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27 13:07:54
혹자는 내가 이미 죽은 망자의 공을 폄하하려 한다 비난한다. 이는 전혀 오해되고 잘못된 생각이다.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주장하는 것은, 박정희의 잘못을 바로 알고 이를 바탕으로 보다 진화된 새로운 국가질서를 모색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나를 비난하는 한 필자의 글이다.
<지난 김영삼 김대중정권 담당자들이 오죽 못났으면 다시 ''박정희''가 살아났을까요. 길게는 김영삼정권 이래 짧게는 이 노무현정권까지 오죽이나 정권담당자들이 자기 할 짓을 못하고 있어 ''죽은 박정희''가 홀연히 돌아와 ''산 박정희''가 되었을까요. ''박정희''를 다시 살려낸 그 인물들을 먼저 욕을 하고 비판을 하고 벌을 주십시요. ''죽은 박정희가 살아돌아오기를 기원하는 국민들''만을 나무라십니까? 원인제공자는 내버려두고 그 결과물로 ''박정희''를 찾는 국민들에게 욕을 하고 계십니까? 지금 현재가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그것도 모자라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잃어버렸다면 과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건 아닌가요. 현재도 고통스럽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고 과거도 반추하지 못한다면 그럼 국민들은 죄다 어디가서 죽어야 하는 겁니까? >
박정희 신드롬이 확산되는 현실에 대하여 나는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퇴행적 포퓰리즘이라 우려한다. 위의 독자의 지적처럼 현 정권이 잘못했다 하여 대책없는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과거에 매달려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국민이라면 그것이 5천만 전 국민이라 하더라도 나는 단호한 어조로 그들을 잘못이라 말할 것이다. 힘들다고 내일을 모색하려는 노력 없이 과거를 뒤돌아보는 국민에게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겠는가? 노무현 대통령이 잘못해서 나라가 망했다 가정해보자. 당신의 자식이 나라가 망하도록 당신은 무엇을 했느냐 비난하면 당신은 무엇이라 대답하려는가? 나는 현 정권에 대한 비판하는 글을 박정희를 비판하는 글보다는 10배는 썼을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려, 우리 모두가 다 잘사는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며 글을 쓴다. 나는 다만 우리 모두 잘 사는 세상을 위해, 많은 이들에게 유익한 글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글을 쓰려 노력할 뿐이고 이러한 나의 방식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믿을 뿐이다.
현 정권의 잘못만을 물고 늘어지고 비난이 고작인 한나라당에게 미래가 있는가? 미래를 도모하고 국민에게 새로운 비젼을 제시하겠다는 말뿐인 박근혜 대표, 단지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없고 반노 결집세력을 중심으로 얼굴마담 역할만 할 능력 밖에 되지 못한다면 박근혜 대표는 그녀의 말처럼 스스로의 무능을 자인하고 지체없이 야당대표직을 그만 두어야할 것이다.
우리사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사회적 연대성>을 가꾸어가는 것이라 믿는다. 우리사회가 분열과 대립 반목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하여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로 탈바꿈해야 한다. 나는 한번도 엇나가지 않고 헌정질서를 올곧게 이 땅 위에 세우는 것만이 우리가 미래를 위한 길이라 일관되게 역설해 왔다. 우리가 뭉치면 살고 싸우면 죽는다 강조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자신들의 입장만을 상대편에 강요하려하는 우리 사회의 극우세력과 극좌 세력에 다 우리사회의 화해와 갈등을 저해하는 반사회적 집단으로 생각한다. 현실이 어렵다 하여 과거에 매달려 연연해 하는 나약한 국민이라면 우리에게 약속된 미래는 결코 없을 것이다. 어려운 세월을 살아오면서 배워온 삶의 진실이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삶이란 뒤돌아 보는 것이 아니다.
1. 나는 왜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주장하는가
시대정신이란 알고 보면 한 사람의 정신이다.
지난 40여 년 우리나라를 지배해온 시대정신은 <잘 살아보세>로 시작한 경제성장의 국가이념이고 그것은 박정희라는 한 사람의 향도해온 시대정신이었다. 1979년 인간 박정희는 사망하였지만 그 정신은 다시 살아나 87년까지 지속되었고, 87년 6월 항쟁 이 후 붕괴의 길을 걸어왔다. 지난 17년간 하나의 역사는 붕괴되어 왔지만 진정 새로운 역사는 시작되지 못했다. 지난 17년간 민주화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국가 질서는 확립되지 못했다. 민주화의 이름으로 개인과 집단의 권리의 주장과 이익의 추구는 소리 높이 主唱되었지만 우리사회는 점점 혼란과 무질서의 방향으로 이끌려 왔고, 국가와 사회 각 분야의 지도력은 점진적으로 약화되었다.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사회통합능력은 저하되었다.
1993년 김영삼정부가 구상했던 신경제 5개년 계획은 박정희의 경제개발 계획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1997년 IMF환란은 박정희 식의 제 성장 모델이 실패하였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김영삼은 자신이 집권하는 것이 곧 민주화고 말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국가가 해야할 일(Agenda)을 제시하지 못했다. 김대중은 50년만의 정권교체를 말했었다. 하지만 김대중이 건설한 민주주의 국가의 실체가 있기나 한 것인가?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발하였고, 2004년 4월 15일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걸고 그야말로 완전한 의미의 정권교체를 성취하였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로 집권층이 바뀌었다. 그러나 아직 새로운 대한민국은 등장하고 못하고 있다. 새로운 역사는 여전히 출발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국가질서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새로운 역사는 시작된다
실패가 확인되었다면 목표를 재설정하여야 한다. 하지만 어떠한 목표를 설정하여 그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했을 때에도, 우리는 새로운 삶의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박정희식 국가 발전모델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일인당 국민소득 100불에서 10000불의 시대로 이끌어 온 대한민국의 산업화 과정은 박정희의 리더쉽을 중심으로 이룩하였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성공하였다는 관점에서 말하자면 박정희식의 국가모델은 그 목적을 달성하였기에 새로운 국가모델이 만들어져야 한다. 실패하였다는 관점에서 말할 때, IMF환란이 박정희식 경제운용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 또한 이해해야 한다. 혹자는 IMF환란이 김영삼의 책임이지 왜 박정희의 책임이냐고 되물을지 모른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논점은 누구의 책임을 추궁하자는 것이 아니다. 2004년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의 국가모델은 박정희가 만든 것이고, 우리 시대에 새로운 국가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 박정희 식의 국가모델을 어떻게 극복해 내느냐를 논의하고자 하는 때문이다. 박정희를 폄하하고 비난하기 위해서 박정희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박정희의 국가운영방식이 이제는 낡고 쓸모 없는 것이라는 분명히 이해하고 새로운 국가 운영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정희 방식의 국가지배질서를 뛰어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국가질서를 만들어야 우리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2. 민주주의적 국가질서
그렇다면 새로운 국가질서는 어떤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독재국가에서 민주국가로 거듭나는 일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유민주주의 국가체제를 확립하는 길이다.
지난 17년 간 민주화 운동은 반체제적으로 진행되었다. 통합을 위한 국가권력은 해체되기 시작했다. 노태우 정권 이후의 정부가 주도한 민주화 노력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보통사람의 시대를 연다는 명분하에, 사회통합을 위하여 꼭 필요한 권위마저도 파괴하고 말았다. 심지어는 국가기관의 개혁입법조차, 국가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터무니없이 기구를 팽창하는 데 급급하여 예산만 낭비해 온 것으로 평가된다. 40년 독재정치에 대한 누적된 각종 사회병폐로 인하여 대다수 국민, 지식인, 시민단체, 심지어는 사법부와 행정부 일각에서 조차, 국가권력을 분권화하고 국가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것을 민주화라 여기며 개혁입법을 추진해 왔다.
국가권력의 본질과 국법의 기본질서에 대한 이해 없이 당파적 이해에 얽매여 개혁을 실시해 온 것이다. 부처이기주의라는 희한한 말도 생겨났다. 이러한 말이 생겨났다는 것이 곧 정부 조직내의 통합능력이 훼손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정부의 민주화 개혁 또한 기구를 팽창하여 예산을 낭비하고 국가권력을 분권화하여 국가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수많은 관변단체가 생겨났고,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정부는 고비용 저 효율의 엉망진창의 시스템으로 고물화 되어갔다. 이러한 어이없는 개혁의 추진이 공무원의 부패를 조장하고 사회혼란을 가중시킬 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다. 88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었고 - 16년 지난 지금 지방자치단체는 부패의 온상이 되어버렸다
국민주권주의를 말하며, 무책임한 지식인들이나 시민단체들은 국민의 요구대로 국정이 이끌어져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고 이러한 잘못된 생각이 사회전반에 퍼져 있다. 대다수 국민들은, 국가권력을 무력화시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것이 민주화 운동이라고 착각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사회를 통합의 원칙보다는 분화의 원칙으로만 설명하려 하고, 조화나 사회통합을 이룩하기 위한 동질성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도외시한 채, 국가권력을 無力化시키고, 개인과 집단의 욕망을 극대화하는 것이 진리인 듯 외쳐대는 천박한 자유주의가 민주화 운동의 주조를 이루어 왔던 것이다.
국가의 기강은 무너졌고, 사회윤리가 실종되었으며, 우리들의 삶의 질서는 혼돈 속에 빠져버린 것이 우리가 처한 이 시대의 상황이다.
안타깝게도 6.29선언 이후 지속되어온 이러한 사회위기 상황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각종 사회문제에 대하여 때로는 과도한 제어를 시도하고, 결국에는 부패한 세상 탓, 국민이 저질인 탓으로 방치해 버리고 마는, 국가권력의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구조적 해결불능상태를 지속시켜 왔던 것이다.
독재정치의 폐해로 누적되어온 이러한 위기상황은 결국 우리로 하여금 파국적인 IMF체제로 가지 않으면 아니 될 국난을 초래했다. 현재의 국가위기는 본질적으로 박정희 이 후 개발독재에서 비롯된 <국가의 정당성의 위기>이다. 국가나 국민 할 것 없이, 어떠한 삶이 정당한 것이고, 어떠한 방법이 적절한 것이며 어떠한 목표가 적당한 것인가를 규율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지난 40년 동안 국가권력은 통치자의 필요에 의해 독단적으로 법을 만들어 국민을 지배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반민주적인 지배방식은 수 없는 국민적인 저항에 부딪혔고 이제는 그 설 땅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대대적 정부 혁신을 단행하였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의 정부조직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정부조직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김대중 정부의 정부혁신 또한 제대로 된 국가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했고 설정하지 못했다. 제대로 된 지배방식을 창출해내지 못한 국가가 국민의 눈치를 살피며 <국민의 요구에 의한> <수요자중심> <고객중심>의 행정을 한다며 국가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다. 지난 40여 년 동안 정부의 행정행위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었다. 판례가 있는 법보다는 판례가 없는 법이 훨씬 많은 나라. 유권해석으로 움직이는 나라. 법이 여전히 국민에게는 필요에 따라 강제규정이고 공직자에게는 훈시규정으로 남아 있는 나라. 박정희에서 시작된 독재행정의 폐해는 여전히 극복되지 못하였다.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이러한 나의 주장은, 국가운영방식이 독재행정의 구태를 말끔히 씻어버리고 민주주적 의사결정 체제를 갖춘 나라로의 도약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원칙에 의하여, 헌법정신에 기초한 국가의 조직과 제도을 정비하여야 한다는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3. 새로운 국가의 모색
강력하고, 효율적인 국력은, 국가권력이 국민의 생활과 삶의 상황을 성공적이고 효율적으로 統御하여, 결집된 국민적 역량을 이끌어낼 때 가능하다. 박정희는 이를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아래 강압적 방식으로 국민통합을 이끌어내었다. 그리고 일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정당성이 결여된 이러한 강압적 통합방식은 지속적으로 국민을 지지를 받을 수 없음은 물론이다.
국민통합을 위한 국가적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과제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는 확고한 원칙 하에 조직되고 운영되어야 하고, 이러한 원칙은 보편적 진리와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정당한 원칙이어야 한다. 책임 있는 개인은 어떠한 규범을 자신의 행동을 제약하는 원칙으로 수용함에 있어 그 규범이 자신의 행위를 拘束하는 準據로 정당한가를 물을 것이다. 또 일정한 시기에 일정한 적용의 영역 내에서 규범적으로나 사실적으로 효력을 갖는 규범인가를 따질 것이다. 따라서 法은 정당하고, 구체적으로 타당하며, 실효성이 있고, 문제가 발견될 경우 이의제기를 통한 <정당성 승인청구>나 <타당성 승인청구>가 완전히 보장되야 한다. 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법은 반드시 개정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통치자의 의사대로 국가를 경영하는 것은 독재정치이다. 국민의 뜻대로 국가를 운영한다면 그 또한 프로레타리아 독재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각기 다른 국민들의 요구란 이질적이고 때로는 상호모순적이기도 하다. 이러한 국민의 요구로 국가를 이끌어 간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국가는 普遍的 眞理와 合理的 理性, 그리고 正義와 自由, 平等의 理念과 國民主權의 理念을 포괄하는 憲法을 제정하고 이 헌법에 기초한 법으로 국가의 초석을 다져야 한다. 이러한 국가의 존립을 전제로만 平和가 가능하다. 또 이러한 憲政國家만이 국민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고 진정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사회의 전제조건이 된다.
40년 간의 독재정치와 독재행정에서 비롯된 독단적 의사결정방식은 이제 합법적이고 예측가능하며 투명한 행정을 실천함으로써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실천적 의미의 민주주의 행정을 구현해 나아가야 한다. 예측가능하고 공정한 경쟁질서를 갖는 사회를 전제로 하여야만이 건전한 시장질서가 형성된다.
확고한 원칙하에 나라의 令을 올곧게 세워야 한다.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와 <자유주의적 경제질서>를 양 축으로 하는 확고한 국가질서를 바탕으로, 고용의 불안, 빈부격차의 확대 등이 야기될 수 있는 신자유주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경제권력이 시장질서를 왜곡할 수 없도록 경제를 다스릴 수 있는 정치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함으로써 우리는 진정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게 될 것이다.
IMF구제금융의 여파는 경제부문만이 아닌 사회전반에 걸쳐 수많은 문제를 배태하고 있다. 강제된 급격한 구조조정으로 야기되는 실업, 실업가정의 파탄, 전통적 공동체 사회의 붕괴, 젊은 세대의 가치관 상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에서 비롯되는 자살율 이혼율의 급증, 출산율의 현저한 저하, 범죄의 폭발 등 수많은 사회문제의 폭발을 예고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국가의 사회통제능력이 현저히 저하될 것이며 국가 위기의 국면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의학적 관점에서 위기의 개념은 인체 내부의 저항력이 외부에서 침투하는 병원체의 증식력보다 약하면 그 생명체는 위기의 국면을 맞이한다. 이를 방치하게 되면 결국 그 생명체는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
우리사회의 위기의 국면 또한 이와 마찬가지이다. 건강한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범죄 등 각종 사회문제 발생의 증가율이 국가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능력보다 커지게 된다면 국가나 건전한 사회의 존속은 결국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위기의 상황은 정권의 교체나 혁명 등 급격한 사회변혁의 요구를 증대시키게 될 것이다. 이것이 국가의 위기국면이다.
우리가 처한 국가 위기 상황은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국민들의 삶을 지배하는 원칙을 상실했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지난 40년간 말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이념을 표방하였으나 실질적으로 독재정치로 일관해오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이념을 확립하는데 실패했다.
학연, 지연 등 연고 중심의 사회운영과 특혜지향적인 그릇된 삶의 방식의 추구로 인하여, 합리성이나 공정성에 기초한 건전한 사회작동원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국가권력 또한 통치자의 의사에 순종하는 방식만을 강제했을 뿐, 정당한 법에 기초한 효율적인 행정, 합법적인 권한행사방식을 확립하는데 실패했다.
성장제일주의와 실적주의의 기치아래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합법적인 삶의 가치는 외면 당해 왔다. 독재자들은 자신들의 정권유지의 방편으로 국토의 균형발전을 훼손하고 지역감정을 유발하여 국민화합의 기반을 파괴했다.
국가권력은 정당하지 못했으며 권력을 가진 자들은 특권과 불공정에 집착하며 不法과 전횡을 일삼아 왔다. 그 결과 국가는 지배력을 상실하게 되고, 복잡해지는 사회현상과 계층과 이해집단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데 구조적 해결불능상태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것이 현 국가 위기 상황의 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국가와 지배체제가 법을 지키지 않고 만들어 졌다. 권력자는 법 위에 군림했고, 고위관리일수록 恣意적 권한행사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준법정신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이다. 독재정치로 일관해 온 지난 40년 동안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준법정신은 그야말로 악화일로로 치달아 왔다.
자율성을 상실하고, 지배되지 않는 사회-
이것이 국가 질서가 무너져버린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난국에 처한 위기의 사회 현실의 본질이 무엇일까?
박정희와 전두환의 경제성장의 배경에는 강압적인 대다수 국민의 사회통합이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지난 17년간 민주화의결과로 사회통합을 이룩하는 데에 실패하고 우리 사회가 계층과 지역간 세대 간의 갈등이 증폭되었기 때문이다. 잘못된 민주화로 국가와 사회질서는 난장판이 되었고, 서로가 자신의 이익만을 고집하는 불신과 반목, 대립과 갈등이 증폭되는 세상에서, 경제가 망가진 것은 어쩌면 필연적 귀결이다.
박정희는 총칼로 일어서서 총칼로 망한 사람이다. 헌정질서와 국가의 정통성을 경제성장의 논리로 멋대로 유린했다. 5.16 군사구테타로, 공작정치에 의한 정치탄압의 방식을 삼선개헌을 했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헌법을 깡그리 무시하고 영구집권을 꿈꾸며 유신헌법을 만들었다. 결국 심복의 총에 비참한 최후를 맞아야 했다. 헌법을 유린한 박정희를 되살리는 것은, 헌정질서 확립과 국가 정통성 확립에 어쩔 수 없이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박정희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다음 세대에 물려줄 대한민국의 미래는 무엇이냐고? 당신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국가관의 실체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박정희를 찬양하는 민중의 함성이 헌법이라 말하고 싶은가? 도대체 당신들이 말하는 보수의 의미가 무엇인가 묻고 싶다. 나는 우리 사회의 질서의 근간을 헌법에 두어야 한다고 믿는다. 헌법은 국가의 魂이고 生命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헌법에 세우고 국민화합과 사회적 연대성의 이념을 헌법에서 이끌어 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대한민국 헌법편이다. 그리고 헌정질서를 올곧게 세워가는 것만이 희망찬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는 초석이라 믿는다.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와 퇴행적인 박정희 향수가 살아나는 현실에서, 민주주의와 헌법에 기초한 건전한 국가질서 사회질서를 온전하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경제성장의 논리로, 실적이나 업적 위주의 정치로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훼손한다면 우리는 결코 국민화합을 이룩할 수 없고, 결집된 국민적 역량을 전제로 하지 아니하고는 아무것도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한 국가의 건전성은 국민이 국가(헌정)질서를 수호하는데 얼마만큼 헌신적으로 노력하는냐로 평가된다 믿는다. 나는 개인의 강압적 리더쉽에 의존하는 국가운영 방식을 버리고, 우리사회의 헌정질서를 올바르게 세우고자 역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헌정질서로부터 우리는 우리의 후손에 물려줄 자랑스러운 조국의 미래에 대한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의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4. 희망을 위하여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리의 현실에 좌절한다. 나는 희망이 없는 것 같은 세상에서 희망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반목과 대립으로 서로 자신들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가 싸우면 망하고 뭉치면 산다는 말을 역설하고자 한다. 박정희 이 후 모든 대통령이 박정희를 뛰어넘지 못했다. 박정희 이 후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모두 독재자라는 것이 나의 일관된 생각이다.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국정개혁의 요체는 과거 독단적 의사결정에 의하여 운영되어 왔던 독재정치 및 독재행정의 폐해를 타파하고 의사소통의 공정성이 보장된, 상호존중의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으로 운영되는 국가, 자유민주주의적 헌정질서에 기초한 정의롭고 활력 있는 국가와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모든 국가권력의 행사는 법률의 제재를 받아야 한다는 법치주의의 이념을 철저하게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확고한 원칙하에 국가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헌정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헌정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신장하는 자유 실현의 전제조건이 되며.. <민주주의적 헌정질서>의 확립이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전제 조건이 됨을 바르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나라의 근본인 헌정질서를 올곧게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모든 국가권력의 행사는 법의 제재를 받는다는 법치주의 이념을 구현하고, 예측 가능한 행정으로 令을 바로 세운다면, 부정부패의 척결, 지역감정해소, 법과 질서의 수호, 나아가 국민화합도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러한 헌정질서를 전제로만이 건전한 시장질서도 형성될 수 있다.
먼저 국가권력의 사회통합능력과 문제해결능력의 향상이 전제되어야만 성공적인 개혁이 가능할 것이다.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일은 나중으로 미루어야 한다. 먼저 헝클어진 기존의 제도를 정비하여, 국가의 내부질서를 강화시켜야 한다. 혼돈의 문제적 상황을 하나씩 둘씩 차근차근 정리해 나아가면서 흔들림 없이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위기의 국가 상황에서는, 법과 공권력의 권위를 드높이고 국가의 지배력을 ─ 사회통합 역량을 강화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국가는 정부 주도하에 운영되어야 마땅하고,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권한 행사방식은 <法으로>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 누구보다도 대통령 자신이, 정치란 오직 세가지가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법을 만들고(立法), 법을 운영하고(行政), 법을 선언하는 것(司法). 법을 지키면서 타당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 법의 제제 하에 실효성 있는 공권력이 행사되어야 한다.
법관이 법률에 기속(羈束)되어야 한다.
기강과 절도가 없는 군대가 강력한 전투력을 가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강과 질서를 상실한 국가나 사회가 지리멸렬 할 것은 명백하다. 법질서를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정당한 법이 선언되어야 한다. 이러한 확고한 국가관에 기초하여 국정을 이끌어가는 길만이 이 땅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는 첩경임을 그리고 개혁의 성공적인 돌파구를 마련해 나아가는 길인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적 헌정국가는 다음과 같은 사회를 건설할 것을 목표 해야 한다. 새로운 국가는 민주주의 이념에 입각한 행정과 법체계를 확립하고, 이러한 바탕 위에 국민의 건전한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국가는 성실하고 정직하며 부지런히 학습하고 훈련하는 국민의 삶의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합법적인 삶의 방식이 지켜지고, 인간의 德性이 최고의 가치로 존중되는 사회를 구현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고, 자유, 평등, 정의와 인류애를 구현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새로운 사회는 <능력이 지배하는 사회>, <법이 지배하는 사회>, 의사소통의 공정성이 보장되어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되는 사회>를 정착해 나아감으로써 기강이 서있고, 활력과 질서가 있어 경쟁력 있는 국가질서의 확립을 목표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오천년 유구한 역사 ─ 문화민족의 자긍심은 우리로 하여금 기필코 세계사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게 할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시련의 시대를 위대한 역사를 창조한 전기로 기억되게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 믿는다.