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8-12 16:41:22
우리사회가 혁명적 변혁을 요구하거나, 영웅적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 사회라면, 우리의 삶의 현실이 합리적인 방법으로 그 해결책을 찾아낼 수 없다는 징표이다. 합리주의적 사고나 합리적 원칙으로 이끌려지는 삶이나 사회는, 우리의 삶의 범주를 그 합리적 원칙의 틀 속에 가두어 놓고 한정시키려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삶을 영위하는 우리에게 보다 개방적이고 협력하며, 때로는 예측 불가능 현실 삶에 대한 우리들의 통어력을 강화하도록 만든다. 합리적 사고와 합리적 원칙은 공동의 삶의 번영을 모색하는 우리의 삶의 조건을 보다 믿을 만한 것으로 만든다. 합리적 사고는, 단지 우리들 앞에 주어진 삶의 상황과 추세를 예측하고 그 결과를 헤아리기 위한 이기적 목적에서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이성의 법칙으로 이끌며, 보편적 인간성을 실현하도록 만든다.
우리의 선택에 의하여 민주주의 제도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바람에 의하여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게 된 것도 아니다. 우리의 힘이 아닌 미국의 힘을 빌어 식민지에서 독립을 했기에 민주주의를 받아들였고, IMF환란이 후,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환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세계화 개방화 민영화의 방향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질서를 요청받은 것이다.
지난 17년간 민주화 개혁은 분배 문제만을 신경을 쓴 나머지 성장하는 데 실패했다는 주장이 있다. 경제적 여유가 어느 정도 생기게 되면 정치적 민주화가 이룩된다 말해 왔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처한 경제적 위기의 상황은 정치민주화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진단한다. 지금 우리가 처한 경제위기의 현실이 단지 분배문제만을 중시한 결과에서 비롯된 것일까? 경제적 위기의 본질은 그처럼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분배구조도 악화되었다. 성장률도 떨어지고 각종 경기지표 또한 적신호가 켜진 상태이다.
경제체제의 위기란 우연히 발생된 것이 아니다. 기존의 경제운영 체제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점차로 증가하면서 위기의 국면이 발생하는 것이다. 노사간의 갈등이 회사와 노동자의 공동의 번영을 위한 진통이 아니라, 자본가들 착취로부터 노동자의 게급해방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의 경제체제 나아가 국가 체제가 붕괴되는 것은 필연적 귀결이 될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변동할 때, 그 사회가 갖는 자기 동일성은 불투명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의 불안정성은 그 사회가 발전해 나아가는 학습과정의 변동일 수 있고, 체제 해체과정을 경유하는 체제 붕괴과정일 수도 있다. 지금과 같은 위기의 경제상황에서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부가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우리 사회의 발전에 대한 비젼을 밝히는 것이다. 이 비젼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것은, 지금 변동을 겪고 있는 노사 문제 등으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의 경제현안들에 대하여, 이들 문제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문제해결의 원칙을 밝히는 구체적 비젼을 정부가 제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회를 그리고 경제를 시스템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시스템의 역할은 발생하는 각종 사회 경제 문제에 대한 제어 메카니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스템은 각종 경제문제를 해결하고 활동방향을 제시한다. 나아가 기존의 운영체제로 해결되지 못하는 변칙적이고 이례적인 상황의 허용범위를 결정한다. 경제질서나 시장질서는 이를 제어하는 규범적 구조 - 법질서를 전제로 한다. 그러기에 제대로 분화된 사회에서 정치, 행정시스템은 사회, 문화시스템과 경제시스템에 대하여 상위의 지위를 차지한다. 정치시스템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한 사회에서 경제시스템은 제대로 작동될 수 없다. 제도와 법률에 의해서 그 체제 내의 성원의 경제활동은 환경과 범주를 이해하고, 경영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온전한 경제시스템은 이를 운영하는 제도적 뒷받침 없이 작동 불가능하다.
국가의 발전은 두 가지 축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는 국가의 생산성 확대라는 측면과 다른 하나는 체제 자율성 강화를 통한 국가의 사회통합 능력의 신장이다. 사회통합능력은 사회성원의 합의에 기초한 정당한 법과 사실적으로 규범력을 갖는 타당한 법일 때 한하여 향상된다. 국가권력이 그리고 사회상황을 규율하는 법과 제도가 정당하지 못하다면 사회통합을 기약할 수 없다.
경제성장 위주의 국가관은 우리 현실에서 더 이상 실행 불가능한 낡은 국가관이라 주장한다. 성장률이 떨어지고 분배구조도 악화되고, 국제유가는 사상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 경기침체 물가가 오르는 스테그플레이션의 조짐이 보이는 것이 우리 경제의 현실이다. 나는 경제성장 위주의 국가관으로는 더 이상 대한민국호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우리가 처한 시대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를 개척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가에게 경제를 살리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결집된 국민적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역설하려는 것이다. 국가 기강과 법질서 확립 없이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한 국민 화합 없이 경제의 미래가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경제성장이 국가의 발전이고, 국가의 목적은 국부을 축적하는 것이라는 관점의 국가관은 이제 더 이상 쓸모 없는 낡은 패라다임의 국가관이다. 이러한 국가관은 국가 발전을 온전한 시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편향되고 제한된 시각에서만 이해하고 있다. 박정희 이후의 모든 대통령은 국가권력의 행사의 정당성이 왜 중요한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국가권력의 행사가 정당하여야 지속적인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국민경제를 살리는 길이 최우선 과제라고 믿고 이를 전횡적 독단으로 밀어부쳤던 것이다. 정당성을 갖지 못하는 정치가 지속될 수 없는 것은 필연적 귀결이다. 일시적으로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독재정치가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전횡적 독단으로 이끌어지는 사회가 지속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지난 17년 간 민주화의 결실이란 고비용 저효율로 거덜나버린 국가시스템과 난장판으로 망가져 어디에서부터 손을 댈지 모르게 대책 없이 망가진 국가 사회의 질서이다. 지배되지 않고 대통령으로부터 거리의 시위대에 이르기까지 깽판과 뗑깡으로 막가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라 믿는다. 국가질서와 국법질서의 확립 없이 이제 대한민국이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자유주의적 사회질서의 기초는 무엇보다 인간 간에 상호 존중, 신뢰, 건전한 시민의식를 전제로 하여 이룩된다. 확립된 법치국가 질서 준법정신이 전제되지 아니한다면, 세상은 그야말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의 약육강식의 난장판으로 전락되고 말 것이다. 법질서의 근본이 망가진 현실에서 신자유주의고 시장이고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다.
역사는 누적적으로 계승 발전되지 않는다.
나는 지난 한 세기 우리 사회의 주조를 이루어론 사적 유물론에 의한 역사결정론에 반대한다. 과거의 역사를 토대로 미래의 역사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역사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다. 나는 과거가 오늘의 우리에게 끼친 공헌을 찾아, 그 공을 우리의 미래를 계승 발전 시킨다는 역사적 관점에 대해 부정적이다.
흔히들 패라다임이란 표현을 많이 쓴다. 이 말은 1962년 시카고 대학의 과학사 교수인 토마스 쿤이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처음 사용한 말로 알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지금까지의 과학사의 발전이 누적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세계관에 기초한 패러다임의 혁명적 변화로 이룩되어 왔음을 보여주었다.
나는 사회가 새로운 발전을 위해서, 민주적 도약을 위해서, 그리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하여서도 국가의 목적이 경제발전에 있다는 박정희 식의 낡은 패라다임을 포기해야 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국가의 본질은 규범적 강제질서이고, 국가는 헌법정신을 구현하기 위하여 존립한다는 새로운 패라다임의 국가관을 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는 인식과 관점 그리고 과거사를 바라보는 평가의 의의를 다르게 한다. 사람들은 박정희를 경제성장을 이룩한 대통령으로 평가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평가방식을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여서는 우리의 국가의 미래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국가 권력의 정당한 행사가 전제되고, 정당한 권력의 행사와 정당한 삶의 질서가 확립되지 아니 하고는 우리의 미래가 없다고 역설하는 것이다.
건국 이 후의 모든 대통령이 독재자였고, 가장 타락한 권력이 대통령이었다. 권력의 부패의 정도는 평균적으로 권력의 크기에 비례했다. 나는 박정희 이후의 모든 대통령이 본색은 독재자 였다는 것을 강조한다. 대통령의 자의적 판단으로 기존의 법질서를 파괴하며 법을 만들 수 있는 권력이라면 명백한 독재권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박정희는 가장 타락한 독재자였고, 노무현 대통령 또한 문제가 심각해 보인다. 포퓰리즘을 등에 업고 노대통령이 전횡적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 상황 논리에 의해 전횡적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권력에 대해 결단코 용서하지 말자는 국민적 각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한다면 올바른 삶은 그 설 땅을 잃는다. 결과로 수단을 정당화하며 살아온 지난 40여 년의 우리들의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하여, 정당한 국가권력과 정당한 삶의 질서의 터전을 우리 사회에 마련하기 위해서 박정희의 유산은 이제, 떨쳐버리고 가자는 것이다.
경제 성장위주의 개발독재의 국가관과 민주주의 헌정질서에 입각한 국가관은 서로 다른 새로운 국가관과 인간관에 기초한다. 나의 관점에서는 국민이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버느냐는 식의 저열한 삶의 방식- 양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지양하고, 어떠한 방법과 태도로 올바른 삶을 살아가느냐가 평가되는 보다 진전된 삶의 질의 개선을 촉구하는 것이다. 나는 개인의 자발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 믿는다. 특정 정치적 지도자에 목을 매는 국민이 많은 나라라면 병든 사회이다.
박정희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전횡적 권력을 국가를 이끌어왔던 박정희의 향수는 버려야 한다. 박정희는 죽고 이미 역사 속에 사라진 인물이다. 그로부터 민주주의 사회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는 데, 배울 점이 무엇이 있는가? 당연히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의 앞 길을 개척하자고 말하는 것이다.
박정희의 리더쉽이란 양적인 관점에서 성공적이다. 그러나 국가 권력의 행사가 정당성의 관점에서 보면 박정희의 리더쉽이란 조잡하고 저열한 지배방식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는 박정희 한 개인에 대한 비판이 아닌 우리 모두가 처한 우리의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며, 이러한 반성적 성찰을 통하여, 새로운 우리들의 삶의 방식과 질서를 모색하는 것이다.
역사발전에서 유일하고 이상적이며 실용적인 원칙이란, 합리적 사고가 우리들에게 제공하는 원칙이라는 것을 믿는다. 진정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이 되기로 작정한다면, 합리적 사고에 기초한 이성적 삶의 질서를 찾아내고 만들어 갈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 새로운 역사적 도약을 이룩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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