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6-25 12:24:15

 

팔루자 축구장은 거대한 공동묘지

 

부시 미 대통령이 이라크 종전을 선언한지 지난 1일로 꼭 1년이 됐습니다. 그러나 이라크 상황은 한치 앞을 예견할 수 없을 정도로 날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라크 현지에서 취재중인 <민족21> 강은지 기자의 현지보고를 단독으로 입수 전할 예정입니다.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menu=c10400&no=165198&rel_no=1

 

 

<팔루자에 진입하다>

 

51, 그날은 부시 미 대통령이 이라크 종전을 선언한 지 꼭 1년 되는 날이다. 이날 기자에게 팔루자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한국 기자로는 처음 팔루자 땅을 밟게 됐다. 기자가 본 팔루자는 테러리스트 저항세력과 미군의 전쟁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미군의 이라크 민중학살''이었다.

 

51일 오전 930, 기자는 죽음을 무릅쓰고 미군이 지키고 선 체크포인트를 지나 걷기 시작했다. 한국말을 제대로 구사하는 미군 병사의 도움을 얻어 팔루자 택시를 탔다. 그는 아마도 미국 시민권을 따기 위해 이라크로 온 병사 같았다.

 

 

기자가 둘러본 팔루자는 이미 해골도시였다. 거의 모든 건물이 미군의 공습으로 파괴됐고, 저격수들의 총격으로 불타 버렸다.

 

기자가 탄 차량이 팔루자를 돌자 그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는지 팔루자 주민들은 무너진 잔해 더미들 속에서 유령처럼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외국인은 다 죽여버린다는 테러리스트" 팔루자 주민들. 그들은 낯선 동양인 기자에게 하나둘 다가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민주주의가 어디에 있는가. 미군이 가져다준다던 자유는 도대체 뭔가. 부디 이 현실을 똑바로 보고, 제대로 알려달라."

 

기자는 그들의 눈빛을 가슴에 담고, 소규모 교전이 지속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줄란으로 향했다.

 

텅 빈 거리, 동물 시체들이 널부러진 유령도시

 

줄란은 괴기영화에서나 봄직한 유령도시 그 자체였다. 텅 빈 거리, 무너진 건물들, 길거리마다 쌓여있는 건물 잔해들, 폭탄 유탄들. 앙상한 뼈와 가죽만 남은 채 널부러진 동물 시체들이 발에 걸려 넘어진다.

 

줄란은 미군의 공습 첫날 전기와 수도가 끊긴 도시다. 전기도 물도 없는 그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오로지 무자헤딘뿐이라는 그곳. 기자는 거기서 직접 무자헤딘을 만났다.

 

한결같이 눈만 내놓고 얼굴을 스카프로 친친 동여맨 무자헤딘들. 그들은 칼리슈니코프 소총, 기껏해야 RPG를 어깨에 둘러매고 있었다. 10대 중반부터 6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의 소위 ''테러리스트'' 팔루자 저항시민들의 모습 속에서 기자는 ''팔루자에 평화는 오지 않았다''고 직감할 수 있었다.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 한 무자헤딘은 지붕이 완전히 내려앉은 집을 가리키며 "우리 집"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집과 이웃 집, 두 채가 미군 폭격에 맞아 파괴됐다. 이 사고로 남동생과 조카가 크게 다쳤다. 이들은 바그다드와 야무크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혹시 미군이 아브 그레이브 감옥에 가둬 버릴지 않을까 겁이 나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줄란 지역을 돌고 있을 때, 그는 기자를 아부 아유브 알 안사리(Abu Ayyub Al-Ansari) 이슬람 사원으로 안내했다.

 

흔적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사원 입구. 유리창, 기둥, 벽마다 총알 자국이 박혀 있고, 이슬람교도들이 맨발로 들어가 기도하는 사원 바닥에는 미군에게 질질 끌려갔던 ''이슬람교 순교자''들의 핏자국이 당시 상황을 설명하듯 남아 있었다.

 

그는 ''알라의 집'' 사원을 습격한 미군에 대해 격분했다. 사원 내부에 찢겨진 채로 흩어진 이슬람 경전 코란을 정성스레 정리하는 그의 목소리는 치 떨리는 분노로 가득 했다.

 

"그들은 금요일 기도 시간에 알라의 집(성소)을 쳐들어와서 기도하던 우리 형제들을 죽여버렸다. 도대체 미군은 왜 이런 짓을 하나. 기도하던 그들이 미군에게 저지른 잘못이 도대체 무엇인가. 미군은 왜 그들을 죽였나. 민주주의가 도대체 무엇인가. 당신이 보기에 우리가 정말 테러리스트로 보이는가. 우린 우리 도시와 사원을 지킬 뿐이다."

 

마지막 남은 피 한 방울까지 흘려 도시와 사원을 지키겠다는 무자헤딘. 그들에게 "가족과 친척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과 타협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중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사담 후세인의 추종자가 아니다. 평화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모든 휴전 약속을 깨버렸다. 우리는, 금요일에, 그것도 기도하는 성소에 들어와 사람을 죽인 미군을 용서할 수 없다. 팔루자 시민 그 누구도 이런 미군을 좋아할 리 없다. 우리는 사담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우리의 도시와 종교를 보호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다시 강조하고 싶다."

 

 

<공동묘지가 돼버린 축구경기장>

 

30일에도 무자헤딘 한 명이 미군 저격수의 총에 맞아 심한 부상을 입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총소리가 들릴 때마다 무자헤딘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총소리가 들리면 무자헤딘은 낡은 칼리슈니코프 소총을 꽉 움켜쥐었다.

 

총격소리가 자주, 더 가까운 곳에서 들리자 그들은 기자에게 위험신호를 보냈다. 지금 팔루자에 더 머물다가는 거리에 나온 사람 아무에게나 총을 쏘는 미군에게 당할 지 모른다며 빨리 떠나라고 손짓했다.

 

인사조차 편안히 못하고 차에 올라타 뒤를 바라보니 페허에서 하나둘씩 뛰쳐나왔던 그들은 다시 폐허 속으로 몸을 감췄다. 총소리와 대포소리만 귀청을 찢고 있는 줄란 구역은 다시 텅 빈 유령도시로 바뀌었다.

 

25일간 미군 저격수들이 쏜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팔루자에 있는 두 곳의 공동묘지에 더 이상 매장할 공간이 없어 그들은 축구경기장에 시체를 묻고 있다고 했다.

 

거대한 공동묘지가 돼버린 축구경기장. 그곳을 향해 달리는데 작은 픽업 트럭 한 대가 어떤 집 앞에 섰다. 그 차에서 외과수술용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내려 집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기자는 긴급히 차를 세우고 그들을 따라 들어갔다. 그들은 앞마당에 대충 묻어두었던 시신을 꺼내 공동묘지로 옮기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 중 한 사람이 기자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 이 장면을 똑똑히 보라. 그리고 사진을 찍어라. 비디오로 녹화해서 부시 미 대통령과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줘라. 우리가 지금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기자가 그 집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시체 썩는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도저히 숨을 쉴 수도,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지역 자원봉사자 팀이 마당 한 구석, 슬레이트 블록 몇 장으로 덮어놓은 구덩이를 열었다.

 

그 안에는 거의 다 썩어 문드러진 한 중년 여성의 시신이 더러운 담요에 쌓인 채 묻혀 있었다. 담요 한쪽으로 삐죽이 빠져 나온 그녀의 발은 반쯤 썩어서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시체 썩는 냄새가 사방에 진동하다>

 

너무도 끔찍한 장면. 기자는 시선을 돌리고 싶었다. 솔직히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자원봉사팀이 시신을 꺼내 하얀 천으로 싸고 염을 하는 동안 기자를 붙들어둔 이유가 있었다. 팔루자의 진실을 세상에 알릴 증인이 되라는 것이었다.

 

ŗ주전이었어요. 이 여성은 그의 남편과 함께 팔루자를 빠져나가려고 했나봐요. 그때 미군 전투기가 이 여성이 탄 차를 폭격했어요. 그 자리에서 부부가 모두 죽었어요.

 

우리는 그 부부의 시신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부인은 우리 집 마당에, 남편은 옆집 마당에 묻었어요. 적절한 장례도 치러주지 못했어요. 밖으로 나갈 때마다 미군 저격수들이 우리를 쏴 죽일지 모르니까요. 우리가 이 차에서 그녀의 시신을 꺼낼 때도 미군은 우리에게 총을 쐈지요."

 

이름도, 얼굴도 모르던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신을 수습해 자기 집 앞마당에 3주 동안이나 묻어두고 있었다. 그들이 탔던 차는 재가 된 채로 길거리 조형물이 됐다.

 

이 자원봉사 팀의 대장도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우리 의료진 앰뷸런스가 미군의 봉쇄기간동안 미 해병대 저격수에 의해 벌써 두 번이나 사격을 당했기 때문"이라며 "이 사격으로 임시 진료소의 자원봉사자 중 한 명이 살해당했다"고 말했다.

 

"미국인들은 개입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죽이려해요. 미군의 눈에는 인도주의적 자원봉사자들도, 의사도 모두 공격해 없애 버려할 존재들로 보이는 모양입니다. 인도주의적 임무를 띤 의사, 자원봉사자들이 왜 미군에게 죽임을 당해야 합니까?"

 

하드라 진료소의 한 의사도 그와 같은 어려움을 호소했다. 미군 저격수의 사격이 뜸해진 최근 이틀 사이 진료소에 접수된 사망자들만 해도 170여 명이라고 했다. "정확한 사망자 숫자가 파악되려면 적어도 1주일은 더 걸릴 것"이라는 그는 "저격수들의 사격 때문에 시신을 제대로 매장하지도 못하고 집집마다 앞마당에 임시로 묻어둔 시신들과 무너진 잔해 속에서 그냥 썩고 있을 시신은 더욱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앞마당에 묻혀있던 시신''이 실린 차를 따라 ''공동묘지''가 된 축구장으로 다시 출발했다. 그곳엔 이미 300구가 넘는 시신이 묻혀 있었다.

 

벽이 폭격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린 축구경기장. 거친 흙으로 대충 쌓아올린 봉분. 그 위에 붉은 페인트로 이름을 적어 놓은 콘크리트 조각들이 줄줄이 꽂혀 있었다. 무덤 한쪽에서는 몇몇 자원봉사자들이 바닥에 긴 도랑을 파고 있었다. 제대로 시신을 묻어줄 공간이 부족해 도랑을 판 다음 시신을 한 구씩 눕히고, 벽돌로 시신과 시신 사이를 구분한 다음 흙으로 덮는다고 했다.

 

무자헤딘 "작은 아기들도 죽여버리는 미군을 용서하라고?"

 

파델 아바스 클라프(Fadel Abbas Khlaff, 30). 그는 미군의 첫 공습이 시작된 뒤 5일 동안 이곳에서 무덤을 파고 시신을 묻는 자원봉사를 했다. 그러다 도무지 참을 수 없어 총을 들고 미군과 맞섰다.

 

그는 묘지에 더 이상 공간이 없어서 한 무덤에 두 구씩 시신을 묻기도 했노라고 말했다. 폭격에 완전히 산산조각으로 찢긴 시신조각을 수습해 한 상자에 담아 묻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기자가 공동묘지가 된 축구경기장을 찾아갔을 때, 이곳에는 수많은 팔루자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콘크리트 조각에 쓰여진 이름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가족, 자신의 친척, 자신의 이웃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가족의 무덤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오열하기도 했다. 폭격이 쏟아지는 암흑에서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던 그들이 그 동안 참았던 눈물과 설움을 한꺼번에 토하는 현장이었다.

 

아흐메드 사우드 무하신 알-이사위(Ahmed Saud Muhasin Al-Isawi, 50)도 그 중 한 사람이다. ŗ주 동안 팔루자를 떠나 난민생활을 하다 오늘 팔루자로 돌아왔다"는 그는 "이곳에서 열살, 열여덟 살이 된 사촌 두 명의 무덤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조카들은 집에 그냥 있었다. 밖에 나가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지금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다"며 슬퍼했다.

 

그는 "가족들을 다 데리고 떠나려고 했지만 계속되는 미군 저격수들의 공격 때문에 떠날 수 없었다"면서 "남겨두었던 가족들이 이렇게 죽어서 묻혀 있다"고 말하고는 끝내 울먹였다.

 

그가 당한 고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미군의 공격에 의해 이미 죽은 사촌을 제외하고도 또 다른 사촌이 미군의 공격에 의해 사망했다. 미군에 의해 희생된 여 사촌의 시신을 찾을 수도 없거니와 그녀의 8명의 아이들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길이 막막하다.

 

그 아이들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아이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그는 도저히 벗어날 길 없는 절망과 고통 속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심지어 아주 작은아기들과 가족들을 모두 죽여버렸는데, 미군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미군의 이런 점령에 대한 저항은 당연한 것 아닌가?"

 

<팔루자에 평화는 없었다>

 

압둘 카드르 알-이사위(Abdul Kadr al-Isawie)는 한발 더 나아가 "사담 후세인 시절의 감옥 아브 그레이브에서 미군 병사들이 이라크 죄수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아느냐"며 최근 공개된 사진들을 이야기했고, 미군 점령 하에서 겪는 이런 고통과 잔혹함은 차라리 일상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이런 고문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다. 이것은 우리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모든 팔루자 주민들이 이야기하는 바이다."

 

차를 타고 거리 곳곳을 누비며 하늘 높이 소총을 들고 승리를 축하하는 무자헤딘의 행진. 그들이 목청껏 외치는 소리에는 이런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팔루자에서 만난 무자헤딘들은 거리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에 공격하는 미군의 공습에 맞서, 또 처참한 학살에 맞서, 한달 가까이 싸워왔다. 팔루자 주민들은 칼리슈니코프 소총 한 자루씩 갖고 미군을 도시 밖으로 몰아내고 있었다. 이 작고 불안한 승리는 그들이 싸우는 정당성의 표시이자 앞으로의 투쟁을 다짐하는 일이기도 했다.

 

기자가 팔루자에서 보낸 시간은 고작해야 몇 시간이었다. 그러나 석 달 열흘을 지낸 것만 같은 아픔이 뼈마디에 남았다. 아무리 냉정해지려해도 감성이 불쑥불쑥 치고 올라오는 건 아무래도 전쟁이 아닌 학살의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팔루자에서 바그다드로 돌아온 기자는 온몸에서 기가 다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군 체크포인트를 당당히 빠져나가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힘없이 팔루자를 기억하고 있을 때 한 이라크 친구가 던진 말이 떠올랐다.

 

"가족이 여기 있으니까요. 가족이 없었더라면 이런 곳에서 단 1분도 견디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가족들 때문에 우리는 참고 견뎌야만 해요. 그게 우리의 삶인 걸요."

 

그리고 그는 줄곧 기자 곁에서 울었다. 그는 "이제 그만 얘기하자!"면서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기자는 팔루자의 학살을 목격한 지금 이 글을 쓰면서 한 가지 의문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 사람들이 진실로 누려야 할 자유와 민주주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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