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9-02 14:32:00

 

우리에게 희망이 가능한가?

 

경기(景氣)침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정치권이 과거사() 문제로 빠져들면서, 사회에 불안 심리가 고조되고 있다. 혹자는 기득권층이 경제 위기의 분위기를 조장한다 말한다. 기업인과 서민들은 분노하던 단계를 넘어 바야흐로 체념하고 포기하는 단계로 가고 있다. 기업인과 서민들이 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에 기대를 버린 이유는 간단하다. 이 정권의 경기감각이 아직도 부양책을 쓰느냐 마느냐 하는 초보적 논란을 정리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금리인하, 투기지역 해제 등으로 사실상 부양책을 쓰면서, 다른 쪽에서는 이를 부인하며 정반대 메시지를 보낸다. 이쯤 되면 어느 쪽이 진심인지 알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질 수 밖에 없다. 안정성을 상실한 사회에서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득권층이 위기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돈 있는 사람들이 불안정한 사회분위기에서 기업활동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하면, 기업활동이 위축되고 투자를 기피하게 될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돈 있는 사람이 위기 의식을 느껴 투자를 기피하는 상황만으로도 곧바로 경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국제원유가는 치솟고, 물가는 오르고 경기는 끝이 보이지 않는 침체의 늪으로 빠져드는 상황이다.

 

노대통령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은 현 정권에게 희망을 가지고 싶어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노대통령이 잘못하여 대한민국이 거덜난다고 주장한다. 노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처지나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적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현 정권에 기대한다. 마찬가지로 노대통령이 잘못하여 나라가 거덜난다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점을 오직 노대통령의 잘못 때문이라 강변한다. 노대통령이 아닌 박근혜 대표가 대통령을 한다면 지금보다 나아질까? 대통령이 바뀌어 해결될 문제라면 우리의 문제란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란 대통령이 바뀌어 해결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사회구조적인 문제이며, 지금 대한민국은 심각한 체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바르게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경제는 외부적인 변화에 적응하는 것조차 실패한 것으로 여겨진다. IMF환란 이후,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상관없이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는 정부주도의 경제로 이끌어온 우리에게 혁명적 변혁을 요구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우리 경제가 어렵고 위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기업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 주도의 경제운용방식에서 각종 특혜를 누리며 성장해 온 기업들에게, 무한 경쟁의 세계시장에서 살아남는 것만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을 것이다. 기업이 기업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기업활동에 장애가 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주장하고 강성노조를 때려잡는 것이 경제를 살리는 일이라 주장한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는가? 우리의 경제를 살리기 위하여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부도 민간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정부주도의 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변화가 어떠한 것을 요구하는가에 대한 온전한 이해 없이, 여전히 기업활동의 활성화와 생산성의 증대 같은 경제성장의 논리로 경제회생을 말하고 있다.

 

지금 처한 경제적 위기 상황은 경제문제의 차원에서 해결될 수 없다.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전제되지 않는 상태에서, 성장을 위한 기업활동의 촉진을 말하며, 기업활동에 유리한 시장경제의 요소만을 도입하려는 것으로 경제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물론 국민경제를 생산성향상을 도외시한 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올바른 상황인식과 방향성을 설정하지 못하는 경제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 성공적인 경제개혁은 제대로 된 시장질서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설정되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천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부주도의 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이란 새로운 패라다임으로 경제를 이끌어가야 하는 혁명적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시장경제의 도입은 단지 경제적 차원에서 이룩될 수 없다. 시장 경제는 17세기 영국을 기점으로 해서 미국과 유럽 그리고 서방 세계의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시장경제와 헌정국가는 상호의존적인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함께 발전해 온 제도이기 때문이다. 시민적 시장경제는 헌정국가의 사회학적 실체를 이루며, 헌정국가 역시 시민적 시장사회의 요구에 의하여 형성되고 발전되어 왔다. 정치적 운동으로서의 <자유주의>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목표- 헌정국가와 시장경제를 추구하고 있다. 자유주의는 권력분립과 개인의 인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경제적 자유주의 - 다시 말해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와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두 축으로 하여 발전되어 왔다.

 

헌정국가와 시장경제는 다음의 점에서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발전되어 왔다. 헌정국가는 법적 안정성, 의회의 영향력, 경제적 자유, 특히 소유권의 보장을 통하여 시장경제에 제반 요건을 조성하여 준다.

 

첫째, 시장경제는 경영계획의 수립의 전제조건으로 법적안정성을 요구한다. 기업을 운영함에 있어, 예측 가능한 데이터에 관한 지식이 정확할수록 기업의 활동은 용이해 진다. 노무현 정권은 이러한 점에서 시장경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경제를 운용을 하고 있다. 국가권력이 기업활동의 안전을 보장해 주기는 커녕, 오히려 기업경영의 영역을 침해하려 한다면, 기업은 생존을 위하여 본능적 거부반응을 보일 것이다. 국가 권력이 자의적으로 법을 운용하고, 기존의 법적 안정성을 깨뜨린다면 법적 안정성과 사회의 안정성은 파괴되고, 당연할 귀결로 기업활동은 위축될 것이다. 법적 안정성을 위하여 일반적으로 법관이 법률에 기속되어야 하고, 법관의 인적 물질적 독립이 보장되어야 하며, 투명하고 예측가능한 국가권력의 행사로 법률은 형식성과 공개성, 일반성과 신뢰성, 나아가 내용상의 명확성을 가지고 운용되어야 한다.

 

둘째, 시장경제를 주장하는 기업인들이 의회에 대한 영향력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러한 경제적 자유주의가 자유주의적 헌정국가를 옹호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의회의 고전적 3대 기능이란, 입법과 조세와 정부통제에 있고, 이러한 모든 기능이 기업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셋째, 헌정국가에서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 중에는, 경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자유를 포함한다. 이러한 자유들은 기업 경영상의 재산권의 처분과 상품의 자유거래를 가능하게 해 준다. 직업 선택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소유권과 같은 기본권이 그것이다.

 

헌정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지, 시장경제를 보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헌정국가가 보장하려는 개인의 자유의 파생효과로 시장경제의 활동을 촉진한다. 하지만 헌정국가의 자유보장의 목적이 시장경제의 보호에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헌정국가이념을 훼손하고, 결과적으로 시장경제를 왜곡하게 될 것이다.

 

시장경제이론은 경제적 번영의 최적 조건을 모색한다. 시장경제이론의 출발점은 공공의 이익이다. 아담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모든 생산의 목적은 소비에 있고, 생산자의 이익은 소비자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한도 내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영업행위를 하는 사람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어야만이 자신의 이윤추구가 가능하다. 다시 말해 고객의 이익을 극대화시켜 줄 때, 기업의 이윤도 극대화된다. 시장경제에서 이러한 협동의 관계가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개인은 사적 이윤을 추구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조정이라도 되듯 결과적으로 공동의 번영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개인의 이기심을 극대화하려는 소유적 개인주의의 출발점은 자기 자신, 독자적 자기 능력으로 자기 재산을 축적하려는 소유권자로써의 개인이다. 소유적 개인주의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타인의 이익을 빼앗고, 헌정국가를 부패 타락시킨다. 그리하여 소유적 개인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으며, 결국에는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말게 된다. 그리하여 소유적 개인주의는 공공의 이익을 극대화 하려는 시장경제 질서를 왜곡한다.

 

경제 성장의 논리로 기업활동을 지원하는 제반 조건을 제공함으로써 우리 경제는 살아날 수 없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근본적인 개혁의 방향이란, 건전한 시장질서를 확립해 나아가는 데에 있다 할 것이다. 과거, 유치자본을 육성하여 산업자본으로 만들고, 국가가 경제개발을 주도하여 수출기업에 정책적 지원 등을 통하여 경제를 운용하던 방식은 이제 더 이상 쓸모 없어져 버린 낡은 경제 운용의 방식이라 할 것이다. 지난날 우리가 추구해온 경제학이 경제의 규모를 키우고 성장을 촉진하였던 <규모의 경제학>이었다면, 앞으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야할 경제학은 생산과 소비를 원활하게 매개하고 유통을 활성화하는 <흐름의 경제학>으로의 패라다임의 전환이 시급하게 요구된다 할 것이다.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의 핵심 내용은

<양자간의 교환이 자발적이라면, 양자 모두 이익이 되어야만 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 파는 자와 사는 자 사이의 교환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가격- 자유시장의 가격이 각자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수백만의 사람들이 협동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하여, 경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이제 우리 경제는 생산성 향상과 성장률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성공적인 성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경제는 이제 더 이상 경제의 문제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시장의 기능이 보다 원활하게 작동하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형성하는 것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시장이 활성화 되기 위하여 무엇보다 법과 원칙이 확립되고, 책임감 있고 신용 있는 경제 주체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시장은 활성화 되지 않는다. 국내 항공사에서 예약제를 도입하려 했으나, 예약하고 탑승하지 않는 고객이 70%나 되어 예약제를 포기하였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사적 소유권에 대한 보장과, 법률이 준수되고, 시장이 운용되는 관행이 확립되지 아니한다면 시장의 활성화는 불가능해진다. 개인간에 약속이나 계약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 건전한 시장질서를 기대할 수 없다. 시장에서의 모른 경제행위는 자발성에 기초한다. 이러한 자발성은 상대방에 대한 상호 존중과 신뢰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시장 메커니즘은 작동되지 않을 것이다. 시장에서의 거래는 쌍방 간에 자발적이며, 충분하고 공정한 정보교환이 전제되어야 가능하여 진다. 나아가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이 건전한 시장질서를 왜곡하는 것을 철저히 방지할 때, 건전한 시장질서가 유지될 것이다.

 

개인의 삶에서 돈보다는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삶의 건전성을 상실한 병든 인간에게 물질적 풍요가 그의 삶을 개선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배금주의와 실적주의에 젖어 정당한 삶의 가치를 상실하고, 반칙과 편법이 난무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계층간, 세대 간, 지역간의 반목에 의한 사회갈등이 지금처럼 심화되고 국론 분열이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현실에서 우리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기득권층이 이룩한 성취가 특권과 편법, 불공정에 대한 집착으로 이룩된 부분이 있음을 그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현 정권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비젼의 제시 없이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며, 기득권층에 대한 기득권 빼앗기에 몰두하는 것으로 비추어진다. 우리 모두가 기꺼이 동참하여 지켜갈 국가에 대한 비젼의 제시 없이, 과거의 문제를 까발리고 들추어내어 기득권 빼앗기에 여념이 없는 현 정권의 무지와 무능력과 무책임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자신들의 눈 앞의 정권적 이익에 급급하여, 지금과 같이 국가를 갈갈이 찢는 일이 결국 현 정권 스스로의 무덤을 파고 있다는 사실을 가능하면 빠른 시일 안에 깨닫기 바란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경제적 도약을 위해, 가장 근원적이고 절실하며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은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에 입각한 국가질서를 바로 세우고, 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한 건전한 사회 윤리를 가꾸어 나아가며 이를 바탕으로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질서를 형성해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인간관계에서 도덕적 가치관이 드러나게 된다. 상대방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일을, 또는 상대방이 바라지 않는 일을 자신이 옳다고 하여 상대방에게 요구하거나, 자신의 판단으로 상대방을 위한 일이라며 일을 행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 <내가 하는 일은 상대방에 좋은 일이다> 생각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독단이다. 그리고 자신의 독단으로 상대방에 연관된 행위를 하는 것은 마땅히 부도덕하다. 부모가 자식을 욕심으로 키우면 이러한 짓을 자식에게 반복적으로 행하게 되고, 아이가 성장하면 이러한 부모 자식과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악화된다. 그것이 선행이라 할지라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부도덕하다는 것이 자유주의적 윤리이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도덕은, 개인에 대한 인간존엄성을 인정하고, 개성을 존중하는 일이다. 인간이 누군가에 의해 자기 목적에 맞도록 가치관이 맞춰 조작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성장제일주의 기치 아래 인간존엄성을 짓밟고 이룩하여 온 개발독재와, 국가권력에 기생하며 특권을 누리며 성장해온 소유적 개인주의는 이제 마땅히 배격되어야 한다. 파시즘은 독재자의 욕망에 모든 국민의 욕망이 종속되기를 강요받는 정치체제이다. 이러한 체제에서 자율적인 인간과 개성적인 인간은 배제된다. 인간은 각자의 권리와 독자적인 가치관을 지닌 독립적인 존재이다. 설득하는 것은 좋지만, 강요하거나 위협하고, 하물며 세뇌 따위는 결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사회관계에서 기본적 도덕이 되어야 한다.

 

자유주의적 이념에 기초한 국가질서와 규범질서 나아가 사회윤리와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한 상호 존중의 새로운 모랄을 확립하지 못하고 경제를 살려낼 수 없다.

'J. 경제 비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기다 경제부터 챙기라  (0) 2026.01.01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면...  (0) 2026.01.01
자유주의를 위한 투쟁  (0) 2026.01.0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