 무장된 집단으로

이해하는 것만큼 어이없는 발상이다,.

 

주체사상에 의하면 북한은 인민의 낙원이며 선진국이고,

남한은 자본주의 쓰레기들이 모여사는 사회이다.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이 미칠 국민적 파장을 생각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없애고, 보다 건설적인 사회발전을 위해

보수와 진보의

개념에 쉽게 접근하는 방법을 나름대로 모색해본다.

 

사람은 자신이 자기 자신이기를 바란다.

동시에 현재의 자신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나은 삶을 기대하고 모색하면 이를 실천하고자 한다.

<보수주의>를 바라는 심리적 기저에는 내가 <>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고,

<진보주의>를 바라는 심리적 기저에는 <더 나은 나>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

인간의 내면에는 보수와 진보를 바라는 마음이 공존한다. 그런데

새로운 삶의 모색은 기존의 삶에 대한 안정성을 깨뜨린다.

사람은 삶의 개선을 바라지만, 이에 동반되는 혼란과 불확실성을 두려워 한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인간실존의 이러한 심리적 기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보수>가 자기애와 연관되어 있다면

<진보>는 삶에 대한 사랑이고, 삶에 대한 사랑은 변화와 발전에 대한 욕구이다.

이러한 향상에로의 욕구는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과 생명력과 관계되어 있다.

 

진보한다는 것은 성장의 징후이다.

자신의 삶의 안락함에 안주하는 것은 곧 몰락의 징후이다. .

더 나은 삶을 기대하고 모색하며 이를 실천하고자 한다.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 없이, 우리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 수 없는 것이다.

 

정체성이란 자기 규정성을 말한다.

내가 스스로 무엇으로 규정하느냐에 대한 통일된 또는 구조화된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집단, 특정 사회, 국가도 정체성을 확립하여야 만이 성공적인 사회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개인이나 집단은 발전을 위한 합목적적인 목표를 설정할 수 없고,

자신의 삶의 국면에서 자신에게 적절한 방법을 강구하기 어렵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나 사회의 자기동일성을 확보하고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것이

<보수주의> 철학적 이념이라 생각한다.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사회는 진보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기에 사회의 안정은 진보의 전제조건이 되며,

진보의 이념을 실천적 삶의 영역에서 구현하기 위해서는

비전을 구체화 하는 새로운 삶의 질서를 이끌어 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삶의 질서를 깨부수는 것이 진보가 아니라,

기존의 삶의 질서를 새로운 삶의 질서로, 보다 확장적이고,

그 국가나 사회의 성원들의 생활에서 삶의 효용과 행복을 극대화 시키는

삶의 질서를 건설하는 것이 진보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진보적 사회발전을 위한 노력은 지도자의 철학이 없이,

사회발전에 대한 지도적 이념이 없이 진보는 불가능하다.

진보에 대한 지도적 이념은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참여하며,

미래지향적이고 건설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오늘날 미국이 누리는 국가적 성공은 다른 서구 국가와 다른 특별한 역사적 이유가 있다.

미국엔 앙시엥레짐이 없었고, 아무것도 없는 신대륙에 민주공화국의 이념을 완전히

새롭게 정착시킬 수 있었기에, 세계에서 가장 안정된 정치 체제를 갖출 수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는다 믿는다.

 

진보와 보수에 대한 정치사상적 이념적 기초를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공화정>의 이념은 보수적이고, <민주정>의 이념은 진보적이다.

<공화정>은 국가의 목적을 구현하고, 국가의 질서와 사회안정을 강조한다.

<민주정>은 개인의 권익 신장 보다 자유로운 삶, 나아가 보다 행복한 삶에

그 이념이 지향점을 맞추고 있다.

 

하루 열 시간 일하는 사람이 일은 8시간쯤 하고

자기 개발은 2시간 투자하는 것이 건강하다 믿는다.

한 사회의 건전성도 70~80%의 보수와

20~30%의 진보가 병존할 때 그 사회가 건강하다 믿는다.

 

획일성과 안정만을 추구하는 사회는 곧 몰락한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도전을 허용하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모색하는

개인이나 사회가 건전성을 지속하는 것처럼,

다양성과 도전을 허용하는 국가권력이 진보적이며,

발전적인 국가의 전제가 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현실의 문제에 도전했다.

어떤 관념과 주의를 내세우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도전했다기 보다

내 앞에 부닥친 문제에 도전했다.

보통 대학에 수석 합격하면, 고시에 합격해 가난한 사람 위하는 사람 되겠다,

돈 없는 사람 치료해 주는 의사 되겠다는 말을 한다.

진심이라 생각하는데 제게는 그런 꿈도 없었다. 판사 되고 싶었다. ? 출세하니까.

성공 비결 말하겠다. 저는 제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성공한 대통령이 아니라도

만족한다...

어떻게 해서 성공했는가? 제가 성공한 비결은 확실하게 투자하라는 것이다.

가진 것은 그대로 갖고 그리고 더 갖겠다는 도전, 이것은 좀 안전하지만 성공에는

큰 도움 안 된다. 적어도 승부를 걸어야 하는 과정에서는 투자 하려면 확실히 해야 한다.

현재에 몰두했다. 멀리 내다보기는 하지만 그것은 내다볼 뿐이지 항상 현재에 전부를

투자했다.>

 

노대통령은 성공의 비결로 도박을 이야기 하고 있다. 현실에 만족하고,

성공한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만족한다 말하고 있다.

대통령 스스로의 가슴에 비전이 없고 미래가 없으며,

미래에 대한 꿈도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의지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토로하고 있다.

 

철학도 신념도 비전도 없이 오직 대통령이 된 것 자체를 성공이라는 대통령 -

권력은 정치가가 자신의 신념을 펼치는 수단일 뿐이다.

노대통령은, 출세하기 위해 판사가 되겠다고 주장하는 같은 맥락에서,

대통령이 되는 것이 권력의 획득이 목적이었음을 스스로 말한다.

 

그를 지지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모두 그의 출세의 밥일 뿐이었단 말인가?

대한민국 국민이 그에게 기대할 것이 더 없다는

이 어처구니 없는 현실 앞에서 망연자실할 뿐이다.

 

대한민국 청와대는 막가고 있지는 않은가? 그 어딘지 모를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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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표의 착각

2004-09-14 16:52:29

 

노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발언에 대하여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발언은 사뭇 비장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마지막 안전장치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은 저의 모든 것을 걸고 막아내겠습니다. "모든 것이 포함된다. 보안법 폐지는 친북활동의 합법화이다. 대낮에 우리나라 어떤 곳에서도 인공기를 막 휘두르고 북한을 찬양하고 어떤 제재를 받지 않고 합법화된다는 것인데 체제가 위험하고 우리를 앞서갔던 많은 선배들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 선배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국보법 폐지를 막겠다는 박대표의 국보법 문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상황인식은 황당스러울 정도로 모자라고 잘못되어 있다. 먼저 국가보안법이 자유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안전장치라고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고 있다. 선배들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것이라 말하며 그 체제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한 것이란 주장을 들으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산업화했다면 지나가던 강아지가 웃을 일이다. 군사독재와 계획경제로 산업화를 이룩하였다. 박정희가 행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원조는 스탈린이다. 자본주의 진영이 세계공황으로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때, 스탈린은 경제계발5개년으로 후진국을 산업화시켜 세계최강의 공업국으로 이끌어 올렸다. 산업화에 성공한 업적으로 말한다면 박정희는 스탈린에 비하면 상대가 되지 않는다.

 

국가보안법은 군사독재정권이 비인도적이며, 반인권적 독재정권을 지키기 위하여 수많은 민주인사를 탄압한 반민주악법이었다. 요즘은 아무나 자신의 필요에 따라 가져다 붙이는 것이 자유주의라는 말이다. 대한민국에 자유주의를 제대로 해본 적이 있었던가. 노대통령은 내 마음이 헌법정신이라고 자유민주주의를 말했고, 한나라당은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 지킨 것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얼토당토 않은 말을 하며 경제살리기를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신자유주의를 말하며 강성노조를 때려잡는 것을 주장한다. 애꿎은 자유주의라는 말이 수난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요즈음 아무나 필요에 따라 멋대로 가져다 붙이는 것이 자유주의란 생각이다.

이러한 개념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 자유주의 의미를 간략하게 설명해 보겠다.

 

자유주의는 집단에 의한 통제보다는 개인의 자발성을 우선시하며, 국가와 사회제도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개성을 존중하기 위하여 존립해야 한다는 이념이다. 자유주의 이념의 핵심 테제에 대하여 칸트는, 도덕은 인간을 수단으로가 아니라 목적으로 취급하는 것이라 했고, 토마스 제퍼슨은 정부란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보호하고 실현시키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설파했었다. 자유주의를 말하면서 사람을 수단(인적자원)으로 생각하며 교육인적자원부를 만든 DJ 정부의 무지몽매함은 돋보인다.

 

개인의 자유를 보편적 가치로 인식하고 그것에 기초한 사회제도를 적극적으로 구상하는 자유주의 사상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어 국가와 사회의 지도원리로 자리잡게 된 것은 근대 유럽에서이다.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은 고유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자기 완성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인간관, 원리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모순되지 않는 정치제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정치관, 개인의 자발성 보장이야말로 사회발전의 조건이라는 사회관 등 자유주의가 전제하고 있는 이러한 관념들은 모두 근대사회의 구성원리를 형성했다.

 

종교개혁 이후 ''신교(新敎)의 자유'' 주장, 원죄설의 부정 및 인간의 완성 가능성과 진보의 관념을 강조한 계몽사상, 기본적 인권과 사회계약의 관념, 영국 입헌주의의 역사적 전통, 고전경제학과 자유방임 정책론 등 근대혁명을 이끈 사상과 관념들도 자유주의의 근간이 되었다.

 

자유주의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였지만 자유주의가 의미하는 실질적인 내용은 이미 17~18세기의 부르주아 혁명 이념 속에 내포되어 있었다. 영국은 명예혁명으로 스튜어트 왕조의 절대주의를 청산하고 법에 의한 지배의 전통 위에 의회정치를 정착시킴으로써 근대적인 입헌주의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J.로크의 정치이론과 A. 스미스의 경제학설이 종종 고전적인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영국에서 처음으로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정치체제가 성립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독립선언과 뒤이은 프랑스의 인권선언은 근대 정치원리의 기본이념으로서 인간의 자유를 보다 보편적인 용어로 표현하여 자유의 기초를 확립시켰고, 자유주의에 있어 새로운 전기가 되었다. 동시에 프랑스 혁명의 정치과정은 폭력적 수단을 수반하는 급진적인 사회제도의 변혁에 반대하고, 의회제도의 틀 속에서 온건한 개혁을 지향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의 의미를 확인시켜주었다.

 

본래 자유주의는 유럽에서 근대 혁명의 보편적 원리를 주창하는 부르주아가 토지귀족세력의 정치적 지배를 타파하고 부르주아의 계급적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19세기 전반에 성립시킨 정치적인 주장이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자유주의는 양면성, 즉 한편으로는 봉건제와 절대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자유평등의 인간상과 합리주의를 계승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재산과 교양을 지표로 하여 빈곤한 계급을 정치과정에서 제외시키고 브르죠아 계급에 봉사한다는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J.S.밀은 권력이 제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가 권력에 의존한다 말했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국가의 행정부란 부르죠아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위원회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노동자에게 조국이 어디 있느냐고 국가를 전복하고 브르죠아의 재산을 가능한한 빠른 시간에 박탈하여 프로레타리아의 수중에 귀속시킬 것을 역설했었다. 마르크스는 국가자체에 대하여 부정적이다. 공산국가는 공산당 독재에 의하여 관료화 되었다. 관료화되고 부패하고 독재적인 공산국가는 결국 역사의 장에서 몰락하고 말았다.

 

파시즘이든 공산독재든 나는 전체주의에 반대한다. 전체주의 국가 이념은 그 어떤 방식이든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한다.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라는 액턴 경의 말처럼 국가보안법의 과거사는 타락한 국가권력의 범죄적 실상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과거 국가보안법의 잘못된 운영은 멋대로 인권을 유린하였던 독재자들의 죄상과 독재자들에 빌붙어 자신들의 영달만을 위해 살아온, 돌팔이 법조인 부패한 관리들의 타락한 일면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국민의 봉사자로써 정의로운 법의 수호자로써 본분을 망각한 채, 제대로 아는 것 없이 외국 제도를 어설프게 표절하고, 위선과 탐욕으로 살아온 그들의 죄상을 증거한다.

 

박근혜대표는 경제살리기를 강조한다.

국가보안법 문제와 과거사 문제를, 국민의 뜻을 제1의 기준으로 삼아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겠다는 비합리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말하는 노대통령에게 경호실법을 폐지하라고 맞대응하는 한나라다의 멍청함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국가보안법은 반민주악법이다. 그 법 집행이 수사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하여 이루어졌기에 반민주악법이다. 제대로 된 법은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를 준수하여야 하고, 자유민주의 핵심은 국가권력의 행사가 적법절차에 의하여 행사되도록 하여야 한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이 자유민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안전장치라며 국가보안법 수호를 위하여 목을 걸겠다는 박대표의 비장한 의지 표명은 합리적 방법을 찾는 것은 애당초 글러버린 그야말로 한편의 코메디가 아닐 수 없다.

 

국보법 개정과 페지에 대한 국민의 뜻은 이미 감정적으로 반목과 대립과 불신의 늪에 빠져 있다. 제대로 된 정치지도자라면 이러한 우리의 문제적 상황을 헤쳐나아갈 설득력 있는 해법을 찾아내고 제시하여야 한다. 그녀는 아는 것이 없고 대책이 없으며, 노대통령의 공격과 세상 돌아가는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며 허둥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국가보안법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목을 걸겠다는 그녀의 용기는 가상하다. 다만 무모하게 그녀의 목을 걸어 국가보안법이 지켜질지 의문이다.

 

한나라당과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살아온 날들에 대하여 반성할 줄 모른다. 그 당시 상황을 말하며, 당시로써는 자신들의 삶의 최선이었음을 되풀이하여 말한다. 줄서기 잘하고 필요하면 비겁하기 능수능란한 자들이 우리의 기득권층들이다. 좋다고 여기는 것은 표절하여 갔다 붙이길 좋아하니, 군사독재 하의 계획경제가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시장경제로 둔갑시킨다. 자신이 지닌 문제점을 인정하고 자신의 반성을 기초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줄 모르니 개선이 되지 않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안전판이라 착각하는 실력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그녀의 모습은 안스럽다. 멍청한 박근혜 대표에게 충고하고 싶다. 국가보안법 가지고 폐지 부당성을 주장하며 길바닥에 나아가 외치면 국민이 호응할까? 과거 국가보안법으로 인하여 피해본 사람들이 일어나 국가보안법 폐지를 보다 설득력 있게 주장하는 자리를 깔아주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현 정권의 개혁에 대응하여 경제문제로 현 정권의 무능을 부각시키는 것이 한나라당의 전략인 듯싶다. 스스로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를 말하며 경제살리기를 말하는 박대표가 계획경제와 시장경제를 분간하지 못하는 것 같아 딱하고 안스럽다. 지금의 우리 경제의 문제는 경제의 관점에서만 접근하여 해결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시장이 작동할 수 있는 공정한 룰이 없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의 문제, 노사문제는 단순히 경제문제만이 아닌 정치문제와 결합되어 있다. 강성노조의 문제는 생산성의 향상이란 경제적 차원에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경제적 문제와 아울러 정치적 제도적인 문제로 접근하여야 풀 수 있는 문제이다. 조금 전문적으로 말하면 노사문제는 규범적 문제와 사실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나아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우선순위를 기업의 생산성에 가치를 두느냐, 아니면 노동자의 삶의 질에 가치를 두느냐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계획경제와 시장경제를 혼돈하는 박대표가 말하는 경제살리기가 얼마나 실속이 있는 것인가 궁금하다.

 

법적안정성이 없는 사회에서 시장경제가 가능한가? 한나라당과 박대표는 시장경제의 기초가 되는 법적 안정성과 법관의 법률의 기속이 시장경제의 기초라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사회가 공정한 룰에 의하여 작동되지 않는다면 시장경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몇 몇 대기업 활동을 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정부의 규제를 풀어달라 말한다. 이러한 발상 자체가 과거 특혜지향적 기업 운영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제도는 사회 모든 분야에 공정하게 적용되는 것이어야 한다. 같은 사안에 대한 법관 마다의 판결이 서로 다른 사회에서 온전한 시장경제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까? 사회를 움직이는 기초적인 법질서가 공정하게 작동되지 않는 나라에 시장경제는 불가능하다.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는 자유민주주의적 헌정질서가 전제되지 아니하면 작동 불가능한 것이다. 쉽게 말해서 어느 재벌이 대통령에게 잘못 보였다고, 그 재벌이 관여된 사업의 분야에 불리한 입법을 대통령 마음대로 만드는 나라에서 시장경제는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은 공정한 룰에 의하여 돌아가는 사회가 아닌 힘 있는 사람 마음대로 돌아가는 사회였고 여전히 그렇다. 기득권층이 느끼는 위기 의식은, 판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고 수용하기 싫은 것이다. 실례를 들어 설명해보자. 산동네 빈민촌을 재개발하여 아파트를 짓는다 하자. 현재의 지가가 평당 10만원인데, 재개발하면 지가가 100만원이 된다. 건설회사가 정부에 뇌물을 평당 1만원 주고 사업허가를 받아, 원소유자에게 15만원에 매입한다. 대다수 원주민은 수용한다. 이에 반발하여 뗑깡을 부리는 사람은 철거반원(폭력배)을 동원하여 때려잡고 밀어붙인다. 그럼에도 끝까지 저항한 몇 명의 원주민에게 20만에 매입하여 재개발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대기업이 그 실상을 알고 보면 기발하고 상상을 초월한 악랄한 방식으로 부를 축적해 왔고, 부패한 관리가 뇌물받고 이를 거들며 성장한 것이 우리 경제의 실상이다. 그런 다음 더 웃기는 일도 생긴다. 이러한 수법을 알아차린 폭력배가 다음에 철거민 촌의 딱지를 18만원에 매입하여, 가스통 폭파하겠다고 위협하여 평당 50만원 받아내는 사업수완을 발휘한다. 이러한 것이 허용되는 사회에서 제대로 된 시장질서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법률의 제재를 받지 않는 국가의 최고권력은 필연적으로 인권을 침해하고 타락의 길로 나아간다. 자의적 권력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을 죽였던 스탈린을 경멸하는 것처럼, 김일성과 김정일의 공산독재를 경멸하는 것과 똑같이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짓밟앗던 박정희와 전두환의 타락한 권력을 경멸한다. 박정희를 뛰어난 지도자라고 말하겠다면 스탈린은 위대한 지도자이어야 한다.

 

대통령의 마음이 곧 법이 되는 세상으로 살아왔다. 대한민국에 체제란 없었다. 단 한가지의 체제질서가 있었다. 대통령 앞에 줄을 서는 지배질서가 있었을 뿐이다. 지금은 노대통령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이, 과거 대통령들에게 줄을 섰던 기득권층 때려부수는 것만이 우리가 살길이라 주장하며 개혁을 한다. 노대통령이 잘못된 지배질서를 부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새로운 지배질서를 만들지 못한다면 지금의 개혁이 필연적으로 부메랑이 되어 스스로를 몰락의 길로 이끈다는 것을 나아가 우리 모두를 공멸로 이끈다는 것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빙자하여, 국가보안법의 폐지문제로 국론을 분열시키며, 사생결단의 대립의 국면으로 나아가는 것이 심란하다.

 

우리에게 진정 절실하게 필요한 개혁이란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바로 잡는 일이라 확신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적 헌정국가를 확립하는 것이며 법치주의 국가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다. 협의의 의미에 있어 법치주의란 모든 국가 기관의 법률의 기속을 말한다. 입법이 헌법에 기속되어야 하고, 행정이 법률에 기속되어야 하며, 법관이 법률에 기속되어야 한다. 법치국가이념의 최우선 과제는 통치권자의 권력의 오남용을 방지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에 기초한 법치국가를, 나아가 법의 지배의 이념을 실천함으로써, 정의에 기초한 새로운 국가질서를 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활력있고 생산적인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여야 한다 믿는다. 이 길만이 대립과 분열이 아닌 진정 화해와 협력으로 모색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임을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무모한 정치도박 그만 두라

2005-09-08 18:00:36

 

1. 대연정 제의 - 정치도박

2. 노대통령이 선지자(先知者)인가?

3. 독재정치는 안 된다.

4. 독선(獨善)과 아집(我執)이란 미숙함의 다른 이름이다.

 

 

 

1. 대연정 제의 - 정치도박

 

도박은 결국엔 망한다.

도박에 빠져드는 것은 도박에 성공한 맛을 보았기 때문이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기 마련이다. 탄핵 정국의 여파로 열린우리당이 대승을 거두었다. 40여 석 남짓 국회의원 수를 가졌던 열린 우리당이 국회 과반의석에 육박하는 의석을 획득했다. 그런데 지금 노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29%로 곧두박질 쳤다. 왜 이리 되었을까? 지난 17대 총선으로 열린우리당은 87년 이 후 선거로 최대 의석을 얻은 집권당이다. 이러한 지지를 받는 집권당이 어찌 이리 지리멸렬하는 것일까? 자신에 대한 지지율이 29% 밖에 안되기에 책임정치를 못하겠단다. 대통령의 도박으로 얻은 권력이기에 온전치 못한 것이다.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의한 노대통령과 박대표가 만나 회담을 했고, 2시간여의 공허한 만남 속에 아무런 성과없이 회담은 결렬됬다. 집권 당 내의 의견 수렴 조차 되지 않은 채 시도된 대통령의 제안이다. 회담결렬은 당연한 결과이다. 여야가 촉각을 곧두 세우고 노대통령의 다음 수가 무엇일가 긴장하는 모습이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즉흥적 제안에 대한 야당이나 국민의 반응을 체크하며 또 다른 쇼비지니스를 기획하려 할 것이다.

 

잘 될까? 잘라 말하겠다. 될 일이 아니다. 대통령직을 걸고 배째라는 식의 정치는 이제는 먹히지 않는다. 탄핵 때까지만 해도, 외로운 돛단배를 야당이 흔들어 대통령 노릇 못해먹겠다는 말이 국민들에게 먹혀들었고, 대책없이 대통령을 탄핵하여, 정치적 불확실성만을 증폭 시킨 야당에게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국민이 힘을 모아 집권당을 밀어주었다. 노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제대로 일 하지 못하여 지지율이 떨어졌다. 독단적이고 전횡적인 방식의 정치가 실패하자 이를 바로잡고 개선할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새로운 정치적 이슈를 들고 나오며, 대통령직을 걸고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대연정을 들고 나왔다. 여기에 무슨 진정성이 있고, 국정을 운영하는 대통령의 철학이 있겠는가? 대통령직 내걸고 마치 비장한 결심이라도 한 양 허풍치고, 한 건 잡아 정치 판을 한 번 뒤짚어 보겠다는 도박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

 

 

2. 노대통령이 선지자(先知者)인가?

 

 

강준만은 한 칼럼에서, 4대 개혁입법 처리가 실패하자 유시민 의원은 국회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린 바 있고. 천정배 법무장관은 원내대표 시절 4대 개혁입법에 목숨을 바치겠다 말했었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가 후퇴한다 말했었다. 단지 선지자적 혜안으로 여권의 간판 스타를 그렇게 추락시키고 정치개혁이 가능한가라 질문하며, 선지자노릇을 한다는 점에선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노 대통령이나 다를 게 없다. 한국은 아직도 선지자의 나라인가? 조금 늦더라도 더불어 같이 가면 안 되는가? 반문하며 노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이 박정희와 다를 바 없는 독재정치라 비판한다. 대통령의 대연정 제의에 대하여 한나라당의 대통령에 대한 무시가, 연정 이 후 한나라당 인사들에 의하여 다시 재현된다면 연정은 끝나는가를 질문하며 노대통령의 연정제의가 비현실성을 꼬집는다. 나아가 무지한 국민을 거역하고 연정을 제의하는 노대통령에게 국민은 겨울ㆍ봄엔 위대하지만, 여름ㆍ가을엔 멍청한가 물으며, 노대통령의 전횡을 비판한다. (한국일보 97)

 

말이 되는 소리를 가지고 진정성을 주장하자. 대연정을 제의하는 노대통령의 진정성이 있다면, 4대 개혁입법에 목을 매었던 유시민의원과 천정배장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가 후퇴한다 말했던 이해찬 총리는 정치 모리배에 지나지 않는다 말이다. 대통령직을 걸고 내어 놓은 대연정 제의 딴에는 무슨 대단한 승부수라도 있는 것처럼 말한다. 지역구도해소와 선거구 개편이 제대로된 상관관계가 있을까? 나라 돌아가는 꼴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이를 돌파하기 위해 대책없이 한 건 벌려보자는 노대통령의 신경증적 행태을 드러내는 도박일 뿐이다.

 

탄핵 이후 노대통령은 국민의 지지기반을 등에 업고 여세를 몰아 성공적인 국정 운영 기회를 부여받은 셈이다. 하지만 대화를 통한 상생과 화해를 말한지 며칠만에 보수는 무조건 바꾸지 말자는 자들이라 상대방을 배척하고, 과거사 규명을 들고나오며 반대파 죽이기를 시작했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반대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곧 자신을 불신임하는 것이라는 식의 전횡적인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수천만 국민의 이해가 걸린 문제를 충분한 준비와 계획도 없이 충분한 국민적 합의도 없이 무모하게 추진한다. 결국 헌재의 판결로 수도 이전의 뜻은 좌절을 겪어야 했다. 자신에게 보내준 국민의 신뢰와 기대를 성급함과 독선적인 국정운영으로 헌신짝처럼 걷어찬 사람은 다른 사람 아닌 바로 노대통령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열린우리당의 문제가 무엇일까?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중 상당수가 자력(自力)으로 국회의원이된 것이 아니다. 대통령 탄핵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국정의 미래에 대하여 불확실성 우려하는 국민들이 자신들의 정파적 당리 당략적 이해(利害)를 바탕으로 노대통령을 탄핵한 것에 대하여, 기존의 국회의원을 파면시키는 선거를 했다. 덕분에 열린 우리당 의원은 그야말로 국회의원 자리를 거저 주은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생각하면 17대 총선의 승리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노대통령의 놀라운 승부사적 자질과 선지자적 혜안(?)에 의하여 이룩된 것이라는 여권 내의 노대통려에 대한 평가로 인하여, 노무현 우상화 노름이 여권에서 일어난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민주화 운동을 한 386 세대의 국회의원들이 노무현을 선지자로 부활 예수처럼 떠받들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몇 달전 청와대에서 대미관계에서 고슴도치론이 나올 때 알아봤었다. 고슴도치론은 북한이 주장하는 대미전략이다. 몇 년 전부터 미국을 대하는 북한의 위상은 <고슴도치>에서 <전갈>로 진화(進化)했다.

 

며칠씩 굶은 <고슴도치>도 밟으면 바늘 같은 가시로 찌른다. 그리고 한번 찔리면 가시는 빠지지 않는다. 동물은 발이 썩으면 죽기 마련인데 북조선이라는 <고슴도치>의 강철가시에 찔리면 아파서 곤두박질을 치며 죽게 된다. <전갈>도 마찬가지다. <전갈>은 죽음에 이르는 독침을 가지고 있다.” 김정일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통하는 김명철 조미평화센터소장이 <김정일의 통일전략>이란 책자에서 밝히고 있는 주장이다.

 

평양 식의 어법으로 말하면 이제, <남조선 아이들>이 장군님의 통치방식을 흠모하여 선군영장이신 김정일 장군님의 대미전략과 영도원칙을 배워가는 중이라는 생각이다.

 

노대통령이 왜 부활 예수에 비교되고 선지자가 되는가? 주체사상이 말하는 <수령의 유일적 영도원칙>을 확립해 나아가려는 모양이다. 수령의 유일적 영도 밑에 전당(全黨), 전국, 전 인민이 한결같이 움직이는 강한 조직을 세워, 혁명 건설과 모든 문제를 풀어가는데 수령의 유일적 영도로 이끌어간다는 것이 김일성 수령님과 김정일 장군님의 영도예술이다. 수령--계급-대중을 하나의 전일 (全一)적 체계로 결합시켜 혁명과 건설을 다그치는 영도체계 - 이것이 수령 중심의 영도체계이다. 이러한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으니 전 국민이 노사모가 되어야 하고, 부활하신 예수 같은 노대통령이 선지자(先知者)가 되어야 한다.

 

 

 

3. 독재정치는 안 된다.

 

 

친노 성향의 정신과 전문의인 정혜신 또한 노대통령의 민심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비판한다. “역사 속에서 구현되는 민심을 읽는 것과 국민들의 감정적 이해관계에서 표출되는 민심을 다르게 읽을줄 알아야 한다.” 는 노대통령의 발언에 문제를 제기하며, 국민에 대한 과감한 거역을 표방하며 민심을 재정의하는 듯한 대통령 노대통령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노대통령의 생각 민심을 잘 알고 있다는 인식은 자신의 논리를 관철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지 진짜 민심을 알고 있다는 느낌은 아니다. 민심을 정확하게 읽는 일과 진정성은 별개다. 소신과 배짱을 굽히지 않아 대통령까지 되었지만 그런 개인적 성공경험이 어떤 경우에도 적용되는 만능의 법칙일 수는 없다. 노대통령의 자기인식은 대통령이 되기 전 정치인 노무현의 선구자적 모습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지만 지금 국민들의 눈에 비친 노대통령은 선구자가 아닌 계몽군주에 가깝다. 특정사안과 관련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더 많은 고민을 한 대통령의 눈에는 자신과 현격한 견해 차를 보이는 국민들의 반응이 어리석은 감정적 대응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의 무의식은 언제나 옳다> 말하며 노대통령의 독선을 비판한다.

 

한 개인이 수 많은 사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신을 지켜 대통령이 된 것은 개인의 문제이다. 성공적으로 대통령이 된 것과, 대통령의 직무로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자신이 생각이 옳다는 신념으로 이를 실천하고 관철시키려는 노력이 개인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지만,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써의 성공은 자신의 신념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동의없이 성공할 수 없다. 대통령은 국민의 동의와 이해를 구하며 국정을 이끌어 가야할 직분이기 때문이다.

 

유시민 의원은 노대통령에 대한 그야말로 맹목적 충성을 보이며, 대통령은 지역주의를 ''암적 존재''로 진단했다. 국민은 왕이라면 신하인 대통령은 전문의이다. 전문의가 CT, MRI 찍고 정밀진단해 암을 도려내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은 지금 건강하다면서 동의서를 써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돈벌이 목적으로 의사가 멀쩡한 사람 잡으려는 게 아니지 않나.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면서도, 진실된 전문의의 진단은 정확할 것이고, 이를 믿고 따르자고 호소했다. 노대통령 말씀 앞에서는 주의, 주장도 의견도 다 사라지는 없는 유시민 의원이다.

 

소신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노대통령의 신도(信徒)인 유시민 의원에 대해, 명민한 정혜신씨는 유머와 함께 허점투성이의 유시민의원 문제점 정확히 비판한다. <노 대통령에 대한 어법을 흉내내 먼저 밝혀두건대, 나 유시민 좋다.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좋다. 하지만 연정론과 관련된 최근 유시민의 말과 행동은 별로 안좋다. ‘지적 권위주의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서다. 어떻게 해서든 상대의 논리를 내 논리에 종속시켜야 속이 후련한 것처럼 보인다 >

 

정혜신씨가 비판하는 유시민의 지적 권위주의를 프랑스의 비평가 롤랑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어떤 특정한 사유방식이나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모든 행태을 파시즘으로 규정한다 말한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도덕은 한 사람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개성을 존중하는 일이다. 인간이 누군가에 의해 자기 목적에 맞도록 가치관이 맞춰 조작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노대통령이 우매한 민심을 거역하겠다는 독단적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나, 유시민의원의 국민이 무조건 이를 믿고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파시스트의 사고방식이다. 잔재주 믿고 어설픈 논리적 우월성을 강조하며, 자신이 믿는 신념이나 삶의 방식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이 곧 파시스트의 사고 방식이다. 독재정치는 독재자의 욕구에 국민의 의사가 종속되기를 강요받는 정치체제이다. 노대통령이 선지자이고 전문의이기에 국민이 노대통령의 진정성을 헤아려 이를 좇아야 한다는 논리 이것이 바로 독재정치이고 파시스트의 사고방식이다.

 

 

 

 

4. 독선(獨善)과 아집(我執)이란 미숙함의 다른 이름이다

 

 

독재정치는 독재자의 욕구에 국민의 의사이 종속되기를 강요받는 정치체제이다. 이러한 사회체제에서 자율적인 인간과 개성적인 인간은 배제된다. 인간은 각자의 권리와 독자적인 가치관을 지닌 독립적인 존재이다. 설득하는 것은 좋지만, 강요하거나 위협하고, 하물며 세뇌 따위는 결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사회관계에서 기본적 도덕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사회생활을 하며 그가 맺는 인간관계에서 그의 도덕적 가치관이 드러나게 된다. 상대방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일을, 또는 상대방이 바라지 않는 일을 자신이 옳다고 하여 상대방에게 요구하거나, 자신의 판단으로 상대방을 위한 일이라며 이를 강요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일은 <상대방에 좋은 일이다>하여 자신의 판단으로,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 요구하는 것은 무지와 무례에서 비롯된 독단이다. 자신의 생각으로 그것이 선행(善行)이라 할지라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부도덕하다.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인간 존중에 기초한 건전한 시민윤리이다.

 

노대통령에게 국민은 대통령 노릇 잘하라고 기대한다. 노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과 화합의 정치로 지역구도 타파해 국민화합을 이룩하고 신뢰 사회를 만드는 데에 반대하는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국민은 상생과 화해의 정치를 기대한다. 공정하고 투명하며, 예측 가능한 정치를 통하여 사회의 불확실성을 사라지고 사회안정을 통한 국가발전을 기대한다.

 

뜬금없이 대통령직을 내걸고 대연정을 제의하는 것이 공정과 투명의 정치이고 예측한 가능한 정치라고 강변할 터인가? 분열과 갈등, 증오와 불신이 정치를 누가 시작했는데, 국민이 지역구도를 타파하려는 대통령에게 국민이 전문의의 말을 불신하고 동의서 써주지 않는다니, 그야말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어처구니 없는 말이다. 불신과 증오로 인한 갈등과 대립의 병은 그 누구보다 노대통령의 마음 속에 있는 병이다. 정작 환자는 불신과 증오와 분노로 대립과 갈등을 사회분위기를 부추겨온 노대통령과 노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집권당 인사들이 환자이다.

 

병든 마음으로 스스로 전문의를 자처하며 멀쩡한 국민을 암환자라고 어리석고 모자란 국민이라 매도하는 꼴이다. 스스로 병든 마음과 잘못된 마음을 고쳐야 할 사람은 국민이 아니라 노대통령이다. 유시민의원을 말을 듣노라면 노대통령의 독선과 아집이라는 병은 집권당 내 창궐하고 있는 전염병이라는 생각이다.

 

나만이 옳고 내 생각만이 객관적이라 주장하는 것은 정신적 미숙의 한 징표이다. 성숙한 인격은 자신의 신념이나 생각의 한계와 범주를 이해하고, 자신이 선택하지 않는 삶이나 다른 사람이 어쩌면 자신보다 더 옳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열린 마음으로 타인의 반대 의견을 존중할 줄 안다. 그럼으로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학습하며 개선되는 삶을 살아간다. 지적 정직성은 자신의 주장의 개연성을 입증하는 데에 있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신의 주장을 포기한 조건을 이해하는 데에 있다.

 

스스로를 싸가지 없다고 말하며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유시민 의원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공직자의 언행이란 마땅히 품위를 지켜한다. 세상에 싸가지없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스스로 허물을 고치면 누구나 발전적이고 건설적인 삶이 가능하다. 잔 머리를 굴려 스스로를 싸가지없는 인간이란 표현을 쓰는 것을, 마치 자신의 잘못을 용기있게 인정하는 것으로 혼돈한다면 그야말로 교육학적으로 대책이 서지않는 인간으로 전락한다는 사실을 유념하길 기대한다. <나는 더 중요한 정치인 되고 싶지 않다> 외쳐댄다고 노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부각되는 것도, 자신의 독선과 아집이 정당화되는 것도 결코 아닐 것이다.

 

영국의 뛰어난 전략가(戰略家)이면 전쟁사가(戰爭史家)인 리델 하트(Liddell Hart)는 말했었다.

대담성은 거의 대부분 옳지만, 도박은 거의 대부분 틀리다.”

 

도박 좋아하시는 우리들의 노대통령께서 부디 무모함과 대담성을 혼돈하는 어리석음 반복하지 않길 기대한다.

 

박근혜대표는 생존전략이 있는가?

2004-08-20 15:20:23

 

건전한 삶이란 어떠한 것일까? 풍요로운 삶이 건전한 삶을 보장하는 것일까? 개인의 이기심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인간의 욕맘에 대한 충족을 최대한 확장하는 것으로 건전한 삶이 보장될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란 본질적으로 지나치게 추구하게 되어 있다. 인간이 갖는 욕망을 극대화하는 삶이란 필연적으로 인간성을 황폐화하고 삶의 질서를 파괴하게 된다. 건전한 삶이란 건전한 인생관에 기초한 삶의 원칙과 현실의 삶이 조화될 때 가능하다. 원칙만을 고집하는 삶이란, 자칫 경직되고 자신의 삶을 폐쇄적으로 만들며 구체적 현실에서의 삶의 개선을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원칙을 무시하고 삶을 상황의 논리에 의해서 이끌려지는 삶이 제대로 된 삶의 방향성을 지키지 못하고 건전한 삶의 질서에서 일탈하기 쉽기에 상황 논리에 의해 이끌려지는 삶은 결코 성공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원칙과 현실이 조화를 이룰 때, 우리들의 삶은 지속적인 삶의 활력을 가지고 성공적인 성취를 이룩한다. 성공적으로 삶의 목표를 성취하였을 때, 그 목표가 달성되었기에 우리는 새로운 삶을 모색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의도한 삶이 실패로 판가름 났을 때, 그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삶을 모색한다. 성공적으로 삶의 목적을 달성한 경우이든, 우리가 의도한 삶이 실패한 경우이든, 새로운 삶의 모색은, 우리가 걸어온 과거의 삶과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의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요구한다. 원칙에 충실한 삶이 현실의 문제를 개선하는 데에 실패하였을 때, 우리는 변화된 삶의 상황에 대응하는 삶의 원칙이 갖는 통어력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다. 마찬가지로 상황논리로 이끌려온 삶이 더 이상 삶의 상황을 개선하지 못할 때, 이러한 방식의 삶이 더 이상 가능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는 싯점에서, 그 상황을 극복할 새로운 삶의 원칙을 모색한다. 현실상황에 대한 이해를 결한 원칙만을 고집하는 삶이 성공적일 수 없는 것처럼, 원칙을 상실한 상황논리에 의존하여 이끌려온 삶이 지속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삶의 귀결이다.

 

최근 여야 간에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며 논의되고 있는 역사 바로 세우기는, 앞서말한 삶의 상황에 있어서의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의 긴장관계의 극명한 대립을 보여준다. 친일진상을 규명한다고 한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인권의 침해 등에 대한 진상규명을 말한다. 경제가 어려운데, 과거의 문제를 들추는 것이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상황의 논리를 주장한다. 지금 경제가 어려운 것이 단지 경제의 문제일까? 경제문제를 말하며 강성노조의 문제를 말한다. 현재 강성노조가 생긴 것은 결코 경제적 문제에서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강성노조가 생긴 배경에는 타락한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특혜적 성장을 누려온 부패한 기업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강성노조를 때려잡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사간의 대립과 갈등이 아닌 화해와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사회질서 국가 질서를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현 정권의 좌경화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현 정권의 좌경화에 대하여 국가정체성을 위협하고 어쩌면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여기는 우려는 충분히 설득력 있고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고, 의미 있는 일 수 있을까? 보수적인 기득권층은 자신들이 왜 현 정권에 정권을 넘겨주게 되었는가에 대한 반성은 없고, 패배주의적 절망감에 사로잡혀 현 정권에 매도만을 일삼고 있다. 최근 여야는 대화를 포기하고 서로 상대방을 죽여야 자신이 산다는 식의 극한 대립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느낌이다. 성원들 간의 의사소통이 좌절되는 사회는 사회의 안정성은 떨어지고 폭력이 조장된다. 이러한 사회 상황에서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는 일이란 결국엔 우리사회 전체를 파국으로 이끄는 것이 될 것이다.

 

여야가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파국적 국면을 타개하고, 새로운 국가의 도약을 위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왜 이와 같은 파국의 국면에 다다르게 되었는가에 반성적 성찰이 요구된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없이 문제적 상황에 대한 책임 떠넘기기는 우리의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 가게 될 것이다. 지금 절실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상황과 이러한 문제적 상황을 야기시킨 과거사에 반성적 성찰이다. 과거 역사에 대한 진상규명은 우리가 처한 문제적 상황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묻는 것이 아닌, 새로운 국가적 도약을 위하여 우리가 이해하고 청산하여야 할 잘못된 과거는 무엇이고, 그 과거의 과오를 뛰어넘어 새로운 역사를 건설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노력이 무엇인가를 모색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갈등의 근원적 이유는 성장위주의 삶을 지향하면서,

원칙을 상실하고, 정당성을 상실하였으며, 오직 경제적 성장과 상황논리만을 좇는, 건전한 삶에서 일탈된 삶을 살아왔고, 개인의 삶의 질서, 사회질서, 국가질서 모두 건전성을 상실하고 방향성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정당한 삶의 원칙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결과가 잘못된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사회라면 그 사회에서 정당한 삶의 방식은 그 설 땅을 잃게 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면, 도덕성과 인간의 존엄성은 필연적으로 훼손될 수 밖에 없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더 이상 기존의 방식으로 성장이 불가능하고, 각종 사회문제의 발생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해결 능력을 초과하는 데에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전에는 당연히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들이, 이제는 더 이상 점점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점차로 많아지게 된다. 경제적 관점으로는 경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경제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화해의 기반이 무너지고 불신과 반목이 증폭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우리 시대의 가장 절실한 문제는 성장과 민주화 과정을 겪으면서 파괴될 대로 파괴된 사회적 연대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지난 20세기는 사회적 연대성에 기초한 우리들 공동의 번영보다는, 외형적 힘을 키우는 데에 주력하였다. 외세로부터 해방을 위하여, 남북분단의 대결구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힘을 키워왔다. 그 결과 지금 세계 11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했고, 일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의 국민소득을 누리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그 힘을 키우기 위해, 인권이나, 도덕이니, 문화니, 복지는 뒷전으로 밀어놓았다. 경제 성장 위주의 국가 정책, 그리고 배금주의의 개인과 집단 간의 이기심 확산은 인간으로써의 품위를 손상하고, 도덕과 사회 기강을 어지럽게 되었고,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의 갈등을 증폭시킨 혼돈의 경제대국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개인과 기업의 이윤만을 추구하며 기업윤리도 개인 윤리도 땅에 떨어지고, 범죄의 급증과 수많은 사건 사고를 발생시켰다. 서로 힘을 모아 국가발전을 위하여 힘을 모아 노력했었던 과거는 잃어버리고,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사회적 책임과 국민 통합을 무시한 채, 지역간 이익집단간 노사간의 갈등은 첨예화 되며, 잘 되던 경제마저 침체의 늪에 빠졌고 지금 우리 경제는 발전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위기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경제성장위주의 시절을 경유하며, 우리는 과소비와 사치 향락을 일삼고, 근면한 삶의 태도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친일의 문제에 대하여, 일제강점기에, 일한 과거사를 들추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가를 말한다. 신기남의장의 예를 들며, 신의장의자녀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줄 수 있는 문제라 상황의 논리를 부각시킨다. 상황의 논리로 부정한 삶의 방식을 옹호하는 것을 용인한다면 정당한 삶의 질서는 바로 세울 수 없다. 밥을 굶었다 하여, 빵을 훔치는 것이 정당화되어서는 아니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 볼 대, 정당한 삶의 질서와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위해서 친일행위는 규명되어야 마땅하다. 민족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고, 새로운 미래의 비젼을 보다 구체적인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잘못된 과거의 문제에 대한 반성이 없이는 우리의 역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진전되지 아니한다. 친일청산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민족분단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국가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는 것이어야 한다 현재 설정한 우리의 국가적 과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그 잘잘못을 규명하는 차원에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기초로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일제시대의 과거사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적 국가질서를 확립하는 데에 있어 과거 개발독재로 인하여, 상실한 정당한 삶의 질서의 회복을 위하여, 경제성장위주의 개발독재가 가져온 부정적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 또한 마땅하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한다면, 정당한 삶은 그 설 땅을 잃는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가? 정당한 삶의 질서와 정의에 입각한 법질서로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적 화합의 기초를 다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오직 경제성장의 논리에 이끌려 살아왔다. 우리의 삶의 근본이 되는 뿌리가 뽑힌 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의 집권 기반의 강화를 위해 상황의 논리와 성장의 논리에 좇아, 편가르기를 하고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국론을 분열시켜온 잘못된 역사를 걸어왔다. 박정희 이 후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통령들은 자신들의 집권 기반 강화를 위해, 국가권력의 정당성의 기초를 서슴없이 파괴해 왔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의 불신과 갈등, 반목과 대립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이해하려는 과거사의 청산이 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러한 과거사청산을 통한 우리의 정체성의 확립과 우리의 비젼을 도출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역사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전진하지 못할 것이다.

 

역사는 현재를 위해서 쓰는 것이다. 현재의 과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과거 역사의 해석은 달라진다. 과거사의 잘못된 진상을 규명하려는 우리의 의도는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친일청산을 말할 때, 고증학적 역사학자라면, 친일에 관련된 모든 과거의 사실을 세밀하게 밝혀내려 할 것이다. 이 때, 친일 행적을 찾아내려 할 때, 누구의 어떤 친일행적을 찾아야 하려는 가에 대한 역사적 탐구의 접근 방법을 설정하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단편적인 역사적 사실들은 이러한 개념적 본질에 의하여 역사성을 부여 받는다. 친일청산을 하고자 할 때, 과거 사실에 평가하는 개념적 본질은, 우리가 추구해야할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그 이념적 기초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작금 벌어지는 현 정권이 규명하고자 하는 과거사에 대한 규명이 어떠한 관점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리라 이해하는 것은 쉽사리 예측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통치자가 그러하였듯이 현 정권은 자신들의 정권기반을 최대한 강화하는 입장에서, 현 기득권을 친일잔당과 미제국주의 앞잡이 노릇을 해 온 사대매국노, 반민족 반통일 세력으로 규정하고 과거사에 대한 규명은 진행되어질 것으로 보여 진다. 이러한 방식의 과거사의 청산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기득권층의 궤멸을 목적으로 시도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여권의 과거사 진상 규명 제의에 대해 19일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친북용공 관련내용까지 조사대상에 포함시켜 제대로 해보자는 역제의를 하면서 과거사 논란이 정치권 전체는 물론 우리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박 대표는 이날 상임운영위에서 과거사 때문에 현재와 미래가 어렵다는 대통령과 여당의 시각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얘기가 나온 마당에 중립적이고 검증된 학자에 의해 대폭적으로 과거사를 짚어보고 교훈으로 삼자고 말했다. 친북 용공(容共)516의 공과까지를 조사대상에 포함하되, 정치권과 편향성이 있는 인사를 배제한 검증된 학자 등 전문가 그룹에 맡기자는 역제의를 하면서 조건부 수용의사를 밝힌 것이다. (820일 중앙일보)

 

일전에 박근혜대표가 노대통령에게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했었다. 이에 대하여. 노 대통령은 <내 마음이 헌법정신>이라 답하였다. 불행하게도 노대통령에게 대한민국의 정체성 무엇이냐 질문하는 박근혜 대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보인다. 집권당의 과거사 청산의 이름으로 한나라당에 대한 공세에 대한 그녀의 반응이란, 철 지나고, 때 지나버린 반공 이데올르기를 들고 나오고 있다. 박정희의 딸이라는 자산 이외에 그녀에게 현 난국을 버티어 나아갈 철학도 국가 비젼도 국가 정체성에 대한 이해도 없어 보인다. 현 정권의 한나라당에 대한 공세 대하여, 박대표는 자신과 한나라당의 약점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잘 싸우는 사람은 자신의 약점에 방비하고, 상대방의 강점에 대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한 번 저지른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는다. 지난 탄핵 정국에서 보수 기득권층은 노대통령에게 철저하게 패배하였다. 이번 과거청산의 정국에서도 한나라당의 어설픈 대응을 바라보며, 우리의 앞에 주어진 현실에 대하여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이다.

 

박근혜대표와 한나라당이 노대통령에 대응하여 주장할 수 있는 국가정체성에 대하여, 국민이 납득할 만한 보다 우월한 국가관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자신들이 주장하는 국가관에 입각한 새로운 사회발전의 방향에 대한 제시가 없다면,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패배를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갈 곳 몰라 갈팡질팡하고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근본적인 문제-

지도층의 철학의 부재한 데에서 기인한다.

 

행정도시 수용-박근혜 대표의 패착(敗着)

2005-03-06 15:07:10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3일 행정중심 복합도시 특별법 국회통과 이후 당 내홍과 지도부의 책임론에 대해 당 대표가 당론을 지킨 게 책임져야 하는 일이냐고 반박하며 중요한 것은 당의 최고 의결 기구인 의총에서 충분한 토론을 거쳐 당론(행정도시 후속대책 여야 합의안 수용)이 결정됐다는 것이다. 대표는 당의 결정이 상식적, 합리적으로 이뤄지게 해야 하고, 일단 표결로 정해진 당론은 지키는 게 임무다. 어떤 결과가 나왔든 대표로서 지킬 의무는 지켰다.” 말했다.

 

이어 박근혜대표는 4"정치인으로서 지켜야 할 가치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며 "그것을 한 순간이라도 잊어버린다면 모두에게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뢰할 수 있는 사회와 선진국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얼마만큼 책임질 수 있는 약속을 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가 하는 것"이라며 `약속''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대표는 "우리 사회가 입만 열면 민주다 개혁이다 혁신이다 하면서 작은 약속하나 지키지 못하는 것은 기본 철학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고, 자전거도 못 타면서 오토바이를 탄다고 큰 소리 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자전거를 타는 것이 오토바이를 타는 것보다 쉬운지 어려운지는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박대표는 행정도시 여야 합의안을 수용한 한 것을 가지고 표결에 정해진 당론을 지키는 것이 대표로써 지킬 의무라 강조한다. 그리고 국회의 법률안 표결에서 그녀는 대표로써의 의무를 기표시간을 지키지 못하여 기권을 하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한다. 작은 약속하나 지키지 못하는 것은 성실성의 문제이지 거기에 왜 철학이 나오는 지 모를 일이다. 1 야당의 대표가 되어서 자신이 아는 소리 모르는 소리 분간 못하며 감당하지 못할 소리를 떠버리며 되지 않을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모습이 궁색하기 짝이 없다. 약속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철학을 말하며 대표의 의무를 강조하는 사람이, 정작 표결에서는 기권하며 속 들여다 보이는 기회주의적 처세를 감추려 한다.

 

국민에게 한 약속을 한 순간이라도 잊어버린다면 모두에게 신뢰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박대표의 말은 수도이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에 대하여 박근혜씨가 보여주었던 반응을 들추어보면 낯뜨겁기 짝이 없다.

 

지난 해, 1021일신행정수도건설에 대한 헌재의 결정에 대하여, 한나라당의 반응은 그야말로 환영일색이었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헌재의 판결을 환영하고 위대한 결정을 내린 재판관에게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여당도 이번 판결을 존중하고 따르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표 또한 법치주의가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가 위대함을 다시 느꼈다 말했었다.

 

한 순간이라도 국민에게 한 약속을 잊어버리면 모두에게 신뢰를 잃는다는 것을 말하는 박대표가, 국민에 대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다. 위헌 결정이 난 바로 다음날인 1022일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의 기조연설을 통해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과 관련, 한나라당이 지난 16대 국회에서 관련법 통과에 협력한데 대해 공식 사과했다. 박대표는 이날 "작년 말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데 대해 참으로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충청도민 여러분이 받았을 충격과 상실감에 대해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었다. 박대표의 말대로라면, 이 순간 이미 박대표는 적어도 충청도민에게는 모든 신뢰를 잃어버린 자신의 약속을 아무런 죄의식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실없는 정치인이 되고 말았다. 물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소중하고 중요하고 심지어 위대하다고 믿는 법치주의에 대한 그녀의 신념 때문이었다.

 

헌법재판소의 위대한(?) 결정에 대한 박대표의 경의에 찬 이해는 노대통령에 대한 강한 질책으로 이어진다. 박근혜는 25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헌법재판소의 수도이전 위헌결정과 관련, "누구도 헌재 결론의 법적효력에 대해 부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해 "승복하는 지, 안하는 지 모호하게 한 것은 헌재 결정에 무게를 안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이날 국회 본회의 직후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대통령이 사과하는 것이 마땅하다""사과 않고 버티겠다는 태도에 대해서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며 노대통령을 몰아세우며, "헌재 결정에 승복하지 않으면 나라가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채 다섯 달도 되지 않아 그가 찬양하였던 위대한 결정을 외면하고, 내팽개쳤던 국민과 약속을 다시 강조하며 헌재 결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헌정질서 파괴적 결단을 내린다. 그녀의 걱정대로라면 이제, 나라가 대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심란한 것은 오락가락하는 그녀 스스로 자신의 문제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법치주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이 박대표의 이다. 정치가가 무지하면 필연적인 귀결로 국민에게 를 짓게 된다.

 

헌재는 신행정수도에 관한 법률의 위헌 결정문에서 수도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수도는 국가권력의 핵심적 사항을 수행하는 국가기관들이 집중 소재하여 정치 행정의 중추적 기능을 실현하고 대외적으로 그 국가를 상징하는 곳을 의미한다. 나아가, 서울이 수도인 것은 국가 생활의 오랜 전통과 관습에서 확고하게 형성된 사실 또는 전제된 사실로서 모든 국민이 우리나라의 국가구성에 관한 강제력 있는 법규범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결정은 이어, ‘서울이 수도인 사실은 단순한 사실명제가 아니고 헌법적 효력을 가지는 불문의 헌법규범으로 승화된 것이며, 사실명제로부터 당위명제를 도출한 것이 아니라, 그 규범력에 대한 다툼이 없이 이어져 오면서 그 규범성이 사실명제 뒤에 전제되어 왔다 판시한다.

 

서울의 수도라는 관습헌법은 헌법개정 외에도, 관습헌법은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국민적 합의성을 상실함에 의하여 법적 효력을 상실할 수 있다. 관습헌법은 주권자인 국민에 의하여 유효한 헌법규범으로 인정되는 동안에만 존속하는 것이며, 관습헌법의 존속요건인 국민의 합의성이 소멸되면 관습헌법으로서의 법적 효력도 상실하게 된다. 이러한 관습헌법의 요건들은 그 성립의 요건일 뿐만 아니라 효력 유지의 요건이다. 나아가,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을 하위 법률의 형식으로 의식적으로 개정할 수 있는 여부에 대하여, 우리나라와 같은 성문의 경성헌법 체제에서 인정되는 관습헌법 사항은 하위 규범형식인 법률에 의하여 개정될 수 없고, 헌법 제10장 제128조 내지 제130조의 헌법개정절차를 요구한다고 판시한다.

 

박대표는, 이러한 헌재의 결정을 법치주의의 위대함으로 찬양했었다.

 

헌재의 결정에 대하여 관습헌법에 대하여 이의 제기한 여당과는 달리 한나라당은 한 목소리로 헌재의 결정에 대하여 환영일색으로 반응하였었다.

 

"헌재 결정에 승복하지 않으면 나라가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 노대통령을 강하게 질책하며, 헌재의 결정을 지지하였던 한나라당과 박대표가 이제 그 입장을 완전히 뒤집으며 당의 최고 의결 기구인 의총에서 충분한 토론을 거쳐 당론(행정도시 후속대책 여야 합의안 수용)이 결정됐다 말한다. 박대표와 한나라당 일부 인사들은 헌재 결정에 대한 당의 입장을 바꾸며, 이미 뒤집어 버렸던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며 기본 철학 운운하며 국민을 농락하고 있다. 자신의 행동과 말에 책임지지 못하고, 박대표는 자신이 위대한 업적이라 칭송하였던 헌재 결정의 내용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무지하여 용감한 것인지, 충청권의 표밭에 눈이 멀어 정치인으로서의 양식과 신념을 내팽개쳤는지는 모르겠다. 신념이나 철학 같은 것은 애당초부터 있어 보이지 않는 박대표이다.

 

자신 소신이나 신념이 없는 자는 눈 앞의 이익에 一喜一悲하여 줏대 없이 구차한 행동도 염치를 모르고 행한다. 분수 모르고 대권욕에 눈이 먼 박대표의 기회주의적 행태가 딱 이 꼴이 아닐까?

 

위대한(?) 헌재의 결정 따르면, 행정중심 복합도시 특별법 또한 당연히 위헌이다. 무엇보다 행정중심 복합도시 특별법은 헌재가 판시한 수도의 개념-국가기관들이 집중 소재하여 정치 행정의 중추적 기능을 하는-을 바꾸는 일이고, 나아가 수도가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의 존속요건인 국민적 合意性을 소멸시키기에 충분한 법률이다. 한나라당이 위대한 결정이라 칭송하였던 헌재의 결정에 대하여 박대표 스스로 "헌재 결정에 승복하지 않으면 나라가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리고 이제, 박대표 자신과 한나라당의 입장에서 동조하고 찬양하였던 헌재의 결정에 정면으로 반하는 위헌적 발상으로 국민과의 약속 운운하며 국민을 두 번 속이는 작태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 다수의 의사로 멋대로 법을 만들어져서는 아니된다.

 

법률은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법률은 정의에 기초한 공정하고 정당한 법이어야 하며, 그 법을 준수하여야 할 국민이 그 타당성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책임 있는 개인은 어떠한 규범이 자신의 행위를 제약하고 구속할 때, 그 규범이 내적으로 정당한 규범인가를 질문할 것이고, 실질적으로 타당한 규범인가를 묻게 된다. 법률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제약하는 것이라면 법률의 정당성과 타당성에 나아가 공정성에 대한 질문은 보다 절박한 것이 된다. 국민의 과반수 이상의 이해가 얽혀 있는 수도 이전에 관한 법률이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아니하고 제정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아가 법률의 제정은 반드시 헌법률과 헌법정신에 부합되게 이루어져야 한다. 지난 40여년 독재정치를 거쳐오며 국민적 합의나 헌법을 무시하고 법률이 권력자 마음대로 만들어져 왔고, 그 결과 우리 사회가 고비용 저효율의 거덜난 국가시스템이 되어버린 것이 국가발전에 최대의 장애요인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행정중심 복합도시 특별법은, 수도 이전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반하여, 여야 의원들의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수도를 두 조각을 내어도 괜찮다는 지극히 무책임하고 무모한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번에 여야가 다시 머리를 맞대고 짜낸 편법의 아이디어가 분할된 수도복합도시기능을 누더기식으로 조직(組織), 전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상천외한 기형적 수도건설안이다.

 

무지하며 무능한 정치인은 부도덕한 정치인보다 오리려 국민과 국가에 훨씬 해악할 수 있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동정하거나, 박정희 딸이라 좋게 보아줄 일이 결코 아니다. 지금 국가의 재정적자 규모가 200조원 가량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행정도시는 다음 대선이 치루어지는 2007년 착공하여 2030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추진되어야 하는 건국이래 가장 대규모의 국책사업이다. 지금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을 지닌 대한민국이고 2050년에는 세계 최고의 고령화 사회로 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앞으로 우리사회가 자칫 고비용 저효율의 사회로 전락할 가능성을 우려해야 할 싯점에서 비용소모적 대규모 국책사업을 벌린다는 것이 무모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행정도시 이전에 소용될 비용 조달에 대한 구체적 방안도 없이, 행정도시 건설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이러한 대규모 국책사업을 벌린다는 것 자체가 여권 386세대가 벌려놓은 넌센스로 여겨진다. 20여년 소요될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할 마스터플랜 같은 것은 아예 없는 실정이다.

 

행정도시 건설이, 장장 154대에 걸쳐 2조원을 투자하고 중도 하차하게 된 새만금사업처럼 되지 말란 법은 그 어디에도 없다.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창비)를 펴낸 명지대 김석철 학장은 "행정도시와 새만금 문제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난제라는 점에서 서로 닮은 꼴"이라고 지적하며 "결국 좌절할 수밖에 없는 행정도시 건설 계획은 국가 균형발전에 장애가 될 뿐만 아니라 충청권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갈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만약 정권이 바뀌어 법령이 폐지된다면 행정수도는 어디로 갈 것인가?

 

수도이전 위헌판결 이후 운동권 출신 인사의 한 기고문의 일부분이다.

 

돌파하지 말고 우회하라. 위기에 몰린 적은 더욱 완강하다. 하지만 시간은 진보의 편이다. 철저히 룰을 지키고 국민적 동의를 획득해나가면서 한꺼번에 장군을 부르려 하지 말고 눈앞의 졸병부터 먼저 내 편을 만들어나가라. 행정수도 이전계획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무조건 승복하라. 그리고 그 깨끗한 승복의 대가로 현재 난관에 봉착해 있는 이른바 4대개혁 입법을 먼저 관철하라.

 

행여나 행정수도 이전으로 기득권층의 기반을 붕괴시키겠다는 발상은 이제 포기하라. 대신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더 큰 전략적 목표를 축으로 사실상 행정수도 이전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는 방안은 적지 않다. ‘천도를 선언하지 않고도 천도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우리는 이 정권이 어떤 경천동지의 업적을 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 정권 이후의 앞날이 예측 가능한 것이 되게끔만 제발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딛어주기 바란다.

 

(20041027일 제532호 한겨레21 김명인/ <황해문화> 주간)

 

 

박대표의 행정도시 특별법에 대한 합의안의 수용은 마치 위의 기고문에서 말한 내용을 글자 그대로 충직하게 협조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박 대표가 여권의 행정도시 특별법에 손을 들어 주고 있는 것은 대권욕에 빠져 어처구니 없이 두어버린 패착이다. 박대표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으로 여겨진다. 나아가 야당 대표 노릇조차 온전히 감당하기 조차 벅찬 그녀의 무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충청표를 가져와야만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유혹에 눈과 귀가 닫혀 기형적으로 찢어진 수도 건설에 편승하여 구차하게 표를 구걸하는 꼴이다. 결단코 어리석지만 않은 국민은 박대표와 한나라당이 왔다갔다하며 보여준 속보이는 기회주의적 행태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이미 배신을 경험했던 충청표는 더 열린우리당 쪽으로 뭉칠 것이며, 한나라당에 기대를 걸었던 보수우파세력과 충청권을 제외한 타 지역의 표심도 줏대 없이 갈팡질팡하는 한나라당으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충청표를 위해선 야당의 정책이고 원칙이고 다 팽개치는 박대표와 한나라당의 무소신,무원칙의 맹목적인 권력욕이 개탄스럽기 짝이 없을 뿐이다.

친일예찬을 규탄하며....

2005-03-07 17:09:21

 

 

한승조씨의 친일예찬은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다. 일제강점시대에 대해 러시아에 먹히지 않은 것이 불행 중 다행이고, 탈산업사회, 세계화 시대에서는 친일행위가 애국애족행위로 평가받을 세상이 온다는 정신나간 헛소리를 한다. 일제하에서 우리민족이 핍박받고 수탈 당하며 살아온 세월을 축복이라고 말하는 한씨 같은 반국가적 반민족적 망언을 멋대로 입에 담는 자에게,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고 되묻고 싶다.

 

분단의 아픔을 안고 아직도 온전한 독립을 하지 못하였지만,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을 딛고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수많은 애국지사와 순국 선열의 고귀한 피를 흘렸다. 인간이 되어서 나라와 겨레에 보탬이 되지는 못할지언정, 나라와 겨레를 위한 숭고한 뜻으로 목숨마저 초개와 같이 버린 가신 님들의 숭고한 뜻을, 비열하고 너절한 지식으로 멋대로 폄척(貶斥)한다. 우리의 역사를 정략적 당파적 이해에 얽혀 왜곡하고 국민적 자존심을 능멸하는 짓을 서슴없이 하는 자가 한승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어줍잖은 얄팍한 지식으로 국가와 민족을 욕보이는 파렴치한 망언을 다른 곳 아닌 일본의 잡지에 기고하고 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한씨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더러운 만행을 변명하고 합리화하기에 급급하다. 파렴치한 양심의 한승조와 같은 인간에게, 국가와 민족과 국민적 자존심을 능멸한 大罪가 있는데 죄의식조차 없다.

 

한 세기 동안이나 우리는 치욕의 역사를 살아야 했다.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국권을 상실하고 식민인으로 전락해야 했다. 日人들이 우리 땅에서 물러갔지만 우리는 우리 힘으로 조국을 되찾지 못했다. 조국은 2차대전 승전국의 전리품이 되어 두동강이 나고 말았다. 조국해방전쟁이라는 김일성의 성급하고 무모한 결정으로 인하여 동족상잔의 엄청난 비극을 감내해야 했다. 결과적으로는 동서대립의 전후구도에서 동서진영 간의 세력다툼의 대리전을 우리민족이 피를 흘리면서 치러내야 했던 것이다. 수백만의 동포가 희생되었고 지금도 천만 이산가족이 단장의 세월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치욕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식민지인의 잔재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자기창조적으로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 왔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것이 곧 일제의 식민지수탈에 협조하는 것이 되었던 시절을 살았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보다 세상을 거부하고 냉소적으로 비판만을 일삼는 사람이 보다 윤리적으로 평가 받던 불행한 시대를 살아 온 것이다. 식민지인의 삶에 있어 그들을 위한 삶을 강요 받았을 뿐 <나와 우리>를 위한 삶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수 십년 간 군사독재 치하의 삶을 살아오면서 개인의 자발성이나 창의성이 마땅히 존중되는 인간다운 생활을 거의 짓밟히면서 살아야 했었다. 오직 독재자의 결정에 순종하고 총화단결을 강요 받는 상황에서 자주적이고 건전함 삶을 지속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 개인의 사회적 책임이 단지 독재자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인 상황에서 개인의 자발성이나 사회적 책임을 기대할 수 없다. 먹고 사는 것이 그리고 살아남는 것이 0순위인 세월을 살면서, 약자에게는 멋대로 횡포를 자행하고, 강자에게는 빌붙어 굴종하는 삶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부끄러운 한 세기를 살아온 것이다. 이제, 이러한 역사는 마감되어야 한다.

 

나는 우리민족에게 분단의 을 심어준 제국주의자들을 혐오하는 민족주의자이며, 사회주의이든 파시즘이든 전체주의를 혐오하는 자유주의자이다. 나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나라사랑과 겨레사랑의 소중함을 힘주어 말하고 싶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른는 사람은 남을 사랑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내 나라 내 민족을 사랑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 다음에 인류애와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것이 올바른 국가관, 민족관, 세계관이라 나는 믿는다.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충실할 때, 보편적 인간성이 실현된다. 이것이 내가 민족적 세계주의와 세계적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이유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보수인사들 사이에, 민족주의적 사고가 세계화에 반하는 배타적인 것이고 심지어는 민족주의는 친북이고 빨갱이라는 등식이 많은 사람에 퍼져있는 현실을 우려한다. 이러한 생각이 만연하게 된 배경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가 주로 의존한 史觀이 배타적인 국수적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에 의한 사적유물론이었음과 무관치 않다. 하지만 한씨와 같은 쓰레기 같은 자들이, 부끄러운 과거사를 반성하기는 커녕 자신들의 기득권의 보호에 연연하여 혹세무민하는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즈음의 우리의 세태가 좌파와 우파의 대립과 갈등이 증폭되는 가운데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한씨의 발언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는 것은 국민화합과 국가 발전을 위해 심히 우려스럽다.

 

한씨와 마찬가지로 보수세력 중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젊은이들 세대를 배타적 민족주의로 반일 반미 감정을 우려한다. 나아가 젊은이들을 친북세력으로 매도하려 한다. 나는 이러한 경직된 보수세력의 왜곡되고 편협한 사고방식을 우려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부 몰지각한 기성세대의 그릇된 사고방식이 성장기의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청소년들에게 정말로 심각하게 해악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친일하고, 친미하며, 독재자들에게 힘있는 자들에게 줄 서고 빌붙어 눈치보며 살아온 기성세대들이다. 반면 젊은 세대들은 강압적 권위를 싫어하고 자유롭고 자기 주장이 강하다. 미국을 싫어하고 북한을 좋아하는 대학생들이 좌파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자유롭고 남의 눈치보는 것 싫어하고 자기 주장이 강하다. 마르크시즘이나 좌파이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빨갱이는 나쁘다는 식의 무지몽매함이 한씨와 같은 이러한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상주의적으로 여겨지기 쉬운 좌파이념이란 정의와 소외계층에 대한 동정, 위대한 행위에 대한 충동을 고무시킬 줄 모르지만 상당히 금욕주의적이고 소위 말하는 보통 사람의 정서와는 잘 맞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요즈음 포스트386세대가 좌파의 불온(?) 사상에 물들 염려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이 좋은가 미국이 좋은가 질문하면 북한이 좋다고 대답할 젊은이들 중 거의 대다수가, 북한에 가서 살래 미국에 가서 살래라 질문한다면 미국에 가서 산다고 대답할 것이다. 젊은이가 반항적이고 도전적인 것은 얼마든지 바람직 할 수 있다. 기존의 체제에 도전적이고 기성 세대의 사고방식에 도전적인 것이 무슨 흠이 있겠는가? 독재정권 하에서 4지선다형 정답 고르기를 잘하고 순응적인 인간만이 출세하는 사회로부터 건전하고 창의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제멋대로 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때론 버릇없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자기 주장이 강하고 반항적이고 도전적인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이 우리사회의 역동성을 증거하는 것이라 믿는다.

 

인간은 자신이 스스로 자신이기를 바라는 것으로부터 주체성을 확립해 나아간다. 우리가 우리이기를 바라고 대한민국이 자주국가임을 바라는 것, 분단의 아픔을 겪고 살아온 우리가 하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 어떠한 잘못이 있겠는가?

 

일제식민지와 독재정치의 강압적 시절을 살아오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자긍심을 느끼는 대한국민의 삶을 살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이러한 부끄럽고 어두운 과거의 역사는 청산되지 못했다. 부끄러운 식민지의 역사는 청산되지 않았고, 어쩌면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우리의 역사는 친일파가 득세한 역사였고, 해방 이 후, 친일파들은 친미정권으로 재빠른 변신을 꾀하였다. 올해로 광복 60년을 맞이하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외세의존적이며, 자주적이고 독립적이지 못하며, 온 국민이 기꺼이 몸 바쳐 헌신할 수 있는 국가정통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다.

 

좌파정권이라 말해지는 현 정권의 과거사 청산에는 구체적인 성과나 실천에서는 여러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분명히 우리가 역사적 도약을 이룩하기 위하여 잘못된 과거의 역사를 바로 잡아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이행되어야 할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1. 모든 사회의 질서는 일부 성원들에 의한 타 성원의 강압에 기초한다.

 

2. 모든 사회는 언제나 갈등을 내포하고 있고, 갈등 또한 편재적이다.

 

3. 통합에 실패한 사회의 모든 요소는 사회변동을 유발한다.

 

4.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의 기득권이란 정당한 노력의 대가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친일과 친미행위의 그리고 권력자에 기생하는 특혜적 지원의 소산으로 이룩된 것이고, 이러한 기득권의 왜곡된 편중으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확립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불평등이 국가권력의정당성 나아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의 확립을 저해왔기에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잡는 것은 국가발전의 전제가 된다. 건전한 국가의 정통성의 확립은 국가발전의 초석이 되어야 한다.

 

5. 지난 17년 간 민주화를 통하여, 이러한 왜곡과 편재는 부분적으로 해소되었다고 하지만,

개혁의 주체 노력 또한 당파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현 정권의 과거사 청산이란 사회부조리를 있게 한 문제적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억압연관을 해체하려는 노력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란 건강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형성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과제임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현 정권이 새로운 국가질서나 미래에 대한 비젼의 제시 없이 기득권 세력의 기득권을 빼앗으려 할 뿐, 파괴적 노력이외에 건설적 노력을 찾아볼 수 없다는 데에 기인한다. 새로운 국가의 비젼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우리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고 국민화해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통합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이유이다.

 

현실은 현실로 인정하고 과거는 과거대로 인정하자는 것이, 이념이나 원칙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저열한 우리 사회 보수집단 보수인사들의 주장이다. 한승조의 말처럼 잘난 사람은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다. 한씨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죽이기 위하여 현 정권이 과거사 청산을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잘난 사람은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다. 오로지 오늘 해야 할 일, 풀어야 할 숙제 그리고 미래의 일을 생각하며 준비하는데 全力投球(전력투구) 한다. 한승조의 이러한 발언은 반성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학습할 줄 모르는 저열하고 몰지각한 기득권층의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현재의 박근혜씨의 정치적 위상은 과거에 집착하는 박정희 향수에서 비롯된 패배주의적이며 퇴행적 포퓰리즘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표에게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비젼이 있기나 한 것인가? 박정희 향수라는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 아닌, 10분 분량의 말할 내용의 정치적 신념조차 없는 박근혜 대표의 지지세력이다.

 

현재의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정당한 삶의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국가질서의 건설을 위하여 과거의 우리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며, 우리의 미래는 현재의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상황의 논리로 부정한 삶의 방식을 옹호하는 것을 용인한다면 정당한 삶의 질서는 바로 세울 수 없다. 밥을 굶었다 하여, 빵을 훔치는 것이 정당화되어서는 아니 된다. 상황의 논리를 들어 친일행위를 미화한다면, 국권을 상실한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변명한다면 누가 목숨을 걸고 우리 자신의 삶과 조국의 미래를 지키려 한단 말인가?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 볼 때, 정당한 삶의 질서와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위해서 친일행위는 규명되어야 하고 지탄받아 마땅하다. 민족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고, 새로운 미래의 비젼을 보다 구체적인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잘못된 과거의 문제에 대한 반성이 없이는 우리의 역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진전되지 아니한다. 과거사청산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민족분단의 모순을 극복하고 통일 조국을 모색하기 위한 방법으로, 5천년 문화민족의 자랑스러운 민족 정통성과 국가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는 것으로, 나아가 새로운 국가와 민족의 도약을 계기로 삼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과거사의 청산은 보복이나 처벌이 아닌, 새로운 국가 비젼을 열어가는 쪽으로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 설정한 우리의 국가적 과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그 잘잘못을 규명하는 차원에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기초로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과거사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가?

민주주의적 국가질서를 확립하는 데에 있어, 과거 개발독재로 인하여 상실한 정당한 삶의 질서의 회복을 위하여, 경제성장위주의 개발독재가 가져온 부정적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 또한 마땅하다. 정당한 삶의 질서와 정의에 입각한 법질서로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적 화합의 기초를 다져 새로운 국가질서를 확립하여야 한다. 우리에게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대립과 반목을 해소하고 그야말로 화해와 협력으로 국민적 통합을 이룩해야 할 때이다.

 

21세기를 준비하는 올바른 역사의식은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역사는 현재를 위해서 쓰는 것이다. 현재의 과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과거 역사의 해석은 달라진다. 죽어 있는 과거에 생명을 불어 넣고 미래로 나아갈 길을 찾아주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이다. 그리고 역사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이 史觀이다. 올바른 사관은 우리를 밝은 미래로 인도하고, 잘못된 사관은 자칫 역사에 올가미를 씌우고 우리를 어두운 미래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역사란 현실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미래란 건전하고 정의에 기초한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고, 이러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에 있어 삐뚜러진 과거사를 바로잡지 아니하고 새로운 역사적 도약을 기약하기 어렵다.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반성할 때 성장한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삶을 모색하는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뒤돌아 보며 반성할 줄 안다. 우리는 외세 의존적인 과거사와 독재정치로 얼룩진 잘못된 과거사를 반성하는 토대 위에 자주적이고 독립된 자랑스러운 조국을 건설하려는 새로운 미래로의 전망을 찾아야 한다 믿는다. 참되고 바르게 사는 삶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고 상호 존중하에 화해하며 협력하는 삶의 가치를 우리 모두가 공유하게 될 때, 편견이나 배타적 독선이 아닌 합리성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칙이 될 때, 우리는 새로운 역사적 도약을 맞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꾸어 나아갈 새로운 사회는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민족적 자긍심을 드높이고, 평화와 도덕을 존중하는 歷史觀에 기초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믿는다. 우리의 자존심이 소중하기에 우리의 경쟁력을 키우고, 인간성의 회복과 도덕성을 기초로 인류애를 구현해야 한다. 가장 우리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신념에 기초하는, 민족적 세계주의요 세계적 민족주의를 이 땅에 구현하여야 한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

개혁의 최우선 과제

2004-06-21 10:04:14

 

최근 행정수도 이전의 문제를 바라보며, 느끼는 것은 우리사회의 위기가 정말 심각하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사회가 일어나는 문제보다 이를 감당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점차로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수도권이전 문제를 놓고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상황이 또 다시 국론을 분열시키는 계기로 되어가는 불안감을 지워버릴 수 없습니다.

 

건국이래 최대의 役事가 될 수 있는 이러한 사안에 대해서 도대체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국정운영원리가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자기 사는 지역의 땅값이 오른다는 이유로 천도를 찬성합니다. 그 타당성 검토가 충분한 고려 없이 졸속으로 법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구체적 타당성을 검토가 되지 아니한 사안을 가지고, 국민투표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온전한 대책과 일관된 정책 없이 집권층의 자의적 판단으로 고집되고 집행되고 있습니다. 대통령 재신임부터 탄핵정국 그리고 총선, 수도권 이전의 문제까지 모든 문제의 접근 방식은 개인과 집단의 이해와 이기심에 기초한 필요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습니다.

 

개인의 삶의 방식이든 권력의 행사방식이든 더 이상 합리적이고 원칙적인 문제해결 방식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문제 해결의 근본적인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일을 벌리려 하는 집권당과 그 문제점을 당리당략의 차원에서 딴지를 거는 집단이 있을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여론이나 국민의 의사가 지금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생각일 것입니다. 정부의 정책의 시행에 대하여 그 잘잘못 판단할 능력이 국민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이 정책을 결정할 능력은 없습니다. 다수결에 의하여, 어떠한 국가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발상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어떠한 정책은 국가나 전문가 집단에 의하여 충분히 연구되고 검토된 후, 그리하여 그 문제점과 효과 등이 일반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만한 대립적이거나, 또는 다른 몇 개의 정책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국민의 판단을 구하는 것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정말 시급히 해결하여야할 개혁의 최우선 과제는 정부도 정당도 국민도 너나 할 것 없이 아무도 모른 채, 대책없이 허동대고 있는 것이 위기의 현실에서 국가질서 사회질서 그리고 개인의 삶의 질서를 하나씩 둘씩 찾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는 국가의 기강을 바로 잡는 것이며, 국가의 운영의 원칙과 삶의 원칙을 하나 둘씩 바로 세우고, 국가의 질서와 삶의 질서를 가다듬는 일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일거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흐트러진 삶의 질서를 바로잡아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회안정과 국가질서를 확립하지 못하고 진행되는 그 어떠한 사업도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난 17년 민주화 운동은 한결같이 실패해왔습니다. 철학이 없고 민주적 사회질서를 바로 잡을 능력이 없었기에, 모든 대통령들은 새로운 일거리 벌리고 사업 벌리며, 정부 기구를 팽창하는 데 몰두해왔습니다. 수도권 이전 같이 준비도 없이 거대한 국책사업이 어이없이 벌어지는 상황은 노통이 개인적인 잘못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가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된 것이고, 그것은 제대로 된 민주화 개혁을 이해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이같이 혼란스러운 국가질서를 바로 잡는 것이 개혁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국가가 통치자 한 사람의 지도력에 의존하는 것으로부터 탈피하여 합리적인 지배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라 확신합니다. <합리적 지배>란 근대국가의 특징을 이루는, 법률에 의한 지배를 말합니다. 모든 국가권력의 행사는 법률에 의해 제재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法治主義根本理念입니다.

 

보편적 진리과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정당한 법에 의하여 사회통합을 달성하게 된다면 망국적인 지역감정이나 패거리 정치의 폐단, 계층 간의 갈등 등은 저절로 불식될 것입니다. 이러한 성취를 바탕으로 우리는 진정 세계화된 의식과 삶의 토양을 다져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사회는 보다 공정하고 활력있는 사회로 탈바꿈하게 될 것입니다.

 

현대사회는, 그리고 오늘의 우리사회는 한 개인의 영도적 결단이나 영웅적 지도력만으로 이끌어 나갈 수 없습니다. 합리적 이성과 정당한 법에 기초한 지배질서의 구축은 독재정치를 청산하고 실질적 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한 시대적, 역사적 최우선 과제임을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국가의 질서, 국민 통합을 위한 국법질서의 확립해야 하는데 있어서의

최우선 과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국가 기강을 바로 잡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국가기강의 근본은 무엇보다 형벌에 공정성을 확립하는 데에 있습니다.

 

법의 적용이 한 삶의 인생을 바꾸기도 하고 심지어는 생사를 결정하는 것이 형벌입니다. 형벌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못하는 사회에서, 국민주권을 말하고, 정의를 말하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을 아무리 외쳐본 들 그것은 대답이 없는공허한 메아리로 그치고 말 것입니다.

 

조선 5백년사에 가장 위대한 인물 중의 하나인 삼봉 정도전

일찌기, 국가의 본질을 <규범적 강제질서>로 이해한 탁월한 사상가이고 정치가이며 혁명가입니다. 서양에서 18~20세기에 걸쳐 이룩한, 근대법치국가의 이념을 무려 4~5백년 앞서 정립하고, 그러한 자신의 思想에 기초하여 朝鮮의 초석을 다진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는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에게 올린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형법이 한번 흔들리면, 난동을 금지하는 도구가 먼저 훼손되는 것입니다.

(난동을 억제하는) 힘이 없어 먼저 화를 입게 되고, 나아가

사람들의 마음이 편치 못하니, 난동이 그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대저, 사람이 하는 일이 공의에 맞지 아니하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사사로운 정에 이끌리게 될 것입니다

 

刑法一搖 禁亂之具先毁 力未得而禍先至 心未安而亂不正矣

大抵人之所爲 不合於公議 則必有合於私情

 

三峯 鄭道傳三峯集: 恭讓王에 올리는 중에서

 

 

 

죄는 벌해야 합니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해도 죄는 벌해야 마땅합니다. 그래야만 정의로운 사회와 정의로운 국가라 할 것입니다. 범죄가 발생하면 정의사회는 훼손됩니다. 정의사회를 복원하기 위하여 죄는 벌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고, 그러기에 모든 인간은 범죄에 대하여 고발할 권리를 갖습니다. 나아가 범죄자 또한 이성이 있는 사람으로 존중되고,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아갈 권리와 건전한 삶을 살 권리에 기초하여자신의 죄에 대하여 처벌할 권리를 갖는다 할 것입니다.

 

헤겔(G.W.F. Hegel)은 그의 <법철학>에서

범죄자 자신의 권리로서의 형벌(Punishment as a Right)을 말하며

범죄자는 理性者로 존중되고, 형벌은 범죄자 자신의 권리로서 그의 행위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범죄자 자신을 위해서도 죄는 벌해야 합니다. 훼손된 정의사회를 위하여 죄는 반드시 벌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刑事司法正義가 바로 섭니다.

 

범죄에 대해, 백 중의 하나 정도는 판사가 은전을 베풀어도 괜찮다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형을 선고받았던 범죄자가 아주 영향력있는 변호인을 선임하거나, 수명의 변호인을 선임해서 항소심에서 벌금형으로 풀려날 수 있는 현실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한 전직 법무장관은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범죄행위가 비슷하다 할지라도 양형이 다르게 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거예요. 또 어떤 의미에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습니다.똑같은 절도를 저질렀다 해도 아버지가 없고 어머니는 매일 파출부로 일을 나간다면 부모있는 부자집 아들보다 재범할 위험성이 많지 않겠습니까. 그러다보면 가난한 집 자식은 소년원에 가고 부잣집 아들은 풀려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계적으로 양형을 평등하게 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有錢無罪, 無錢有罪!

이것이 우리나라 법조인들의 상식이고 법률문화의 현주소입니다. 이는 형사사법정의에 대한 몰이해를 유감없이 발휘한 발언이라 할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온전한 형사사법정의를 염려하는 법조인은 없는 것같습니다.

 

바른 刑罰이란 범죄에 상응하는 형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범죄자와 다른 범죄자와의 관계에서 그 양자의 책임에 비례하여 처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刑事司法正義입니다. 훼손된 정의를 위하여 죄를 벌하여야 하는 것이 刑事司法平均的正義라면, 범죄자 간의 책임에 비례하여 공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것은 刑事司法配分的正義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刑事司法에서 平均的正義配分的正義 모두를 온전하게 구현해야 비로소 정의로운 국가사회의 초석을 다졌다 할 것입니다.

 

형사사법정의가 온전하게 구현되어 있고 준법정신이 보편화된 사회라면, 위의 전직 법무장관의 발언은, 형사정책 운영 상 충분히 논의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국가권력이나 국민 모두 형편없는 준법정신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러한 발언은 刑事司法正義本末顚倒시킬 수도 있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 할 것입니다.

 

을 바로 세운다는 차원에서나, 국민화합을 위해서도 무엇보다 형벌을 엄정하고 공정하게 집행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正義法的安定性, 合目的性을 추구하는 刑法理念意義,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습니다. 형벌은 범죄로부터 정의로운 국가나 사회를 보호하는 수단입니다. 형벌은 공정하고 정의롭게 행해져야 합니다. 동시에 형벌은 어떤 법률의 보호법익을 구현하는 수단입니다. 이러한 형법의 이념을 온전히 구현하고 발전시켜 나아감으로써, 刑事司法正義, 나아가 正義國家, 社會를 건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위기

2004-11-21 11:44:59

 

1. 정말 위기인가?

 

도처에서 사람들은 우리사회의 위기를 말한다. 최근 수도이전에 대한 헌재판결을 수용하지 못하고, 국회의원이 헌재를 사법구데타란 격한 말로 비판한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행정부가 의회를 수족 삼아 사법부를 격하하는 것이며,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가 다 진창 속으로 추락하고 있다 말하며,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의 둥지인데 둥지 자체가 썩어나가고 있다면서 위기적 국가현실을 개탄한다.

 

또 어떤 이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각계각층의 여론의 비판을 거론하며, 지금 우리가 처한 국가적 위기 현실에 대하여 반지성적 이성의 위기를 말한다. 386세대는 감성적 반미주의와 반엘리트주의 정서에 호소함으로써 정권 창출에 성공했다고 한다. 현정부의 개혁에 대하여 일방적 독선주의로 상대를 부도덕한 존재로 보고, 현실보다는 이상에, 오늘의 삶보다는 어제의 유무죄에, 이성적 판단보다는 도덕적 원리주의에 집착하기 때문에 국론은 분열되고 사회적 통합을 이루지 못한다 비판한다. 이들은 개혁. 평등. 동포애 등 추상적 명분을 앞세운 극단적 이기주의와 독선으로 이성적 대화의 가능성을 봉쇄하기 때문에 국정은 분열증세를 보이고 사회 분위기는 피폐하고 각박해졌다 말하며 이 시대의 사회적 불안 요인을 지성의 위기로 말하고 있다.

 

대다수 보수기득권층 인사들은, 386세대가 기득권층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논점의 핵심과 전략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집권당의 386세대는 무책임하게 일단은 구질서를 때려부수고, 기득권을 최대한 빼앗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구 시대적 색깔론으로 자신들을 매도하는 것은 부당하다 말한다. 현 정권은 결코 사회주의 정권이 아니다. 극우 세력이 말하는 김정일에게 나라를 바치려 한다는 비난은 부당하다. 하지만 지금 이루어지는 기득권층의 잘못된 과거를 개혁하는 관점은 명백히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시행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최대한 확장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회주의의 관점과 계급혁명의 관점에서 개혁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현 정권의 개혁이 사회주의 국가를 추구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현 정권의 개혁은 미래에 대한 비젼을 제시하지 못한다. 현 정권의 개혁은 오직 빼앗기 위한 그리고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확대하려는 개혁일 뿐이다. 현 정권이 추구하는 경제정책이 사회주의적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여전히 관치경제의 잔재를 남겨둔 채 시장경제정책을 추구한다. 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와 과거사의 청산과 언론개혁이 건전한 자유민주주의 체제 건설을 위한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지금 진행되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과거사의 청산, 언론 개혁 등은 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을 극복하는 계급혁명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방법이 기득권층을 때려부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개혁이, 현 정권 자신들이 서 있는 입지를 스스로 붕괴시킬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북한의 대남전략에 휘말려 대한민국의 존립기반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유민주주의를 말하고 시장경제를 하겠다 말하며, 사회주의 혁명방식의 개혁을 추진하는 모순된 현실이, 국론을 분열 시키고 국가의 정체성과 안보를 위협하며 우리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보다 근본적 이유라는 생각이다.

 

노무현 정권은 철학이 없다. 오직 권력욕만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현 정권을 빨갱이로 매도하는 것은 부당하다. 위기에 처한 국가의 현실은 의 이분법적 흑백논리로 상대방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주장만의 선이라고 고집하는 독단적 편견으로 갈등을 심화시키며 우리 사회를 위기로 몰아간다는 생각이다. 원칙과 합리성, 절차적 타당성을 결여한 현 정권의 잘못된 개혁이 우리 사회를 갈갈이 찢고 사회의 위기를 고조시키며, 우리 모두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 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2. 집권당의 386세대 개혁 마인드

 

386세대는 우리 사회의 본질을 신식민지국가 독점자본주의 체제로 파악하고 배우며 성장하여 왔다. 해방 이 후, 미국은 남한을 강점한 다음 자기들의 식민지 지배에 더 유리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남한의 사회 경제적 관계를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재편성한다. 매판자본을 키우는데 제1차적 의의를 부여하고, 남한을 미국의 잉여상품처리의 중계자, 미국의 자본 침투의 안내자, 자원 약탈과 미국 군수품의 현지조달자의 역할을 맡길 예속 자본을 키우는 데, 1차적 의의를 부여하였다. 미국은 한국에서 매판자본의 육성에 사활적 이해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매판 자본의 육성에 골몰하였다. 19459월부터 1960년 초에 이르기까지, 응당 국민의 소유가 되어 국민의 자주적 생활의 물질적 담보로 이용되어야 할, 일제 소유재산을 적산불하라는 명목 하에 개인자본과 투기업자에게 물려주고, 미국의 원조물자의 구입과 판매권을 독점하여, 폭리를 얻게 하는 방법으로 미국에 예속적인 자본가의 기반을 닦아 주었다. 미국에 의한 매판자본의 육성의 수단방법은 가장 파렴치하고 교활한 미국의 본성을 집중적으로 반영하였다.

 

후진국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경제적 예속정책은 신식민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이다. 2차 대전 이후 농업국으로부터 공업국으로 성공적으로 진입한 유일한 예가 한국이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싱가포르, 홍콩은 도시국가이다. 대만은 중국의 일개 으로 인정된다. 한국만이 유일하게 국가경제로 성공한 예이다. 핵심기술은 대외종속적이지만, 중화학공업이 성공하였고, 일정하게 생산재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고, 자동차, 조선, 철강 기계금속 산업이 발달해 왔다. 한국경제는 범세계적인 하나의 모범사례였다. 동남아시아 나라들은 이러한 한국경제모델을 따르려 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한국의 경제를 파탄 내는 것이, 초국적(超國的) 금융자본에 의해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세계전략을 실현하기 위하여 유리하다 판단하고 IMF환란을 일으킨다. 개방화,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세계화 등으로 요약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초국적 자본에 의한 세계지배 전략이다. 초국적 자본에 있어, 금융부분의 규모는 실물경제 부문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 실물경제의 움직임이 금융경제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경제의 움직임이 실물경제를 지배하는 양상이 일어나고, 금융부분 안에서도 장기적인 투자보다는 단기적 투기적 부분이 압도적으로 크다. 결과적으로 투기적 금융자본에 의한 한국경제에 대한 지배력은 보다 강화되었고, 노동자의 삶의 질은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초국적(超國的) 자본은 한국자본주의의 패권적 분파(재벌,관료)를 싫어한다. 이들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해 미국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초국적 자본이 요구하는 시장개방과,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보장하라는 재벌 구조조정 등에 순응하지 않았으며, 나아가 한국의 재벌이 국제시장에서 초국적기업의 경쟁자로 등장하였다. IMF환란을 통하여 초국적 자본은 한국 경제개혁의 기수가 되었다.

 

19971124일 클린턴은 APEC 정상회담 차 벤쿠버로 떠나면서, 미국은 아시아에서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말하고, 미국 핵심목표는 한반도 평화라고 말하며, 한국전쟁 이 후 처음으로 항구적 평화를 위해 다음달 4자 회담에 희망을 갖는다 말했었다.

 

IMF환란을 통하여, 미국은 동아시아 경제에서 자신들의 지배력을 집중적으로 강화하려 했고, 이러한 경제적 질서의 개편은 군사적 질서의 재편과 긴밀히 맞물려 추진되었다.

 

현 정권의 개혁은 이러한 미국에 종속적인 한국 사회의 지배질서의 판을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농간에 놀아나는 사회가 아닌, 민중주체적인 그리고 반미 자주적인 사회를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남한 사회의 국가질서란 미국과 친일세력으로 이어진 친미세력을 위한 지배질서이다. 정부란 친미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위원회에 불과하다. 모든 법과 제도는 타락하고 부패한 지배층을 위하여 만들어졌고, 민중을 수탈하고 착취하기 위하여 만들어 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정통성이 없는 미국의 괴뢰 정부일 뿐이다. 모든 기득권층 반동적 관료들은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민중을 수탈하고 착취하였고, 민족적의 양심은 말살되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한다. 국가보안법은 동족을 적대시하는 반통일 악법이다. 국가보안법은 이러한 미제와 사대매국노의 악랄한 본성을 깨닫고 반미자주화 운동과 반파쇼 민주화 운동을 벌여온 애국적 인사를 탄압한 반인권적 악법이다. 민중해방을 위해 나아가 민중주체가 되는 민족통일을 가로 막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여, 반독재민주화 사회를 건설하고, 반미자주화를 통한 우리들(남과 북)끼리의 통일을 이룩하여야 한다.

 

과거사 청산을 주장한다. 과거사 진상을 밝혀 냄으로써, 사대매국노들의 죄상을 역사 앞에 낱낱이 밝혀야한다. 그들의 악랄한 본성을 깨닫고 증오하는 사상이 형성되게 하여야 한다. 과거사 청산은 사대매국노의 반민족적 죄상을 등을 인식시키는 것으로 출발하여, 제국주의의 침력적 약탈적 본성을 일깨움으로써, 낡은 사상과 인습을 뿌리뽑아 버리고 민중을 선진사상으로 무장시키고 각성시키는 사상개조 운동이 되어야한다. 과거사 청산을 통하여 식민지적 국가질서를 때려부수고, 민중이 주체되는 민주화된 새로운 국가건설에 앞장서야 한다.

 

언론 개혁을 주장한다. 2000년대의 한국 사회는 명백한 계급사회로 상층은 계급의식적투표를 하는데, 저소득층이나 저학력층에서 계급의식적투표를 하지 않고 있다. 언론개혁운동은 보수언론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대안언론의 성장을 통해 대안적 소통이 가능해져야 성공할 수 있다. 언론이라는 것은 다양한 사건과 사실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공론장에 연관되어 있다. 그 동안 이러한 공론장(公論場)은 조중동 등 거대 보수언론에 의해 독점되어 있었고 국민들은 이렇게 독점화 된 공론장에서 기득권층을 옹호하며 왜곡되게 해석된 정보를 그냥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살아왔다. 이것이 대중 의식화를 가로막는 반동적 수구언론에 대한 언론개혁의 필요성이며 당위성이다.

 

각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언제나 지배자의 관념이었다. 현대국가의 행정부는 전체 기득권층의 공동사무를 관장하는 하나의 위원회에 불과하다. 정치 권력이란, 계급이 다른 계급을 압제하기 위해 조직된 권력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민중은 점차로 모든 자본을 기득권층으로부터 박탈하여, 모든 생산수단을 국가의 수중에, 즉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민중의 수중에 집중시켜, 최대한 신속하게 전체 생산력을 증대시킬 목적으로 그의 정치적 지배권을 사용해아 한다. 이러한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수도이전은 새로운 역사의 개벽이며, 우리시대의 절대절명의 과제인 것이다. 헌법재판관의 구테타적 반역사적 책동이야 말로 민중과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할 반동적 범죄이다.

 

 

3.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위기

 

위와 같은 주체사상과 사회주의적 혁명의 사고방식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현 개혁 주도세력은, 국가의 총생산을 높이려는 경제정책은 필연적으로 노동자를 착취하고 노동자의 삶을 위태롭게 만든다 생각한다. 착취가 없고 노동자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이 민주화의 핵심적 요체라 강조한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운용이 미국에 대한 예속적 경제상황을 심화시켰고, 실업률의 증가와 비정규노동직의 양산 등 노동자의 지위를 현저하게 악화시켰음을 말한다. 그러하기에 현 개혁의 주체세력은 자신들에게 모든 권한이 최대한 집중되도록 하여 민중해방을 위하여 총매진하는 것만이 개혁의 성공적 지름길이라 믿는다. 쉽게 말하면 온 국민이 노사모 되어 반동적 친미예속적 기득권세력을 궤멸시키는 것이 우리 민족이, 민중이 해방되는 날이라 생각한다.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지 못하는 파괴라면 그것은 우리 모두를 공멸의 길로 이끈다는 것을 현 정권의 개혁 세력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국정의 운영은 대통령부터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법을 지키면서 실행되어야 마땅하다. 개혁은 새로운 사회질서를 확립해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개혁이 성공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개혁한다는 이름으로, 현 집권층은 이미 수 없는 특권에 집착한 반칙을 저질러 왔다. 특권과 반칙으로 형성된 기득권층을 부수기 위한다는 이름으로 또 다른 특권과 반칙을 허용한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우리의 염원은 결단코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구체적 비젼과 실천방안과 개혁에 대한 상세한 프로그램 없이, 기득권층 때려부수기로 일관하고 있는 그릇된 개혁은 사회위기 국면을 고조시킨다.

 

지금 우리 사회의 위기의 근원이 무엇인가?

기득권층의 반민족적 죄상과 민중 수탈적 죄상을 밝혀내어 계급투쟁의 사회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불신과 반목, 대립과 갈등,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사회 개혁을 추진하려는 데에 있다. 대립과 갈등이 고조되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사회 상황에서, 있는 자들의 투자는 당연히 기피된다. 실업이 늘고 소비가 위축되어 생산기반마저 무너진다. 경제가 망가지는 것은 필연적 귀결이다. 현 정권의 개혁 세력은 반대 세력과의 논의를 거부한다. 대화할 줄 모르고 합의할 줄 모르며 화해할 줄 모른다. 이러한 대결의 국면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자신들만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는 편견과 독선으로 대립과 갈등을 심화시키며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국민화합을 통해 결집된 국민적 역량을 도출하여 국가발전을 모색해야 할 대통령이, 당파적 입장에서의 권력의 확장에만 급급하여, 반목과 불신으로 증오심과 적개심을 조장하고 편가르기하며 국가를 갈갈이 찢고 있는 것이 참담한 우리의 현실이다.

 

문제적 기존의 모든 질서를 때려 부수면 우리에게 새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는가?

 

억압된 삶을 살아온 사람은 억압의 대상을 때려부술 때, 자신들이 권력을 잡기만하면 해방을 맞이한다 착각한다. <지금은 노예이지만, 앞으로는 독재자가 될 것>이라며 프로레타리아 독재를 역설하는 마르크스 식의 구호가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다. 현 집권층은 권력만능이란 주술에 빠진 듯 여겨진다. 그들에게 권력이 주어져 있고 확장을 도모하는 한, 그들은 결코 국가적 위기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다. 현 정권의 개혁은 새로운 사회질서에 대한 구체적 실천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기득권 빼앗기 식의 노대통령과 집권당의 386세대의 당파적 이해에서 진행되고 있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며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진행되는 잘못된 개혁이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건설하지 못하고 파괴할 줄만 아는 개혁이 그들 스스로를 나아가 우리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재앙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창조(創造)할 수 있는 사람은 파괴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파괴한다고 다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밝힌 386세대의 관점에서 개혁을 진행하면, 제일 좋아할 사람은 김정일이다. 현 정권의 개혁은 창조할 줄 모르고 제대로 일할 줄 모른 채, 빼앗고 파괴하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여겨진다. 일이란 시작과 끝이 있는 법이고 순서를 지켜 차근차근해야 성사된다. 노대통령이 일을 제대로 할 생각은 없고 오직, 자의적이고 전황적 권력의 확장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 우리 모두를 서글프게 만든다. 수도이전을 추진한 정황을 살펴보면 거대한 국책사업을 구체적인 일정도 청사진도 국민적 합의도 다 무시하고 번개불에 콩 구어 먹듯 해치우려 했다. 무모한 수도 이전의 추진과 좌절 그리고 변칙적 재추진에서 드러나는, 국가권력의 작동원리가 실종된 현실이 위기에 처한 국가적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그 사회가 지닌 문제 해결능력을 초과하면 그 사회는 명백히 위기의 국면에 처해 있다는 표식이다. 위기를 겪고 있는 사회는 모든 조직이 그 기능을 수행하는 데에 장애를 겪게 된다. 반대자를 과도하게 억압하고, 일을 무모하게 추진하지만 문제의 해결이 구조적으로 해결불능상태에 처해 있다. 개인이나 집단 간의 이해의 상충이나 갈등에 대하여 이견을 절충하고 합의를 도출하는데 실패한다. 이러한 사회통합장애로 인하여 국론은 분열되고 대립과 갈등은 첨예화 된다. 개인의 삶의 방식이든 권력의 행사방식이든 더 이상 합리적이고 원칙적인 문제해결이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명백한 국가 위기의 상황이다. 하지만 파괴만을 능사로 여기고 권력의 확장에만 급급한 집권층은 이를 외면하려 한다.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위기- 이것이 우리가 처한 위기의 심각성이다.

 

증오심과 적개심을 혁명의 동력으로 하였던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역사의 필연일 것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사랑하고 이해하고 양보할 때, 보다 생산적인 삶의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기득권층이 다 멸망하는 세상을 꿈꾸며, 고통 받고 소외된 자들은 거대한 형제애를 느끼며 새 세상을 기대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환상이 지닌 아이러니를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천국을 예고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말하는 천국이 자신들이 빠져들어가는 지옥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지상 낙원을 땅 위에 실현하고자 하였던 시도는 예외 없이 언제나 지옥을 만들고 마는데 그치고 말았다.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위기

2004-11-21 11:44:59

 

1. 정말 위기인가?

 

도처에서 사람들은 우리사회의 위기를 말한다. 최근 수도이전에 대한 헌재판결을 수용하지 못하고, 국회의원이 헌재를 사법구데타란 격한 말로 비판한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행정부가 의회를 수족 삼아 사법부를 격하하는 것이며,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가 다 진창 속으로 추락하고 있다 말하며,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의 둥지인데 둥지 자체가 썩어나가고 있다면서 위기적 국가현실을 개탄한다.

 

또 어떤 이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각계각층의 여론의 비판을 거론하며, 지금 우리가 처한 국가적 위기 현실에 대하여 반지성적 이성의 위기를 말한다. 386세대는 감성적 반미주의와 반엘리트주의 정서에 호소함으로써 정권 창출에 성공했다고 한다. 현정부의 개혁에 대하여 일방적 독선주의로 상대를 부도덕한 존재로 보고, 현실보다는 이상에, 오늘의 삶보다는 어제의 유무죄에, 이성적 판단보다는 도덕적 원리주의에 집착하기 때문에 국론은 분열되고 사회적 통합을 이루지 못한다 비판한다. 이들은 개혁. 평등. 동포애 등 추상적 명분을 앞세운 극단적 이기주의와 독선으로 이성적 대화의 가능성을 봉쇄하기 때문에 국정은 분열증세를 보이고 사회 분위기는 피폐하고 각박해졌다 말하며 이 시대의 사회적 불안 요인을 지성의 위기로 말하고 있다.

 

대다수 보수기득권층 인사들은, 386세대가 기득권층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논점의 핵심과 전략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집권당의 386세대는 무책임하게 일단은 구질서를 때려부수고, 기득권을 최대한 빼앗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구 시대적 색깔론으로 자신들을 매도하는 것은 부당하다 말한다. 현 정권은 결코 사회주의 정권이 아니다. 극우 세력이 말하는 김정일에게 나라를 바치려 한다는 비난은 부당하다. 하지만 지금 이루어지는 기득권층의 잘못된 과거를 개혁하는 관점은 명백히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시행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최대한 확장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회주의의 관점과 계급혁명의 관점에서 개혁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현 정권의 개혁이 사회주의 국가를 추구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현 정권의 개혁은 미래에 대한 비젼을 제시하지 못한다. 현 정권의 개혁은 오직 빼앗기 위한 그리고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확대하려는 개혁일 뿐이다. 현 정권이 추구하는 경제정책이 사회주의적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여전히 관치경제의 잔재를 남겨둔 채 시장경제정책을 추구한다. 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와 과거사의 청산과 언론개혁이 건전한 자유민주주의 체제 건설을 위한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지금 진행되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과거사의 청산, 언론 개혁 등은 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을 극복하는 계급혁명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방법이 기득권층을 때려부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개혁이, 현 정권 자신들이 서 있는 입지를 스스로 붕괴시킬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북한의 대남전략에 휘말려 대한민국의 존립기반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유민주주의를 말하고 시장경제를 하겠다 말하며, 사회주의 혁명방식의 개혁을 추진하는 모순된 현실이, 국론을 분열 시키고 국가의 정체성과 안보를 위협하며 우리를 파국으로 몰아가는 보다 근본적 이유라는 생각이다.

 

노무현 정권은 철학이 없다. 오직 권력욕만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현 정권을 빨갱이로 매도하는 것은 부당하다. 위기에 처한 국가의 현실은 의 이분법적 흑백논리로 상대방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주장만의 선이라고 고집하는 독단적 편견으로 갈등을 심화시키며 우리 사회를 위기로 몰아간다는 생각이다. 원칙과 합리성, 절차적 타당성을 결여한 현 정권의 잘못된 개혁이 우리 사회를 갈갈이 찢고 사회의 위기를 고조시키며, 우리 모두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 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2. 집권당의 386세대 개혁 마인드

 

386세대는 우리 사회의 본질을 신식민지국가 독점자본주의 체제로 파악하고 배우며 성장하여 왔다. 해방 이 후, 미국은 남한을 강점한 다음 자기들의 식민지 지배에 더 유리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남한의 사회 경제적 관계를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재편성한다. 매판자본을 키우는데 제1차적 의의를 부여하고, 남한을 미국의 잉여상품처리의 중계자, 미국의 자본 침투의 안내자, 자원 약탈과 미국 군수품의 현지조달자의 역할을 맡길 예속 자본을 키우는 데, 1차적 의의를 부여하였다. 미국은 한국에서 매판자본의 육성에 사활적 이해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매판 자본의 육성에 골몰하였다. 19459월부터 1960년 초에 이르기까지, 응당 국민의 소유가 되어 국민의 자주적 생활의 물질적 담보로 이용되어야 할, 일제 소유재산을 적산불하라는 명목 하에 개인자본과 투기업자에게 물려주고, 미국의 원조물자의 구입과 판매권을 독점하여, 폭리를 얻게 하는 방법으로 미국에 예속적인 자본가의 기반을 닦아 주었다. 미국에 의한 매판자본의 육성의 수단방법은 가장 파렴치하고 교활한 미국의 본성을 집중적으로 반영하였다.

 

후진국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경제적 예속정책은 신식민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이다. 2차 대전 이후 농업국으로부터 공업국으로 성공적으로 진입한 유일한 예가 한국이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싱가포르, 홍콩은 도시국가이다. 대만은 중국의 일개 으로 인정된다. 한국만이 유일하게 국가경제로 성공한 예이다. 핵심기술은 대외종속적이지만, 중화학공업이 성공하였고, 일정하게 생산재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고, 자동차, 조선, 철강 기계금속 산업이 발달해 왔다. 한국경제는 범세계적인 하나의 모범사례였다. 동남아시아 나라들은 이러한 한국경제모델을 따르려 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한국의 경제를 파탄 내는 것이, 초국적(超國的) 금융자본에 의해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세계전략을 실현하기 위하여 유리하다 판단하고 IMF환란을 일으킨다. 개방화,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세계화 등으로 요약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초국적 자본에 의한 세계지배 전략이다. 초국적 자본에 있어, 금융부분의 규모는 실물경제 부문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 실물경제의 움직임이 금융경제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경제의 움직임이 실물경제를 지배하는 양상이 일어나고, 금융부분 안에서도 장기적인 투자보다는 단기적 투기적 부분이 압도적으로 크다. 결과적으로 투기적 금융자본에 의한 한국경제에 대한 지배력은 보다 강화되었고, 노동자의 삶의 질은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초국적(超國的) 자본은 한국자본주의의 패권적 분파(재벌,관료)를 싫어한다. 이들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해 미국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초국적 자본이 요구하는 시장개방과,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보장하라는 재벌 구조조정 등에 순응하지 않았으며, 나아가 한국의 재벌이 국제시장에서 초국적기업의 경쟁자로 등장하였다. IMF환란을 통하여 초국적 자본은 한국 경제개혁의 기수가 되었다.

 

19971124일 클린턴은 APEC 정상회담 차 벤쿠버로 떠나면서, 미국은 아시아에서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말하고, 미국 핵심목표는 한반도 평화라고 말하며, 한국전쟁 이 후 처음으로 항구적 평화를 위해 다음달 4자 회담에 희망을 갖는다 말했었다.

 

IMF환란을 통하여, 미국은 동아시아 경제에서 자신들의 지배력을 집중적으로 강화하려 했고, 이러한 경제적 질서의 개편은 군사적 질서의 재편과 긴밀히 맞물려 추진되었다.

 

현 정권의 개혁은 이러한 미국에 종속적인 한국 사회의 지배질서의 판을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농간에 놀아나는 사회가 아닌, 민중주체적인 그리고 반미 자주적인 사회를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남한 사회의 국가질서란 미국과 친일세력으로 이어진 친미세력을 위한 지배질서이다. 정부란 친미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위원회에 불과하다. 모든 법과 제도는 타락하고 부패한 지배층을 위하여 만들어졌고, 민중을 수탈하고 착취하기 위하여 만들어 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정통성이 없는 미국의 괴뢰 정부일 뿐이다. 모든 기득권층 반동적 관료들은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민중을 수탈하고 착취하였고, 민족적의 양심은 말살되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한다. 국가보안법은 동족을 적대시하는 반통일 악법이다. 국가보안법은 이러한 미제와 사대매국노의 악랄한 본성을 깨닫고 반미자주화 운동과 반파쇼 민주화 운동을 벌여온 애국적 인사를 탄압한 반인권적 악법이다. 민중해방을 위해 나아가 민중주체가 되는 민족통일을 가로 막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여, 반독재민주화 사회를 건설하고, 반미자주화를 통한 우리들(남과 북)끼리의 통일을 이룩하여야 한다.

 

과거사 청산을 주장한다. 과거사 진상을 밝혀 냄으로써, 사대매국노들의 죄상을 역사 앞에 낱낱이 밝혀야한다. 그들의 악랄한 본성을 깨닫고 증오하는 사상이 형성되게 하여야 한다. 과거사 청산은 사대매국노의 반민족적 죄상을 등을 인식시키는 것으로 출발하여, 제국주의의 침력적 약탈적 본성을 일깨움으로써, 낡은 사상과 인습을 뿌리뽑아 버리고 민중을 선진사상으로 무장시키고 각성시키는 사상개조 운동이 되어야한다. 과거사 청산을 통하여 식민지적 국가질서를 때려부수고, 민중이 주체되는 민주화된 새로운 국가건설에 앞장서야 한다.

 

언론 개혁을 주장한다. 2000년대의 한국 사회는 명백한 계급사회로 상층은 계급의식적투표를 하는데, 저소득층이나 저학력층에서 계급의식적투표를 하지 않고 있다. 언론개혁운동은 보수언론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대안언론의 성장을 통해 대안적 소통이 가능해져야 성공할 수 있다. 언론이라는 것은 다양한 사건과 사실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공론장에 연관되어 있다. 그 동안 이러한 공론장(公論場)은 조중동 등 거대 보수언론에 의해 독점되어 있었고 국민들은 이렇게 독점화 된 공론장에서 기득권층을 옹호하며 왜곡되게 해석된 정보를 그냥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살아왔다. 이것이 대중 의식화를 가로막는 반동적 수구언론에 대한 언론개혁의 필요성이며 당위성이다.

 

각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언제나 지배자의 관념이었다. 현대국가의 행정부는 전체 기득권층의 공동사무를 관장하는 하나의 위원회에 불과하다. 정치 권력이란, 계급이 다른 계급을 압제하기 위해 조직된 권력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민중은 점차로 모든 자본을 기득권층으로부터 박탈하여, 모든 생산수단을 국가의 수중에, 즉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민중의 수중에 집중시켜, 최대한 신속하게 전체 생산력을 증대시킬 목적으로 그의 정치적 지배권을 사용해아 한다. 이러한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수도이전은 새로운 역사의 개벽이며, 우리시대의 절대절명의 과제인 것이다. 헌법재판관의 구테타적 반역사적 책동이야 말로 민중과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할 반동적 범죄이다.

 

 

3.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위기

 

위와 같은 주체사상과 사회주의적 혁명의 사고방식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현 개혁 주도세력은, 국가의 총생산을 높이려는 경제정책은 필연적으로 노동자를 착취하고 노동자의 삶을 위태롭게 만든다 생각한다. 착취가 없고 노동자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이 민주화의 핵심적 요체라 강조한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운용이 미국에 대한 예속적 경제상황을 심화시켰고, 실업률의 증가와 비정규노동직의 양산 등 노동자의 지위를 현저하게 악화시켰음을 말한다. 그러하기에 현 개혁의 주체세력은 자신들에게 모든 권한이 최대한 집중되도록 하여 민중해방을 위하여 총매진하는 것만이 개혁의 성공적 지름길이라 믿는다. 쉽게 말하면 온 국민이 노사모 되어 반동적 친미예속적 기득권세력을 궤멸시키는 것이 우리 민족이, 민중이 해방되는 날이라 생각한다.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지 못하는 파괴라면 그것은 우리 모두를 공멸의 길로 이끈다는 것을 현 정권의 개혁 세력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국정의 운영은 대통령부터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법을 지키면서 실행되어야 마땅하다. 개혁은 새로운 사회질서를 확립해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개혁이 성공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개혁한다는 이름으로, 현 집권층은 이미 수 없는 특권에 집착한 반칙을 저질러 왔다. 특권과 반칙으로 형성된 기득권층을 부수기 위한다는 이름으로 또 다른 특권과 반칙을 허용한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우리의 염원은 결단코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구체적 비젼과 실천방안과 개혁에 대한 상세한 프로그램 없이, 기득권층 때려부수기로 일관하고 있는 그릇된 개혁은 사회위기 국면을 고조시킨다.

 

지금 우리 사회의 위기의 근원이 무엇인가?

기득권층의 반민족적 죄상과 민중 수탈적 죄상을 밝혀내어 계급투쟁의 사회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불신과 반목, 대립과 갈등,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사회 개혁을 추진하려는 데에 있다. 대립과 갈등이 고조되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사회 상황에서, 있는 자들의 투자는 당연히 기피된다. 실업이 늘고 소비가 위축되어 생산기반마저 무너진다. 경제가 망가지는 것은 필연적 귀결이다. 현 정권의 개혁 세력은 반대 세력과의 논의를 거부한다. 대화할 줄 모르고 합의할 줄 모르며 화해할 줄 모른다. 이러한 대결의 국면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자신들만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는 편견과 독선으로 대립과 갈등을 심화시키며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국민화합을 통해 결집된 국민적 역량을 도출하여 국가발전을 모색해야 할 대통령이, 당파적 입장에서의 권력의 확장에만 급급하여, 반목과 불신으로 증오심과 적개심을 조장하고 편가르기하며 국가를 갈갈이 찢고 있는 것이 참담한 우리의 현실이다.

 

문제적 기존의 모든 질서를 때려 부수면 우리에게 새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는가?

 

억압된 삶을 살아온 사람은 억압의 대상을 때려부술 때, 자신들이 권력을 잡기만하면 해방을 맞이한다 착각한다. <지금은 노예이지만, 앞으로는 독재자가 될 것>이라며 프로레타리아 독재를 역설하는 마르크스 식의 구호가 설득력 있게 들릴 수 있다. 현 집권층은 권력만능이란 주술에 빠진 듯 여겨진다. 그들에게 권력이 주어져 있고 확장을 도모하는 한, 그들은 결코 국가적 위기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다. 현 정권의 개혁은 새로운 사회질서에 대한 구체적 실천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기득권 빼앗기 식의 노대통령과 집권당의 386세대의 당파적 이해에서 진행되고 있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며 증오심과 적개심으로 진행되는 잘못된 개혁이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건설하지 못하고 파괴할 줄만 아는 개혁이 그들 스스로를 나아가 우리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재앙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창조(創造)할 수 있는 사람은 파괴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파괴한다고 다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밝힌 386세대의 관점에서 개혁을 진행하면, 제일 좋아할 사람은 김정일이다. 현 정권의 개혁은 창조할 줄 모르고 제대로 일할 줄 모른 채, 빼앗고 파괴하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여겨진다. 일이란 시작과 끝이 있는 법이고 순서를 지켜 차근차근해야 성사된다. 노대통령이 일을 제대로 할 생각은 없고 오직, 자의적이고 전황적 권력의 확장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 우리 모두를 서글프게 만든다. 수도이전을 추진한 정황을 살펴보면 거대한 국책사업을 구체적인 일정도 청사진도 국민적 합의도 다 무시하고 번개불에 콩 구어 먹듯 해치우려 했다. 무모한 수도 이전의 추진과 좌절 그리고 변칙적 재추진에서 드러나는, 국가권력의 작동원리가 실종된 현실이 위기에 처한 국가적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그 사회가 지닌 문제 해결능력을 초과하면 그 사회는 명백히 위기의 국면에 처해 있다는 표식이다. 위기를 겪고 있는 사회는 모든 조직이 그 기능을 수행하는 데에 장애를 겪게 된다. 반대자를 과도하게 억압하고, 일을 무모하게 추진하지만 문제의 해결이 구조적으로 해결불능상태에 처해 있다. 개인이나 집단 간의 이해의 상충이나 갈등에 대하여 이견을 절충하고 합의를 도출하는데 실패한다. 이러한 사회통합장애로 인하여 국론은 분열되고 대립과 갈등은 첨예화 된다. 개인의 삶의 방식이든 권력의 행사방식이든 더 이상 합리적이고 원칙적인 문제해결이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명백한 국가 위기의 상황이다. 하지만 파괴만을 능사로 여기고 권력의 확장에만 급급한 집권층은 이를 외면하려 한다.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위기- 이것이 우리가 처한 위기의 심각성이다.

 

증오심과 적개심을 혁명의 동력으로 하였던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역사의 필연일 것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이 사랑하고 이해하고 양보할 때, 보다 생산적인 삶의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기득권층이 다 멸망하는 세상을 꿈꾸며, 고통 받고 소외된 자들은 거대한 형제애를 느끼며 새 세상을 기대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환상이 지닌 아이러니를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천국을 예고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말하는 천국이 자신들이 빠져들어가는 지옥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지상 낙원을 땅 위에 실현하고자 하였던 시도는 예외 없이 언제나 지옥을 만들고 마는데 그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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