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8-11 15:53:32

 

국가의 목적이 그리고 국가의 발전이 경제성장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박정희는 모자랐다.

경제 성장이 되면 민주화가 된다 말했었다. 민주화가 제대로 되었는가? 박정희 경제성장의 비결은 경제개발계획을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하여, 온 국민을 총화단결시키는 강압적 리더쉽으로 경제 성장을 이룩한 것이다. 전두환 때에도 경제는 눈부신 성장을 했다. 그러나 박정희와 전두환이 이룩한 경제성장이 제대로 된 국가의 성공적 발전이던가? 나는 개발독재는 실패작이라고 말하겠다. 박정희를 폄하하기 위해서인가?

 

내가 박정희를 비판하는 것은 박정희를 폄하하기 위함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질서를 모색하기 위함이다. 성공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업적에 대한 부정적 요소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언젠가 나는 내가 쓴 글에서 우리 시대를 지배해온 정신은 박정희의 경제성장제일주의의 국가관이라며, 박정희를 넘어서야 우리의 미래가 있다고 주장했었다.

 

박정희가 일단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기강을 확립하고, 철저하게 상명하복의 국가조직을 장악하였기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한국경제의 성공의 1등 공신은, 박정희와 관리 그리고 노동자에게 강요된 총화단결로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개인과 집단의 자신들의 이기심에 기초한 권리 주장만 높아졌지 사회적 책임의식은 실종되었고, 법질서 국가기강이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지역간 계층 간 세대 간의 갈등을 고조시키고, 국민들은 패거리 작당하여 정치인들의 농간에 놀아난 셈이다.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의식이 무엇일까? 특정 정당을 지지하고, 현 정권을 매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일까? 기강이 잡히지 않는 군대가 전투력이 있을 수 없다. 삶의 질서가 정돈되어 있지 않은 개인이 성공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기강이 확립되어 있지 않는 사회나 국가 또한 발전을 기약하기 어렵다.

 

이제까지 우리나라를 지배해 온 시대정신이란 박정희의 경제성장 제일주의이고,

이제 우리가 처한 현실을 경제성장만을 주장하여 성장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박정희의 잘못은 무엇인가? 박정희가 생각하는 국민의 총화단결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만 국가를 위한 충정이 진심이면 국민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 믿었던 것 같다. 돈만 벌면 민주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되었음이 지난 17년의 역사가 말해주는 것이다.

 

내가 박정희를 비판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나는 기존의 어느 정당이나 정치적 당파도 지지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가 경제 살리기라고 말을 한다. 여전히 대다수의 국민들은 국가가 경제의 주체이고, 국가의 존립 목적은 국민의 풍요로운 삶을 위하여,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에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경제현실은 아무리 성장을 외쳐봤자 성장이 가능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혹자는 지금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의 근본적인 이유는 투쟁적 노동행위, 반기업정서, 불필요한 정부규제라고 말하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란 단편적이고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정신이 온전한 투자자라면 대한민국에 투자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경제에 비젼이 없다는 것을 판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로 미루어 보면 결코 투자할 나라가 아니다. 전체 경제인구의 3분의 1400만이 신용불량자이다. 건전한 시장이 존립하려면, 개인 간의 계약과 약속이 존중되어야 하고, 경제 주체의 책임성과 신용이 전제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신용이 없는 국민이다. 게다가 대통령의 국가 정책에 대한 생각이 수시로 바뀌고,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인지, 자유민주주의를 하자는 것인지 헷갈리고 있다. 현 정권의 개혁이 민주주의 헌정질서와 자유주의적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개혁인지, 계급해방을 위한 사회주의 혁명인지도 헷갈린다. 외국인이 무책임하고 무질서하며 난장판인 나라에, 국가의 정체성과 방향성도 헷갈리는 나라에 무엇을 믿고 투자를 하겠는가?

 

투쟁적 노동행위가 발생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가?

이제껏 기업의 지배구조가 투명했느냐는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불공정하고 투명하지 못한 기업 경영의 배경에는, 범죄와 부정부패와 정치자금의 제공을 통한 특혜적 기업의 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기업이 망하여 수 천명의 노동자가 하루 아침에 거리에 나 앉아도 기업인은 망하지 않았었다. 기업의 운영방식과 정부의 기업활동에 대한 지원이나 규제가 불투명하게 이루어 졌고 그것은 부패한 권력과 특혜적 성장을 기대하는 타락한 기업 윤리가 공생 관계를 이루며 한국경제를 이끌어 왔던 것이다.

 

국가가 사익집단과 결탁한 신식민지 독점자본주의라는 좌파 운동권의 비판에 대하여 항변할 이유를 대지 못하게 되었고, 민주화 과정에서 국가나 경제주체 모두 민주주의에 입각한 자유민주의적 시장질서에 알맞은 국가 경영 방식과, 기업경영 방식을 만들어 내지 못했던 것이며, 그러하기에 자유주의적 시장질서에 대한 경제철학에 기초한 일관된 정책을 수립하지 못했다. 사안별 필요에 따라 진행된 개방화는 투기적 국제자본에 대한 국부의 유출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국내의 알짜 기업과 금융산업을 외국에 내어주게 되어, 이제 우리는 국가의 경제 주권을 위협 받는 상황에 이르게까지 된 것이다.

 

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완화는 10년 이상을 외쳐온 구호이다. 외국자본에 대하여 특혜적으로 규제완화를 해주며 국부가 털리는 데에도 계속해서, 규제완화를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업인들이 말하는 규제완화는 대한민국을 무정부 상태로 만들고 기업인 마음대로 기업 활동을 해달라고 주장하는 것인가?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이고 분배위주의 경제정책이고 할 것 없이, 그 어떠한 대책도 위기에 처한 돌파구를 찾을 수 없게 된 것이 암울한 우리 경제의 현실이다. 경제, 경제를 아무리 외쳐보았자 되살아날 경제가 아니다. 경제적 관점으로는 더 이상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일관된 주장이다.

 

경제성장 위주의 박정희의 국가관이 이미 쓸모 없는 것이고, 박정희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 그 이름을 아무리 외쳐본들 우리 경제의 돌파구를 찾을 수 없다. 나는 경제성장 위주의 국가관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국가발전은, 한 축은 국가 생산성의 향상이고 또 다른 축은 국가권력의 지배력 향상을 통한 국민 통합의 능력으로 결정된다. 박정희는 국민통합을, 정당성이 결여된 물리적 강제력으로 이룩했었다. 생산성 향상만이 국가발전의 목표였던 이러한 국가관이 박정희에서 비롯된 것이다.하지만 국민통합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서는 국가권력의 행사가 정당성을 획득해야하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가 처한 시대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를 개척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국가에게 경제를 살리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국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국가권력의 행사가 정당성에 기초하여야 하고,법의 권위를 세워 국가의기강 사회질서를 자로잡고, 이러한 질서를 바탕으로 결집된 국민적 역량을 모아야 한다는것을 역설하려는 것이다. 국가 기강과 법질서 확립 없이 나아가, 국민 화합없이 경제의 미래가 없다는 것이 한결 같은 나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박정희의 가장 큰 오류는 무엇인가.

국가 발전을 온전한 시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편향되고 제한된 시각에서만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국가권력의 행사의 정당성이 왜 중요한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국가권력의 행사가 정당하여야 지속적인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국민경제를 살리는 길이 최우선 과제라고 믿고 이를 전횡적 독단으로 밀어부쳐던 것이다. 정당성을 갖지 못하는 정치가 지속될 수 없는 것은 필연적 귀결이다. 일시적으로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독재정치가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전횡적 독단으로 이끌어지는 사회가 지속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라 믿는다.

 

자유주의적 사회질서의 기초는 무엇보다 인간 간에 상호 존중, 신뢰, 건전한 시민의식를 전제로 하여 이룩된다. 확립된 법치국가 질서 준법정신이 전제되지 아니한다면, 세상은 그야말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의 약육강식의 난장판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법질서의 근본이 망가진 현실에서 신자유주의고 시장이고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다.

 

역사는 누적적으로 계승 발전되지 않는다.

나는 지난 한 세기 우리 사회의 주조를 이루어론 사적 유물론에 의한 역사결정론에 반대한다. 과거의 역사를 토대로 미래의 역사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역사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다. 나는 과거가 오늘의 우리에게 끼친 공헌을 찾아, 그 공을 우리의 미래를 계승 발전 시킨다는 역사적 관점에 대해 부정적이다.

 

흔히들 패라다임이란 표현을 많이 쓴다. 이 말은 1962년 시카고 대학의 과학사 교수인 토마스 쿤이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처음 사용한 말로 알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지금까지의 과학사의 발전이 누적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세계관에 기초한 패러다임의 혁명적 변화로 이룩되어 왔음을 보여주었다.

 

나는 사회가 새로운 발전을 위해서, 민주적 도약을 위해서, 그리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하여서도 국가의 목적이 경제발전에 있다는 박정희 식의 낡은 패라다임을 포기해야 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국가의 본질은 규범적 강제질서이고, 국가는 헌법정신을 구현하기 위하여 존립한다는 새로운 패라다임의 국가관을 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는 인식과 관점 그리고 과거사를 바라보는 평가의 의의를 다르게 한다. 사람들은 박정희를 경제성장을 이룩한 대통령으로 평가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평가방식을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경제성장을 목표로하여서는 우리의 국가의 미래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국가 권력이 정당한 행사가 전제되고, 정당한 권력의 행사와 정당한 삶의 질서가 확립되지 아니 하고는 우리의 미래가 없다고 역설하는 것이다. 나는 박정희와 노무현을 똑 같은 관점에서 비판한다. 둘 다 헌법을 위반하고 법률의 제제를 무시하고 멋대로 권력을 휘두른다는 이유로 비판한다. 수도 이전의 문제에 대하여 반대하는 것은 자신의 대한 불신임이라 말하는 것은 국가 권력이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라 비판한다. 특정 언론을 목표로 하여, 언론 개혁을 말하고, 고비처 같은 것을 창설하여, 형사소송질서를 파괴하는 것을 비난한다. 이와 똑같은 관점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만들어 체육관 대통령 되고, 법관의 인사권 마저 장악한 박정희를 정치가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우리 헌정사에서 부끄러운 것이라 말하려는 것이다.

 

내가 박정희를 비판하는 관점이란 전횡적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이다.

이것이 지금의 싯점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포퓰리즘을 등에 업은 노대통령의 전횡적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 상황 논리에 의해 전횡적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권력에 대해 결단코 용서하지 말자는 국민적 각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한다면 올바른 삶은 그 설 땅을 잃는다. 결과로 수단을 정당화하며 살아온 지난 40여 년의 우리들의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하여, 정당한 국가권력과 정당한 삶의 질서의 터전을 우리 사회에 마련하기 위해서, 박정희의 유산은 이제 떨쳐버리고 가자는 것이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에 젖은 사람들은 대다수 자신의 주체성이 결여되어 있고, 자아의 확립이 약하며, 대체로 무비판적 서구 지향적 정서를 갖는다. 힘있는 자에 빌붙고 약한 자에게 함부로 대한다. 자신의 우월성으로 다른 사람의 약점을 밟으려 한다. 지금 박정희의 향수를 가지는 사람들의 공통적 성향은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삶의 방식을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에 강요하는 파시스트의 성향을 갖는다. 지배자에게 종속된 인간의 욕망은 지배자의 욕망에 종속된다. 당연한 귀결로 파시스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파시스트이다. 노사모가 파시즘에 젖어 있는 것과 똑같이 박정희를 추앙하는 사람 또한 파시즘의 사고에 젖어 있다.

 

이렇게 박정희를 비판하는 나의 의도가 무엇인가?

박정희는 죽고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인물이다. 그로부터 민주주의 사회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는 데 배울 점이 무엇이 있는가? 당연히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의 앞 길을 개척하자고 말하는 것이다.

 

경제 성장위주의 개발독재의 국가관과 민주주의 헌정질서에 입각한 국가관은 서로 다른 새로운 국가관과 인간관에 기초한다. 나의 관점에서는 국민이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버느냐는 식의 저열한 삶의 방식- 양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지양하고, 어떠한 방법과 태도로 올바른 삶을 살아가느냐로 평가하는 보다 진화된 삶의 질의 개선을 촉구하는 것이다. 나는 개인의 자발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 믿는다. 특정 정치적 지도자에 목을 매는 국민이 많은 나라라면 병든 사회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전 국민이 노사모 되는 것이 개혁이라고 떠드는 인간을 경멸한다. 똑같은 이유에서 그 밑천을 다 털어먹고 남은 것이 없어져 버린, 박정희를 잃어버린 영웅으로 추앙하는 미신 또한 경멸한다. 나는 전체주의를 거부하고, 개인 숭배에 의한 저질 전체주의 정치를 혐오한다.

 

박정희의 리더쉽이라 양적인 관점에서 성공적이다. 그러나 국가 권력의 행사가 정당성의 관점에서 보면 박정희의 리더쉽이란 조잡하고 저열한 지배방식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는 박정희 한 개인에 대한 비판이 아닌 우리 모두가 처한 우리의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며, 이러한 반성적 성찰을 통하여, 새로운 우리들의 삶의 방식과 질서를 모색하는 것이다.

 

19791026일 박정희는 죽었다.

노통이 부활했다고 사기를 친다고

덩달아 박정희의 부활을 외치는 모자란 인간들이 볼상 사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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