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의 역할과 야당의 대응
2004-08-24 14:36:27
노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참모들에게 "나는 세종이 되고 싶었는데 태종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보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훌륭한 정치 지도자의 3대 요건은 역사의식과 권력 장악 능력, 살림살이 솜씨"라며 경제 활성화와 역사 정리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소득 1만달러 시대의 분기점을 넘어선 지금 2만달러 선진시대에 대비한 역사 정리로 질적 업그레이드의 사회적 토대를 구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태종 이방원은 조선의 개국공신이며, 조선 초 왕권을 확립하고, 원대한 국기의 비젼을 가지고 제도 개혁을 통한 국가체제를 정비하여 5백년 왕조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세종조의 빛나는 업적을 이룰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어떤 인물에 대한 평가는 그가 어떠한 업적을 이룩하였나로 평가된다. 하지만 그러한 업적이 있기까지는 그 업적을 이룩하기 위한 남다르고 뛰어난 삶의 과정이 없었다면 그러한 업적을 이룩할 수 없다. 조선 초 왕권을 확립한 바탕 위에, 위대한 문화적 업적을 이룬 세종 조의 영광은 태종의 존재를 인정하지 아니하고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노대통령의, 자신이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새로운 삶의 질적 향상과 도약을 위하여 태종의 역할을 하겠다는 발언에 대하여, 잘못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질적으로 업그래이드 된 사회적 토대를 만들겠다는 것에 대하여, 태종의 업적을 제대로 이해하고 새로운 국가의 초석을 다지는 역할을 하겠다는 대통령으로써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면 백 번 찬성할 일이다.
하지만 노대통령이 말하는 훌륭한 정치지도자의 덕목만으로 태종과 같은 업적을 이룩할 수 없다. 노대통령에게는 유감스럽게도 질적으로 업그래이드된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젼이 없다. 그리고 질적으로 업그래이드된 보다 진화된 방식의 정치행태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8.15 경축사 이후 태종의 역할을 말하는 노대통령의 발언은, 전후 사정을 미루어 짐작할 때, 야당과 기득권층에 대한 선전포고로 들린다. 노대통령 또한 과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한결같이 그리했던 것처럼 재임 중 자신의 권력의 극대화를 위하여 개혁을 진행할 것임은 쉽사리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구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새로운 국가질서의 성공적 수립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 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자만이 새로운 질서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준 진실이다. 구 질서에 대한 파괴가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전제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질서에 대한 비젼과 설계도 없는 파괴라면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공멸의 길이 될 수 있다. 마르크스는 <공산당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존재해온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천민, 영주와 농노, 한 마디로 말하여 압제자와 피압제자가 끊임없이 상호 대립하는 가운데 대치한 채로, 어떤 때에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히 중단없는 싸움을 수행해 왔다. 이 싸움은 매번 사회 전체의 혁명적 재구성으로 끝나거나 또는 상쟁하는 계급의 공동의 파멸로 종말을 고하였다>
과거사청산이 옳고 그르냐를 따질 시기는 이미 지나버린 것 같다. 과거사의 청산이 학자에게 맡겨야 하고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말아야 한다고 백 날을 떠들어 보았자 되지 않을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말 것이다. 칼 자루는 이미 현 정권에 넘어가버렸으니 말이다. 현 정권의 개혁이 다음의 두 가지 문제적 상황을 피해갈 수 있다면, 개혁은 성공할 수 있다. 개혁으로 인하여 경제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어 민심이 이반되거나, 가시적이고 실현가능한 새로운 국가 비젼을 제시하지 못한 채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국론의 분열을 해소하지 못하고 대결 국면이 지속된다면, 현 정권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멀리 갈 것 없이, 구 소련의 붕괴가 고르바쵸프의 준비가 안된 당위성에 의한 개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현 정권은 구체적이고 가시적 새로운 국가 비젼과 실천방안(Action Agenda)의 제시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현 정권의 과거사 청산에 대응하는 야당과 보수 기득권층의 대응이란 그야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경제가 살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강성노조를 때려잡고 기업활동을 최대한 지원하는 길이 나라가 사는 길이라 낡고 낡아 빠진 경제성장의 논리로 현 정권을 매도하는 데에 급급할 뿐이다. 현 정권의 정체성을 의심하고 내심으로 현 정권을 친북 좌경 세력으로 규정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과거사의청산 문제가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절망적인 푸념만을 늘어놓고 있다.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우월하다고 믿고 있는 논리로 현 정권의 문제점을 드러내려 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과거의 책임은 없다고, 우리가 지금껏 이만큼 살게 된 것이 자신들의 공이라 강변한다. 불행하게도 이를 동조할 국민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기득권층의 논리로는 4.15총선의 결과가 설명되지 않는다. 노대통령이 엉터리고 문제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있는 사람이 없는 삶을 업수이 여기고 함부로 대하며 횡포를 일삼았던 독재정치의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기득권층의 기대만큼 많지 않다.
노대통령의 문제점과 지금의 혼란한 국가 상황을 우려하며 박정희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개발독재 하에서 특혜적 특권을 누렸던 기득권층에서, 그리고 노대통령의 개혁에 반대하는 보수 언론에서 박정희 되살리기를 하는 것은 그야말로 되지 않을 바보짓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군사독재를 성공한 정치로 아무리 미화시켜 본 들, 스스로 정권유지가 감당이 안되어 무너진 군사독재가 또다시 가능할 수 있을까? 현 정권을 사회주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응하여 박정희 향수를 부추기고 이를 이용하여 박근혜대표를 노대통령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싶은 모양이다. 이것이 될 일일까? 가능하면 되도록 빨리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강성논조를 때려잡아야 경제가 산다고 말한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부추켜 박근혜 띄우기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국가관은 무엇일까? 한나라당이 박근혜를 중심으로 결속하려는 집단의 기대하는 정치 이념이 있기나 한가? 단 한가지의 논리만 있다. 경제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그리고 경제를 살리기 위하여 기업의 활동을 지원해야 하고 기업의 활동을 위축하는 그 어떠한 것도 제거해야 한다는 파시즘의 논리 이외에 그 아무것도 없다. 박근혜대표가, 기존의 기득권 세력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이념이 있는가? 박정희를 종교로 생각하는 그녀의 머리 속에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있을 턱이 없다. 박정희의 지배방식이란, 경제성장이란 국가목표를 설정해 놓고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사람은 강압적으로 탄압하고 제거하는 독재정치의 방식이다. 결과와 업적이 수단을 정당화 시키고, 비판과 이의 제기를 거부하는 저열하고 조잡한 지배방식이었다.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박정희를 성공한 대통령으로 되살리겠다면 그야말로 앞 뒤가 맞지 않는 어불성설이 될 것이다. 군사독재는 지속적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저열한 지배방식이기에 붕괴된 것이다.
파시즘의 지도자들은 어떠한 철학도 신념체계도 없다. 그들의 신념이란 논리적 사상체계를 지니지 못하고, 그들의 주장은 그 때 그 때 마다 상황의 논리에 이끌려 기회주의적으로 배합한다. 그들의 주장은 진리나 논리에 의해서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호소라는 견지에서 선택되었고, 때로는 지적 정직성을 비웃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들은 권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이해관계가 다른 이질적 집단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어떤 공통의 목적이나 원리 원칙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된 증오심과 공포에 호소 한다.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약속하는 정치가의 책략에 의하여 불안정상태로 결합 되어있다. (현대정치사상사2, 조지세이빈, 토마스 솔슨: 한길사)
박정희 향수를 자극하여, 박근혜의 지지기반을 견고히 하려는 의도가 무엇일까? 현 정권을 비판하는 보수언론은 좌경 세력에 대한 증오심에 호소하고, 경제위기감을 말하며 공포에 호소하고 있다. 파시즘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그야말로 가당치 않을 작태라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현 정권을 비판하는 관점에,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있는가? 현 정권에게 국가의 정체성을 질문하는 박근혜 대표의 머리 속에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을까? 당연히 없다.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대한 이해를 결하고 있기에, 시도 때도 없이, 유일한 레파토리인 경제타령만을 넋두리처럼 늘어 놓고 있는 것이다. 모든 자본주의 국가가 발전과정에서 공황도 겪었고 좌파정권도 한결같이 겪을 수 밖에 없었다. 경제성장의 논리를 백날 악을 쓰고 외쳐본들, 좌파성향이 확산된 작금의 우리의 현실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는 길이란, 그 무엇보다 먼저 자유민주주의 국가질서를 확립하는 데에 있다.
보다 복잡해지고 보다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목소리와 권리의 주장이 상충하는 지금의 우리 사회를 박정희방식으로 지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박근혜는 아니다. 그야말로 기구한 젊은 시절의 어려움을 겪고 오늘에 야당 대표에 이른 그녀의 개인적 삶에 대하여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우리의 내일을 열어갈 지도자로써 박근혜는 결코 아니다. 아버지를 존경하는 착한 딸이기에, 아버지가 그녀의 삶을 이끌어온 종교이었기 더욱 그녀는 아니다. 역사는 돌이킬 수 없다. 무차별적인 현 정권에 대응하는 야당의 생존전략을 위해서도 박근혜는 결코 아니다.
우리 나라의 고급관료들의 머리 속에 자유민주주의 철학이 몇 페이지의 분량이라도 들어 있는 줄 아는가? 유감스럽게도 철학이 있는 사람은 관리 노릇을 하지 않는다. 고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신념이 없어지고, 줄 서는 데에 눈치가 발달하여야 출세하는 것이 엄연한 우리의 공직사회의 현실이다. 노대통령을 반대하는 보수 기득권층에 이념이란 것은 없다. 줄 잘 서서 특혜적 권한을 향유했던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 자신의 반대자들을 이해하려고 수용하려는 자세는 갖추지 못한 채, 자신들이 오늘이 있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의 있었다는 사실은 잃어버린 채, 강성노조 때려잡으면 경제가 산다는, 나라가 살려면 경제가 살아야 한다 주장하는, 조잡하고 어설픈 주장으로 현실적으로 되지 않을 국가경영을 弄하고 있을 뿐이다.
보수주의란 어떠한 이름을 가져다 붙여도 무조건 바꾸지 말자는 사람들이라 말했던 노대통령의 주장이 일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우리의 기득권층 그리고 우리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스스로 자신을 개발하지 아니하고 공부하지 아니하며, 급변하는 국제적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만한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불공정과 특권에 집착하고,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고 거드름을 피우며, 사회통합을 이끄는 지도층으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해오지 못했었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들의 잘못과 문제점을 반성하기 보다는 변명과 자기 합리화에 급급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모두 화해하고 협력하는 성숙하고 발전된 사회를 위하여 그들이 기여한 일이 무엇이 있나를 묻고 싶다. 그들의 대답이 궁색한 것을 안다. 기업의 덩치가 커질수록 기업존립을 유지하기 어렵고, 권력이 커질수록 지위가 높을수록 경쟁이 치열하고 윗사람 눈치보기 바쁘고 자리 보존하기 어렵다고 변명을 늘어 놓을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과 자신들의 영달만을 위해 살았지, 그들의 지위와 부에 걸 맞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성해야 한다. 우리 모두의 공동의 번영을 위해 지도층의 입장에서 해야할 일을 제대로 해왔는가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
사회 지도층의 이러한 천민의식 때문에, 그리고 사회지도층이 갖추어야 할 사회적 책임의 부재가, 오늘 우리의 사회가 이처럼 분열되고 갈기 갈기 찢겨진 원인이라는 데에 대한 통렬한 자기 반성이 요구된다. 보수적 기득권층의 강자에 빌붙어 개인의 영달만을 꾀했던, 이러한 사회적 무책임과 돈과 권력만이 전부이며, 인간을 경시해온 풍조가 오늘의 우리 사회의 갈등의 근원적 뿌리라는 반성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개인의 하나의 행위는 삶의 총체성과 연관지어 이해될 때 온전히 균형감각을 가지고 평가된다. 삶의 원칙은 개별적 행위를 비판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삶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밝혀내어 올바른 삶의 방식에 우리의 관심과 노력을 경주하도록 하게 만든다. 이러한 비판적 이해와 반성적 성찰을 통하여 우리는 삶에 대한 보다 균형 잡힌 이해를 가능하게 하고 이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들의 삶을 보다 성공적인 것으로 가꾸어갈 수 있다.
현 정권이 자신들의 권력의 기반을 강화하고 권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하는 것은 여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현 정권이 의도하는 개혁이 성공하려면 그리하여 노대통령이, 舊習과 舊制度 왕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훈구세력을 타파하고 새로운 국가질서의 초석을 다지고 세종 조의 번영을 준비했던 태종과 같은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국가정체성과 비젼에 대한 제시가 전제되어야 한다. 문제적 현실의 타개라는 당위성만을 앞세워,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실행 방법을 갖지 못한 새로운 국가의 건설이란 한낱 공염불로 끝나고 말 것이다.
한나라당에 대하여 묻고 싶다. 노대통령의 개혁이 무모하게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려면 무엇을 준비하여야 하는가? 만약 잘못될 수 있는 노대통령의 개혁에 대비하여 우리의 다음을 책임질 지도자는 어떠해야 하는가?
현 정권의 이러한 공략에 대하여 한나라당 또한 구체적인 생존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성공적 생존전략은 성공적인 집권전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현 정권의 개혁은 특히 역사 바로 세우기는 사회주의 혁명의 방식으로 - 민중해방을 위한 민주화 운동과 민족해방을 위한 반제국주의 자주화 운동으로 친일청산이 진행될 개연성이 높다. 다행스러운 것은 현재 우리 사회에 친북적이고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집권당 또한 시장경제를 주장하고 있고, 노대통령 또한 <내 정신이 헌법정신>이라 말하고 있다. 이러한 현 정권의 對野 전략에 대하여 그에 합당한 대응전략을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과거사 청산이라는 여야의 대결국면에서 최후의 승자는 누가될 것인가?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민주주의 헌정질서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에 대한 가시적 국가 비젼과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개혁의 실천방안을 먼저 국민들 앞에 제시할 수 있는 정당이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 과거사청산이란 화살은 이미 활 시위를 떠난 듯 여겨진다. 과거사청산이란 通過祭儀를 치루고 나서 우리 사회는 보다 성숙한 사회로 그리고 새로운 역사적 도약을 이룩할 것이란 희망 어린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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