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6-30 15:38:04

 

김선일씨 잔혹한 죽음 앞에 온 국민이 경악을 했고, 분노를 했습니다.

한편으로 이러한 테러에 대한 응징으로 파병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희생이 없기 위하여, 미국에 주도하는 파병에는 단호히 반대하며 파병철회를 외치고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우리의 민간인이 참혹한 살해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 테러집단의 실체가 누구인지도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김선일씨의 죽음에 대하여 정부의 책임이 어느 정도 인지, 아니면 정부의 철수 권고를 무시한 김선일씨 소속 회사의 책임인지 그 책임의 소재도 아직 분명히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론을 등에 업은 국민의 그 어떠한 요구- 파병촉구이든, 파병철회이든 간에 전쟁에 개입하는 문제를 감정적 대응으로 결정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고도의 전략과 전술을 요구하는 군사문제이며, 외교문제입니다. 이에 대한 어떤 방식의 집단행동, 촛불시위든, 파업과 연계한 파병철회 요구든 그것이 정부의 운신의 폭을 그만큼 좁게 하고 그 결과 국익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살다보면 정말 기막히게 억울한 일도 당하고, 예기치 못한 불행도 당하게 되는 것이 우리들 삶이란 생각을 해 봅니다. 한 방화범의 소행 때문에 수 백명이 죽어야 했던 대구지하철 참사 같은 일도 있었습니다. 일을 당한 유가족의 입장에서 이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되고 받아들여질 것이라 생각합니까? 세상에는 정말 기막힌 죽음도 많고 억울한 죽음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정말 비참하고 불행한 죽음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 본적이 있으십니까?

 

지루하고, 권태로운 현대인들에 다른 사람의 비극이 자극적 관심사 되기도 합니다. 언론은 상업적 이유로 김선일씨 사건의 가치를 턱없이 부풀리지 않았나 하는 것이 내 개인적 소견입니다. 김선일씨 죽음이 지금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만큼 과연 중요하고 우리 사회와 국가에 미치는 파장이 그만큼 중요한 사건일까요? 김선일씨가 소속되었던 가나무역은, 얼마 전 한 차례 테러집단에 의하여 직원이 납치되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 정부의 철수 권고를 무시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 김선일씨의 죽음에 대한 국가의 책임, 이에 대한 보상과 예우를 말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 생각합니다. 김선일씨의 죽음은, 자신의 개인적 종교적 신념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터에서 활동하다 잔인한 테러집단에 살해된 애석한 한 젊은이의 죽음일 뿐 입니다.

 

김선일싱의 죽음으로 놀라고 경악스런 분노의 마음으로 파병을 주장합니다. 지금 이라크 전이 어떻게 전개되고, 파병이 어떠한 차원에서 이루어지며, 군사작전권은 누구에게 있으며 우리가 파병에서 행하는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려 들지 않고, 억울한 죽음이니 무조건 떼를 쓰는 수준에서 파병을 주장합니다. 테러조직에 대한 응징을 말합니다. 테러집단의 범죄에 대한 대응이 전쟁이라는 선택할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의 전투병 추가 파병에 대한 보답의 뜻인지 모르지만 미국은 김선일씨를 살해한 집단에 대한 보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김선일씨에 대한 테러집단에 대한 응징은 우리는 가만 있어도 미국이 약속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결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論語에서 子路가 물었습니다. < 三軍을 행하신다면 무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孔子께서 말씀하시길<범을 맨손으로 잡으려 하며, 강을 걸어서 건너다가 죽어도 뉘우침이 없는 자와는 같이 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일을 임하여, 두려워하고, 치밀하게 도모하여 성사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어떤 사건이 담고 있는 충격적인 사실로 인하여, 이에 대응하는 우리의 삶의 대응방식이 감정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믿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당할수록, 큰 일을 당하면 당할수록 이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는 침착하고 의연하게, 객관적 상황을 면밀히 검토하고 대처하는 것만이 그 어려움을 슬기롭게 대처하는 일이라 믿습니다.

 

삶의 상황이란 항상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항상 엄청납니다. 自業自得이란 말이 있습니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삶을 살다 보면 자업자득이란 말은 참으로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을 것입니다. 예기치 못한 불행과 삶의 역경을 만났을 때, 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내가 왜 이러한 불행과 어려움을 당하여야 하는가 기막히고 억울한 생각이 들 때면, 어쩔 줄 몰라하고 우리의 앞에 놓여진 삶이 서럽고 암담하게 느껴집니다. 처음에는 분노하고 항변을 합니다. 세상에 하소연하고 보상을 구하려는 몸부림을 쳐보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좌절하고 체념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는 자신만의 상처로 남겨지게 됩니다.

 

잘못 살면 백이면 백 그 업보를 받는 것이 삶의 교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아무리 잘 살았다 생각하고 살아도, 때론 어쩔 수 없이 불행과 고난을 만나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이란 늘 삼가고 조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고, 하늘 아래 진정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옳다는 마음과 내가 억울하고 분하다는 마음을 극복하지 아니하고는 결코 역경을 이겨낼 수 없을 것입니다. 분노와 서러움, 증오, 적개심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우리 앞에 놓여진 삶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헤쳐 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기치 못한 불행 앞에서, 우리들 자신의 위치를 보다 객관적으로 되돌아보고, 우리가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진정 우리가 해야할 바를 찾아야 할 때라 믿습니다.

 

김선일씨의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의 외부의 적과 싸우기 앞서, 분열과 갈등, 대립과 반목이라는 내부의 적과의 싸움에서 먼저 승리하여야만 우리의 앞날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국민적 분열을 하나의 국민적 역량으로 결집시키지 못하는 현 정부는 자신들의 무책임과 무능력에 대하여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단호한 지도력과 확고하고 일관된 비젼의 제시 없는 현 정부는 마땅히 국론 분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입니다. 입버릇처럼 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말해왔습니다. 대결과 반목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이 싯점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적 과제가 무엇이겠습니까?

어려움에 처한 국가적 현실 앞에서,

우리 모두 손잡고 한 마음 되는 것보다 더 시급한 국가적 과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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